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한 힘으로 오신 예수님

조회 수 2307 추천 수 0 2012.07.11 05:56:15
2006년 성탄메시지(누가복음 2:67-80, 요절 1:69)

강한 힘으로 오신 예수님

“우리를 위하여 구원의 뿔을 그 종 다윗의 집에 일으키셨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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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 크리스마스! 성탄의 기쁨이 여러분의 가정과 자녀들과 여러분들에게 임하기를 기도합니다. 요즈음의 시대를 power game 시대라고 합니다. 힘이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힘을 가질 수 있을까요? 우리가 어떻게 죄와 싸워서 이기 수 있는 힘을 가질 수 있을까요? 시편 저자는 힘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한다고 했습니다(시18:1). 이 말씀은 다윗이 하나님께서 모든 원수와 사울의 손에서 건지신 날에 지은 시입니다. 마르틴 루터는 내 주는 강한 성이라고 찬송했습니다. ♫내 주는 강한 성이요 방패와 병기되시니 큰 화난에서 우리를 구하여 내시리로다(384장)♫ 마르틴 루터가 라틴어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할 때에 마귀가 나타나 이를 가로막곤 했습니다. 그때 그는 이 찬송가를 작시 작곡하여 부르며 성경을 끝까지 번역할 수 있었습니다. 내 주는 강한 성입니다. 내 주는 힘이십니다. 내 주는 강한 손입니다. 세상에 예수님 보다 강한 것은 없습니다. 예수님을 구원의 뿔이시고, 어떤 빛보다도 강한 돋는 해이십니다. 사가랴는 성령 충만하여 구원의 뿔로 오신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그가 찬양한 하나님은 구체적으로 어떤 분입니까?

첫째, 하나님은 그 백성을 돌아보셨습니다(68a).

68a절을 보겠습니다. “찬송하리로다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 그 백성을 돌아보아” ‘돌아보다’는 찾아오셨다(has come), 심방하셨다는 뜻입니다. 이는 전능하시고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을 찾아오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일찍이 많은 민족 중에 이스라엘을 특별히 선택하여 당신의 백성으로 삼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택하여 거룩한 백성, 제사장 나라, 하나님을 섬기는 백성으로 삼으셨습니다. 우상을 섬기며 성적으로 도덕적으로 음란하게 살 그들을 부르시어 하나님을 섬기며 거룩하고 영화로운 백성으로 축복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우상을 섬기고 죄를 지으며 하나님의 백성에서 점점 멀어져 갔습니다. 그로 인해 그들은 남북이 분단되고 바벨론, 페르시아, 헬라, 로마의 지배를 받아야 했습니다. 현재는 로마의 지배 아래 있었습니다.

우리나라가 35년간 일제의 지배 아래 있었을 때의 그 참담했던 시절을 생각하면 로마의 지배를 받고 있는 그들의 형편을 알 수 있습니다. 일제 35년 치하에 우리의 믿음의 선조들은 신사참배를 강요받고 우리 할아버지들은 징병에 끌려갔으며 우리 할머니들은 정신대로 끌려가 갖은 고생을 다 하여야 했습니다. 지금도 연해주에 가면 그 상처가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그들은 로마의 지배아래 갖은 수모를 다 겪어야 했습니다. 로마는 그들에게 로마의 황제 가이샤를 숭배하도록 강요했습니다. 그리고 말라기 선지자 이후 400년 동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선지자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다시 말해 말씀이 없었습니다. 말씀이 없으니 비전이 없고, 비전이 없으니 삶의 희망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절망 중에 있는 이스라엘에게 찾아오셨습니다. 하나님은 하늘 영광을 버리시고 이 땅에 찾아오셨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평소에는 무관심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신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출애굽기 3:7,8절을 보면 하나님은 애굽에서 종살이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외면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애굽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정녕히 보고 그들의 울부짖음을 듣고 그 우고를 알고 내가 내려와서 그들을 애굽의 압제에서 건져내어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리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고통과 아픔과 슬픔을 외면치 않고 다 지켜보고 계시다가 때가 되자 직접 찾아오시어 구원역사를 이루셨습니다.

예수님은 죄와 사탄의 지배 아래 있는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한 아기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자기에게 유익이 되고 쓸모가 있는 사람들을 찾아갑니다. 그래서 연말연시가 되면 고아원이나 양로원은 텅텅 비고 부와 권세와 사회적인 신분이 높은 집은 문전성시를 이룹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죄와 마귀에게 포로 되고 눌린 자들을 찾아오셔서 자유를 주시고,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하시고, 귀 먹은 자들에게 듣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건강하고 부요하고 가능성이 많은 사람들을 찾아오시지 않고 한결같이 가난하고 병들고 귀신들리고 버림받은 자들을 찾아오셔서 구원의 복음을 선포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찾아가신 사람들은 주로 문둥병자, 중풍병자, 귀신들린 자, 사회에서 소외된 세리와 죄인들이었습니다. 한마디로 상한 갈대와 같고 꺼져가는 심지와 같은 자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그들을 찾아오셔서 치료해 주시고 위로해 주시고 소망을 심어주시고 구원하시고 무한한 가능성의 존재로 살게 하셨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성탄절을 맞아서 영적으로 육신적으로 소외되고 병든 자들을 찾아가서 돌아보아 진정으로 의미 있는 성탄절이 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이번 성탄 헌금은 지난해에 이어 남북 나눔 운동에서 펼치고 있는 북한에 집짓기 운동의 사역에 드리고자 합니다. 지금 북한은 우리가 생각하는 그 이상의 고통 속에 있습니다. 우리는 이데올로기를 떠나서 같은 동포로 그들을 도와줄 의무가 있습니다. 우리가 헐벗고 굶주린 그들을 마음으로 도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둘째, 하나님은 그 백성을 속량하셨습니다(68b).

하나님이 이 땅에 오셔서 병들고 헐벗고 굶주리고 가난하고 마귀에게 눌린 자들을 찾아오신 것으로 끝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속량하셨습니다(68b). ‘속량’은 노예상태에 있는 자를 일정한 몸값을 지불하고 해방시켜 주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기에서 사가랴가 속량하신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을 볼 때에 인간은 죄의 노예상태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누구든지 죄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죄 값을 치러야 자유의 몸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원래 인간이 죄의 노예가 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본래 인간은 하나님의 보배로운 존재였습니다. 인간은 에덴동산에서 자유를 누리며 무한한 행복을 누리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인간이 죄를 지음으로 죄의 노예가 되었습니다.

존 헨리 조웨트는 “죄는 파괴적인 존재다”고 했습니다. 죄는 우리의 몸과 인격과 마음과 양심, 그리고 영혼을 파괴합니다. 인간관계, 사회생활, 심지어 우리의 의식의 세계와 무의식의 세계까지도 파괴하여 못쓰게 합니다. 죄는 시각을 손상시켜 분별력을 상실케 합니다. 죄는 청각을 마비시켜 귀머거리로 만들어 진리를 듣지 못하게 합니다. 죄는 촉각을 마비시켜 느낌만을 갖도록 합니다. 요즈음 느낌, 느낌 하는데 느낌 좋아하지 마세요. 죄는 사람을 흉하게 만듭니다. 사람이 죄를 지으면 은혜롭던 얼굴이 일그러지고 찌그러져 흉하게 됩니다. 죄는 사람을 어두운 곳으로 이끕니다. 죄는 어두운 음악과 어두운 생각을 좋아하게 합니다. 죄는 아름다운 하나님의 형상을 앗아갑니다. 죄는 하나님 말씀 보기를 꺼려하게 하고,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존재가 발견되어지는 것을 싫도록 합니다. 죄는 처음에는 심한 죄의식으로 괴로워하도록 하다가 계속 짓도록 하여 죄의식도 사라지도록 합니다. 특히 죄가 하나의 문화를 형성하게 되면 죄 짓는 것을 조금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도록 하고 오히려 죄를 자랑하도록 하고 거룩하고 순결하게 사는 것을 이상하도록 만듭니다. 죄는 지독하여 생명, 피를 요구합니다.

성경에서 피는 생명입니다. 죄는 이 피를 요구합니다.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습니다(히9:22). 그래서 구약 시대에는 짐승의 피를 흘림으로 죄 사함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짐승의 피는 불완전하여 일시적으로 정결케 할 뿐, 사람의 마음을 근본적으로 깨끗케 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인류의 죄 문제를 해결하시고자 하나밖에 없는 독생자 예수님을 유월절 어린 양으로 보내셨습니다. 마침내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보배로운 피를 나를 위해 흘리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를 속량하셨습니다. 이로 인해 우리는 죄로부터 해방되어 죄로부터 자유의 몸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께서 나의 죄를 위해 피를 흘리심을 믿는 순간 우리는 모든 죄의 사슬에서 풀려 마귀의 지배를 받던 삶에서 거룩한 성령의 지배를 받는 복된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아멘.

셋째, 하나님은 구원의 뿔로 원수를 파하셨습니다(69-75).

68절을 보겠습니다. “우리를 위하여 구원의 뿔을 그 종 다윗의 집에 일으키셨으니” 하나님은 다윗에게 약속하신 대로 그의 후손 가운데서 구원의 뿔을 일으키셨습니다(삼하7:13, 행13:22,23). 구원의 뿔은 사단의 뿔에 대칭되는 말입니다. 인간은 한 개의 뿔도 없지만 사단은 일곱 머리와 열 개의 뿔을 가지고 있습니다(계12:3, 13:1). 뿔은 힘과 능력을 상징합니다. 이는 사단이 얼마나 힘이 강한 자임을 말해 줍니다. 사단은 열 개의 뿔을 가지고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인간의 약점을 이용하여 마구 찌릅니다. 한 번에 하나만 찌르는 것이 아니라 정신을 차릴 수 없도록 한 번에 여러 개의 뿔로 찌릅니다. 뿔에 찔리게 되면 치명적인 상처를 입고 죽게 됩니다. 사단은 정욕의 뿔로 정욕에 약한 젊은이들을 마구 찌릅니다. 정욕의 뿔에 찔리게 되면 천하장사라도 무기력하게 되고 못쓰게 되어 버립니다. 많은 가능성 있는 젊은이들이 음란한 영상 매체를 통해 정욕의 뿔에 찔려 정신세계가 황폐하게 되어 가고 있습니다. 또한 사단은 허무주의 뿔로 사람을 마구 찌릅니다. 허무주의의 뿔에 찔리어 의욕을 잃어버리고 자학하고 회의에 빠지어 살아갑니다. 돈 뿔에 찔린 사람은 자나 깨나 돈돈 하다가 돌아버립니다. 절망과 좌절의 뿔에 찔린 사람들은 현실을 도피하기 위해 술을 마시고 마약에 손을 대어 헤어 나올 수 없는 수렁으로 빠지게 됩니다. 인터넷 게임의 뿔에 빠지면 밤낮을 가리지 않고 게임을 하다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합니다. 부부가 미움의 뿔에 찔리면 서로 미워하다가 끝내 이혼하게 됩니다. 공주병과 왕자병의 뿔에 찔리면 자아도취에 빠져 타인에 대해 냉소적이고 사회에 적응을 잘 하지 못합니다. 공허의 뿔에 찔리면 자살을 기도합니다. 교만의 뿔에 찔리면 위아래를 분간하지 못합니다. 또 사단이 일곱 머리를 가졌다는 것은 지혜가 출중함을 말해 줍니다. 머리 하나에 IQ가 두 자리, 90이라도 일곱 머리이므로 IQ가 630이 됩니다. 머리가 하나 뿐인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사단의 지략과 권모술수를 당해낼 수 없습니다.

사단의 뿔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사단의 뿔보다 더 강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하여 구원의 뿔을 그 종 다윗의 집에 일으키셨습니다. 뿔은 힘을 상징합니다(신33:17). 그 힘은 원수를 능히 파괴시킬 수 있는 강한 힘을 의미합니다. 밀림의 왕자인 사자라도 저돌적으로 달려드는 코뿔소 앞에서는 속수무책입니다. 투우들의 그 날카롭고 단단한 뿔은 보기만 해도 무시무시합니다. 예수님은 사단보다 더 강한 구원의 뿔로 오셨습니다. 사단의 뿔이 염소의 뿔이라면 예수님의 뿔은 코뿔소의 뿔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우리를 능히 강한 사단의 권세에서 구원하실 수 있는 구원의 뿔이 되십니다. 복음서에 보면 구원의 뿔이 되신 예수님의 모습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예수님은 사단보다 훨씬 지혜가 뛰어나신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이사야가 예언한대로 지혜와 총명의 신, 모략과 재능의 신, 지식의 신으로 충만하신 분이십니다(사11:2). 또한 예수님은 인간을 괴롭히고 있는 귀신의 세력과 질병과 죄와 사망 권세를 파하시고 새 생명을 주시는 엄청난 힘을 가지신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키는 말씀의 권세가 있습니다. 귀신의 세력을 물리치시는 영적 권세가 있습니다. 광풍도 잠잠케 하시는 권세가 있습니다. 어떤 질병도 치료할 수 있는 치료의 능력이 있습니다. 무엇보다 예수님은 죄의 사슬로부터 우리를 해방시키시는 죄 사함의 권세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최대 원수인 사망 권세를 파시고 새 생명을 주시는 부활의 주요 생명의 주님이십니다. 예수님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분이십니다. 우리가 믿고 의지하는 예수님은 우리를 모든 원수들로부터 능히 구원하실 수 있는 힘 있는 구주이십니다.

사도행전의 사도들은 예수님의 이름 권세를 의지해 승리에 승리를 거듭했습니다. 앉은뱅이를 예수의 이름으로 일으켜 세웠습니다. 그들은 귀신을 내쫒고 수많은 사람들을 회개 시키고 죽은 사람을 살렸습니다. 그 이름에 의지해 간절히 기도하고 도전하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습니다. 우리의 싸우는 병기는 육체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 앞에서 견고한 진을 파하는 강력이라 모든 이론을 파하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모든 것을 다 파하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케 합니다(고후10:4,5). 복음은 어떤 사상과 어떤 세력의 진도 싸워서 파할 수 있습니다.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며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게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합니다(히4:12). 우리가 주의 말씀을 의지하고 나가면 원수 마귀가 떨고 지옥권세가 흔들립니다. 우리가 구원의 뿔 되신 예수님의 이름 권세를 의지해 승리의 삶을 살기를 기도합니다.

우리 주님은 강한 하나님이십니다. 출애굽기를 보면 바로는 강한 자였습니다. 바로의 세력은 강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바로의 세력보다 강하십니다. 하나님은 강한 손이십니다(출6:1). 여기에서 강한 손은 10가지 재앙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마침내 장자를 죽이는 재앙을 통해 바로의 세력을 파하고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시키셨습니다. “내가 애굽 땅을 칠 때에 그 피가 너희의 거하는 집에 있어서 너희를 위하여 표적이 될찌라 내가 피를 볼 때에 너희를 넘어가리니 재앙이 너희에게 내려 멸하지 아니하리라(12:13).” 이 피는 예수님의 보배로운 피의 예표입니다.

예수님의 피는 모든 사람에게 죄 사함을 얻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피는 우리의 죄악된 마음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켜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합니다. 아무리 더럽고 추한 죄라 할지라도 이 예수님의 피를 마음으로 영접하면 하나님께서 그 모든 죄를 사하여 주십니다(롬3:25). 예수님의 피가 우리 마음속에 있을 때 하나님은 이 피를 보시고 우리를 의롭다 하십니다. 예수님의 피는 믿는 자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인격적으로 역사하여서 죄로 병든 마음, 삐뚤어진 마음, 상처 입은 마음을 다 치료하여 주시며 소생시켜 주십니다. 예수님의 피는 연약한 자를 강하게 하며, 완악한 마음을 부드럽게 합니다. 예수님의 피는 우리를 죄로부터 보호하여 주시며, 죄와 싸워 이길 수 있는 내적 힘을 공급하여 줍니다. 예수님의 피는 구원의 피입니다. 예수님의 피는 명의 피입니다. 예수님의 피는 은총의 피입니다. 예수님은 능력의 피입니다.

이 예수님의 피의 은혜가 내 심장에서 박동할 때 죄 사함의 은혜가 넘칩니다. 내 안에 예수님의 피의 은혜가 있을 때 세상의 죄의 파도와 싸워 이길 수 있습니다. 우리가 십자가상에서 마지막 피 한 방울까지 흘리신 예수님을 영접할 때, 예수님의 사랑에 감격하여 생명을 드리기까지 헌신적으로 주님의 역사를 섬길 수 있습니다. 부흥의 역사, 회복의 역사, 치유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예수님의 피는 강한 죄의 사슬을 끊을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예수님의 피를 믿으시기 바랍니다. 찬송가 199장을 부르겠습니다. ♬주 십자가를 지심으로 죄인을 구속하셨으니 그 피를 보고 믿는 자는 주의 진노를 면하겠네 내가 그 피를 유월절 그 양의 피를 볼 때에 내가 넘어가리라♬ 아멘.

71절을 보겠습니다. “우리 원수에게서와 우리를 미워하는 모든 자의 손에서 구원하시는 구원이라.” 구원의 뿔이신 예수님은 우리를 사로잡고 있는 강한 원수들에게서 우리를 구원해 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여 두려움이 없이 하나님을 일생동안 섬기도록 함에 있습니다(74,75).

넷째, 하나님은 돋는 해로 우리를 평강의 길로 인도하십니다(78,79).

78b,79절을 보겠습니다. “이로써 돋는 해가 위로부터 우리에게 임하여 어두움과 죽음의 그늘에 앉은 자에게 비취고 우리 발을 평강의 길로 인도하시리로다.” 이 말씀은 돋는 해가 임하기 전 인간들의 실존이 어떠한가를 말해 줍니다. 사람들은 어두움과 죽음의 그늘에 앉아 있습니다. 앉아 있다는 것은 완전히 소망을 잃고 자포자기한 모습을 의미합니다. 이런 자들은 늘 어둡고 부정적이고 운명적인 생각에 시달리며 삶의 의욕을 잃고 무기력하게 살아갑니다.

예수님은 이런 인생들에게 돋는 해로서 위로부터 임하게 됩니다. 돋는 해는 에너지의 원천으로서 생명을 공급해 줍니다. 돋는 해는 삶의 희망을 주고, 우리를 평강의 길로 인도해 줍니다. 돋는 해는 치료하는 광선을 발하여 죄로 병든 내면을 치료해 줍니다(말4:2). 그때 우리는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와 같이 기쁨으로 뛰놀게 됩니다. 또한 돋는 해는 강한 어두움의 세력을 물리치고 세상을 환하게 비추어 줍니다. 우리가 돋는 해 되신 예수님을 영접할 때 심령에 역사하는 모든 어두움의 세력이 순식간에 물러나고 우리의 심령은 생명과 평강과 희망으로 가득 차게 됩니다. 예수님은 개개인과 민족과 인류의 희망이 되십니다.

예수님은 구원의 뿔이십니다. 예수님은 강한 힘이십니다. 예수님은 강한 손이십니다. 이 예수님을 의지할 때 모든 사탄 권세를 이기고 승리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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