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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7:1-24, 8:1-22, 9:1-29, 10:1-32, 11:1-32

 

예수님의 소망 : 홍수 심판, 무지개 언약

 

지면의 모든 생물을 쓸어버리시니 곧 사람과 가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라 이들은 땅에서 쓸어버림을 당하였으되 오직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있던 자들만 남았더라”(7:23).

 

노아는 하나님을 경외했습니다. 그는 내적, 외적인 유혹과 시련을 이기고 구원의 방주를 완성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노아에게 너와 네 온 집은 방주로 들어가라”(7:1)고 명하셨습니다. 그리고 모든 정결한 짐승과 공중의 새는 암수 일곱씩, 부정한 것은 암수 둘씩을 취하여 방주에 들여보내도록 하셨습니다. 노아는 말씀대로 순종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한 노아와 그 가족은 구원을 받았습니다. 반면에 불순종한 자들은 모두 심판을 받았습니다.

이 장에서는 죄악된 세상을 심판하시는 공의의 하나님과 믿음의 사람 노아를 구원하시는 사랑의 하나님, 소망의 하나님을 배울 수 있습니다.

 

1. 홍수 심판(7:1-24, 8:1-22)

 

지금부터 칠 일이면 내가 사십 주야를 땅에 비를 내려 내가 지은 모든 생물을 지면에서 쓸어버리리라”(7:4).

하나님은 지금부터 7일 후에 세상을 홍수로 심판하겠다고 하셨습니다. 7일은 사람들이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 있는 마지막 절호의 기회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끝까지 회개치 않고 육신의 쾌락을 즐겼습니다. 반면에 노아는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했습니다. 노아는 그 가족들은 물론 모든 가축들과 함께 하나님이 명하신 대로 방주에 들어가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구원의 행렬이었습니다. 그들이 다 들어가자 하나님은 친히 방주의 문을 닫으셨습니다.

방주의 문은 이때까지 누구나 다 들어올 수 있도록 넓게 열려 있었지만 이제 하나님이 닫으신 이상 누구도 열 수 없었습니다. 이제 은총의 시대는 가고 무서운 하나님의 심판만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처럼 구원의 기회는 언제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언젠가 반드시 천국 문이 닫힐 때가 있습니다. 그때는 아무리 문을 열어달라고 애원해도 소용없습니다. 후회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그때는 모든 것이 끝입니다.

노아가 600세 되던 해 217일은 역사적인 심판의 날이었습니다. 그날에 큰 깊음의 샘들이 터지며 하늘의 창들이 열려 40주야 동안 비가 땅에 쏟아졌습니다. 지하수가 터지고 궁창 위의 물이 마구 쏟아졌습니다. 순식간에 모든 집들이 잠기고 산들이 잠겼습니다. 세계에서 제일 높다고 하는 에베레스트 산이 잠기고 온 세상이 잠겼습니다. 창세기 721-23절은 홍수 심판이 얼마나 무섭고 철저한가를 이렇게 강조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땅 위에 움직이는 생물이 다 죽었으니 곧 새와 가축과 들짐승과 땅에 기는 모든 것과 모든 사람이라 육지에 있어 그 코에 생명의 기운의 숨이 있는 것은 다 죽었더라 지면의 모든 생물을 쓸어버리시니 곧 사람과 가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라 이들은 땅에서 쓸어버림을 당하였으되 오직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있던 자들만 남았더라”(7:21-23).

그날에는 하나님이 없다고 부인하던 자, 믿음으로 사는 자들을 핍박하고 조롱하던 자, 세상 욕심을 따라 자행자지하던 자, 탐욕과 정욕대로 살던 자, 교만한 자, 은혜를 배반한 자 등 한 사람도 예외 없이 모두 물먹고 가라앉아 고기밥이 되었습니다. 오직 방주에 있던 노아와 그 가족들만 구원받았습니다. “오직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있던 자들만 남았더라는 말씀은 은총의 말씀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다 심판을 받아 멸망했지만 방주에 있던 자만은 구원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래 참고 기다리시지만 회개치 아니하고 순종치 않는 자들을 멸하시고 정죄하십니다. 반면에 말씀을 믿고 순종하는 자들을 구원하십니다. 성경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9:27).

인간은 모두 예외 없이 죽습니다. 그러나 죽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죽은 후에 반드시 심판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서 각각 선악 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심판을 받습니다(고후 5:10). 주님은 양과 염소를 구별하는 것과 같이 선악을 구별하십니다(25:32). 그리고 죄의 목록대로 심판하십니다.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점술가들과 우상숭배자들과 거짓말하는 모든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지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21:8).

예수님은 말세의 징조에 대해 노아 시대와 롯의 시대를 예로 들어 최후 심판을 경고하셨습니다.

노아의 때에 된 것과 같이 인자의 때에도 그러하리라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 가더니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망시켰으며 또 롯의 때와 같으리니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사고 팔고 심고 집을 짓더니 롯이 소돔에서 나가던 날에 하늘로부터 불과 유황이 비오듯 하여 그들을 멸망시켰느니라 인자의 나타나는 날에도 이러하리라”(17:26-30).

예수님은 장차 불 심판이 있을 것을 경고하십니다. 이러한 심판을 생각할 때 우리는 인생을 함부로 살 수 없습니다. 인생은 일회적입니다. 한 번밖에 없는 인생을 어떻게 사는가는 매우 중요합니다. ‘영생을 얻느냐? 영원한 멸망에 처하느냐?’ 이것은 구원의 방주되신 예수님 안에 거하느냐? 거하지 않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구원이 어디 있고, 심판이 어디 있느냐?” 하며 조롱합니다. 그래서 먹고 마시고 즐깁니다. 또한 죽어서 심판을 받아도 좋다고 호언장담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죄를 미워하시는 공의로운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반드시 심판의 날에 각각 선악 에 심판과 구원의 역사를 이루십니다.

하나님의 홍수 심판으로 인해 세상에는 물이 150일 동안 창일했습니다. 하나님이 노아와 방주에 있는 모든 생물들을 기억하사 바람으로 땅 위에 불게 하시어 물을 감하셨습니다. 무서운 진노의 물결을 감하신 것은 방주에 있는 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크신 사랑이었습니다. 물이 완전히 감하자 노아와 그 가족은 방주에서 나왔습니다. 그때 그들의 감격이 얼마나 컸겠습니까?

노아는 방주에서 나와 가장 먼저 하나님을 위하여 단을 쌓았습니다. 노아는 방주 안에 있으면서 억수같이 쏟아지는 비와 산꼭대기까지 잠긴 광경을 보면서 하나님의 심판이 얼마나 실제적이고 절대적인가를 깨달았습니다. 또한 자기 자신도 하나님 앞에서 심판을 받아야 할 죄인이었지만 자기와 가족을 구원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여 감사의 단을 쌓았습니다. 그리고 희생과 헌신을 상징하는 번제를 드렸습니다. 하나님은 노아의 감사를 기뻐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천국에 계시고 또 한 곳, 감사하는 마음에 계신다는 말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감사하는 사람과 함께하십니다.

하나님은 노아가 드린 제물의 향기를 받으시고 다시는 사람으로 인하여 땅을 저주하지 않기로 결심하셨습니다. 이는 홍수 심판으로도 죄의 성향의 뿌리가 뽑히지 않기 때문이었습니다.

 

2. 무지개 언약(9:1-17)

 

하나님은 노아와 그 아들들을 축복하셨습니다. 그들에게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범죄로 인해 사람과 동물 간에 파괴된 질서를 바로잡아 주시고 짐승의 고기도 먹을 수 있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고기를 피 채 먹지 말 것과 사람의 피를 흘리지 못하도록 경계하셨습니다. 이는 생명이 피에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의 생명을 귀하게 여기시는 이유는 사람을 지으실 때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홍수로 세상을 심판하지 않겠다는 증거로 세상과 언약을 세우셨습니다. 그 증거로 비 온 후에 무지개를 허락하셨습니다. 창세기 913절을 보면 하나님은 무지개를 내 무지개’(my rainbow)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내 무지개를 구름 속에 두셨는데 이것이 나와 세상 사이의 언약의 증거’(the sign of the covenant)라고 하셨습니다. 무지개는 하나님이 노아를 비롯하여 전 인류, 모든 피조물과 맺은 언약의 표시(sign)입니다. 에스겔은 하나님의 보좌에 관한 환상을 보았는데 하나님의 보좌 사면의 광채 모양이 비 오는 날 구름에 있는 무지개와 같은데 이는 여호와 영광의 형상이라고 했습니다(1:28). 요한계시록 43절도 무지개가 하나님의 보좌에 둘렸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영광의 상징인 무지개를 두고 언약하셨습니다. 특히 내 무지개를 구름 속에 두었나니라고 하셨는데 여기에서 구름은 곧 비를 의미합니다. 이는 홍수 심판과 연관됩니다. 인간은 구름을 볼 때마다 하나님이 홍수로 심판하시지 않을까 두려웠습니다. 또한 우리가 살다 보면 구름 낀 날이 많습니다. 마음이 어둡고 두렵습니다. 미래가 불투명합니다. 그러나 믿는 사람들은 조금도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무지개의 언약을 통해 홍수 심판에 대한 두려움의 문제를 해결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무지개 언약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의 증거입니다. 무지개를 통한 언약을 자연계약이라고 합니다. 자연계약은 하나님의 보편적인 은혜입니다. 이 은혜로 인해 우리는 생명을 유지하고 번성할 수 있습니다.

 

3. 셈과 함과 야벳에게 임한 저주와 축복(9:18-29)

 

노아가 방주에서 나온 후 셈과 함과 야벳을 시작으로 백성이 온 땅에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노아는 방주에서 나온 후 농사를 짓기 시작해 포도나무를 심었습니다. 이때 그는 포도주를 마시고 취해 장막 안에서 벌거벗게 되었습니다. 그는 그만 술에 취해 실수를 했습니다. 그런데 이때 가나안의 아버지 함이 그 아버지의 하체를 보고 밖으로 나가서 재미있다는 듯 아버지의 허물을 이야기하고 다녔습니다. 그러나 이를 들은 셈과 야벳은 옷을 취하여 자기들의 어깨에 메고 뒷걸음쳐 들어가서 아버지의 하체를 보지 않고 덮어주었습니다. 그들은 분명 아버지가 실수한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런 것을 문제 삼기보다 가려주었습니다. 잠시 후 노아는 술에서 깨어 자기에게 어떤 일이 벌어졌는가를 안 뒤 결국 가나안에게 저주를 내려 그의 형제의 종들의 종이 되도록 하였고 셈과 야벳은 축복해 주었습니다.

아버지는 축복의 통로입니다. 아버지는 그 집의 영적 권위입니다. 그런데 아버지의 실수나 허물을 가려주기보다 오히려 그것을 보고 재미있다는 듯, 고소하다는 듯 떠벌리고 다닐 때 저주가 임하게 됩니다.

우리는 누구의 허물이라도 재미있다는 듯이, 속 시원하다는 듯이 그것을 여기저기 말하며 돌아다녀서는 안 됩니다. 그런 사람을 하나님은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사람의 허물을 감싸주는 것이 참된 그리스도인의 덕입니다. 하나님은 에덴 동산에서 범죄하여 부끄러워하는 인간들에게 가죽옷을 지어 입혀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허물을 가려주시고자 대신 피 흘려 죽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께 나아올 수 있는 축복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사랑은 죄를 폭로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은 죄를 감싸주고 기도하여 회개하도록 돕는 것입니다. 세상은 죄를 폭로하기를 좋아하고 험담하기를 좋아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상대방의 약점과 허물, 실수를 마음으로 감싸주고 가려주어 이 땅에 그리스도의 덕을 세워야 합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허물을 덮어 주는 자는 사랑을 구하는 자요 그것을 거듭 말하는 자는 친한 벗을 이간하는 자니라”(17:9).

허물을 용서하는 것이 자기의 영광이니라”(19:11).

 

4. 바벨탑을 흩으신 하나님(10:1-32, 11:1-32)

 

창세기 10장은 노아의 세 아들들로부터 시작한 인류가 어떻게 종족을 이루어나갔는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노아의 후손에서 나온 종족의 수는 모두 70종족인데 그중 야벳은 14종족, 함은 30종족, 셈은 26종족을 이루었습니다. 하나님은 노아 한 사람을 시작으로 인류를 번성하게 하셨습니다.

창세기 111절을 보면 온 땅의 언어가 하나요 말이 하나였더라고 했습니다. 당시에는 온 땅에 한 언어만 있었습니다. 이는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축복 중의 축복이었습니다. 영어 문제로 스트레스를 받는 우리로서는 얼마나 큰 은혜인지 모릅니다. 그런데 인간은 시날 평지에 모여 하나님이 주신 한 언어를 이용하여 자기들의 이름을 위하여 바벨탑을 쌓았습니다.

서로 말하되 자, 벽돌을 만들어 견고히 굽자 하고 이에 벽돌로 돌을 대신하며 역청으로 진흙을 대신하고 또 말하되 자, 성읍과 탑을 건설하여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더니”(11:3-4).

인간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도록 지음받았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자기들을 위하여 바벨탑을 쌓았고, 그것도 하늘에 닿고자 했습니다. 이는 하나님과 동등해지고 싶어 하는 교만의 극치입니다. 이에 하나님은 내려오셔서 인간이 쌓는 성과 대를 보며 말씀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이 무리가 한 족속이요 언어도 하나이므로 이같이 시작하였으니 이 후로는 그 하고자 하는 일을 막을 할 수 없으리로다 자, 우리가 내려가서 거기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여 그들이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자 하시고”(11:6-7).

하나님은 언어를 혼잡하게 하시어 그들이 서로 말을 알아듣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그들은 더 이상 탑을 쌓을 수 없었습니다. 이제 그들은 말이 통하는 사람끼리 모여 세계 곳곳으로 흩어졌습니다. 나라별로 언어가 다르다는 것은 하나님이 바벨탑을 쌓았던 인간을 흩으신 역사적인 증거입니다. 하나님은 언어를 혼잡하게 하시어 인간의 교만과 악의 도모를 깨셨습니다. 그들은 더 이상 죄를 지을 수 없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말할 때마다 교만을 경계하고 감사와 찬양, 사랑과 겸손으로 덕을 세워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야 합니다.

말은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합니다. 그래서 우리 속담에 말 한마디로 천 량 빚을 갚는다. 말이 씨가 된다가 있습니다. 세 치 혀가 백만 군사보다 강하다는 책도 나왔습니다. 촌철살인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그래서 언변은 핵무기, 컴퓨터와 더불어 현대 세계의 3대 무기로 일컬어집니다. 혀에 대한 이런 우화가 있습니다.

어느 날 가위와 톱과 혀가 서로 힘을 자랑했다. 먼저 가위가 입을 열어 자랑했다. ‘나는 어떤 천이라도 내 이빨로 끊어낼 수 있다.’ 이 말을 들은 톱이 이렇게 말했다. ‘그래, 내 이빨은 장작과 고물도 깨끗하게 베어낼 수 있다.’ 이를 듣고 있던 혀가 이렇게 자랑했다. ‘너희들이 아무리 자랑해도 나하고는 비교가 안 돼, 나는 남들이 쌓아 놓은 명성, 명예, 우정 등을 단번에 무너뜨리는 힘을 가졌거든, 내가 끼어들면 죽마고우도 하루아침에 원수가 되고, 눈앞에 둔 대권도 순식간에 물거품이 되는 것 몰라! 가위야, 너는 옷을 썰다 보면 이가 상하고 녹슬 수도 있고, 톱아, 너는 굳은 것을 썰고 나면 망가지기도 하지만 나는 아무리 지껄여도 닳는 일이나 파손되는 일이 없어! 나는 내 생명이 다 할 때까지 활동하지!’”

혀의 위력은 대단합니다. 따라서 혀를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사람이 달라지고 삶이 달라집니다. 인간의 세 치 혀는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울 수도, 가장 무섭고 악할 수도 있습니다. 사람의 혀는 칭찬을 통해 고래를 춤추게 할 수도 있고, 심장을 파고드는 독화살이 되어 죽음에 이르게 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말의 중요성에 대해 여러 곳에서 언급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야고보서 32-12절로, 말에 실수가 없는 자가 되라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잠언에 이런 말씀들이 있습니다.

말이 많으면 허물을 면하기 어려우나 그 입술을 제어하는 자는 지혜가 있느니라. 입을 지키는 자는 자기의 생명을 보전하나 입술을 크게 벌리는 자에게는 멸망이 오느니라. 두루 다니며 한담하는 자는 남의 비밀을 누설하나니 입술을 벌린 자를 사귀지 말지니라. 경우에 합당한 말은 은쟁반에 금 사과니라”(10:19, 13:3, 20:19, 25:11).

시편 1413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여호와여 내 입 앞에 파수꾼을 세우시고 내 입술의 문을 지키소서.”

그리고 베드로전서 310절에 이런 말씀도 있습니다.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며 그 입술로 궤휼을 말하지 말고

말쟁이가 없으면 평화가 오고, 말쟁이가 많으면 주위에 다툼이 확산됩니다. 한번 내뱉은 말은 다시 담을 수 없고 다른 사람의 인격과 생애에 커다란 상처를 주게 됩니다. 말에 실수가 없어야 합니다.

바울은 집사의 자격을 말할 때 이와 같이 집사들도 정중하고 일구이언을 하지 아니하고”(딤전 3:8)라고 했습니다. 온전한 성도는 동시에 두 말이 나올 수 없습니다. 우리 속에는 악과 선이 공존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혀를 잘 훈련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창조적인 언어, 긍정적인 단어를 사용해야 합니다. 궤사를 행하던 혀가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바벨탑을 쌓았던 교만한 인간을 멸절하지는 않으시고 단지 흩으셨습니다. 인간은 범죄하지만 하나님은 끝까지 인내와 긍휼로 구원하십니다.

창세기 1110-32절에는 셈의 후손들이 나옵니다. 셈의 후손 중에는 아브라함과 사라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약속대로 셈의 후예를 통해 구속역사를 이어나가십니다.

 

노아의 방주는 사람이 운행하는 피난선이 아니라 하나님이 운행하시는 구원선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구원의 방주이십니다. 우리는 장차 올 심판을 대비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합니다. 지금은 은혜의 때요, 구원의 때입니다. 하나님은 인내와 긍휼로 우리를 보호하고 계십니다. 그러나 때가 되면 반드시 최후의 심판을 하십니다. 따라서 우리는 구원의 방주되신 예수님을 믿고, 무지개의 언약으로 약속하신 예수님을 붙들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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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명의말씀사,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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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명의말씀사,2012)

                                창세기에서 만난 복음
                                (생명의말씀사,2011)

                                    저서 구입연락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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