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제 22 강 (6:1-29)

열 두 제자를 파송하신 예수님

“열 두 제자를 부르사 둘씩 둘씩 보내시며 더러운 귀신을 제어하는 권세를 주시고(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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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머스 키다가 쓴 "생각의 오류"라는 책을 보면 인간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으려고 하는 심리가 있다고 했습니다. 이게 편견이고 선입견입니다. 그는 이런 말을 합니다. Don,t believe everything you think. 본문을 보면 예수님이 고향에 가서 회당에서 말씀을 가르치셨습니다. 고향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그 지혜와 권능을 의심했습니다. 5장에 나오는 혈루증 앓는 여인과 대조적입니다. 고향 사람들은 예수님을 인간적으로 보았습니다. 그들의 마음 속에 예수님께 대한 편견과 오류, 선입견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랬을 때에 그들은 예수님을 믿을 수 없었습니다. 이런 불신의 세계에서 예수님은 능력을 행하실 수 없었습니다. 이런 중에 예수님은 열 두 제자들을 세상으로 내보내어 복음을 전하게 하셨습니다. 제자들은 단순히 믿고 복음을 전했을 때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우리는 본문을 통해 편견과 선입견을 버리고 말씀을 믿고 순종하면 기적을 체험할 수 있음을 배우게 됩니다. 우리는 자기 나름대로의 복음에 대해 편견과 선입견이 있습니다. 이런 편견과 선입견을 버리고 예수님의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여 감동과 기적을 체험하기를 기도합니다.

첫째, 이 사람이 마리아의 아들이 아니냐(1-6)

1절을 보겠습니다. “예수께서 거기를 떠나사 고향으로 가시니 제자들도 좇으니라.” 예수님께서 가버나움을 중심으로 복음을 전하시다가 오랜만에 고향 나사렛에 가셨습니다. 고향은 누구를 막론하고 언제나 그립고 가보고 싶은 곳입니다. 그래서 이번 추석에도 2,500만 명이 고향을 찾았다고 하지 않습니까?

대개 사람들은 고향에 가서 고향 친구들과 회포를 풀다가 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고향에 가셔서 무엇을 하셨습니까? 안식일이 되어 회당에서 가르치셨습니다(2a). 예수님은 어디를 가시나 가르치시는 일에 전념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 예수님을 배우고 디모데에게 이렇게 권면합니다.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딤후4:2).”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in season and out of season)” 기회가 있든 없든, 조건이 좋든 나쁘든 항상 말씀을 전하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환경이 좋아야 복음을 전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말씀을 전하기 좋은 시절은 없었습니다. 1970년대는 1970년대로, 1980년대는 1980년대로, 2000년대는 2000년대로 어려웠고, 지금은 지금대로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좋은 환경에서 말씀을 전하려고 하는 생각 자체를 버리려야 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고향 사람들의 반응이 어떠했습니까? 2b,3절을 보겠습니다. “이 사람이 어디서 이런 것을 얻었느뇨? 이 사람의 받은 지혜와 그 손으로 이루어지는 이런 권능이 어찌됨이뇨? 이 사람이 마리아의 아들 목수가 아니냐? 야고보와 요셉과 유다와 시몬의 형제가 아니냐? 그 누이들이 우리와 함께 있지 아니하냐? 하고 예수를 배척 한지라.”그들은 예수님에 대해 선입견과 편견으로 반응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옛날 친구, 인간 예수로 받아들였습니다.

이와 같이 편견과 선입견은 말씀을 배척하도록 합니다. 편견과 선입견은 말씀을 듣고 감동을 받는 것이 아니라 비판이 됩니다. 이 비판은 자기 시각에서 보는 데서 옵니다. 반면에 감동은 자기보다 훨씬 높은 수준에서 나옵니다. 그렇다면 비판이 쉬울까요? 감동이 쉬울까요? 물론 비판이 쉽습니다. 왜냐하면 비판은 자기가 아는 것 가지고 하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감동은 자기 수준으로는 안 되고 알아야 됩니다.

여행의 법칙 중에 “아는 만큼 보이고 감동이 된다. 따라서 알고가든지, 아니면 가이드를 잘 만나야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알아야 감동이 되고, 알아야 감탄이 나옵니다. 미켈란젤로의 천지 창조의 그림들을 알고 보면 미켈란젤로의 spirit에 감동하게 됩니다. 여러분은 비판적인 사람입니까? 아니면 감동적인 사람입니까? 어느 쪽의 사람입니까? 감동의 사람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편견과 선입견, 교만을 버리고 배워서 알아 감동을 받는 사람, 감탄을 하는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고향 사람들로부터 배척을 받으셨을 때에 예수님의 마음이 어떠했을까요? 예수님은 마음이 상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문제에 빠지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유다의 속담인 “선지자가 자기 고향과 자기 친척과 자기 집 외에서는 존경을 받지 않음이 없느니라(4)”를 인용하여 그들의 배척에 응수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불신으로 인해 아무 권능도 행하지 못하시고 다만 소수의 병인에게 안수하여 고치셨습니다.

그렇다고 예수님은 위축되신 것이 아닙니다. 6b절을 보면 예수님은 모든 촌에 두루 다니시며 더 적극적으로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어떤 상황 가운데서도 결코 낙심치 않으셨습니다(사42:4). 세상에는 복음을 배척하는 자도 있지만 복음을 영접하는 자도 있기 때문입니다. 영적 소원이 없고 세상적인 것에만 관심을 가진 자도 있지만, 내면이 순수하고 진리를 사랑하는 자도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진리를 사랑하는 소수의 영적인 사람들을 통해서 계승 발전 확장되어 갑니다.

제자들이 고향에서 배척받으신 예수님을 통해 무엇을 배웠을까요? 그들은 인간적인 생각, 편견과 선입견이 복음의 적임을 배웠을 것입니다. 그리고 선한 일을 해도 가장 가까운 사람들로부터 배척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배웠을 것입니다. 그동안 그들은 어디를 가나 인기가 많으신 예수님을 보고 자신들도 그렇게 되기를 소원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정말 예수님을 따르기를 원한다면 배척받으신 예수님도 배워야 한다는 것을 알았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태어나실 때부터 사람들로부터 환영받지 못하시고 외면 당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인생들로부터 철저히 배척을 당하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 가셨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 예수님을 이렇게 묘사했습니다. “그는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 버린바 되었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에게 얼굴을 가리우고 보지 않음을 받는 자 같아서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사53:3).” 예수님은 사람들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돌이 되셨습니다(벧전2:3). 우리가 하나님께 쓰임 받는 영적 지도자가 되려면 영광에 앞서 배척받으신 예수님을 겸손하게 배워야 합니다.

둘째, 열 두 제자들을 둘씩 보내시며(7-13)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고향에서 핍박을 받으시는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이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가르치는 것에 머무르지 않으시고 실천을 가르치셨습니다. 7절을 보겠습니다. “열 두 제자를 부르사 둘씩, 둘씩 보내시며 더러운 귀신을 제어하는 권세를 주시고” 예수님은 열 두 제자를 둘씩 짝을 지어 세상에 가서 전도하도록 보내셨습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한 가지 생각할 것은 왜 예수님께서 둘씩 보내셨을까? 입니다. 한명 씩 보내면 여러 곳에 복음을 더 전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둘씩 보내셨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이는 하나님의 역사는 동역의 역사이기 때문입니다.

혼자서 복음을 전하다가 어려운 일을 만나게 되면 낙심하기 쉽고, 낙심하다가 시험 들기 쉽습니다. 그러나 둘씩 가면 어려울 때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며 합심 기도하여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전도서 4장 9,10절은 보며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은 저희가 수고함으로 좋은 상을 얻을 것임이라. 혹시 저희가 넘어지면 하나가 그 동무를 붙들어 일으키려니와 홀로 있어 넘어지고 붙들어 일으킬 자가 없는 자에게는 화가 있으리라”고 했습니다.

사람의 마음을 모아 기도하면 기적이 일어납니다. 1973년 5월 30-6월 3일, 우리민족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여의도로, 여의도로 모였습니다. 그 당시 우리나라는 무척 가난했습니다. 먹을 것이 충분하지 않아서 굶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시골에는 초가로 된 집들이 즐비했습니다. 자가용이란 용어조차 낯설던 시기였습니다. 낡은 흑백텔레비전 하나라도 있으면 동네에서 큰 자랑거리가 되던 시절이었습니다.

당시 서울의 인구가 6백만 명이었는데, 그 집회에 약100만 명이 참석했습니다. 의자도 없었고, 방석도 없었습니다. 무더운 여름날에 뜨거운 아스팔트 위에 앉아야 했는데, 사람들은 신문지를 깔고 그 뜨거운 아스팔트 위에 자리를 잡고 앉았습니다. 어떤 사람은 차비조차 없어서 2-3시간씩 걸어서 집회에 왔다가 끝나면 다시 2-3시간 걸어서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어떤 사람은 아예 이불을 싸가고 와서 여의도 광장에서 밤을 새웠습니다. 지방에서 올라온 사람들은 쌀과 냄비를 가지고 와서 숙식을 해결하면서 집회에 참석했습니다. 교파를 초월하고, 이해관계를 초월해서 모든 교단과 교회들이 연합하여 여의도에 100만 명이 모여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민족의 살길을 간구했습니다.

그 집회를 계기로 기독교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이 바뀌었습니다. 사람들이 교회로 찾아오기 시작했습니다. 거의 모든 교회들이 부흥에 부흥을 거듭하면서, 세계기독교 역사상 가장 짧은 기간에 폭발적인 부흥이 일어났습니다. 교회만이 부흥한 것이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강대국이 되었습니다. 88올림픽을 개최하게 되었고, 2002년 월드컵을 개최하는 한강의 기적을 이루었습니다.

우리나라가 사람들은 정치를 잘해서, 부지런해서, 박정희 대통령 개발독재로 한강의 기적이 일어난 줄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것이 아닙니다. 1973년도에 여의도에 100만 명이 모여서 ‘우리민족을 구원해 주십시오. 살려 주십시오’고 합심하여 하나님께 합심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저희를 위하여 이루게 하시고, 두 세 사람이 합심해서 기도하면 바로 거기에 주님이 함께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사람의 마음이 뭉치면 얼마나 놀라운 일이 일어나는 지를 2002년 월드컵이 증명해 줍니다. 월드컵 본선에 올라가서 단 한 번도 이겨보지 못한 나라가 어떻게 4강까지 올라갈 수 있었습니까? 그것은 히딩크 감독의 힘이나, 선수들의 실력만으로 이루어진 일이 아닙니다. 700만 명이 한 곳에 모일 정도로, 온 국민이 ‘축구’라는 이름으로 한 마음이 될 때, 전 세계인이 깜짝 놀란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만약 870만 명의 그리스도인들이 ‘예수’의 이름으로 한 목표를 가지고 기도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선교든, 통일이든, 경제성장이든, 캠퍼스든, 그 무엇이든 우리가 한 목표를 가지고 기도한다면, 한 마음이 될 수만 있다면, 우리가 이루지 못할 일은 그 어떤 것도 없습니다.

여러분, 가정의 행복을 원하십니까? 온 가정이 합심해서 기도할 수 있는 기도제목을 가지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교회가 부흥하려면 온 교인이 합심으로 기도제목을 가지고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교회가 부흥하기를 원한다면 한 목적의 기도제목을 가지고 기도하면 부흥의 불길, 부흥의 파도가 일어납니다. 캠퍼스 부흥을 위해 한 마음 한 뜻으로 기도하면 캠퍼스에 기적이 일어납니다.

오늘의 대학을 보면 상아탑이 아니라 취업양성소로 전락한지 오래되었습니다. 대학생들은 꿈과 비전을 상실한지 오래 되었습니다. 그들의 유일한 꿈은 빵을 위해 빵 공장에 취직하는 것입니다. 젊은 청년대학생들이 빵을 위해 살아간다면 우리나라의 장래는 희망이 없습니다. 백수의 왕자 호랑이는 비록 굶어 죽을지라도 썩은 고기를 먹지 않습니다. 젊은이는 원대한 꿈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썩는 양식을 위해 살아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썩을 양식을 위해 살아가는 젊은 대학생들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썩을 양식을 목표로 살아가는 젊은 대학생들에게 꿈을 심어야 합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믿고 크리스천 리더가 되어 이 시대를 이끌고 갈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지금 교회의 심각한 현상은 젊은 믿음의 여인들은 많은데 믿음의 청년들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의 자매들이 결혼할 청년들이 없어 결혼 연령이 높아진다는 말이 있습니다. 청년 대학생들을 위해 기도합시다. 사랑하는 동역자 여러분, 예수의 이름으로 두 사람이 합심동역하게 되면 기적이 일어납니다. 청년 대학생들이 교회로 돌아옵니다. 이를 위해 합심하며 기도합시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보내실 때 더러운 귀신을 제어할 수 있는 영적 권세를 주셨습니다. 대개 사람들은 능력 있는 전도자가 되려면 학위와 타이틀이 있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전도는 결코 인간의 능력과 지혜에 달려 있지 않습니다. 전도는 위로부터 영적 권세를 받아야 합니다. 이는 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에 속한 것이 아니라 사단과의 영적 싸움이기 때문입니다(엡6:12).

예수님은 그들이 여행을 위하여 지팡이 외에는 아무 것도 가지지 말라고 하셨습니다(8,9). 여행을 위해서는 먹을 것을 준비하고 옷을 준비하고 돈을 마련해야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아무 것도 가지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왜 이렇게 철저히 금했을까요? 이는 온전히 하나님만을 의지하도록 함입니다. 우리는 복음 역사를 섬길 때 물질을 의지하거나 사람을 의지하기 쉽습니다. 그러면 영력을 상실하게 됩니다. 반면에 전심으로 하나님만을 의지하면 세상을 이길 수 있는 영적 지도자들이 될 수 있습니다.

제자들이 전도 여행을 할 때 아무 것도 안 가지고 가면 의식주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요? 그들이 하나님만 의지하고 나아갈 때 하나님께서 친히 필요한 모든 것을 채워 주십니다(10). 하나님은 복음의 일꾼들을 섬기는 자들을 예비해 두고 섬기게 하십니다. 이때 그들은 영접하는 자의 집에서 떠나기까지 머물러야 합니다. 반찬이 좋지 않다거나 잠자리가 불편하다고 해서 이 집, 저 집 옮겨 다녀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그들을 영접치 않는 자에 대해서는 발아래 먼지를 떨어버려 저희에게 증거를 삼으라고 하십니다(11).

우리가 복음을 전할 때 영접하는 자들이 있고 영접치 않는 자들이 있습니다. 오히려 복음을 배척하는 자들이 많습니다. 이때 우리는 기가 죽고 낙심하기 쉽습니다. 또 부정적인 생각에 시달리기 쉽습니다. 그리고 혹시 복음이 잘못된 것이 아닌가 하고 복음에 대해 회의하기 쉽습니다. 그러다가 사람들이나 시대 상황에 맞게 타협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복음은 결코 어떤 경우에서나 타협할 수 없습니다. 복음은 어떤 시대 상황에서도 분명하게 선포되어야 하는 절대성과 우월성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복음에 잘못이 있는 것이 아니라 듣는 사람이 빛보다 어두움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요3:19-21). 그러므로 복음의 종들은 예수님의 전권대사로서 자부심을 가지고 받아들이든, 받아들이지 안하든 분명한 자세로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또 복음을 영접치 않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심판이 있을 것을 경고하고 회개를 촉구하기 위해 발에서 먼지를 떨어 버려야 합니다.

12절을 보겠습니다. 제자들이 나가서 회개하라 전파했습니다. 그들은 회개의 복음을 담대히 전파했습니다. 왜 사람들이 회개해야 합니까? 이는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여 하나님 앞에 다 죄인이기 때문입니다(롬3:23). 죄의 결과는 사망입니다.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무서운 심판이 있습니다(히9:27). 이 심판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서 영원토록 고통하는 둘째 사망입니다(계21:8). 이처럼 인간은 죄 때문에 영원히 멸망할 운명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이 절망적인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입니까? 이는 고행을 해도 안 되고 선한 일을 해도 안 되고 울어도 안 됩니다. 이는 오직 우리의 죄를 하나님 앞에 진실하게 회개할 때 가능합니다. 하나님은 은혜로우시고 자비로우셔서 우리가 십자가의 강도와 같이 어떤 몹쓸 죄를 지었을지라도 진실하게 회개하면 모든 죄를 용서해 주시고 죄 사함의 은혜를 주십니다. 요한 I서 1장 9절은 말씀합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

하나님은 회개하는 자에게 반드시 사죄의 은혜, 구원의 은혜를 베풀어주십니다. 회개는 구원의 필수 요건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회개는 아주 싫어하고 구원은 아주 좋아합니다. 그래서 회개하라고 하면 강한 거부 반응을 나타냅니다. 그러다보니 회개의 메시지는 인기가 없습니다. 그러나 회개 없이 구원 역사가 일어날 수 없습니다. 생명 구원 역사는 반드시 회개를 통해 일어납니다. 그러므로 회개의 메시지는 사랑의 메시지요, 구원의 메시지요, 희망의 메시지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전권대사로서 담대하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들은 사람들이 듣기 좋은 아름다운 말씀보다 부담스러운 회개의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그들은 백성들의 죄와 타협치 않았습니다. 이로 인해 왕궁에 있는 헤롯이 놀랄 정도로 큰 능력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은 회개의 메시지를 전할뿐만 아니라 많은 귀신을 쫓아내며 많은 병자를 고쳐 주었습니다(13).

셋째, 이에 예수님의 이름이 드러난지라(14-29)

제자들의 전도 여행을 통해 나타난 사람들의 반응이 어떠했습니까? “이에 예수의 이름이 드러난지라(14a).” 그들은 예수님의 이름을 전했습니다(벧전2:9). 그 결과 사람들의 반응이 여러 모양으로 나타났습니다. 어떤 이는 예수님을 엘리야라 하고 어떤 이는 옛 선지자 중의 하나와 같다고 하였습니다. 헤롯은 자기가 목 벤 세례 요한이 살아났다고 생각하고 놀랐습니다. 헤롯은 왕궁에서 섬김을 받지만 내면은 죄로 인해 행복이 없었습니다. 그의 내면은 늘 불안하고 악령에 시달렸습니다.

17-29절은 의인 세례 요한이 어떻게 목 베어 죽임을 당하게 되었는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세례 요한은 헤롯이 동생의 아내를 취하였을 때 그가 비록 왕이지만 그의 행위가 옳지 않음을 지적했습니다. 그러자 헤롯은 헤로디아를 위하여 세례 요한을 옥에 가두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생일날 요사스러운 헤로디아의 간계에 넘어가 요한을 목 베어 죽였습니다. 그 시대는 마치 이세벨이 조종하는 아합 시대와 같았습니다. 그 시대는 음란하고 불의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어려운 시대에 열 두 제자를 세상에 내 보내셨습니다. 그들의 복음 전파는 작고 미미한 일같이 보입니다. 그러나 이는 온 나라를 진동시키고 시대의 흐름을 바꾸고 세계를 복음으로 정복하는 역사의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우리교회가 젊은 청년을 위해 기도하고 대학에 복음을 전하는 것이 미미하고 아주 작아 보일지 모릅니다. 그러나 이것이 지성사회의 흐름을 바꾸고, 민족의 장래의 희망인 줄로 믿습니다. 누가 이 시대를 변화시킬 수 있습니까? 그것은 복음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자 또한 이 시대의 역사의 주역입니다. 이 세상을 바꾸는 역사의 주역들로 쓰임 받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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