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 로마서 12:1-2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12:1).

 

 

로마서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1-11장은 무엇을 믿어야 하는가, 즉 믿음의 문제를 다룹니다. 다시 말해 믿음의 내용과 믿음의 대상에 관한 교리 편입니다. 12-16장은 믿는 자들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즉 윤리적인 실천 편입니다. 후반부를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로마서 121-2절은 하나님과의 관계로, 실천 윤리의 서론에 해당합니다. 123-8절은 우리 자신과의 관계, 129-16절은 서로의 관계, 1217-21절은 원수들과의 관계, 131-7절은 국가와의 관계, 138-10절은 율법과의 관계, 1311-14절은 낮()과의 관계, 141-1513절은 연약한 자와의 관계, 1514-1627절은 바울의 사역과 하나님의 섭리에 대해 다루고 있습니다. 바울은 교리 편에서 오직 믿음을 강조했다면, 실천 편에서는 오직 사랑을 강조했습니다.

이제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한마디로 말하면 삶이 예배가 되어야 합니다. 토저는 예배를 이렇게 정의했습니다.

 

예배란 하나님과 구원받은 영혼 간에 끊임없이 이루어지는 사랑과 생각의 교감이다.”

 

예배가 삶의 중심이 될 때, 하나님과 끊임없는 교제를 가질 때 우리의 영혼은 비 온 후의 화초처럼 싱싱해지고, 삶에 기쁨이 넘쳐나고, 얼굴에 생동감이 넘치게 됩니다. 예배는 공적인 예배와 개인적인 예배로 나눌 수 있는데, 공적인 예배든 개인적인 예배든 모든 예배는 하나님과의 교감이요, 교제입니다.

본문은 기독교 실천 윤리의 서론으로, 우리의 삶에 대한 자세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영적 예배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12:1).

 

여기에서 그러므로란 단어는 매우 중요합니다. 지금까지 바울은 예수님은 이렇게 믿는 것이다. 우리가 믿는 바는 바로 이것이다라고 하며 믿음에 대해 길게 설명했습니다. 바울은 이제 이렇게 믿으니 이렇게 살아야 한다며 친절하게 권면하고 있습니다. 사실 바울이 이처럼 친절하게 말한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지금까지 바울은 복음 진리에 대해서는 한 치의 양보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나 혹은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1:8).

 

바울은 다른 복음은 없다. 내가 전한 복음 외에는 없다. 만일 내가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바울은 복음 진리에 대해서만큼은 결코 타협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실천 윤리의 기초는 겸손과 사랑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하나님의 자비하심으로 권면했습니다. 윤리는 두려움과 공포감을 주어서 행하도록 하는 것이 아닙니다. ‘윤리는 헬라어로 에토스(ετόϛ)인데, 이는 무엇과의 관계를 뜻합니다. 인간과 인간의 관계는 인간 윤리, 자연과 인간의 관계는 환경 윤리,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는 기독교 윤리가 됩니다. 법은 강제적이지만 윤리는 스스로 판단하고 결단하여 자율적으로 행동하고, 감사함과 기쁜 마음으로 자원해서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기독교 윤리의 근간입니다.

바울은 먼저 너희 몸을 산 제물로 드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제물앞에 수식어가 몇 개 붙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이라고 했습니다. ‘제물이란 드리다, 하나님께 바치다, 예물을 올리다라는 뜻입니다. 구약의 제사 제도에는 번제, 소제, 화목제, 속죄제, 속건제가 있었습니다. 여기에서의 제사는 번제를 말합니다. 번제는 온전한 희생과 헌신의 제물을 뜻합니다.

제물을 드릴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제물이 깨끗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흠이 없고 점이 없어야 합니다. 더럽거나 병들어서는 안 됩니다. 다리가 부러지거나 외눈박이면 안 됩니다. 흠이 없는 완전한 것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제물은 반드시 산 것이어야 합니다. 죽은 것은 안 됩니다. 금방 죽은 것도 안 됩니다. 썩은 것, 부패한 것은 안 됩니다. 반드시 산 것을 죽여 드려야 합니다. 이것은 생명을 드리는 것을 뜻합니다. 다시 말해 제사는 물질의 차원이 아니라 생명의 차원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하나님 앞에 산 제물을 드리려면 몸과 마음이 깨끗해야 합니다. 신랑과 신부가 서로에게 순결해야 하듯 우리는 하나님께 순결해야 합니다.

드리다’(yield present)란 계속적인 뜻을 가진 히브리식 용법입니다. 드리고 또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쓰시도록 내어드리는 것을 말합니다. 여기에는 인간의 뜻이나 의지가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리고 제물은 드렸으면 드린 것으로 끝나야 합니다. 드렸다가 다시 그 제물을 가져갈 수 없습니다. 제물은 드렸다가 도로 받는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제물은 투자가 아닙니다. 제물은 투기가 아닙니다. 제물은 선물이 아닙니다. 제물은 예배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시간과 물질과 젊음과 진심을 드렸으면 드린 것으로 감사하고 깨끗하게 잊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드리고 나서 웰빙(well-being)을 원하고, 물질적인 보상을 원하고, 자녀가 복받기 원하고, 승진을 원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값비싼 송아지나 양을 드렸으니 그만한 대가를 주셔야 한다는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우리는 드린 것에 대해 깨끗하게 잊고 주장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께 드린 제물이 아니라 투자(投資)나 투기(投機), 부조(扶助)가 되고 맙니다.

제물은 하나님의 희생적 사랑의 계시입니다. 아무 죄 없는 소나 양이나 염소가 인간의 죄 때문에 희생제물이 되어 죽어갈 때 조용히 죽겠습니까? 고통스러워서 소리를 지르며 죽어갑니다.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소의 눈에는 눈물이 흐릅니다. 이 모습을 본 한 청년은 그 뒤로부터 쇠고기를 먹지 않는다고 합니다. 죽어가며 고통스러워하는 짐승을 보면서 자신의 죄가 얼마나 크고, 얼마나 심각하고, 얼마나 추하고, 얼마나 무서운가를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자기 대신 죽어가는 짐승을 보면서 비로소 자신의 죄가 용서받았음을 믿게 됩니다.

제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입니다. 아무 죄 없으신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대신 십자가상에서 죽으셨습니다. 우리는 십자가를 바라볼 때마다 죄의 심각성을 깨닫고, 죄를 사해 주신 예수님의 은혜와 사랑을 기억합니다. 이에 감사하는 것이 제물이요, 예배입니다.

바울은 너희 몸을 드리라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bodies)은 복수형입니다. 몸은 우리 몸에 붙어 있는 일체의 지체, 즉 눈, , , 팔다리, 더 나아가 우리의 인격, 지식, 감정, 의지, 의식, 무의식을 포함한 전체를 가리킵니다. 몸은 구체적인 생활이요, 현실이요, 실제적인 삶의 전부입니다. 욥은 이렇게 결심했습니다.

 

내가 내 눈과 약속하였나니 어찌 처녀에게 주목하랴”(31:1).

 

욥은 내 눈과 언약을 맺었다. 나는 좌로나 우로나 치우쳐 바라보지 않겠다. 다시 말해 사시(斜視)가 되지 않겠다. 나는 항상 앞을 보겠다. 나는 악한 것을 보기 위해 곁눈질을 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몸을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입니다. 성 아우구스티누스에 대한 유명한 일화가 있습니다. 탕아 시절에 만났던 한 여인이 그를 유혹했습니다. 그때 그는 앞만 보고 걸으며 이렇게 중얼거렸다고 합니다.

나는 이전의 내가 아니야. 내가 아니야.”

우리 눈은 본질상 악한 것을 바라보고자 하고, 또 그것을 즐기고자 합니다. 우리 혀는 본질상 야비한 것을 말하고 악한 말을 뿜어냅니다(5:4; 3:5). 칭찬과 감사보다는 원망과 불평, 그리고 험담이 체질화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황금 입이라 불리는 유명한 웅변가 크리소스톰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눈이 악한 것을 쳐다보지 못하게 하라. 그러면 눈이 한 제사가 될 것이다. 손으로 죄를 행하지 않게 하고 구제를 하는 데 쓰도록 하라. 그러면 손이 한 제사가 될 것이다. 입은 저주보다는 복을 비는 데 쓰고, 귀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데 쓰고, 세상의 말을 듣는 것을 멈추고 말씀을 듣는 것을 즐거워하라. 그러면 그것이 제사다.”

 

나의 발은 춤을 추며 나의 손은 손뼉 치며 나의 입은 기뻐 노래 부르네 나의 발은 춤을 추며 나의 손은 손뼉 치며 나의 입은 기뻐 노래 부르네 내가 주께 찬양해 내가 주께 찬양해 내가 주께 찬양하며 주 사랑해”(복음송가).

 

산 제물’(a living sacrifice)이란 산 채로, 삶을 통째로 드리는 제물을 말합니다. 이것이 바로 영적 예배입니다. ‘영적 예배란 합당한 예배, 합리적인 예배(reasonable service, KJV)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행하신 일을 비춰볼 때 합당하면,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비춰볼 때 합당하면, 하나님의 아들을 제물로 드리신 것에 비춰볼 때 합당하면, 나 중심이 아닌 하나님 중심, 하나님의 마음으로 볼 때 합당하면 그것이 하나님께 드리는 합당한 예배라는 것입니다.

자기가 좋아하는 대로, 자기가 원하는 대로, 자기 입장에서, 자기 중심으로 드리는 예배는 합당한 예배가 아닙니다. 합당한 예배란 거룩한 제물, 하나님이 받으시는 제물, 믿음으로 드리는 예배, 하나님이 흠향하시는 예배입니다. 가인이 드린 예배는 합당한 예배가 아니었고, 아벨이 드린 예배가 합당한 예배였습니다. 가인은 자기 중심으로 예배드렸고, 아벨은 하나님 중심으로 예배드렸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은 사람은 하나님 중심으로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가정에서, 사회에서, 학교에서, 삶의 현장 곳곳에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특히 직장의 경우 소명의 장으로 여겨야 합니다. 목사는 교회에 파송된 성직자요, 평신도는 사회에 파송된 성직자입니다. 우리 모두가 성직자입니다. 우리는 어두움 가운데 빛을 비추는 세상의 빛입니다. 우리는 부패한 세상에서 그 부패를 방지하는 세상의 소금입니다. 직장은 단순히 돈을 많이 벌라고 주신 것이 아닙니다. 직장은 세상에서 출세하라고 주신 것이 아닙니다. 직장은 거룩한 소명의 장소입니다.

유명한 백화점 왕으로 유명한 워너메이커는 워싱턴에서 체신부 장관으로 근무하면서 주일학교를 섬기기 위해 수 시간 동안 열차를 타고 필라델피아에 와서 어린이 성경학교를 섬겼습니다. 카터 대통령도 주일만 되면 워싱턴에서 비행기로 조지아 주까지 와서 주일학교 학생들을 가르쳤습니다. 그들은 예배가 삶의 중심이었습니다. 이런 삶을 산 카터는 퇴임하고 난 후 대통령 시절보다 더 값진 삶을 살고 있습니다.

반면에 예배가 중심이 되지 않으면 삶이 흐트러지게 됩니다. 작은 시련과 어려움에도 좌절하게 됩니다. 겉으로는 강한 삶을 사는 것 같지만 속으로는 허약한 삶을 살게 됩니다. 예배를 드리지 않는 삶은 죽어가는 화분처럼 시들어버립니다. 예배는 우리에게 생명을 공급해 주는 생명선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온 마음으로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우리는 공적 예배를 통해 살아 계신 하나님을 경험하고 시든 영혼을 소생시킵니다. 우리는 공적 예배를 통해 패배감을 극복하고 죽음의 권세를 이깁니다. 우리는 공적 예배를 통해 한 주간 살아갈 힘을 얻습니다. 우리는 공적 예배를 통해 하나님의 보호를 받습니다. 부부가 함께 예배를 드리면 가정이 화평해집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여행을 하다가도 주일이 되면 돌아와야 하고, 모든 계획 가운데 예배를 최우선에 두어야 합니다.

 

예배자를 향한 메시지

 

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12:2).

 

본받다란 헬라어로 유행이라는 뜻입니다. 이는 다시 말해 외모에 끌려가는 유행을 말합니다. 겉모양만 보고 따라간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란 세상의 유행을 따라 살지 말라는 뜻입니다. 이 세상의 유행은 수시로 변합니다. 옷 스타일, 머리 스타일, 세상의 삶의 스타일은 끊임없이 변합니다. 만일 우리가 세상의 유행을 좇아 살게 되면 머리 모양을 1년에 수없이 많이 자르고 기르고 염색하고 탈색하고 풀었다 묶었다 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하다가 언제 예배가 중심이 되는 삶을 살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이런 외형적인 것보다 본질적으로 볼 때 이 세대의 잘못된 점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은 이 세대를 가리켜 음란하고 죄 많은 세대”(8:38),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9:41)라고 하셨습니다. 이 세대는 불신 시대요, 가치관이 전도된 시대입니다. 음란하고 죄 많은 시대입니다. 사도 요한은 불신 세상이 추구하는 삶의 양태는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요일 2:16)이라고 했습니다. 이 세상은 변화무쌍합니다. 그러나 사회가 급변한다 할지라도 변하지 않는 세 축이 있는데, 그것은 곧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입니다. 디모데후서 32-5절을 보면 말세에 사람들이 세 가지를 사랑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고, 돈을 사랑하며, 자기를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세상은 이런 방향으로 끊임없이 흘러가고 있습니다.

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란 한마디로 세상의 가치 기준대로 살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세상의 가치관대로 살지 말고 하나님의 법도를 좇아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세상에 살고 있기 때문에 세상을 등지며 살 수는 없습니다. 신자는 세상을 도피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 세상에 영향을 주어야 합니다.

이렇게 살기 위해서는 이 세대를 본받지 않는 소극적인 자세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세상에는 죄의 탁류가 우리를 삼킬 듯이 넘실거리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바람을 거슬러 나는 살아 있는 독수리처럼, 물살을 거슬러 올라가는 살아 있는 물고기처럼[대붕역풍비 생어역수영(大鵬逆風飛, 生魚逆水泳)] 세상을 향해 도전적인 자세를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으라

이 세상을 본받지 말라가 외형을 본받지 말라는 뜻이라면 변화를 받으라는 본질적인 변화를 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형식이 아닌 본질이 변해야 합니다.

우리마음을 새롭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여행을 하고, 음악 감상을 하고, 영화를 보고, 운동을 해야 합니까? 물론 이런 것들은 잠시 기분전환은 될 수 있지만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다주지는 못합니다. 근본적인 변화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회개할 때만 가능합니다. 말씀에 비추어 회개할 때 마음이 새로워집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 앞에 예배자로 살게 됩니다. 하나님 앞에서 예배자로 살게 되면 하나님의 뜻대로 살게 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게 되면 본질이 변하고, 삶이 새로워지고, 가치관이 변하고, 세계관이 변하고, 결혼관이 변하고,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집니다. 물질관이 달라지고, 꿈이 달라지고, 비전이 새로워집니다. 이 세대를 본받지 않게 되고 마음이 새롭게 됩니다. 영적인 분별력이 생기게 됩니다. 그렇게 되니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할 수 있게 됩니다.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기준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도덕적으로 선한가를 살펴야 합니다. 도덕적으로 악한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윤리적으로, 사회적으로 흠이 없어야 합니다. 둘째, 목적도 선하고 과정도 선해야 합니다. 셋째, 하나님이 기뻐하시는가를 살펴야 합니다. 이 일이 자신을 기쁘게 하는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인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는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삶이 달라져야 합니다. 구원받은 자의 삶의 특징은 하나님께 산 제사를 드린다는 것입니다. 그는 자신의 몸을 통째로 하나님께 드립니다. 하나님 앞에 제물로 드려진 존재로 삽니다. 항상 예배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과 만나는 마음으로 살아갑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배당에서만 예배를 드려서는 안 됩니다. 가정에서도, 직장에서도 항상 예배하는 마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예배의 영역과 의식이 점점 더 넓어지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가정이 교회가 되고, 직장이 하나님이 주신 일터가 되어 하나님께 예배로 드려지는 곳이 됩니다. 그때 우리는 보람 있고, 삶이 풍성하고, 삶이 절제되고, 삶에 기쁨이 넘치고, 감사가 넘치는 삶을 살게 됩니다. 푸름을 잃지 않는 송백처럼 청년다운 기상을 가지고 살아가게 됩니다.

우리의 삶이 예배로 나타나서 우리 모두 이 세대를 본받지 않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기를 기도합니다.

 

값비싼 향유를 주께 드린 막달라 마리아 본받아서 향기론 산 제물 주님께 바치리 사랑의 주 내 주님께”(새찬송가 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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