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부활메시지

조회 수 2531 추천 수 0 2012.07.11 02:22:01
로마서 4:18-25, 요절 4:25
우리의 칭의를 위한 부활

“예수는 우리 범죄함을 위하여 내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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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이런 질문을 해본 적이 있습니까?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 앞에 의로울 수 있을까? 인간이 어떻게 하나님께 바를 수 있을까? 우리가 어떻게 확신 있게 하나님께 나갈 수 있을까? 우리가 어떻게 두려움 없이 죽음을 맞이할 수 있을까? 우리가 어떻게 절망과 공포가 없는, 하나님의 심판이 없는 삶을 살 수 없을까? 하나님 앞에서 부끄러움이 없는 삶을 살 수 없을까? 이 질문은 의미 있게 살려고 하는 모든 사람들의 고민이었습니다.

맹자의 진심편에 군자의 3낙이 나오는데, 그 3락 중에 이런 말이 나옵니다. 군자란 하늘을 우러러 부끄럽지 않고 땅을 구부려 사람에게 부끄럽지 않은 삶이라고 했습니다. 윤동주 시인은 이 말을 인용하여 하늘을 우러러 부끄럽지 않은 삶을 노래했습니다. 욥도 욥기 9:2을 보면 이런 질문을 던집니다. “내가 진실로 그 일이 그런 줄을 알거니와 인생이 어찌 하나님 앞에 의로우랴?” 이에 대한 답이 바로 오늘 읽은 요절 말씀입니다. 그리고 이 말씀은 바울의 로마 성도들에게 전한 부활의 메시지입니다. 바울이 로마 성도들에게 전한 부활의 메시지가 무엇입니까? “예수는 우리 범죄함을 위하여 내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바울은 예수님이 살아나셨다고 선포하였습니다. 살아나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리의 의(our justification)를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의롭다하시기 위하여 예수님을 부활시키셨습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도록 하시기 위하여 부활시키셨습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우리가 죽음의 공포와 두려움이 없는 삶을 살도록 하시기 위하여 부활시키셨습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우리가 죄의식과 죄책감으로부터 자유케 하시기 위하여 부활시키셨습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우리를 가장 고통스럽게 하는 죽음의 세력에서 해방시키기 위하여 부활시키셨습니다.

25절을 다시 한 번 보십시오. 바울은 예수님의 부활을 말씀하기 전에 예수님의 죽으심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바울은 하나님이 예수님을 우리의 범죄를 위하여 내어주셨다(was delivered)고 했습니다. 바울은 예수님이 스스로 죽으셨다고 하지 않습니다. 대제사장인 가야바가 죽인 것으로 설명하지 않습니다. 빌라도가 죽인 것으로 언급하지 않습니다. 유대인이 십자가에 죽인 것으로 말하지 않습니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우리를 위하여 제물로 내어주셨다고 했습니다. 내어주셨다는 단어는 로마서 8:32에서도 똑같이 사용됩니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내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 그리고 이사야서 53:6에서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다”고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왜 예수를 십자가에 처절하게 죽도록 내어주셨습니까? King James 성경을 보면 범죄(offences)를 위함이라고 했습니다. 다시 말해 각종 법을 어겼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법을 어긴 인간을 위하여 십자가에 예수님을 내어주셨습니다. 자 우리 생각해 보십시오. 십계명에 비쳐볼 때 죄를 범하지 않은 사람은 한 명도 없을 것입니다. 요즘 성 범죄가 급등하고 있습니다. 성(sex)의 단어의 어원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라틴어로 Seco(분리)와 Sextus(제 6의)에서 나왔습니다. 여기에서 Sextus(제 6의)은 십계명 중의 간음하지 말라는 제 6계명에서 나온 단어입니다(가톨릭에서는 제 1 계명과 제 2계명을 하나로 통합하기 때문에 간음하지 말라는 제 7계명이 6계명으로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산상수훈에서 간음하지 말라는 계명을 이렇게 해석하셨습니다.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마5:28).” 그러니까 간음하지 말라는 말씀에 비춰볼 때 누가 감히 범죄치 않았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은 예수님을 우리 범죄함을 위하여 내어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범죄함 때문에 예수님을 십자가에 내어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위해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범죄를 거두시어 예수님께 짊어지우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 분 안에서 우리의 모든 죄를 심판하셨습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자면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보내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마가복음 8:31에서 인자가 반드시 고난을 받아야 하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바 되어야 하고, 죽임을 당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must suffer, must be rejected, must be killed). 이로 인해 우리는 우리의 모든 죄가 사함을 받았습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은 독생자 예수님을 우리의 범죄함을 위하여 십자가에 내어주시기까지 사랑하셨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십자가를 바라볼 때마다 한없는 주님의 사랑과 은혜를 생각하고 감사와 찬양과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이상에서 볼 때 십자가 속에 사죄가 있고, 부활 속에 의롭다 하심이 있습니다. 바울은 로마서 8:1,2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람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또 이렇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8:38,39).” 부활로 말미암는 의는 하나님의 완전한 의입니다. 이 의는 그 어떤 세력도 파괴할 수 없는 완전한 하나님의 의입니다.

따라서 우리 믿는 사람들은 두 가지 걱정을 하면 안됩니다. 하나는 죽음에 대한 공포, 또 하나는 저주, 죄의식이나 죄책감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우리를 괴롭히는 것은 죽음에 대한 공포입니다. 우리가 조금 아프다 싶으면 이거 이러다가 죽는 것이 아니야, 이거 혹시 암이 아니야, 죽음이 주는 두려움에 시달리곤 합니다. 그리고 무슨 일이 잘 되지 않으면 이거 하나님의 저주가 아니야, 또 무슨 좋지 않은 일이 생기면 하나님께서 나에게 벌을 주는 것은 아닌가 하고 시달리곤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어떤 경우에도 죽음에 대한 고통에 시달려서는 되지 않습니다. 우리가 죽는 것은 죽은 게 아닙니다. 하늘나라로 가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에게 어떤 사건이 생길 때 그것은 하나님의 저주도 아니고 내 죄에 심판도 아닙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사랑일 뿐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모든 자들에게는 실패도 없고 저주도 없고 심판도 없고 죽음도 없습니다. 모든 것이 합력하여 완벽한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 사랑의 역사만이 있을 뿐입니다.

이를 무엇으로 비유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는 아버지와 자녀와의 관계입니다. 자녀가 부모님을 사랑하고 존경하고 효성이 지극합니다. 그런 아들에게는 아버지가 무슨 말씀을 하시더라도 사랑을 의심하지 않습니다. 때려도, 책망을 해도, 잔소리를 해도, 무슨 얘기를 해도 고까워하지 않습니다. 쓴 뿌리를 품지 않습니다. 대들거나 반항하지 않습니다. 다 나를 위해서 하시는 말씀이야, 아마 아버지께서 그런 말씀을 하시는 것은 더 잘 되라고, 더 좋은 사람이 되라고 하시는 것이야 생각합니다. 이것이 아버지를 믿는 사람의 마땅한 자세입니다. 이처럼 우리의 하나님께 대한 자세가 이래야 됩니다. 이럴 때 더 이상 저주의식이나 죽음에 대한 공포에 시달리지 않게 됩니다.

예수님의 부활로 우리가 의롭게 되었다고 했는데, 여기에서 예수님의 부활이 단순히 부활로 끝났다면 나사로의 부활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로 인해 예수님은 승천하심과 하늘의 우편에 앉아계십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으셨다는 것은 우리의 영이 동시에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우리 주님과 함께 있음을 말합니다. 에베소서 2:6,7절을 보겠습니다.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니라.” 우리는 아직 죽은 일도 없습니다. 우리는 부활한 일도 없습니다. 승천한 일도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은 일도 없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하늘에 앉힘을 받았다고 말씀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예수님께서 나의 죄를 위해 죽으시고 장사지낸바 되었다가 부활하시고 승천하시고 하나님 보좌에 앉으셨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예수님만이 경험하신 역사적인 사실이요 경험입니다. 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순간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들어가게 됩니다. 우리의 육신은 땅에 있지만 우리의 영혼은 하늘의 우편에 계시는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로마서 8장을 보면 “의롭다하시다(justified)”, “영화롭게하시다(glorified)”의 단어가 모두 과거형입니다. “의롭다하시다”는 이미 이루어진 사건입니다. 반면에 “영화롭게 하시다(glorified)”는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미래에 이루어질 구원의 사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형, “영화롭게 하시다(glorified)”로 되어 있습니다. 이는 미래의 사건인 영화도 모두 완성된 사건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믿는 자들에게는 불확실성이란 단어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불확실성이란 믿지 않는 자들이 쓰는 용어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미래에 이루어질 사건도 이미 이루어졌기 때문에 장차 이루어질 놀라운 하나님 나라의 영광을 현재의 삶 속에서 누리며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죽어서 천당에 가야 이런 하나님 나라의 영광을 누릴 줄로만 생각합니다.

자, 이제 본문으로 돌아가겠습니다. 바울은 아브라함의 믿음의 예를 들어서 부활을 전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어떤 믿음의 소유자였습니까?

첫째로 아브라함은 불가능한 것을 믿었습니다. 18절을 보겠습니다. 아브라함은 인간적으로 도저히 바랄 수 없는 중에 “네 후손이 이와 같으리라”고 하신 약속을 붙들고 믿고 바랐습니다. 나이가 늙어 아기를 낳을 수 없는 상황, 사라는 경수가 끊겨 아기를 나을 수 없는 그런 상황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아기를 주신다고 하니까 그것을 믿었습니다. 인격적 관계란 무엇입니까? 믿어주는 것입니다, 팥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믿어주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을 100% 신뢰했습니다.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을 믿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반드시 현실이 될 것을 믿었습니다. 그는 100세가 되어 자기 몸의 죽은 것 같음과 사라의 태의 죽은 것 같음을 알았습니다. 보통 상황이 힘든 것을 알면 낙심하고 믿음이 연약해져서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기 쉽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능력마저 불신하고 결국에는 실족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절망적인 상황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않았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치 않았습니다. 아브라함은 어떤 경우에도 믿음에 견고히 서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그리고 약속하신 그것을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습니다. 그는 가장 어둡고 절망적일 때 믿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밤하늘이 어두우면 어두울수록 별빛이 더욱 찬란히 빛나는 것과 같이 상황이 어려울수록 그의 믿음은 더욱 견고해지고 빛이 났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처한 상황이 절망적이라 할지라도 믿음의 눈으로 볼 때 그 때가 바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입니다.

그의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이 곧 현실이었습니다. 하나님이 된다고 하시면 될 것을 믿었습니다. 하나님이 이룬다고 하시면 이미 이루어진 것으로 확신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현실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는 하나님 말씀 자체가 힘이요 능력임을 믿었습니다. 제가 가장 힘든 사람은 믿는 사람이라고 하는 사람이 말씀을 상식에다 대비하는 사람입니다. “그거 상식적으로 맞습니까? 그거 이치적으로 맞습니까? 현실적으로 믿을 수 있습니까?” 그리고 경험을 들고 나오는 사람입니다. “나도 해봤는데 안되던데”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죄악에 오염된 이성과 경험의 세계에 대비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죄에 오염된 이성과 경험을 십자가에 못박고 말씀대로 살 때에 역사의 물줄기를 바꾸는 위대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둘째, 그는 알고도 믿음이 약해지지 않았습니다(19-22). 19절을 읽겠습니다. “그가 백세나 되어 자기 몸의 죽은 것 같음과 사라의 태의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죽은 것 같음”의 시제는 이미 죽었다는 현재완료입니다. 이미 죽었다는 것입니다. 그의 몸에는 생산할 능력이 없었습니다. 아기를 낳을 수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믿음이 약해지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믿다가도 현실을 바라보면 믿음이 흔들립니다. 내 주제에 무슨 그런 일을 할 수 있나, 내 꼬라지를 알아야지, 믿음은 좋은데 현실을 직시해야지 합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알고도 믿음이 약해지지 않았습니다. 아브라함은 현실의 장벽을 넘어서서 희망의 하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는 신실하신 하나님, 약속을 반드시 지키시는 약속의 하나님, 사랑의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그는 변함이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는 하나님을 믿었습니다(약1:7). 사람은 철석같이 약속을 해 놓고도 상황이 자기에게 불리하게 되면 약속을 지키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신실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신실하십니다. 하나님은 한번 하신 약속은 어기지 않으시고 어떤 희생이 있더라도 반드시 지키시는 분이십니다. 아브라함은 이 신실하신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구체적으로 그가 하신 약속의 말씀을 굳게 붙들었습니다. 우리의 믿음도 신실하신 하나님, 사랑의 하나님을 믿고 구체적으로 약속의 말씀을 붙드는 것입니다.

약속은 미래의 현실입니다. 아직 손에 쥔 것이 없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약속은 약속 어음과 같습니다. 약속 어음은 돈이 아닙니다. 현금이 아닙니다. 그러나 은행에 가지고 가면 현금으로 바꾸어줍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하나님이 보증한 하나님이 사인한 것입니다. 여기에는 부도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도장을 찍어 보증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자손을 주시겠다. 땅을 주시겠다. 그러나 현실은 아닙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약속을 믿었습니다. 이것을 믿고 현실에 살아갔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믿음을 그의 의로 여기셨습니다(22).

셋째, 아브라함의 믿음은 우리의 믿음입니다(23-25). 바울은 아브라함의 믿음에서 배울 수 있는 교훈을 우리에게 적용시킵니다. 23,24a절을 보겠습니다. “저에게 의로 여기셨다 기록된 것은 아브라함만 위한 것이 아니요 의로 여기심을 받을 우리도 위함이니”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길게 설명했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이렇게 길게 설명하는 것은 단순히 아브라함에게만 국한 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을 보사고 의롭다하하심을 하신 것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모든 사람에게도 같은 진리라는 것입니다. 아브라함과 똑같은 방식으로 모든 믿는 자에게 해방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브라함처럼 믿는다면 아브라함이 받았던 것처럼 똑같이 의롭다함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의롭다함을 얻는 믿음이 무엇입니까? 24절을 보겠습니다. “의로 여기심을 받을 우리도 위함이니 곧 예수 우리 주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를 믿는 자니라.” 하나님을 믿는 믿음입니다. 그 믿음이 무엇입니까? 우릴 주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를 믿는 믿음입니다. 단순히 하나님을 믿어서는 되지 않습니다. 모슬렘도 하나님을 믿습니다. 유대교도 하나님을 믿습니다. 아니 동양 사람들도 하나님을 믿습니다. 그래서는 의롭다함을 얻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주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셨다는 것을 믿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기독교의 요체는 주님의 부활입니다. 그것 없이는 기독교가 존재할 수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5장에서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다면 그리스도도 부활하지 않았으며 그리스도가 부활하지 않았다면 우리의 전하는 것도 우리의 믿음도 헛것이라 그렇다면 너는 그저 너희 죄 가운데 있느니라고 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로마서 10장에서 너희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여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그리고 로마서 1:4절을 보겠습니다.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부활로 인해 주님의 영광이 선포되었습니다. 주님의 능력이 선포되었습니다. 부활은 하나님의 능력의 선포요 영광의 선포입니다.

복음성가 246장을 부르겠습니다. ♬주 하나님, 독생자 예수 날 위하여 오시었네, 내 모든 죄 용서하시고 죽음에서 부활하신 나의 구세주. 살아 계신 주 나의 참된 소망, 걱정 근심 전혀 없네, 사랑의 주 내 갈 길 인도하니 내 모든 삶에 기쁨 늘 충만하네. 주 안에서 거듭난 생명 도우시는 주의 사랑 참 기쁨과 확신가지고 예수님의 도우심을 믿으며 살리. 살아 계신 주 나의 참된 소망, 걱정 근심 전혀 없네, 사랑의 주 내 갈 길 인도하니 내 모든 삶에 기쁨 늘 충만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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