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 사도행전 15:12-35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자를 괴롭게 하지 말라

 

그러므로 내 의견에는 이방인 중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자들을 괴롭게 하지 말고 다만 우상의 더러운 것과 음행과 목매어 죽인 것과 피를 멀리하라고 편지하는 것이 옳으니”(15:19-20).

 

 

초대교회는 다양한 민족과 다양한 계층으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초대교회에는 유대인과 이방인들이 섞여 있었습니다. 초대교회에는 역사와 전통, 관습, 그리고 문화와 풍습, 언어가 다른 사람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이런 다양한 계층과 인종을 하나로 묶는다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특히 유대인과 이방인을 하나로 묶는다는 것은 어쩌면 불가능한 일처럼 보였습니다. 유대인은 이방인과 함께 식사도 할 수 없었고 이방인의 집에 심방도 할 수 없었습니다.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에는 깊은 간극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유대 크리스천과 이방인 크리스천 사이에도 문화적 차이로 갈등이 있었습니다. 이런 이질적인 그룹을 하나로 묶는다는 것은 마치 물과 기름을 섞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초대교회는 예루살렘 총회에서 다양한 사상과 계층을 하나로 묶었습니다. 이로 인해 복음이 땅끝까지 전해질 수 있는 길이 열렸습니다. 본문은 예루살렘 총회에서 복음 진리를 세운 감독 야고보의 믿음을 배울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예루살렘 총회에서 의결된 복음 진리가 교회 속에 어떤 뜻이 있는가를 배울 수 있습니다.

 

예루살렘 초대 감독 야고보

 

이방인들이 믿음으로 구원받은 것에 유대 크리스천들이 이의를 제기했습니다. 이에 베드로는 이방인들도 우리와 똑같이 예수님의 은혜로 구원받는 것에 이의가 없음을 선포했습니다(15:5, 7-11). 그러자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서 바울과 바나바는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통해 이방인들에게 이루신 표적과 기사와 성령의 역사를 설명했습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예루살렘 감독인 야고보가 말했습니다.

 

말을 마치매 야고보가 대답하여 이르되 형제들아 내 말을 들으라”(15:13).

 

여기서 야고보는 사도 야고보가 아니라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입니다. 그는 현재 총회 의장이었습니다. 그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후 변화되어 예루살렘 교회의 감독이 되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공생애 기간에는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지 않았습니다. 그는 예수님이 하시는 일에 불만이 많았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장남인 예수님이 돈을 벌어 집안을 일으킬 생각은 안 하고 갈릴리 어부 출신들을 데리고 다니며 천국 복음을 설파하시니 좋아할 리 없었습니다. 그가 초막절이 가까워져 오던 어느 날 예수님께 이렇게 말했습니다. “형님, 큰 고기를 잡으려면 큰 바다로 가야 하는 것과 같이 큰일을 하시려면 예루살렘으로 가셔야지 갈릴리 시골에만 계시면 어떻게 합니까?”(7:4 참조). 이에 대해 저자 요한은 이렇게 주를 달았습니다.

 

이는 그 형제들까지도 예수를 믿지 아니함이러라”(7:5).

그런 그가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하고 예수님을 믿었습니다(고전 15:7). 성경에 보면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에 11번 나타나셨습니다. 막달라 마리아, 베드로, 열두 사도, 오백 문도, 그리고 야고보에게 나타나셨습니다. 특별히 예수님은 야고보에게 단독으로 나타나셨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일대일로 나타나셔서 교훈하시고 사도로 세우셨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야고보는 중요한 인물입니다.

그리고 그는 믿음을 실천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는 유명한 야고보서를 기록했습니다. 일설에 의하면 그는 항상 무릎을 꿇고 기도했기 때문에 무릎에 군살이 박혀서 낙타 무릎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가 이런 삶을 산 것은 행함을 통해 구원을 받고자 함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기도했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실천했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경건하게 살았습니다. 특히 그의 서신을 보면 그는 오래 참고 인내하는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야고보는 바울과 바나바와 유대 크리스천들의 변론도 들었고 베드로의 메시지도 들었고, 바울과 바나바의 기사와 이적의 이야기도 들었습니다(15:12-13). 그는 조금도 서두르지 않았습니다. 그는 말을 중간에 끊지도 않았습니다. 그는 끝까지 사람들의 말을 경청했습니다. 조신영, 박현찬의 경청이란 책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경청이라는 미덕은 누구나 다 알고 있다. 그러나 이를 실천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도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말을 배우는 데는 2년이 걸리지만 침묵하는 것을 배우는 데는 60년의 세월도 모자란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을 설득하는 법을 배우기 위해 각고의 노력과 금전의 지불을 아까워하지 않으면서, 경청하는 법에 대해서는 알려고 하지 않는다.”

 

야고보는 경청하는 지도자였습니다. 잠언에는 사연을 듣기 전에 대답하는 자는 미련하여 욕을 당하게 된다고 했습니다.

 

사연을 듣기 전에 대답하는 자는 미련하여 욕을 당하느니라”(18:13).

야고보는 그들의 말을 다 듣고 나서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그러므로 내 의견에는

 

하나님이 처음으로 이방인 중에서 자기 이름을 위할 백성을 취하시려고 그들을 돌보신 것을 시므온이 말하였으니(15:14).

 

야고보는 바울과 바나바, 그리고 베드로의 놀라운 업적을 들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이런 모든 사건 속에 하나님께서 이루신 역사를 들었습니다. 그에게는 깊은 통찰력이 있었습니다. 그는 사람들의 눈치, 유대 크리스천들의 눈치를 보지 않았습니다. 그는 수제자 베드로나 바울의 눈치를 보지 않았습니다. 그는 사건 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뜻을 보았고, 그 속에 담긴 하나님의 역사를 읽었습니다. 야고보는 다 듣고 나서 하나님이 이방인을 구원하고자 하심에 대한 선지자들의 말씀이 어디 있는가, 성경과의 일치함이 어디 있는가를 생각했습니다. 그때 그는 아모스 말씀이 응했음을 알았습니다.

 

이 후에 내가 돌아와서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다시 지으며 또 그 허물어진 것을 다시 지어 일으키리니 이는 그 남은 사람들과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모든 이방인들로 주를 찾게 하려 함이라 하셨으니 즉 예로부터 이것을 알게 하시는 주의 말씀이라 함과 같으니라”(15:16-18).

 

아무리 좋은 이야기, 좋은 말도 성경 말씀으로 입증이 안 되면 그것은 자기 주관적인 생각에 불과합니다. 자기 주관적인 생각은 독선으로 가기 쉽습니다. 하나님의 뜻이라고 아무리 말해도 성경에 없는 이야기는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야고보는 베드로와 바울의 말을 다 듣고 성경 말씀이 응했음을 확신한 후 자기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그러므로 내 의견에는 이방인 중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자들을 괴롭게 하지 말고”(15:19).

 

그는 하나님의 역사를 확인하고, 성경과 일치함을 확신하고 나서 그러므로 내 의견에는이라고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야고보는 신앙과 문화를 구분했습니다. 신앙은 절대적입니다. 그는 믿음으로 구원받는 이 문제만큼은 절대 양보하지 않았습니다. 반면에 문화, 생활양식에 대해서는 양보했습니다. 야고보는 본질을 붙들었습니다. 반면에 비본질적인 것에 대해서는 너그러웠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반대로 비본질적인 것, 사소한 것에 목숨을 걸고 싸웁니다. 그래서 우리는 절대적인 것과 상대적인 것을 구분할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이것을 구별하지 못하면 절대적인 것은 양보하고, 양보할 문제 앞에서는 절대를 주장하는 모순이 생깁니다.

야고보는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모든 이방인들을 모든 율법으로부터 자유하게 했습니다. 그렇지만 율법에서 자유롭다고 해서 아무렇게나 행동해서는 안 됨을 환기시켰습니다.

 

다만 우상의 더러운 것과 음행과 목매어 죽인 것과 피를 멀리하라고 편지하는 것이 옳으니”(15:20).

 

믿은 이로서 삼가야 할 것들은 이방 문화 중에서 우상의 더러운 것을 먹지 않는 것과 음행을 피하는 것 입니다. 음행은 성적 죄악을 뜻합니다. 성은 신성하고 거룩한 것입니다. 성은 남녀가 결혼하여 부부가 되어 인격적으로 사랑을 나누는 것입니다. 그 외의 모든 행동은 음행입니다. 그리고 여기에서 말하는 음행은 단순히 도덕적인 것만은 아닙니다. 당시의 음행은 우상숭배와 연관되었습니다. 우상숭배를 하는 사람들의 의식과 무의식에 음행이 있습니다. 우상숭배와 음행은 항상 일치합니다. 당시 다이애나 신전에는 3,000명의 창녀가 있었다고 합니다. , 신전에 가서 제사를 지낸다는 것은 그들과 성적인 관계를 맺는 것을 뜻합니다.

다음은 목매어 죽인 짐승과 피를 멀리하는 것입니다. 목매어 죽였으니 피가 빠지지 않습니다. 피가 빠지지 않은 짐승을 먹는 것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금기 사항이었습니다(17:13-14; 12:16-23). 그들은 피를 생명으로 여겼습니다. 그러나 이방인들은 제사를 지낼 때 피를 받아먹었습니다. 당시에 피를 먹는 것은 우상숭배와 연관되어 있었습니다.

이상으로 볼 때 우리는 신앙의 본질에 대해서만큼은 절대로 양보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비본질적인 것에 대해서는 각기 다름을 인정하고, 총천연색(colorful) 무지개로 접근하고 이해해야 합니다. 세상은 붕어빵처럼 기계적이지 않고 다양합니다. 사람의 생각도 다양하고 리더십도 다양하고 교회의 형태도 다양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내 생각과 맞지 않으면 무조건 틀렸다는 흑백 논리로 접근합니다. 우리는 다양성을 인정해야 합니다. 다양성을 인정할 때 창조 역사가 일어납니다.

지금 한국 사회는 모든 것을 흑백 논리로, 좌우 이념으로 나누어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아이들의 점심 급식 문제를 놓고 이념으로 편을 가릅니다. 이것은 이념으로 편을 가를 문제가 아닙니다. 이것은 서로 다름의 문제입니다. 한 예로 사람들에게‘+’가 그려진 카드를 보여주면 수학자는 덧셈이라고 할 것이고, 목사는 십자가라고 할 것이며, 교통순경은 사거리라고 할 것입니다. 이것은 틀린 것이 아니고 다를 뿐입니다. 건강한 사회란 다양성(diversity) 속에 일체감(unity) 이루는 사회입니다.

야고보는 최소한 이런 것들은 금하도록 했습니다. 그 이유는 곳곳에 유대인들이 많이 있기 때문에 그들과의 교제에 거리낌이 없도록 하고자 함이었습니다.

 

이는 예로부터 각 성에서 모세를 전하는 자가 있어 안식일마다 회당에서 그 글을 읽음이라 하더라”(15:21).

 

우리는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을 괴롭게 하지 말아야 합니다. 대학마을교회가 대학선교단체로 출발했기 때문에 대학생을 선호하는 경향이 의식과 무의식중에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 교회가 문턱이 높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제 이단 이외의 모든 사람들은 누구라도 교회에 들어올 수 있도록 교회 문턱을 낮춰야 합니다.

 

성령과 우리는 이 요긴한 것들 외에는

 

사도와 장로와 온 교회는 바울과 바나바를 택하여 안디옥으로 보내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리고 유다와 실라가 예루살렘 총회의 결의 사항을 보증할 사절단으로 뽑혔습니다. 이 편지의 수신인은 안디옥과 수리아와 길리기아에 있는 이방인 형제들로 되어 있습니다(15:23). 이는 율법주의자들의 훼방이 안디옥 교회에 국한되지 않고 온 이방인 교회로 확산되어 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편지에서는 안디옥 교회에서 문제를 일으킨 사람들은 예루살렘 교회에서 공식적으로 보낸 것이 아니며 그들이 사사로이 가서 여러 가지 사악한 말로 양 떼들을 괴롭게 하고 마음을 혼란스럽게 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바울과 바나바에 대해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하여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는 자인 우리가 사랑하는 바나바와 바울과(15:25-26)라고 했습니다. 총회는 바울과 바나바를 신뢰할 수 있는 훌륭한 목자들로 보증해 주었습니다.

예루살렘 총회의 결정 사항은 이러했습니다.

 

성령과 우리는 이 요긴한 것들 외에는 아무 짐도 너희에게 지우지 아니하는 것이 옳은 줄 알았노니 우상의 제물과 피와 목매어 죽인 것과 음행을 멀리할지니라 이에 스스로 삼가면 잘되리라 평안함을 원하노라 하였더라”(15:28-29).

 

사도들과 장로들은 이 결정이 성령과 우리의 결정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 요긴한 것들’(requirements) 것들 외, 우상과 관련된 것들 외에는 아무 짐도 지우지 말라고 했습니다.

성령과 예루살렘 교회에서 결정된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만 구원받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복음은 그 어떤 것도 가감할 수 없습니다. 이단들의 특징은 복음+a입니다. 그들은 복음만으로 안 되고, 믿음만으로 안 되고, 뭔가를 붙여야 된다고 합니다. 믿음과 복음에 +a가 붙으면 이단이요 사이비입니다.

예루살렘 총회를 통해 그리스도교와 유대교, 율법주의와 복음신앙의 싸움에서 복음 진리가 승리했습니다. 이로써 민족, 문화, 전통, 관습, 할례, 무할례 등 모든 문화의 장벽을 초월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구원받는 복음 진리가 확고히 서게 되었고, 기독교가 세계화가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누구나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는 구원의 길이 열렸습니다. 동시에 세계선교의 문이 활짝 열렸습니다.

그리고 예루살렘 총회의 결정 사항은 스스로 삼가 우상의 제물과 피와 목매어 죽인 것과 음행을 멀리 하라는 것입니다. 스스로 삼가라는 것은 자율적으로 하라는 것입니다. 자율적으로 하라는 말은 하지 말라는 율법보다 더 무서운 말씀입니다. 율법은 기계적으로 로봇처럼 하면 됩니다. 그러나 이것은 스스로 삼가야 하기 때문에 늘 깨어 있어야 합니다. 기도를 해야 하고 성경을 읽어야 하고 성령의 세심한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기도로 결정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해야 합니다. 우리는 늘 깨어서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해야 합니다.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 이는 내가 너희에게 가 보나 떠나 있으나 너희가 한마음으로 서서 한뜻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하는 것과”(1:27).

 

예수님을 믿으면서도 성경에 담배를 피우지 말고 술을 마시지 말라는 말씀이 없다면서 술과 담배를 즐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면 믿는 이들이 왜 담배를 피우지 말고 술을 마시지 말아야 합니까? 이는 하나님께서 주신 고귀한 자유를 하찮은 담배 피우고 술 마시는 데 빼앗길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자유를 복음에 합당하게 사용해야 합니다. 이것이 크리스천의 성숙입니다.

안디옥 교회 성도들은 편지를 읽고서 큰 위로를 받고 기뻐하였습니다.

 

그들이 작별하고 안디옥에 내려가 무리를 모은 후에 편지를 전하니 읽고 그 위로한 말을 기뻐하더라”(15:30-31).

 

그들은 율법주의자들로 인한 무거운 짐을 벗고 다시 주님의 은혜로 기쁨이 충만했습니다. 그리고 함께 내려온 유다와 실라도 선지자였으므로 여러 말로 형제들을 권면하여 굳게 했습니다. 그리고 문제가 수습되자 형제들의 전송을 받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갔습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안디옥에 계속 머물며 수다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주의 말씀을 가르치며 전파했습니다(15:32-33).

 

야고보는 예루살렘 총회에서 구원은 오직 믿음으로, 오직 주 예수님의 은혜로 이루어진다는 결론을 맺었습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모든 이방인들에게 모든 율법으로부터 자유하게 했습니다. 다만 믿은 이로서 우상의 더러운 것을 먹지 말고 음행을 피하라고 했습니다. 신앙의 본질 이외의 것은 관대했습니다. 우리는 이단과 사이비가 난무하는 시대에 믿음으로 구원받는 은혜의 복음 진리를 굳게 지켜야 합니다. 또한 율법과 죄의 멍에로 고통당하는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무거운 짐을 벗겨주고 자유를 누리게 하는 선교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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