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제35강도리어 섬기려고

조회 수 2620 추천 수 0 2012.07.12 07:34:54
마가복음 제 35 강 (10:32-45, 요절 10:45)

도리어 섬기려 하고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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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누구나 예외 없이 누구를 배우려하고, 또한 누구로부터 영향을 받습니다. 위대한 사람들의 자서전을 읽어보면 “나는 누구의 영향과 무슨 책으로부터 많은 감명을 받았다”고 기술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의 인격과 성향을 알려면 누구와 사귀고, 무슨 책을 읽고 있는가를 알아보면 됩니다. 불교에 관한 책을 읽으면 자연스럽게 불교 신도가 되는 것이고, 유교에 관한 책을 많이 읽으면 유교 신도가 되는 것이며, 성경을 많이 읽으면 예수님의 인격과 삶을 배우게 되기 때문에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인격과 예수님의 삶이 어떠하셨습니까? 이를 한 마디로 말하면 십자가를 지신 삶입니다. 십자가를 지신 삶은 겸손이요, 겸손은 섬기는 삶으로 나타나셨습니다.

빌립보서를 보면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다(2:6,7)”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근본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영원하십니다. 예수님은 부유하십니다. 예수님은 전능하십니다. 예수님은 존귀하십니다. 예수님은 거룩하십니다. 예수님은 영광이십니다. 그런데 영광스러운 예수님이 모든 특권과 영광과 권세를 다 버리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가장 연약한 인간의 몸으로 오셨습니다. 영원하신 하나님께서 한계적인 몸을 입고 오셨습니다. 존귀하신 하나님께서 종의 자리까지 낮아지셨습니다. 부유하신 하나님께서 가난하게 되셨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비천의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기까지 섬기셨습니다. 예수님은 생각이 천박한 인간들을 섬기셨습니다. 예수님은 쉽게 분을 내고 좌절하는 인간들을 섬기셨습니다. 예수님은 은혜를 헌신짝처럼 버리는 인간들을 끝까지 섬기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실지라도 섬기러 오신 예수님을 배워 위대한 삶, 진정으로 행복한 삶을 살기를 기도합니다.

첫째, 십자가와 부활을 가르치시는 예수님(32-34)

32a절을 보면 예수님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길에 제자들이 예수님에 대해서 놀라고 두려워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예루살렘은 고난과 침 뱉음과 십자가와 죽음이 기다리고 있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이런 곳이 있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피하여 가든지, 아니면 그 곳을 아예 가려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비장한 각오로 제자들 앞에 서서 그 길을 향해 올라가고자 결단하셨습니다.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예수님의 얼굴은 중대한 결의에 차 있으셨습니다. 무언가 심상치 않은 일이 일어날 것만 같았습니다. 한편 제자들은 예수님이 왕이 되셔서 하루아침에 예루살렘 성을 접수하여 왕이 되시지나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32-34절을 보겠습니다. “이에 다시 열 두 제자를 데리시고 자기의 당할 일을 일러 가라사대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에 올라가노니 인자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기우매 저희가 죽이기로 결안하고, 이방인들에게 넘겨주겠고, 그들은 능욕하며 침 뱉으며 채찍질하고, 죽일 것이니 저는 삼 일만에 살아나리라 하시니라.” 이 말씀은 지금까지 세 번 하신 말씀입니다(막8:31,32,9:31).

세 번째 하신 말씀은 전에 말씀하신 것보다 더 구체적이며 상세합니다. 예루살렘에서 고난을 받으신다. 능욕 받으신다. 침 뱉음과 채찍질을 맞으신다. 이방인의 손에 넘기게 될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은 삼 일만에 부활하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이방인의 손’이란 로마 군병들로, 유대인들로서는 가장 모욕적인 일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서 사람들의 인기와 영광을 얻을 것으로 기대했는데, 오히려 예수님께서 사람들로부터 버림받으시며, 능욕당하고, 채찍질당하고, 죽임을 당하신다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두려운 것은 세상으로부터 소외와 인간관계가 깨지는 것입니다. 베일런트가 쓴 행복의 조건을 보면 노년에 행복한 사람은 좋은 인간관계를 맺은 사람들이라고 했습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에 사람은 누구를 막론하고 사람들로부터 버림받지 않고, 인정받으며 살고 싶어 합니다. 우리가 살면서 가장 괴로운 시간은 아마 버림받은 슬픔일 것입니다. 자녀가 부모로부터 버림받았을 때의 슬픔을 뭣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요? 아내가 남편으로부터 버림 받은 슬픔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그런데 예수님은 오히려 능욕과 침 뱉음과 죽임을 당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왜 버림을 받으셔야 합니까? 이사야서 53장 4a절을 보면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의 질고로 인함입니다. 세상에는 성한 사람이 한 명도 없습니다. 그런데 누구도 나의 질병을 해결할 수 없습니다. 아니 해결은 그만두고 이해만이라도 해 주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우리의 모든 질고와 슬픔을 이해하시고 해결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이를 위해 슬픔의 사람이요, 고난의 사람이 되셨습니다.

그런데 이사야서 53장 4b절을 보면 사람들은 예수님과 아무 상관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사야서 53장 5절을 보면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나의 죄와 허물로 인해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나의 죄 때문에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오르셔야 했습니다. 나의 추한 생각 때문에 날카로운 가시면류관을 쓰셔야 했습니다. 나의 시기심과 거짓과 미움이 예수님의 뺨을 때렸습니다. 나의 정욕이 채찍이 되어 예수님의 살을 찢었습니다. 나의 불신앙과 불순종이 굵은 대못이 되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나의 탐욕이 날카로운 창이 되어 예수님의 옆구리를 찔렀습니다. 아무 죄 없으신 예수님께서 나의 죄 때문에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세 번씩이나 반복하여 죽으심과 부활을 말씀하심은 성경에 기록된 필연적인 사건임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가셔서 갑자기 돌아가시게 되면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우연히, 아니면 힘이 없어 그런 줄 알고 실족당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구약의 예언대로 고난을 받으시고, 능욕 받으시고, 침 뱉음과 채찍질을 맞으시고 부활하셨습니다. 그리고 현재 제자들은 십자가의 말씀을 영접하려 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십자가 이야기만 나오면 귀를 막아 버리고, 묻기조차 두려워했고, 깜짝깜짝 놀랐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제자들에게 십자가의 복음을 심으셨습니다. 이는 십자가의 복음만이 인간의 근본 문제가 해결되고, 부활의 영광에 참예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롬8:18).

그런데 사람들은 누구나 영광을 좋아하지 십자가를 싫어합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 욕망대로 살기를 좋아합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easy going의 삶을 원합니다. 우리 또한 목에 십자가를 달고 다니기를 좋아하지만 십자가를 지기는 싫어합니다. 이것이 인간의 본성입니다. 그러나 자기 본성대로 살고 싶은 마음을 부인하고, 십자가의 고난을 사랑하는 것이 성도의 삶입니다. 한탕주의를 버리고, 땀 흘려 일하여 버는 것이 참된 성도의 삶입니다.

교회는 인정을 받는 사교의 장이 아닙니다. 교회는 자기 생각을 죽이는 곳입니다. 세속의 욕망을 예수님 이름으로 채우는 곳이 아닙니다. 교회는 세상의 욕망을 죽이고 버리는 곳입니다. 빌립보서 3장 7절에서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말씀하고 있습니다. 계속하여 바울은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긴다”라고 하였습니다. 갈라디아서 5장 24절에서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라고 하였습니다.

성숙이란 자기를 십자가로 죽이고 하늘나라의 영광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땅만 쳐다보는 넝마인생이 아니라 십자가를 통한 꿈과 비전 추구하는 것입니다. 독수리는 화살에 맞아 죽지 않는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독수리는 낮게 날지 않기 때문입니다. 때로 구름 위로 올라가 숨기도 합니다. 성숙은 십자가를 통해 독수리처럼 높이 나는 인생, 미래지향 인생입니다. 성숙은 십자가를 붙드는 것입니다. 찬송가 135장을 부르겠습니다. ♬갈보리 산 위에 십자가 섰으니 주가 고난을 당한 표라.......... 험한 십자가 붙들겠네♬ 십자가를 사랑할 때 기독교 명문가정이 될 수 있습니다.

둘째, 섬기러 오신 예수님(35-45)

35절을 보십시오. 예수님께서 말씀을 하고 계실 때 제자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습니까? 제자들은 그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런 말은 받아들이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영광을 얻을 것이라는 생각에 사로 잡혀 있었습니다. 야고보와 요한은 예수님께 나와 무엇이든지 원하는 것을 달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그들의 소원을 물어 보셨습니다. 야고보와 요한은 재빠르게 예수님의 좌우에 앉게 해 달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영광 얻을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습니다. 그들은 열 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의 열 두 지파를 심판하리라는 말씀이 곧 이루어지리라 확신했습니다(마19:28). 그리고 변화산 상의 영광을 떠 올리곤 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38절을 보십시오. “너희 구하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가 나의 마시는 잔을 마시며, 나의 받는 세례를 받을 수 있느냐?” 두 제자는 자기들이 뭘 구하는지, 주의 영광이 무엇인지, 예수님의 좌우편에 앉는 것이 무엇인지, 그 자리가 얼마나 고난과 책임이 있고, 또 그들이 감당할 수 있는 자리인지도 몰랐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 자리가 그냥 좋아 보였습니다. 여기에서 ‘마시는 잔’은 십자가의 고통을 말하며, ‘받는 세례’는 십자가의 죽음을 의미합니다(롬6장). 예수님은 그들에게 영광을 얻기 전에 십자가의 고난에 동참해야 됨을 말씀하셨습니다.

이 때 야고보와 요한은 자신 있게 대답했습니다. ‘할 수 있습니다(We can do.).’ 그들은 영광만 주신다면 그 어떤 것도 할 각오가 되어 있다고 했습니다. 이 때 예수님은 그들의 생각이 어떠하든지 인정해 주셨습니다(38). 그들은 자신의 대답대로, 야고보는 가장 먼저 순교의 잔을, 요한은 오랫동안 밧모 섬에서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의 고난에 동참했습니다. 예수님은 장차 그들이 주의 영광을 위하여 살 것을 아시고 긍정적으로 받아 주셨습니다. 그러나 좌우에 앉는 것은 나의 줄 것이 아니라 누구를 위해 예비 되었든지 그들이 얻을 것이라 하셨습니다(40). 예수님은 그들이 예수님을 위하여 살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 앞에 살도록 방향을 잡아 주셨습니다.

41절을 보십시오. 제자들은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님께 은밀히 청탁했다는 소식을 듣자 모두 분을 내었습니다. 그들은 한 수 놓쳤다는 데서 오는 분함이 더 컸습니다. 이를 볼 때 제자들은 드러내지 않았을 뿐 모두에게 나름대로의 인간적인 야망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야망은 비극으로 끝납니다. 야망은 자기 욕망으로 출발하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비전은 하나님으로부터 출발합니다. 비전을 사람을 위대하게 합니다. 히틀러는 게르만 민족을 통한 유럽 통일의 야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때 그는 엄청난 피를 흘렸습니다. 반면 요한 웨슬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세계 복음화의 비전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 비전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기 때문에 인류에게 기쁨과 평화를 가져다주었으며 또 실현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인간적인 야망을 버리고 영적인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인간적인 야망으로 속이 시끄러운 제자들을 불러 모으시고, 가장 위대한 사람이 누구이며, 가장 위대해지는 비밀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42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불러다가 이르시되 이방인의 소위 집권자들이 저희를 임의로 주관하고, 그 대인들이 저희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이방인의 집권자’란 당시 이스라엘을 통치하던 로마제국의 정치지도자들을 의미합니다. 그들은 막강한 군사력을 이용하여 이스라엘을 비롯하여 세계를 강압적으로 다스리고 임의로 주관했습니다. 그들은 권력을 남용하여 자기들이 원하는 대로 법을 만들어 통치했습니다. 이게 세상 역사입니다.

우리나라는 장로 대통령이 되면 괜찮지 않나 생각하여 장로 대통령을 뽑아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누가 지배해도 마찬가지입니다. 정치란 힘의 역학이기 때문에 강자는 약자를 주관하고, 권세를 부리게 되어 있습니다. 이 때문에 사람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대권을 잡고자 합니다. 제자들도 이런 모습을 보았기 때문에 높은 자리에 올라 백마를 타고 다니며 한 번 원하는 대로 세상을 살아보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는 좀 달라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43,44절을 보십시오.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아니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이 말씀은 예나 지금이나 역설적인 말씀인 것 같습니다. 주인이 하인을 섬기고, 스승이 제자를 섬긴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습니다. 높은 자가 낮은 자를 섬기고, 낮은 자는 높은 자를 섬기는 것이 마땅한 도리입니다. 섬기는 일은 낮은 자의 몫이요, 섬긴다는 것은 하나의 굴욕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너희는 좀 달라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이 말씀은 역설적인 말씀인 것 같지만 진리의 말씀입니다.

구약 성경에 룻이란 여인이 나옵니다. 룻은 모압 여인으로, 이방여인입니다. 그녀는 이방 여인으로 예수님의 족보에 오를 수 없습니다. 그런데 그녀는 예수님의 족보에 오르는 여인이 되었습니다. 이방 여인이 어떻게 예수님의 족보에 오를 수 있었습니까? 섬김의 여인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녀는 나오미 집으로 시집 와서 일찍 남편을 잃었습니다. 그녀는 과부 시어머니와 살아야 했습니다. 시어머니는 룻이 고향에 가서 재혼하도록 했지만 그녀는 시어머니를 끝까지 섬겼습니다. 유대 땅 베들레헴에 와서도 매일 이삭을 주워서 시어머니를 섬겼습니다. 이삭을 줍는 것이 쉬운 일입니까? 하루 종일 허리를 굽혀 이삭을 주워도 한 되도 되지 않습니다. 수고한 것에 비해 얻는 것이 너무 적습니다. 그래도 그는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룻의 이런 섬김은 베들레헴의 신사요, 부자인 보아스를 감동시켰습니다. 결국 보아스의 아내가 되어 오벳을 낳았습니다. 오벳은 다윗의 할아버지입니다. 룻은 그리스도의 족보에 오르는 인물이 되었습니다. 섬기는 자가 위대한 자가 됩니다.

그런데 섬기는 데 어떤 자세로 섬겨야 합니까? 44절을 보십시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종의 자세로 섬겨야 합니다. 우리가 종의 자세로 섬기지 않을 때 ‘나는 이만큼 했으니 너도 이만큼 해야 한다’ 는 요구하는 마음이 생기게 됩니다. 그 때 우리는 불평이 생기게 됩니다. 그러나 종은 요구하는 마음을 가질 수 없습니다. 종은 섬기는 자입니다. 종은 섬긴 후에 자기 의를 구하거나 내세우지 않습니다(눅17:7-10). 그러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는 것이 섬기는 것입니까?

첫째로 관심입니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에 대하여 관심을 갖기를 원치 않습니다. 오히려 지나친 관심은 실례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관심은 사랑입니다. 사랑이 없으면 관심을 가질 수 없습니다. 그런데 관심을 가지려면 희생과 헌신과 겸손과 이해가 요구됩니다. 자존심을 버려야 합니다. 자기의 이기심을 깨야 합니다. ‘위대하다’는 것은 위가 큰 자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관심을 갖느냐 입니다. 아기와 자기에게만 관심을 갖게 되면 남편이요, 아버지 밖에 되지 못합니다. 그러나 세계에 관심을 갖게 되면 세계인이 됩니다. 관심의 폭과 깊이는 섬김의 폭과 깊이의 바로미터가 됩니다.

둘째로 말씀과 기도입니다.

우리는 섬긴다 하면 주로 서빙을 생각합니다. 물론 서빙은 섬기는 생활입니다. 그러나 사람을 가장 잘 섬기는 생활은 기도와 말씀으로 섬기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틈만 있으면 양들은 말씀과 기도로 섬겨 주셨습니다. 이 때 죽었던 영혼들이 살아났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실질적인 문제도 해결하여 주셨습니다. 우리가 양들을 섬기고 동역자들을 섬긴다는 것은 바로 말씀으로 죄 문제를 돕고, 그의 실제적인 인생 문제를 위해 기도해주고 함께 하는 것입니다.

셋째로 섬김의 본입니다.

예수님은 실제적으로 섬김의 본을 보여 주셨습니다. 45절을 보겠습니다.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예수님의 본체는 하나님이십니다(빌2:6).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일지라도 하늘나라의 모든 영광과 특권을 버리고, 인생들을 섬기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많은 사람들의 대속물이 되기까지 섬기셨습니다. 구약에 보면 죄를 사함받기 위해서는 반드시 희생 제물을 드려야 했습니다.

예수님은 속죄 제물, 희생 제물이 되셨습니다. 예수님은 내가 고난을 받을 자리에서 내대신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내가 침 뱉음을 받아야 할 자리에서 내대신 침 뱉음을 당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내가 받아야 할 심판의 자리에서 내대신 심판을 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내가 죽어야 할 그 자리에서 내대신 죽으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실지라도 십자가에 죽기까지 우리를 끝까지 섬겨 주셨습니다.

우리가 섬김의 예수님을 배울 때 위대한 생을 살 수 있습니다. 세상의 자리는 제한되어 있어 경쟁을 하지만 영적 자리는 제한되어 있지 않습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배우기만 위대한 사람이 됩니다. 우리가 집에서, 각 직장에서, 각기 공동체 내에서 서로 섬기는 삶을 사시기를 기도합니다. 섬기는 곳에는 갈등이 없습니다. 섬기는 곳에는 은혜와 기쁨과 사랑과 용서와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섬김이 있는 곳이 천국이요 에덴동산입니다. 모두가 섬김의 예수님을 배워 위대한 삶을 살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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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학마을교회

                                    Tiananmen Square protests, China Democracy, 天安門 天安门 法輪功 李洪志 Free Tibet 劉曉波, 热比娅·卡德尔, 熱比婭·卡德爾