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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46:1-34, 47:1-31, 48:1-22, 49:1-33

 

거룩한 나그네 : 나그네 인생길 130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백삼십 년이니이다 내 나이가 얼마 못 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연조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47:9).

 

 

베드로는 신자를 가리켜 흩어진 나그네라고 불렀습니다(벧전 1:1). 나그네는 고향을 떠나 여행 중에 있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나그네의 소망은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속담에 여행자는 다리 위에 집을 짓지 않는다는 말처럼 나그네는 여행 중에 집을 짓지 않습니다. 성도에게 있어서 이 세상은 잠시 머물다 가는 정거장에 불과합니다. 즉 신자는 하나님 나라의 시민권을 가진 나그네입니다. 나그네이지만 구름이 흘러가듯 정처 없이 떠돌다 사라져가는 그런 나그네가 아니라 돌아갈 곳이 있는 거룩한 나그네입니다.

인간은 언젠가는 반드시 이 땅을 떠나 본향인 하나님의 품 안으로 돌아갑니다. 베드로는 과거 이 땅에 소망을 두고 살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거꾸로 매달려서라도 이 세상에서 부귀영화를 누리며 영원히 살고자 했습니다. 그는 예수님이 지상 메시아가 되시기를 소원했고, 자신은 영의정이 될 것을 원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인생이 나그네라는 사실을 영접하고는 이 모든 것이 헛되고 헛되며 부질없는 일장춘몽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는 오직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로 건설된 하나님 나라만이 영원함을 알았습니다. 우리가 하늘에 소망을 두고 나그네로 살면 보이는 것, 순간의 것에 목숨을 걸고 싸우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않습니다.

이 장에서 야곱은 자신을 나그네 인생으로 보고 있습니다. 과거에 그는 다른 사람의 복을 빼앗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다른 사람을 축복하는 삶으로 변화되었습니다. 우리는 이 장을 통해 다른 사람을 축복해 줄 수 있을 만큼 성숙한 믿음의 사람으로 성장해야 함을 배웁니다.

 

1. 애굽으로 인도하신 하나님(46:1-34, 47:1-6)

 

애굽으로 내려간 야곱

이스라엘은 모든 소유를 이끌고 브엘세바에 이르러 거기서 이삭의 하나님께 희생 제사를 드렸습니다(46:1). 하나님은 밤에 이상 중에 그에게 나타나셔서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나는 하나님이라 네 아버지의 하나님이니 애굽으로 내려가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거기서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46:3).

 

야곱은 하나님이 애굽으로 내려가라고 말씀하셨을 때 애굽으로 내려가는 것을 두려워했습니다. 왜냐하면 야곱에게 애굽은 인상이 좋은 곳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애굽은 할머니 사라를 빼앗길 뻔했던 곳입니다. 그리고 애굽은 하나님이 아버지 이삭에게 절대로 가지 말라고 했던 곳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야곱에게 애굽으로 내려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곳에서 큰 민족을 이루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내가 거기서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46:3).

 

하나님은 일찍이 창세기 1513-16절에서 400년 후 애굽에서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가나안 땅으로 돌아오리라고 예고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예언대로 이스라엘은 출애굽할 때 약 250만 명에 달하는 큰 민족이 되었습니다. ‘큰 민족의 요건은 무엇입니까?

 

인구 수입니다.

언어보존 인구 마지노선을 1억 명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70년 후에는 영어가 국제 공용어가 되고 중국어, 아랍어, 힌두어, 스페인어, 포르투갈어, 벵갈어, 러시아어 등의 언어만이 활용 언어로 살아남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처럼 그리스도인들도 수적으로 많아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큰 민족을 이룰 수 있을까요?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결혼하여 자녀를 많이 낳고, 열심히 전도해야 합니다.

 

그런즉 그들이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10:14-15).

 

전파하는 자가 있어야 들을 수 있고, 들어야 믿을 수 있고, 믿어야 부를 수 있고, 불러야 구원을 얻습니다. 다시 말해 전파하는 사람, 외치는 사람이 없이는 믿는 사람들이 생길 수 없습니다. 우리 속담에 부뚜막에 소금도 넣어야 짜다는 말이 있듯이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구원역사, 생명역사가 일어날 수 없습니다. 복음을 전해야 생명역사가 일어나고, 구원역사가 일어납니다. 한국 교회가 하향곡선을 그리는 이유는 한마디로 우리의 입술을 통해서 복음을 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어떤 모습으로든 말씀을 전하면 부흥의 불길이 타오르게 됩니다. 큰 민족을 이루는 길은 전도 외에 다른 길이 없습니다.

 

선한 영향력입니다.

사도행전 18절을 보면 주님은 우리에게 증인이 되리라고 하셨습니다. 증인은 예수님을 믿는 자로서의 영향력입니다. 우리는 수적인 증가를 위해서만 노력했지 세상에 대한 영향력에 대해서는 관심을 갖지 못했습니다. 이로 인해 오히려 그리스도인들이 천국 문을 막지는 않았나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주님은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에게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23:13)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선한 영향력을 끼칠 때 큰 민족이 됩니다. 미국에 흑인들이 많지만 그들을 강한 민족, 큰 민족이라고 하지 않는 이유는 그들이 미국 사회에 큰 영향력을 끼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큰 민족이 되려면 열심히 전도하여 그리스도인들이 소수가 아니라 다수가 되어야 하고 믿는 자로서 선한 영향력을 끼쳐야 합니다.

 

요셉을 만난 야곱

 

내가 너와 함께 애굽으로 내려가겠고 반드시 너를 인도하여 다시 올라올 것이며 요셉이 그의 손으로 네 눈을 감기리라 하셨더라”(46:4).

 

하나님은 야곱과 함께 애굽으로 내려가실 뿐만 아니라 그를 정녕 인도하여 다시 올라오게 하실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야곱이 거기서 민족을 이루어 출애굽하여 이 약속의 땅에 올라올 것이요, 거기서 아들 요셉을 보고 죽게 될 것이라는 약속의 말씀입니다. 야곱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이스라엘의 아들들과 함께 바로가 보낸 수레에 자기들의 처자들을 태워 생축과 가나안에서 얻은 모든 재물을 이끌고 애굽에 내려갔습니다(46:5-6). 애굽에 내려간 수는 모두 70명이었습니다(46:7-27).

야곱이 고센 땅에 이르렀다는 소식을 들은 요셉은 마차를 타고 올라와 아버지를 뵈었습니다. 요셉은 사랑하는 아버지를 만나자 너무나 감격스러워 그 목을 어긋맞춰 안고 한동안 울었습니다(46:28-29). 아버지인 야곱 또한 너무 감격스러워서 네가 지금까지 살아 있고 내가 네 얼굴을 보았으니 지금 죽어도 족하도다”(46:30)고 했습니다. “자식이 죽으면 부모는 자식을 가슴에 묻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야곱은 20년간 요셉을 가슴에 묻고 살았습니다. 죽은 줄로만 알았던 사랑하는 요셉을 20년 만에 만났으니 그때의 그 감격을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요셉은 자기 아버지와 형들이 고센 땅에서 살 수 있도록 해주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형들에게 자기들의 직업이 목축이라고 바로에게 말하라고 하며 그들이 계속 그 고센 땅에 머물도록 도와주었습니다. 애굽은 농경사회이기 때문에 목축업을 천하게 여겼습니다. 요셉은 이를 이용하여 아버지와 형제들이 애굽인들과 섞이지 않고 고센이라는 일정 지역에 거하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이곳은 지리상으로 나일 강 삼각주 동쪽에 위치해 있었기 때문에 가나안 땅과 가장 가까웠습니다. 그리고 훗날 출애굽할 때 빨리 떠날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요셉은 먼 미래를 보는 안목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바로로부터 그 땅을 허락받고 그곳에 살게 되었습니다.

 

2. 바로 앞에 선 야곱(47:1-12)

 

바로를 축복하는 야곱

야곱은 요셉의 인도로 바로 앞에 섰습니다. 그리고 야곱은 바로를 축복했습니다(47:1). 어쩌면 바로가 야곱을 축복해야 옳습니다. 왜냐하면 야곱은 먹을 것이 없어서 애굽에 온 시골 할아버지인 반면에 바로는 애굽의 왕이요, 야곱을 도와줄 입장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야곱은 바로를 축복했습니다. 외적으로 볼 때 바로는 더 이상 축복이 필요 없는 사람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야곱은 그렇게 보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야곱은 눈에 보이는 축복이 전부가 아니고 진정으로 누려야 할 축복은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야곱은 복의 근원다운 내면성과 복의 근원으로서의 분명한 정체성이 있었습니다. 그러했기에 야곱은 세상의 권세 앞에 조금도 위축되지 않고 바로를 축복할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야곱은 모든 것을 하나님 편에서 볼 수 있을 만큼 성숙한 사람으로 변했습니다. 그리고 뺏고 움켜쥐던 삶에서 다른 사람을 축복할 만큼 성숙한 사람으로 변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또한 복의 근원으로 부르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사람들을 축복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들은 모두 축복의 사람들입니다. 물론 죄에 대해서 분명한 경고를 하고 책망도 했지만 근본적으로 축복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모세와 여호수아, 사무엘, 다윗 등 많은 사람들이 자기 백성을 여호와의 이름으로 축복했습니다. 우리 속담에 사촌이 땅을 사면 배 아프다는 말이 있습니다. 세상은 잘되는 사람을 눈 뜨고 보지 못합니다. 이런 시대에 우리는 다른 사람들을 축복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마태복음 10장을 보면 예수님이 70명의 제자들을 마을로 전도하러 보낸 사건이 나옵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어느 집에 가든지 무조건 먼저 그 집의 복을 빌라고 했습니다. 다시 말해 이것저것 따지지 말고 성도가 해야 할 사명으로 가자마자 복을 주시도록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믿는 사람들은 어떤 집을 방문하든지 먼저 잠깐 묵상기도를 합니다. 그때 여러분은 무슨 기도를 합니까? “내가 이 집에 무슨 부탁을 하려고 왔는데 잘 들어주게 하소서하고 기도하지는 않습니까? 우리는 먼저 무조건 이 집에 복을 주시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이 집에 복을 내려주십시오. 이 집이 예수님을 잘 믿는 가정이 되게 해주십시오. 자녀들에게 복을 내려주십시오. 필요한 모든 것을 날마다 풍족하게 채워주십시오.” 성경은 한 입에서 저주와 찬송이 나오는 것이 마땅하지 않다고 말씀합니다(3:9-10). 우리 자신을 위해서라도 다른 사람을 위해 축복을 해야 합니다(10:5-6).

 

나그네 인생으로 산 야곱

야곱의 축복을 받은 바로가 야곱에게 네 나이가 얼마냐”(47:8)라고 물었습니다. 바로는 시골 노인으로부터 축복을 받은 후에 큰 은혜를 받고 야곱이 어떤 사람인가 알고 싶었습니다. 이에 야곱이 대답했습니다.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백삼십 년이니이다 내 나이가 얼마 못 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연조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47:9).

 

야곱은 형 에서를 피해 밧단아람으로 가서 20년 동안 4명의 아내들과 외삼촌으로부터 헤아릴 수 없는 훈련을 받았습니다. 그는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에 얍복 강가에서 진땀 나는 투쟁을 했습니다. 또 세겜에서 외동딸이 성폭행을 당하는 아픔을 겪어야 했고, 14년 동안 사랑하여 얻은 아내 라헬이 막내아들 베냐민을 해산하다가 죽는 것을 보아야 했고, 사랑하는 요셉을 20년 동안 가슴에 묻고 지내야 하는 고통을 겪기도 했습니다. 그는 그동안 제대로 정착하지 못하고 이곳저곳을 전전해야 했습니다. 130년간 이런저런 풍파를 겪고 황혼에 접어들자 인생은 나그네 길임을 깨달았습니다.

미네르바 부엉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미네르바는 로마의 지혜의 여신입니다. 지혜의 여신인 미네르바는 부엉이를 좋아해서 항상 부엉이를 데리고 다녔다고 합니다. 독일의 철학자 헤겔이 법철학에서 미네르바 부엉이는 황혼이 짙어지자 날기 시작한다는 데서 미네르바 부엉이란 용어가 나왔습니다. 이 말은 이성적인 철학이나 진리에 대한 인식은 일이 다 끝난 무렵에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무슨 일을 하다가 한참 후에야 비로소 깨닫게 된다는 뜻입니다. 인간의 삶도 미네르바의 부엉이와 같습니다. 야곱도 말년에 자신의 삶을 나그네 인생이라고 고백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우리는 젊은 나이에 인생은 나그네 길, 거룩한 순례임을 알게 되었으니 얼마나 행복한 일입니까? 나그네의 특징 중 하나는 빈손으로 와서 빈손으로 가는 것이요, 또 다른 하나는 돌아갈 고향이 있다는 것입니다. 과거의 야곱은 좀 더 얻고자 다른 사람과 경쟁하고, 다투고, 상처를 주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이제 야곱은 돌아가야 할 본향, 하늘나라를 사모했습니다. 그랬을 때 더 이상 세상 것에 집착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바로까지도 축복할 수 있었습니다. 그가 하늘나라의 산 소망을 사모하고 빈손으로 와서 빈손으로 돌아가는 나그네라고 생각하는 순간 가치관이 달라지고 삶이 달라졌습니다.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임을 증언하였으니 그들이 이같이 말하는 것은 자기들이 본향 찾는 자임을 나타냄이라 그들이 나온 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라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을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11:13-16).

 

야곱은 바로를 만나고 떠나면서 또 한 번 그를 축복했습니다. 그리고 바로는 비옥한 땅 라암셋을 그들에게 주어 먹을 것을 공급해 주었습니다(47:10-12).

 

3. 유언하는 야곱(47:13-31)

 

요셉은 기근의 때에 그동안 모아둔 곡물을 팔아 애굽의 돈과 토지를 사서 바로에게 돌렸습니다. 그리고 애굽 토지법을 세워 백성들로부터 수확의 5분의 1을 세금으로 바치도록 했습니다. 한편 이스라엘은 고센 땅에 거하면서 거기서 산업을 얻고 생육하고 번성했습니다(47:27). 그들은 큰 민족으로 성장했습니다.

야곱은 애굽 땅에 17년을 거하였고 그의 나이가 147세가 되었습니다(47:28). 이스라엘은 자기가 죽을 때가 된 줄 알고 그 아들 요셉을 불러 그의 손을 자기의 허벅지 아래 넣고 맹세시키며 유언했습니다.

 

이스라엘이 죽을 날이 가까우매 그의 아들 요셉을 불러 그에게 이르되 이제 내가 네게 은혜를 입었거든 청하노니 네 손을 내 허벅지 아래에 넣고 인애와 성실함으로 내게 행하여 애굽에 나를 장사하지 아니하도록 하라 내가 조상들과 함께 눕거든 너는 나를 애굽에서 메어다가 조상의 묘지에 장사하라 요셉이 이르되 내가 아버지의 말씀대로 행하리이다”(47:29-30).

 

야곱은 자신을 애굽에서 메어다가 선영에 장사하라고 했습니다. 이는 할아버지 아브라함과 아버지 이삭이 묻혀 있는 막벨라 굴에 함께 장사해 달라는 것입니다. 그는 그것을 맹세시켰습니다. 야곱은 하나님이 주시기로 하신 약속의 땅을 잊지 않았습니다. 야곱은 고센이 약속의 땅이 아니라 잠시 머무는 곳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래서 그는 약속의 땅에 조상들과 함께 묻히기를 원했습니다. 그에게는 먼 장래를 내다보는 역사성이 있었습니다. 그런 안목을 가지고 유언을 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역사의식을 가지고 살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미래를 가지고 살기를 원하십니다. 따라서 우리는 당대만 보고 살 것이 아니라 미래를 보고 살아가야 합니다. 미래가 없는 믿음은 생명력이 없습니다. 역사가 없는 믿음은 무력합니다. 역사성 없는 민족은 망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미래를 향하여 역사성을 가지고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4. 요셉의 자녀를 축복하는 야곱(48:1-22)

 

창세기 48장을 보면 야곱이 요셉을 축복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야곱은 요셉에게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 복을 주시도록 축복했습니다. 그리고 요셉의 아들들인 에브라임과 므낫세도 축복했는데, 그들을 각각 두 지파로 세워서 축복했습니다. 야곱은 요셉의 아들, 다시 말하면 야곱의 손자인 므낫세와 에브라임을 자기의 아들과 똑같이 축복해 주었습니다.

야곱이 요셉의 차자인 에브라임에게 오른손을 얹고 장자인 므낫세보다 앞세워서 축복하자 요셉은 야곱에게 므낫세가 장자이기 때문에 오른손으로 축복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나도 안다 내 아들아 나도 안다”(48:19)며 하나님의 뜻을 따라 두 아들들을 축복했습니다. 그의 축복에는 인간적인 사심이 없었고 하나님의 뜻을 앞세웠습니다(48:20). 그리고 그는 다시 요셉에게 출애굽의 비전을 심어주었습니다(48:21-22). 그만큼 야곱은 하나님의 언약과 축복을 귀중하게 여겼습니다.

 

5. 열두 아들에게 예언하는 야곱(49:1-33)

 

창세기 49장에서 야곱은 열두 아들들을 그들이 맺은 인생의 열매와 그 분량에 맞게 축복했습니다. 야곱은 르우벤을 가리켜 내 장자요 내 능력이요 내 기력의 시작”(49:3)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야곱은 위풍이 월등하고 권능이 탁월하다고 했습니다. 이는 르우벤이 인간적으로 볼 때 부족함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장자인 그는 누구보다도 하나님의 축복을 많이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기에 합당치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그가 끓는 물과 같이 미친 듯이 선을 넘어 죄를 범했기 때문이었습니다(49:3-4). 르우벤은 서모인 빌하를 통간했습니다(35:22). 야곱은 르우벤이 회개하기를 기다렸지만 그는 야곱이 죽을 때까지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야곱은 그런 르우벤을 축복하지 않았습니다.

야곱은 시므온과 레위의 칼은 폭력의 도구라고 했습니다(49:5). 한마디로 잔인한 살상 무기와 같다는 것입니다. 이는 창세기 34장에서 디나가 성폭행을 당했을 때 이들이 분하여 세겜 성의 사람들을 죽인 사건과 관계가 있습니다. 그들의 분노는 이해할 수 있지만 분하다고 그곳 사람들을 다 죽여 그곳을 피바다로 만든 것은 옳지 않았습니다. 이들의 후대들은 제대로 축복을 받지 못했습니다(49:6-7). 시므온 지파는 가나안 정복 전쟁을 하면서 겨우 생계를 이을 정도로 몇 개의 성읍만을 차지했습니다.

한편 레위 지파는 출애굽 후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금송아지를 만들어 숭배할 때 모세 편에 서서 하나님의 분노를 가지고 우상숭배한 사람들을 죽여 심판했습니다. 이때 그들은 하나님께 인정받았습니다. 그들의 분노는 거룩한 영적 분노였기 때문입니다. 이로써 그들은 제사장 족속이 되어 하나님을 섬기는 지파로 이스라엘 가운데 구별되었습니다. 그러나 레위 지파는 야곱의 예언대로 땅을 분배받지 못하고 제사장 직무를 감당하기 위해 이스라엘 여러 성읍에 흩어져 살아야 했습니다.

유다는 사자로 비유했습니다(49:8-10). 사자는 백수의 왕자입니다. 유다 지파는 사자와 같은 위엄과 실력을 가지고 원수를 내리칠 것이고, 또한 유다 지파에서 지도자의 홀이 떠나지 않고 치리자(治理者), 곧 왕들이 나오고, 메시아가 탄생되는 영광이 임한다고 말했습니다. 유다 지파는 이런 영적인 축복뿐 아니라 물질적으로도 큰 축복을 누리게 된다고 했습니다. 포도나무와 우유는 풍부한 물질적 축복을 상징합니다(49:11-12).

유다는 죄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유다는 며느리 다말에게 마땅히 줘야 할 아들을 주지 않았습니다(38). 또 아내가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창기와 잠자리를 같이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그는 동생 요셉을 지나가는 행상들에게 돈 받고 노예로 팔았습니다.

그러나 유다는 자기가 며느리에게 못할 짓을 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회개하고 며느리의 권리를 깨끗이 인정해 주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식량을 구하러 형제들과 애굽에 내려갔을 때 막내 베냐민이 볼모로 잡혀 종이 될 처지에 이르자 유다는 자기가 대신 종이 되겠다며 베냐민을 돌려보내고 늙으신 아버지를 슬프게 하지 말아 달라고 요셉에게 긍휼을 구했습니다. 또 형제들을 보호하고자 자기가 대신 종이 되겠다고 나섰습니다. 이런 그에게는 더 이상 과거의 죄된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야곱은 이런 유다로부터 크게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과거의 모든 죄를 잊고 그를 축복했습니다.

스불론, 잇사갈, 아셀에 관해서는 물질의 축복을, , , 베냐민에게는 그 용맹성에 따른 축복을 해주었습니다. 그리고 납달리는 그들의 노래 솜씨로 축복해 주었습니다.

이런 가운데 야곱은 요셉을 남달리 축복했습니다. 요셉은 샘 곁의 무성한 가지라고 했습니다(49:22). 샘 곁에 있는 가지는 무성하게 자라서 담을 넘습니다. 요셉에게도 원수가 있어 활을 쏘며 그를 학대하지만 요셉의 활이 도리어 견강하며 그의 팔에 힘이 있었습니다. 이는 그가 야곱의 전능자 하나님의 손을 힘입었기 때문입니다(49:23-24). 그리고 그로부터 목자가 난다고 했습니다. 이는 요셉의 목자다운 성품에 기인합니다. 그의 후손들은 심히 번성하게 됩니다. 요셉이 장자의 축복을 받게 된 것입니다.

요셉은 사실상 장자 역할을 했습니다. 그는 기근의 때에 자기 형제들을 온 마음을 다해 돌보고 보호해 주었습니다. 요셉은 넓은 마음으로 형제들을 품고, 용서하고, 먹이고, 잘살게 해주었습니다. 야곱은 요셉의 믿음과 그 공을 깊이 인정하여 넘치는 기쁨으로 그를 풍성하게 축복했습니다.

야곱은 회개하는 자에게 축복하고 각인의 분량대로 축복해 주었습니다. 야곱의 이 예언적 축복은 후에 정확하게 이루어졌습니다. 그만큼 야곱은 미래를 내다보는 통찰력이 있었습니다. 이는 그가 하나님 편에서 아들들을 보았고 하나님의 신에 감동되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창세기 4928절을 보면 그가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축복했다는 말이 나옵니다. 야곱은 열두 아들들을 자기의 축복 아래 하나로 묶었습니다. 이로써 이스라엘의 역사가 시작되었고 하나님의 구속사의 실제적인 기초가 놓였습니다.

 

아브라함은 씨를 뿌렸고, 이삭은 가꾸었으며, 야곱은 꽃을 피웠다고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의 믿음을 배우고 야곱의 믿음 또한 배워야 합니다. 무엇보다 인간성이 강한 야곱을 뒤에서 지켜주시고, 보호하시고, 함께하시고, 훈련하셔서 믿음의 조상으로 키우신 하나님을 배워야 합니다. 야곱을 키우신 하나님은 인내와 인자와 긍휼, 그리고 사랑과 소망이 풍성하신 하나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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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창세기 제 15장(창 20:1-18, 21:1-34) 약속의 성취: 아브라함 100세에 운영자 2014-11-25 3058
18 창세기 제 14장(창 18:1-33, 19:1-38) 중보기도: 하나님의 동역자, 아브라함 운영자 2014-11-25 2848
17 창세기 제 13장(창 16:1-16, 17:1-27) 언약- 이름을 아브라함이라 하리라 운영자 2014-11-11 3647
16 창세기 제 12장(창 15:1-21) 하나님의 의-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운영자 2014-11-11 2931
15 창세기 창 11장(창 13:5-18, 14:1-24) 가치관- 아브람과 롯 운영자 2014-11-11 2496
14 창세기 창 10장(창 12:1-20, 13:1-4) 부르심- 너는 복이 될지라 운영자 2014-11-11 3095
13 창세기 제 9강(창 7:1-11:32) 예수님의 소망- 홍수심, 무지개 언약 운영자 2014-11-11 3296
12 창세기 제 8강(창 6:1-22) 구원- 노아와 방주 운영자 2014-11-11 3109
11 창세기 제 7강(창 4:1-25, 5:1-32) 참된 예배- 아벨과 그 제물을 받으신 하나님 운영자 2014-11-11 2978

일용할 양식

예배 안내

  • 주일 오전 예배 - 오전 11:00
  • 주일 오후 예배 - 오후 3:30
  • 어린이 예배 - 오전 11:00

대학마을교회 개척교회

우남식 목사님의 저서


    전도서에서 만난 복음
    (퍼플,2023)

      요한복음에서 만난 예수님
      (퍼플,2022)

        요한계시록에서 만난 복음
        (지식과 감성,2021)

          예레미야에서 만난 복음
          (지식과감성,2021)

            데살로니가전·후서에서 만난 복음
            (지식과감성,2020)

              이사야에서 만난 복음
              (지식과감성,2019)

                대학선교와 세계선교를 향한 권서행전
                (지식과감성,2019)

                  야고보서에서 만난 복음
                  (지식과감성,2017)

                    옥중서신에서 만난 복음
                    (지식과감성,2016)

                      행복과 긍정심리
                      (시그마 프레스,2015)

                        성심리
                        (시그마 프레스,2015)

                          마가복음에서 만난 예수님
                          (킹덤북스,2014)

                            사도행전에서 만난 복음
                            (생명의말씀사,2013)

                              로마서에서 만난 복음
                              (생명의말씀사,2012)

                                창세기에서 만난 복음
                                (생명의말씀사,2011)

                                    저서 구입연락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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