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어나 빛을 발하라

조회 수 2598 추천 수 0 2012.07.11 05:59:06
이사야서 60:1-2,3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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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말씀은 시온을 향하여 외친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계명과 율법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한량없는 축복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범죄했습니다. 말씀을 불순종했습니다. 그들은 주일에 유희를 일삼았습니다. 그들은 제사장 나라다운 삶을 살지 못했습니다.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다운 삶을 살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영광의 빛을 발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업신여겼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바벨론에서 노예 생활하는 희망이 없는 백성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백성들에게 승리와 영광을 선포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머지않아 그들이 바벨론의 포로에서 벗어나 하나님을 자유롭게 섬길 것에 대한 비전을 보여주셨습니다. 이와 같은 거룩한 사명과 부르심을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일어나 빛을 발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그들에게 일어나서 빛을 발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일어나 빛을 발하라는 말씀은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일어나 빛을 비추는 삶을 살기를 기도합니다.

첫째, 일어나라(1a).

“일어나라(arise)!”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먼저 일어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일어나라’는 말씀을 통해 볼 때 현재 그들은 누워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람이 언제 눕습니까? 희망을 상실하게 되면 눕습니다. 배가 부르면 눕습니다. 병이 들면 눕습니다. 죽으면 영원히 눕습니다. 하나님은 누워있는 이스라엘을 향해 이제 일어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성경에 보면 예수님은 세 종류의 사람들에게 일어나라는 명령을 하셨습니다.

첫째는 죽은 자를 향하여 일어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누가복음 7장을 보면 예수님께서 나인성문 가까이 이르렀을 때에 한 장사행렬을 만났습니다. 그 장사 행렬은 한 과부의 외아들을 위한 장사행렬이었습니다. 청년은 죽어 관 속에 누워 있었습니다. 어느 시인은 청년을 봄과 같다고 했습니다. 봄은 만물이 약동하는 계절입니다. 그러므로 청년은 생명력이 있어 생명이 꿈틀꿈틀합니다. 이상이 드높고 희망과 비전, 그리고 도전정신과 기상이 있습니다. 자기의 현실 문제를 넘어서서 시대에 책임감과 소명의식이 있습니다. 진리를 위해 희생하며, 사명감이 충천합니다. 유연하고 열정이 넘쳐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자신을 드립니다. 그런데 본문에 나오는 청년은 꼼짝도 하지 않고 관 속에 누워있습니다. 박동치던 그의 심장은 멈췄습니다. 독수리와 같이 빛나던 그의 눈동자는 풀려 있습니다. 그의 유연한 몸매는 석고상처럼 굳어 있습니다. 송아지와 같이 대지를 박차고 달리던 그의 팔다리는 굳어져 움직이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그를 향하여 외쳤습니다. “청년아 일어나라!” 예수님의 말씀으로 그는 관속에서 일어났습니다.

마가복음 5장을 보면 회당장 야이로에게 사랑하는 외동딸이 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예기치 않게 야이로의 가정에 어두움의 그림자가 찾아왔습니다. 그것은 금이야 옥이야 키우던 사랑스러운 딸이 원인 모를 병에 걸려 시름시름 앓다가 그만 죽었습니다. 회당장이 얼마나 슬펐겠습니까? 예수님은 그의 집에 가셔서 죽은 아이의 손을 잡고 명령하셨습니다. “달리다굼! 소녀야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 죽은 아이는 생명의 주의 음성을 듣고 일어났습니다. 요한복음 5:25은 말씀하십니다.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말씀을 들을 때 죽은 영혼이 소생합니다. 말씀은 살아서 운동력이 있습니다. 말씀은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갤 수 있습니다. 말씀은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할 수 있습니다(히4:12). 한 말씀이라도 듣고 순종하면 살아납니다. 한 말씀이라도 영접하면 구원 받고 상한 마음이 치유되고 패인 마음이 돋아집니다. 열등감이 치료됩니다.

성경에서는 두 가지 죽음이 있음을 말씀합니다. 영적인 죽음과 육적인 죽음입니다. 비록 육신은 죽었으나 영적으로 산 사람이 있고, 육신은 살았으나 영적으로 죽은 사람이 있습니다. 영적으로 죽은 자는 하나님을 모르는 자요 하나님을 떠나 사는 자들입니다. 이런 자들은 영적 생명이 없습니다. 이는 마치 꽃병에 꽂혀 있는 꽃과 똑같습니다. 생명이 있는 것 같지만 실은 죽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지금도 이런 자들을 향하여 외칩니다. 에스겔서를 보면 하나님께서 에스겔에게 해골 골짜기에 대해 이상을 보여 주셨습니다. 에스겔이 보니 큰 골짜기에 해골들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해골들이 얼마나 말랐는지 하얗게 말라 있었습니다. 핏기는 그만 두고 물기 하나 없었습니다. 살아날 희망이 전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에스겔 선지자가 하나님의 음성을 통해서 이 해골들을 향하여 일어나라 외쳤습니다. 그 때 마른 뼈들이 서로 연결되어 힘줄이 생기고 피부가 생기고 이목구비가 생기고 생명이 되어 일어나서 큰 군대가 되었습니다(겔 37장). 이는 무엇을 말합니까? 해골과 같이 죽은 자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음성을 듣고 일어서게 될 것에 대한 예언의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죽은 자를 살리실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생명의 수여자, Life Giver가 되십니다.

둘째는 병든 자들을 향하여 일어서라고 외치십니다. 요한복음 5장을 보면 38년 된 중풍병자가 나옵니다. 그는 누구도 고칠 수 없는 고질병자였습니다. 사람은 희망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는 희망이 없었습니다. 그는 생존경쟁에 패배하여 누워있었습니다. 그는 살아 있으나 죽은 자와 방불했습니다. 그는 powerless하고 hopeless했습니다. 자신을 보아도 희망이 없고, 자신의 실력을 보아도 희망이 없고, 자신의 장래를 보아도 희망이 없고, 자신의 건강을 보아도 희망이 없고, 가정환경을 보아도 희망이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를 보시고 ‘일어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나음 받아야 할 고질병이 있습니다. 어느 민족이나 나음 받아야 할 고질병이 있습니다. 우리 민족은 오랫동안 식민지 사관의 교육으로 인해 알게 모르게 거지근성과 노예근성이 있습니다. 노예에게는 내일이란 단어가 없습니다. 누가 시켜야 하지 시키지 않고, 주인이 보지 않으면 안합니다. 노예 철학은 어떻게 하면 편히 쉴 것인가에 관심을 갖지 자발적으로 일하려 하지 않습니다. 노예는 순간의 쾌락만을 찾습니다. 거지는 주는 것보다 받는 것을 좋아합니다. 일하기를 싫어합니다. 그리고 우리 민족은 허황된 과시욕이 있는 반면에 자기를 너무 비하하고 낮은 자존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쉽게 포기하고 쉽게 부정하고 쉽게 분노하고 쉽게 좌절합니다. 그리고 깊은 열등감과 패배주의가 있습니다. 이 패배주의는 ‘나 같은 사람이 어떻게, 나 같은 대학생이 무엇을 어떻게 할 수 있는가, 한국 사람이 어떻게 무엇을 할 수 있는가’ 하며 자신을 자학합니다. 이런 것들은 우리가 나음을 입어야 할 개인과 민족의 고질병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고질병에서 일어나라고 외치십니다. 그리고 사람에게는 병든 영혼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것이 아닙니다. 영적인 생명이 죽은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과 관계성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 심령에 병이 들어 있습니다. 탐욕으로 병들어 있습니다. 교만으로 병들어 있습니다. 시기심으로 병들어 있습니다. 분노와 한의 독한 병에 걸려있습니다. 혈기와 허영심이 있습니다. 썩을 병이 있습니다. 미움이 있습니다. 원망과 불평과 절망의 병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사람을 향하여 일어나라고 외치십니다.

셋째는 자는 사람을 향하여 일어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요나가 하나님의 사명을 어기고 엉뚱한 곳으로 가고 있는 배에 승선했습니다. 그는 배 밑에 가서 ‘예라 모르겠다!’며 잠을 잤습니다. 그 때 마침 바다에 큰 풍랑이 일기 시작했습니다. 선장이 잠을 자고 있는 그를 향하여 물었습니다. ‘자는 자여, 어찜이뇨? 일어나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피방울이 땀방울이 되기까지 기도하셨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잠을 자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일어나라 나와 함께 가자”고 하셨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생애에 어떤 일이 일어날 것같은 막연한 두려움으로 잠을 자고 있습니다. 영적인 수면증에 걸린 자들은 자기 주위에 어떤 일이 일어나도 알려고 하지 않습니다. 자기의 사명에 대해 애써 외면합니다. 자기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알면서도 육신의 안일에 빠져 잠을 잡니다. 예수님은 이런 자들을 향하여 명령하십니다. “자는 자여, 일어나라!” 우리가 언제까지 자기 문제로 누워서 잠을 자야 합니까? 우리가 언제까지 어린아이처럼 하나님의 역사에 무관심하며 자야 합니까? 일어나야 합니다. 로마서 13:11절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한 저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음이라.”
여러분들 중에 지금 죽은 자는 한 명도 없습니다. 모두 생기가 발랄합니다. 그러나 영적으로는 죽어 있고 잠든 분들이 있습니다. 어떤 분은 거듭되는 실패로 인해 삶의 의욕이 없습니다. 어떤 분은 낮은 자존감과 비교의식으로 죽어 있습니다. 어떤 분은 죄의식으로 죽어 있습니다. 어떤 분은 현실 문제로 죽어 있습니다. 어떤 분은 꿈과 비전이 없어 죽어 있습니다. 어떤 분은 창공을 나는 독수리와 같은 삶을 살고자 하는 패기와 웅지가 없어 죽어 있습니다. 어떤 분은 시궁창 미꾸라지라도 좋으니 인생을 즐기며 편하게 살면 그만이라는 안일주의와 이기주의로 죽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우리를 향하여 일어나라고 외치십니다. 소망을 상실하여 좌절 가운데 있는 우리를 향하여 일어나라고 외치십니다. 우리는 이제 일어나야 합니다. 아멘.

둘째, 빛을 발하라(shine!-1b).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계명과 율법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 백성은 범죄하고 타락하여 빛을 잃었습니다. 빛을 발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그들이 빛을 발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하나님으로부터 빛을 받아서 받은 그 빛을 반사해야 합니다. 달은 발광체가 아닙니다. 태양의 빛을 받아 반사합니다. 태양 빛을 많이 받으면 정월 대보름이 되고, 적게 받으면 섣달그믐이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에게는 빛이 없습니다. 빛을 발하고 싶어도 발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빛을 받아서 우리도 빛을 발할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8:12절에서 예수님은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하셨습니다. 고린도후서 4:6절을 보면 “어두운데서 빛이 비취리라 하시던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취셨느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세상의 빛이라 하셨습니다(마5:14). 빛이 되라고 하지 않고 빛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본래 빛이 없었으나 예수님으로부터 빛을 받았습니다. 이 빛은 예수님으로 말미암는 빛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빛을 주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첫째로 빛은 어두움을 밝히는데 그 목적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빛을 발해야 합니다. 별이 고요하게 밤하늘을 비취듯이 우리도 별처럼 하나님의 영롱한 빛을 발해야 합니다. 장미와 백합화가 은은한 향기를 내듯이 무언중에 빛을 내야 합니다. 빛을 내되 적극적으로 내야 합니다. 불교는 은둔의 종교이지만 기독교는 적극적으로 산 위로 올라가 빛을 발해야 합니다. 빛이 어두움을 밝히게 되면 바른 삶, 바른 방향으로 인도하게 됩니다. 그래서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은 내 발에 등불이라 했습니다. 그리고 물리학에서 광학은 가장 오래된 학문입니다. 왜냐하면 빛은 인간 생활과 깊은 관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빛은 공기나 물질 속에 파고드는 성질이 있기 때문에 어두움이 견딜 수 없습니다.

그런데 빛을 가로막는 구름이 있듯이 하나님의 영광의 빛을 가로 막는 세력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죄입니다. 이 죄가 세상을 흑암으로 뒤덮게 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죄가 만연해도 하나님의 빛이 비췰 때 그 어두움이 빛을 이길 수 없습니다. 요한복음 1:5절을 보면 빛이 어두움에 비취되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이기지 못하더라) 하셨습니다. 어두움의 세력이 아무리 크다 할지라도 큰 빛, 구원의 빛 예수님을 이길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심으로 어두움이 물러가고 사망 권세가 물러갔습니다. 절망과 무기력이 물러갔습니다. 희망과 능력이 임하게 되었습니다. 빛은 반드시 어두움을 이깁니다.

둘째로 빛은 잠든 자를 깨우는데 목적이 있습니다. 대개 죄는 낮보다 밤에 이루어집니다. 죄는 곧 밤을 아주 좋아합니다. 밤은 어둡습니다. 사람들은 밤에 잠을 잡니다. 그런데 성경은 밤에 깨어 있으라고 하십니다. 성경은 슬기로운 처녀와 미련한 처녀의 예를 들어 밤에 깨어 있으라고 합니다. 빛은 죄악의 미련의 잠에서 깨어 있도록 합니다. 하나님은 롯의 아내에게 죄악의 도시에서 일으켜 빨리 그 도시를 따나도록 했습니다. 그런데 그녀는 물질에 대한 미련의 잠에서 깨어나지 못해 뒤를 돌아보다 그만 소금 기둥이 되고 말았습니다. 삼손은 쾌락의 잠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드릴라의 기생 무릎에서 자다가 그만 머리가 깎이고 두 눈이 뽑히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자신의 모습과 현재의 상황을 바라보고 절망합니다. 시대를 바라보고 절망합니다. 그러나 빛 되신 예수님께서 우리를 깨우십니다. 예수님은 세상에 오셔서 어두운 세상을 태양처럼 비추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빛, 영광의 빛, 생명의 빛이 우상과 정욕과 어두움의 세력이 가득한 어거스틴의 심령에 비춰졌을 때 그는 성자가 되었습니다.
셋째로 빛은 열을 내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 열은 따뜻하게 합니다. 열은 역동적인 에너지가 있습니다. 열은 사람을 열 내게 합니다. 사람이 열나면 보이는 것이 없습니다. 사람이 빛을 받아 열을 내게 되면 독수리가 하늘을 향하여 올라가듯 힘찬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무기력하게 살던 사람들이 powerful하게 살게 됩니다. 열이 기관차를 움직이고 보일러를 움직이듯이 예수 그리스도의 빛을 받으면 열을 내게 되고, 열이 나면 세계를 지배할 수 있는 능력이 임하게 됩니다. 그리고 빛은 만물을 소생시킵니다. 성장하고 결실을 맺게 합니다.

점점 밤이 깊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진리의 빛, 생명의 빛을 받았습니다. 소망의 빛을 받았습니다. 사랑의 빛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영적인 지식의 빛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사랑의 빛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감사의 빛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기쁨의 빛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이제 일어나서 진리의 빛, 생명의 빛, 소망의 빛을 발하여야 합니다. 빛의 아름다움과 고귀함의 빛을 발하여야 합니다. 비가 온 후 빛이 비치면 영롱하고 신비한 무지개가 나타납니다. 구름 속에 있는 물방울의 작은 결정체가 햇빛을 받아 빛을 분석해 주는 것이 바로 무지개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빛을 받아 예수님의 아름다운 형상의 빛을 나타내야 합니다. 사랑, 희락, 화평, 인내,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의 빛을 나타내야 합니다. 어떻게 일어나 빛을 발할 수 있습니까?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 보라 어두움이 땅을 덮을 것이며 캄캄함이 만민을 가리우려니와 오직 여호와께서 네 위에 임하실 것이며 그 영광이 네 위에 나타나니라(1c,2).” 세상은 어두움으로 뒤덮여 있지만 여호와의 영광이 임했기 때문에 일어나 빛을 발할 수 있습니다. 빛은 어두운 밤하늘일수록 더욱더 찬란하고 영롱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 시대에 육의 생각에서 영의 생각으로 바꾸십시오. 생각이 바뀌면 표정이 달라지고 말이 달라집니다. 마귀가 지배하는 세상의 용어들을 쓰지 않고 천국 용어를 쓰게 됩니다. 마귀가 지배하는 세상의 용어들은 미움입니다. 시기 비방, 험담입니다. 원망하고 불평하는 것입니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픕니다. 그러나 천국 용어는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축복합니다. 기도합니다. 칭찬하고 기뻐하는 것” 입니다. 이제 마귀의 용어를 천국 용어로 바꾸십시오. 적극적으로 일어나 빛을 발하시오. 그러면 내면이 달라지고 가정이 달라지고 직장이 달라지고 학교가 달라지고 교회가 달라지고 민족이 달라지고 열방이 달라집니다. 내면이 치유되고 회복되고 교회가 부흥하고 성장합니다. 복음의 빛은 반드시 승리합니다. 일어나 사랑의 빛을 발하십시오. 일어나 감사의 빛을 발하십시오. 일어나 칭찬을 빛을 발하십시오. 일어나 축복의 빛을 발하십시오. 일어나 기도의 빛을 발하십시오.

셋째, 열방이 네 빛으로 나아오리라(3-22)

일어나 빛을 발하자 세계 곳곳, 원방과 왕들이 몰려옵니다. 일찍이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많은 백성이 가며 이르기를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오르며 야곱의 하나님의 전에 이르자 그가 그 도로 우리에게 가르치실 것이라 우리가 그 길로 행하리라 하리니 이는 율법이 시온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임이니라(3).” 마치 집을 떠난 새가 그 보금자리로 다시 돌아오듯이 원근에 흩어졌던 이스라엘이 귀향하게 됩니다. 이는 B.C. 538년에 고레스에 의해 실현됩니다. 딸들은 업고 옵니다(4). 열방의 재물이 오게 됩니다. 이방의 섬김을 받게 됩니다. 내적으로 든든하게 됩니다.

본래 우리는 빛이 없었습니다. 어두움에 지배당해 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어 주심으로 우리는 생명의 빛, 구원의 빛, 소망의 빛, 사랑의 빛을 받았습니다. 이제 우리는 일어나 영광스러운 구원의 빛, 생명의 빛, 진리의 빛을 발해야 합니다. 우리가 지금 일어나 이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구원의 빛을 발하여야 합니다. 이제 우리가 지금 자리에서 일어나서 빛을 발하십시오. 스펄전 목사님이 하신 말씀으로 마치겠습니다. “할 일이 생각나거든 지금 하십시오. 오늘 하늘이 맑지만 내일은 구름이 보일지 모릅니다. 어제는 이미 당신의 것이 아니니 지금 하십시오. 친절한 말 한마디가 생각나거든 지금 말하십시오. 내일은 당신의 것이 안 될지도 모릅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언제나 곁에 있지는 않습니다. 사랑의 말을 하고 싶다면 지금 하십시오. 미소를 짓고 싶다면 지금 웃어 주십시오. 당신의 친구가 떠나기 전에 장미가 피고 가슴이 설렐 때 지금 당신의 미소를 주십시오. 불러야 할 노래가 있다면 지금 부르십시오. 해가 저물면 노래 부르기엔 너무나 늦습니다. 당신의 노래를 지금 부르십시오.” 지금 복음을 전할 사람이 있으면 지금 전하십시오. 지금 일어나 빛을 발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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