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 상 19:1-18(요절, 19:12)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

“또 지진 후에 불이 있으나 불 가운데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더니 불 후에 세미한 소리가 있는지라(19:12).”

-------------------------------------------------------------------------------------------

Hi, Bible Lover!
엘리야는 갈멜 산에서 바알을 섬기는 선지자들과 싸워 큰 승리를 얻었습니다. 그렇다면 당시 왕이었던 아합은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여호와 하나님께로 마음을 돌이키지 않았습니다. 한편 그의 아내 이세벨은 갈멜 산에서의 결과를 보고 듣고 곧장 전령을 엘리야에게 보내어 내일 너를 반드시 죽이고 말겠다고 통고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엘리야는 자기 생명을 보존하기 위하여 도망하여 광야로 피신하여 로뎀나무 아래 앉아서 죽기를 청하였습니다(3,4). 갈멜 산에서의 그 믿음과 용기는 간데 온데 없고 두려움과 슬픔과 고독과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져 있었습니다. 엘리야의 모습은 마치 찬란한 태양이 빛을 발하며 떠 있던 맑은 하늘이 갑자기 검은 구름으로 뒤덮여 있는 모습입니다. 갈멜산에서 하나님의 능력의 보좌를 움직인 기도의 용사, 믿음의 용사인 엘리야가 이럴 수 있을까?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는 목숨을 걸고 바알 선지자들과 싸웠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형편이 나아진 것도 없고, 거기다가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생명의 위협뿐이었습니다. 그렇다고 어떤 방향이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절망하고 신음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그를 어떻게 도우십니까?

첫째, 하나님을 그를 호렙산으로 인도하셨습니다(5-10).

천사가 로뎀나무 아래서 자고 있는 엘리야를 찾아가 어루만져 주셨습니다. 그리고 심히 배고파 지쳐 있는 엘리야를 숯불에 구운 떡과 물을 준비하여 먹여 주셨습니다(5). 엘리야는 밥을 맛있게 먹고 다시 누워서 잠을 잤습니다(6). 천사는 또 그를 찾아가 어루만지며 일어나서 먹으라고 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네가 길을 이기지 못하리라고 했습니다. 이에 엘리야가 일어나 먹고 마시고, 그 식물의 힘을 의지하여 사십주 사십야를 행하여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렀습니다(8).

그는 아직도 이세벨이 두려워 굴 속 깊이 들어가 숨어 있었습니다(9). 하나님은 사명을 잊어버리고 굴속에 숨어있는 엘리야에게 찾아오셔서 물으셨습니다.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9b)” 이 말씀은 ‘네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잘하는 일이라고 생각하느냐?’ ‘너는 하나님의 영광과 그의 백성의 유익을 위하여 시간을 사용하고 있느냐? 아니면 불평이나 하면서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것은 아니냐?’ ‘왜 사명의 땅인 이스라엘 땅에서 멀리 도망하여 여기 왔느냐?’ ‘네가 있어야 할 곳이 여기가 아닌데 왜 네가 여기 있느냐?’ ‘네가 여기에서 무엇을 하고 있느냐?’ 그 때 그는 다시 원망합니다.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열심이 특심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저희가 내 생명을 찾아 취하려 하나이다.” 후에 사도 바울은 이 말씀이 엘리야가 자기 백성을 송사한 것이라고 했습니다(롬12:12).

엘리야는 목숨을 걸고 여호와를 열심히 섬겼는데 왜 이스라엘은 계속 죄악 가운데 빠져 있는가? 이스라엘이 우상 숭배의 죄악으로 멸망해 가는 데 하나님은 왜 이스라엘을 돌아보시지 않으시는가? 하나님은 모든 선지자가 죽고 자기 혼자만 남았는데 나머지 그 한 사람도 죽이려고 하는 그 사람들을 왜 남겨 두시는가? 그는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자기와 함께 하시지 않는 것에 대해 섭섭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그를 호렙산으로 인도하셨습니다. 호렙은 어떤 곳입니까? 출애굽기 3장을 보면 호렙은 모세가 사명을 잊어버리고 장인 이드로의 집에서 양똥을 치며 의미없이 살 때 하나님께서 불꽃 가운데서 그에게 나타나셔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시키라는 사명을 주셨던 역사적인 곳입니다. 또 이곳은 시내 산으로 하나님의 사람 모세가 하나님으로부터 율법을 받은 곳이요, 또 친히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 뵈었던 곳입니다(출33:17-23). 이 산은 한마디로 말씀의 산, 하나님의 산입니다. 하나님은 원망하고 절망하는 그를 하나님의 산, 말씀의 산으로 인도하셨습니다. 왜냐하면 그가 원망하고 절망하는 것은 말씀을 생각하지 않고 자기 생각에 잠겨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지금까지 어떤 형편 속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앞세웠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이 임할 때까지 기다렸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말씀을 기초로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미지의 세계에 도전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상황에 대처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아합에게 가서 삼 년 반 동안 비가 오지 않을 것이라고 예고했습니다(17:1).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릿 시내로 가서 까마귀로부터 일용할 양식을 해결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사르밧 과부에게 가서 훈련을 받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일어나 아합에게 갔습니다(18:1). 이런 일련의 사건들은 지금보다 더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씀을 앞세우고 순종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엘리야는 지금도 아니고 내일 너의 생명을 취하리라는 말 한마디 듣고 ‘걸음아 나 살려라!’하고 광야를 하룻길에 달려가 로뎀나무 밑에서 죽기를 청하고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보다 먼저 행동을 앞세웠습니다. 먼저 자기감정을 앞세웠습니다.

믿는 사람들은 어떤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이 임할 때까지 기다릴 수 있어야 합니다. 시편 119:105을 보면 “주의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의 빛이니이다”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등이요 빛이기 때문에 말씀을 따라가면 실족함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에서 가나안으로 인도하실 때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인도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말씀을 따라 살기를 원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형편이 힘들고 어려울지라도 구름기둥과 불기둥을 보고 따라갔습니다. 그들은 아무리 좋은 형편이 전개되어도 구름기둥과 불기둥이 나타나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반면에 악천후 속에서도 구름기둥과 불기둥이 나타나면 움직였습니다. 이 때 그들은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믿는 사람들은 어떤 형편 속에 있더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말씀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자기감정을 앞세우고 감정을 따라 살면 반드시 실패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말씀을 따라 살면 결코 실패함이 없습니다. 따라서 삶이 어려울 때일수록 말씀을 가까이 해야 합니다. 여기에 삶의 승리가 있습니다.

둘째, 하나님은 세미한 음성으로 그를 찾아오셨습니다(11-21).

하나님은 원망하는 엘리야에게 직접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대신 산 위로 가서 주 앞에 서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크고 강한 바람과 지진과 불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가운데 계시지 않았습니다(11). 12절을 보겠습니다. “또 지진 후에 불이 있으나 불 가운데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더니 불 후에 세미한 소리가 있는지라.” 불 후에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이 들렸습니다. 하나님은 세미한 음성으로 그를 찾아 오셨습니다. 하나님은 불 속에서도 역사하시고, 바람을 통해서도 역사하십니다. 하나님은 갈멜 산에서 불을 내리셔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드러내셨습니다. 하나님은 바람을 일으키셔서 비를 내리심으로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셨습니다. 바람과 불, 지진은 초자연적인 현상들입니다. 하나님은 항상 이런 초자연적인 현상과 굉장한 사건을 통해서만 역사하시지 않습니다. 그런데 엘리야는 하나님의 역사는 굉장한 사건을 통해서, 초자연적으로 역사하는 줄로만 생각했습니다. 갈멜 산에서의 역사만이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가 혼자 있을 때 하나님은 계시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하여 엘리야는 고독을 느꼈고 절망하여야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세미한 음성으로 찾아오셔서 그를 만나 주셨습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하나님은 반드시 불과 지진과 바람으로만 역사하시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세미한 음성으로 역사하십니다. 하나님은 역사의 파고가 높으면 높을수록 세미한 음성으로 나타나십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무소불능하신 하나님, 권능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과 같이 그 능력을 과시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조용한 중에 역사하십니다. 하나님은 조용한 중에 말씀으로 역사하십니다. 하나님은 조용한 분이십니다.

우주를 맴돌고 있는 유성 소리가 들립니까? 지금도 조용히 지구가 공전과 자전을 계속합니다. 조용히 그 별들이 그 궤도를 돌아갑니다. 초저녁에 내리는 이슬 소리 들립니까? 저녁 이슬이 조용히 풀잎에 내립니다. 풀잎에 조용히 내린 이슬을 머금고 풀잎이 자라고 꽃이 피고 곡식이 익고 열매가 맺힙니다. 해가 떠오르는 소리가 들립니까? 태양은 아침에 조용히 동편 하늘에 떠서 조용히 서양으로 집니다. 달은 저녁에 조용히 떠서 저녁 하늘을 비춥니다. 조용히 계절은 추하추동으로 바뀝니다. 이것은 자연계뿐만 아니라 인간 역사에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조용히 아브라함을 부르셔서 인류 구원 역사를 시작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조용히 나일강변의 어린 아이 모세를 구원하시고 궁중에서 자라게 하여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건져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으로 인도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조용한 중에 이사야를 부르셔서 역사를 이루셨습니다. 하나님은 시대 시대마다 조용히 필요한 사람들을 부르셔서 하나님의 구원역사를 이루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신앙생활을 번쩍번쩍하고 굉장한 역사 속에서 찾으려 합니다. 불 받아라. 방언을 받아라. 앉은뱅이야 일어나라 등, 불을 받고 방언을 받고 썩은 이가 금니로 변화되는 초자연적인 역사가 일어나는 곳에만 하나님이 계신 것으로 생각합니다. 방언을 하지 못하면 하나님의 역사가 없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저는 필요에 따라 방언을 하지만 방언을 하는 것만이 성령의 역사가 있는 것만이 아닙니다. 사람들은 요란스럽고 신들린 사람처럼 믿음 생활을 해야만 하나님이 계신 줄로 생각하고 그래야 믿음이 좋은 것으로 생각합니다. 조용히 기도하고 말씀 공부하면 무엇인가 허전해 합니다. 그러나 이런 사람일수록 신앙이 안정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떠들썩한 부흥회에 참석하여 기쁨이 충만하다가 몇 날 못되어 깊은 실의와 좌절에 빠집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유별난 신앙생활을 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조용한 중에 세미한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십시오. 하나님은 세미한 음성으로 우리를 찾으십니다. 우리가 세미한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려면 세상의 시끄러운 소리를 차단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우리가 아침에 일어나 조용히 일용할 양식을 먹을 때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무릎을 꿇고 조용히 기도할 때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조용히 소감을 쓸 때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조용히 무릎을 꿇고 성경 말씀을 읽을 때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조용히 일대일 말씀을 공부할 때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중요하고 비밀스러운 말일수록 세미한 음성으로 말하지 않습니까? 하나님도 중요하고 비밀스럽고 신비한 말씀을 하실 때일수록 더욱 더 세미한 음성으로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놀라운 하나님의 놀라운 비전과 소망과 사명 등을 말씀하실 때 세미한 음성으로 찾아 오셔서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조용한 가운데 하나님의 복음을 통해서 우리의 심령을 새롭게 하고 우리의 마음을 감화시키고 순화시켜 온유하게 하시고 정직하게 하시고 겸손한 하나님의 자녀로 자라게 하십니다. 따라서 우리는 세미한 음성을 들을 수 있도록 하나님께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이사야서 42:1-4을 보면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이었습니다. “내가 붙드는 나의 종 내 마음에 기뻐하는 나의 택한 사람을 보라 내가 나의 신을 그에게 주었은즉 그가 이방에 공의를 베풀리라 그는 외치지 아니하며 목소리를 높이지 아니하며 그 소리를 거리에 들리게 아니하며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고,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며 그 소리로 거리에 들리게 아니하며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고 진리로 공의를 베풀 것이며 그는 쇠하지 아니하며 낙담하지 아니하고 세상에 공의를 세우기에 이르리니 섬들이 그 교훈을 앙망하리라.” 예수 그리스도는 세미한 음성입니다. 이런 말씀도 있습니다.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어린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과 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사53:7).” 예수 그리스도의 조용한 모습입니다.

예수님은 조용히 베들레헴의 말구유에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조용한 가운데 애굽으로 피난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조용한 가운데 나사렛에서 장성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조용한 가운데 세례를 받으시고, 예수님은 조용히 제자들을 부르셨습니다. 예수님은 조용히 갈릴리 해변을 다니시며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조용히 골고다 언덕에서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셨습니다. 예수님은 조요한 아침에 부활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전체는 조용한 하나님의 음성이었습니다.

교회는 어떤 의미에서 호렙산과 같습니다. 이 세상은 큰 바람이 붑니다. 세상이 금새 뒤집어질 것 같습니다. 어떤 때는 지진이 일어납니다. 어떤 때에는 불이 붙습니다. 이 세상은 격랑의 물결이 쉴새없이 불어 닥칩니다. 이런 중에도 우리는 교회에 나옵니다. 왜?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위해서입니다. 새벽 6시에, 저녁 9시에 기도하기 위해 교회로 나옵니다.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을 듣기 위해서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바쁘고 힘들수록 세미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데 힘쓰시기 바랍니다. 저는 지난 목요일 9시에 기도하다가 제 심령에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너는 왜 생각하지도 않던, 전혀 계획이 없던 홍머시 자매님이 인천 대학마을교회에 왜 오는지 아느냐?” 그리고 하나님은 속삭이셨습니다. “미국의 50개 주립 대학을 개척하라.” 이 비전은 몇 년에 저에게 주신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를 위해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아니 까마득하게 잊어버리고 있었습니다. 미국의 12가정 파송으로 만족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홍머시 자매님을 보내시므로 미국 50개 주에 선교사를 파송하도록 새롭게 세미한 음성으로 찾아오셨습니다.

지금 세계의 선교 전략은 미전도 전도 10/40 Window, 즉 위도 10-40도에 위치하고 있는 회교권과 힌두권, 그리고 불교권에 대한 선교의 전략에서 frontier mission으로 바뀌어져가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과거에 선교를 담당했던 미국이나 영국, 프랑스, 캐나다, 독일 등에 선교사를 파송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과거 선교 주체국이 지금 회교권화 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는 각 마을마다 미국의 몇 개주씩 나누어서 기도하여 2015년까지 50개주에 선교사를 파송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교회가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성장해야 합니다. 아멘.

셋째, 하나님은 그에에 사명을 회복시켜 주셨습니다(15).

초자연적인 역사에 재미를 붙인 엘리야는 세미한 음성으로 나타나신 하나님이 시원치 않았습니다. 그래서 계속하여 자기 형편을 말하였습니다(14). 이 때 하나님은 이전보다 더 분명하게 엘리야가 할 일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네 길을 돌이켜 광야로 말미암아 다메섹에 가서(15a)” 하나님은 세미한 음성으로 네 길을 돌이켜 다메섹으로 가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네가 온 길로 돌아가라는 것입니다. ‘네 길을 돌이켜 가라’는 것은 성경의 핵심 주제입니다. ‘우상 숭배의 죄악에서 돌이켜 하나님을 섬기라.’ ‘여로보암의 길에서 돌이켜 다윗의 길로 가라.’ ‘때가 찾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회개는 돌이키는 것입니다. 이처럼 돌이켜 하나님께로 가라는 것은 성경의 주제입니다.

우리는 돌이켜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합니다. 영적인 침체에서, 낙심의 늪에서 돌이켜 우리 주님만을 바라보고 다시 하나님께로 가야 합니다. 사명을 버리고 로뎀나무 밑에서 잠을 자던 삶에서 돌이켜 사명의 땅으로 가야 합니다. 첫 사랑으로 돌아가야 합니다(계 2:4,5). 하나님은 구체적으로 엘리야가 할 사명을 말씀하셨습니다. 그 사명은 예후와 하사엘에게 기름을 붓고, 엘리사를 후계자로 삼는 것이었습니다. 엘리야는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을 듣고 즉시 돌이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밧의 아들 엘리사를 찾아가 후계자로 세웠습니다.

이 시대 우리에게 주신 사명이 무엇입니까? 이 시대 우리 교회에 주신 사명이 무엇입니까? 잃어버린 하나님의 형상과 사명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이 무엇입니까? 사랑입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13장에서 서로 사랑하라는 유언을 남기시고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사랑하시되 독생자 예수님을 보내시기까지 사랑하셨습니다. 성경의 주제는 사랑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잃어버린 이 사랑을 회복하고 또 하나님의 사랑을 잃어버리고 방황하는 이웃을 찾아가 하나님의 사랑을 회복하도록 도와야 합니다. 주님은 이를 위해 승천 직전에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는 유언을 남기셨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유언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서로 사랑하라는 것과 또 하나는 땅 끝까지 하나님의 사랑의 복음을 전하라는 것입니다.

지금 한국 교회는 각종 프로그램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불신자 전도가 없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프로그램만 요란하지 복음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기독교 인구가 점점 감소하고 있습니다. 대형 교회가 부흥하는 것은 불신자가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어서 부흥하는 하는 것이 아니라 신자의 수평이동입니다. 이것은 부흥이 아니라 이동입니다. 2005년 11월 1일 통계청 자료를 보면 4700만명 인구에 개신교 인구가 861만 명입니다. 10년 전과 비교해보면 전체 인구 중 1.4% 감소한 반면에 천주교는 4.3%가 증가한 514명입니다. 10년 전만 해도 기독교 인구가 1,200만 명이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28.25%가 감소했다는 결론입니다. 이렇게 나가다가는 유럽의 교회를 닮지 말라는 법이 없습니다. 이것은 우리 교회 또한 예외가 아닙니다. 1990년대만 해도 우리 교회는 젊은이들로 가득했습니다. 일대일 성경공부와 찬송 소리와 기도 소리로 넘쳤습니다. 그런데 예배당에 빈자리가 너무나 많습니다. 이런 현 시점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입니까? 다음 세대를 열 제자들을 양성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우리가 큰일을 해도 다음 세대에 열고 책임질 지도자를 양성하지 않으면 단절되게 되고, 단절되면 모든 역사는 끝납니다. 그래서 주님은 마지막 유언으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하지 않아 제자를 양성하지 않으면 우리나라 또한 회교 국가가 되지 말라는 법 없습니다. 우리는 다음 세대를 열고 다음 세대를 책임질 제자들을 양성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우리는 이 시간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을 듣습니다.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을 듣고 사명을 새롭게 하기를 기도합니다. 세미한 음성을 듣고 전도의 열정이 회복되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을 듣고 다음 세대를 책임질 제자 양성에 힘쓰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엮인글 :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35 예배자의 영성 관리자 2012-07-11 2728
34 히스기야의 영성 관리자 2012-07-11 2860
33 요시야의 영성 관리자 2012-07-11 3301
32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관리자 2012-07-11 3707
31 넘어질까 조심하라 관리자 2012-07-11 3844
» 세미한 하나님의 음성 세미한 하나님의 음성 관리자 2012-07-11 3059
29 십자가의 도 관리자 2012-07-11 2675
28 성령의 불길이 타오르게 하소서 관리자 2012-07-11 3010
27 근신하라 깨어라 관리자 2012-07-11 4548
26 가정의 기본 원칙 관리자 2012-07-11 2478
25 예수님의 최대 관심이 무엇일까요? 관리자 2012-07-11 2794
24 2006년 부활메시지 관리자 2012-07-11 2531
23 가상칠언 관리자 2012-07-11 2767
22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가노라 관리자 2012-07-11 3600
21 비전의 사람, 사도 바울 관리자 2012-07-11 2709
20 태양아, 기브온 위에 머무르라! 관리자 2012-07-11 3731
19 사도행전제15강(말씀과 기도에 전무한 사도들) 관리자 2012-07-11 3189
18 사도행전제14강(가서 이 생명의 말씀을 다 말하라) 관리자 2012-07-11 2904
17 사도행전제13강(성령을 속인 아나니아와 삽비라) 관리자 2012-07-11 3108
16 사도행전제12강(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관리자 2012-07-11 3195

일용할 양식

예배 안내

  • 주일 오전 예배 - 오전 11:00
  • 주일 오후 예배 - 오후 3:30
  • 어린이 예배 - 오전 11:00

대학마을교회 개척교회

우남식 목사님의 저서


    전도서에서 만난 복음
    (퍼플,2023)

      요한복음에서 만난 예수님
      (퍼플,2022)

        요한계시록에서 만난 복음
        (지식과 감성,2021)

          예레미야에서 만난 복음
          (지식과감성,2021)

            데살로니가전·후서에서 만난 복음
            (지식과감성,2020)

              이사야에서 만난 복음
              (지식과감성,2019)

                대학선교와 세계선교를 향한 권서행전
                (지식과감성,2019)

                  야고보서에서 만난 복음
                  (지식과감성,2017)

                    옥중서신에서 만난 복음
                    (지식과감성,2016)

                      행복과 긍정심리
                      (시그마 프레스,2015)

                        성심리
                        (시그마 프레스,2015)

                          마가복음에서 만난 예수님
                          (킹덤북스,2014)

                            사도행전에서 만난 복음
                            (생명의말씀사,2013)

                              로마서에서 만난 복음
                              (생명의말씀사,2012)

                                창세기에서 만난 복음
                                (생명의말씀사,2011)

                                    저서 구입연락처

                                    • 010-8215-7966
                                      안은경
                                    • 우리은행
                                      1006-601-218050
                                      대학마을교회

                                    Tiananmen Square protests, China Democracy, 天安門 天安门 法輪功 李洪志 Free Tibet 劉曉波, 热比娅·卡德尔, 熱比婭·卡德爾