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제 26 강(7:24-30)

믿음의 말을 축복하시는 예수님

“예수께서 가라사대 이 말을 하였으니 돌아가라 귀신이 네 딸에게서 나갔느니라 하시매(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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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구원을 받습니까? 누가 주님으로부터 인정을 받을 수 있습니까? 유대 사람이라고 다 구원을 받습니까? 성경을 많이 안다고 구원을 받습니까? 신앙 연륜이 많다고 구원을 받습니까? 인격이 훌륭하다고 구원을 받습니까? 출신성분이 좋다고 구원 받습니까? 성경은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른다고 했습니다. 마음으로 믿어서는 안 됩니다. 입으로 신인할 때 구원을 받습니다.

예수님은 신분을 보시지 않습니다. 누구든지 마음으로 믿어 입으로 시인하면 구원을 받습니다. 본문에 보면 수로보니게 여인이 나옵니다. 그녀는 혈통으로나, 신분으로나 구원을 받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하나님을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했습니다. 그리했을 때 그녀의 딸이 구원을 받았습니다. 말은 그 사람의 생각이요 인격이요 믿음의 표현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예수님의 마음을 움직이는 믿음의 말을 하고, 믿음의 기도를 드리는 믿음의 사람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첫째, 주여 옳소이다마는(24-28)

예수님은 갈릴리를 떠나서 북서쪽으로 약 20리쯤 떨어진 베니게(현재의 레바논)의 항구 도시인 두로로 가셨습니다. 두로는 바알 숭배의 본고장으로 엘리야 때부터 유대인들이 가장 혐오했던 지역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스스로 의롭다고 생각하는 바리새인들을 외면하시고 두로 지방으로 가셨습니다. 예수님은 두로 지방에 있는 한 집에 들어가셔서 아무도 모르게 행동하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에 대한 소식은 이미 그곳에도 전파되어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그 곳에 오신 소식이 곧 알려지게 되었습니다(24). 그곳에는 더러운 귀신들린 딸을 가진 한 여인이 있었습니다. 그 여인은 예수님께서 귀신을 쫓아내신다는 소문을 듣고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그녀는 수로보니게(시리아에 속한 베니게) 사람입니다. 그녀는 저주받은 가나안 후손이었고, 선택받지 못한 헬라인이었습니다. 마태복음에는 그녀가 가나안 여인이라고 했습니다(마15:22). 가나안 족속은 노아 때에 저주받은 함의 아들입니다. 수로보니게 지역은 이방 땅으로 영적으로 무지했습니다. 요세프스에 의하면 그들은 유대인에 대한 강한 적의를 품고 있었습니다. 이런 여인이 예수님을 찾아와서 자기 딸을 귀신으로부터 자유롭게 해 달라고 간절히 요청했습니다(25,26). 그녀가 주님께 나아와 엎드려 간구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무엇이 그녀로 하여금 예수님께 나아와 간구하도록 했습니까? 그녀를 예수님께로 나오게 만든 동인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딸로 인함이었습니다. 사랑하는 딸이 귀신 들려 못쓰게 되었습니다. 귀신은 행복한 가정을 광풍으로 몰아넣었습니다. 가정의 광풍은 그녀로 하여금 주님께로 나오게 만들었습니다.

우리는 광풍을 만나 인간의 연약함을 깨닫고 주님께로 나오게 되는 경우를 많이 봅니다. 우리가 잘 아는 이어령 박사가 그러하고, 과기처 장관인 정근모 박사가 그러합니다. 그분들의 공통점은 무두가 세계적인 석학이라는 점입니다. 특히 정근모 장로는 세계적인 석학 중의 석학입니다. 그는 인간적으로 보면 예수님을 믿기 어려운 분입니다. 그러나 그는 사랑하는 아들의 병마를 통해 주님을 믿게 되었다고 간증하고 있습니다.

“나는 경기중학교에 수석으로 합격하여 수석으로 졸업하고 경기고등학교를 수석 입학하여 4개월 만에 끝냈다. 나의 월등한 성적에 놀란 담임선생님과 아버지가 상의한 끝에 검정고시를 보게 됐다. 그 시험도 수석으로 합격이었다. 나는 서울대를 차석입학하고 졸업 후에 이공계 출신으로서 행정대학원에 또 수석 합격이었다. 신문에 난 기사를 본 이승만 대통령이 공보 비서 최치환 씨를 통해 미국 유학을 제의해 왔다. 나는 그 덕분에 1960년에 미시간대학의 입학원서를 받을 수 있었다. 나는 미시간 대학에서도 수석 합격하였다. 그리고 미시간 주립대학의 자격시험에서 A학점을 받았기 때문에 석사 과정을 거치지 않고 곧바로 박사 과정으로 들어갔다. 또 1962년에는 선배의 소개로 미시간 대학에 유학 와 있던 길경자 씨와 결혼하고, 박사 과정은 2년 만에 마쳤다. 스물세 살에 플로리다 대학의 조교수로 임명되었다. 그리고 나는 서른둘에 한국과학기술원 부원장으로 부임했다. 한국과학기술원을 만들고 나는 미국으로 다시 돌아갔다. 이렇게 나의 생활은 순풍에 돛단 듯 매끄럽게 잘 풀려 나가고 있었다. 두 딸과 아들 진후도 무럭무럭 잘 자라고 있었다. 어느 날 열 살 된 아들 진후가 열이 나서 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아보니 신장염으로 신장이 견딜 수 기간이 길어야 5년이라는 진단이 나왔다. 우리 부부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생전 가지 않았던 교회로 달려가 절망의 한숨을 토해 냈다. “오, 하나님, 도와주십시오. 제 아들을 좀 살려 주십시오.” 나는 비로소 하느님이라는 범신이 아닌 하나님을 불렀다. 진후의 병세가 악화될수록 우리 부부의 기도는 점점 뜨거워졌다. 지금 진후는 컴퓨터 전문가가 되었다. 나는 진후로 인하여 하나님을 찾게 되었고 기도하는 법을 배웠다. 나는 후에 저를 구원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진후를 구원의 도구로 삼으셨음을 알게 되었다. 이를 안후로는 진후가 효자라는 것을 알고 감사하게 되었다. 찬송가 535장을 즐겨 부른다. ♬어두운 후에 빛이 오며 바람 분 후에 잔잔하고. 소나기 후에 햇빛 나며 수고한 후에 쉼이 있네. 약한 후에 강건하며 애통한 후에 위로 받고. 눈물 난 후에 웃음 있고 씨 뿌린 후에 추수 하네♬

예수님은 소문을 듣고 곧장 달려와서 발아래 엎드려 간구하는 여인을 어떻게 대했습니까? 27절을 보겠습니다. “자녀로 먼저 배불리 먹게 할지니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예수님은 유대인을 사랑스러운 ‘자녀’로 표현하고, 이 여인을 ‘개’로 표현했습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개란 애완용 개를 말합니다. 어찌했든 ‘개’는 개입니다. 당시 개란 말은 불명예, 더러움의 상징입니다. 유대인들에게 비친 이방인들의 모습은 개 같이 보였습니다. 그들은 우상을 섬겼습니다. 그들은 음란했습니다. 그들은 무질서했습니다. 그들은 도덕적으로 불결했습니다. 그들은 구원을 받을 수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은 한마디로 ‘당신은 개이기 때문에 구원을 받을 수 없으니 가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치욕적인 말로 이 여인을 거절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지금까지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거절한 적이 없습니다. 특히 예수님은 여인들을 섬세하게 돌보셨습니다. 요한복음 4장에 보면 예수님은 사마리아 여인의 자존심을 건드리지 않고 섬세하게 도우셨습니다. 요한복음 8장에 보면 현장에서 간음하다 잡힌 여인을 용서하여 주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여인에게 심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 거린다’는 데 아무리 이방 여인이라 할지라도 이렇게 직접 대 놓고 모욕적인 말씀을 하실 수 있을까요? 예수님께서 어떻게 이런 말씀을 하실 수 있습니까? 이는 이 여인이 복음을 받을 만한 자세가 있는가? 시험해 보시기 위함이었습니다.

복음은 너무 귀한 것이기 때문에 아무에게나 줄 수 없습니다. 돼지에게 진주를 주면 그 가치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밟아 버립니다. 복음을 받을 자세가 갖춰지지 않는 사람에게 복음을 주게 되면 복음의 가치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함부로 대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 대한 자세, 구원과 영생을 받을 준비가 되어 있는 자에게 구원을 베풀어주십니다. 그리고 ‘먼저’라는 말씀 속에 하나님으로부터 구원을 받을 개연성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유대인이 먼저요, 헬라인이 다음이라는 것은 구원 역사의 원칙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여인이 어떻게 반응했습니까? 28절을 보겠습니다. “주여 옳소이다마는 상아래 개들도 아이들의 먹던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이 여인은 예수님의 말씀이 전적으로 옳다고 시인했습니다. 보통 여자들 같으면 감정을 이길 수 없어 예수님의 옷자락을 붙잡고 ‘좋다, 나는 개다, 한번 개 맛을 보라’며 달려들어 물어뜯을 수 있습니다. 아니면 인종차별, 지역감정을 부추긴다고 ‘이판사판 공사판이다’며 정말 개판을 칠 수 있습니다. 아니면 ‘개 취급을 받으면서 구원을 받고 싶지 않다’며 문을 쾅 닫고 나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상아래 개들도 아이들이 먹던 부스러기를 먹지 않습니까?’ 하며 긍휼을 구했습니다. 개는 주인이 밥을 주지 않는다고 주인이 먹는 빵을 빼앗아 먹지 않습니다. 개는 상아래서 긍휼을 구합니다. 이 여인은 개 철학을 영접하고 감정과 자기 자신을 이겼습니다. 그러면 이 여인이 어떻게 이렇게 할 수 있었습니까?

첫째는 예수님 앞에서 자기 발견입니다.

이 여인은 헬라 여인으로서의 신분을 부인하고 겸손히 은혜의 부스러기를 구했습니다. 대개 사람들은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존재를 찾습니다. 이런 사람은 늘 다른 사람과 비교합니다. 자기보다 좀 나은 사람 앞에 서면 열등감으로 고민하고 자기보다 좀 못하다 싶으면 교만을 떱니다. 또 자기를 인정해주면 즐거워하고 인정해주지 않으면 인상을 쓰고 심술을 부리고 헐뜯고 비방하고 다닙니다. 그러나 그녀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존재를 찾았습니다. 그러했을 때에 자신은 개보다도 못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녀는 자신이 하나님으로부터 은혜를 받을 수 없는 비천한 자임을 인정했습니다.

다윗은 왕이 되었을 때도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존재를 잊지 않았습니다. 그는 양 똥 치던 목동 시절을 기억하고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주 여호와여! 나는 누구이며, 내 집은 무엇이기에 나로 이에 이르게 하셨나이까(삼하7:18)?” 바울은 인간적으로 볼 때 누구도 따라갈 수 없는 엘리트였습니다. 학문적으로 누구도 따라갈 수 없는 사람이었습니다(빌3:4-6). 영적으로는 더 말할 것도 없습니다. 그는 많은 교회를 개척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늘 비천한 자신을 구원하신 하나님을 기억했습니다. 그는 고린도전서 15장 10절에서 이렇게 간증했습니다. “그러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다.”

우리는 과거 거짓과 위선과 정욕으로 병든 사람들이었습니다. 우리는 부모와 조상의 망령된 행실을 미워하면서도 이를 좇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보배로운 피로 구원받고, 하나님의 거룩한 자녀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늘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존재 의미를 찾기를 기도합니다. 이런 사람은 겸손하고 은혜가 있고 하나님의 신령한 은혜를 누리게 됩니다.

둘째는 예수님께 대한 사랑입니다.

여인은 예수님으로부터 모욕적인 말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예수님의 사랑을 의심치 않았습니다. 믿음이란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을 전폭적으로 신뢰하고 그 사랑을 의심치 않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바치라는 말씀에도 순종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을 전폭적으로 신뢰하고 그의 사랑을 조금도 의심치 않았기 때문입니다.
어떤 어려운 형편에 처할지라도 하나님을 전폭적으로 믿을 때 주님의 사랑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바울에게 많은 역경과 환난이 있었습니다. 그런 중에도 그는 주님의 사랑을 의심치 않았습니다.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롬8:38,39).”

셋째는 딸에 대한 모성애입니다.

여성은 약하다. 그러나 어머니는 강하다는 말이 있습니다. 여성은 산고를 통해 어머니로 다시 태어납니다. 어머니로 태어난다는 것은 모성애를 갖고 태어난다는 것입니다. 모성애는 자녀의 아픔을 내 아픔으로 여기는 것입니다. 딸이 낳을 수 있다면 그 어떤 것도 감수할 수 있는 것이 모성애입니다. 그녀는 딸에 대한 모성애가 있었기 때문에 딸의 고통은 그녀의 고통이고 아픔이 되었습니다. 그녀는 딸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으로 여겼을 때 자신의 모든 문제를 넘어서서 주님께 나와 기도할 수 있었습니다. “저를 도와 달라(마15:25).”

우리에게는 자녀들의 문제가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양떼들의 문제가 있습니다. 민족의 아픔이 있습니다. 지금 대학생들은 희망을 잃었습니다. 졸업을 해도 취직이 잘 되지 않습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교대만 졸업하면 모두 취직이 다 되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서울이 3대 1이 넘고 인천 지역 또한 그러합니다. 그러다보니 대학생들은 입학하자마자 곧 취직 준비를 해야 합니다. 대학은 거대한 취직준비를 위한 학원으로 전락되었습니다. 그리고 취직에 대한 스트레스로 인해 게임과 알코올 중독자가 늘어나고 불면증으로 시달립니다. 우리는 이들의 아픔을 나의 아픔으로 여기고 주님께 중보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이들에 대한 뜨거운 사랑을 주시어 중보 기도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넷째는 예수님의 주권에 대한 인정입니다.

여인은 무시를 받으면서도 ‘주여!’ 했습니다. 그녀는 예수님을 ‘주’로 영접했습니다. 그녀는 예수님께서 자신에게 구원을 베풀고 안 베푸는 것은 전적으로 주님께 있다는 것을 영접했습니다. 구원은 예수님의 선물이지 권리가 아님을 알았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당연한 권리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조금 기도하고 나서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으면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한편 기도가 응답되면 자기가 잘나서 그런 줄 알고 교만하게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주권을 영접하지 않으면 자신도 모르게 하나님을 원망하게 됩니다. 그러나 선한 주권을 영접하게 되면 매사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습니다.

욥은 부자였습니다. 욥은 다복한 한 가정의 가장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사단의 시기로 가족을 다 잃고 온 몸은 욕창이 나 너무 괴로워서 기와 조각으로 몸을 긁고 있었습니다. 이 때 아내가 하나님을 저주하고 죽으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주권을 영접하고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은즉 재앙도 받지 아니하겠느뇨(욥2:10).” 그에게는 주권신앙이 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조금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그 후 하나님은 그가 잃었던 것에 몇 갑절 더하여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주권 신앙을 가진 사람들에게 선한 길로 인도하시고 가장 좋은 것을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주권신앙을 가지고 주님께 나아가 긍휼을 구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둘째, 이 말을 하였으니(29,30)

“주여! 옳소이다.” 예수님은 여인의 말에 감동을 받았습니다. 마태복음 15장 28절에는 “여자야 네 믿음이 크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여인의 믿음에 감동을 받으시고 그 믿음을 축복하셨습니다. 29절을 보겠습니다. “이 말을 하였으니 돌아가라.” ‘이 말을 하였으니’ ‘말’이란 참으로 중요합니다. 야고보서 3장 2절에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능히 온 몸도 굴레 씌우리라” 했습니다.

말·언어란 단순히 말·언어나 아닙니다. 사람의 인격의 표현, 믿음의 표현입니다. 속된 사람은 속된 말을 하고 속된 행동을 합니다. 그러나 고상한 사람은 고상한 말을 하고 고상한 행동을 합니다. 평범한 사람은 평범한 이야기를 하고 평범한 행동을 합니다. 그러나 위대한 사상을 가진 사람은 위대한 말을 하고 위대한 행동을 합니다. 성숙하지 못한 크리스천은 성숙하지 못한 말을 하고 행함도 성숙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성숙한 크리스천은 성숙한 말을 하고 행함 또한 성숙합니다. 이처럼 말은 그 사람의 사고와 인격의 표현이요 행동하게 하는 원인이 됩니다.

말은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합니다. 그래서 우리 속담에 ‘말 한 마디로 천 량 빚을 갚는다. 말이 씨가 된다’는 등 속담이 있습니다. 세 치의 혀가 백만 군사보다 강하다는 책도 나왔습니다. 촌철살인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그래서 언변은 핵무기, 컴퓨터와 더불어 현대 세계의 3대 무기로 일컬어집니다.

혀에 대한 이런 우화가 있습니다. 어느 날 가위와 톱과 혀가 서로 힘을 자랑했습니다. 먼저 가위가 입을 열어 자랑했습니다. ‘나는 어떤 천이라도 내 이빨로 끊어낼 수 있다.’ 이 말을 들은 톱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래, 내 이빨은 장작과 고물도 깨끗하게 베어낼 수 있다.’ 이를 듣고 있던 혀가 이렇게 자랑했습니다. ‘너희들이 아무리 자랑해도 나하고는 비교가 안 돼, 나는 남들이 쌓아 놓은 명성, 명예, 우정 등을 단번에 무너뜨리는 힘을 가졌거든, 내가 끼어들면 죽마고우도 하루아침에 원수가 되고, 눈앞에 둔 대권도 순식간에 물거품이 되는 것 몰라! 가위야, 너는 옷을 썰다 보면 이가 상하고 녹슬 수도 있고, 톱은 굳은 것을 썰고 나면 망가지기도 하지만 나는 아무리 지껄여도 닳는 일이나 파손되는 일이 없어! 나는 내 생명이 다 할 때까지 활동하지!’ 예, 이처럼 혀의 위력은 대단합니다. 따라서 혀를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사람이 달라지고 역사가 달라집니다.

인간의 세 치 혀는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울 수도, 가장 무섭고 악할 수도 있습니다. 사람의 혀는 칭찬을 통해 고래를 춤추게 할 수도 있고, 심장을 파고드는 독화살이 되어 죽음에 이르게 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경우에 합당한 말은 은쟁반에 금 사과니라(잠 25:11).” “여호와여 내 입 앞에 파수꾼을 세우시고 내 입술의 문을 지키소서(시141:3).”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혀를 금하여 악한 마을 그치며 그 입술로 궤휼을 말하지 말고(벧전3:10)”
수로보니게 여인은 사람이기 때문에 자존심이 있습니다. 그것도 헬라 여인입니다. 속에서 많은 생각이 오갈 수 있습니다. 그녀는 불신과 불평과 원망의 말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말을 믿음과 사랑의 필터로 정제했습니다. 믿음과 사랑의 필터는 그녀를 겸손케 하였고 은혜만을 간구케 했습니다. 이 때 예수님은 그녀의 신앙을 기뻐하시고 이를 축복하셨습니다. 30절을 보겠습니다. “귀신이 네 딸에게서 나갔느니라.” 그녀가 집에 돌아가 보니 아이에게서 귀신이 나가 온전해져 있었습니다. 오늘날 사회가 이처럼 험악한 것은 믿음과 사랑의 필터 기능이 마비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회가 시끄럽습니다. 나오는 대로 말을 내뱉기 때문에 사회가 거칠어집니다. 우리는 믿음과 사랑의 필터로 말을 삼가야 합니다.

그리고 이 여인은 상황이 어떠하든, 예수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든 기도했습니다. 우리는 기도하다가 안 되면 기도를 포기합니다. 그러나 그녀는 끈질기게 기도했습니다. 그녀는 과부의 한 맺힌 기도를 했습니다. 또 그녀는 한 가지 소원을 가지고 기도했습니다. 소원이 있는 곳에 기도가 있습니다. 소원이 있는 곳에 희망과 창조가 있습니다. 소원이 있는 곳에 회개와 사랑, 감격이 있습니다. 소원이 있는 곳에 예배가 있습니다. 영국의 격언에 “막대기만큼 바라서 바늘만큼 이루어진다”고 했습니다. 이는 소원은 크지만 성취는 적다는 말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네 소원대로 되리라”고 하십니다. 이 여인의 소원은 딸의 병의 고침인데 그녀의 소원대로 그녀의 딸이 고침을 받았습니다.

여러분의 소원이 무엇입니까? 소원이 있다면 얼마나 절실하게 그 소원을 위하여 기도합니까? 여러분의 소원이 이루어질 때까지 절실하게 기도하십시오. 요청을 하되 적극적으로 멸시를 당해도 요청하십시오. 주님은 여러분의 요청을 불쌍히 여기시고 소원을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 여러분이 주님께 끈질기게 소원을 갖고 기도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하고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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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세기에서 만난 복음
                                (생명의말씀사,2011)

                                    저서 구입연락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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