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이란 무엇인가

조회 수 2898 추천 수 0 2012.07.11 05:56:00
창세기 2:18-25, 요절 2:24

결혼이란 무엇인가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찌로다(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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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우리나라의 심각한 문제 중의 하나는 가정이 무너진다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결혼을 하지 않는 다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결혼을 하지만 아기를 낳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로 인해 10년 후에는 노령인구의 팽창으로 국가가 노후보장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되며 2050년에는 한국 인구가 4,000만 이하로 줄어드는 반면에 인도는 16억 명, 중국은 14억 명으로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언어보존의 인구 마지노선이 1억 명 이상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70년 후에는 영어가 세계 공용어가 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2050년에는 560년을 자랑하는 한글이 사라질 위기에 이르게 됩니다. 언어가 사라진다는 것은 문화가 사라진다는 것이요 문화가 사라진다는 민족의 말살을 뜻합니다. 이제 우리는 14억 명의 중국과 경쟁하여야 하고 자원이 없어 인력과 두뇌수출 밖에 없는 우리로서는 심각한 문제라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런 시점에서 우리는 결혼의 중요성을 깨닫고 결혼을 사모하기를 바라고 결혼하신 분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가정으로 가꾸시기를 기도합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 치고 믿음의 결혼을 해야 한다고 하지 않는 사람들은 한 사람도 없을 만큼 믿음의 결혼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믿음의 결혼이 무엇인지조차도 모르면서 믿음의 결혼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믿음의 결혼이란 무엇입니까? 먼저 결혼의 사회학적 정의를 보면 “결혼이란 성인 남녀가 그들이 거주하는 사회의 법률에 따라 정서적 관계와 서로에 대한 법적 책임, 공적인 의식을 갖는 하나의 합의다”라고 했습니다. 이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첫째로 결혼은 정서의 관계이다. 둘째로 결혼은 일부일처의 관계이다. 셋째로 결혼은 법적 책임의 관계이다. 넷째로 결혼은 자녀의 적출(嫡出)을 보장하는 관계이다. 다섯째로 결혼은 공적 의식의 관계이다”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성경에서 말하는 결혼이란 무엇입니까?

첫째, 여자의 위치는 돕는 배필입니다.

창세기 2:18절을 보겠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사람의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여기에서 ‘돕는 배필’이란 suitable helper mate로, 가장 적합한 동역자란 뜻입니다. 그리고 ‘지으리라’란 I will make로, 하나님의 의지입니다. 하나님은 의지를 가지고 여자를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아담에게 돕는 배필이 필요함을 아시고 여자를 창조하셨습니다. 이를 볼 때에 여자의 위치는 ‘바라는 배필’이 아니라 ‘돕는 배필’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아내는 남편으로부터 도움을 받기 위해 바라기보다 남편의 부족한 점을 찾아 돕는 배필이 되어야 합니다. 따라서 아내들이여! 남편에게 요구보다 남편의 부족한 것을 채워주는 helper가 되십시오. 잠언 31:10절에 보면 “누가 현숙한 여인을 찾아 얻겠느냐 그 값은 진주보다 더하니라 그런 자의 남편의 마음은 그를 믿나니 산업이 핍절치 아니하겠으며 그러한 자는 살아있는 동안에 그 남편에게 선을 행하고 악을 행치 아니하는 자라”고 현숙한 여인을 축복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돕는다고 무조건 형제를 지지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형제에게 주신 사명이 무엇인가를 잘 알고 그 사명을 잘 감당하도록 돕는 것을 말합니다. 남자들은 여자들이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따라 그 삶이 달라집니다. 그래서 어떤 사건 뒤에는 반드시 여자가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남자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두 여자의 손을 거친다는 말이 있습니다. 하나의 손은 훌륭한 어머니이고, 또 하나는 어진 아내의 손입니다. 위대한 형제들 뒤에는 위대한 여인들이 반드시 있습니다. 사무엘의 뒤에는 기도하는 한나가 있고 성 어거스틴의 뒤에는 기도의 어머니 모니카가 있고 요한 웨슬리의 뒤에 또한 기도의 어머니 수잔나가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베드로는 여자들이 겉모양보다 속사람을 아름답게 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아내 된 자들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복하라. 이는 혹 도를 순종치 않는 자라도 말로 말미암지 않고 그 아내의 행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게 하려 함이니 너희의 두려워하며 정결한 행위를 봄이라. 너희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하지 말고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라(벧전3:1-4).”

자동차 왕 헨리 포드가 1883년에 동네 사람들의 비웃음을 받으면서도 끝까지 자동차 발명에 몰두하여 성공할 수 있었던 것도 모두 그의 아내의 헌신적인 믿음과 격려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날마다 10시간씩 일하고 집에 돌아와서 낡은 오두막집에 틀어박혀 새로운 엔진의 제작을 위해 밤이 깊도록 몰두했습니다. 아무도 그를 인정해 주지 않았습니다. 가난한 농부였던 그의 아버지도 쓸데없는 데 시간을 낭비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단 한 사람, 그의 아내만은 그를 믿었습니다. 집안 일이 끝나면 반드시 그 오두막집에 나타나 남편을 도왔습니다. 그래서 그는 아내를 ‘나의 信者’라고 불렀습니다. 아내의 도움으로 그는 드디어 자동차를 만들어 내었습니다. 미국에 있는 그의 기념관에 가면 이런 글귀가 있다고 합니다. “헨리 포드는 꿈꾸는 자이고, 그의 아내는 믿음의 사람이다.” 그리고 50년 후, 포드는 다시 태어난다면 무엇이 되고 싶으냐의 기자의 질문에 이렇게 답변했다고 합니다. “내 아내와 같이 있을 수만 있다면 무엇으로 태어나건 전혀 개의치 않겠오.”

둘째, 결혼은 하나님의 주권입니다.

21절을 보겠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고” 하나님은 남자의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셨습니다. 이는 큰 의미가 있습니다. 여자를 남자의 머리로 만들었다면 남자의 브레인이 되어 형제를 좌지우지 할 것입니다. 또한 발가락으로 만들었다면 남자는 여자를 발로 다스릴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남자의 갈빗대로 만드셨습니다. 갈빗대는 우리 몸의 중요한 기관 五臟(오장)인 심장, 간장, 폐장, 신장, 위장을 보호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남자의 갈비뼈로 여자를 만드셨다는 것은 남자는 여자를 보호하라는 깊은 뜻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다시 말해 서로 사랑하고 서로 돕고 서로 귀히 여기도록 함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여자를 만드실 때에 아담은 전혀 관여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일방적인 주권가운데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이 여자를 만들어 남자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그의 감격이 어떠합니까?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 즉 여자라 칭하리라.” 이 고백은 최초의 사랑의 고백이요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순종이 결과입니다. 사람들은 결혼만큼은 내가 골라서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결혼은 나의 의지나 뜻대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섭리와 주권 없이는 결코 결혼이 성립이 되지 않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절대 주권에 맡기고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주권에 맡기고 기도할 때에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가장 적합한 배필을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 맡기고 기도할 때에 후회함이 없습니다(롬11:29).

창세기 24:7을 보면 아브라함이 이삭의 결혼을 하나님께 맡기는 믿음이 나옵니다. 아브라함은 그의 늙은 종에게 고향에 가서 이삭의 아내감을 찾아 데리고 오도록 했습니다. 대개 사람들은 결혼은 그 지방에서 하고 늙으면 고향으로 가서 묻히는 것이 상식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반대로 자녀의 혼사 문제는 고향에서 찾고 묻히는 것은 가나안에 묻히고자 했습니다. 이는 가나안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가나안은 우상과 쾌락이 난무하는 곳입니다. 반면에 고향에는 셋의 후예들로 믿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가나안의 명문가문의 규수와 결혼하는 것이 고향의 시골 처녀와 결혼하는 것보다 훨씬 유익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좀 부족하더라도 믿는 자부를 얻고자 하였습니다.

사명을 받은 아브라함의 종은 참으로 난처했습니다. 사진 한 장 보지 않고 늙은이를 따라 올 자가 있겠는가? 그래서 그는 이삭을 데리고 가야 되지 않는가? 아브라함에게 물어 보았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절대로 데리고 가지 말라고 했습니다. 왜 그리 했습니까?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나를 내 아버지 집과 내 본토에서 떠나게 하시고 내게 말씀하시며 내게 맹세하여 이르시기를 이 땅을 네 씨에게 주리라 하셨으니 그가 그 사자를 네 앞서 보내실찌라 네가 거기서 내 아들을 위하여 아내를 택할찌니라(7).”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네 씨에게 이 땅을 주리라”고 하신 말씀을 굳게 믿었습니다. 그는 약속대로 하나님의 구속 역사를 이루어 나갈 것임을 믿었습니다. 그는 친히 여호와의 사자가 앞서 가서 모든 것을 예비하실 것을 믿는 여호와이레의 믿음이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신실함과 사랑을 굳게 믿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이삭을 데리고 가지 말라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은 분명한 결혼관이 있었습니다. 그의 결혼관은 주권적 신앙에 기초한 것이었습니다.

창세기 24:58절을 보면 리브가의 결혼에 대한 주권적 신앙이 나옵니다. 아브라함의 종의 말을 들은 리브가의 부모가 리브가에게 이 사람과 함께 가겠느냐? 물었을 때 그녀는 두말할 것 없이 “나는 가겠나이다(I will go).” 대답했습니다. 이 결단은 순간적인 감정으로 한 것이 아닙니다. 이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과 섭리를 믿는 믿음에서 나온 대답입니다. 아브라함의 종이 이삭의 신상명세서나 이력서를 보여준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사진 한 장 보여준 것도 아니었습니다. 따라서 이삭이 곰보인지 짬보인지, 나이가 몇 살인지, 키가 큰지 작은지, 성격이 어떤지, 언어를 잘 하는지 전혀 알 수 없었습니다. 일생 동안 함께 살아야 할 남편에 대하여 정보를 알지 못하고 생면부지의 늙은 종을 따라 간다는 것은 큰 모험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는 한 가지 아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결혼이란 하나님께서 만세 전에 예비하사 하나님의 뜻 가운데 이루어진다는 사실입니다. 그는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신뢰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아브라함의 종을 신뢰했습니다. 이때에 그는 하나님께 전 인생을 전폭적으로 맡길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믿음의 결단으로 리브가는 위대한 믿음의 여인이 될 수 있었습니다. 결혼은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에 속한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께 기도해야합니다.

셋째, 결혼은 연합입니다.

24절을 보겠습니다.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찌로다.” 남자와 여자는 분명히 다른 두 개체입니다. 그런데 남자와 여자가 결혼을 하게 되면 남자는 부모를 떠나 아내와 연합하여 하나가 됩니다. 결혼하면 1+1=2 가 아니라 ‘1’이 됩니다. 두 개체가 하나가 된다는 것은 신비한 일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이를 이렇게 감탄하였습니다. “이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찌니 이 비밀이 크도다 내가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엡5:31,32).” 학자들은 신비한 것이 셋이 있는데 하나는 3위1체, 둘은 예수님의 성육신, 셋은 둘이 하나가 되는 부부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천국을 볼 수 없지만 부부와 연합되는 그 속에서 하늘나라의 비밀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이 결혼의 신비입니다.

연합하였다는 것은 육체만 하나가 된 것이 아니라 인격적으로나 영적으로도 하나가 되었음을 말합니다. 하나가 된다고 해서 인격이 말살되는 것은 아닙니다. 이는 조화로운 연합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연합이라는 말씀 속에서 믿는 자는 불신자와 근본적으로 결혼할 수 없음을 알 수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6:14,15절을 보면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하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며 빛과 어두움이 어찌 사귀며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빛의 자녀요 믿지 않는 사람은 어두움의 자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조화가 될 수 없습니다. 또한 믿음을 잃게 됩니다. 신명기 7:3,4절을 보면 “또 그들과 혼인하지 말찌니 네 딸을 그 아들에게 주지 말 것이요 그 딸로 네 며느리를 삼지 말 것은 그가 네 아들을 유혹하여 그로 여호와를 떠나고 다른 신들을 섬기게 하므로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진노하사 갑자기 너희를 멸하실 것임이니라(신7:3,4)”고 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노아 시대가 강포가 충만하고 패역했던 것은 신자들이 불신자들과 자연스럽게 결혼한 데 있습니다. 지혜의 왕 솔로몬도 이방 여인들을 아내로 삼고 왕궁 내에 그 아내들을 위해 이방 신전을 세워줌으로 영적으로 타락하게 되었고, 이스라엘의 분열 또한 솔로몬이 이방 여인을 취한 데 있습니다. 삼손이 패망한 것도 이방 여인을 취한 데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생각을 합니다. “비록 불신자이지만 마음이 착한 여인과 결혼하여 믿게 하면 되지 않는가? 이렇게 되면 한 영혼을 구원하는 것이 아닌가?” 이 말은 일리가 있습니다. 한사람 구원하고 또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과 결혼하니 일거양득입니다. 그러나 이는 인간의 욕심과 교만에서 나온 생각입니다. 믿음이란 우리의 마음대로 할 수 없습니다. 남편의 권위로 아내를 구원시킬 수 없고, 아내의 마음대로 남편을 구원시킬 수 없습니다. 구원은 육정으로 혈통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요1:13).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이요, 그 손에 있습니다. 또한 불신자와 꼭 결혼하여 구원시키고자 함은 그 영혼에 대한 불쌍한 생각보다는 자기 자신의 욕심을 채우고자 하는 하나의 변명입니다. 일생 동안 자기 남편, 자기 아내 한 사람을 구원시키고자 그 허구한 세월 다 보내는 대신, 믿음의 사람과 결혼하고 합심하여 복음 전파하면 한 사람 뿐만 아니라, 몇 십 명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진정으로 믿음으로 산다면 믿음의 사람과 믿음의 결혼을 해야 됩니다. 우리가 믿는 자와 결혼하지 않았을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가 예수님을 믿을 수 있도록 일생동안 중보 기도를 해야 합니다.

둘이 한 몸을 이룬다는 것은 합일성, 친밀성을 말합니다. 부부 사이란 하나님과의 관계를 제외하고는 가장 가깝고 친밀한 사이입니다. ‘연합’이란 단어는 ‘unite’, ‘cleave’로서 종이 두 장을 아교풀로 딱 붙여 놓은 상태를 말합니다. 그 사이에는 누구도 개입할 수 없습니다. 부부 사이에 시아버지도, 시어머니도, 친정 부모님도, 그 누구도 끼어서는 안됩니다. 부부 사이에 아이도 끼어서는 안됩니다. 부부가 잘 때 아이를 가운데 놓고 자는 것 또한 성경 말씀에 위배됩니다. 무엇보다도 결혼을 했으면 이혼을 해서는 안 됩니다. 딱 붙은 종이를 떼어보십시오. 종이가 찢어집니다. 이처럼 둘이 한 몸을 이룬 몸을 나누어 보십시오. 이는 정상이 아니고 반 푼이고, 피차 상처를 받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혼을 금하셨습니다. “이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몸이 될찌라 하신 것을 읽지 못하였느냐 이러한즉 이제는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마19:5,6).”

이혼은 하나님의 절대 주권에 반하는 것입니다. 또한 이혼은 부부사이의 문제로 끝나지 않고 자녀와 사회에 엄청난 고통과 상처를 안겨 줍니다. 가정은 모든 교육의 시초가 되고 근간이 됩니다. 우리는 어머니 복중에서 이 세상에 태어나면서부터 가정에서 먹는 법, 말하는 법, 걷는 법, 남을 섬기는 법, 서로 돕는 법, 예배드리는 법, 하나님을 경외하는 법 등을 배웁니다. 우리 속담에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Pestalozzi는 “가정이여 너는 도덕상의 학교, 어린이의 교육을 위한 최적의 학교, 어머니는 하늘이 내리신 교사다”라고 했습니다. 가정만큼 좋은 학교는 없습니다. 모든 제도도 가정으로부터 출발합니다. 가정이 허물어지고, 가정이 병들고, 가정이 시들해지고, 가정이 흔들리기 시작하면 모든 것이 흔들리고 어려움을 당하게 됩니다. 가정은 공동체 중에 중요한 공동체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가정을 소중히 여기고 지키고 보호해야 합니다. 성경은 이혼뿐만 아니라 분방까지 금합니다. 다만 기도할 틈을 얻기 위해 합의 상 얼마동안은 하되 다시 합하라고 했습니다(고전7:5). 분방은 부부싸움 하고 톨아져 벽을 보고 자는 것도 같은 방에 있지만 분방하는 것입니다. 부부싸움을 했으면 사단이 틈타기 전에 해가 지기 전 빨리 화해를 해야 합니다.

넷째, 침소를 더럽히지 말아야 합니다.

침소를 더럽히지 말아야 합니다. 이는 음행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잠언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너는 네 우물에서 물을 마시며 네 샘에서 흐르는 물을 마시라 어찌하여 네 샘물을 집 밖으로 넘치게 하겠으며 네 도랑물을 거리로 흘러가게 하겠느냐 그 물이 네게만 있게 하고 타인으로 더불어 그것을 나누지 말라 네 샘으로 복되게 하라 네가 젊어서 취한 아내를 즐거워하라 그는 사랑스러운 암사슴 같고 아름다운 암노루 같으니 너는 그 품을 항상 족하게 여기며 그 사랑을 항상 연모하라(잠5:15-19).” 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모든 사람은 혼인을 귀히 여기고 침소를 더럽히지 않게 하라 음행하는 자들과 간음하는 자들을 하나님께서 심판하시리라(히13:4).” 성은 오직 부부만이 은밀한 장소에서 은밀하게 나누는 것입니다. 따라서 외도는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됩니다.

25절을 읽겠습니다. “아담과 그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 아니하니라.” 이는 부끄러움이 전혀 없는 행복의 극치입니다. 그들은 하나님 안에서 연합하여 사랑으로 하나가 되었기 때문에 조금도 비밀이 있을 수 없습니다. 따라서 부부는 조금도 비밀이 있어서는 되지 않습니다. 통장을 따로 쓰고 비밀 통장을 개설하고 서로 의심해서는 되지 않습니다.

다섯째, 아기를 출산해야 합니다.

창세기 1:28절을 읽겠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신 후 그들을 축복하셨습니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28).”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말씀은 결혼하고 자녀를 많이 낳으라는 것입니다. 자녀는 축복의 상징입니다. 하나님은 민족이나 국가를 통해서 복을 주시는 것이 아니라 가정을 통해서 복을 주십니다. 가정은 모든 기관의 최초 단위입니다. 요즈음 결혼도 하지 않고자 하고 자녀도 낳지 않고자 하는 세대에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주님의 명령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자녀를 출산하지 않을 때 누가 자연을 관리하고 개간하고 개척할 수 있습니까? 아기를 낳지 않고자 하는 것은 인간의 이기적인 발로 중의 발로입니다. 이기심은 아담 중심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으면 아담 중심이 아니라 예수님 중심의 사람이 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아기를 낳아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만큼 아기를 낳고 양육해야 합니다. 인공임신중절은 살인행위입니다.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결혼을 하고 주님이 주시는 만큼 아기를 낳기를 기도합니다.

가정에서 생명이 창조되고 행복이 만들어집니다. 이런 행복한 가정을 통해 자녀들이 결혼의 진정한 의미를 찾게 되고 가정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고 결혼의 소망을 갖게 됩니다. ♬사철에 봄바람 불어 잇고 하나님 아버지 모셨으니 믿음의 반석도 든든하다. 우리 집 즐거운 동산이라. 고마워라 임마누엘 예수만 섬기는 우리 집 고마워라 임마누엘 복되고 즐거운 하루하루♬(찬송가 305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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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명의말씀사,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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