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제30강믿음과 기도의 능력

조회 수 2109 추천 수 0 2012.07.12 07:33:41
마가복음 제 30 강(9:14-29)

믿음과 기도의 능력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 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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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찍 고든 맥도날드는 그가 쓴 ‘내면세계의 질서와 영적성장(ordering your private world)’라는 책에서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의 형태를 두 가지 유형으로 나누었습니다. 하나는 ‘충동에 이끌리는 삶(driven life)’과 ‘소명에 이끌리는 삶(calling life)’입니다. 충동에 이끌리어 살아가는 사람은 매사 일을 그르치게 되고, 상처를 주고받게 되고, 반드시 낭패를 당하게 된다고 했습니다.

반면에 소명에 이끌리어 살아가는 사람은 삶의 차원이 다르다고 했습니다. 그는 무엇을 먼저 해야 할 것인가를 알고, 자신의 인생에서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비전을 알고, 하나님 나라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는 것을 안다고 했습니다. 소명에 이끌리어 살아가는 사람은 사람들의 말을 경청하지만 사람들의 말에 따라 흔들리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의 생각과 뜻보다 하나님의 뜻이 더 중요한 것을 알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께 기도하여 하나님의 뜻을 찾아 확인하고, 그리고 그 길을 묵묵히 걸어간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런 삶을 살고 싶지 않으신가요? 요즘 많은 사람들이 일에 쫓겨 여유가 없고, 늘 조급하여 삶이 헝클어지고, 뒤죽박죽되어 삶의 질서가 깨지고, 충동에 이끌리어 살아갑니다. 그러나 소명에 이끌리어 살아가는 사람은 바쁜 중에도 삶의 여유가 있고, 질서가 있는 삶을 살아갑니다. 이런 삶을 만들어 주는 것이 바로 기도입니다. 따라서 기도는 낭비가 아니라 확실한 투자이고, 가장 지혜로운 일입니다.

본문은 9장 1-13절과 대조가 됩니다. 라파엘은 변화산 위의 영광스러운 예수님의 광경과 산 아래의 참경을 대조적으로 화폭에 담았습니다. 변화산 위는 영광과 거룩함이 있습니다. 그러나 산 아래는 치욕과 슬픔과 낙심으로 가득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것은 믿음이 없고 기도하지 않는 세대이기 때문입니다.

믿음과 기도가 없는 세대는 죄가 가득합니다. 믿음과 기도가 없는 세대는 악령이 득세합니다. 기도와 믿음이 없는 세대는 혼돈과 어두움이 가득합니다. 이런 곳에는 하나님의 능력이 임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믿음의 기도를 하는 사람에게, 믿음의 기도를 드리는 곳에, 믿음의 기도를 드리는 그 시간에 그 능력을 나타내십니다. 본문을 통해 믿음의 기도를 드려서 한계 상황에 도전하여 승리하기를 기도합니다.

첫째, 믿음이 없는 세대여!(14-19)

예수님은 세 제자와 함께 변화산에서 무리와 제자들이 기다리고 있는 산 아래로 내려 오셨습니다. 이 때 9명의 제자들이 많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비지땀을 뻘뻘 흘리며 서기관들과 변론하고 있었습니다(14). 이는 벙어리 귀신들린 어린아이를 고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아버지가 벙어리 귀신들린 어린아이를 데리고 오자 제자들은 각기 귀신들린 아이를 고치고자 했습니다.

먼저 안드레가 ‘예수의 이름으로 물러가라!’ 외쳤습니다. 그러나 귀신은 나가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도마가 ‘아니야, 나사렛 예수가 빠졌어’ 하며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물러가라!’ 외쳤습니다. 그래도 귀신이 나가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제자들은 9명이 합심하여 외쳤습니다. ‘귀신아 물러가라! 아멘.’ 그래도 귀신은 꼼짝하지 않았습니다.

이를 본 서기관들은 기회를 잡았다는 듯이 조롱하며 비난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 그렇지’, ‘너희가 무슨 권세로 귀신을 내어 쫓아!’ 이 때 제자들은 이에 뒤질세라 열변을 토하며 변론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변론을 경계합니다. “어리석고 무식한 변론을 버리라. 이에서 다툼이 나는 줄 앎이라(딤후2:23).” 변론은 자기를 광내고, 변론은 자신의 무능력과 자신의 잘못을 합리화하고자 하는 데서 옵니다. 그러나 성경은 말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고전4:20).”

이 때 예수님께서 오셨습니다. 무리들은 예수님의 얼굴에서 거룩함과 영광을 보고 심히 놀라며 인사했습니다. 또 제자들은 한참 몰리고 있는 상황에 예수님이 오시니 참으로 반가웠습니다. 이에 무리 중 하나가 예수님께 나아와 딱한 사정을 호소했습니다. ‘선생님, 벙어리 귀신들린 내 아들을 선생님께 데려 왔습니다. 귀신이 저를 잡으면 거꾸러져 거품을 흘리고 이를 갈며 파리해집니다. 내가 선생님의 제자들에게 내어 쫓아 달라 하였으나 저희가 고치지 못합니다(17,18).’

부모는 자식이 조금만 아파도 걱정이 이만 저만이 아닙니다. 그런데 이런 자식을 둔 아버지의 마음이 어떠했을까요? 아버지의 가슴은 갈기갈기 찢어질 것만 같았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아들이 죽은 사람처럼 되는 것을 볼 때에 아버지도 죽은 사람처럼 되는 것만 같았을 것입니다. 아버지는 아들을 고치기 위해 유명한 병원은 다 찾아가 보았지만 고칠 수 없었습니다. 아버지는 이런 절실한 문제를 가지고 예수님께 나아왔습니다. 그러나 제자들도 고치지 못했습니다.

그들이 왜 아이를 고치지 못했을까요? 마가복음 6장을 보면 제자들은 귀신을 내어 쫓고 병자를 고친 적이 있습니다. 이들의 능력의 소식이 헤롯궁에까지 들어가 헤롯이 두려움에 시달리기도 했습니다. 그런 능력을 행한 그들이 왜 이번에는 고치지 못하고 쩔쩔매고 있을까요? 이는 귀신들린 어린아이를 고치고자 하는 동기가 잘못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목자의 심정보다 자기 광을 내고자 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순수한 마음으로 그를 돕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동기와 목적이 순수할 때 능력을 행하십니다.

그리고 그들은 과거의 경험을 의지했기 때문에 고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인간의 역사가 아니라 성령의 역사입니다. 그러므로 위로부터 능력을 덧입어야 합니다. 그들이 처음 전도 여행을 할 때에는 오직 예수님만을 의지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들은 예수님보다는 경험을 더 의지했습니다. 자신의 머리와 지혜를 의지했습니다. 이러했을 때 두 명이 합심하여 큰일을 행했던 그들이 아홉 명이 합심해도 귀신 하나 내쫓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과거에 큰일을 행했어도 현재 믿음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붕어빵을 만드는 기계처럼 능력을 복제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새 믿음, 산 믿음, 현재의 믿음을 통해 능력을 나타내십니다.

예수님은 어린아이의 문제보다 믿음이 없는 세대를 보시고 탄식하셨습니다. 19절을 보겠습니다. “믿음이 없는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를 참으리요, 그를 내게로 데려오라 하시매” ‘믿음이 없다’란 헬라어로 ‘아피스토스’로 믿음이 고갈되어 믿음이 전혀 없는 상태를 말합니다.

‘세대’란 동시대에 사는 모두를 포함합니다. 제자들과 서기관들, 아이 그리고 아이의 아버지와 무리들 모두가 믿음이 없다는 것입니다. 특히 서기관들과 제자들을 가리킵니다. 서기관들은 그 시대의 양심의 상징이었습니다. 그들은 그 시대의 목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러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은 그런 그들을 보시고 믿음이 없음을 책망하셨습니다. ‘믿음’이란 하나님과 인간, 그리고 물질에 대한 바른 자세입니다. 인간이 하나님께 대한 바른 자세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첫째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명령을 기뻐하며 순종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말씀을 떠나지 않고 살아갑니다. 또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뢰하며 살아갑니다. 마지막으로 물질의 노예로 살지 않고 재물과 소산물로 하나님을 공경합니다. 인간에 대한 바른 자세는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만물에 대한 바른 자세는 하나님의 법질서 속에서 다스리는 것입니다. 이 질서를 지키는 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오늘날 이 사회가 왜 이처럼 윤리와 도덕이 땅에 떨어져 짐승들이 사는 세계처럼 되어 가고 있습니까? 오늘날 가정과 사회가 왜 이처럼 걷잡을 수 없이 흔들리고 있습니까? 이는 믿음이 없는 세대이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없는 세대는 죄악이 관영합니다. 믿음이 없는 세대는 슬픔이 가득합니다. 믿음이 없는 세대는 소망이 없습니다. 믿음이 없는 세대는 더럽고 추합니다. 믿음이 없는 세대는 절대적인 가치관이 붕괴되어 혼돈과 공허와 어두움이 가득합니다. 믿음이 없는 세대는 악령이 판을 칩니다. 믿음이 없는 세대는 소돔과 고모라와 같이 성도덕이 타락하여 동성연애가 난무하고, 근친상간이 성행하게 됩니다.

그러면 병든 사회를 어떻게 치료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께로 돌아와 믿음을 회복해야 합니다. 하나님께로 돌아와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해야 합니다. 우리의 내면에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과 거룩함이 임해야 합니다.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이 때 바른 가정, 바른 사회가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믿음이 없는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를 참으리요?” 여러분은 믿음이 있습니까? 아니면 믿음의 흉내만 내지는 않습니까? 믿음이 없는 세대에 믿음을 소유하여 하나님과의 바른 자세, 인간과 인간과의 바른 자세, 물질과의 바른 자세를 갖기를 기도합니다.

둘째, 할 수 있거든 이 무슨 말이냐(20-23).

아버지가 예수님께 아이를 데리고 오자 귀신은 더 발작하여 그 아이로 심히 경련을 일으키게 하고, 엎드러져 거품을 흘리게 했습니다(20). 이 때 아버지는 예수님께 데리고 와도 소용이 없구나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이 때 예수님은 아버지에게 물었습니다.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습니까?’ 지금 죽어 가고 있는 이 아이에게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는가는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당장 시급한 것은 아이가 빨리 고침을 받는 것입니다. 그리고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느냐 물으셨기 때문에 이에 대해 답을 하려면 한참 걸리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이 아이는 종치고 막 내리게 됩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은 아이의 상황에 대해 자세히 묻습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몰라서 물으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아버지와의 관계성을 맺고자 함에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보실 때 아이의 병도 병이지만 아버지의 믿음을 돕는 것 또한 중요하게 여기셨습니다.

이 때 아버지가 대답하였습니다. “어릴 때부터니이다. 귀신이 저를 죽이려고 불과 물에 자주 던졌나이다. 그러나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주옵소서(21b,22)!” 이 말씀에서 볼 때에 귀신의 목적은 죽이는 데 있습니다. 귀신은 인간성을 파괴하고 영과 육을 파괴시킵니다. 귀신은 고귀한 하나님의 형상을 파괴시킵니다. 이제 아버지는 예수님과의 관계성을 맺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는 예수님께 무엇을 간구했습니까?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아버지는 가정법을 사용하여 제자들과 같이 고칠 수 없으면 그만 두시라는 것입니다. 괜히 고친다고 하시다가 못 고치면 창피만 당하니 아예 못 고치면 처음부터 그만 두라는 것입니다. 반면에 고칠 수 있으면 한 번 고쳐보라는 것입니다. 아버지는 믿음이 좋고 겸손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는 예수님께 대한 믿음이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그를 어떻게 도우셨습니까? “할 수 있거든 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23).” 예수님은 그의 불신을 책망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불신을 가장 미워하십니다. 예수님은 믿음이 없음을 가장 슬퍼하십니다. 반면에 믿음이 있는 자들을 기뻐하십니다. 불신은 가장 큰 죄입니다. 이 불신은 도덕적인 죄보다 더 큰 죄악입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실패한다고 책망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눈에 보이는 업적을 따라 책망치 않습니다. 예수님은 불신을 책망하십니다. 예수님께는 가정이 없습니다. 예수님께는 조건이 붙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는 anything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늘 긍정적입니다. “할 수 있거든 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예수님은 모든 것을 하실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에게는 불가능이 없습니다. 믿음은 모든 불가능을 가능케 합니다. 믿음이란 현재의 상황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믿음은 현재의 역경을 디디고 일어서게 합니다. 믿음은 어떤 절망도 극복할 수 있습니다. 믿음은 자신의 지혜와 능력으로 할 수 없는 것을 하게 합니다. 믿음은 연약함과 한계를 극복하게 합니다. 믿음은 불가능에 도전하여 열매를 맺게 합니다.

바울은 믿음의 능력을 체험하고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4:13).” 우리는 현실 상황이란 복병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우리에게는 현실 상황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할 수 있거든 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믿음만 있으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믿음은 100% 온전한 믿음입니다. 1%라도 불신이 있으면 믿음이 아닙니다. 마태복음에서는 겨자씨만한 믿음이라 할지라도 온전하여야 된다고 말씀합니다. 겨자씨만한 믿음만 있어도 태산을 옮겨서 바다를 메꿀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주만한 믿음이라 할지라도 1%의 불신이 있으면 아무런 일을 행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겨자씨만한 믿음이라도 100%의 온전한 믿음을 원하십니다.

우리는 젊고 유능한 지성인들이기 때문에 내 힘과 내 지혜와 열정과 젊음을 가지고 무엇이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살다 보면 인간의 힘과 능력과 지혜로 할 수 없는 것이 많습니다. 특히나 영적 세계는 더욱 더 그러합니다. 우리의 지혜는 한계가 있습니다. 나의 힘은 한계가 있습니다. 나의 능력은 한계가 있습니다. 그러나 온전한 믿음을 소유할 때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서 큰일을 행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믿음으로 살고자 할 때 싸워야 할 대적은 의심입니다. 믿음이란 의심과 싸우는 것입니다.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약1:6-8).”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을 믿으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지우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를 줄 믿고 마음에 의심치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막11:22,23).” 온전한 믿음은 역사를 창조할 수 있습니다. 온전한 믿음을 갖도록 힘쓰십시오.

셋째, 기도 외에는 이런 유가 없느니라(24-29).

책망을 들은 아이의 아버지의 반응이 어떠합니까? 24절을 보겠습니다. “곧 그 아이의 아비가 소리 질러 가로되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 그가 소리를 질렀다는 것은 마음과 뜻과 정성을 합하여 전심으로 기도했다는 것입니다. 그는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는 절박한 심정으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은 절박한 심정의 기도를 응답해 주십니다.

예레미야서 29장 13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 엘리야가 갈멜산에서 절박한 심정으로, 전심으로 기도했을 때 불을 내려 주셨습니다(왕상18:36-37,42). 여러분의 절박한 기도제목이 있다면 전심으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은 그의 절박한 기도를 들으시고 아이의 귀신을 내어좇으셨습니다(25).

예수님께서 집에 들어가시자 제자들이 예수님께 조용히 물었습니다. “우리는 어찌하여 능히 그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느니라(29).” 예수님은 제자들이 아이를 고치지 못한 원인은 기도하지 않은 데 있음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기도란 예수님을 의지하는 믿음의 표현이요, 하나님과 바른 관계의 표현입니다. 기도는 믿음을 지속시킬 수 있고, 모든 불신과 부정, 운명적인 생각과 죄의 소욕을 이길 수 있습니다.

무명의 그리스도인이 쓴 ‘무릎으로 사는 그리스도인’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에서 저자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기도하기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데 대하여 놀라지 않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기도하지 않는 이유를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마 그들이 기도 응답을 한 번도 체험해 보지 못했거나, 그런 것을 들어본 적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가 기도응답을 체험하면 계속 기도하게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큰 것이든, 작은 것이든 기도의 응답을 체험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아주 작은 기도의 응답을 체험하는 것은 하나님이 살아 계신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이고, 동시에 그에게 어떤 어려운 문제가 있다고 할지라도 기도하면 된다는 확신을 갖게 되고, 실제로 기도할 수 있게 합니다. 기도의 응답의 체험은 신앙생활의 핵심부로 들어가는 출발점이요 우리의 믿음을 건강하게 세우는 중요한 열쇠입니다.

그러면서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어찌하여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그토록 자주 패배하는가? 그것은 기도를 너무 적게 하기 때문이다. 어찌하여 수많은 성도들이 그토록 자주 용기를 잃고 낙심하는가? 그 또한 기도를 너무 적게 하기 때문이다. 기도는 ‘세상을 움직이는 하나님의 손’을 움직이는 것이다.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느니라.” 그런데 마태복음 17장20절에서는 같은 사건을 믿음이 적은 연고라 말씀하셨습니다. 믿음이 연약하여 기도하지 않고, 기도하지 않아 우리 앞에 가로놓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문제에 눌려 예수를 믿으면서도 여전히 핍절한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믿음의 기도를 통해 우리는 우리 앞에 놓여 있는 문제, 우리를 절망하게 하고, 힘들고 아프게 하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믿음이 없는 불신의 시대에 믿음의 기도, 절박한 기도, 전심으로 주님께 기도하여 매일 승리를 체험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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