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사로와 부자

조회 수 3242 추천 수 0 2012.07.11 06:22:49
누가복음 16:19-31(요절 16:22,23)

나사로와 부자

“이에 그 거지가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부자도 죽어 장사되매 저가 음부에서 고통 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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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성경 말씀을 믿습니까? 그렇다면 성경에 수없이 나오는 천국과 지옥을 믿습니까? 성경에는 천국과 지옥의 실체를 아주 리얼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본문에는 두 사람의 주인공이 등장하는데 아주 대조적입니다. 19-21절을 보겠습니다. 첫 번째 등장하는 인물은 잘 생기고, 건강하고, 그리고 멋있는 남자입니다. 또 그는 큰 부자, 재벌입니다. 그래서 그는 항상 비단 옷, 자색 옷, 값진 옷, 최고의 옷을 입었습니다. 그리고 호화로이 연락했다고 했습니다. 연락했다는 말은 잔치를 벌였다, 늘 파티를 열었다는 말입니다. 그는 늘 최고급 음식을 즐기면서 살았습니다. 그는 매일 왕의 식탁처럼 차려 놓고 먹었습니다. 사업을 했다 하면 불황 중에도 잘 되었습니다. 또 그는 외롭지도 않았습니다. 형제도 다섯이나 되었고 부자였으니 친구도 많았을 것입니다. 그러니 그는 전도를 받아도 하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몸 건강하지요. 사업 잘 됩니다. 그러니 그는 하나님을 믿을 이유가 없었습니다.

두 번째로 등장하는 인물은 가난한 거지 나사로입니다. 첫 무대에 등장한 인물과는 극과 극입니다. 배고픈 서러움, 가난한 서러움이 얼마나 큰지 모릅니다. 그러나 가난해도 몸만 건강하면 나름대로 잘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거지 나사로는 병이 들어도 피부병이 들었습니다. 부스럼과 종기가 온몸을 덮었습니다. 온 몸이 가렵고 진물이 줄줄 흐르니 누가 그를 사원이나 하인으로 쓰겠습니까? 그래서 그는 할 수 없이 이 집 저 집, 이 마을 저 마을로 다니면서 빌어먹었습니다. 문제는 아무리 자선을 베풀기를 좋아하는 자선가도 매일 똑같은 거지가 온다면 좋아할 리 없을 것입니다. 우리 교회에 수요일이면 어김없이 노인들이 돈을 달라고 2,3명이 왔습니다. 처음에는 긍휼의 마음으로 천 원 씩 주었습니다. 그런데 그 돈을 가지고 술 드시고 담배 피우시는 것을 알고 라면을 드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수요일이면 어김없이 똑같은 노인들이 5,6명이 옵니다. 이제는 짜증이 나서 각설이 타령이 나옵니다. “작년에 왔던 각설이 죽지도 않고 또 왔네.”

이제 나사로는 몸이 너무 아파서 구걸하러 다니지도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마침 부잣집을 만났습니다. 이 부잣집은 날마다 파티를 열어서 손님들이 늘 북적거렸습니다. 그리고 음식 쓰레기를 밖에 내다 버렸는데 거기에는 먹을 것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나사로는 아예 쓰레기더미 속에 정착하여 살았습니다. 나사로에게는 친구도 없고 친척도 없었습니다. 그의 친구라곤 오직 개들뿐이었습니다. 그가 가려워할 때면 개들이 핥아주곤 했습니다. 그런데 나사로에게 부자가 갖지 못한 것 한 가지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었습니다. 나사로란 뜻이 ‘하나님은 나의 도움, 하나님은 나를 도우시는 이’란 뜻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잘됩니다. 그러나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닙니다. 성경은 예수님을 믿으면 반드시 부자가 된다고 말씀하지 않습니다. 성경에 예수를 믿으면 출세한다고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성경은 어려울 때에 그 어려움을 이길 수 있는 힘을 준다고 말씀합니다. 기독교는 기복종교가 아닙니다. 나사로는 하나님을 믿었지만 거지이고, 아프고, 되는 것이 없었습니다. 대개가 예수님을 믿어도 잘 되는 것이 없다 싶으면 믿음을 포기합니다. 그런데도 나사로는 환경이 어렵고 힘들었지만 믿음을 포기치 않았습니다. 그의 삶이 비참할지라도, 저주 속에 있는 것 같을지라도, 하나님을 믿고 기도했습니다. 성경은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살후3:13). 그는 낙심하지 않았습니다. 구약에 욥을 보면 나사로와 같은 병을 앓았습니다. 악창이 나서 가려우니 기와 조각으로 온 몸을 긁어야 했습니다. 그런 독한 피부병에 걸렸지만, 욥은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고 인내했습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그를 치료해 주시고, 갑절의 은혜까지 주셨습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선을 행하다가, 믿음대로 살다가 낙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끝가지 인내하시기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22절을 보겠습니다. 막이 바뀌어 나사로와 부자가 죽었습니다. 나사로야 일찍 죽는 것이 어쩌면 좋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부자는 오래 살고 싶었을 것입니다. 오백 년도 더 살고 싶었을 것입니다. 아니 영원히 살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오래 살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본문에 보면 부자는 장사되었다고 기록되었는데 거지에게는 그런 말이 없습니다. 이 거지의 주변에는 장사를 지내 줄 변변한 인물이 없었습니다. 지금 같으면 아마 청소부들이 나사로의 시체를 치웠을 것입니다. 그런데 부자는 잘 장사되었습니다. 이 장삿날 얼마나 떠들썩했겠습니까?
아마 그 도시가 생긴 이래 최대의 장례식이 진행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화려하게 치러진 장례식과 쓸쓸하게 치러진 거지의 죽음의 무대 배후에서는 엄청난 사건이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부자와 거지의 영혼이 그 육체를 떠나가는 그 순간, 쓸쓸한 거지의 장례식과 화려한 장례식이 진해되는 순간에, 거지와 부자의 영혼이 육체를 떠나는 순간 놀라운 일들이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천사들이 나사로를 돕고 있습니다(the angels carried him to Abraham's bosom.). 거지가 죽자 천사들이 천국으로 그를 인도하여 대대적으로 환영했습니다. 그의 신분은 지상의 신분이 아닌 그의 신분이 달라졌습니다.

반면에 부자는 지옥으로 갔습니다. 23절을 보겠습니다. “저가 음부에서 고통 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23).”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천사가 아니라 고통이었습니다. 왜 부자가 지옥에 갔을까요? 부자였기 때문입니까? 아닙니다. 부유함 그 자체는 죄악이 아닙니다. 성경은 돈 많은 것을 죄악시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부자가 예수님을 믿기는 그렇게 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대개 부자들은 영적인데 관심보다 세상에 더 관심을 갖기 쉽기 때문입니다. 아마 그도 부자였기 때문에 영적으로 무관심했을 것입니다. 영적으로 무관심하니 하나님을 찾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전도를 해도 받아들이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자신도 모르게 하나님을 믿지 않고 세상에 더 많은 관심을 가졌을 것입니다. 영적인 데 무관심하니 하나님의 말씀이 들리지 않았습니다. 말씀이 들리지 않으니 죄의 개념조차 몰랐고 회개할 수 없었습니다.

그가 지옥에 간 첫째는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30절을 보겠습니다. “가로되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만일 죽은 자에게서 저희에게 가는 자가 있으면 회개하리이다.” 그는 자기가 회개하지 않아서 그곳에 갔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회개는 방향전환을 의미합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생애 속에서 하나님을 향한 방향 전환이 있었습니까? 둘째는 생명책에 그 이름이 기록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요한계시록 20장 15절을 보겠습니다.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 못에 던지우더라.” 그리고 요한계시록 21장 27절을 보겠습니다.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 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오지 못하되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뿐이라.” 흥미로운 사실은 오늘 본문에 거지의 이름은 나사로라고 나오는데, 부자의 이름은 없습니다. 땅에 살 때는 누구라고 알려졌겠지요? 그러나 지옥에서는 부자의 이름이 없고 단지 부자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천국에는 나사로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그의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한 마디로 거지 나사로가 천국에 들어간 것은 그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여 생명책에 그 이름이 기록되었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부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지 않아서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했기 때문에 지옥에 간 것입니다.

그러면 지옥이 어떤 곳입니까? 첫째로 지옥은 즉시 가는 곳입니다. 나사로는 천국에, 부자는 음부로 갔습니다. 우리나라의 귀신 이야기나 뵈뢰아의 귀신론은 믿지 않는 영혼이 죽은 후에 귀신이 되어 떠돌아다닌다고 합니다. 성경은 그렇게 가르친 곳이 없습니다. 그런 것은 다 거짓된 것입니다.

둘째로 천국과 지옥은 의식이 살아 있는 곳입니다. 지옥에 가서도 이 부자는 나사로를 자기의 종으로 부리려고 하였습니다(24절). 지옥에서 천국을 볼 수 있지만 접근할 수 없습니다. 부자는 이 땅에 살고 있는 다섯 형제를 기억했습니다. 지옥이 어떤 곳입니까? 세익스피어는 그의 작품 ‘리챠드 3세’라는 책에서 지옥을 이렇게 묘사했습니다. “불신자들은 양심에 달린 수 십, 수 백 개의 혓바닥들이 쉬지 않고 지껄이는 고통을 당하게 될 것이다” 지옥은 자신이 지은 모든 죄악들이 기억나게 되는 곳입니다. 나사로는 하나님의 축복 가운데서 영원한 안식을 체험하고, 반면에 또 다른 한 사람은 끝없는 고통의 의식 속에서 괴로움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셋째로 나사로는 위로를 받지만 부자는 고통입니다. 25절을 보겠습니다. “아브라함이 가로되 얘 너는 살았을 때에 네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이것을 기억하라 이제 저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고민을 받느니라.” 두개의 단어가 대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위로와 고민입니다. 천국에 들어간 나사로는 위로를 받습니다. 요한계시록 21장 4절을 보겠습니다.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그러나 부자는 지옥에서 고민을 합니다. 이사야서 33장 14절을 보면 두려워하며 떤다고 했습니다. “시온의 죄인들이 두려워하며 경건치 아니한 자들이 떨며 이르기를 우리 중에 누가 삼키는 불과 함께 거하겠으며 우리 중에 누가 영영히 타는 것과 함께 거하리요 하도다.” 요한계시록 14장 10절을 보면 불과 유황으로 고난을 받는다고 했습니다. “그도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를 마시리니 그 진노의 잔에 섞인 것이 없이 부은 포도주라 거룩한 천사들 앞과 어린 양 앞에서 불과 유황으로 고난을 받으리니” 마태복음 25장 30절을 보면 어두운 데로 내어 쫓겨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겠다고 했습니다.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어 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하니라.”

넷째로 지옥은 희망이 없습니다. 26절을 보겠습니다. “이뿐 아니라 너희와 우리 사이에 큰 구렁이 끼어 있어 여기서 너희에게 건너가고자 하되 할 수 없고 거기서 우리에게 건너 올 수도 없게 하였느니라.” 죽은 후에는 두 번째 기회란 있을 수 없습니다. 로마 가톨릭은 죽은 후에 제 2의 찬스가 있음을 가르칩니다. 그래서 죽은 사람을 위해 빌라고 합니다. 이것은 성경의 가르침과는 정면으로 배치됩니다. 26절은 오직 기회는 살아있을 때 유일한 것이라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지옥은 소망이 없는 곳입니다. 단테가 쓴 ‘신곡’이라는 책을 보면 지옥 어귀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고 했습니다. “이 곳을 들어가는 자는 희망을 버릴지어다.”

지옥은 사람들을 위하여 만든 곳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마귀를 가두기 위하여 만든 곳입니다. 그런데 인간이 마귀에게 속아 지옥에 가게 된 것입니다. 의로우신 하나님은 죄를 적당히 넘기실 수 없습니다. 죄를 공의롭게 처리하십니다. 응분의 대가를 치르게 하시는데 그것이 죽음 곧 영원한 죽음, 지옥입니다. 하나님은 지옥을 마련하고 계획하셨지만 한 가지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만큼 사람들을 지옥에 가지 못하도록 막으시는 분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얼마나 수 천 년 동안 노력하셨는지 모른다. 세상에 수많은 선지자들을 보내셨습니다. 그래도 돌이키지 않자 아들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 지옥으로 걸어가는 사람들의 발걸음을 돌려놓기 위하여 희생하셨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하셨습니다. 십자가의 고통은 지옥의 고통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은 내가 지옥에 가면 당할 고통입니다. 지옥의 고통을 그가 십자가에서 친히 다 담당하게 하시고 예수님을 살리신 다음 예수님을 지옥으로 가는 길목에 세우시고 가지 못하도록 막으십니다. “이곳으로 가면 영원히 희망이 없다.” 힘을 다해 막으십니다. 그 길은 간단합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누구든지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 3:16)”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롬10:9-10).”

여러분, 불이 얼마나 뜨겁고 무섭습니까? 작은 촛불에 손가락을 단 5분간이라도 태울 수 있겠습니까? 1분도 못되어 뛰쳐나가고 말 것입니다. 지옥의 불은 어떠하겠습니까? 부자는 아브라함에게 너무 뜨거워서 나사로의 손끝에 물 한 방울만 찍어서 내 혀를 좀 시원하게 해 달라고 간청했습니다. 이 때 아브라함의 대답이 무엇입니까? “얘야, 안 된다. 너는 땅에서 호화롭게 잘 살지 않았느냐? 나사로는 얼마나 고생을 많이 했느냐? 너는 이제 거기에서 고민을 해야 되고 나사로는 위로를 받아야 된다. 그리고 여기와 거기에는 구덩이가 있어서 서로 왕래하지 못하도록 되어 있단다.”

이에 부자가 대답합니다. “그렇다면 나사로를 내 집에 보내 주세요. 내 형제 다섯은 여기 오지 않도록 전도해 주세요.” 이에 대한 아브라함의 답이 무엇입니까? “안 돼, 네 형제가 있는 마을에 전도자가 있지 않느냐? 모세 선지자 같은 하나님을 전하는 전도자가 있지 않느냐? 그들의 말을 들으면 된다.” 이에 부자가 대답합니다. “아닙니다. 나도 전도자의 말을 들었지만 믿지 않았습니다. 내 형제들도 믿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죽었던 나사로가 가서 전하면 믿을 것입니다.” 이에 또 대답합니다. “얘야, 그것은 네 생각이야. 땅에 있는 전도자의 말을 듣고 믿지 않는 자는 죽었다가 산 자가 가서 전해도 믿지 않아.”

반면에 천국은 어떤 곳입니까? 첫째로 하나님의 영광이 있습니다(계21:11a). 하나님의 영광은 성화(聖化)의 완성 단계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으면 의롭다 함을 얻게 됩니다(justification). 이제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은 성도들은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점점 거룩해지는 성화(聖化)에 이르게 됩니다(sanctification). 지금까지 입었던 초라한 옷을 벗고 찬란하고 영광스러우며 아름다운 옷을 입고, 가장 빛나는 모습으로 살게 됩니다. 그 날에 우리는 썩을 몸이 썩지 아니할 몸으로, 명예롭지 못한 것이 영광스러운 것으로, 약한 것이 강한 것으로, 육의 몸이 신령한 부활의 몸으로, 하나님 앞에 하나님의 은혜로 서게 됩니다(고전15:42-45). 둘째로 존귀한 존재가 됩니다(계21:11b). “그 성의 빛이 지극히 귀한 보석 같고 벽옥과 수정같이 맑더라.” 그 성의 빛이 ‘보석같고 벽옥과 수정같이 맑다’는 것은 투명하여 어떠한 티나 흠이 없음을 표현한 것입니다.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라(엡5:27).” 우리는 그 동안 권세 잡은 사람들과 돈 많은 사람들로부터 무시를 받고 업신여김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 날에는 누구로부터도 무시 받거나 업신여김을 받지 않는 고귀한 존재가 됩니다.

셋째로 천국에서는 성령의 능력으로 살게 됩니다(계22:1-13). 거기에는 피곤이 없습니다. 침체나 권태가 없습니다. 매일매일 새로운 생명력이 솟아나고, 하루하루가 새로워지게 됩니다. 그리고 저주가 없습니다(계22:3-5). 창세기를 보면 죄로 인해 이 땅에 저주가 왔고, 죽음이 왔습니다. 그러나 그 날에는 낙원이 회복되어 완성된 하나님 나라에서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영원토록 섬기며 살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얼굴을 뵙게 됩니다. 찬송가 224장을 불러보겠습니다. ♬저 요단강 건너편에 화려하게 뵈는 집, 주 날 위해 예비하신 집일세, 그 강가에 생명나무 꽃이 만발하였네, 주의 낯을 그곳에 뵈오리 주의 얼굴 뵈오리 주의 얼굴 뵈오리 슬픔 하나도 없고 금빛 찬란한 데서 구속하신 주의 얼굴 뵈오리♬

천국과 지옥은 상징적인 장소가 아닙니다. 사람들이 죽어서 실제적으로 가는 곳입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믿습니까? 이 사실을 믿기에 오늘 이 자리에 있는 줄로 믿습니다. 우리가 힘써 전도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세상 것을 다 잃고도 선택해야 할 것이 천국입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피해야 할 곳이 지옥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을 믿지 않아 지옥불로 떨어져가는 부모님과 형제자매들, 그리고 동료, 친척들을 그대로 내버려두어야 하겠습니까? 예수를 믿느냐, 믿지 않느냐는 백화점에서 물건을 흥정하듯 대수롭지 않게 여겨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신앙을 교양처럼 여겨서도 안 됩니다. 예수를 믿느냐, 믿지 않느냐의 문제는 생사에 관한 문제입니다. 우리 모두 믿음의 길을 가기를 기도합니다. 그리고 불신자들에게 전도하여 천국에서 그들을 만날 수 있는 복된 여러분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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