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제29강변형되신예수님

조회 수 2657 추천 수 0 2012.07.12 07:33:26
마가복음 제 29강(9:1-13)

변형되신 예수님

“엿새 후에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셨더니 저희 앞에서 변형되사(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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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마음에는 두 가지 마음이 있습니다. 안주하고 싶은 마음과 변화를 기대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안주하는 마음은 현실의 편안함을 그대로 유지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이만하면 됐지’ ‘이 나이에 무슨 새로운 일을’ ‘이대로 살다가 가는 거지’ 미래에 대한 비전과 꿈을 접고 사는 태도입니다. 그러나 변화를 기대하는 삶은 현실을 극복하고자 하는 강한 의지와 미래의 꿈과 비전을 가지고 능동적으로 살아갑니다. 안주와 변화, 이 단어는 우리들이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할 단어입니다. 여러분의 삶은 어떻습니까? 현실에 안주합니까? 아니면 적극적인 변화에 대한 기대를 갖고 살아갑니까?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 이 책은 안주와 변화에 대해 재미있게 쓴 책입니다. 이 책을 보면 냄새를 잘 맡는 스니퍼, 민첩하고 행동이 빠른 스커리라는 두 마리의 생쥐와 햄과 허라는 두 꼬마 인간이 등장합니다. 이들은 자기들이 좋아하는 큰 치즈창고를 발견했습니다. 그들은 마음껏 치즈를 먹으며 행복한 나날을 보냈습니다. 스니프와 스커리는 언젠가 치즈가 없어질 것이라고 생각하고 현실의 치즈 창고에 안주하지 않고 또 다른 창고를 찾아 나섭니다. 그들은 결국 다른 치즈 창고를 발견했습니다. 그러나 두 꼬마는 현재의 치즈 맛에 푹 빠져 언제나 자기들이 좋아하는 치즈가 이곳에 항상 있을 것이라는 안일한 생각에 젖어 있었습니다.

어느 날 그들이 창고에 도착했을 때 그곳에는 더 이상 치즈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생쥐들은 다른 치즈창고를 찾아 두었기에 별로 놀라지 않았습니다. 반면에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지 못한 꼬마들은 눈앞의 현실을 도저히 믿을 수 없었습니다. “이게 웬 일이지? 치즈가 사라졌어,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지!” 그들은 소리를 질러보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오늘 우리의 현실은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를 예측하지 못하고 현실에 안주하게 되면 사회에서 도태하게 됩니다.

본문은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높은 산에 올라가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변형되신 사건입니다. 이 변형되신 사건은 예수님의 성육신, 십자가의 죽으심, 부활 및 승천과 더불어 예수님 생애에 있어 중요한 사건 중의 하나입니다. 우리는 본문을 통해 영광스러우신 예수님의 모습이 우리 내면에 조각되어야 함을 배울 수 있습니다. 또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현실에 안주하고자 하는 세 제자들의 모습 속에서 우리가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 가를 배울 수 있습니다.

첫째, 그 옷이 광채가 나고(1-3)

1절을 읽겠습니다. “또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섰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하나님의 나라가 권능으로 임하는 것을 볼 자들도 있느니라 하시니라.” 이 말씀은 가까이는 제자들이 변화산에서 변형되실 예수님을 볼 사건을 일컫는 말씀이요, 멀리는 오순절 성령 강림의 역사와 복음의 폭발적인 확산을 통한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의미합니다. 2,3절을 보겠습니다. “엿새 후에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셨더니, 저희 앞에서 변형되사 그 옷이 광채가 나며 세상에서 빨래하는 자가 그렇게 희게 할 수 없을 만큼 심히 희어졌더라.” 제자들은 예수님으로부터 십자가에 관한 이야기를 듣자 근심과 두려움이 생겼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제자들 중 세 제자만 데리고 높은 산에 오르셨습니다. 여기서 ‘높은 산’은 헬몬산을 말합니다. 이 산은 일명 설산이라 할 만큼 항상 눈으로 덮여 있는 아름다운 산입니다. 예수님은 이곳에서 세 제자에게 변형된 모습을 보여 주셨습니다. ‘변형되었다’는 것은 헬라어로 ‘메타모르포데(μεταμορφωφη)’로 외형의 변화가 아닌 본질의 변화, 빌립보서 2장 6절의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essential form)시나 하나님과 동등 될 것을 취하지 아니하시고”에서 하나님의 ’본체‘와 같은 단어입니다. 예수님은 근본적으로 새로운 모습으로 변화되셨습니다. 주님의 얼굴은 해같이 빛나고 옷은 빛과 같이 희어졌습니다.

그러면 변화산에서 변형되기 이전 예수님의 모습은 어떠했습니까? 이사야 선지자는 이사야서 53장에서 예수님을 이렇게 예언했습니다. 그는 연한 순 같이 연약합니다. 그는 마른땅에서 나온 줄기 같이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으십니다. 그는 사람들의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습니다. 그는 멸시를 받으시고, 사람들로부터 멸시를 당하시고 무시를 받으십니다.

예수님의 본래 모습은 이런 분이 아니십니다. 예수님은 본래 천지를 창조하신 권능의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거룩하시고 영광스러운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죄인들이 감히 그 앞에 설 수 없는 영광스럽고 찬란하신 분이십니다. ‘흰 옷’은 영광과 권세, 거룩함과 순결, 승리의 상징입니다.

사도 요한은 밧모 섬에서 영광스러운 예수님, 거룩하시고 순결하신 예수님, 승리의 예수님을 보았습니다. “촛대 사이에 인자 같은 이가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 그 머리와 털의 희기가 흰 양털 같고 눈 같으며, 그의 눈은 불꽃 같고, 그의 발은 풀무에 단련한 빛난 주석 같고, 그의 음성은 많은 물소리와 같으며, 그 오른 손에 일곱 별이 있고, 그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고, 그 얼굴은 해가 힘있게 비취는 것 같더라(계1:13-16).”

예수님은 가슴에 금띠를 띤 왕이십니다. 예수님은 머리털의 희기가 흰 양털 같이 순결하시고 거룩하십니다. 그의 눈은 불꽃 같이 영적인 통찰력이 있어 그 앞에서는 죄악을 숨길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발은 빛난 주석과 같이 심판의 권세가 있습니다. 그의 음성은 나이아가라 폭포와 같이 우렁차고 청아했습니다. 그의 입에는 혼과 영과 골수를 쪼갤 수 있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의 얼굴은 해가 힘 있게 비취는 것과 같이 힘과 소망이 있습니다. 그의 오른손에는 일곱별이 찬란히 빛났습니다. 이는 전 세계 교회를 말합니다. 예수님은 전 세계의 교회를 통치하십니다. 요한은 이 예수님을 똑바로 쳐다볼 수가 없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영화로우시고 영광스럽고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하늘나라의 높은 보좌에 앉으셔서 인생들을 구원하시고 심판하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생명의 주이십니다. 예수님은 장차 영광 가운데 다시 오실 만왕의 왕이십니다(막8:38). 예수님은 우리의 경배와 찬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이십니다(계5:2). 이 예수님께서 영광과 경배를 받기 위해서는 십자가에 돌아가셔야만 합니다.

이것이 구약에 예언된 메시야관이요, 구원 역사 방법입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이 엄청난 구원의 도리를 이해할 수 없었고, 영접할 수 없었습니다. 베드로는 십자가를 부담스러워 해서 할 수만 있으면 피하고자 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제자들에게 영광스러운 부활의 모습을 보여 주심으로 십자가의 복음을 심으셨습니다. 예수님은 현실에 안주하고자 하는 제자들에게 십자가를 통한 부활의 영광을 심으셨습니다. 우리 속에 안주하고자 하는 마음에서 부활의 영광을 바라보고 앞에 놓여있는 십자가를 사랑하기를 기도합니다.

둘째,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4-8)

제자들은 변형되신 예수님의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그런데 잠시 후 그들은 더 놀라운 광경을 보게 되었습니다. “이에 엘리야가 모세와 함께 저희에게 나타나 예수로 더불어 말씀하거늘(4)” 누가복음 9장 31절을 보면 이들의 대화 내용은 예루살렘에서 있을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엘리야와 모세와 대화하심으로 자신의 십자가 죽으심의 의미를 제자들에게 가르쳐 주고자 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죽으심을 보통 사람들의 죽음과 같은 것으로 이해했습니다. 죽음은 모든 것의 끝이요, 패배요, 실패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예수님의 죽음에 대해 결사반대했습니다.

그런 그가 영광스러운 예수님을 본 후의 반응이 어떠했습니까? “랍비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우리가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사이다 하니(5)” 베드로는 초막 셋을 지어 옹기종기 모여 살자고 제안했습니다. 그의 이 말은 예수님과 모세와 엘리야를 위해서 하는 말 같지만 그 속마음은 자신들을 위해서 그렇게 하자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초막 셋을 지어 자신은 예수님의 비서실장이 되어 모시고 살고, 야고보는 모세의 비서실장, 요한은 엘리야의 비서실장이 되게 하자는 것입니다. 6절을 보면 저자는 이 상황에 대해서 “이는 저희가 심히 무서워함으로 저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지 못함이더라” 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즉 베드로가 너무나 놀란 나머지 자기도 모르게 말을 내뱉은 것입니다. 이는 그의 잠재의식 가운데 숨어 있던 속생각이 무의식적으로 튀어나온 것입니다.

물론 베드로의 심정은 이해가 갑니다. 그는 예수님을 따르기 위하여 많은 고생을 했습니다. 그는 더 이상 고생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산 밑으로 내려가고자 할 때 성격 문제로 동역하기 어려운 다른 제자들과 귀신들려 날뛰는 무리들과 말썽 피는 양들의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고난이 남아 있을까? 얼마나 더 자신을 희생해야 하는가?’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니 산 아래로는 내려가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는 더 이상 무거운 십자가를 감당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는 변화산에서 십자가 없는 영광이 영원히 지속되길 바랐습니다. 그는 아름다운 헬몬 산 위에 아담한 one room 초막을 짓고 사랑하는 예수님을 모시고 영원히 행복하게 살고 싶었습니다.

베드로의 이런 신앙을 일컬어 초막 신앙이라고 합니다. 이런 초막 신앙은 현대인들의 내면 깊은 곳에 잠재해 있습니다. 초막 신앙의 특징은 비전과 사명이 없습니다. 십자가 없는 영광만을 추구합니다. 현실에 안주합니다. 도전과 개척정신이 없습니다. 문제는 베드로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쉽게 편하게, 그리고 안주하고자 하는, 십자가 없는 영광만을 추구하는 초막 신앙이 있습니다.

만약 베드로의 요청대로 변화산 위에 초막을 짓고 산다면 산 아래의 사람들은 어떻게 됩니까?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보내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세상을 사랑하사”입니다. 죄와 질병과 사단의 권세 아래 허덕이는 세상을 구원하러 오셨습니다. 따라서 변화산 위가 아무리 좋아도 산 아래로 내려가야 합니다. 현실의 축복에 안주하여 세상의 변화에 대한 관심을 포기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자기들끼리 지내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향하여 나가는 것입니다.

변형되신 예수님의 앞에 어안이 벙벙한 제자들에게 어떠한 일이 일어났습니까? 하늘에서 빛난 구름이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을 이불로 덮듯 꽉 덮었습니다. 이윽고 구름 속에서 우렁찬 소리가 났습니다. 7절을 읽겠습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 하는지라.” 하나님은 현실에 안주하고자 하는 제자들의 요구를 단호히 물리치셨습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십자가를 통한 영광입니다. 십자가의 고난을 통한 영광의 음성을 듣지 않으면 절대로 천국에 갈 수 없습니다. 십자가의 고난은 하늘나라에 가는 계급장과 같습니다. 고난의 계급장 없이는 천국에 들어가고 싶어도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언제 계급장을 받습니까? 계급장은 훈련장에서 훈련을 다 마친 자에게 주어집니다. 저는 4개월간 피나는 해병대 장교 훈련을 받았습니다. 장교가 임관하기 전의 계급장은 6각형의 계급장을 달고 훈련을 받았습니다. 마산 한일합성에서 나오는 시궁창을 포복하여 기기도 하고, 일주일간 잠을 재우지 않는 지옥훈련도 받았습니다. 4월의 진해 날씨는 보통 추운 것이 아닙니다. 밤 한 시에 사열대에 170명을 올려 보낸 후에 위에서 조루로 물을 붓는데 얼마나 추운지 턱이 떨리고 어금니가 떨리는 훈련 등 수없는 훈련을 받았습니다. 훈련관은 수없이 외치도록 했습니다. “피와 땀으로 6각형을 채워야 다이몬드, 소위 계급장이 만들어진다. 다이아몬드는 저절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4개월의 혹독한 훈련을 받고 해군사관학교 연병장에서 임관식 날에 6각형의 계급장을 떼고 다이아몬드 소위 계급장을 다는데 정말 남다른 감회가 있었습니다. 훈련을 마친 자에게만 다이아몬드 계급장이 주어집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도 훈련을 마친 자에게만 승리의 면류관이 주어집니다. 예수님의 영광도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기독교의 영광은 십자가의 고난을 전제로 합니다. 그러므로 고난이 없으면 영광도 없습니다. 고난이 있기에 영광도 있습니다. 영광이 있기에 고난도 있습니다. 고난과 영광은 함수 관계입니다. 떼래야 뗄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기독교는 영광만 따로 말할 수 없고 고난만 따로 말할 수 없습니다. 십자가의 고난은 반드시 영광이 따르고, 영광이 있으면 고난이 따르게 됩니다. 영광을 얻었다면 고난이라는 과정이 있었다는 증거입니다.

따라서 현재 우리의 고난이 크면 클수록 영광도 그만큼 크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고난만 주어지고 영광이 없다면 그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고난이 있으면 반드시 영광이 주어집니다. 영광을 얻으려면 반드시 고난도 받아야 합니다. 십자가의 고난이 크지 않고, 십자가의 고난이 적으면 하늘의 영광도 적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십자가의 고난 없이 사는 것이 행복인 줄 알았는데 그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십자가의 고난이 있는 것이 행복입니다.

우리는 부담스러울지라도 십자가에 대한 말씀을 듣고 순종하여야 합니다. 우리가 말씀에 순종할 때 말씀은 우리를 살리고, 값지게 하고, 위대케 하고, 열매를 맺게 합니다. 뿐만 아니라 구원에 이르게 하고 영광스러운 삶을 살게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자기의 뜻을 하나님께 관철시키고자 애를 쓰지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고자 하시는 메시지는 듣고자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신앙이란 내가 원하는 것보다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듣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순수 복음 신앙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말씀을 듣기 위해서는 욕심과 사심을 버리고 성령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이 때 세미한 주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어떤 말씀을 듣습니까? 디모데후서 4장 3,4절은 다음과 같이 말씀합니다.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좇을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좇으리라.” 이 세상은 진리의 말씀에 대해 귀를 기울이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에게 유익이 되는 소리에만 관심을 갖고 듣습니다. 그리고 쉽게 사는 법에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요즘 사람들이 가장 관심을 것은 재산을 손쉽게 재테크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땅 투기, 아파트 투기, 주식 투기, 다단계를 통해 일확천금을 모으고자 합니다. 은사 운동을 쫓아다니는 사람들도 이에 해당합니다. 사람들은 쉽게 은사를 받아 쉽게 신앙생활을 하고자 합니다. 손 안대고 코를 풀려는, 고난이 없이 어떤 기적을 체험하고자 합니다. 사이비나 이단들이 이런 심리를 이용하여 사람들을 미혹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진리의 말씀, 하나님이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사람이 어떤 소리를 듣느냐는 매우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이에 따라 그 사람의 삶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세속주의와 쾌락주의의 소리를 들으면 세속적인 사람, 쾌락의 노예가 되어 버립니다. 사람이 내면의 절망의 소리를 들으면 소망을 잃어버리고 심하면 자살을 하게 됩니다. 세상의 상대적인 소리를 들으면 회의적이 되고 불신에 빠지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 되기 때문에(시119:105), 말씀을 들을 때 생명의 길을 갈 수 있고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다. 또한 말씀은 우리에게 소망을 주고 영적인 힘을 줍니다.

제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있을 때 예수님과 자기들만이 남아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8). 모세도, 엘리야도, 자기들의 아름다운 꿈과 이상도 어디론가 사라지고 오직 예수님만이 남았습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우리가 믿고, 소망하고, 따라야 할 분은 오직 예수님 밖에 없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만이 생명의 길, 완전한 길이십니다. 예수님만이 선한 목자가 되셔서 우리 생명을 보호하여 주시며, 우리의 슬픈 눈물을 닦아주시며, 아픔을 어루만져 주십니다.

9-13절에서 예수님은 엘리야와 메시야의 관계에 대해 질문하는 제자들에게 성경에 기록된 참된 메시아 관을 설명하여 주셨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메시아는 십자가 고난을 통하여 영광을 얻으시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구약에 예언된 엘리야는 세례 요한입니다. 그러나 백성들은 세례 요한을 목 베어 죽였습니다.

여러분은 예수님 생각하면 어떤 모습이 떠오릅니까? 영광과 거룩하신 모습입니까? 아니면 십자가에 처절하게 돌아가신 분입니까? 우리는 아마 십자가에 처절하게 돌아가신 예수님을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십자가 고난 후에 임할 영광스러운 예수님의 모습을 기억하고 새겨야 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 승리의 예수님, 빛나고 높은 보좌에 오르신 예수님, 장차 오실 영광의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이 예수님을 마음에 새길 때 십자가는 영광의 십자가가 됩니다. 찬송가 87장을 불러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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