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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추수감사 예배(골로새서 2:6,7, 요절, 2:7)
감사를 넘치도록 하라.
“그 안에서 행하되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입어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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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중앙일보 정진홍 논설위원이 8여(여덟 가지 여유)와 8부족(여덟 가지 부족)에 관한 글입니다. 경기도 파주시 광탄면 용미리와 고양시 덕양구 고양동을 잇는 ‘혜음령’이란 고개가 있습니다. 혜음령에 예로부터 내려오는 두 도적 이야기가 있습니다. 두 도적은 도적질을 해 빼앗은 장물들이 더 이상 숲에 숨길 곳이 없을 만큼 많아지자 두 도적은 서로 죽일 생각을 하였습니다. 물론 장물은 둘로 나눠가져도 충분했지만 두 도적은 나누는 것이 성에 차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한 도적이 다른 도적을 죽일 요량으로 독이 든 술을 구하러 갔습니다. 반면에 다른 도적은 그가 돌아오면 목을 베리라 마음먹고 칼을 갈았습니다. 결국 독이 든 술을 갖고 오던 도적은 칼을 맞고 목이 날아갔습니다. 하지만 칼을 쓴 도적은 장물들을 독차지하게 된 것에 들뜬 나머지 무심결에 독이 든 술을 흥에 겨워 마시고 그 역시 죽었습니다. 족함을 모른 두 도적은 결국 모두 죽고 말았습니다.
한편 혜음령에서 멀지 않은 곳에 명봉산이란 곳이 있습니다. 조선 중종 때 동부승지를 지낸 김정국이란 사람이 기묘사화에 연루돼 삭탈관직 당하여 이곳에 은거해 살며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토란국과 보리밥을 넉넉히 먹고, 등 따뜻하게 넉넉히 잠자고, 맑은 샘물을 넉넉히 마시고, 서가에 가득한 책을 넉넉히 보고, 봄꽃과 가을 달빛을 넉넉히 감상하고, 새와 솔바람 소리를 넉넉히 듣고, 눈 속에 핀 매화와 서리 맞은 국화 향기를 넉넉히 맡는다. 그리고 이 일곱 가지를 넉넉히 즐기니 이것이 팔여, 여덟 가지 여유다.” 그래서 김정국을 8여거사라고 일컫습니다. 그는 훗날 다시 등용되어 당대에 칭송을 얻고 후대에 이름을 남겼습니다. 족한 줄도 모르고 장물을 독차지하려다 결국 둘 다 죽은 혜음령의 이름 모를 도적들과 억울하고 힘든 세월을 넉넉한 마음 하나로 이겨낸 8여거사, 김정국의 삶을 극명하게 갈라놓은 것은 다름 아닌 ‘족함을 아느냐, 모르냐’였습니다.
세상은 ‘8여’보다 ‘8부족(八不足)’의 아우성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즉 “진수성찬을 배불리 먹고도 부족하고, 휘황한 난간에 비단병풍을 치고 잠을 자면서도 부족하고, 이름난 술을 실컷 마시고도 부족하고, 멋진 그림을 보고도 부족하고, 아리따운 여인과 한껏 즐기고도 부족하고, 좋은 음악을 듣고도 부족하고, 희귀한 향을 맡고도 부족하다. 여기 한 술 더 떠서 이 일곱 가지 부족한 게 있다고 한탄하는 것”이 8부족입니다. 족함을 모르는 것은 병 중 큰 병이고, 불행 중 가장 큰 불행입니다. 반면에 족함을 아는 것이야말로 심신이 온전할 수 있는 근간이요 최고의 행복 비결입니다. 바울은 어떠한 형편 중에서도 자족하기를 배웠습니다(빌4:11). 그리고 지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에 큰 이익이 된다고 했습니다(딤전6:6).
지난주는 추수감사절(Thanksgiving Day)이었습니다. 청교도들이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미지의 신대륙에 내려 거둔 첫 수확을 감사한 데서 유래한 것입니다. 미국인들은 추수감사절을 크리스마스 못지않게 여깁니다. 고향을 떠나 있던 사람들은 모두가 고향을 찾아갑니다. 미국이란 나라가 시작은 미미했습니다. 그들이 나중에 창대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들의 선조들이 넉넉하지 못한 데서도 자족함을 알고 감사할 줄 알았기 때문입니다. 자족한 마음에 복이 깃들고 감사한 마음에 길이 트입니다. 어떤 형편 중에도 자족하면 감사가 생기고 기쁨이 생깁니다.
본문을 보면 바울은 골로새 성도들에게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를 넘치도록 하라”고 하였습니다. “감사를 넘치도록 하라.” 이는 감사하는 마음이 가득 차고 넘쳐서 다른 사람에게로 흘러가도록 하라는 말씀입니다. 다시 말해 감사의 통로가 되라는 것입니다. 감사를 하게 되면 우리의 영혼과 마음과 육체가 건강해집니다. 감사를 많이 하게 되면 인간관계가 윤택해집니다. 감사 충만은 행복 충만, 기쁨 충만이 됩니다. 본문을 통해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영접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을 감사하기 바랍니다. 그리고 감사가 넘쳐서 행복 충만, 기쁨 충만이 되는 삶을 살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하고 기도합니다.
6a절을 읽겠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영접했습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전에 골로새 성도들은 어떤 상태에 있었습니까? 그들은 흑암의 권세 아래 있었습니다. 1장 13절을 보겠습니다.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 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흑암의 권세 아래 있었다’는 것은 사단의 통치를 받았다는 것입니다. 사단의 속성은 어두움입니다. 절망입니다. 두려움입니다. 불안입니다. 원망과 불평입니다. 분노입니다. 미움입니다. 증오심입니다. 부정적입니다. 불만입니다. 공격적입니다. 한(恨)입니다. 공허입니다. 실패감입니다. 소외감입니다. 좌절입니다. 약함입니다. 이와 같이 사람이 사단의 통치를 받게 되면 어두운 삶을 살게 됩니다. 결국 그런 삶을 살다가 하나님의 심판을 받고 죽음에 이르게 됩니다.
이런 골로새 성도들이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영접하였습니다. ‘주’는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우주와 만물을 창조하신 창조주이십니다. 예수님은 눈에 보이는 세계 뿐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 보좌들이나 주관들이나 정사들이나 권세들을 창조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혀 인간들의 죄를 대속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신 주님이십니다. 그들이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영접하여 삶이 달라졌습니다. 사단이 통치하는 어두운 나라에서 그의 아들의 나라로 옮겨졌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속성은 사랑입니다. 기쁨입니다. 만족입니다. 행복입니다. 평안입니다. 자신감입니다. 안심입니다. 자유입니다. 용기입니다. 존경입니다. 열정입니다. 매력입니다. 따뜻함입니다. 충성입니다. 강함입니다. 확신입니다. 희망입니다. 능력입니다. 자신감입니다. 신실함입니다. 감사입니다.
이처럼 누구든지 예수님을 주로 영접하면 어두움이 물러가고 밝은 삶을 살게 됩니다. 영혼의 자유와 기쁨이 넘치는 삶을 살게 됩니다. 감사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하나님께 속한 모든 신령한 복들을 받아 다음 세대에 나눠주는 복의 통로, 긍휼의 통로가 됩니다. 믿음의 가정이 뭐냐 하면 하나님의 복을 다음 세대에 나눠주는 그릇입니다. 결혼은 단순히 시집가고 장가가는 그런 것이 아님을 아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살다보면 때론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칠흑 같은 밤을 맞을 때가 있습니다. 시련이 닥칠 때가 있습니다. 위기의 순간을 만나기도 합니다. 그런 순간에도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영접한 사람들은 하나님께 감사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알고, 십자가에서 나를 구원하신 것이 감사 제목이 됩니다. 영생을 주신 것이 감사가 됩니다. 주님 안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나를 바라보면 희망과 용기, 그리고 기쁨이 생깁니다. 찬송과 감사가 나옵니다. ‘주’되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생각하면 모든 것이 감사입니다. 세상의 안경을 쓰고 나와 세상을 보면 모든 것이 부족하게 보이고 그러다 보니 불평과 원망이 생깁니다.
그러나 주님의 안경을 쓰고 나와 세상을 보면 모든 것이 감사가 됩니다. 내가 지금 살아 있다는 것 자체가 감사입니다. 숨 쉴 공기를 주신 것이 감사입니다. 먹을 것, 입을 것, 잠잘 곳을 주신 것이 감사입니다. 대학에서 공부한다는 것 자체가 감사입니다. 졸업하고 취직을 하고, 어진 여인과 결혼하고, 믿음의 형제와 결혼을 한 것이 감사입니다. 사랑스러운 자녀들이 있다는 것이 큰 감사입니다. 교회에서 믿음의 사람들을 만난 것이 감사입니다. 생명 구원 역사에 쓰임 받고 있는 것이 감사입니다. 시련을 통하여 연단하시고 정하게 하시는 것이 감사입니다. 때마다 영생의 말씀으로 우리를 먹이시는 것이 감사입니다. 힘든 일이 있을 때 기도하고,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 아버지가 계시는 것이 감사가 됩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미천한 우리 속에 내주하시는 것이 감사입니다. 주님 안에 있으면 범사가 감사의 제목이 됩니다.
우리가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것에 감사하려고 하면 감사할 수 없습니다. 불신자들은 눈에 보이는 감사할 조건이 있어야 감사합니다. 그러나 믿는 사람들은 근본적으로 흑암의 권세에서 건짐을 받아 그리스도의 나라로 옮겨진 것을 감사합니다. 영원히 꺼지지 않는 지옥의 불구덩이에서 건짐을 받았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영접하여 흑암의 나라에서 하나님 나라로 옮겨진 것을 감사합시다.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면 이제 어떻게 해야 합니까?
첫째, 그 안에서 행하며, 그 안에 뿌리를 박아야 합니다(6b,7a).
6b,7a절을 보겠습니다. “그 안에서 행하되,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입어 그 안에서 행하라.” ‘행하다’는 것은 영어로 walk in Him(KJV), continue to live in Him(NIV)으로,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동고동락하는 것입니다. 즉 예수님께서 가시는 곳에 내가 가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멈추시는 곳에 내가 멈추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하여 광야를 통과할 때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하셨습니다. 그들은 밤에 불기둥이 멈추면 멈추고, 불기둥이 출발하면 그들도 출발했습니다. 낮에 구름 기둥이 멈추면 멈추고, 구름 기둥이 출발하면 그들이 움직였습니다. 이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영접한 사람은 성령과 동행합니다. 성경 말씀을 좇아 삽니다. 그리고 ‘행하다’는 것은 예수님과의 연합입니다. 예수님과의 연합은 예수님의 십자가는 나의 십자가요, 예수님의 죽으심은 나의 죽음으로 여기는 것입니다.
‘뿌리를 박다’는 헬라어에 완료형 분사, 즉 주님 안에 믿음의 뿌리를 박는 것은 이미 기정사실이고, 이제부터 계속 뿌리를 깊이 내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나무의 크기는 그 뿌리의 깊이와 비례합니다. 뿌리가 깊이 내려진 나무는 비바람에도 넘어지거나 뽑히지 않습니다. 신앙도 마찬가지로, 신앙의 뿌리를 예수님께 깊이 내리면 역경과 환난에도 넘어지지 않습니다. 골로새 교인들은 복음을 받았으나 그 안에 뿌리를 내리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거짓 교사들이 가르치는 이론과 신비주의에 더 나은 무엇이 있지 않을까 하여 기웃거렸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기대와는 달리 이런 것에서 더 나은 무엇인가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만으로 우리 인생의 모든 기대가 충족됩니다. 오직 그리스도만이 우리 마음과 영혼의 온갖 필요를 채워주시고, 우리의 삶을 충만하게 하십니다.
골로새서 2장 3절을 보면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 있다고 했습니다. 에베소서 1장 23절에는 그리스도는 모든 것을 충만케 하시는 충만하심이라고 했습니다. 그분은 사랑이 충만하십니다. 그분은 생명이 충만하십니다. 그분은 지혜가 충만하십니다. 그분 안에 비전이 충만하고, 그분 안에 평강이 충만하고, 그분 안에 기쁨이 충만합니다. 그분 안에 오래 참음과 친절과 선함과 한결같음과 따뜻함과 절제의 능력이 충만합니다. 따라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뿌리를 내리면 모든 충만을 공급받습니다. 그리고 세움을 입게 됩니다. ‘세움을 입다’는 현재분사형입니다. 즉 터 위에 계속적으로 지어가야 한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을 주로 영접한 사람은 그 기초 위에 계속적으로 집을 지어갑니다. 집을 짓되 시련의 때에 불에 타지 않는 정금과 같은 믿음의 집을 지어갑니다.
성경에 그 안에 뿌리를 박은 사람들이 극심한 재난 중에도 감사함이 넘쳤던 예들을 무수히 볼 수 있습니다. 욥은 하루아침에 자식들과 모든 재물을 다 잃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안에 뿌리를 깊이 내리고 있었습니다. 그 때 그는 믿음이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가로되 내가 모태에서 적신으로 나왔사온 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 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어리석게 원망하지 아니하니라(욥1:21,22).”
다니엘은 청년시절에 강대국 바벨론의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나라는 망했습니다. 내일에 대한 기약이 없었습니다. 이런 중에도 그는 이방 땅에서 믿음을 지켰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축복으로 총리가 되었습니다. 악한 자들이 그를 죽이고자 음모를 꾸몄습니다. 다른 신에게 기도하는 자는 사자 굴에 던져 넣을 것이라는 왕의 명령이 내려졌습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그 조서에 어인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그 방의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열린 창에서 전에 행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 하나님께 감사하였습니다(단6:10).
하박국 선지자는 보이는 것이 없다 할지라도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로 나의 높은 곳에 다니게 하시리로다(합3:17-19).”
저는 탤런트 한혜진이 연기만 잘 하는 줄로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녀는 믿음의 여인이었습니다. 그녀의 연기는 믿음에서 나왔습니다. 그녀는 소득의 실일조는 기본이고, 시간의 십일조를 드립니다. 그녀는 하루 2시간 40분을 성경을 읽고, QT하고, 기도하고, 중보기도하고, 전도하고 봉사합니다. 작품도 기도로 결정합니다. 주님 안에서의 분명한 결혼관이 있습니다. 그녀는 모든 삶을 그분 안에서 결정합니다. 그녀는 시련의 때에 오히려 감사합니다. 그녀는 감사를 할 줄 아는 여인입니다. 그는 매력적인 믿음의 여인입니다.
여러분이 행복한 삶을 살기를 원한다면 예수님 안에 뿌리를 내리시기 바랍니다. 예수님 안에서 생각하고, 예수님 안에서 계획과 가치관을 세우고, 예수님 안에서 행하고, 예수님 안에서 삶의 방향을 잡으십시오. 그렇게 하면 인생의 큰 시련 앞에서도 넘어지지 않고 굳건합니다. 범사에 감사함이 넘칩니다. 기쁨과 행복이 넘치는 삶을 살게 됩니다.
둘째, 하나님의 말씀이 내 속에 풍성하게 거해야 합니다(7b).
7b절을 보겠습니다.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말씀을 겸손히 받으면, 믿음에 굳게 서게 됩니다. 믿음에 굳게 서게 되면 감사가 넘칩니다. 골로새 3장 16,17절을 보겠습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하고,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마음에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그리스도의 말씀이 우리 속에 풍성히 거하면,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고 권할 수 있게 됩니다.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를 부르게 됩니다.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게 됩니다.
그런데 감사는 저절로 되지 않습니다. 누가복음을 보면 열 명의 문둥병자가 예수님으로부터 치료를 받았습니다. 이 중에서 유대인 아홉 문둥이들은 감사치 않고 가버렸습니다. 예수님께 돌아와 감사를 표한 자는 사마리아 문둥이 한 사람 뿐이었습니다. 이 말씀에서 우리는 인간이란 본성적으로 감사를 잘 하지 않는 존재임을 알 수 있습니다. 감사는 노력해야 합니다. 감사는 일단 말로 자꾸 표현해야 합니다. 그리고 감사는 행동으로 나타내야 합니다. 말만 하는 감사는 감사가 아닙니다. 하나님께 감사하면 헌신으로 나타납니다. 지난 주 추수감사헌금을 드렸습니다. 어떤 분은 하나님께 너무나 감사하여 힘을 다하고 마음을 다하여 감사헌금을 드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은 감사가 넘치는 사람을 축복하십니다. 감사는 역경을 축복으로 바꿉니다. 감사는 삶의 질을 바꿉니다. 감사는 얼굴의 모습을 바꿉니다. 그래서 성형수술을 할 필요가 없게 합니다. 감사는 행복의 원천, 기쁨의 원천입니다.
바울과 실라가 빌립보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매를 맞고 감옥에 갇혔습니다. 그들은 복음을 전하다가 온 몸에 성한 곳이 없이 상처를 입고 차가운 감방에 갇혔습니다. 그들은 인상을 쓰며 합심하여 하나님께 불평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께 감사하며 힘차게 감사 찬송을 불렀습니다. “밤중쯤 되어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미하매 죄수들이 듣더라(행16:25).” 이때 하나님은 천사를 보내어 감옥 문을 여셨고, 빌립보가 개척되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영접했으면 그분 안에서 행하며, 그분 안에 뿌리를 박아 세움을 입어야 합니다.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야 합니다. 내면에 감사함이 넘치도록 해야 합니다. 감사가 넘칠 때, 나의 삶이 달라집니다. 가정이 달라집니다. 교회가 달라집니다. 내가 속한 캠퍼스가 달라집니다. 내가 속한 일터가 달라집니다. 나의 삶의 영역이 달라집니다. 민족이 달라집니다. 감사가 넘치는 삶을 사시기를 기도합니다.
감사를 넘치도록 하라.
“그 안에서 행하되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입어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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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중앙일보 정진홍 논설위원이 8여(여덟 가지 여유)와 8부족(여덟 가지 부족)에 관한 글입니다. 경기도 파주시 광탄면 용미리와 고양시 덕양구 고양동을 잇는 ‘혜음령’이란 고개가 있습니다. 혜음령에 예로부터 내려오는 두 도적 이야기가 있습니다. 두 도적은 도적질을 해 빼앗은 장물들이 더 이상 숲에 숨길 곳이 없을 만큼 많아지자 두 도적은 서로 죽일 생각을 하였습니다. 물론 장물은 둘로 나눠가져도 충분했지만 두 도적은 나누는 것이 성에 차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한 도적이 다른 도적을 죽일 요량으로 독이 든 술을 구하러 갔습니다. 반면에 다른 도적은 그가 돌아오면 목을 베리라 마음먹고 칼을 갈았습니다. 결국 독이 든 술을 갖고 오던 도적은 칼을 맞고 목이 날아갔습니다. 하지만 칼을 쓴 도적은 장물들을 독차지하게 된 것에 들뜬 나머지 무심결에 독이 든 술을 흥에 겨워 마시고 그 역시 죽었습니다. 족함을 모른 두 도적은 결국 모두 죽고 말았습니다.
한편 혜음령에서 멀지 않은 곳에 명봉산이란 곳이 있습니다. 조선 중종 때 동부승지를 지낸 김정국이란 사람이 기묘사화에 연루돼 삭탈관직 당하여 이곳에 은거해 살며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토란국과 보리밥을 넉넉히 먹고, 등 따뜻하게 넉넉히 잠자고, 맑은 샘물을 넉넉히 마시고, 서가에 가득한 책을 넉넉히 보고, 봄꽃과 가을 달빛을 넉넉히 감상하고, 새와 솔바람 소리를 넉넉히 듣고, 눈 속에 핀 매화와 서리 맞은 국화 향기를 넉넉히 맡는다. 그리고 이 일곱 가지를 넉넉히 즐기니 이것이 팔여, 여덟 가지 여유다.” 그래서 김정국을 8여거사라고 일컫습니다. 그는 훗날 다시 등용되어 당대에 칭송을 얻고 후대에 이름을 남겼습니다. 족한 줄도 모르고 장물을 독차지하려다 결국 둘 다 죽은 혜음령의 이름 모를 도적들과 억울하고 힘든 세월을 넉넉한 마음 하나로 이겨낸 8여거사, 김정국의 삶을 극명하게 갈라놓은 것은 다름 아닌 ‘족함을 아느냐, 모르냐’였습니다.
세상은 ‘8여’보다 ‘8부족(八不足)’의 아우성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즉 “진수성찬을 배불리 먹고도 부족하고, 휘황한 난간에 비단병풍을 치고 잠을 자면서도 부족하고, 이름난 술을 실컷 마시고도 부족하고, 멋진 그림을 보고도 부족하고, 아리따운 여인과 한껏 즐기고도 부족하고, 좋은 음악을 듣고도 부족하고, 희귀한 향을 맡고도 부족하다. 여기 한 술 더 떠서 이 일곱 가지 부족한 게 있다고 한탄하는 것”이 8부족입니다. 족함을 모르는 것은 병 중 큰 병이고, 불행 중 가장 큰 불행입니다. 반면에 족함을 아는 것이야말로 심신이 온전할 수 있는 근간이요 최고의 행복 비결입니다. 바울은 어떠한 형편 중에서도 자족하기를 배웠습니다(빌4:11). 그리고 지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에 큰 이익이 된다고 했습니다(딤전6:6).
지난주는 추수감사절(Thanksgiving Day)이었습니다. 청교도들이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미지의 신대륙에 내려 거둔 첫 수확을 감사한 데서 유래한 것입니다. 미국인들은 추수감사절을 크리스마스 못지않게 여깁니다. 고향을 떠나 있던 사람들은 모두가 고향을 찾아갑니다. 미국이란 나라가 시작은 미미했습니다. 그들이 나중에 창대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들의 선조들이 넉넉하지 못한 데서도 자족함을 알고 감사할 줄 알았기 때문입니다. 자족한 마음에 복이 깃들고 감사한 마음에 길이 트입니다. 어떤 형편 중에도 자족하면 감사가 생기고 기쁨이 생깁니다.
본문을 보면 바울은 골로새 성도들에게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를 넘치도록 하라”고 하였습니다. “감사를 넘치도록 하라.” 이는 감사하는 마음이 가득 차고 넘쳐서 다른 사람에게로 흘러가도록 하라는 말씀입니다. 다시 말해 감사의 통로가 되라는 것입니다. 감사를 하게 되면 우리의 영혼과 마음과 육체가 건강해집니다. 감사를 많이 하게 되면 인간관계가 윤택해집니다. 감사 충만은 행복 충만, 기쁨 충만이 됩니다. 본문을 통해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영접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을 감사하기 바랍니다. 그리고 감사가 넘쳐서 행복 충만, 기쁨 충만이 되는 삶을 살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하고 기도합니다.
6a절을 읽겠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영접했습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전에 골로새 성도들은 어떤 상태에 있었습니까? 그들은 흑암의 권세 아래 있었습니다. 1장 13절을 보겠습니다.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 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흑암의 권세 아래 있었다’는 것은 사단의 통치를 받았다는 것입니다. 사단의 속성은 어두움입니다. 절망입니다. 두려움입니다. 불안입니다. 원망과 불평입니다. 분노입니다. 미움입니다. 증오심입니다. 부정적입니다. 불만입니다. 공격적입니다. 한(恨)입니다. 공허입니다. 실패감입니다. 소외감입니다. 좌절입니다. 약함입니다. 이와 같이 사람이 사단의 통치를 받게 되면 어두운 삶을 살게 됩니다. 결국 그런 삶을 살다가 하나님의 심판을 받고 죽음에 이르게 됩니다.
이런 골로새 성도들이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영접하였습니다. ‘주’는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우주와 만물을 창조하신 창조주이십니다. 예수님은 눈에 보이는 세계 뿐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 보좌들이나 주관들이나 정사들이나 권세들을 창조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혀 인간들의 죄를 대속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신 주님이십니다. 그들이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영접하여 삶이 달라졌습니다. 사단이 통치하는 어두운 나라에서 그의 아들의 나라로 옮겨졌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속성은 사랑입니다. 기쁨입니다. 만족입니다. 행복입니다. 평안입니다. 자신감입니다. 안심입니다. 자유입니다. 용기입니다. 존경입니다. 열정입니다. 매력입니다. 따뜻함입니다. 충성입니다. 강함입니다. 확신입니다. 희망입니다. 능력입니다. 자신감입니다. 신실함입니다. 감사입니다.
이처럼 누구든지 예수님을 주로 영접하면 어두움이 물러가고 밝은 삶을 살게 됩니다. 영혼의 자유와 기쁨이 넘치는 삶을 살게 됩니다. 감사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하나님께 속한 모든 신령한 복들을 받아 다음 세대에 나눠주는 복의 통로, 긍휼의 통로가 됩니다. 믿음의 가정이 뭐냐 하면 하나님의 복을 다음 세대에 나눠주는 그릇입니다. 결혼은 단순히 시집가고 장가가는 그런 것이 아님을 아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살다보면 때론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칠흑 같은 밤을 맞을 때가 있습니다. 시련이 닥칠 때가 있습니다. 위기의 순간을 만나기도 합니다. 그런 순간에도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영접한 사람들은 하나님께 감사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알고, 십자가에서 나를 구원하신 것이 감사 제목이 됩니다. 영생을 주신 것이 감사가 됩니다. 주님 안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나를 바라보면 희망과 용기, 그리고 기쁨이 생깁니다. 찬송과 감사가 나옵니다. ‘주’되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생각하면 모든 것이 감사입니다. 세상의 안경을 쓰고 나와 세상을 보면 모든 것이 부족하게 보이고 그러다 보니 불평과 원망이 생깁니다.
그러나 주님의 안경을 쓰고 나와 세상을 보면 모든 것이 감사가 됩니다. 내가 지금 살아 있다는 것 자체가 감사입니다. 숨 쉴 공기를 주신 것이 감사입니다. 먹을 것, 입을 것, 잠잘 곳을 주신 것이 감사입니다. 대학에서 공부한다는 것 자체가 감사입니다. 졸업하고 취직을 하고, 어진 여인과 결혼하고, 믿음의 형제와 결혼을 한 것이 감사입니다. 사랑스러운 자녀들이 있다는 것이 큰 감사입니다. 교회에서 믿음의 사람들을 만난 것이 감사입니다. 생명 구원 역사에 쓰임 받고 있는 것이 감사입니다. 시련을 통하여 연단하시고 정하게 하시는 것이 감사입니다. 때마다 영생의 말씀으로 우리를 먹이시는 것이 감사입니다. 힘든 일이 있을 때 기도하고,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 아버지가 계시는 것이 감사가 됩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미천한 우리 속에 내주하시는 것이 감사입니다. 주님 안에 있으면 범사가 감사의 제목이 됩니다.
우리가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것에 감사하려고 하면 감사할 수 없습니다. 불신자들은 눈에 보이는 감사할 조건이 있어야 감사합니다. 그러나 믿는 사람들은 근본적으로 흑암의 권세에서 건짐을 받아 그리스도의 나라로 옮겨진 것을 감사합니다. 영원히 꺼지지 않는 지옥의 불구덩이에서 건짐을 받았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영접하여 흑암의 나라에서 하나님 나라로 옮겨진 것을 감사합시다.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면 이제 어떻게 해야 합니까?
첫째, 그 안에서 행하며, 그 안에 뿌리를 박아야 합니다(6b,7a).
6b,7a절을 보겠습니다. “그 안에서 행하되,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입어 그 안에서 행하라.” ‘행하다’는 것은 영어로 walk in Him(KJV), continue to live in Him(NIV)으로,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동고동락하는 것입니다. 즉 예수님께서 가시는 곳에 내가 가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멈추시는 곳에 내가 멈추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하여 광야를 통과할 때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하셨습니다. 그들은 밤에 불기둥이 멈추면 멈추고, 불기둥이 출발하면 그들도 출발했습니다. 낮에 구름 기둥이 멈추면 멈추고, 구름 기둥이 출발하면 그들이 움직였습니다. 이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영접한 사람은 성령과 동행합니다. 성경 말씀을 좇아 삽니다. 그리고 ‘행하다’는 것은 예수님과의 연합입니다. 예수님과의 연합은 예수님의 십자가는 나의 십자가요, 예수님의 죽으심은 나의 죽음으로 여기는 것입니다.
‘뿌리를 박다’는 헬라어에 완료형 분사, 즉 주님 안에 믿음의 뿌리를 박는 것은 이미 기정사실이고, 이제부터 계속 뿌리를 깊이 내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나무의 크기는 그 뿌리의 깊이와 비례합니다. 뿌리가 깊이 내려진 나무는 비바람에도 넘어지거나 뽑히지 않습니다. 신앙도 마찬가지로, 신앙의 뿌리를 예수님께 깊이 내리면 역경과 환난에도 넘어지지 않습니다. 골로새 교인들은 복음을 받았으나 그 안에 뿌리를 내리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거짓 교사들이 가르치는 이론과 신비주의에 더 나은 무엇이 있지 않을까 하여 기웃거렸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기대와는 달리 이런 것에서 더 나은 무엇인가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만으로 우리 인생의 모든 기대가 충족됩니다. 오직 그리스도만이 우리 마음과 영혼의 온갖 필요를 채워주시고, 우리의 삶을 충만하게 하십니다.
골로새서 2장 3절을 보면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 있다고 했습니다. 에베소서 1장 23절에는 그리스도는 모든 것을 충만케 하시는 충만하심이라고 했습니다. 그분은 사랑이 충만하십니다. 그분은 생명이 충만하십니다. 그분은 지혜가 충만하십니다. 그분 안에 비전이 충만하고, 그분 안에 평강이 충만하고, 그분 안에 기쁨이 충만합니다. 그분 안에 오래 참음과 친절과 선함과 한결같음과 따뜻함과 절제의 능력이 충만합니다. 따라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뿌리를 내리면 모든 충만을 공급받습니다. 그리고 세움을 입게 됩니다. ‘세움을 입다’는 현재분사형입니다. 즉 터 위에 계속적으로 지어가야 한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을 주로 영접한 사람은 그 기초 위에 계속적으로 집을 지어갑니다. 집을 짓되 시련의 때에 불에 타지 않는 정금과 같은 믿음의 집을 지어갑니다.
성경에 그 안에 뿌리를 박은 사람들이 극심한 재난 중에도 감사함이 넘쳤던 예들을 무수히 볼 수 있습니다. 욥은 하루아침에 자식들과 모든 재물을 다 잃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안에 뿌리를 깊이 내리고 있었습니다. 그 때 그는 믿음이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가로되 내가 모태에서 적신으로 나왔사온 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 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어리석게 원망하지 아니하니라(욥1:21,22).”
다니엘은 청년시절에 강대국 바벨론의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나라는 망했습니다. 내일에 대한 기약이 없었습니다. 이런 중에도 그는 이방 땅에서 믿음을 지켰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축복으로 총리가 되었습니다. 악한 자들이 그를 죽이고자 음모를 꾸몄습니다. 다른 신에게 기도하는 자는 사자 굴에 던져 넣을 것이라는 왕의 명령이 내려졌습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그 조서에 어인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그 방의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열린 창에서 전에 행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 하나님께 감사하였습니다(단6:10).
하박국 선지자는 보이는 것이 없다 할지라도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로 나의 높은 곳에 다니게 하시리로다(합3:17-19).”
저는 탤런트 한혜진이 연기만 잘 하는 줄로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녀는 믿음의 여인이었습니다. 그녀의 연기는 믿음에서 나왔습니다. 그녀는 소득의 실일조는 기본이고, 시간의 십일조를 드립니다. 그녀는 하루 2시간 40분을 성경을 읽고, QT하고, 기도하고, 중보기도하고, 전도하고 봉사합니다. 작품도 기도로 결정합니다. 주님 안에서의 분명한 결혼관이 있습니다. 그녀는 모든 삶을 그분 안에서 결정합니다. 그녀는 시련의 때에 오히려 감사합니다. 그녀는 감사를 할 줄 아는 여인입니다. 그는 매력적인 믿음의 여인입니다.
여러분이 행복한 삶을 살기를 원한다면 예수님 안에 뿌리를 내리시기 바랍니다. 예수님 안에서 생각하고, 예수님 안에서 계획과 가치관을 세우고, 예수님 안에서 행하고, 예수님 안에서 삶의 방향을 잡으십시오. 그렇게 하면 인생의 큰 시련 앞에서도 넘어지지 않고 굳건합니다. 범사에 감사함이 넘칩니다. 기쁨과 행복이 넘치는 삶을 살게 됩니다.
둘째, 하나님의 말씀이 내 속에 풍성하게 거해야 합니다(7b).
7b절을 보겠습니다.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말씀을 겸손히 받으면, 믿음에 굳게 서게 됩니다. 믿음에 굳게 서게 되면 감사가 넘칩니다. 골로새 3장 16,17절을 보겠습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하고,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마음에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그리스도의 말씀이 우리 속에 풍성히 거하면,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고 권할 수 있게 됩니다.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를 부르게 됩니다.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게 됩니다.
그런데 감사는 저절로 되지 않습니다. 누가복음을 보면 열 명의 문둥병자가 예수님으로부터 치료를 받았습니다. 이 중에서 유대인 아홉 문둥이들은 감사치 않고 가버렸습니다. 예수님께 돌아와 감사를 표한 자는 사마리아 문둥이 한 사람 뿐이었습니다. 이 말씀에서 우리는 인간이란 본성적으로 감사를 잘 하지 않는 존재임을 알 수 있습니다. 감사는 노력해야 합니다. 감사는 일단 말로 자꾸 표현해야 합니다. 그리고 감사는 행동으로 나타내야 합니다. 말만 하는 감사는 감사가 아닙니다. 하나님께 감사하면 헌신으로 나타납니다. 지난 주 추수감사헌금을 드렸습니다. 어떤 분은 하나님께 너무나 감사하여 힘을 다하고 마음을 다하여 감사헌금을 드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은 감사가 넘치는 사람을 축복하십니다. 감사는 역경을 축복으로 바꿉니다. 감사는 삶의 질을 바꿉니다. 감사는 얼굴의 모습을 바꿉니다. 그래서 성형수술을 할 필요가 없게 합니다. 감사는 행복의 원천, 기쁨의 원천입니다.
바울과 실라가 빌립보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매를 맞고 감옥에 갇혔습니다. 그들은 복음을 전하다가 온 몸에 성한 곳이 없이 상처를 입고 차가운 감방에 갇혔습니다. 그들은 인상을 쓰며 합심하여 하나님께 불평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께 감사하며 힘차게 감사 찬송을 불렀습니다. “밤중쯤 되어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미하매 죄수들이 듣더라(행16:25).” 이때 하나님은 천사를 보내어 감옥 문을 여셨고, 빌립보가 개척되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영접했으면 그분 안에서 행하며, 그분 안에 뿌리를 박아 세움을 입어야 합니다.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야 합니다. 내면에 감사함이 넘치도록 해야 합니다. 감사가 넘칠 때, 나의 삶이 달라집니다. 가정이 달라집니다. 교회가 달라집니다. 내가 속한 캠퍼스가 달라집니다. 내가 속한 일터가 달라집니다. 나의 삶의 영역이 달라집니다. 민족이 달라집니다. 감사가 넘치는 삶을 사시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