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진 성을 중건하자.

조회 수 2449 추천 수 0 2012.07.11 06:16:14
느헤미야서1:1-3:32, 요절, 2:17

거룩한 성을 중건하자

“후에 그들에게 이르기를 우리가 당한 곤경은 너희도 보고 있는 바라 예루살렘이 황폐하고 성문이 불탔으니 자, 예루살렘 성을 건축하여 다시 수치를 당하지 말자(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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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주변에는 많은 것들이 무너져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의 시대를 파괴의 시대라고 합니다. 질서파괴, 가격파괴, 성별파괴, 학력파괴 등등이 있습니다. 가정도 파괴되고, 예배도 파괴되었습니다. 복음신앙도 파괴되었습니다. 자기부인과 자기십자가도 파괴되었습니다. 이 모든 것을 다시 세워야 합니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하나님께 대한 예배부터 재건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잃어버렸던 예배의 감격과 막혔던 기도의 문부터 재건해야 합니다. 우리는 새벽을 깨워 새벽 무릎을 재건해야 합니다. 이때에 우리의 삶이 달라지고, 가정이 달라지고, 교회는 달라지고, 직장이 달라지고, 민족이 달라지고, 대학이 달라지고, 청년들이 달라질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느헤미야가 거룩한 예루살렘 성벽이 무너졌다는 기막힌 소식을 듣고 울면서 금식하며 기도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리고 일어나 거룩한 성벽을 재건하는 데 앞장을 서는 모습이 보입니다. 우리는 느헤미야의 믿음과 기도를 배워 무너진 예배를 세우고, 기도를 새롭게 세우고, 민족의 심장인 대학을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재건하여 민족 공동체가 살아나도록 기도합시다.

첫째, 기도하는 느헤미야(1-11).

느헤미야는 바벨론에서 태어나 바벨론에서 자란 바벨론 포로 2,3세대였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긍휼함을 입어 아닥사스다왕의 술관원이 되었습니다. 술관원은 지금으로 말하면 경호실장 정도의 직책입니다. 당시에 왕은 매일 술을 마셨기 때문에 왕이 술을 마시기 전에 일단 그 맛을 보는 사람이 필요했습니다. 왜냐하면 왕이 마시는 술에 독약이라도 들어있다면 왕은 죽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느헤미야는 왕의 생명을 책임지고 있는 중요한 직책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술관원은 단순히 술을 검사하고 왕에게 바치는 것뿐만 아니라 왕과 같이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며 그 자리에서 국사를 논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재정과 옥쇄를 관리하는 중요한 직책이기도 했습니다. 2장 6절을 보면 그는 왕후와 함께 하는 자리에도 함께 할 수 있을 만큼 왕의 신임을 받았습니다. 그는 수산궁에서 왕과 더불어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불란서의 꼬냑을 마시며 궁중에서 인생을 즐기며 아무 부족함 없는 삶을 살았습니다.
2,3절을 보겠습니다. 그 때 예루살렘에 다녀온 형제 중 하나인 하나니가 두어 사람과 함께 수산궁으로 느헤미야를 찾아왔습니다. 느헤미야는 그들에게 유다 사람과 예루살렘의 형편을 물었습니다. 예루살렘은 어떤 곳입니까? 예루살렘은 예배의 중심지요, 신앙의 고향이요,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입니다. 이 때 그들의 대답이 어떠했습니까? 예루살렘 성벽이 훼파되고 성문들은 다 불에 타고 예루살렘 성전만 휑하게 있더라는 것입니다.

성벽은 외적의 침입을 막아주는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특히 예루살렘 성벽은 이방의 그릇된 사상을 막아주는 역할을 합니다. 따라서 성벽이 없으면 세상의 각종 우상의 죄악들이 여과 없이 침투되어 하나님의 성전이 언제 어느 때 또 다시 파괴되어 수모를 당할지 모릅니다. 느헤미야는 거룩한 예루살렘성이 훼파되고 불에 탔다는 기막힌 소식을 듣고 무엇을 했습니까? 4절을 읽겠습니다. “내가 이 말을 듣고 앉아서 울고 수일동안 슬퍼하며 하늘의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기도하여” 그는 그 말을 듣자마자 너무 슬퍼 수 일 동안 울었습니다. 그는 조국의 참담한 현실 앞에 울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는 민족의 슬픔을 자신의 슬픔으로 여겼습니다. 민족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으로 여겼습니다. 민족의 굶주림을 자신의 굶주림으로 여겼습니다. 민족의 환란을 자신의 환란으로 여겼습니다. 민족의 헐벗음을 자신의 헐벗음으로 여겼습니다. 민족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으로 받아들였을 때에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여러분은 언제 웁니까? 대개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슬픈 처지를 보고 웁니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거룩한 예루살렘 성벽이 무너져 훼파되고 성문이 불에 탔다는 소식을 듣고 울었습니다. 우리는 느헤미야처럼 자신의 처지를 바라보고 울 것이 아니라 거룩한 눈물을 흘릴 수 있어야 합니다. 지금 우리는 이혼을 커피를 마시듯이 하고 있는 가정의 위기를 목도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무너져가는 가정의 위기를 보고 울어야 합니다. 우리는 진리의 전당인 대학이 취업 학원으로 전락하는 것을 보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를 보고 울어야 합니다. 우리는 내가 다니는 직장이 음란과 물신으로 무너져가는 것을 목도합니다. 우리는 이를 보고 울어야 합니다. 우리는 교회가 복음신앙보다 기복신앙으로 무너져가는 것을 보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를 보고 울어야 합니다. 믿음이 선배들이 순교적인 각오로 지켜낸 복음 신앙이 지금 지켜지고 있습니까? 아니라면 이를 보고 눈물이 납니까? 눈물을 흘리십시오. 캠퍼스에 전도가 사라지고 성경 공부가 무너졌고, 예배의 감격이 사라졌습니다. 우리는 이를 보고 울어야 합니다. 우리는 자신의 슬픈 처지를 보고 울지 말고 신앙이 무너지고, 열정이 식고, 기도생활이 무뎌진 나 자신과 민족을 보고 울어야 합니다.

그는 우는 것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는 한 단계 더 나갔습니다. 그는 금식하며 기도했습니다. 그는 무너진 성벽은 금식하며 기도할 만큼 절박하고도 심각한 문제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는 인간의 기본 욕구인 먹는 문제를 절제하며 기도했습니다. 그는 형식적이거나 의례적으로 기도하지 않고 기도에 자기 심장을 실어서 기도했습니다. 그는 한 번 기도하고 끝난 것이 아니라 2장 1절을 보면 4개월간 계속하여 기도했습니다. 그가 이처럼 기도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과 조국을 너무나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사랑이란 무엇입니까? 사랑이란 아픔을 함께 나누고, 그를 위해 기도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여 사랑의 표현은 기도입니다. 사랑한다고 하면서 기도하지 않는 것은 말장난이며 변명입니다. 우리가 정말 양을 사랑하고, 캠퍼스를 사랑하고, 가정을 사랑하고, 자녀를 사랑하고, 부모를 사랑하고, 직장을 사랑하고, 민족을 사랑하고, 평양을 사랑한다면 기도해야 합니다. 예배를 사랑한다면 예배를 위해 기도하십시오.

사랑하는 여러분, 자녀를 사랑합니까? 그렇다면 자녀를 위해 기도하십니까? 부모님을 사랑합니까? 그렇다면 부모님을 위해 기도합니까? 목사를 사랑합니까? 그렇다면 목사를 위해 기도합니까? 민족을 사랑합니까? 그렇다면 민족을 위해 기도합니까? 교회를 사랑합니까? 그렇다면 교회를 위해 기도합니까? 캠퍼스를 사랑하고 직장을 사랑합니까? 그렇다면 캠퍼스와 직장을 위해 기도합니까? 어떤 문제 앞에 비방하고 원망하고 비판하고 불평하지 마십시오. 기도하십시오. 비방하고 비판하고 불평하고 원망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거기에는 창조 역사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기도하는 곳에 변화의 역사 창조의 역사가 있습니다. 우리가 가슴이 찢어지는 아픔으로 금식하며 눈물로 기도하십시오. 야고보서 5장 16절은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남자들에게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분노와 다툼이 없이 거룩한 손을 들어 기도하기를 원한다고 했습니다(딤전2:8). 느헤미야는 기도를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느헤미야는 기도의 영광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느헤미야는 기도의 능력을 아는 위대한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우리가 새벽잠을 깨워서 주님께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기도의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느헤미야는 하나님께 금식하며 기도했습니다. 그가 기도하는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을 어떤 분으로 믿고 기도하느냐는 매우 중요합니다. 그는 위대하고 두려운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5절을 읽겠습니다. “가로되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 크고 두려우신 하나님이여 주를 사랑하고 주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 언약을 지키시며 긍휼을 베푸시는 주여 간구하나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믿는 것만큼 역사하십니다. 우리가 위대하시고 존귀하신 하나님을 믿으면 우리는 위대하고 존귀한 자가 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께 대해 입을 여는 것만큼 채워주십니다. “네 입을 넓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시81:10).” 하나님은 세계를 주실 분으로 믿으면 세계를 주십니다. 하버드를 주실 분으로 믿으면 하버드대학을 주십니다. 요한 웨슬리는 세계를 목장으로 주실 분으로 믿고 기도했을 때에 하나님은 세계를 주셨습니다. 윌리엄 케리는 초등학교도 나오지 못한 구두수선공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위대한 하신 하나님을 믿고 기도했습니다. “위대하신 하나님을 믿으라. 위대하신 하나님께 기도하라. 그리고 위대한 일을 이루실 것을 기대하라.” 그가 위대하신 하나님을 믿고 기도하고 기대했을 때 하나님은 그를 위대케 하시어 근대 선교의 아버지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는 신실하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사람들은 신실하지 못합니다, 약속을 지키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신실하십니다. 신실하신 하나님은 그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 반드시 언약을 지키십니다. 그리고 그는 긍휼을 베푸시는 긍휼의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긍휼의 하나님은 보잘 것 없는 나 한 사람을 외면치 않고 깊은 관심을 가지고 살펴 주십니다. 나의 삶 속에 일어나는 슬픔과 고통과 눈물을 외면치 않으시고 애정으로 돌봐 주십니다.

그의 기도의 자세가 어떠합니까? 하나님께 회개부터 했습니다. 6,7절을 보겠습니다. “이제 종이 주의 종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주야로 기도하오며 이스라엘 자손의 주 앞에 범죄함을 자복하오니 주는 귀를 기울이시며 눈을 여시사 종의 기도를 들으시옵소서 나와 나의 아비 집이 범죄하여 주를 향하여 심히 악을 행하여 주의 종 모세에게 주께서 명하신 계명과 율례와 규례를 지키지 아니하였나이다.” 그는 그와 그의 민족의 죄를 회개했습니다. 사실 성벽이 무너진 것은 느헤미야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조상의 죄로 인함입니다. 그러나 그는 거룩한 예루살렘 성벽이 무너진 것은 나와 나의 아비집의 범죄로 인함이라고 고백했습니다.

사람들은 일이 잘 안될 때에 남의 탓으로 돌리고자 하는 악한 속성이 있습니다. 우리 속담에 “잘되면 자기 복, 안되면 조상 탓을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교회가 부흥하지 않으면 목사는 성도 탓을 하고, 성도는 목사 탓을 합니다. 경제가 나쁘면 대통령에게 모든 탓을 돌립니다. 사람들은 잘 안되는듯 싶으면 다른 사람을 원망하고 탓하고 다른 사람에게 책임을 전가합니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무너진 성벽의 문제를 조상 탓으로 돌리지 않고 자기 탓으로 돌렸습니다. 지금 캠퍼스가 부흥되지 않는 것, 예배당의 빈자리가 있는 것, 교회가 하향곡선으로 긋는 것은 다른 사람의 죄가 아닌 나의 죄로 여기고 회개할 때에 역사는 시작됩니다. 이번 수양회를 준비하면서 새벽마다 나의 죄를 애통히 여기며 마음을 모아 기도했을 때에 하나님은 크게 역사하셨습니다. 다른 사람의 죄를 캐고 다른 사람에게 책임을 전가하지 말고 나의 죄로 인함을 애통히 여기시기 바랍니다.

8-11절을 보겠습니다. 그는 기도한 후에 성벽 재건에 쓰임 받도록 기도했습니다. 11절을 보겠습니다. “주여 구하오니 귀를 기울이사 종의 기도와 주의 이름을 경외하기를 기뻐하는 종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오늘날 종으로 형통하여 이 사람 앞에서 은혜를 입게 하옵소서” 그는 다른 사람이 아닌 내가 가겠습니다. 제가 가서 무너진 성벽을 재건하겠습니다. 저에게 이 사람 앞(왕)에서 은혜를 입어서 걸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는 무너진 성벽을 재건하고자 결단했습니다. 그는 다른 사람이 아니라 내가 100% 하나님께 헌신하고자 했습니다. 그의 기도는 행동으로 옮겨졌습니다. 기도란 바로 행동으로 나타납니다. 기도하고 행동으로 나타나지 않는 것은 헛된 기도입니다.

둘째, 백성들의 가슴에 믿음을 심는 느헤미야(2:1-20).

그는 하나님께 기도하고 때를 기다렸습니다. 드디어 때가 왔습니다. 2장 1,2절을 보면 아닥사스다 왕은 느헤미야의 얼굴이 어두워 있는 것을 보고 자초지종을 물어보았습니다. 그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나의 열조의 묘실있는 성읍이 이제까지 황무하고 성문이 불에 탔다는 소식을 듣고 근심이 되어 그러합니다.” 왕이 느헤미야의 말을 듣고 무엇을 해 주기를 원하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는 먼저 하나님께 기도한 후에 겸손하게 왕에게 사실을 고했습니다. 나를 유다 땅 나의 열조의 묘실있는 성읍에 보내어 그 성을 중건하게 해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왕이 언제 돌아오겠느냐 물었을 때 이만큼 기한을 주면 모든 일을 마치고 돌아오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비자까지 발급해 주기를 요청했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성벽을 재건할 재목까지 공급해 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이처럼 그는 일단 해보고자 한 것이 아니라 기도 중에 용의주도한 계획을 세웠습니다. 왕은 모든 것을 허락했습니다.

그 때 그의 고백이 무엇입니까? 8b절 보겠습니다. “내 하나님의 선한 손이 나를 도우심으로 왕이 허락하고” 그는 모든 것을 하나님의 선한 손길임을 고백했습니다. 그는 자신을 광내지 않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그러나 그에게 항상 평탄한 길만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10절을 보면 산발랏과 도비야가 방해공작을 폈습니다. 하나님의 역사가 있는 곳에는 항상 반드시 사탄 마귀의 방해가 있습니다. 느헤미야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예루살렘에 도착하여 3일이 지난 후에 무너진 성벽을 현장 답사했습니다. 답사하고 돌아온 뒤에 느헤미야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17절을 보겠습니다. “후에 저희에게 이르기를 우리의 당한 곤경을 너희도 목도하는바라. 예루살렘이 황무하고 성문이 소화되었으니 자, 예루살렘 성을 중건하여 다시 수치를 받지 말자하고(17)” 느헤미야는 혼자 성벽을 재건하지 않았습니다. 백성들과 함께 성벽을 재건했습니다. 18절을 보면 그는 백성들에게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베푸신 선한 역사를 설명하자 백성들이 일어나 건축하자 했습니다. 무너진 성벽을 재건하여 수치를 면하자 했습니다. 성벽이 없으니 얼마나 사람들로부터 조롱을 당했겠습니까? 얼마나 무시를 당했겠습니까? 백성들의 가슴에는 한이 서려 있었습니다. 우리가 국력이 쇠할 때에 우리가 강대국으로부터 얼마나 무시를 받으며 살았습니까?

그는 어떻게 무너진 성벽을 재건하였습니까? 느헤미야 한 사람의 믿음은 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역사를 이루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수에 있지 않습니다. 믿음이 있는 한 사람만 있으면 됩니다. 느헤미야의 가슴속에 있던 작은 소망이 이제는 모든 사람의 가슴속으로 확산되었습니다. 작은 불꽃 하나가 모든 사람들의 가슴 속에 불꽃을 일으켰습니다. 거룩한 믿음의 불꽃이 가슴마다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이처럼 소망의 한 사람, 가능성의 한 사람, 믿음의 한 사람만 있으면 민족이 달라집니다. 교회가 달라집니다. 가정이 달라집니다. 나 한사람의 믿음은 무너진 일대일이 재건되어 가정과 직장과 교회와 민족에 복음의 꽃이 피게 되고, 열매를 맺어 그리스도의 계절이 이 땅에 오게 됩니다. 그 때 우리는 수치를 면하게 됩니다. 우리가 무너진 일대일의 성벽을 재건하여 무너진 가정과 캠퍼스와 직장과 민족과 교회가 재건되기를 기도합니다.

셋째, 양문부터 성벽을 재건하는 느헤미야(3:1-32).

3장 1절을 읽겠습니다. “때에 대제사장 엘리아십이 그 형제 제사장들과 함께 일어나 양문을 건축하여 성별하고 문짝을 달고 또 성벽을 건축하여 함메아 망대에서부터 하나넬 망대까지 성별하였고” 성벽재건은 양문으로부터 시작해서 서쪽으로 함메아 망대, 하나넬 망대 순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양문에서부터 재건을 시작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양문은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리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무너진 성벽이 여기저기 많지만 가장 먼저 회복되어야 할 부분이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임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 주변에는 많은 것들이 무너져 있습니다. 질서파괴, 성별파괴, 가정 파괴, 예배 파괴 등입니다. 일대일 역사도 파괴되고 복음신앙도 파괴되었습니다. 우리는 이 모든 것을 다시 세워야 합니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하나님께 대한 예배부터 재건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잃어버렸던 예배의 감격과 막혔던 기도의 문부터 재건해야 합니다. 그리고 본문을 보면 ‘그 다음은’이란 단어가 반복됩니다. 즉 이는 자기가 서야 할 위치에 서서 그 일을 하고, 또 다른 사람이 그 옆에 서서 자기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는 질서와 조화를 이루면서 협력하여 위대한 역사를 이룬 것을 말하여 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성벽 재건 역사는 한 사람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백성들이 혼연일체가 되어 마음을 모아 재건한 역사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한편 성벽을 재건에 동참하지 않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귀족들이었습니다(5b). 하나님의 역사에는 부정적이고 비판적이고 역사에 동참하지 않는 자들이 있게 마련입니다. 문제는 협조하지 않는 그들의 비웃음과 비판에 영향을 받지 않고 묵묵하게 성벽을 재건하는 하는 사람들이 더 많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목소리를 크게 내는 사람보다 묵묵하게 기도하는 사람들이 더 많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따라서 그들에게 휘말리고 기가 죽어서는 되지 않습니다.

3장을 보면 12가지 이상의 직종이 등장합니다. 대제사장이 등장하고 금장색과 향품 장사가 등장하고 상고 곧, 장사하는 사람들이 나옵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여러 가지 재능을 가진 사람들을 통해서 역사해 나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20절을 보면 자기 일을 끝낸 사람은 놀지 않고 오히려 힘써서 중수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느헤미야에게 큰 격려가 되었습니다. 29절을 보면 하나님의 역사는 그들에게도 유익이 되었습니다. “그 다음은 임멜의 아들 사독이 자기 집과 마주 대한 부분을 중수하였고(29a)” 그들이 열심히 예루살렘성을 쌓았는데 결국 자기 집에 유익이 되었습니다. 자기 집이 안전하게 되었고, 자기 집이 아름답게 단장되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일을 먼저 할 때, 큰 축복을 받게 됩니다. 성경은 말씀했습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러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6:33).”

느헤미야는 파괴된 성벽의 소식을 듣고 위대하신 하나님께 울며 기도했습니다. 마침내 하나님의 선하신 도우심으로 예루살렘으로 가서 무너진 성벽이 재건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가 위대하신 하나님께 나아가 무너진 예배의 재건하고 무딘 기도를 재건하고 캠퍼스를 재건하기를 기도합니다. 그리고 일대일 성경공부를 재건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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