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제1강

조회 수 3096 추천 수 0 2012.07.11 02:08:19
사도행전 제 1 강(말씀, 1:1-5, 요절 : 1:4))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사도와 같이 모이사 저희에게 분부하여 가라사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 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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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누가 누구에게 이 글을 쓰고 있습니까(1a)? 저자가 먼저 쓴 글에는 어떤 내용을 기록했습니까(1b,2, 눅1:1-4)?

2. ‘해 받으신 후’란 어떤 사건을 말합니까? 부활하신 후 40일 동안 예수님께서 하신 일이 무엇입니까? 왜 이 기간 동안에 부활 신앙을 심으시고 하나님 나라를 가르치셨을까요?

3. 예수님께서 사도들에게 무슨 분부를 하셨습니까(4,5)? 왜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눅 24:69), 성령을 기다리라고 했으며, 예루살렘이 주는 역사적 의미가 무엇입니까(눅 24:46,47)? 그리고 왜 그들이 성령 세례를 받아야 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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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은 누가가 데오빌로에게 전한 사도들의 행적입니다. 저자 누가는 사도 바울이 2,3차 전도여행을 함께 했고, 로마 호송 중에도 동행하였으며, 누가복음을 기록하였고, 사도행전은 그의 두 번째 책입니다. 수신자는 데오빌로는 ‘데오스’라는 말과 ‘필로’라는 말의 합성어입니다. 전자는 하나님, 필로는 사랑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데오빌로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자,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란 뜻입니다. 일반적으로 데오빌로는 정치적으로 높은 위치에 있는 한사람으로 보기도 합니다. 그 사람을 상대로 기독교의 복음 진리를 전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는 어떤 특정 인물이라기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를 가리킨다고 말합니다. 저자 누가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예수님으로부터 시작된 복음 역사가 그의 택하신 사도들을 통해 어떻게 계승되고 확장되어 복음으로 세계를 정복했는가를 보여주기 위해 기록한 것입니다. 우리는 사도행전을 통해서 다음과 같은 중요한 진리를 배울 수 있습니다.

첫째로 사도행전의 주체는 성령님이라는 것입니다. 사도행전을 성령행전이라고 불리워질 만큼 성령이 주체가 되어 구원역사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성령님께서 사도들을 도구로 사용하여 복음 사역을 이루십니다. 성령께서는 친히 사람의 마음과 문화, 언어까지도 쓰십니다. 성령께서는 당시 헬라 사상과 헬라 문화와 헬라어를 쓰셨습니다. 성령님은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을 성령께서 도우시는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주체가 되어 이끌고 가십니다. 성령님이 나를 주관하십니다. 성령님은 나의 뜻을 이루어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나가십니다. 성령님은 모든 구원 역사의 주체니다. 우리가 사도행전을 읽어보면 사도들이 성령이 충만하고, 성령이 지시하는 대로, 성령에 이끌리어 하나님의 구속역사를 이루어나가고 있으며, 성령님이 교회를 위로하시고, 핍박가운데서도 기쁨과 성령이 충만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둘째로 성령은 성경에 나타난 역사적인 사실을 믿게 합니다. 우리가 믿는 기독교는 사유하는 철학이 아닙니다. 우리가 믿는 기독교는 지식이 아닙니다. 우리가 믿는 기독교는 능력입니다.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성령은 능력입니다. 성령은 죄를 이기는 능력입니다. 성령은 사망을 이기는 능력입니다. 성령은 시험을 이기는 능력입니다. 성령은 복음을 전파하는 능력입니다.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의 문을 엽니다. 성령께서 마음의 문을 열지 않으면 그 누구도 예수님을 믿을 수 없습니다. 반면에 성령께서 마음의 문을 여시면 단 한마디로 복음을 전해도 예수님을 믿습니다. 바로 그곳에 교회가 섭니다. 복음서의 내용은 그 초점이 십자가와 부활입니다. 그런데 이 십자가와 부활의 역사적인 사건이 사도행전 2장을 보면 오순절, 성령 강림을 통해서 증거되고 믿어집니다. 성령님은 부활 사건을 신앙화하게 합니다.

셋째로 사도행전에 나타난 그리스도는 고난당하시고 영광받으시는 그리스도이시며, 다시 재림하실 그리스도이시며, 동시에 현재도 살아서 친히 사도들과 함께하시는 그리스도이십니다. 사도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력을 날마다 사건의 현장에서, 삶의 현장에서 마음으로, 또 몸으로 경험하며 사역하였습니다. 이 예수 그리스도는 지금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넷째로 사도행전은 교회가 무엇인지, 교회의 사명이 무엇이며, 선교가 무엇이고, 선교의 주체와 선교의 내용, 그리고 선교의 방법에 대해 말씀하여 주고 있습니다. 교회의 전신은 히브리인들의 회당입니다. 회당의 뿌리는 선민사상입니다. 선민사상을 모아놓은 공동체가 바로 회당입니다. 교회 의미도 선민사상에서 찾습니다. 유대인들이 말하는 것은 선민은 그림자에 불과하고 교회가 진짜 선민입니다. 그들이 말하는 선민은 예표에 불과합니다. 모델에 불과합니다. 아파트가 지어지면 그와 비슷하게 지었던 모델하우스는 사라집니다. 진짜가, reality가 오면 예표는, 모델은 없어집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의 피로 세우신 교회가 세워짐으로서 교회가 선민의 원점이 됩니다. 참 하나님의 백성, 선민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그리스도인들입니다.

다섯째로 사도행전은 복음의 세계성을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복음은 예루살렘에 국한될 수 없습니다. 복음이 예루살렘을 벗어나 세계로 뻗어나갈 때에 이방 문화에 부딪칩니다. 그럴 때마다 어떻게 복음이 전파되는가를 귀중한 방법, 생명의 역사를 배우게 됩니다.

사도행전을 보면 유대인들이 지독하게 예수 믿는 자들을 핍박합니다. 도망가는 사람들을 쫓아가면서까지 예수 믿는 자들을 핍박합니다. 제 돈 써가면서까지 핍박을 합니다. 정말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유대 사람들이 그렇게 핍박을 한 데에는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가 있습니다. 유대 사람들이 자기 동족이 예수 믿는 것을 그렇게 핍박을 하니 이방인에게로, 세계로 갈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게 놀라운 섭리입니다. 만일 복음이 예루살렘에서 아무 저항없이 수용되었다면 복음은 세계 땅 끝까지 이르러 복음이 증거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핍박과 환난이라는 극약 처방을 통해서 흩어지게 했고, 이로 인해 안디옥 교회가 설립되었고, 그리고 땅 끝까지 이르러 복음이 전파될 수 있었습니다. 복음이 핍박이라는 것에 실려서 기독교가 땅 끝까지 전해지게 된 것입니다. 환난과 핍박은 선교의 효과를 극대화합니다.

첫째, 부활신앙과 하나님 나라를 말씀하시는 예수님(1-3). 1,2절을 보겠습니다. “데오빌로여 내가 먼저 쓴 글에는 무릇 예수의 행하시며 가르치시기를 시작하심부터” 저자 누가가 기록한 누가복음에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베들레헴에서 나시고, 많은 이적을 행하시고, 가르치시고, 많은 수난을 당하시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그리고 승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기록하였습니다. 이로써 모든 일이 끝난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러나 저자 누가의 후편인 사도행전에서는 복음 역사가 계속하여 이루어져가고 있음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생애를 통해서 이루어지던 사역은 이제는 “교회”라는 공동체를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지금도 사도행전은 끝나지 않고 계속하여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사도행전 28장 32절 역사는 계속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역사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사 승천하시기 전까지 하신 일이 무엇입니까? 3절을 보십시오. “해 받으신 후 또한 저희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사심을 나타내사 사십일 동안 저희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

첫째로, 예수님께서 사도들에게 부활 신앙을 심으셨습니다. ‘해 받으신 후’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신 사건을 말합니다. 예수님은 우리 죄를 위해 많은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조롱과 멸시를 당하셨습니다. 저주의 상징인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고난을 받으시고 죽으신 후 사흘 만에 하나님의 능력으로 부활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영광의 주, 만왕의 왕이 되셨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믿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아니 이성으로는 도저히 믿을 수 없었습니다. 그들에게는 십자가에 못박혀 비참하게 돌아가신 예수님의 처절한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렸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만 해도 무력하게 돌아가신 예수님께서 부활하셔서 그들 앞에 서 있다니 믿기가 힘들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혹 유령이 아닌가하고 의심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시자 도마는 예수님의 손에 못자국과 옆구리의 창자국을 확인하지 않고는 믿을 수가 없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40일 동안 저희에게 보이시며 자신이 몸으로 부활하셨음을 여러 가지 모양으로 확실히 증거 해주셨습니다. 예수님은 두려움에 떨고 있는 제자들에게 나타나 평강을 주시고, 의심하는 도마에게 손의 못자국과 옆구리의 창자국을 직접 손으로 만져보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혹 유령이 아닌가 생각하는 제자들 앞에서 구운 생선과 김이 모락모락 나는 떡을 잡수시므로 의심을 불식시켜 주셨습니다. 그리고 엠마오로 낙향하는 두 제자와 함께 걸으시며 대화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여러 사건으로 부활을 의심하는 제자들의 불신을 불식시켜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부활을 확신시켜 주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기독교는 예수님의 부활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없다면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신 사실을 증명할 도리가 없게 됩니다. 또 인생을 가장 비참하고 절망스럽게 하는 죽음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우리에게 많은 문제가 있다고 하지만 죽음 문제보다 심각하고 고통스럽게 하고 슬프게 하는 것은 없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없다면 예수님의 생애는 패배한 생애로서 슬프고 원통하고 억울한 비극적인 생애로 끝나게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성경대로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위해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신 것이 역사적인 사건이듯이, 예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것도 역사적인 사건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통해 복음이 완성되었습니다. 이제 제자들이 예수님의 부활의 증인이 되기 위해서는 그들에게는 부활 신앙이 필요했습니다. 이 때문에 예수님은 40일 동안 이 땅에 계시면서 확실한 많은 증거로 그들에게 부활 신앙을 심어 주신 것입니다.

둘째로, 하나님 나라의 일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복음 사역의 주제는 ‘하나님 나라’ 입니다. 예수님은 복음 역사를 시작하실 때 첫 메시지가 “하나님 나라가 가까웠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막1:15).” 또한 가르치는 말씀 내용도 그 주제가 하나님 나라였습니다. 예수님께서 빌라도 앞에서 심문 받으실 때도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요한18:36)”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처음부터 끝까지 복음 역사의 목적이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이상 국가를 건설하는 것이 아니라 영적인 하나님 나라 건설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심으로 하나님 나라의 문을 여시고, 십자가와 부활로써 썩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셨습니다. 사도행전 전체를 꿰뚫고 있는 중요한 메시지는 하나님 나라입니다. 그런데 제자들의 생각은 그게 아니었습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의이 생각은 오월동주, 동상이몽이었습니다. 제자들은 이스라엘 민족이라는 하나의 꿈에 집착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회복이 되어 한 자리를 차지하고자 하는 꿈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그들이 바라는 것은 민족 회복의 꿈이라면, 예수님의 꿈은 하나님 나라의 꿈이었습니다. 이 꿈을 실현하기 위한 명령이 바로 사도행전 전체 요절인 1장 8절입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예수님께서 꿈꾸고 계셨던 하나님 나라는 이스라엘 민족과 예수님의 제자들이 꿈꾸고 있었던 나라와 여러 차원에서 분명하게 달랐습니다. 제자들이 꿈꾸던 나라는 정치적인 나라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하나님 나라는 정치적인 나라가 아닌 영적인 나라, 보이지 않지만 지금도 여기에서부터 시작되어 완성을 향해서 확장되고 있는 도덕적 특성을 지닌 나라였습니다. 제자들이 꿈꾸고 있었던 나라는 지상에서 살아가는 동안 필요했던 순간적인 나라였지만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나라는 영원한 나라였습니다. 이 나라는 이스라엘뿐 아니라 예루살렘과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즉 전 세계의 모든 민족을 포함해서 이루어질 우주적인 나라였습니다. 제자들이 꿈꾸고 있던 나라는 이스라엘 민족이라면 누구나 그 국민이 될 수 있는 그런 나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는 영적인 출생 없이는 들어갈 수 없습니다. 자기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고 하나님 앞에 자기 자신의 삶을 믿음으로 드리지 않고는, 즉 회개와 믿음이 없으면 하나님 나라의 국민이 될 수 없습니다. 제자들이 꿈꾸고 있었던 나라는 전쟁에 의해서 확장될 수 있는 나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는 전쟁이 아니라 ‘전도’라는 방법에 의해 땅 끝까지 확장되어 갈 나라입니다. 제자들이 꿈꾸고 있었던 나라는 한 민족에게 이 세상에서 탐하고 있는 그런 개인적인 축복들만을 약속하는 나라였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말씀하신 하나님 나라는 모든 민족에게 평화의 축복을 약속하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영원한 삶의 축복, 부활의 축복, 풍성한 삶의 축복이 있습니다. 변화된 자가 분명한 삶의 목표를 가지고 걸어갈 수 있는 찬양과 시와 노래가 넘치는 놀라운 삶의 질을 지닌 나라였습니다.

둘째,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는 예수님(4,5). 예수님께서 부활신앙과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말씀하시고 명령하셨습니다. 그 명령이 무엇입니까?

첫째로,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4a).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왜 예수님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고 명령하십니까? 왜냐하면 복음은 예루살렘으로부터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의 대부분 고향이 예루살렘이 아니고 갈릴리입니다. 더구나 예루살렘은 자신들의 선생인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곳이었습니다. 실패와 좌절과 두려움의 도시였습니다. 그들은 하루속히 예루살렘을 떠나 마음의 고향 갈릴리로 가고 싶었습니다. 여기에 하루도 머물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고 명하셨습니다.
예루살렘이 어떤 곳이기에 떠나지 말라고 하십니까? 예루살렘은 역사적으로 하나님의 거룩한 도성입니다. 또 이곳은 예수님이 친히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부활하신 곳으로써 복음이 완성된 곳입니다. 예수님은 누가복음 24:47절에서 “또 그의 이름으로 죄사함을 죄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으로부터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사야서 2장 3절을 보면 일찍이 “율법이 시온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예루살렘은 복음 역사의 시발점입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원수들이 많고 복음 역사를 이루기가 힘든 곳이라 할지라도 이곳을 떠나서는 안됩니다. 바로 이곳에서 믿음으로 딛고 일어서서 복음 역사를 이루어야 합니다. 그때 그들은 살아 있는 믿음을 배울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성령의 권능을 덧입고 예루살렘에서 복음의 원수들과 싸우며 도전적으로 복음 역사를 섬기기를 원하셨습니다.

둘째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4b,5). “내게 들은 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신앙이란 하나님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는 기다림, 대망, 이게 신앙입니다. 기다림, 대망이 없는 것은 신앙이 아닙니다. 요한 계시록 마지막 절이 무엇입니까? 대망입니다. “이것들을 증거하신 이가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자들에게 있을찌어다 아멘.” 하나님은 오랫동안 메시야를 보내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 약속이 예수님께서 오심으로 성취되었습니다. 다시 예수님께서는 성령을 보내시겠다고 약속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성령이 임하여 우리를 붙드실 때까지, 우리를 이끌고 나가실 때까지, 절대로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고 분부하십니다. 성령이 임할 때까지 떠나지 말라, 성령의 지시를 받기 전까지는 떠나지 말라, 성령이 말씀하시기 전까지는 떠나지 말라, 성령이 임하기 전까지는 행동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사람이 자기 일생을 좌우하는 중요한 문제를 놓고 당장, 1초 만에 결정합니다. 그러고 나서 후회들 합니다. 성령께서 하실 수 있는 여유를 주어야 합니다. 자기 혼자 결정을 하면 성령께서 하실 일이 없습니다. 그럴 때 반드시 실수와 우를 범하게 됩니다. 여러분, 어떤 문제든 당장 결정을 하기보다 성령을 생각하고, 성령께서 이런 경우 어떻게 하실까, 기다려야 합니다. 약속을 하신 성령께서 임할 때까지 요동치 말아야 합니다. 마음이 새벽별이 떠오르 때까지 경거망동하지 말아야 합니다. 구름이 뜨고 불기둥이 뜰 때까지 말씀을 읽고 묵상하며 기도함으로 기다려야 합니다. 이게 신앙입니다.

성령은 누구에게 임하십니까? 성령은 지∙정∙의, 인격을 가진 하나님이십니다. 성령의 역사는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때문에 말씀을 등한히 하는 사람은 성령의 역사를 체험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성령의 역사를 감정으로만 체험하려고 합니다. 이것은 대단히 잘못된 태도입니다. 인격체이신 성령께서는 말씀을 통하여 역사하십니다. 성령의 역사는 말씀을 사모하고 읽고 깨달아 그 말씀에 순종할 때 이루어집니다. 나아가서 기도를 등한히 하면 성령께서 떠나십니다. 기도하지 않고 성령님과의 교제를 이룰 수 없습니다. 우리가 어떤 사람과 가까워지기 위해서는 그 사람과 끊임없이 만나 대화해야 하듯이, 성령님과 깊은 교제를 이루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 마음에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이 들어오게 되면 성령의 역사는 나타나지 않습니다. 우리가 항상 성령 충만한 생활을 하기 위해 꿈이 있어야 하고, 비전이 있어야 합니다. 더 나아가 부정적인 생각과 우상 숭배와 음란을 버리고 거룩함을 좇을 때 성령님이 임하게 됩니다. 아멘.

그리고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세례는 그리스도 안에 죽고 사는 것을 뜻합니다. 다시 태어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붙들림 받습니다. 그렇게 됨으로 능력의 사람이 됩니다. 이게 성령 세례입니다.

결론입니다. 성령이 임하여 붙드실 때까지, 복음의 사역 안에 우리를 이끌고 가실 때까지, 절대로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고 분부하십니다. 주님은 지금도 동일하게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성령이 임할 때까지, 성령님이 이끌 때까지 떠나자 말라고 하십니다.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여기에 있고, 교회가 여기 있는 것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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