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제2강

조회 수 3104 추천 수 0 2012.07.11 02:08:38
사도행전 제 2 강(말씀, 1:6-11, 요절 : 1:8)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네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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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도들이 예수님께 대해 간절히 소원하는 바가 무엇입니까(6)? 이들이 이런 소원을 갖게 된 시대적 상황을 말해 보시오. 예수님은 이 문제를 어떻게 도우십니까(7)? 여기에서 우리의 삶의 우선순위에 대해 말해 보시오.

2. 그러나 그들이 필연적으로 해야 할 사명이 무엇입니까(8)? 이 사명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으며, 사명의 범위에 대해 말해 보시오.

3. 예수님께서 승천을 하셨을 때의 제자들의 표정이 어떠하였습니까(9-11)? 그런 제자들에게 무엇을 깨우쳐 주셨습니까(11)? 재림 신앙의 중요성에 대해 말해 보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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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예화가 있습니다. 두 죄수가 감옥의 한 방에 갇혀 있었습니다. 그 감방 벽에 작은 창문이 있었는데 창문 바깥쪽 담 밑에는 졸졸 소리를 내면서 흐르는 도랑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도랑을 지나면 푸른 초원이 시원하게 펼쳐져 있었습니다. 한 죄수는 창문 바로 밑에 졸졸 흐르는 하수를 내려다보며 이렇게 된 자기 자신과 다른 사람을 한탄하고 원망하며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반면에 다른 죄수는 도랑을 넘어 푸른 하늘에 시원하게 펼쳐진 푸른 초원을 바라보며 푸른 초원처럼 펼쳐질 미래에의 꿈을 꾸며 보냈습니다. 시간이 지나 두 사람은 석방이 되었습니다. 초원을 바라보며 미래의 꿈을 꾸며 살았던 그는 훌륭한 사업가가 되었습니다. 반면에 하수만 바라보며 한숨과 원망과 비통함의 나날을 보냈던 죄수는 다시 죄를 짓고 감옥으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이 예화는 소망이 한 사람에게 얼마나 중요하며, 미래에 펼쳐질 꿈을 꾸며 살아가는 것이 인간의 삶을 얼마나 다르게 변화시켜주는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인간은 내일의 소망을 바라보며, 내일의 소망의 꽃을 피우고, 내일의 결실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존재라는 사실입니다. 만일 우리에게 미래의 밝은 소망이 있다면, 밝은 미래만 있다면, 어떤 고생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 꿈이 어떤 것이냐, 그 희망이 어떤 희망이냐에 따라 또 달라질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예수님을 좇던 제자들에게 하나의 꿈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이스라엘 민족이 로마 압제자로부터 해방되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제자들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민족이라면 누구나 가질 수 있는 바램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은 400여년간 이민족에게 침략을 받아 국가 없는 서러움을 겪었습니다. 이민족의 침략을 받아 신성한 예루살렘 성전에 돼지 대가리를 갖다놓는 수모를 겪기도 했습니다. 거기다가 예수님의 12제자들은 거의가 갈릴리 출신들이었습니다. 갈릴리는 예루살렘 사람들로부터 철저하게 소외 받던 곳이었습니다. 이사야서 9장을 보면 갈릴리를 일컬어서 “흑암과 멸시와 고통을 당하던 갈릴리라”고 표현했습니다. 그럴 때에 예수님이 나타났습니다. 그들은 자연스럽게 예수님을 이스라엘을 구원할 메시야로 받아들였고, 이스라엘을 강대국으로부터 해방시켜 줄 정치적 메시야로 기대를 걸었습니다. 그들의 이 꿈은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입성할 때 극에 달했습니다. 예루살렘 군중들은 종려나무를 흔들며 호산나를 외치고 예수님을 열렬하게 환영하였습니다. 제자들은 이 모습을 보고 고무되었습니다. 그래서 요한과 야고보의 어머니는 예수님께 당신이 왕이 되시면 우리 아들들을 좌의정 우의정에 앉혀달라고 청탁을 하기까지 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로마 군병에 이끌려 골고다 언덕에서 십자가형을 받고 참혹하게 죽은 모습을 보며 그들의 꿈은 산산이 깨어졌습니다. 그들은 이 꿈이 상실되자 각기 낙향하여 갈릴리바다에서 고기를 잡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셔서 40일간 제자들과 함께 하셨습니다. 산산이 조각난 그들의 꿈이 예수님의 부활과 더불어 다시 부활하였습니다. 예수님이 40일간 하나님 나라에 대해 말씀하시고,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 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고 하셨지만 그 말씀이 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께 묻습니다. “저희가 모였을 때에 예수께서 묻자와 가로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하니(6)” 죽음을 깨고 일어나신 당신이 그 놀라운 권능과 능력으로 우리의 조국을 로마로부터 해방하실 날이 이제야 이른 것입니까? 묻습니다. 이처럼 제자들은 지상 메시야 왕국, 이스라엘의 회복을 꿈꾸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꿈은 그게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의 꿈은 하나님 나라이었습니다. 제자들이 꿈꾸는 나라는 군인이나 무력으로 통치하는 나라였지만, 예수님이 꿈꾸는 하나님 나라는 성령이 통치하는 나라이었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군인이 아니라, 증인들에 의해 전쟁의 선포가 아닌, 평화의 복음을 통해, 군사력이나 정치적 술책이나 혁명적인 무력이 아닌 성령의 역사에 의해 점차 확장되는, 사람의 통치가 아닌 하나님이 통치하는 그런 나라이었습니다. 이처럼 제자들과 예수님의 꿈이 완연히 달랐습니다. 동상이몽, 같이 잠을 자지만 다른 꿈을 꾸고 있었습니다. 주님은 이런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의 알바 아니요.” ‘너희가 알 바가 아니요.’ 이는 주님께서 이스라엘의 독립에 대해 관심을 갖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회복은 하나님의 권한에 있으니 이 일일보다 더 중요하고 시급한 것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세 가지를 배울 수 있습니다.
첫째로 예수님의 제자들은 민족주의를 깨어야 합니다. 민족주의는 언제나 비극으로 끝납니다. 히틀러의 꿈이 무엇입니까? 민족주의, 게르만 민족의 우수성을 나타내고자 함이었습니다. 일본의 군국주의의 꿈 또한 자기 민족의 위대성을 나타내어 세계를 제패하고자 한 것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의 선민의식은 배타적이었습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은 민족주의를 넘어서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민족주의의 수준을 넘어서서 전 세계, 모든 민족에게 평강의 복음, 화평의 복음을 전하여, 우리는 지금, 여기서부터 세계로 하나님 나라를 확장해야 합니다. 지역, 민족의 범주를 넘어서서 예수님의 명령을 아멘으로 영접할 때 지방색, 민족주의의 껍질을 벗어버리고 참된 의미의 그리스도인으로 태어나게 됩니다.
둘째는 분명한 삶의 우선순위를 가져야 합니다. 내 지역, 내 교회, 내 민족, 내 조국도 매우 중요합니다. 잘 먹고 잘 사는 것 중요합니다. 집을 사고 집의 평수를 늘리는 것도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나 이 보다 더 중요하고, 먼저 간절하게 바라고, 기도하여야 할 것이 있어야 합니다. 그게 무엇입니까? 하나님 나라의 확장입니다. 이게 진정한 비전이요 꿈입니다. 이 세상에 눈에 보이는 것을 바라고 소망하는 것은 비전이 아닙니다. 이 땅에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질 소망을 바라며 꿈을 꾸는 것이 비전입니다. 이 꿈은 우리의 평생 꾸어야 할 꿈입니다. 아니 영원토록 꾸어야 할 꿈입니다.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임하는 것, 하나님과 단절되어 사는 사람들이 생명의 주, 하나님을 알고 만나게 하는 것, 하나님을 알지 못하던 사람들이 십자가를 바라보고, 거기서 피 흘려 죽으신 저 예수가 나의 주요 그리스도이심을 고백하고 죄사함을 받고 의롭다함을 얻어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 되어 함께 어깨를 나란히 하며 하나님의 복음을 땅 끝까지 전파하여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임할 꿈을 꾸며 사는 것, 이게 우리가 꾸어야 할 진정한 꿈, 비전입니다. 이 꿈을 이루어 나갈 때 지역과 동족, 그리고 민족도 회복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성경 곳곳에서 우리의 삶의 우선순위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6장을 보면 예수님은 먹고 마시고 입는 문제에 대해 등한시하라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세상의 범인이 되느냐, 하나님의 사람이 되느냐는 바로 우선순위를 어디에 두느냐에 있습니다. 아기와 자기에게 우선순위를 두면 아기와 자기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자기 가정에 우선순위를 두면 한 가장 그 이상을 넘지 못하는 것이고, 국가와 민족을 우선순위를 두면 민족주의자 그 이상 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의 우선순위를 두면 하나님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위대한 삶을 산 사람들의 삶을 보면 모두 삶의 우선순위가 자기에게서 벗어났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어디에다 우선순위를 두고 있습니까? 여러분의 꿈은 무엇입니까? 그리스도인으로서 당신의 꿈은 무엇입니까? 그럭저럭 이 세상 살다가 가는 것이 당신의 꿈입니까? 당신은 지금 도대체 어떤 꿈을 꾸며 살아갑니까? 여러분은 무엇을 기초로 선택하면서 삶을 살아갑니까? 욕망에 기초하여 선택합니까? 아니면 가치를 기초로 선택하십니까? 가치에 최고 우선순위를 두고 선택하며 살기 바랍니다. 그리고 삶의 가치가 있다고 느끼는 순간, 어물어물하지 말고 과감하게 결단하고 나아가기 바랍니다. 고린도전서 15장에 보면 예수님의 부활을 체험한 사람이 500형제나 되었습니다. 그런데 마가 다락방에 120명밖에 모이지 않았습니다. 나머지 380명은 어디에 갔습니까? 이들은 진리를 찾았지만 그것에 과감하게 투자하고 헌신하지 않아 참여와 헌신의 기회를 잃어버린 사람들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세상의 보이는 욕망을 따라 살 때 여러분의 마지막 날에 분명히 후회할 것입니다. 그러나 가치에 우선순위, 하나님 나라가 지고의 선, 최 우선순위를 두고 살 때에, 여러분은 가장 아름다운 삶을 살았다고 평가를 받을 것이며, 후회 없는 삶을 살았다고 고백하게 될 것입니다. 이 시간 기도합니다. 여러분이 하나님 나라에 최고의 가치를 두고,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해 생명을 같이하는 동역자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가정 복음화, 캠퍼스 복음화, 민족복음화, 세계 복음화를 꿈꾸며 어깨를 나란히 하며 갈 수 있는 동역자, 생명을 결탁한 믿음의 동역자로 함께 이 길을 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8절을 보겠습니다. “오직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증인 되리라 하시니라.” 이 말씀은 예수님의 지상 명령, 예수님의 마지막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의 최후의 명령, 마지막 예수님의 유언입니다. 효성스러운 자식은 부모의 마지막 유언을 기억하고 그 유언을 지키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렇지 않은 자식은 부모님의 유언을 잘 지키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기억조차 하지 않습니다. 그런 자식을 일컬어 불효자식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신실한 자녀라면, 주님의 제자라면 주님의 마지막 유언, last Word를 기억하고 잘 지킵니다. 여러분은 신실한 주님의 자녀입니까? 아니면 불충한 하나님의 자녀입니까? 우리는 성경에 모든 말씀을 다 기억할 수 없을지라도 예수님의 마지막 유언,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는 말씀만큼은 잊지 말기를 기도합니다.
“오직 너희가 성령이 임하시면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이 말씀은 시제는 미래 수동태입니다. 능력을 받게 되리라, 내 증인이 되리라입니다.‘증인이 되라’가 아니라 ‘증인이 되리라’입니다. 증인은 내가 증인이 되고 싶어서 증인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나의 열심과 노력, 그리고 나의 의지로 주님의 증인이 될 수 없습니다. 주체가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증인되게 하십니다.
증인이 되기 위해서는 권능을 받아야 합니다. 권능은 헬라어로 ‘뒤나미스’입니다. 여기에서 다이나마이트라는 단어가 나왔습니다. 권능은 다이나마이트가 터지는 그런 능력, 그런 권능을 말합니다. 우리는 권능, 능력하면 외적인 능력만을 생각합니다. 권능이 원수를 때려 부수고 세상을 뒤엎어버리는 권능을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성경에서 말하는 권능이 아닙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권능은 제자들 내면에 변화의 역사가 일어나는 권능, 하나님의 사람이 되게 하는 권능, 참된 제자가 되게 하는 권능, 사도되게 하는 권능, 형편 없는 제자를 변화시켜서 증인이 되게 하는 권능, 이게 능력이요 권능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힘들고 어려운 것이 무엇입니까? 사람의 변화입니다. 자기 자신의 변화입니다. 자기를 이기는 것입니다. 자기를 변화시키고, 자기를 이기는 능력이 바로 권능입니다. 비겁한 사람이 변해서 용기 있는 사람, 핍박도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고 담대하게 복음의 증인된 삶으로서의 변화, 이게 참된 권능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자기를 이길 수 있는, 자기가 변화될 수 있는, 자기를 이기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굳게 서서 하나님의 말씀을 담대하게 전할 수 있는 그런 능력 있는 사람이 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어떤 절망과 낙망 중에도 낙심하지 않고 담대하게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그런 능력 있는 사람이 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뜨겁게 주님을 사랑할 수 있는 그런 사람, 자기를 미워하는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될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권능을 받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합니까? 권능을 받으려면 성령께서 임하셔야 합니다. 성령을 받아야 권능의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성령이 무엇입니까? 성령은 곧 권능입니다. 성령은 깨달음이 아닙니다. 성령은 지식이 아닙니다. 강동만 받는, 기쁨만 받는, 그게 성령이 아닙니다. 성령은 곧 권능입니다. 성령이 임하지 않으면 권능을 받을 수 없습니다. 권능을 받아야 증인이 될 수 있습니다. 성령은 누구에게 임합니까? 성경 말씀을 사랑하고 기도하는 사람에게 임합니다. 시편 119편을 보면 다윗이 얼마나 말씀을 사랑했는지 잘 나와 있습니다. 다윗은 꿀보다 말씀이 더 달았습니다. 다윗은 정금보다 말씀을 더 사랑했습니다. 그는 말씀을 사모하여 야경에 일찍 일어나 성경을 읽었습니다. 그는 주님께 눈물로 기도했습니다. 침상을 적시며 기도했습니다. 그 때 그는 성령 충만한 사람이 되어 하나님의 사람, 성령이 충만한 사람이 될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통해 세상 땅 끝까지 이르러 복음의 증인이 되기를 원하셨습니다. 세상 만민을 구원코자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큰 뜻을 두시고 우리를 통해 세상 만민을 구원코자 하십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역동적으로 복음의 증인이 될 수 있습니까?
첫째로 체험이 있어야 합니다. 증인은 헬라어로 ‘말투리아’입니다. 여기에서 순교자라는 마터(martyr)라는 단어가 나왔습니다. 증인은 곧 순교자적인 삶을 사는 것입니다. 증인은 자기를 대언하는 것이 아닙니다. 증인은 지식을 공급하는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 증인은 증인석에서 사실대로 말하는 것입니다. 내 생각에는, 내가 느끼기에는, 이런 것은 증인이 할 소리가 아닙니다. 증인은 내가 보고, 내가 듣고, 내가 경험하고, 내가 체험한 사실만을 말하는 것입니다. 증인은 어떤 진리를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진리의 진실성을 말하는 사람입니다. 사실이냐, 아니냐, 보았느냐, 못보았느냐, 경험했느냐, 안했느냐입니다. 때문에 증인은 반드시 경험, 보고 체험한 것이 있어야 합니다. 경험적, 체험적 신앙을 갖지 못한 사람은 증인이 될 수 없습니다. 많은 책을 읽었다고 증인이 될 수 없습니다. 경험이 있어야 하고, 증거가 있어야 하고, 간증이 있어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B.C.와 A.D.가 분명해야 합니다. 예수 믿기 전과 예수 믿은 후의 분명한 변화의 역사가 있어야 합니다.
둘째로 증거자에 대한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사랑이 없으면 보고 경험하고 체험을 해도 증인이 될 수 없습니다. 요즘 법정에 증인 서기를 꺼려한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뺑소니 차량을 보고도 신고를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법정에 가서 증언을 하려면 시간이 들고 귀찮기 때문입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귀찮지만 모든 것을 떨쳐버리고 기서 증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 분을 사랑하기 때문에 기꺼이 가서 증인이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불이익을 각오하고, 손해와 핍박을 각오하고 증인이 되는 것입니다.
셋째로 용기가 있어야 합니다. 옳은 것은 옳다, 본 것을 보았다, 경험한 것을 경험하였다고 말하기 위해서는 용기와 담대함이 요구됩니다. 베드로는 비겁한 사람이었습니다. 계집종 앞에서도 예수님을 부인하였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성령을 임하고 권능이 임하자 담대하게 주님을 증거하는 증인이 되었습니다. 사도행전 2:32, 3:15, 5:32, 10:39을 보면 그는 담대하게 말합니다. “우리가 이 일에 증인이로다,” 우리가 보았다, 우리가 경험하였다, 내가 주님이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한 것을 보았다, 내가 보았고, 만졌고, 분명히 예수님과 함께 하였다고 증거합니다.
복음은 예루살렘으로부터 시작하여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증거됩니다. 여기에 복음의 점진성을 볼 수 있습니다. 1-7장은 예루살렘의 역사, 8장은 유다와 사마리아 지방으로서의 흩어짐과 더불어 복음의 전파, 9장부터는 세계 선교의 준비와 확장으로 퍼져나갑니다.그들이 감당해야 할 범위는 땅 끝까지입니다. 그들이 감당해야 할 사명은 민족과 이념을 초월한 범세계적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들이 이 사명을 감당하려면 유다이즘을 극복하고 사마리아에 대한 민족감정과 로마에 대한 미움의 감정도 극복해야 했습니다. 무엇보다 자기 중심적이고 좁은 마음을 버리고 세계 어떤 종족도 다 품고 섬길 수 있도록 마음을 넓혀야 했습니다. 자기 중심적인 생각과 좁은 마음으로는 세계선교역사를 섬길 수 없습니다.그리고 시간적으로는 우리 주님이 오실 때까지입니다.
9-11절을 보겠습니다. 예수님은 이 말씀을 하신 후 저희 보는데서 하늘로 올리워 가셨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만 의지하고 있다가 멍하게 하늘만 바라볼 뿐이었습니다. 이때 천사들이 나타나 그들을 책망했습니다. “이 갈릴리 촌놈들아 어찌하여 서서 멍하게 하늘만 쳐다보고 있느냐?” 이는 사명지는 하늘이 아니고 땅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소명은 별을 바라보는 몽상가가 아니라 이 땅에서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천사는 제자들에게 재림 신앙을 심었습니다. 본 대로 다시 오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제자들에게 큰 소망이 됩니다. 주님은 다시 오셔서 마지막 명령의 충성도를 따라 상급을 주십니다. 여기에 위로와 소망이 있습니다.
성령은 권능입니다. 성령은 증거의 영입니다. 땅 끝까지 이르러 증인이 되게 하십니다. 성령께서 임하셔서 이 세상 끝날 때까지 복음의 증인이 되게 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우선순위를 두고 주님의 마지막 명령을 힘써 순종하기를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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