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1강 복음의 시작이라

조회 수 2935 추천 수 0 2012.07.12 07:21:03
마가복음 제 1 강 (1:1-8, 요절, 1:1)

복음의 시작이라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복음의 시작이라(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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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저자는 무엇이 시작되었음을 선포하고 있습니까(1)? 복음은 누구에 관한 것이며 예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2. 선지자 이사야의 글에 사자의 맡은 사명이 무엇입니까(2,3)? 세례 요한은 주의 길을 어떻게 예비했습니까(4)? 여기서 회개란 무엇이며 또 회개한 자가 누릴 수 있는 영적 축복에 대해 생각해 보시오.

3. 세례 요한의 말씀 전파를 통해 백성들 가운데 어떤 역사가 일어났습니까(5)? 이로써 주의 길이 어떻게 예비되었습니까?

4. 세례 요한의 실제 생활이 어떠했습니까(6)? 그는 자신과 비교하여 그리스도는 어떤 점에서 다르다고 증거합니까(7,8)? 물세례와 성령 세례는 어떻게 다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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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의 저자는 요한 마가입니다. 히브리 이름은 요한이고, 라틴어 이름은 마가입니다. 그는 예루살렘 출신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헬라 교육을 받은 유능한 청년이었습니다. 그의 어머니 마리아는 신앙심이 깊은 여인이었습니다. 어머니의 신앙적 영향을 받고 자란 그는 진리를 사랑하고 복음 역사를 사랑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심약하여 어려운 현실 문제에 부딪히면 뒷걸음질을 잘 치는 겁 많은 청년이었습니다(막14:51,52, 행13:13).

그런 그가 사도 베드로로부터 복음을 전해 듣고 예수님을 만나 변화된 후에 생동감이 넘치고 단순하며 powerful한 마가 복음서를 기록했습니다(벧전5:31). 그는 베드로의 동역자 뿐만 아니라 후에 바울의 동역자가 되기도 했습니다(딤후4:11). 마가의 상징은 사자입니다. 그는 처음에 연약하여 사역에 적극적이지 못했지만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난 후에는 사자후(獅子吼)를 토하는 복음의 종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연약하고 두려움이 많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예수님 안에서 변화만 되면 獅子吼를 토하는 담대한 주님의 자녀가 될 수 있습니다.

첫째, 복음의 시작(1)

마가복음은 장엄한 말씀으로 시작됩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복음의 시작이라(1).” 이 말씀은 창세기 1장 1절 말씀과 같이 웅장하고 장엄합니다. 창세기 1장 1절이 천지창조를 선포하였다면 마가복음 1장 1절은 복음의 시작을 선포하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란 성육신하신 예수님의 신성을 말합니다. ‘예수’란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할 자란 뜻입니다. ‘그리스도’란 하나님에 의해 임명된 선지자, 대제사장, 그리고 만인의 왕을 뜻합니다.

복음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셨다는 기쁜 소식입니다. 복음은 기독교 교리의 요체요 핵심입니다(롬1:16). 복음의 성격은 자유하게 하고 해방하는 것입니다(요8:32). 복음은 사람을 죽음과 죄로부터 자유롭게 합니다. 그리고 복음은 진리와 배치되는 인습과 전통으로부터 사람들을 해방시킵니다. 그러나 복음이 곡해되면 오히려 사람을 억압하는 볶음이 되기 쉽습니다. 바울이 갈라디아서에서 말하는 “다른 복음(갈1:6-9)”은 ‘볶음’입니다. 요즘 예수 그리스도를 단순히 믿어서는 안 되고 뭔가 하나를 추가하여야 구원받는다고 주장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자들을 경계해야 합니다.

시작은 사람을 벅차게 하고 설레게 합니다. 졸업을 하고 첫 출근하는 새로운 직장, 새 아파트를 구입하여 첫 입주할 때 우리의 마음은 설렙니다. 그러나 며칠 직장을 다녀보면 시계추와 같은 반복된 삶에 절망합니다. 새 아파트 입주도 그 때 뿐 몇 달 살다보면 그저 그렇습니다. 신입생들은 새로운 대학생활에 대한 기대감으로 설렙니다. 그러나 몇 날 다녀보면 고등학교와 별로 다른 점이 없는 것으로 인해 실망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복음의 시작은 우리를 날마다 벅찬 감격으로 살게 합니다. 왜냐하면 이는 죄와 어두움과 사망 권세가 물러가고 빛과 생명과 구원의 역사의 시작이요 모형의 변화가 아니라 나의 본질이 변화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마가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복음의 시작이라”고 벅찬 감격으로 복음을 선포합니다.

‘시작’은 끝을 전제로 시작됩니다. 복음이 시작되기 이전의 세상은 어떠했습니까? 한마디로 아담의 교만과 불순종으로 죄와 사망이 세상을 지배했습니다. 마귀가 왕 노릇했습니다. 인간은 죄의 노예가 되었습니다. 죄 값은 반드시 치러야 합니다. 교도소에 가야만 죄 값을 치루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이 죄를 지으면 양심의 가책을 받습니다. 가위에 눌리는 악꿈을 꿉니다. 여러 가지 심리적인 질환으로 벌을 받습니다. 공포심으로 불안과 두려움의 벌을 받습니다. 심리적인 질환뿐만 아니라 육체적으로도 여러 가지 질환이 나타나 벌을 받게 됩니다. 에이즈, 성병 등은 죄의 삯입니다. 그리고 관계성이 파괴됩니다. 사랑의 관계에서 미움과 증오와 무관심의 관계로 바뀝니다. 그런데 죄는 자신으로 끝나지 않고 가정과 사회와 인류에까지 영향을 미칩니다. 부모들의 죄로 인해 가정이 파괴되었을 때에 자녀들은 형언할 수 없는 고통을 맛보게 됩니다.

무엇보다 성경은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했습니다(롬6:23a). 죄는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히브리서 9장 27절을 보면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다”고 했습니다. 심판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요한계시록 21장 8절을 보면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행음자들과 술객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예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죄의 결과는 무섭습니다.

본래 우리는 아름다운 하나님의 형상을 소유한 거룩한 존재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은 사랑과 거룩함, 그리고 의입니다. 그런데 죄로 인해 우리 내면은 거룩함을 사모하기보다 추하고 더럽고 변태적인 것을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문둥병자처럼 우리 내면은 더럽고 추한 몸이 되었습니다. 사랑보다는 미움과 시기 질투가 가득하고, 육신적인 욕망과 탐욕만이 가득하여 동물처럼 살아야 했습니다. 의보다는 거짓과 위선이 가득했습니다. 거룩한 사명을 잃고 어떻게 하면 잘 먹고 잘 입고 인생을 엔조이 할 것인가에 관심을 쏟게 되었습니다.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으로 이 땅은 강자만이 존재하는 동물농장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죄로 말미암아 멸망할 수밖에 없는 인간들을 그대로 내버려두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습니다. 예수님은 33년간 이 땅에 계시면서 가난하고 병들고 사회로부터 소외된 사람들, 그리고 죄와 죽음이 주는 두려움으로 고통당하는 죄인들을 섬기시다가 골고다 언덕에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내가 져야할 십자가를 대신 지시고 무서운 고통을 받으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해 죽으시고 장사 지낸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살아나셨습니다(고전15:3,4).

이로 인해 우리가 누릴 수 있는 특권이 무엇입니까? 어두운 BC 시대가 물러가고 찬란한 AD 시대가 시작되었습니다. 어두움에서 빛이, 죽음에서 생명이, 절망에서 희망이 임했습니다. 죽음이 가져다주는 불안과 회의와 허무에 시달리지 않게 되었습니다. 율법의 시대에서 은혜의 시대로, 정죄와 심판에서 용서와 구원이 임했습니다. 미움이 사랑으로 바뀌었습니다. 마귀가 지배하던 삶에서 성령께서 지배하는 삶으로 바뀌었습니다. 원망과 불평에서 감사와 기쁨과 찬미로 바뀌었습니다. 탐욕에서 나눔으로, 정욕에서 순결로 바뀌었습니다. 부정적이고 소극적인 자아가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자아로 바뀌었습니다. 불평을 퍼트리는 불평의 바이러스에서 감사를 퍼트리는 감사의 바이러스로 변했습니다. 부정적인 악성 바이러스를 퍼트리는 삶에서 긍정의 전도자가 되었습니다.서울대에서 연구한 조사를 보면 20대는 부정적인 소문을 86%, 긍정의 소문을 4%, 4,50대는 부정의 소문을 84%, 긍정의 소문을 16% 전한다고 합니다. 우리는 반대로 부정의 소문이 4%, 16%, 긍정의 소문을 86%, 84%를 퍼트리는 긍정의 전도자가 된 것입니다. 내면의 상처가 치유되고 건강한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죄인들이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잃어버린 자아와 파괴된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되었습니다. 고귀한 사명이 회복되었습니다. 서로간의 관계성이 회복되었습니다. 사랑으로 모든 사람을 대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비전과 소망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더 이상 죄의식에 시달릴 필요가 없게 되었습니다. 썩고 낡고 쇠할 것을 찾던 삶에서 영생과 하나님 나라의 산 소망을 바라며 살게 되었습니다. 인류의 최대 원수인 죄와 어두움과 사망에서 죄 사함과 생명을 주신 예수님을 찬양합니다. 예수님을 사랑합니다.

둘째, 주의 길을 예비하는 세례 요한(2-5)

마가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선포한 후에 이 복음이 어떻게 시작되었는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는 먼저 메시야의 선구자 세례 요한에 대해 언급하고 있습니다. 2,3절을 보겠습니다. “선지자 이사야의 글에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저가 네 길을 예비하리라.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가로되 너희는 주의 길을 예비하라. 그의 첩경을 평탄케 하라.” 하나님은 메시아가 오시기 전에 그의 선구자를 보내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때가 되자 메시아의 선구자 세례 요한을 보내셨습니다. 그의 사명은 주의 첩경을 평탄케 하고, 그의 길을 예비하는 것입니다. 마가복음은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 생략되었지만 누가복음에는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선지자 이사야의 책에 쓴 바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가로되 너희는 주의 길을 예비하라. 그의 첩경을 평탄케 하라. 모든 골짜기가 메워지고, 모든 산과 작은 산이 낮아지고, 굽은 것이 곧아지고, 험한 길이 평탄하여질 것이요(눅3:4,5).” 백성들은 메시아를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이 때 세례 요한은 백성들이 메시아를 영접할 수 있도록 마음을 준비시켰습니다. 세례 요한은 모든 골짜기를 메우고 높은 산들을 낮게 하고, 굽은 것을 곧게 하고, 험한 길을 평탄하게 했습니다.

여기에서 골짜기와 높은 산과 낮은 산, 그리고 굽은 길과 험한 길은 우리 모습을 말합니다. 골짜기는 깊이 패여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운명의 골짜기, 패배의 골짜기, 절망의 골짜기, 열등감의 골짜기가 있습니다. 그리고 미움과 불신과 증오의 골짜기가 있습니다. 사람이 골짜기에 한번 빠지게 되면 헤어나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들의 공통점은 무기력하고 자기 자신을 자학합니다. 원망과 불평이 입에서 떠나지 않습니다. 미움의 눈초리로 사람과 사회를 저주하고 아주 냉소적입니다. 그리고 원치 않게 죄를 짓고 사망의 골짜기에 빠지기도 합니다. 이런 사람은 사람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합니다.

또 각종 산이 있습니다. 산은 저마다 스스로 잘났다며 위풍당당하게 솟아있습니다. 자기가 최고라고 뽐냅니다. 여기에서 큰 산은 아주 교만한 사람이요, 작은 산은 덜 교만한 사람인데, 크게 교만한 사람이나 작게 교만한 사람이나 교만하기는 다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자기 의가 강하고 자존심이 강합니다. 자존심을 건드리면 불독처럼 눈을 부릅뜨고 덤빕니다. 그리고 자기 광을 내기를 좋아하고 남을 무시합니다. 배우는 마음이 없고 항상 가르치려고 합니다. 그리고 영적인 세계를 아주 우습게 여깁니다.

또한 굽은 길이 있습니다. 굽은 길은 마음이 삐뚤어져 있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모든 것을 색안경을 쓰고 바라보고 비판적입니다. 사랑을 순수하게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관심을 갖고 사랑하면 자기 일에 너무 상관한다고 반발하고, 관심을 두지 않으면 무관심하다고 반발합니다.

마지막으로 험한 길이 있습니다. 아주 악한 사람을 말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신경질적입니다. 죄의 문화를 양성합니다. 남을 해치고 분쟁을 일으키고 자기가 한 잘못을 깨닫지 못하고 오히려 정당화합니다.
세례 요한은 광야에서 회개의 세례를 전파했습니다. 4절을 보겠습니다. “세례 요한이 이르러 광야에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니” 세례 요한은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가 되었습니다. 광야는 풀 한포기 없는 사막입니다. 세례 요한은 악 조건 속에서 사명을 감당했습니다. 사람들은 환경이 예비 되어야 무엇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세례 요한은 환경을 탓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환경을 극복하고 열정적으로 회개의 세례를 전파했습니다. 그의 열정 앞에 환경과 여건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토인비는 역사의 연구에서 환경이 좋지 않은 곳에서 문명의 꽃이 피었다고 했습니다. 세례 요한의 메시지는 메아리가 아니라 소리였습니다. 메아리는 희미하고 다시 되돌아옵니다. 그러나 세례 요한의 메시지는 소리가 되어 백성들의 심장을 뚫고 들어갔습니다.

그는 열정의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열정의 사람을 쓰십니다. 우리도 이런 열정을 가져야 합니다. 열정을 가진 사람 앞에는 환경과 조건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열정은 역사를 창조하는 원동력이 됩니다. 링컨 대통령은 남북전쟁을 하면서 그랜트 장군을 두고 부관들에게 “우리가 이겼다. 왜냐하면 그랜트 장군은 이기고자 하는 강렬한 열망이 있기 때문이다”고 말했습니다. 전략가가 전쟁을 이기는 것이 아니고 전쟁에 대한 책을 잘 쓰는 자가 전쟁을 이기는 것이 아닙니다. 이기고자 하는 열망을 가진 자만이 전쟁을 이길 수 있습니다. 부흥하기를 원합니까? 부흥에 대한 열망을 가져야 합니다. 열정은 사람을 전염시킵니다. 한사람의 열정은 다른 사람에게 열정을 갖도록 합니다. 열정이 있는 사람만이 사람과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무슨 일을 하더라도 열정적으로 하시기 바랍니다. 이곳에 창조의 역사가 있습니다.

세례 요한이 열정적으로 회개의 세례를 전하자 그들이 죄를 자복하고 회개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5절을 보겠습니다. “유대 지방과 예루살렘 사람이 다 나아가 자기 죄를 자복하고 요단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더라.” 그들은 자신들의 숨은 죄악을 자복하였습니다. 운명의 골짜기, 패배의 골짜기, 절망의 골짜기, 열등감의 골짜기, 미움과 불신과 증오의 골짜기를 회개했습니다. 그러자 입에서 찬양과 감사가 나오고 삶이 역동적이 되었습니다. 스스로 잘났다고 기고만장하던 교만을 회개했습니다. 그리했을 때에 겸손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굽었던 마음을 회개했습니다. 그러자 색안경을 벗고 순수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험한 길을 가던 사람이 회개했습니다. 그러자 상처를 주던 사람이 위로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았습니다. ‘세례’란 단지 종교적인 의식이 아니라 죄를 회개한 표시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물질과 질병 문제, 진로문제, 학과 공부, 성격 문제, 친구 문제로 괴로워합니다. 그러나 이런 외적인 문제도 문제지만 문제는 내면의 죄 문제입니다. 정욕, 탐심, 거짓, 위선, 미움, 절망, 무기력, 이기심, 안일이 문제입니다. 죄로 인해 사람들은 인간관계가 원만하지 못합니다. 사람들은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눈동자가 풀어지기까지 컴퓨터 게임에 몰입합니다. 담배와 술과 만화, 영화, 비디오에 몰입합니다. 밤거리를 배회합니다. 더 심하면 마약을 복용하여 폐인이 되기도 합니다.

이런 사람들이 어떻게 건강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까?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 무릎을 꿇고 자신의 모든 죄를 자복하고 회개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로 죄 씻음 받고 죄 사함을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세례를 받아 하나님의 아들로 성령의 인침을 받아야 합니다. 오늘 이 시간에 우리 속에 깊이 숨어 있는 죄를 드러내놓고 통회하고 예수님의 보혈로 죄 씻음을 받기를 기도합니다.

셋째, 세례 요한의 생활양식과 증거(6-8).

6절을 보겠습니다. “요한은 약대 털을 입고 허리에 가죽띠를 띠고 메뚜기와 석청을 먹더라.” 약대 털로 낮에는 의복을 삼고 밤에는 이불을 삼았습니다. 그리고 당시 가난한 자들이 먹는 석청과 메뚜기가 그의 주식이었습니다. 그의 생활은 아주 단순하고 검소했습니다. 그는 제사장의 아들로서 얼마든지 성전에서 마음껏 먹으며 좋은 가운을 입고 좋은 환경 속에서 사명을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검소하게 시대와 구별된 생활을 했습니다. 바로 그의 능력은 그의 단순한 생활에서 나왔습니다. 클라이드 헤드릭은 건강한 관계를 위해 단순한 삶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데이비드 소로는 단순하게 살라고 권유했습니다. 단순한 삶에 힘이 있고 행복이 있습니다. 사역도 단순한 프로그램, 단순한 메시지, 단순한 문장이 힘이 있습니다. 요한은 단순하게 말씀을 붙들고 있는 그대로 충성했습니다.

그는 메시지나 삶에서 적극적으로 예수님을 증거했습니다. 7절을 보겠습니다. “그가 전파하여 가로되 나보다 능력 많으신 이가 내 뒤에 오시나니 나는 굽혀 그의 신들메를 풀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그는 회개의 세례를 전할 뿐만 아니라 적극적으로 자신을 낮추고 예수님을 선전했습니다. 그는 두 가지 면에서 예수님을 전했습니다. 당시 세례 요한의 인기는 날로 상승했습니다. 사람들은 그가 혹시 메시야가 아닌지 생각했습니다(눅3:15). 그는 백성들의 존경과 흠모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고 자신은 예수님의 신들메도 풀 수 없는 비천한 존재요, 예수님은 자신과 비교할 수도 없는 고귀하고 위대하신 분임을 증거했습니다.

또한 세례 요한은 신분 면에서 뿐만 아니라 하는 일에서도 근본적으로 다름을 드러냈습니다. 8절을 보겠습니다. “나는 너희에게 물로 세례를 주었거니와 그는 성령으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시리라.” 물세례는 회개의 세례로써, 죄 사함을 받도록 마음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 세례는 죄를 사하여 주고 소멸합니다. 우리를 변하여 새 사람이 되게 합니다. 이 성령 세례는 죄를 회개하고 자복한 자에게 임합니다(행2:38). 세례 요한은 물세례를 주는 한 인간에 불과하지만 예수님은 성령 세례를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는 말씀을 통해 자신의 위치와 사명을 깨닫고 그 사명에 충실했습니다. 또한 자신의 한계를 깨닫고 자기를 낮추고 예수님을 높였습니다. 그는 예수님 앞에서 겸손했습니다. 그는 어떻게 예수님을 존귀케 할 것인가? 어떻게 사람으로부터 예수님을 주목케 할 것인가?에 대한 열망이 있었습니다. 세례요한은 나를 바라보지 말고 예수님을 바라보라고 외쳤습니다. 요한복음 3장 30절에서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겠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을 증거하는 것이 그의 꿈이자 목표였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그를 여자가 난 자 중에서 가장 위대한 자라고 칭찬하셨습니다(눅7:28). 우리가 사명을 충실하게 감당할 때 사람들로부터 조롱을 받을지는 모르지만 예수님께서 우리를 높여 주십니다.

시대가 힘들고 어렵고 복잡할수록 단순한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죄를 자복하고 복음을 영접하여 복된 삶을 살기를 기도합니다. 여기에 진정한 행복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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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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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학마을교회

                                    Tiananmen Square protests, China Democracy, 天安門 天安门 法輪功 李洪志 Free Tibet 劉曉波, 热比娅·卡德尔, 熱比婭·卡德爾