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권하는 사랑

조회 수 3015 추천 수 0 2012.07.11 02:25:35
누가복음 14:15-24

강권하는 사랑

“주인이 종에게 이르되 길과 산울 가로 나가서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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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치는 행복과 기쁨의 상징입니다. 거기에는 춤과 음악과 갖가지 맛있는 음식이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잔치를 베푸는 사람이나, 초청된 사람이나 모두 기쁘고 즐겁습니다. 그래서 성경에 잔치에 관한 기사가 많이 나옵니다. 예수님도 잔치를 좋아하셨습니다. 공생애 첫 번으로 가신 곳도 가나 혼인 잔치집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기쁨으로 잔치에 참석하여 마음껏 축복해 주셨습니다. 성경에서의 잔치는 천국의 모형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구원의 잔치인 천국 잔치를 마련하시고 우리를 초청하십니다. 그리고 빈자리를 강권하여 채워 모두가 구원의 기쁨을 누리기를 원하십니다. 이 시간에 우리를 천국 잔치에 초청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기를 기도합니다.

첫째, 모든 것이 준비되었나이다(15-17)

1절을 보면 안식일에 예수님께서 한 바리새인의 두령의 집에 초대를 받아 가셨습니다. 바리새인의 두령이라고 한 것을 보면 유명한 바리새인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는 각계 각층의 인사들을 초대하여 성대한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안식일에 잔치를 베풀고 남을 초대하는 관습이 있었습니다. 잔치 전 날에 식사를 준비하여 따뜻하게 보관했다가 잔치를 베풉니다. 그런데 그들은 예수님을 초청해 놓고 예수님을 송사하고자 했습니다. 이런 분위기에서는 조용히 식사를 빨리 끝내고 나오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적극적으로 도움이 필요한 자들을 도우셨습니다. 예수님은 몸이 붓는 고창병 환자를 고쳐 주셨습니다(2-6). 초청을 받은 사람들이 서로 높은 자리에 앉으려고 신경전을 벌이는 것을 보시고 겸손의 도리를 가르쳐 주셨습니다(7-11). 그리고 잔치를 베풀려거든 갚을 것이 있는 가난하고 병둘고 소외된 사람들을 초청하도록 하셨습니다(12-14). 그러할 때에 의인들이 부활할 때에 상급을 받게 된다고 하셨습니다(14). 예수께서 의인들이 부활과 그 날에 받을 축복에 대해 말씀하시자 함께 음식을 먹는 사람 중 하나가 감탄했습니다. “무릇 하나님의 나라에서 떡을 먹는 자는 복되도다(15).” 그는 자기가 부활 시에 받을 축복을 생각하며 행복해 했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한 비유로 누가 천국 잔치에 참여할 수 있는가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어떤 사람이 큰 잔치를 베풀고 많은 사람을 청했습니다(16). ‘큰 잔치’ 라고 한 것을 보면 보통 잔치가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22:2절을 보면 어떤 임금이 베푼 황태자의 혼인 잔치라고 했습니다. 황태자는 왕권을 계승할 자이기 때문에 임금 편에서나, 백성들 편에서나 매우 중요한 잔치입니다. 여기에는 아무나 참석할 수 없습니다. 임금은 자격이 있는 사람만 골라서 초청장을 보냈습니다. 유대인들의 손님 초청 방법은 잔치가 있기 1년 전에 초청장을 먼저 보냅니다. 그리고 잔치를 다 준비를 해 놓은 후에 다시 초청에 응한 사람들에게 종을 보내어 오도록 초청합니다. 17절을 읽겠습니다. “잔치할 시간에 그 청하였던 자들에게 종을 보내어 가로되 오소서, 모든 것이 준비되었나이다.” 예로부터 궁중의 요리는 맛이 있기로 유명합니다. 임금은 궁중의 일류 요리사들로 하여금 갖가지 음식을 준비토록 했습니다. 임금은 살진 짐승을 잡아 바베큐를 만들고, 궁중 전골, 궁중 탕수육, 궁중 삼계탕, 궁중 해삼탕, 궁중 팔보채, 궁중 양잠피, 궁중 멍멍탕, 그리고 곰 발바닥 요리와 각종 과일 등 진귀한 음식들을 풍성하게 준비했습니다. 그리고 다양한 축제도 준비했습니다.

여기에서 주인은 하나님, 잔치는 천국 잔치로 구원의 잔치, 생명의 잔치, 은혜와 사랑의 잔치, 소망과 기쁨의 잔치입니다. 계시록 19:9절은 보면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입은 자들이 복이 있도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구원의 천국 잔치를 조금도 부족함이 없이 준비해 놓으시고 우리를 초청하십니다. 하나님은 인류가 죄를 짓자 마자 곧 메시야를 보내시고자 약속하셨습니다(창3:15). 많은 선지자들을 보내어 메시야 탄생을 알렸습니다. 때가 되자 약속대로 동정녀 마리아의 몸을 빌어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죄로 병든 인생들을 섬기시고, 마침내는 모든 인류의 죄짐을 지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3일 만에 죽음의 권세를 이기고 부활하심으로 천국문을 활짝 여셨습니다.

이로 인해 나의 내면을 괴롭히던 죄와 죽음의 문제가 해결되었습니다. 허물과 죄로 인해 죽었던 우리가 살아났습니다. 죄 사함과 영생을 얻게 되었습니다. 부르심의 소망과 영광의 기업을 얻게 되었습니다.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받았습니다(엡1:3).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산 소망을 소유하게 되었습니다(벧전1:3,4). 날마다 풍성한 생명의 꼴을 먹게 되었습니다. 기도하면 응답하여 주신다는 약속을 받았습니다. 은혜와 지혜와 비전이 풍성합니다. 뿐만 아니라 어두움에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는 복음의 증인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이 베푸시는 구원의 잔치, 생명의 잔치는 부족함이 없습니다. 생명도 풍성하고, 은혜도 풍성하고, 사랑도 풍성하고, 소망도 풍성합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모든 것을 준비해 놓으시고 초청하십니다. “오소서, 모든 것이 준비되었나이다.” 이 초청의 음성을 듣고 나아가기만 하면 이런 신령한 복을 받습니다.

둘째, 다 일치하게 사양하여(18-20)

주인은 청함을 받은 사람들이 거절하리라고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이미 오기로 약속된 사람들입니다. 임금의 초청을 받은 큰 은총과 특권을 받은 자들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모두가 거절했습니다. 그러면 그들이 왜 한결 같이 사양하였을까요?

18-20절을 보겠습니다. “하나는 가로되 나는 밭을 샀으매 불가불 나가 보아야 하겠으니 청컨대 나를 용서하도록 하라 하고, 또 하나는 가로되 나는 소 다섯 겨리를 샀으매 시험하러 가니 청컨대 나를 용서하도록 하라 하고, 또 하나는 가로되 나는 장가들었으니 그러므로 가지 못하겠노라 하는지라.” 첫 번째와 두 번째 사람은 ‘불가불 나를 용서하라, 나를 용서하라’하며 정중하게 사양했습니다. 그들은 겉으로 보면 겸손한 것 같이 보입니다. 그러나 이는 정성껏 준비한 주인에게 큰 모욕이 아닐 수 없습니다. 특히 잔치에 초대를 한 사람이 임금이라고 할 때 이는 더욱 더 합니다. 그들의 이유는 이유가 될 수 없습니다. 임금의 잔치를 피해서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밭을 사고, 구입한 소를 시험하고, 장가가는 문제는 그 날에 꼭 하지 않아도 됩니다. 밭을 산 사람이 알아보지도 않고 살 사람이 어디에 있습니까? 사람들은 몇 백만 원 전세를 얻으려고 해도 등기부 등본을 열람하고 이상이 없을 때에 전세를 얻는데, 부동산을 매입하는데 가보지 않고 샀단 말입니까? 또 소를 다섯 겨리를 사는데 한 번도 시험안 하고 샀단 말입니까? 중고 티코를 사더라도 운전해보고 사지 않습니까? 장가가는 문제도 그 날을 피해서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고 많은 날 중에 그날 꼭 결혼을 해야 합니까?

여기에서 잔치에 거절한 사람들은 바리새인들과 유대인들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초청을 거절했습니다. 그들이 이 핑계 저 핑계를 대고 사양하고 있는 표면적 이유는 사고팔고, 시집가고 장가가는 일 들인 것 같습니다. 그들의 문제는 물질문제와 개인문제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근본 이유는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치 않는 교만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고,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습니다. 그들은 하나님 두기를 싫어했습니다. 그들은 자기 일에는 관심이 많았지만 영적인 일에는 무관심했습니다. 그들은 천국잔치의 성격에 대해 무지했습니다. 그들은 상대방에 대한 배려가 없는 자기중심성, 극도의 이기적이었습니다. 현재 잘 먹고 잘 살면 되었지 시간도 없는데 무슨 임금의 잔치에 참석한단 말인가 하며 임금을 무시했습니다. 그들은 임금의 은혜를 알지 못했습니다.
오늘날도 컴퓨터와 운전과 영어를 가르쳐 준다면 정신없이 몰려옵니다. 사람들은 아르바이트에 생명을 겁니다. 그것도 학비를 벌기 위한 아르바이트가 아니라, 유흥비와 바캉스를 떠나기 위한 아르바이트입니다. 사람들은 게임, 비디오, 만화방에서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앉아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 공부를 하자고 하면 초청에 응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노아 시대처럼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를 가는 데만 관심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자기 영혼을 죽이고 파괴하는 범죄 행위입니다. 하나님은 노하기를 더디하시고 그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이 풍성하십니다. 그러나 자기 생각을 고집하며 회개치 않을 때 하나님은 반드시 진노하십니다. 사랑을 배반하고 은혜를 모르는 자들은 엄히 심판하십니다.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 심판의 하나님이 되십니다.

셋째, 내 집을 채우라(21-24)

21절을 보면 종이 이 사실을 알렸습니다. 이 때 주인은 노발대발했습니다. 이제 그들의 거절로 잔치는 이루어질 수 없게 되어 포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잔치는 음식도 중요하지만 하객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결혼식 날 신부들은 하객에 관심이 많다고 합니다. 그러나 주인은 이를 포기치 않았습니다. 사람들이 안 온다고 낙담하거나 잔치를 괜히 벌려 놨다고 후회하지 않았습니다. 주인은 종들에게 빨리 시내의 거리와 골목으로 나가서 가난한 자들과 병신들과 소경들과 저는 자들을 빨리 데려 오라고 명했습니다. 주인은 사람들의 반응이 어떠하든지 그 잔치를 계획대로 열었습니다.

또한 빨리 가서 데려 오라고 했습니다. 이는 구원의 잔치는 연기될 수 없고, 시급히 이루어져야 함을 말해 줍니다. 또 하나님의 역사는 인간들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과 뜻대로 이루어 나아간다는 사실입니다. 구원의 복음은 영적 생명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에 빨리 전해야 합니다. 지금도 구원의 복음을 듣지 못해 죽어가는 영혼이 하루에 12만 명이나 된다고 합니다. 그들이 언제 죽을지 누구도 모릅니다. 그러므로 한 사람이라도 구원할 수 있도록 빨리 나가서 전해야 합니다. 무디가 하루는 피곤하여 복음 전하는 것을 내일로 미루었습니다. 그런데 그날에 도시가 화재로 많은 인명피해를 입었습니다. 그는 그 후에 회개하고 밥먹는 것은 미루었지만 복음 전하는 것만큼은 절대로 미루지 않았다고 합니다.

여기에서 가난한 자들, 병신들, 소경들, 저는 자들은 예수님의 제자들과 같이 가난한 자들입니다. 세리와 창기들과 같이 율법적으로 정죄를 받은 자들입니다. 그들은 천국 잔치에 참예할 수 없는 자들입니다. 그들은 가난하여 소를 사고 밭을 사고 팔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시집 장가도 갈 수 없는 문제 많은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기 때문에 자기 의가 없고 겸손한 자들입니다. 그들은 소외된 사람들입니다. 누구의 관심의 대상이 될 수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사랑이 필요한 자들입니다. 그들은 목자 없는 양과 같이 유리방황하는 자들입니다. 문둥이처럼 더럽고 추한 자들입니다. 이기심과 탐욕과 정욕으로 내면이 병든 자들입니다. 허무와 죄의식과 두려움과 무의미로 고통하던 자들입니다. 꿈도 비전도 없는 자들입니다.

그들을 초청하여 채웠지만 아직도 자리가 남았습니다. 이 때 주인은 종들에게 무엇이라고 합니까? 23 절을 읽겠습니다. “주인이 종에게 이르되 길과 산울 가로 나가서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 주인은 빈자리를 그냥 두기를 원치 않으셨습니다. 강권하여 한 사람이라도 데려다가 자리를 채우라고 명했습니다. 이 비유에서 길과 산울 가는 성 밖에서 사는 이방인을 말합니다. 그들은 구원의 소식을 듣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영적으로 무지한 사람들입니다. 우상과 흑암의 권세 아래 살던 자들입니다. 그들은 본래 하나님 나라의 잔치에 참예할 수 없는 자들입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이 교만하고 불순종하여 구원이 이방인에게로 이르게 되었습니다(롬11:11).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은 누구든지 구원을 받습니다(롬10:11,12).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도 없고 소망도 없던 이방인들이었습니다. 우리는 죄와 허물로 이미 죽었던 자들이었습니다. 세상 풍속을 좇고 하나님께 불순종하던 불순종의 자식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던 자들이었습니다. 육체의 욕심을 따라 살던 본질상 진노의 자식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은 크신 사랑으로 우리를 살리셨습니다. 하나님은 십자가의 보배로운 피로 구원하여 죄사함의 은총을 베푸시고 하나님 보좌에 우리 주님과 함께 거하게 되었습니다. 장차 주님께서 영광과 승리로 이 땅에 오실 때에 썩을 몸이 신령한 몸으로 부활하여 영과 육이 함께 만나게 됩니다. 이는 십자가의 은혜입니다(엡2:1-5).

세상에는 겉으로는 멀쩡하지만 영적으로 병든 사람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이들은 갈 길을 알지 못해 방황합니다. 천국 잔치를 알지 못해 쾌락을 좇아 삽니다. 좌절하여 소망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자들을 하나님의 잔치에 초청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생명과 구원의 잔치를 배설하고 우리를 초청하십니다. 이 잔치는 생명의 잔치요, 구원의 잔치입니다. 세상에 많은 잔치가 있습니다. 그러나 영혼을 소생시키고 생명과 기쁨과 비전이 충만한 잔치가 어디 있단 말입니까? 삶의 의미와 목적을 주고, 삶의 용기와 희망을 주는 잔치가 어디에 있단 말입니까? 우리를 괴롭히는 죄와 죽음의 문제를 해결해 주는 잔치가 어디에 있단 말입니까? 상한 마음을 부둥켜 앉고 살아가는 자들에게 상한 마음이 치유되고 회복되는 잔치가 어디 있단 말입니까?

하나님은 우리에게 천국 잔치를 배설하시고 강권하여 내 집을 채우라고 하십니다. 우리는 강권하여 내 집을 채우라고 하시는 하나님의 안타까워하는 심정을 배우게 됩니다. 사실 하나님은 아쉬울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 주님은 강권해서라도 데리고 와서 나의 집을 채우라고 하십니다. ‘강권하여 채우라’ 는 것은 한 사람이라도 구원하기를 원하시는 주님의 소원이요, 마음입니다. 빈자리는 한 영혼이 구원을 받고 영생을 얻을 수 있는 귀한 자리입니다. 이는 구원과 심판이 달려 있는 아주 중요한 자리입니다. 그래서 강권하여 채우라고 명령하십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당장 심판하지 않으심은 한 사람이라도 더 구원하고자 하시는 사랑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한 사람이라도 더 구원하시고자 심판을 유보하십니다. 사도 바울은 강권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덧입고 아시아와 유럽과 타 문화권인 스페인까지 복음을 증거했습니다. 이방인들을 믿어 순종케 하기까지 모든 눈물과 겸손으로 섬겼습니다(행20:19). 강권하여 하나님의 집을 채우고자 하는 뜨거운 열정이 넘쳤기 때문에 그는 복음을 전파한 것입니다. 영어 성경에 보면 강권하면 채우게 될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는 말씀을 전하기만 하면 천국 잔치는 가득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채우려고 노력할 것이 아니라 말씀을 전하면 됩니다.

한국 교회는 1945년 해방 이후 양적으로 급성장하여 세계에 괄목할 만한 교세로 성장했습니다. 그래서 세계 최대의 대형 교회, 세계 10대 대형 교회의 절반이 한국에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한국 교회는 88올림픽 이후부터 성장이 멈추었다가 90년대에 와서는 4%가 줄었다가 2005년에 와서는 20%정도 감소되었습니다. 많은 학자들이 20년 후에는 미국 교회와 같이 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는 먹고 마시고, 사고팔고, 장가가고, 차사고, 차타고 노는 데에만 관심이 있지 영적인 데에 관심이 없습니다. 한동안 World Cup 축구로 넋이 빠져 있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한국 교회의 성장 둔화의 원인을 여러 가지 이유를 들어 설명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성장의 자만심과 둘째는 선교 중심으로부터의 이탈, 그리고 셋째는 문화의 충격을 들고 있습니다. 과학의 발달과 기술로 인한 편리주의와 다양한 문화의 도전과 충격으로 인해 탈신앙화, 탈교회화, 탈윤리화의 길로 치닫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중에 많은 사람들은 세계 선교 초유의 성장이라는 포만감에 젖어 전도를 안 한다는 데서 그 원인을 찾고 있습니다. 이는 우리도 예외는 아닙니다. 우리는 몇 년 전만 해도 일대일 200명은 기본이었습니다. 그리고 2학년 이상은 양을 치고, 졸업한 목자님들은 퇴근하자마자 교회에 와서 양들을 돕고, 자매 학사님들은 애기를 맡기고 양을 돕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요즈음은 그러하지 못합니다. 그러니 교회는 텅텅 비어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전도하지 않는 것은 어떤 이유로도 변명할 수 없습니다. 이제 우리는 결단을 해야 합니다. 교회를 세놓을 것인가, 아니면 전도로 채울 것인가, 캠퍼스를 살릴 것인가, 아니면 내버려 둘 것인가, 지성계에 영향을 끼칠 것인가, 아니면 영향을 받을 것인가, 직장에 영향력을 끼칠 것인가, 아니면 영향을 받을 것인가,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유언적인 말씀이 무엇입니까? 복음서의 끝장을 보면 말씀을 전하라는 것입니다. 너희는 말씀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복음을 전파하라, 너희는 예루살렘으로부터 시작한 복음을 모든 족속에게 전파하라, 어린 양을 먹이라는 것입니다(마28:20, 막16:15, 눅24:47, 요21:15). 그리고 사도행전 1:8절을 보면 땅 끝까지 이르러 복음을 전파하라는 것입니다. 사도들은 이 명령에 순종하여 그 많은 핍박을 받으면서도 말씀을 전파했습니다(행2:42,5:20,42,6:4). 목을 내놓고 말씀을 전파했습니다. 사도 바울도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가는 곳마다 쉼 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제자 디모데에게 엄히 명했습니다. “하나님 앞과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의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얻든지 항상 힘쓰라(딤후4:1,2a).” 에스겔은 “그들은 심히 패역한 자라 듣든지 아니 듣든지 너는 내 말로 고할지어다(겔2:7)” 했습니다. 미국은 독립 전쟁과 불란서 혁명의 여파인 인본주의와 이성주의의 영향으로 영적으로나 도덕적으로 空洞化 현상을 맞이한 적이 있습니다. 그 때 S.V.M.은 ‘우리의 손으로 우리의 세대에 세계 복음화’를 외치며 열심히 복음을 전파했습니다. 그 때 조상들의 위대한 복음 신앙을 회복할 수 있었으며, 위기로부터 미국을 건질 수 있었습니다. 믿음과 구원의 역사는 들음에서 나고,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을 전파함으로 이루어집니다(롬10:17). 예수님의 지상명령에 순종하여 팔을 걷어 올리고 나아가 전도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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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ananmen Square protests, China Democracy, 天安門 天安门 法輪功 李洪志 Free Tibet 劉曉波, 热比娅·卡德尔, 熱比婭·卡德爾