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 있는 사람은

조회 수 4447 추천 수 0 2012.07.12 07:20:06
2009년 신년 제 1강(시편1:1-6, 요절,1:2)
복 있는 사람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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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누구를 막론하고 복 받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신년 인사는 모두 복을 받으라는 인사입니다. 금년에 문자 메시지를 40여 통 받았는데 “거의 내용이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였습니다. 본문을 보니 시편의 첫 장의 말씀 또한 복 있는 사람으로 시작됩니다. 왜 사람들이 복 받기를 원합니까? 대개가 개인의 영달을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성도는 복 받기를 원하는 목적이 달라야 합니다. 우리가 복 받아야 할 이유는 이웃을 섬기기 위함입니다. 우리가 금년 한 해 복을 많이 받아 이웃을 섬기기를 기도합니다.

본문을 보면 ‘~하는 사람은 복이 있다’는 말로 시작합니다. 히브리어로 ‘복’이란 단어가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바루크’와 ‘아쉬레’라는 단어입니다. 바루크는 하나님의 직접적인 개입으로 인한 축복(blessed)을 뜻하고, 아쉬레는 특정한 행위의 결과로 주어지는 보상으로써의 복(happy)을 말합니다. 이러한 복은 하나님께 기도한다고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가르침대로 사는 자에게 주어집니다. 세상의 법칙이 아닌 하나님께서 세우신 법칙, 성경의 원리대로 사는 자들에게 주어집니다.

본문의 복은 ‘아쉬레’로, 하나님이 세우신 질서에 순응하는 사람들에게 임하는 복,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법칙대로 사는 사람들에게 자연스럽게 주어지는 복입니다. 이는 마치 마르지 않는 수원에 뿌리를 내린 나무가 때를 따라 열매를 맺는 것이 자연의 순리이듯, 피조물인 사람이 창조주의 뜻을 따라 살면 이에 대한 결과로 자연스럽게 누리게 되는 행복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사는 의인은 하나님께서 끝까지 책임져 주십니다. 금년에 하나님의 가르침대로 살아 happy한 삶을 사시기를 기도합니다.

첫째, 의인의 삶(1,2)

누가 복 있는 사람입니까? 의인이 복이 있습니다. 의인에 대해 1절에서는 ‘~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부정의 형태로, 그리고 2절에서는 ‘~하는 사람’이라는 식의 긍정의 형태로 묘사됩니다. 먼저 1절을 보겠습니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첫째는 의인은 악인의 죄를 좇지 않습니다. 둘째는 의인은 죄인의 길에 서지 않습니다. 셋째는 의인은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않습니다.

악인(the wicked)이란 하나님의 율법에 의해 죄 있는 자로 판명된 자, 즉 하나님의 말씀의 원리가 아닌 자기 원칙, 세상의 원리대로 삽니다. 이러한 악인들은 하나님의 성소에 발을 들여 놓을 수 없습니다. 그러면 누가 주님 계신 성소에 들어갈 수 있습니까? 시편 15편1,2,5절을 보면 “정직하게 행하며 공의를 일삼으며 그 마음에 진실을 말하며 혀로 참소치 아니하고 친구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며 그 이웃을 을 훼방치 아니하고 변리로 대금치 아니하며 뇌물을 받고 무죄한 자를 해치 않는 자”라고 했습니다.

죄인(the sinner)은 계명을 구체적으로 범하는 자를 말합니다. 그러므로 죄인은 악인보다 죄가 더 큽니다. 그리고 오만한 자는 자기를 절대화하여 남을 비웃고 무시하는 자를 말합니다. 잠언에 보면 오만한 자는 기질이 강하고, 회의적이며, 냉소적입니다(잠21:24). 오만한 자들은 하나님을 조롱하며 모욕적인 발언을 서슴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헛된 일이다. 그의 명령을 지키고, 죄를 뉘우치고 슬퍼하는 것이 무슨 유익이 있단 말인가? 이제 보니, 교만한 자가 오히려 복이 있고, 악한 일을 하는 자가 번성하며, 하나님을 시험하는 자가 재앙을 면한다(말3:14-15).”

‘꾀(counsel)’는 권유를 말하며, ‘길(way)’은 구체적인 행동을 뜻하고, ‘자리(seat)’는 모임을 의미합니다. 그 죄의 강도가 점차적으로 고조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단순한 권유를 듣는 차원에서 구체적인 행동을 따라하게 되고, 더 나아가 당을 지어 악을 도모하는데 일체감을 이룹니다. 동사 표현도 점점 강도가 더해갑니다. 일정한 거리를 두고 좇아가다(walk)가 어느 순간에 함께 서서(stand) 가게 되고 결국에는 같이 앉아버립니다(sit).

이상에서 볼 때 미미한 죄의 유혹에서 시작하여 그 유혹의 강도가 점점 강해짐을 알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좇아가다가 어느 시점에는 그 옆에 서있게 되고, 마지막에 그와 함께 앉아 있습니다. 이것은 죄의 늪 속에 점점 더 깊이 빠지게 되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사실 처음부터 죄에 깊이 빠지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장대비보다 이슬비에 옷이 젖음과 같이 사소하고 작은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타협하고 양보하다가 더 이상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빠지게 됩니다.

어떤 사람이 낙타와 함께 사막을 횡단하다가 밤이 되어 천막을 치게 되었습니다. 낙타는 천막 밖에 묶어 두었습니다. 잠을 자던 중 부스럭하는 소리에 주인은 잠이 깨었습니다. 그런데 낙타의 코가 천막 안으로 들어와 있는 것이었습니다. 낙타는 코가 시려 잠을 잘 수가 없으니 코만 천막 안으로 넣을 수 있도록 허락해 달라고 간청했습니다. 주인은 천막이 좁기 때문에 더 이상 들어오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고 허락했습니다. 조금 후에는 머리 부분이 들어왔고, 이 또한 약속을 받고 허락되었습니다. 아침이 되어 일어나 보니, 주인은 천막 밖에서 추위에 떨고 있고, 낙타는 천막 안에서 안락하게 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주인은 처음에 낙타의 코를 허락하지 말아야 했습니다. 이처럼 죄의 속성상 그 속에 한 발만 들여 놓으면 더 이상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까지 이르게 됩니다. 따라서 죄의 유혹이 시작되는 그 순간부터 끊어야 합니다. 우리는 이를 요셉에서 잘 알 수 있습니다. 요셉은 처음부터 죄의 싹을 잘라내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성도들에게 술도 마시지 않고 담배도 피우지 않고 죄를 짓지 않으며 무슨 재미로 사느냐고 말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먹고 마시는 데서 즐거움을 찾습니다. 스키, 골프, 볼링과 같은 레포츠나 농구나 축구, 야구 등의 스포츠에서 즐거움을 찾습니다. 그리고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쾌락과 인터넷 게임 등에서 즐거움을 찾습니다.

그러나 2절을 보겠습니다.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복 있는 자는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합니다. ‘여호와의 율법’은 좁은 의미로 모세오경을 의미하고, 넓은 의미로 하나님의 말씀 전체를 의미합니다. ‘즐거워하다’는 것은 기울다, 갈망하다, 좋아하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다시 말해 말씀을 쓴 약을 먹듯이 인상을 쓰면서 억지로 대하는 것이 아니라, 즐거운 마음, 기쁜 마음으로 대하는 것입니다. 율법은 사람을 얽어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인간에게 알리는 은혜로운 가르침의 총체이자 즐거움의 원천입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기 위해 주야로 율법을 묵상합니다. ‘주야’는 ‘늘 항상’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또한 ‘주(晝)’는 기쁠 때, ‘야(夜)’는 슬플 때나 재앙의 때를 상징합니다. 그리고 ‘묵상하다’는 곱씹다는 뜻이 있습니다. 소가 되새김질하듯이 하나님 말씀을 읽고 곱씹는다는 뜻입니다. 신명기 6장 6-9절 말씀을 풀어서 쓴다면 “하나님 말씀을 곱씹으라. 하나님 말씀이 멀리 있는 것처럼 하지 말고 가까이하라. 큰 결심하고 하나님 말씀을 묵상하지 말고 물마시듯이 틈틈이 하나님 말씀을 묵상하라”입니다.

오늘날은 영상 시대로서 사람들이 보고 느끼는 것은 좋아하지 생각하기를 싫어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말씀들을 메모하고 암송하여 그 말씀이 뼈 속 깊이 새길 때, 성경에 기초한 인생관, 가치관, 세계관이 형성되어 어떤 환경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우리가 길을 걸을 때나 운전할 때나 말씀을 늘 중얼거리며 암송도 하며 말씀이 행동 기준, 사고의 기준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말씀이 가정과 캠퍼스와 직장과 민족과 더 나아가 세계 캠퍼스를 지배하기를 기도합니다. 기쁠 때나 슬플 때나 환경과 상황에 구애받지 않고 하나님의 뜻에 자신의 삶을 맞추어 살기를 기도합니다.

둘째, 의인의 삶의 결과(3)

이런 삶의 결과가 어떠합니까? 3절을 보겠습니다.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의인을 나무로 비유합니다. 팔레스타인에는 비가 많이 오지 않는 건기일 때는 땅이 바싹 마르기 때문에 나무가 잘 자라기 위해서는 물가, 즉 마르지 않는 냇가 옆에 있어야 한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합니다. 시냇가는 자연적으로 흐르는 시내가 아니라 관개수로(灌漑水路)를 의미합니다. 냇가는 비가 안 오면 마를 수 있지만, 수로는 대개 끊이지 않는 수원지를 근거로 하고 있기 때문에 수분 공급이 언제나 가능합니다. 또한 심은 나무는 자연적으로 자라는 나무가 아니라, 사람이 의도적으로 옮겨 심은 나무를 말합니다. 의인을 대변하는 이 나무는 3가지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첫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는 생명의 원천에 그 뿌리를 두고 있어 성장과 결실에 필요한 생명력을 무한히 공급받습니다. 둘째는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습니다. 이 나무는 시절의 옷을 바꾸어 입으며, 결실의 때가 이르면 사람들에게 유익한 결실을 줍니다. 셋째는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않습니다. 이 나무는 늘 푸름을 유지하고 청정한 빛깔의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나무가 갖추어야 할 것은 생명력과 결실, 그리고 아름다움입니다. 시냇가에 심겨진 나무는 나무로서 모든 것이 갖추어져 있습니다. 이 비유에서 의인이 행복한 삶을 사는 것은 하나님의 특별한 상급이라기보다, 오히려 특정한 인생을 걸어온 것에 대한 열매라는 점입니다.

신앙을 지탱해 주는 뿌리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의인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생명을 공급받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너로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신8:3).” 하나님의 말씀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케 하고, 새 힘을 주고, 우둔한 자로 지혜롭게 합니다(시19:7). 하나님의 말은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습니다. 이 세상의 어떤 것도 우리를 구원에 이르게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구원에 이르게 합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합니다(딤후3:15-17).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가게 합니다. 뿐만 아니라 말씀을 사랑하는 자는 그 행사가 다 형통합니다. 하나님께서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어 best way로 인도하십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은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하여 뿌리를 깊이 내려야 합니다. 개인적 신앙체험이 말씀보다 우위에 두면 안 됩니다. 그 체험도 말씀에 의해 검증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말씀은 교리(Dogma)보다 앞서야 합니다. 인간의 교리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 겸손히 무릎을 꿇어야 합니다. 게다가 전통도 말씀에 의해 검증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내가 주의 법도를 묵상하며 주의 도에 주의하며 주의 율례를 즐거워하며 주의 말씀을 잊지 아니하리라(시119:15,16).”

말씀이 풍성한 개인과 가정과 나라는 반드시 어려움을 이깁니다. 영국이 말씀을 사랑하였을 때 대영제국이 될 수 있었고, 미국이 말씀을 기초로 살았을 때 세계 초강대국이 될 수 있었습니다. 우리나라가 지난 30년 동안 수많은 어려움을 이기고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이룬 이유도 곳곳에서 수많은 크리스천이 말씀대로 살고자 애를 쓰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말씀대로 사는 자들을 복주십니다.

셋째, 악인의 운명(4,5)

이와는 대조적으로 악인은 어떠합니까? 4절을 보겠습니다. “악인은 그렇지 않음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의인의 삶이 비교적 자세하게 나와 있는 반면에 악인의 삶은 단 한 마디 ‘그렇지 않음이여’라는 말로 소개되고 있습니다. 악인의 운명을 겨에 비유합니다. 이것은 추수 때에 겨를 까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알곡은 공중에 띄워진 후에 바로 땅으로 떨어지지만, 겨는 바람에 날려갑니다. 말씀을 멀리하는 삶은 겨와 같이 공허하고, 무의미하며, 무가치한 삶을 말합니다. ‘시냇가에 심은 나무’와 ‘바람에 나는 겨’는 서로 상반됩니다.

나무는 꿋꿋함, 지속, 번영, 풍성, 유용, 감싸줌, 생명, 존재를 연상케 하는 데 반해, 겨는 흩날림, 무상, 멸망, 허무, 공허, 무용, 귀찮음, 죽음, 비존재를 떠올리게 합니다. 악인은 바람에 날리는 겨와 같습니다. 바람에 날리는 겨의 특징은 한 곳에 뿌리를 내리지 않습니다. 바람에 날리는 겨는 바람 부는 대로 물결치는 대로 신나게 날아다닙니다. 유행의 바람, 사조의 바람, 돈바람, 춤바람, 치맛바람을 타며 잘도 날아다닙니다. 이런 자는 자유롭게 사는 것 같지만 실상은 비참합니다. 이런 자는 한곳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이리저리 날아다니기 때문에 아무 열매도 맺지 못합니다. 그리고 바람에 날리는 겨의 특징은 속이 빈 것입니다. 내면에 진리와 은혜와 사랑이 없고 영적 열매가 없습니다.

악인의 운명은 심판 때 결정적으로 드러납니다. 5절을 보겠습니다. “그러므로 악인이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이 의인의 회중에 들지 못하리로다.” ‘악인의 심판’과 ‘의인의 회중’은 현재적인 상태와 종말론적인 상태를 다 포함합니다. 악인의 심판은 현재에도 시행되고, 종말의 날에 최종적으로 이루어집니다. 전도서 기자는 심판의 현재성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간에 심판하리라(전12:14).” 또한 최종적인 심판의 날 하나님은 악인과 의인을 구분하시며, 악인은 하나님의 심판을 견디지 못하게 됩니다. “그 때에 너희가 돌아와서 의인과 악인이며 하나님을 섬기는 자와 섬기지 아니하는 자를 분별하리라(말3:18).” “세상 끝에도 이러하리라. 천사들이 와서 의인 중에서 악인을 갈라내어 풀무 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마13:49,50).”

이 세상에서는 악을 행하고도 재수 좋게 들키지 않고 지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불꽃같은 눈으로 감찰하시는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그들은 의인들과 함께 천국의 기쁨을 누릴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지옥불 속에서 영원히 고통당하게 됩니다. 악인은 현실세계에서 심판을 받아 의인이 모이는 거룩한 모임에 참여할 수 있는 자격이 없고, 또한 세상 끝에 올 심판에는 더욱이 그가 설 거룩한 자리는 없습니다. 악인의 운명은 추수 때 바람에 날리는 겨와 같이 그 무가치함이 만천하에 드러납니다. 장차 임할 세계와 역사의 종말에 악인은 그 설 자리를 찾지 못합니다.

사람들은 모두가 나름대로의 열매를 바라보고 열심히 땀을 흘립니다. 그러나 혹시 우리가 잎만 무성한 무화과나무처럼 사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 봐야 합니다. 예수님은 열매 없이 잎만 무성했던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셨습니다(마21:19). 우리는 겨와 같이 바람에 날려 다니는 쓸모없는 인생은 아닌가? 지금이라도 돌이켜서 악을 버리고 말씀을 좇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오직 한 길, 의인의 길로 들어서야 합니다. 그래야 인생의 추수 때에 하나님께 열매를 드릴 수 있습니다.

결론

6절은 이 시편의 결론입니다. “대저 의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의 길은 망하리로다.” ‘대저’는 ‘왜냐하면’이라는 뜻입니다. 시인은 이를 통하여 지금까지 1-5절에서 말한 것들의 이유와 근거를 제시합니다. 어떻게 해서 의인의 운명과 악인의 운명이 이토록 달라질 수 있는가? 이에 대해 6절에서 왜냐하면 의인의 길은 야웨께서 인정하시나 악인의 길은 망하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여호와께서 인정하다’에서 ‘인정하다’라는 말은 안다는 뜻인데, 단순히 지적인 인식이 아니라, ‘받아들이고, 동반하고, 보살피는 것’을 의미합니다. 의인의 길은 하나님이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책임을 져주십니다. 그러나 악인의 길은 저절로 멸망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섭리요 하나님의 방정식입니다. “의인의 길은 돋는 햇볕 같아서 점점 빛나서 원만한 광명에 이르거니와 악인의 길은 어둠 같아서 그가 거쳐 넘어져도 그것이 무엇인지 깨닫지 못하느니라(잠4:18,19).” “말씀을 멸시하는 자는 패망을 이루고 계명을 두려워하는 자는 상을 얻느니라(잠13:13).”

세상에는 의인의 길과 악인의 길, 두 가지 밖에 없습니다. 시편 기자는 갈림길에 서서 두 길 가운데 한 길을 택하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한 길, 즉 의인의 길로만 가도록 권고합니다. 인생이 걸어가야 할 길은 올바른 한 길 만이 있을 뿐입니다.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며 그 뜻대로 살아가려는 이들에 대한 희망이요, 소망입니다. 의인을 번성케 하시고 승리케 합니다. 의인은 결국 하나님의 구원을 기뻐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백성들이 이 세상에서 오직 믿음으로만 살아갈 수 있는 이유입니다.

새해를 출발하면서 시대 풍조를 좇아 살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 살기를 기도합니다. 세상 어떤 것보다도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여 주야로 묵상하여 말씀이 나를 지배하고 나의 감정과 의지를 지배하고 가정을 지배하고 캠퍼스와 직장과 민족과 더 나아가 세계 캠퍼스를 지배하기를 기도합니다. 그 때 하나님은 크게 기뻐하시고 우리를 넘치도록 축복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평생 의인의 길을 감으로서 진정으로 복 있는 사람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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