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제 12 강(말씀 2:23-3:6)

안식일의 주인 되신 예수님

“이러므로 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니라(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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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식일에 대한 재미있는 풍자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십계명을 가지고 프랑스 사람에게 가서 “너희가 이 계명을 받겠느냐?” 물었더니, “우리는 남녀 관계가 복잡해서, 그 칠 계명 때문에 받을 수가 없다”고 거절했습니다. 간음하지 말라는 법을 지킬 수가 없어 거절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독일 사람에게 가서 “이 계명을 받으라” 했더니, “안식일 지키라는 법이 있어서 안되겠습니다. 우리는 일을 많이 해야 되겠는데, 일주일에 한 번씩 쉬어 가지고는 안 되니까 우리 그거 못 받겠다”고 거절했습니다.

하나님은 아랍 사람들에게 가서 “이 계명을 받으라” 했더니, “우리는 사막을 여행하는 사람들의 보따리를 털어 살아가는데, 도둑질하지 말라는 법 때문에 안되겠습니다”고 거절했습니다.

그래 유대 사람들에게 가서 십계명을 내놓고 “너희가 이것을 받겠느냐?” 했더니, “그거 얼맙니까?” 물어, 공짜라고 하니 그러면 받겠다며 받았다고 합니다.

최초의 안식일은 창세기 2장에 나옵니다. 하나님은 6일 동안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일곱째 날을 복 주사 거룩하게 여기시고 안식하셨습니다. 안식일은 하나님이 안식하신 날로 축복의 날입니다. 이스라엘이 율법에 따라 지키는 안식일은 토요일입니다. 그러나 신약 시대의 안식일은 구약 시대의 안식일과 다른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골로새서 2장 16절을 보겠습니다.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월삭이나 안식일을 인하여 누구든지 너희를 폄론치 못하게 하라 이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 안식일은 구약의 월삭이나 절기와 같이 몸에 대한 그림자입니다. 몸, 실체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셨기 때문에 모형은 필요 없게 되었습니다.

모델 하우스는 아파트가 들어서기까지 존재합니다. 이와 똑같이 예수님께서 오셨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인 월삭과 절기, 안식일은 폐지되는 것입니다. 지금도 안식교는 토요일을 안식일로 삼아 지키고 있는데 이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이는 마치 아파트를 놓아두고 모델하우스에서 사는 것과 똑같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예배하는 날은 안식일이 아니라 주의 날입니다. ‘주의 날’이란 주님이 죽음의 권세를 깨시고 다시 살아나신 부활의 날을 말합니다. 주님의 부활은 안식의 완성입니다. 주님의 부활은 그리스도인들의 안식의 완성이기도 합니다. 안식이 쉼이라면 우리는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쉼을 얻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일은 안식일의 대용품이 아닙니다. 주일은 율법으로 어쩔 수 없이 지키는 것이 아니라 즐거움과 감사와 기쁨으로 드리는 축제의 날입니다. 그러니까 주일은 주일성수, 의무적으로 지키는 keeping의 대상이 아니라 celebration, 자발적으로 기쁨으로 드리는 축제의 날입니다. 주일을 부활의 기쁨과 소망으로 잔치 집 같이 지내시기 바랍니다.
어느 날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밀밭 사이로 지나가셨습니다. 이 때 제자들은 밀 이삭을 잘라 비벼먹었습니다. 이 날은 마침 안식일이었습니다. 이것을 지켜보고 있던 바리새인들은 예수님께 달려와 따졌습니다. 24절을 보겠습니다. “보시오. 저희가 어찌하여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하고 있나이까?”

보시오. 이 말은 딱 걸렸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이 실수하기를 살펴보고 있었는데, 이제 분명한 증거를 잡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찌하여’는 이제 따지겠다는 것입니다. ‘하지 못할 일을 하나이까?’는 마땅히 심판받고 정죄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기 위해 39조 234항을 만들었습니다. 이런 조항 중에 추수, 타작, 키질 등을 해서는 안 된다는 조항이 있습니다. 이런 조항을 만든 의도는 어떻게 해서든지 안식일을 잘 지키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본래의 목적을 상실하여 빈 껍질만 남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이 밀 이삭을 자른 것은 추수요, 비빈 것은 타작이요, ‘훅’ 분 것은 키질한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이 때 예수님은 하나님 역사의 이미지를 실추시킨 제자들을 책망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다윗의 예를 들어 제자들의 당위성을 말씀하셨습니다. 25,26절을 읽겠습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다윗이 자기와 및 함께한 자들이 핍절되어 시장할 때에 한 일을 읽지 못하였느냐? 그가 아비아달 대제사장 때에 하나님의 전에 들어가서 제사장 외에는 먹지 못하는 진설병을 먹고 함께한 자들에게도 주지 아니하였느냐?” 다윗이 사울에게 쫓겨 놋 땅으로 망명가게 되었습니다. 이 때 그는 너무 배가 고파서 제사장 이외에는 먹지 못하는 진설병을 먹고, 자기와 함께한 자들에게도 주었습니다.

진설병이란 성소 안에 있는 금상 위에 이스라엘의 12지파를 따라 12개의 떡을 두 줄로 차려 놓은 것으로, 매 금요일에 새 떡으로 갈아 놓고 거둔 것은 제사장이 먹었습니다(레24:9). 다윗은 분명히 법을 어겼습니다. 그러므로 다윗은 율법에 의해 처벌을 받아야 옳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다윗을 정죄하지 않으셨습니다. 또한 유대인들도 다윗이 율법을 어겼다고 비난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다윗이 위대해서 뿐만 아니라 고의로 율법을 어긴 것이 아니라 배가 고파 먹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다윗의 형편을 이해하셨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제자들의 형편을 이해하셨습니다.

반면 바리새인들은 율법의 참된 의미를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의 입장을 조금도 이해하거나 용서하지 않고 율법의 잣대로 그들을 정죄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런 그들의 잘못을 깨우쳐 주셨습니다. 25절을 다시 한 번 보겠습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다윗이 자기와 및 함께한 자들이 핍절되어 시장할 때에 한 일을 읽지 못하였느냐?”
‘읽지 못하였느냐?’는 것은 ‘새롭게 다시 배우라’는 뜻입니다. 그들은 성경 지식을 많이 알고 있었지만 성경의 참 뜻을 이해 못했습니다. 그들은 전통에 고착화되어 그 내용을 알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은 성경의 참된 의미를 잘 알지 못하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노라 하신 뜻을 너희가 알았다면 무죄한 자를 죄로 정치 아니하였으리라(마12:7).”

그리고 미가서 6장 8절을 보겠습니다.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이 오직 공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여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하나님은 형식적인 제사를 원치 않습니다. 하나님은 자비를 원하십니다. 공의를 행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겸손하게 하나님과 함께 하시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마음의 합한 자가 되어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나 그들은 율법의 참 뜻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마음인 사랑과 겸손과 공의를 알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은 계속하여 그런 그들의 잘못을 깨우쳐 주셨습니다. 27절을 읽겠습니다. “또 가라사대 안식일은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니” 율법이란 문자 자체보다 정신이 중요합니다. 율법의 생명은 사람을 사람답게 하고, 사람을 살리는 데 있으며, 인간과 인간과의 관계, 인간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새롭게 세우는 데 있습니다. 그리고 그 본질은 사랑입니다. 그런데 그들에게 있어서의 율법은 사람들을 심판하는 잣대였습니다. 그들은 사람을 살리는 율법을 이용하여 사람을 정죄했습니다.

그러면 안식일은 어떤 날입니까? 28절을 보겠습니다. 안식일은 예수님이 주인입니다. “이러므로 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니라.” 바리새인들은 그들이 정한 전통을 가지고 예수님을 공격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안식일의 주인입니다. 예수님은 안식일을 정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주일을 정하셨고, 안식일의 주인이기 때문에 예수님이 원하시는 대로 지켜야 합니다.

바리새인이 원하는 대로, 그들의 입맛대로 지키는 것이 아닙니다. 복사본이 아닌 오리지널 되신 예수님의 뜻대로 지켜야 합니다. 자기중심, 제 마음대로, 자기가 세운 잣대로, 자기가 좋아하는 식대로 지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중심, 하나님께서 원하는 대로, 하나님이 세운 법대로, 하나님이 좋아하는 스타일대로 주일을 지켜야 합니다.

부모님 생신에 자녀들이 자기 좋아하는 음식을 차려놓으면 되겠어요? 자기가 좋아 하는 피자를 몇 판 사다가 놓아보세요. 누구를 위해 종을 울리는 것이지요. 부모님이 평소 좋아하는 것을 해드리는 것입니다. 된장찌개를 좋아하시면 된장찌개를 맛있게 끓여 대접해드려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주인공과는 전혀 상관없이 자기중심으로 하는 습성이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사랑한다면 주님이 원하는 법대로 섬겨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일을 어떻게 보내기를 원하시는가를 알고 그대로 보내야 합니다. 주님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일까요?

주님은 우리교회에 비전 선언문에도 나오는 것과 같이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는 것을 원하십니다. 신명기 6장 6절을 보면 셰마 이스라엘(이스라엘아 들으라)로 시작합니다. “너는 하나님을 사랑하되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사랑하라.” 여기에서 마음은 히브리어로 ‘레브’입니다. 이는 감성을 다하라는 말입니다. 곧 모든 정을 합해서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목숨은 히브리어로 ‘네페쉬’로, 영혼을 다하라는 것입니다. 영혼의 핵심 기능은 의지입니다. 힘은 히브리어로 ‘메호데’인데, 이는 생각의 힘을 말합니다. 이를 종합한다면 지정의를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를 거듭거듭 말씀하십니다. 이는 습관화, 체화, 인격화를 말합니다. 하나님 사랑을 몸에 밸 때까지 반복적으로 하라는 것입니다. 형식이 아닌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성공한 사람들은 모두가 마음을 다한 사람들입니다. 채플린이 무명 시절 철공소에서 일을 할 때의 이야기입니다. 어느 날 바쁜 일 때문에 사장이 그에게 빵을 사오라고 부탁했습니다. 저녁 시간이 되어 그가 사온 봉투를 열어보니 그 안에 빵과 함께 와인 한 병이 들어있었습니다. 사장이 채플린을 불러 와인을 사온 이유를 물어보았습니다. 그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사장님, 일이 끝나면 와인을 드시는데 오늘 보니 와인이 떨어진 것 같아 제가 둘 다 사가지고 왔습니다.” 그는 주인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세계적인 배우가 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를 하더라도 마음을 다하는 정성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민족주의자요 독립운동가요 산정현 교회의 장로이님이신 고당 조만식 선생은 평북 정주 출신인데 똑똑하지만 가난하여 남의 집 머슴살이를 하였습니다. 그는 자신이 처지를 비관하거나 부끄러워하지 않고 오히려 열심히 주인 집 일을 했습니다. 그에게 맡겨진 일은 매일 주인의 요강을 깨끗이 닦아놓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마음으로 지극 정성 다하여 요강을 닦았습니다.

이를 지켜 본 주인은 학자금을 대주며 평양에 있는 숭실학교에 보내 공부를 시켰고, 일본유학까지 보냈습니다. 그는 항상 제자들이 인생의 성공 비결을 물을 때마다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여러분이 사회에 나가거든 지극 정성 다하여 요강을 닦는 사람이 되십시오.” 그는 무슨 일을 하든지 지극 정성을 다했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지극정성을 다하여 사랑하기를 원하십니다. 교회는 주님의 몸 된 교회입니다. 주님은 몸 된 교회를 지극정성 다하여 섬기고 봉사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이웃을 사랑하되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막12:31). 이웃에 대해 무관심을 갖지 말고 내 몸처럼 사랑하라고 했습니다. 이웃의 고통을 내 고통으로 여기라는 것입니다. 이웃의 아픔을 내 아픔으로 여기라는 것입니다. 이웃의 기쁨을 내 기쁨으로 여기라는 것입니다. 이웃을 경쟁의 대상이 아니라 사랑의 대상, 교제의 대상으로 대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내 몸을 대단히 아낍니다. 우리는 자기 건강을 위해 지대한 관심을 갖습니다. 우리는 자신의 몸매를 열심히 가꿉니다. 우리는 자기 건강과 행복에 깊은 관심을 갖습니다. 이와 같이 다른 사람의 건강과 행복에도 깊은 관심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이웃에 대한 우리의 자세가 어떠합니까? 무관심, 내게 유익이 되지 않으면 그 근처에도 발을 디디지 말자는 것은 아닙니까?

오늘날 심각한 문제는 사랑의 문제입니다. 현대인들은 지식정보화 시대로 인해 점점 소외되어가고 있습니다. 이 세상은 사랑이 필요로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극 정성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하나님의 사랑을 덧입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해야 합니다. 사랑은 허다한 허물을 덮습니다.

사랑은 율법의 완성입니다(롬13:10). 그러면 우리의 이웃은 누구입니까? 이웃은 도움이 필요한 자들입니다. 우리의 주위에는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특히 우리 주위에는 영적으로 도움이 필요로 하는 대학생들이 많습니다. 우리는 이들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도움이 필요로 하는 이웃을 어떻게 사랑했는가가 3장 1-6절에 나옵니다. 예수님께서 회당에서 말씀을 가르치고 계실 때였습니다. 거기에 한 편 손 마른 사람이 마른손을 호주머니에 넣고 한 쪽 구석에 앉아 있었습니다. 누가복음 6장 6절을 보면 오른손이 말랐다고 했습니다. 교부인 제롬에 의하면 석수장이였다고 했습니다. 석수는 손으로 먹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석수에게 손을 못 쓴다는 것은 치명적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실 때 효과적으로 일할 수 있도록 두 손을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는 일을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악수를 청할 때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왼손을 내밀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왼손을 내민다는 것은 원수들과 악수할 때입니다. 그는 많은 사람들로부터 많은 오해를 받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만일 그가 결혼을 하지 않았다면 결혼식장에 갔을 때 신랑 신부가 하얀 장갑을 끼고 예물 교환하는 모습을 볼 때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우리는 기도할 때 두 손을 모아 기도합니다. 그런데 그는 기도할 때 한 손을 내밀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그는 자연히 기도를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는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는 절대로 가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는 한 손이 마름으로 마음과 생각과 생활이 모두 말라 버렸습니다. 그의 내면은 깊은 열등감과 자의식으로 병들어 있었습니다.

그런 그에게도 예수님의 능력과 사랑의 소식이 들려 왔습니다. 그는 예수님으로부터 나음을 입고자 사람들의 눈을 피해 회당에 들어와 앉아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자비와 사랑이 가득한 눈빛으로 그를 보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를 불쌍히 여기고 돕고자 하셨습니다. 그러나 회당 안에는 악한 마음을 품고 있는 바리새인들이 이 사람을 고치시는가 엿보고 있었습니다. ‘엿본다’란 못된 의도로 예의 관찰하는 것을 말합니다. 회당 안에는 기도의 향기, 말씀의 향기보다는 독기가 서려 살기가 등등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예수님은 그들과 조금도 타협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에게 도전하여 정면으로 그를 돕고자 하셨습니다. “한 가운데 일어서라.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어느 것이 옳으냐(3,4)?” 그들은 마땅히 ‘생명을 살리고 선을 행하는 것이 옳습니다’라고 대답해야 옳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잠잠했습니다. 이는 그들이 이것을 시인하면 자신들의 생각이 잘못되었음과 예수님을 송사하고자 하는 계획을 포기해야만 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선악의 분별력과 생명에 대한 존엄성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낡은 가죽 부대가 되어서 우리 주님의 말씀을 들어도 양심에 가책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불상한 한 영혼에 대한 사랑이 없었습니다. 세상에 이보다 불상한 이웃이 어디 있습니까? 그런 그들은 전통에 매여, 성경의 내용보다 형식에 치우쳐 그를 이용하여 주님을 송사하고자 합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완악함을 보시고 분노하셨습니다(5a). 완악함이란 자신의 죄를 알면서도 값싼 자존심과 기득권을 유지하고자 하는 욕심 때문에 고의로 회개치 않는 마음입니다. 예수님은 사랑이 많고 온유하시기 때문에 좀처럼 화를 내지 않으십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의 완악함을 보시고 분노하셨습니다. 이는 고의적으로 회개치 않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한 손 마른 사람에게 명령하셨습니다. “네 손을 내밀라(5b).” 이는 그에게 임한 구원의 음성이요, 사랑의 음성이요, 목자의 음성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사람들 앞에서 그의 병든 손을 내민다는 것은 죽기보다 힘든 일입니다. 특히 바리새인들을 바라보면 도저히 손을 내밀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는 손을 내밀었습니다. 그러면 그가 어떻게 손을 내밀 수 있었습니까? 그는 예수님으로부터 목자의 심정을 보았습니다. 목숨을 아까워하지 않고 한 생명을 살리고자 하시는 뜨거운 사랑을 읽었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깨닫게 되었을 때 예수님께 대한 신뢰감이 생겼습니다. 자기를 예수님께 맡길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사랑과 목자의 심정은 그를 사로잡았습니다.

이 때 그는 손을 내밀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믿음으로 수치심과 자의식을 깨고 병든 손을 내밀었습니다. 이 손은 믿음의 손, 순종의 손, 기도의 손이었습니다. 이 때 마른 손이 회복되었습니다. 이제 그는 검은 장갑을 벗었습니다. 그의 내면에 자리 잡고 있던 어두움과 부정적인 생각, 운명과 슬픔, 자의식이 사라지고 그의 심령에 생명과 빛이 임했습니다.

예수님은 회복이 필요한 이웃을 회복시켜 주시기 위해 오신 회복의 주님이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죄로 병들어 쓸모없는 자들의 영혼을 회복하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인간다운 삶을 살도록 하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병든 사람을 회복하여 강건케 하시고자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죄로 상처 난 사람을 회복시켜 온전한 사람이 되도록 하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운명적인 사람을 밝고 활기찬 사람이 되도록 하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안식일을 주신 것은 사랑의 법의 결정체입니다. 안식일은 천국의 예표입니다. 주일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형제자매와의 관계를 회복하고 깨진 관계를 회복하는 날입니다. 오늘 주일에 관계가 어그러진 것이 있다면 모두 회복되는 날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하고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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