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의 기본 원칙

조회 수 2478 추천 수 0 2012.07.11 02:22:38
2006년 가정의 달 특강(창세기 2:18-25, 2:24)

가정의 기본 원칙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찌로다(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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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는 변합니다. 생활양식이 변합니다. 풍속이 변합니다. 인정이 변하고 인심이 변합니다. 얼굴의 모양도 변하고 형제들의 옷매무새도 변합니다. 그러나 시대가 변하고 환경이 변해도 변치 않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자연법칙입니다. 물은 0도 되어야 얼고 100도가 되어야 끓는 것은 100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습니다. 봄이 되어야 꽃이 피고 가을이 되면 낙엽이 지는 것 변함이 없습니다. 변하지 않는 또 하나의 법칙이 있는 데 그것은 도덕의 법칙입니다. 그리고 변하지 않는 것이 또 하나 있는데 그것은 가정의 원칙입니다. 가정은 부부, 자녀, 부모 등으로 구성된 유기적인 공동체입니다. 가정의 정의는 학자들 견해에 따라 다를 수 있으나 가족이 공동생활을 하고 있는 장소라고 보는 것이 보통이며, 영어의 홈(home)이나 독일어의 하임(heim)이 이에 해당합니다. 가정과 집(house)을 비교해 보면, 전자는 인간관계를 가리키는 것이라면 후자는 건물을 가리킵니다. 가정은 개인적으로 안식과 행복의 원천입니다. 장차 건강한 사회 구성원이 자라나는 귀중한 곳입니다. 그리고 사회적으로 볼 때 국가의 기본 단위로서 가정은 사회의 안정과 질서에 큰 관계가 있습니다.

교육사회학적으로 보면 건강한 가정, 순기능 가정은 첫째로 정신이 온전하고 균형 잡힌 부모, 어떤 요소에서도 극단적인 좌절감이 없는 부모, 과거에 그런 것들이 있었다면 그것을 적절히 다룰 수 있는 부모입니다. 둘째로, 중독 증세가 없는 부모, 알코올이나 마약 같은 중독 문제 이외에도 충동적인 소비나 무질서한 식생활 등이 없는 부모입니다. 셋째로 자기 삶을 규제할 수 있는 성숙한 부모입니다. 넷째로 긍정적인 자아상을 가진 부모입니다. 다섯째로 행복한 결혼생활을 유지하기로 결심한 부모입니다. 이런 부모들은 그들의 자녀가 어떤 상황에서도 인간답게 될 수 있도록 가르치는 것을 제일 우선적으로 여깁니다. 그리고 인간의 삶과 인간의 지성과 감정, 의지가 무엇보다도 더 중요하다는 것을 가르칩니다. 반면에 건강하지 않은 가정, 역기능 가정은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하는 가정입니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가장 기본적인 신체적, 정서적 욕구를 충족시켜 주지 못하고 정상적인 양육을 받지 못하는 가정을 말합니다. 이런 가정에서는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가 충족되지 못하고 오히려 인간의 감정이 억압되어 자아가 정상적으로 성장을 못합니다.

그렇다면 당신의 가정은 행복한 가정입니까? 누군가 이런 질문을 당신에게 던진다면 어떻게 대답하실 수 있습니까? 기독교 가정이라고 해서 모두가 행복한 가정만은 아닙니다. 예수님을 모시고 사는 가정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상처가 있고 불행한 가정들이 많이 있습니다. 사실 믿지 않는 가정들은 이런 것들을 바깥으로 표출하여 치료를 받지만 크리스천 가정은 가정 문제를 드러내지 않고 감추고 숨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교회에 나와서는 얼굴에 미소를 띠고 행복한 표정을 짓지만 집에서는 문제 가운데 불행한 삶을 사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는 내 가정에 있는 문제를 부끄럽게 생각하지 말고 문제를 내놓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랑과 보혈로 치유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만일 상처가 치유되지 않으면 그 상처가 다시 대물림 하게 됩니다. 상처 입은 사람은 반드시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입히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떤 가정이 건강한 가정입니까? 오늘 가정의 기본원칙이 무엇인가를 살펴보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축복하여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첫째, 일부일처의 원칙입니다.

창세기 1:27절을 보면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디모데 전서 3장을 보면 감독과 집사의 자격을 열거할 때 “한 아내의 남편”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창조의 질서입니다.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모여서 가정을 이루는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이 죄로 인해 타락한 인간은 정욕의 종이 되어 어떤 사회에서는 일부다처주의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고대 헬라나 로마를 보면 대체로 일부다처의 제도를 갖고 있었습니다. 지금도 모슬렘에서는 일부다처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아프리카의 마사이 마을을 가보니 그곳도 일부다처제를 허용하고 있었습니다. 모세 5경을 보면 이스라엘 사회에서도 일부다처주의를 실행하여 많은 죄악이 있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일부일처의 원칙을 분명히 선포하셨습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동로마 제국에서 데오도시오 황제시에 비로소 일부일처의 제도를 국법으로 제정하여 선포하였습니다. 작금에 와서 기독교 국가는 기독교 문화의 영향으로 대체로 일부일처 제도를 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개인적으로 현지처니, 뭐니 해서 일부일처의 제도를 실행하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일부일처주의는 기독교 가정의 제일 원칙이요 창조 질서입니다.

둘째, 아내는 돕는 배필의 원칙입니다.

창세기 2:18을 읽겠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사람의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여기에서 ‘돕는 배필’이란 suitable helper mate로, 가장 적합한 동역자란 뜻입니다. 그러니까 아내는 ‘바라는 배필’이 아니라 ‘돕는 배필’입니다. 형제를 잘 도와 동역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남편의 부족한 점이 발견되면 비난하기보다는 그것을 채워주는 것이 아내의 본분입니다. 잠언 31:10에 보면 “누가 현숙한 여인을 찾아 얻겠느냐 그 값은 진주보다 더하니라 그런 자의 남편의 마음은 그를 믿나니 산업이 핍절치 아니하겠으며 그러한 자는 살아있는 동안에 그 남편에게 선을 행하고 악을 행치 아니하는 자라”고 현숙한 여인의 축복을 말씀하였습니다. ‘돕는다’는 것은 무조건 형제를 지지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형제에게 주신 사명이 무엇인가를 잘 알고 그 사명을 잘 감당하도록 도우라는 것입니다. 형제들이 들으면 기분 나쁠지 모르지만 자매들의 행동에 따라 형제들의 삶이 180도 달라집니다. 이는 자매들의 영향이 형제들에게 크게 미친다는 말입니다.

인류 역사상 훌륭한 남편 뒤에는 반드시 훌륭한 아내가 있었습니다. 한 남자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두 여자의 손을 거친다는 말이 있습니다. 하나의 손은 훌륭한 어머니이고, 또 하나는 어진 아내의 손이라는 것입니다. 사도 베드로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아내 된 자들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복하라. 이는 혹 도를 순종치 않는 자라도 말로 말미암지 않고 그 아내의 행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게 하려 함이니 너희의 두려워하며 정결한 행위를 봄이라(벧전3:1,2).” 계속해서 말합니다. “너희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하지말고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라(벧전 3:3,4).” 이 말은 화장을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겉모양보다 속사람을 아름답게 하라는 것입니다.
자동차 왕 헨리 포드가 1883년에 동네 사람들의 비웃음 가운데서도 끝까지 자동차 발명에 몰두하여 성공할 수 있었던 것도 모두 그의 아내의 헌신적인 믿음과 격려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날마다 10시간씩 일하고, 집에 돌아와서 낡은 오두막집에 틀어박혀 새로운 엔진의 제작을 위해 밤이 깊도록 몰두했습니다. 아무도 그를 인정해 주지 않았습니다. 가난한 농부였던 그의 아버지도 쓸데없는 데 시간을 낭비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단 한 사람, 그의 아내만은 그를 믿었습니다. 집안 일이 끝나면 반드시 그 오두막집에 나타나 남편을 도왔습니다. 그래서 그는 아내를 ‘나의 信者’라고 불렀습니다. 아내의 도움으로 그는 드디어 자동차를 만들어 내었습니다. 미국에 있는 그의 기념관에 가면 이런 글귀가 있다고 합니다. “헨리 포드는 꿈꾸는 자이고, 그의 아내는 믿음의 사람이다.” 그리고 50년 후, 포드는 다시 태어난다면 무엇이 되고 싶으냐의 기자의 질문에 이렇게 답변했다고 합니다. “내 아내와 같이 있을 수만 있다면 무엇으로 태어나건 전혀 개의치 않겠오.”

셋째, 연합의 원칙입니다.

24,25절을 보겠습니다.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찌로다. 아담과 그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 아니하니라.” 결혼을 하면 남자는 부모를 떠나 아내와 연합하여 독립적인 개체로서 한 가정을 이루게 됩니다. 둘이 한 몸을 이루는 것을 합일성, 친밀성이라고 말합니다. 부부 사이란 하나님과의 관계를 제외하고는 가장 가깝고 친밀한 관계입니다. 이 때 부끄러움이 전혀 없는 행복한 가정이 됩니다. ‘연합’이란 단어는 ‘unite’, ‘cleave’로서 종이 두 장을 아교풀로 딱 붙여 놓은 완전한 하나 됨의 상태를 말합니다. 육체적으로 하나가 되어야 할 뿐만 아니라 인격적으로 하나가 되어야 하고 영적으로도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이렇게 연합하기 위해서는 마음과 뜻이 같아야 됩니다. 또 믿음도 같고 사명도 같고 방향도 같고 목적도 같고 소망도 같아야 됩니다.

하나가 된다고 해서 자기 인격을 말살하라는 것은 아닙니다. 이는 조화로운 연합을 의미합니다. 남녀에는 분명히 서로 다른 차이가 있습니다. 남자는 사회적인 데 관심이 많은 반면에 여자는 가정적인데 관심이 많습니다. 남자는 논리적인데 반해 여자는 감성적입니다. 남자는 공격적인 반면에 여자는 방어적입니다. 남자가 시각적이라면 여자는 청각적입니다. 이런 차이를 인정할 때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이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찌니 이 비밀이 크도다. 내가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엡5:33,34).” 기독교에 세 가지 비밀이 있는 데 하나는 3위1체의 비밀, 또 하나는 성육신의 비밀, 또 다른 하나는 둘이 하나가 되는 부부의 비밀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 비밀이 크다고 했습니다. 부모를 떠나서 연합하는 것은 그 누구도 부부 사이에 끼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부부 사이에 시아버지도, 시어머니도, 친정 부모님도, 그 누구도 끼어서는 안됩니다. 부부 사이에 아이도 끼어서는 안됩니다. 부부가 잘 때 아이를 가운데 놓고 자는 것 또한 성경 말씀에 위배됩니다. 그리고 분방을 금해야 합니다. 성경은 다만 기도할 틈을 얻기 위해 합의상 얼마동안은 하되 다시 합하라고 했습니다(고전7:5). 같은 방에서 잔다고 해서 분방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등을 맛 대고 벽을 보고 자는 것도 분방입니다. 우리는 천국을 볼 수 없지만 부부와 연합되는 그 속에서 하늘나라의 비밀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이 결혼의 신비입니다.

넷째, 이혼의 불가 원칙입니다.

결혼은 사람의 의지만으로 되는 것만은 아닙니다. 그 배후에는 하나님의 경륜과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눌 수 없습니다. 이혼은 하나님의 뜻을 어기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혼율이 증가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이혼가정이 많은지 교회에서 이혼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할 수 없습니다. 이혼한 사람이 서울 시장 후보도 나왔습니다. 이혼은 잘못된 것임을 드러내놓고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제가 대학에서 성심리, 성상담을 강의하는데 이혼을 해서는 안 된다고 계속 강조합니다. 이...하다가 가정 법원에 가지 말고 이상하다며 치과에 가라고 합니다. 이혼은 해서는 안 됩니다. 이것은 계명입니다. 하나님의 법을 어기면 가정이 무너지고 가정이 무너지면 그 형벌을 내가 받고, 내 자녀가 받고, 우리 사회가 받게 됩니다. 가정은 공동체 중에 중요한 공동체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가정을 소중히 여기고 지키고 보호해야 합니다.

둘이 하나가 되었습니다. 1+1=2 가 아닌 ‘1’입니다. 그래서 부부의 날도 두 사람이 모여 하나가 되었다는 뜻에서 21일인 것입니다. 우리 몸은 지체들의 집합체가 아니고 유기적입니다. 유기체는 머리 따로 몸 따로 놀 수가 없습니다. 남편과 아내가 각기 따로 행동한다는 것은 머리 따로, 몸 따로 움직이는 것과 같습니다. 이것은 기형적인 상태입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몸이 될찌라 하신 것을 읽지 못하였느냐 이러한즉 이제는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마19:5,6).”

다섯째, 성결의 원칙입니다.

가정은 성결해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6:18을 보면 사도 바울은 엄하게 교훈하고 있습니다. “음행을 피하라 사람이 범하는 죄마다 몸 밖에 있거니와 음행하는 자는 자기 몸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히브리서 저자는 14:4에서 “모든 사람은 혼인을 귀히 여기고 침소를 더럽히지 않게 하라 음행하는 자들과 간음하는 자들을 하나님이 심판하시리라.” 가정을 성결히 보전하기 위하여 제 7계명과 이 모든 교훈을 더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가정을 성결하게 해야 할 이유는 하나님의 모든 축복이 가정을 통해서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가장 큰 축복은 생명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하나님의 축복이 가정을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성결은 결혼 전부터 시작됩니다. 몸은 성령의 전인 줄 알고 성결이 가질 수 있어야 합니다. 결혼 전에 교제를 할 수 있어야 하지만 자제와 극기의 덕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서로 인격적으로 존경하고 사랑할 줄 아는 건강한 성결한 가정을 이룰 수 있습니다.

지난주 인하대에서 성교육의 특강이 있어서 참석을 했습니다. 그런데 성교육이 성결을 위한 교육이 아니라 피임 교육을 시키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이란 단어 자체가 순결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알 때 성결한 가정을 이룰 수 있습니다. 성결을 생명처럼 여길 때 가정은 성결하게 되는 것이고 성결이 보전될 수 있습니다.

여섯째, 사랑의 원칙입니다.

하나님이 남자의 갈비뼈로 여자를 만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남자의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심은 큰 의미가 있습니다. 여자를 남자의 머리로 만들었다면 남자의 브레인이 되어 형제를 좌지우지 할 것입니다. 또한 발가락으로 만들었다면 남자는 여자를 발로 차고 다스릴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남자의 갈빗대로 만드셨습니다. 갈비뼈는 몸의 중심에 있습니다. 갈비뼈는 팔 아래 있어서 팔로 갈비뼈를 보호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살로 덮여 있습니다. 이처럼 남자는 여자를 잘 보호하여야 합니다. 하나님이 여자를 데려오니 그 고백이 무엇입니까?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 즉 여자라 칭하리라.” 이 고백은 최초의 사랑의 고백이요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순종이 결과입니다. 가정의 원칙은 사랑입니다. 에베소서 5:25을 보면 남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같이 하라.” 또 디도서 2:4에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저를 젊은 여자를 교훈하되 그 남편과 자녀를 사랑하며 근신하며 순진하며 집안일을 하며 선하며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게 하라.”

사랑이 무엇입니까? 고린도전서 13:4-7을 읽겠습니다.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일곱째, 가정 예배의 원칙입니다.

서양의 건축의 중심은 fireplace, 불 피우는 곳이 주택의 중심이 됩니다. 그리고 일본은 도꼬노마, 그림을 걸어놓은 곳이 있는 데, 그곳이 그 주택의 중심이 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주택 건축에는 중심이 없습니다. 우리는 주택의 중심이 없더라도 좋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가정의 중심이 꼭 있어야 합니다. 가정의 중심은 가정 예배입니다. 교회 안에 제단이 있지요? 예배를 드리는 중심, 십자가가 있습니다. 강대상이 있는 곳은 교회의 제단입니다. 우리는 선교단체로부터 출발하여 강대상의 중요성을 별로 느끼지 못합니다. 아이들이 올라와서 마이크를 부셔놓아도 부모들이 보고도 가만히 있어요? 제단을 중히 여겨야 합니다. 가정 예배를 드리는 곳, 찬송을 부르고, 성경을 읽고, 기도하고 예배를 드리는 가정 예배의 제단이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가정에서 이것을 귀히 여겨야 합니다. 가정 예배가 튼튼하면 모든 문제는 저절로 지켜지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 안에서의 결혼이야말로 에덴 중의 에덴입니다. 이 속에서 생명이 창조되고 행복이 만들어집니다. 이런 행복한 가정을 통해 자녀들이 결혼의 진정한 의미를 찾게 되고 가정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고 결혼의 소망을 갖게 됩니다. 찬송가 305장을 부르겠습니다. ♬사철에 봄바람 불어 잇고 하나님 아버지 모셨으니 믿음의 반석도 든든하다. 우리 집 즐거운 동산이라. 고마워라 임마누엘 예수만 섬기는 우리 집 고마워라 임마누엘 복되고 즐거운 하루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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