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안에 뿌리를 내리라

조회 수 3322 추천 수 0 2012.07.11 06:13:10
골로새서 1:23b-2:10, 2:7

그 안에 뿌리를 내리라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입어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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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비가 내리니 새싹이 움트고 꽃망울이 생기며 식물들이 춤추는 것만 같습니다. 오늘 말씀에는 사도 바울의 복음의 일군, 교회의 일군으로서의 철학이 나옵니다. 그는 복음의 일꾼이요, 교회의 일꾼이 된 것을 귀하게 여겼고, 또 이를 자랑했으며, 힘을 다하여 이 직분을 감당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리스도 안에 행하고, 그리스도 안에 뿌리를 내리고, 세움을 받아 믿음에 굳게 섰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첫째, 바울의 일군 철학을 배워 주와 복음을 힘을 다해 증거하며, 둘째, 그 안에서 행하고 그 안에서 뿌리를 내리고 그 안에서 세움을 받아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이 넘치는 삶을 살기를 기도합니다.

첫째,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1:23b-2:5).

23b절을 보겠습니다. “이 복음은 천하 만민에게 전파된 바요 나 바울은 이 복음의 일군이 되었노라.” 사도 바울은 먼저 자신을 사도라고 소개했고(골 1:1), 이제 자신을 복음의 일군(23), 교회의 일군(25)이라고 소개했습니다. 일군이란 영어로 servant(NIV)로, 종이란 뜻입니다. 당시 종은 주인의 소유물에 불과했고 자신만의 삶이 없었습니다. 종은 주인이 오라고 하면 오고, 가라하면 가야했습니다. 종은 주인에게 100% 충성하고 순종해야 했습니다. 사람은 누구를 막론하고 종 되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설령 종이 되었다고 하더라도 드러내놓고 나는 누구의 종이라고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자기 자신을 복음의 종, 교회의 종이라고 소개했습니다. 그가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복음의 종, 교회의 종이 된 것을 영예롭게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롬11:13).

과거 그는 율법의 종이 되어 곤고한 삶, 죽음의 세력에서 오는 두려움과 고통의 삶을 살았으며, 그로 인하여 육신의 열매, 사망의 열매를 맺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예수 그리스도의 종, 복음의 종, 교회의 종이 되었을 때 참된 자유와 기쁨을 누릴 수 있었고, 생명의 열매를 맺을 수 있었습니다. 그는 죄의 종에서 복음의 종이 되었을 때의 그 감격을 이렇게 외쳤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롬 8:1,2).”

사람들은 무엇인가에 매이기를 싫어합니다. 교회를 나오도록 권하면 매이기 싫다며 거절합니다. 그러나 사람은 누구를 막론하고 무엇인가에 매여 살고 있습니다. 무엇인가에 매이게 되면 그것의 종이 됩니다.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돈에 매여 있습니다. 사람들은 권력에 매여 있습니다. 사람들은 명예에 매여 있습니다. 사람들은 쾌락과 정욕에 매여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물질의 종, 명예와 권력의 종, 쾌락의 종이 되어 살아갑니다. 여러분은 지금 무엇에 매여 있습니까? 이로 인한 열매가 무엇입니까? 로마서 6장 21,22절에서 사도 바울은 그 때 무슨 열매를 맺었느냐고 묻습니다. 그는 묻고 대답하기를 너희가 그 일을 부끄러워하나니 그 마지막이 사망이라고 했습니다. 반면에 진리에 매이면 진리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얻는데 그 열매는 영생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과거 죄의 종이었습니다. 죄를 자랑하고, 죄를 노래하고, 죄 짓는 것을 즐겼습니다. 우리는 자기를 자랑하고 돈을 사랑하고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보다 더 하였습니다. 우리는 물질과 쾌락에 목말라했습니다. 우리는 유행과 연애에 목말라했습니다. 그리고 음란 인터넷에 중독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영광스러운 복음의 종이 되어 복음을 증거하고, 복음을 기뻐하고, 복음을 자랑하게 되었습니다. 사망에서 생명의 열매를 맺는 영광스러운 복음의 종, 교회의 종이 되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천사도 흠모하는 복음의 종의 직분을 귀하고 영광스럽고 기쁨으로 여기어 될 줄로 믿습니다. 그리고 자신을 복음의 종이라고 밝힐 수 있는 하나님을 믿는 자로서의 분명한 정체성(identity)을 가져야 합니다.

그는 이방인의 복음의 종으로서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위해 당하는 고난을 기뻐하였습니다(24). 이는 그가 교회의 일군이 된 것은 하나님의 경륜, 즉 하나님께서 주신 직분으로 여기고 하나님의 말씀을 성취하려 했기 때문이었습니다(25). 하나님의 말씀은 계시의 비밀로 만세 만대로부터 감추어져 있었습니다(26). 일찍이 하나님께서는 창세기 3장 15절에서 메시야를 보내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말씀은 많은 선지자들에 의해 증거되었습니다. 마침내 하나님의 말씀은 예수님께서 하늘나라의 모든 영광과 특권을 버리고 육신의 몸으로 이 땅에 오심으로 성취되었습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께서 이방인들에게 그리스도의 영광이 얼마나 풍성한가를 밝히 드러내셨습니다. 이 비밀은 성도들 안에 계신 그리스도, 곧 영광의 소망이었습니다(27).

28,29절을 보겠습니다. “우리가 그를 전파하여 각 사람을 권하고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가르침은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함이니 이를 위하여 나도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 우리는 이 말씀에서 사도 바울의 가르침의 내용, 방법, 목적과 자세를 배울 수 있습니다.

첫째로 사도 바울은 ‘그’를 전파했습니다.

28절을 읽겠습니다. “우리가 그를 전파하여 각 사람을 권하고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가르침은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함이니” ‘그’란 예수 그리스도를 말합니다. 사도 바울은 자기를 자랑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입을 벌렸다하면 자기를 자랑합니다. 사람들은 입을 벌렸다하면 자기 업적을 내세웁니다. 그러나 그는 철저하게 예수 그리스도를 자랑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했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어떠하심, 예수님의 인격, 예수님의 하신 일을 선전했습니다. 그의 말과 삶에서 예수님은 늘 주어가 되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사랑과 예수님의 은혜를 증거했습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과 영광과 고난을 증거했습니다(빌3:10,11). 그는 한 마디로 십자가의 복음과 부활의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는 사람들에게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를 때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됨을 가르쳤습니다. 그리고 사도행전 20장 21절을 보면 그는 “유대인과 헬라인들에게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증거했습니다. 바울은 이를 전하되 도매금으로 전하지 않고 각 사람에게 전했습니다. 28절에서 각 사람이란 단어가 3번이나 반복됩니다. 이를 볼 때 그의 가르침의 방법은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인격적으로 전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각 사람을 권하고,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가르쳤습니다. 모든 지혜란 성령을 의지했다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19장에는 에베소 개척사가 나옵니다. 사도 바울이 에베소를 개척할 때 제자들을 따로 세워서 두란노 서원이란 곳에서 날마다 두 해 동안을 말씀을 전했습니다. 두란노 서원에서 어떻게 그들을 도왔는가는 에베소 장로들에게 전한 고별 메시지에 잘 나타와 있습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일깨어 내가 삼 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행20:31).” 그는 각 사람을 3년 동안 훈계했습니다. 그는 겸손과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고 가르쳤습니다. 그는 겸손으로 교만을 이겼고, 인내로 핍박하는 원수들을 이겨 각 사람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 때 아시아에 복음이 전파되었습니다. 골로새 교회와 라오디게아 교회, 그리고 히에라볼리 교회가 개척되었습니다. 그리고 에베소에서 복음의 능력을 체험한 사도 바울은 로마에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선교 비전을 갖게 되었습니다.

둘째로 바울은 그들을 완전한 자로 세우기까지 수고했습니다.

29절을 보겠습니다. “이를 위하여 나도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란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를 말합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양들을 어디까지 도와야 할 것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성장하도록 도와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그는 힘을 다하여 수고했습니다. ‘힘을 다해 수고했다’는 영어로 all his energy, 그의 에너지를 모두 소진하기까지 그들을 위해 희생하고 헌신했다는 것입니다. 그는 몸을 사리지 않았습니다. 그는 설렁탕을 먹는 설렁설렁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몸을 던졌습니다.

그가 얼마나 몸을 던져 복음을 전했는가는 고린도후서 11장 23-33절에 잘 나와 있습니다. “그들이 그리스도의 일꾼이냐 정신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는 더욱 그러 하도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유대인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그리고 갈라디아서 6장 17절에서 “이후로는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지니고 있노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십자가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 많은 고난을 받고 상처를 받았습니다(행13:50,14:19, 고후11:25, 딤후3:10,11). 그 뿐만 아니라 루스드라에서는 돌에 맞아 죽었다가 살아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그에게는 많은 상처들이 남아 있었습니다. 이 상처는 영광의 상처였습니다. 그는 자기 양만 힘써서 도운 것만이 아니라 다른 양들도 도왔습니다. 사실 골로새서 2장 1절을 보면 골로새 교회는 사도 바울이 개척한 교회가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도 바울은 그들을 돕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대양처럼 마음이 넓은 사람이었습니다. 우리는 내가 돕는 형제들 자매들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돕는 형제자매들도 돌아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내가 돕는 양들이 선후배들과 사랑의 관계성을 맺도록 도와야 합니다. 어느 모임이든지 간에 한 사람이 6명과 사랑의 관계성을 맺으면 결코 그 사람은 그 공동체를 떠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넓게 양들을 섬겨야 합니다.

둘째, 그 안에서 행하라(2:6-16).

6,7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입어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다는 뜻이 무엇입니까? ‘주’는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말합니다(롬10:9).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가 되심은 복음의 핵심이요, 복음의 진수입니다. 우리는 예수님 하면, 섬기는 종 예수 그리스도, 제자들의 발을 닦아주신 예수님 등을 연상합니다. 이뿐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는 ‘주’가 되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죽음의 권세를 파하시고 부활하신 전능하신 하나님, 만유의 주, 만왕의 왕이십니다. 이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영접한 자들의 삶이 어떠해야 합니까?

첫째로 그 안에서 행해야 합니다.

‘행하다’는 뜻은 KJV에는 walk in Him이라고 했고, NIV에 보면 continue to live in Him이라 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면 누구를 막론하고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동고동락합니다. 예수님께서 가시는 곳에 내가 가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멈추시는 곳에 내가 멈춥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출애굽하여 광야를 통과할 때 밤에 불기둥이 멈추면 같이 멈추고 출발하면 같이 출발했습니다. 낮에도 구름 기둥이 멈추면 같이 멈추고 출발하면 같이 출발했습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영접한 사람은 성령과 동행하는 사람이요 성경 말씀에 따라 사는 사람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기의 뜻과 계획을 부인하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방향으로 가야 합니다. 그리고 ‘행하다’는 예수님과의 연합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나의 십자가요, 예수님의 죽으심이 나의 죽음으로 온전히 연합된 삶을 말합니다. 따라서 예수님을 주로 영접했다면 감정에 좌우되어서는 안됩니다. 그리고 예수님께 나의 생을 맡겨야 합니다.

둘째로 그 안에 뿌리를 박아야 합니다.

‘뿌리를 박는다’는 뜻은 헬라어 원어로 보면 완료형 분사로, 주 안에 믿음의 뿌리를 박는 것은 이미 완료된 기정사실이고, 이제부터는 계속 뿌리를 깊이 내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나무의 견고함은 그 뿌리의 깊이와 비례합니다. 뿌리가 깊이 내려진 나무는 비바람에도 넘어지거나 뽑히지 않습니다. 시냇가에 심겨진 나무가 과실을 절로 맺는 것은 뿌릴 깊이 내렸기 때문입니다. 신앙도 마찬가지로, 신앙의 뿌리를 예수님께 깊이 내리지 않으면 작은 역경과 환난에도 넘어지게 됩니다.

구체적으로 첫째는 구원에 뿌리를 내려야 합니다. 구원의 뿌리가 깊이 박혀 있지 않으면 언제든지 예수님의 제자에서 부처의 제자로, 공맹자의 제자로, 소크라테스의 제자로, 칼 마르크스의 제자로 바뀔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상에게 절하는 사람으로 전락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흑암의 권세에서 불러내어 그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신 은혜, 본질상 진노의 자식이었는데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구원의 은혜에 깊이 뿌리를 내려야 합니다. 비전이나 사귐이나 자기 야심에 뿌리를 내려서는 되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구원에 뿌리를 내려야 합니다.

둘째는 부르심에 뿌리를 깊이 박아야 합니다. 부르심은 사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구원이 보편적이라면 부르심은 구체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구원은 다를 수 없지만 하나님의 부르심에는 사람 모양이 각기 다르듯이 각기 다를 수 있습니다. 부르심은 사명과 일치되는 데, 부르심이 각기 다르듯이 하나님의 사명 또한 각기 다를 수 있습니다. 우리 교회의 사역은 캠퍼스 사역을 통한 성서한국과 통일한국, 세계 선교입니다. 우리는 이 부르심, the mission이 분명해야 하고, 이 사명에 뿌리를 내려야 합니다. 내가 캠퍼스에 나가 전도하지 못하면 물질로 기도로 여러 모양으로 섬겨야 합니다. 만일 우리가 the mission이 분명하지 않으면 여기 아니면 교회가 없는가, 여기 아니면 내가 예수님 믿을 곳이 없는가 하고 언제든지 교회를 떠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the mission이 분명해야 하고, 이 미션, 부르심에 뿌리를 내려야 합니다.

셋째는 말씀에 뿌리를 박아야 합니다. 진리의 말씀에 뿌리를 내릴 때 예수님의 제자가 될 수 있고, 진리를 알 때에 그 진리가 우리를 자유케 합니다(요 8:31,32). 그 때 시냇가에 심은 나무처럼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게 되고,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아 그 행사가 다 형통하게 됩니다(시1:3).

셋째로 세움을 받아야 합니다.

‘세움을 받다’란 헬라어로 현재 분사형으로, 터 위에 계속적으로 지어야 한다는 것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영접한 사람들은 그 기초 위에 계속적으로 집을 지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집을 짓되 어떤 재료로 집을 짓느냐는 매우 중요합니다. 고린도전서 3장 10-13절을 보면 금이나 은이나 보석으로 집을 지을 수 있고,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집을 지을 수도 있습니다. 사람들이 금과 은, 보석으로 짓기보다 나무나 짚이나 풀로 짓는 것은 구하기 쉽고, 또 쉽게 집을 지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금이나 은이나 보석은 구하기도 힘들고, 많은 노력과 오랜 시간이 걸리게 됩니다. 요즘 같이 대량 생산 시대와 속성 재배 시대에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짓는 것이 훨씬 현명할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문제는 불 시련을 만날 때입니다. 불 심판을 받을 때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지은 집은 다 타 없어지지만 금이나 은이나 보석으로 지은 집은 타지 않게 됩니다. 당시에 고린도에 큰 화재가 발생하여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지은 집은 다 타고, 금과 은과 보석으로 지은 집만이 남았고, 시카고에도 1871년 10월 8일 대화재시 시카고 전 시가가 다 불에 타고, 돌로 지은 두 집만이 유일하게 남았습니다. 불에 타지 않는 금과 은, 보석은 이미 불순물을 제거하기 위해 용광로에 몇 번씩 제련된 것입니다. 용광로에서 연단을 많이 받은 보석일수록 불순물이 제거되고 순도가 높아 그 빛과 진가를 발하게 됩니다. 이처럼 금과 은과 보석으로 지어졌다는 것은 자기가 온전히 녹아나고 깨진 믿음의 사람을 말합니다.

베드로전서 1장 17절을 보면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고난과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믿음은 십자가의 고난과 희생과 훈련을 통해 순수하게 되고 견고하게 됩니다. 이 세상은 죄악 되고 혼탁합니다. 절대적인 진리가 점점 퇴색되어 상대적이고 육신적입니다. 음란하고 물질적입니다. 우리는 이런 세상에 살고 있기 때문에 나도 모르게 이런 것들의 영향을 받기 쉽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용광로 훈련을 통해 이런 죄악 된 생각과 사상들이 다 녹아나고 순수한 믿음을 갖게 됩니다. 시련과 역경으로 형성된 믿음이야말로 고귀한 믿음입니다. 역경을 많이 겪은 믿음의 사람들은 오늘의 역경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나무, 풀, 짚 같은 것으로 지어진 집은 그 지은 것이 다 타 없어지고, 그을린 상태로 겨우 부끄러운 구원을 받게 됩니다. 우리는 고난을 사랑하고 많은 훈련을 받아 순수하고 복음적인 종이 되어 어떤 불 시련과 광풍에도 무너지지 않는 믿음의 집을 지어야 하겠습니다.

넷째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이 넘쳐야 합니다.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이 넘칠 때에 그 어떤 그릇된 사상과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유혹할지라도 넘어가지 않게 됩니다. 성도들이 철학과 헛된 속임수에 넘어가지 말아야 할 이유는 이것은 사람의 전통과 세상의 초등학문을 따름이요 그리스도를 따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8). 세상의 초등학문에는 한마디로 건질 것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 안에는 구원이 없고, 진리가 없고, 생명이 없고, 어떤 능력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는 신성의 모든 충만함이 육체로 거하십니다. 9절을 보세요. “그 안에는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시고(9)” 그 안에 하나님의 영광과 은혜와 진리가 충만합니다. 그 안에 구원이 충만하고, 그 안에 생명이 충만하고, 그 안에 빛이 충만하고, 그 안에 희망과 소망이 충만하고, 그 안에 믿음이 충만하고, 그 안에 권능이 충만하고, 그 안에 비전이 충만합니다. 그 안에 거룩과 겸손과 온유가 충만합니다. 기쁨과 행복이 충만합니다. 그 안에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십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영접했을 때 그 안에서 충만케 되었습니다(10). 구원과 생명이 충만하고, 비전이 충만하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 충만하고, 어두운 세력이 물러가고 밝고 빛난 삶으로 충만케 되었습니다. 무기력한 인생에서 약동하는 인생으로, 절망적인 인생에서 희망찬 인생으로, 어둡던 인생에서 밝은 인생으로, 실패의 인생에서 승리의 인생으로 충만케 되었습니다. 이기적인 삶에서 희생적인 삶으로 변화되었습니다. 추하고 더럽고 촐랑대고, 쉽게 분노하고, 쉽게 좌절하고, 쉽게 은혜를 배반하고, 이기적이며 쾌락적이고 교만하고 안일하여 드러눕기를 좋아하던 삶에서 이제는 그 안에서 거룩하고 도전하여 승리하고 인내하고 은혜를 소중이 여기는 충만한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통치자와 권세의 머리이시고, 모든 생명체의 근원이십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영접하였습니다. 이제 우리는 그 안에서 행하고, 그 안에서 뿌리를 내리고, 그 안에서 지음을 받고, 그 안에서 굳게 서며, 그 안에서 감사함이 넘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 때 우리는 세상의 모든 그릇된 것들로부터 미혹을 받지 않고 믿음의 승리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찬송가 456장을 부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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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세기에서 만난 복음
                                (생명의말씀사,2011)

                                    저서 구입연락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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