06 가정의 달(창 2:18~25, 가정과 혼인)- 최초의 가정(부부의 날)
가정과 혼인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창 2:24)
요즘 우리나라의 심각한 문제 중 하나는 가정이 무너진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혼인을 하지 않는다는 것, 혼인은 하지만 아기를 낳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2004 UN보고서에 이로써 10년 후에는 노령인구의 팽창으로 국가의 노후보장 부담은 커질 것이며, 2050년에는 한국 인구가 4,000만 이하로 줄어들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언어가 보존되기 위한 최소 인구를 1억 명으로 보고 있는데, 그렇다면 2050년에는 560년 역사를 자랑하는 한글이 사라질 위기에 처하게 됩니다. 언어가 사라진다는 것은 문화가 사라진다는 것이요, 문화가 사라진다는 것은 민족이 사라진다는 것을 뜻합니다. 이런 시점에서 우리는 혼인의 중요성을 깨닫고 혼인하여 하나님의 사명을 따라 생육하고 번성해야 됩니다.
가정은 교회보다 앞서 하나님이 세우신 공동체입니다. 먼저 혼인의 사회학적 정의를 보면 ‘혼인이란 성인 남녀가 그들이 거주하는 사회의 법률에 따라 정서적 관계와 서로에 대한 법적 책임, 공적인 의식을 갖는 하나의 합의’입니다. 이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혼인은 정서의 관계입니다. 둘째, 혼인은 일부일처의 관계입니다. 셋째, 혼인은 법적 책임의 관계입니다. 넷째, 혼인은 자녀의 적출(嫡出)을 보장하는 관계입니다. 다섯째, 혼인은 공적 의식의 관계입니다. 그렇다면 성경이 말씀하는 혼인이란 무엇입니까?
돕는 배필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창 2:18)
하나님은 아담이 독처하는 것이 보시기에 좋아 보이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담을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셨습니다. 여기에서 “돕는 배필”이란 가장 적합한 동역자란 뜻입니다. 그리고 “지으리라”는 말씀은 하나님의 의지입니다. 하나님은 의지를 가지고 여자를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담에게 돕는 배필이 필요함을 아시고 여자를 만드셨습니다. 이를 볼 때 여자의 위치는 ‘바라는 배필’이 아니라 ‘돕는 배필’입니다. 그러므로 여자는 남자로부터 도움받기를 바라기보다 남자의 부족한 점을 찾아서 도와야 합니다. 잠언 31장 10~12절에 보면 현숙한 여인을 축복하는 말씀이 나옵니다.
“누가 현숙한 여인을 찾아 얻겠느냐 그의 값은 진주보다 더 하니라 그런 자의 남편의 마음은 그를 믿나니 산업이 핍절하지 아니하겠으며 그런 자는 살아 있는 동안에 그의 남편에게 선을 행하고 악을 행하지 아니하느니라.”(잠 31:10~12)
그렇다고 무조건 남자를 지지하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남자에게 주신 사명이 무엇인가를 잘 알고 그 사명을 잘 감당하도록 도우라는 것입니다. 남자들은 여자들이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따라 그 삶이 달라집니다. 그래서 “어떤 사건 뒤에는 반드시 여자가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남자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두 여자의 손을 거친다”는 말이 있습니다. 하나의 손은 훌륭한 어머니이고, 또 하나는 어진 아내의 손입니다. 위대한 남자들 뒤에는 위대한 여인들이 반드시 있습니다. 사무엘의 뒤에는 기도하는 한나가 있었고,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뒤에는 기도의 어머니 모니카가 있었고, 존 웨슬리의 뒤에 또한 기도의 어머니 수잔나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여자들에게 겉모양보다 속사람을 아름답게 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아내들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종하라 이는 혹 말씀을 순종하지 않는 자라도 말로 말미암지 않고 그 아내의 행실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게 하려 함이니 너희의 두려워하며 정결한 행실을 봄이라 너희의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하지 말고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라.”(벧전 3:1~4)
그렇다고 여자들이 화장도 하지 말고 옷도 구질구질하게 입고 다니라는 말이 아닙니다. 믿는 사람들은 매혹적인 옷차림을 경계하고 매력적인 옷차림을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외모도 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더욱더 힘써야 할 것은 겉모양보다 속사람을 더 아름답게 해야 합니다. 그때 좋은 배필이 되어 주님 안에서 아름다운 동역자, 배필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주권
창세기 2장 19~20절을 보면 하나님은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하늘의 각종 새를 지으시고 아담이 어떻게 이름을 짓나 보시려고 그것을 그에게 이끌어 오셨습니다. 그러자 아담은 각 생물의 이름을 지었습니다. 아담은 각 생명의 개성과 특성을 따라 이름을 지었습니다. 아담이 각 동물의 이름을 지었을 때 그 이름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온 세상을 인간이 관리하게 되었다는 것은 하나님이 인간을 모든 존재 위에 뛰어난 영화로운 존재로 지으셨음을 의미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돕는 배필을 어떻게 지으셨습니까?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창 2:21).
하나님은 그를 잠들게 하셨습니다. 그가 잠들자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셨습니다. 여자를 남자의 갈빗대로 만드셨다는 것은 큰 의미가 있습니다. 여자를 남자의 머리로 만들었다면 여자는 남자의 브레인이 되어 그를 좌지우지할 것입니다. 또한 발가락으로 만들었다면 남자는 여자를 발로 다스릴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남자의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셨습니다. 갈빗대는 우리 몸의 중요한 기관인 오장(五臟), 즉 심장, 간장, 폐장, 신장, 위장을 보호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남자의 갈비뼈로 여자를 만드셨다는 것은 ‘남자는 여자를 보호하라’는 뜻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다시 말해 서로 사랑하고, 서로 돕고, 서로 귀히 여기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여자를 만드실 때 아담은 전혀 관여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일방적인 주권 가운데 만드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여자를 만들어 남자에게로 이끌어오시니 그의 감격이 어떠했습니까? 아담은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부르리라”(창 2:23)고 고백했습니다. 이 고백은 최초의 사랑 고백이요,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순종의 결과입니다.
사람들은 다른 것은 몰라도 혼인만큼은 내가 정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혼인은 나의 의지나 뜻대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섭리와 주권 없이는 결코 혼인이 성립되지 않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절대 주권에 맡기고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주권에 맡기고 기도하면 하나님이 보시기에 가장 적합한 배필을 주십니다. 하나님께 맡기고 기도할 때 후회함이 없습니다(롬 11:29).
연합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창 2:24)
남자와 여자는 분명히 다른 두 개체입니다. 그런데 남자와 여자가 혼인하게 되면 남자는 부모를 떠나 아내와 연합하여 하나가 됩니다. 혼인하면 ‘1+1=2’가 아니라 ‘1’, 즉 한 몸이 됩니다. 웨딩홀 이름 중에 ‘두리원’이 있습니다. 둘이 하나가 된다는 뜻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부부의 날도 둘이 하나가 되었다고 하여 5월 21일입니다. 두 개체가 하나가 된다는 것은 신비한 일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를 이렇게 감탄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이 비밀이 크도다 나는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엡 5:31~32)
학자들은 신비한 셋이 있는데 첫째는 삼위일체 하나님, 둘째는 예수님의 성육신, 셋째는 둘이 하나가 되는 부부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천국을 볼 수 없지만, 부부가 연합되는 그 속에서 하늘나라의 비밀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이 혼인의 신비입니다.
첫째, 영과 육과 인격의 연합
‘연합하다’는 것은 두 사람이 육체뿐 아니라 인격적으로나 영적으로도 하나가 되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가 된다고 해서 인격이 말살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는 조화로운 연합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연합이라는 말씀 속에서 믿는 자는 불신자와 근본적으로 혼인할 수 없음을 알 수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6장 14~15절에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며 빛과 어둠이 어찌 사귀며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빛의 자녀요, 믿지 않는 사람은 어두움의 자녀입니다. 그렇기에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는 조화가 될 수 없습니다.
또한, 믿는 자가 믿지 않는 자와 혼인하게 되면 믿음을 잃게 되기도 합니다. 신명기 7장 3~4절은 “또 그들과 혼인하지도 말지니 네 딸을 그들의 아들에게 주지 말 것이요 그들의 딸도 네 며느리로 삼지 말 것은 그가 네 아들을 유혹하여 그가 여호와를 떠나고 다른 신들을 섬기게 하므로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진노하사 갑자기 너희를 멸하실 것임이니라”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노아 시대에 포악함이 가득했던 것은 신자들이 불신자들과 자연스럽게 혼인한 데 있습니다. 지혜의 왕 솔로몬은 이방 여인들을 아내로 삼고 왕궁 내에 그녀들을 위해 이방 신전을 세워줌으로 영적으로 타락하게 되었고, 이스라엘의 분열 또한 솔로몬이 이방 여인을 취한 데서 비롯되었습니다. 삼손이 패망한 것도 이방 여인을 취한 데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생각을 합니다. ‘비록 믿지 않지만, 마음이 착한 여인과 혼인하여 믿게 하면 되지 않나? 그러면 한 영혼을 구원하는 것이 아닌가?’ 이 말은 일리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불신자 한 사람을 구원하고 또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과 혼인하니 말입니다. 이것을 일컬어 ‘일거양득’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는 인간의 욕심과 교만에서 나온 생각입니다. 믿음이란 사람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남편의 권위로 아내를 구원시킬 수 없고, 아내의 마음대로 남편을 구원시킬 수 없습니다. 구원은 육정으로, 혈통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요 1:13). 구원은 전적인 하나님의 주권으로, 하나님 손에 있습니다.
불신자와 꼭 혼인하여 구원시키고자 함은 그 영혼에 대해 불쌍히 여기는 생각이라기보다 자기 자신의 욕심을 채우고자 하는 하나의 변명입니다. 일생 동안 자기 남편, 자기 아내 한 사람을 구원시키려고 그 허구한 세월을 다 보내는 대신 믿음의 사람과 혼인하고 합심하여 복음을 전파하면 한 사람뿐 아니라 수많은 사람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진정 믿음으로 산다면 믿음의 사람과 믿음의 혼인해야 합니다.
만일 우리가 믿는 자와 혼인하지 않았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배우자가 예수님을 믿을 수 있도록 일생을 기도해야 합니다.
둘째, 합일성과 친밀성
‘둘이 한 몸을 이룬다’는 것은 합일성, 친밀성을 말합니다. 부부 사이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제외하고는 가장 가깝고 친밀한 사이입니다. ‘연합’이란 단어는 종이 두 장을 아교풀로 딱 붙여놓은 상태를 말합니다. 그 사이에는 누구도 개입할 수 없습니다. 부부 사이에는 시아버지도, 시어머니도, 친정 부모님도, 그 누구도 끼어서는 안 됩니다.
혼인했으면 이혼을 해서는 안 됩니다. 딱 붙은 종이를 떼어보십시오. 종이가 찢어집니다. 이처럼 둘이 한 몸을 이룬 것을 나누어보십시오. 이는 정상이 아니며 피차 상처를 받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혼을 금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아내에게 합하여 그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 하신 것을 읽지 못하였느냐 그런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마 19:5~6)
이혼은 하나님의 절대주권에 반하는 것입니다. 또한 이혼은 부부 사이의 문제로 끝나지 않고 자녀와 사회에 고통과 상처를 안겨줍니다.
가정은 모든 교육의 시초가 되고 근간이 됩니다. 우리는 어머니의 복중에서 시작하여 이 세상에 태어나면서 가정으로부터 먹는 법, 말하는 법, 걷는 법, 남을 섬기는 법, 서로 돕는 법, 예배드리는 법, 하나님을 경외하는 법 등을 배웁니다. 타일러는 세 살 이전에 가정에서 사회화·문화화 과정을 92%정도 겪는다고 했습니다. 우리 속담에도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리고 에릭슨은 다섯 살까지 어머니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도 중요한 시기로 보았습니다.
페스탈로치는 “가정이여, 너는 도덕상의 학교, 어린이의 교육을 위한 최적의 학교, 어머니는 하늘이 내리신 교사다”라고 했습니다. 가정만큼 좋은 학교는 없습니다. 모든 제도는 가정에서 출발합니다. 가정이 허물어지고, 가정이 병들고, 가정이 흔들리기 시작하면 모든 것이 흔들리고 어려움을 당하게 됩니다. 가정은 중요한 공동체입니다. 그러므로 이혼은 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가정을 소중히 여기고 지키고 보호해야 합니다.
성경은 이혼뿐만 아니라 분방까지 금합니다. 다만 기도할 틈을 얻기 위해 합의상 얼마 동안은 하되 다시 합하라고 했습니다(고전 7:5). 부부싸움하고 토라져 벽을 보고 자는 것도 같은 방에 있지만 분방하는 것입니다. 부부싸움을 했으면 해가 지기 전에 빨리 화해해야 합니다. 그래야 사탄이 틈타지 않습니다.
순결
하나님은 가정을 성결하게 보전하기 위하여 제7계명을 주셨습니다.
“간음하지 말라.”(출 20:14)
리처드 포스터가 쓴 《돈, 섹스, 권력》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그중에서 성 문제가 가장 심각합니다. 인기 있는 드라마의 주제는 불륜을 미화하는 내용들입니다. 문제는 그리스도인들조차도 이런 것들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고 웬만한 성문란을 보아도 놀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미국의 사회학자 다니엘 벨은 앞으로 포르노피아가 하나의 종교의 자리를 차지할 것이라고 예고했습니다. 이러한 시대 정황에서 제7계명인 “간음하지 말라”는 현실성이 없는 말씀처럼 들립니다. 그러나 간음하지 말라는 말씀은 주님의 명령이요 계명입니다. 성경 곳곳에 성결을 강조합니다.
“음행을 피하라 사람이 범하는 죄마다 몸 밖에 있거니와 음행하는 자는 자기 몸에 죄를 범하느니라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전 6:18~20).
“모든 사람은 혼인을 귀히 여기고 침소를 더럽히지 않게 하라 음행하는 자들과 간음하는 자들을 하나님이 심판하시리라.”(히 13:4)
“너는 네 우물에서 물을 마시며 네 샘에서 흐르는 물을 마시라 어찌하여 네 샘물을 집 밖으로 넘치게 하며 네 도랑물을 거리로 흘러가게 하겠느냐 그 물이 네게만 있게 하고 타인으로 더불어 그것을 나누지 말라 네 샘으로 복되게 하라 네가 젊어서 취한 아내를 즐거워하라 그는 사랑스러운 암사슴 같고 아름다운 암노루 같으니 너는 그의 품을 항상 족하게 여기며 그의 사랑을 항상 연모하라.”(잠 5:15~19)
성이란 단어의 어원은 six, 십계명의 6 계명에서 왔습니다(천주교는 7계명이 6계명). 하나님이 7 계명을 주신 것은 가정 보호에 있습니다. 따라서 성이란 혼인한 남녀 부부가 은밀한 장소에서 은밀하게 인격적인 사랑 속에서 성결하게 사용해야 합니다.
세상에 생명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그러나 생명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성입니다. 왜냐하면 성에서 생명이 잉태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생명윤리보다 앞서는 것이 성윤리입니다. 우리가 성 자체가 순결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알 때 성결한 가정을 이룰 수 있습니다.
로마제국 멸망의 역사를 썼던 에드워드 기번은 로마제국이 망한 원인 중의 하나로 가정의 붕괴를 들었습니다. 남자들은 가정을 팽개치고 사냥과 주연을 일삼았습니다. 부인들은 사치와 쾌락에 몰입하여 가정을 돌보지 않았습니다. 그런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이 건강하게 자랄 리 없고, 행복했을 리 없습니다. 가정은 사회의 올바른 성장의 원동력이 됩니다.
그리고 가정을 성결하게 해야 할 이유는 하나님의 모든 축복이 가정을 통해서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성결은 혼인 전부터 시작됩니다. 우리는 몸이 성령의 전인 줄 알고 성결을 지킬 수 있어야 합니다. 혼인 전에 교제를 할 수 있어야 하지만 자제와 극기의 덕이 있어야 합니다.
“아담과 그의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니라”(창 2:25).
이는 부끄러움이 전혀 없는 행복의 극치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 안에서 연합하여 사랑으로 하나가 되었기 때문에 조금도 비밀이 없었습니다. 따라서 부부사이에 서로 의심하거나 비밀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출산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신 후 그들을 축복하셨습니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창 1:28)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말씀은 혼인하고 자녀를 많이 낳으라는 것입니다. 자녀는 축복의 상징입니다. 하나님은 민족이나 국가를 통해서 복을 주시는 것이 아니라 가정을 통해서 복을 주십니다. 가정은 모든 기관의 최초 단위입니다. 혼인도 마다하고 자녀도 낳지 않으려 하는 지금의 세대는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주님의 명령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자녀를 출산하지 않으면 누가 자연을 관리할 수 있습니까?
아기를 낳지 않으려 하는 것은 이기심의 발로 중의 발로입니다. 이기심은 아담 중심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으면 아담 중심에서 예수님 중심이 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혼인해야 하고 하나님이 주시는 만큼 아기를 낳고 양육해야 합니다. 그리고 인공임신중절(낙태)을 금해야 합니다. 인공임신중절은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생명을 죽이는 살인행위입니다.
가정에서 생명이 창조되고 행복이 만들어집니다. 이런 행복한 가정을 통해 자녀들은 혼인의 의미와 가정의 소중함을 알게 되고 혼인의 소망을 갖게 되고 혼인하여 자녀를 낳게 됩니다.
예배
위의 모든 것이 다 갖추어졌다 할지라도 하나님이 세워주시지 않으면 모두가 허사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구해야 합니다.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시 127:1)
하나님께 대한 간구는 가정 예배로 나타납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길을 걷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네가 네 손이 수고한 대로 먹을 것이라 네가 복되고 형통하리로다 네 집 안방에 있는 네 아내는 결실한 포도나무 같으며 네 식탁에 둘러 앉은 자식들은 어린 감람나무 같으리로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이같이 복을 얻으리로다 여호와께서 시온에서 네게 복을 주실지어다 너는 평생에 예루살렘의 번영을 보며 네 자식의 자식을 볼지어다 이스라엘에게 평강이 있을지로다.”(시 128:1~6)
하나님은 가정 예배를 기뻐하십니다. 가정 예배를 드리는 곳에 가정이 굳게 세워집니다. 미국의 16대 대통령 링컨은 어머니의 무릎에서 성경을 배웠다고 합니다. 켄터키 가난한 통나무집에서 자란 링컨은 어머니에게서 성경 말씀을 배우고 매일 가정 예배를 드렸습니다. 가정 예배가 링컨을 훌륭한 대통령으로 키웠습니다. 무디의 어머니 뱃시는 9남매를 데리고 매일 가정 예배를 드려 무디와 같은 세계적인 말씀의 종을 탄생시켰습니다. 가정 예배는 하나님의 신령한 복을 누릴 수 있는 근원이 됩니다.
하나님은 이 땅에 두 기관을 세우셨습니다. 하나는 교회고 또 하나는 가정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교회보다 가정을 먼저 세우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세우신 가정을 귀히 여겨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법도대로 가정을 세워나가야 합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가정에서 천국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사철에 봄바람 불어 잇고 하나님 아버지 모셨으니 믿음의 반석도 든든하다 우리 집 즐거운 동산이라 고마워라 임마누엘 예수만 섬기는 우리 집 고마워라 임마누엘 복되고 즐거운 하루하루”♬(새찬송가 559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