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제38강 하나님을 믿으라

조회 수 2586 추천 수 0 2012.07.12 07:35:20
마가복음 제 38 강(11:12-25)

하나님을 믿으라

“예수께서 대답하여 저희에게 이르시되 하나님을 믿으라(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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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하루아마 시게오는 ‘뇌내 혁명’에서 “사람이 싫다 좋다는 생각을 하는데도 기본적인 양의 에너지가 필요하다. 그런데 긍정적으로 생각할 때와 부정적으로 생각할 때의 단백질 분해방법이 서로 다르다. 스트레스를 받더라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면 단백질이 부신 피질호르몬과 엔돌핀으로 분해되어 기분이 상승된다. 반면에 부정적으로 받아 드리게 되면 독성이 강한 활성 산소가 발생하여 상황을 더 악화시킨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조엘 오스틴은 ‘긍정의 힘’에서 “인생은 기대를 따라간다. 개대한 만큼 이룬다. 긍정적인 생각을 품으면 긍정적인 방향으로 흘러간다. 반면에 부정적인 생각에 사로잡히면 일이 꼬이게 마련이다. 패배와 실패, 삼류 인생을 기대하면 잠재의식이 우리를 그쪽으로 몰아가 평범한 수준 이상의 어떤 시도도 못하게 만든다.”고 했습니다.

사람이 불신하면 될 일도 안 되고, 믿고 신뢰하면 안 될 일도 됩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믿음입니다. 사람이 염려하고 두려워하고 근심하는 것은 믿음이 없는 불신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근심하고 염려하고 두려워하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요14:1).”
본문을 보면 “믿으라.” “되리라.” “받은 줄로 믿으라.” “그대로 되리라”는 적극적인 명령형의 동사가 나옵니다. 그리고 믿으라(22). 믿고(23). 믿으라(24)는 믿음이라는 단어가 반복됩니다. 오늘 이 시간에 믿었으면 되었고, 기도했으면 받았고, 기도하면 그대로 될 줄로 믿는 믿음의 확신을 갖기를 기도합니다.

첫째, 하나님을 믿으라(22,23).

예수님은 이튿날 아침에 성전으로 가시는 길이었습니다(20). 이 때 제자들은 전날 탐스러웠던 무화과나무가 예수님의 저주를 받고 뿌리로부터 마른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이 때 베드로는 예수님의 말씀이 생각나서 외쳤습니다. “랍비여, 보소서! 저주하신 무화과나무가 말랐습니다!” 베드로는 자신도 말 한마디에 나무가 말라죽는 권세를 갖고 싶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그에게 대답하셨습니다. “하나님을 믿으라.” Have faith in God. 하나님 안에서 믿음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 밖의 믿음도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나는 아무 것도 믿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학생들에게 종교와 행복의 상관관계를 알아보도록 주일에 교회든 천주교든 법당이든 다녀온 후 소감을 쓰는 숙제를 냈습니다. 그런데 몇 몇 학생이 자신은 아무 것도 믿지 않는다며 다른 것으로 대치할 수 없는가를 물었습니다. 그러나 세상에는 아무 것도 믿지 않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습니다. 무언가를 다 믿고 의지하며 살아갑니다. 그것이 하나님 안에서의 믿음이냐, 아니면 하나님 밖에서의 믿음이냐 일뿐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보다 눈에 보이는 것들을 믿고 살아갑니다. 사람들은 물질을 의지합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미모를 의지합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권세를 의지합니다. 사람들은 출신 배경과 학연과 지연을 의지합니다. 이 명박 대통령은 지연과 학연을 의지하여 고서영이니 강부자라는 별명이 붙었습니다. 사람들은 부모님을 의지합니다. 사람들은 남편을 의지합니다. 사람들은 아내를 의지합니다. 사람들은 강대국을 의지합니다. 전시작전통제권환수를 반대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이 세상의 보이는 것은 결코 믿음(의지)의 대상이 되지 못합니다. 160년 된 리먼 브러더스도 파산되었습니다. 권불 십년이란 말이 있습니다. 그리고 50대가 되면 미가 평준화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가 이런 것들을 의지하면 결국에는 의지하는 그것으로 말미암아 낭패를 당하게 됩니다.

그런데 여러분 중에 하나님을 안 믿는 사람이 있어요? 다 믿는 줄로 알겠습니다. 베드로도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그렇다면 왜 예수님은 하나님을 믿으라고 말씀하셨을까요? 이는 우리가 하나님을 믿되 바르게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바른 믿음을 갖도록 도우셨습니다. 우리가 믿어야 할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첫째는 우리는 창조주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은 6일 동안 천지만물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최후로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따라 사람을 짓되 남녀를 지으셨습니다. 우리는 사도신경에서 제일 처음에 무엇을 고백합니까?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는다”고 고백합니다.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십니다. 창조주 하나님은 능치 못하심이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되 창조주 하나님,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둘째는 우리는 구원의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인간이 타락해서 그릇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불의하고, 거룩치 못하고, 악했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지 않고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 그 아들 예수님을 보내셔서 십자가에 못 박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을 믿는 자마다 구원을 약속하셨습니다. 독생자를 아끼지 않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 구원의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상에서 피를 흘리심으로 우리의 죄를 용서하신 용서의 하나님입니다. 우리와 원수 된 담을 허시고 성령을 주시는 참 좋으신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저주에서 축복의 통로로 삼으신 축복의 하나님입니다. 예수님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와 흑암의 권세에서 해방시켜서 찬란한 하나님 나라의 영광의 소망을 주신 하나님입니다.
셋째는 우리는 소망의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우리 인간의 힘으로 도저히 풀 수 없는 한계상황에 직면할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우리에게 절망을 극복하고 소망을 갖도록 하십니다.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다.”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내게 부르짖으면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하나님은 소망의 하나님입니다. 우리는 소망의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절망의 때에도 무궁무진한 창조의 에너지를 공급받아 일어설 수 있습니다. 우리는 캄캄한 밤에 광명한 빛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 말하는 것이 이룰 줄 믿고 마음에 의심치 아니하면”이란 단서를 붙이셨습니다. 23절을 보겠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지우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룰 줄 믿고 마음에 의심치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예수님은 마음에 의심하지 않고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지우라 하면 그대로 되리라고 하셨습니다.

‘의심’의 원어는 혼돈된 결정, 또는 사리 분별이 엇갈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의심은 사람의 마음을 혼돈하도록 하기 때문에 자신이 구하는 기도에 대해 확신을 가질 수 없습니다. 확신이 없으니 계속적으로 구할 수 없습니다. 구할 수 없으니 기도를 응답받을 수 없습니다. 기도의 응답을 받지 못하니 하나님을 불신하게 됩니다. 이로 볼 때 의심은 하나님을 믿지 못하게 하는 마귀의 공격 중 가장 무서운 공격 무기입니다.

마귀가 첫 사람 아담을 타락시킨 것도 의심입니다. 창세기 3장 1b절을 보면 사탄은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고 의심을 심었습니다. 사탄은 “각종 나무의 실과를 임의로 먹어도 좋다”는 무한한 자유를 빼 버렸습니다. 결국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도록 금지한 것처럼 부정적인 측면에서 질문했습니다. 또한 ‘참으로’라는 부사를 넣어 질문함으로써 여자의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의심을 심었습니다. ‘참으로’란 말은 긍정문에 사용하면 확신을 심습니다.

반면에 부정문과 의문문에 사용하면 회의와 의심을 갖도록 만듭니다. 사탄은 여자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절대적으로 믿지 말고 한번쯤 생각해 보라고 의심을 심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절대적으로 믿고 순종할 때 생명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의심할 성질의 것이 아니라 믿고 신뢰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탄은 절대적으로 믿지 말고 한번 돌려서 상대적으로 생각하도록 하여 하나님의 말씀과 사랑에 의심을 심었습니다. 이처럼 의심은 죄의 동기가 됩니다. 의심은 하나님과의 관계, 인간관계 등을 무너뜨리는 원흉입니다. 왜 사람들이 이혼합니까? 신뢰가 깨지고 의심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영국의 철학자 David Hume은 “의심은 심장을 갉아먹는 생쥐와 같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언제나 하나님께 대한 절대적인 믿음을 바탕으로 이루어집니다. 성경은 말씀하시기를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환경을 통한 감정이 우리에게 의심을 심고 우리를 좌절시킵니다. 이 의심은 아침에도, 점심때도, 저녁때도, 밤에도 현 상황을 바라보도록 하여 마음을 흔들어 놓습니다. “올라가지 못할 나무는 아예 쳐다보지 않는 것이 낳지. 내가 무슨 그런 꿈을 이룰 수 있어. 나는 이미 떡 먹고 시루 엎었어. 너는 절대 안 돼. 네 처지와 환경을 보아라. 송충이는 솔잎만 먹고 산다. 될 성 싶은 나무는 떡잎부터 안다. 다른 사람은 돼도 너는 절대로 안 돼! I am not OK. You are OK.” 환경은 우리를 좌절시킵니다.

그리고 이성이라는 합리적인 생각으로 우리를 의심하도록 합니다. “이건 분명히 비이성적이고 비합리적이다. 생각해 봐. 수판 놓아봐. 그리고 경험을 비추어 봐. 이 일은 반드시 안 돼. 생각해봐. 절대로 안 돼!” 환경을 통한 감정과 이성이 손을 잡아 나를 집요하게 안 된다고 의심을 심습니다.

신앙생활은 의심과 싸우는 것입니다. 의심은 하나님께 대해 절대적인 믿음을 따르지 못하도록 합니다. 의심은 앞으로 전진을 못하게 만듭니다. 의심은 면역 기능을 상실하게 만듭니다. 의심은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초라하게 만듭니다. 창조주 하나님 앞에서 이것 될까? 의심하고 불신하는 것은 하나님을 초라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독생자를 아끼지 않고 죄인들을 위해 내어주신 사랑을 불신하는 것은 하나님을 초라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부자 앞에서 돈 걱정하는 것은 부자를 초라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목사 앞에서 설교 누가 하냐며 걱정하는 것은 목사를 초라하게 만드는 것이다.

저와 여러분이 살아가면서 하나님을 얼마나 초라하게 만드는지 모릅니다. 하나님을 이제 더 이상 초라하게 만들지 맙시다. 마태복음 8장 8절을 보면 예수님을 감동시킨 사건이 나옵니다. 병든 하인을 둔 백부장이 예수님께 치유를 요청하였습니다. 예수님이 가서 고쳐주겠다고 하자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말씀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습니다.” 그는 의심 없이 그냥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예수님은 깜짝 놀라면서 이스라엘 중에 이만한 믿음을 본 적이 없다고 극구 칭찬하셨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의심 없이 전폭적으로 믿을 때 하나님을 감동시킬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전폭적으로 하나님을 믿음으로 하나님을 감동시킬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둘째, 받은 줄로 믿으라(24).

우리가 어떻게 의심을 이길 수 있을까요? 첫째로 우리는 기도로 의심을 이길 수 있습니다. 24절을 보겠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 되리라.”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는 것은 아직 받지 못한 상태에 있다고 해도 받은 줄로 믿으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기도에는 즉각적인 응답의 기도와 미래적인 응답의 기도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시간과 공산을 초월하고 계시기 때문에 기도가 언제 응답되어도 하나님 편에서는 동일한 응답이 됩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그리하면 그대로 되리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믿음의 기도는 반드시 응답을 받는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기도했으면 이미 받은 것으로 간주해야 합니다. 기도했으면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기도하고 난후 나는 이미 받았다. 기도하고 난후 나의 질병은 이미 나았다. 기도하고 난후 이미 응답받았다. 기도하고 난후 나는 이미 승리했다.” 기도했으면 이미 받은 줄로 믿고 주님께 감사하고 찬송해야 합니다. 여러분, 기도하였으면 이미 받은 줄로 믿고 하나님께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약속을 신실하게 지키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입니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교통입니다. 기도는 감각적인 사회 분위기, 이성적이고 이지적인 분위기를 떠나서 하나님과 대화하게 만들어 줍니다. 천국의 아름다운 대기를 호흡하도록 합니다. 우리가 엎드려 기도하면 따뜻한 하나님의 품안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우리가 엎드려 기도하면 절망과 불안과 두려움이 사라집니다. 기도는 영성을 풍성하게 합니다. 영성은 좌뇌가 아니라 우뇌의 영역입니다. 우뇌는 감성의 영역입니다. 기도하면 감성영역이 풍성해집니다. 감성영역이 풍성해지니 행복지수가 높아집니다. 행복지수가 높아지니 마음이 너그러워지고 여유로워집니다. 쉽게 분내거나 쉽게 신경질 부리거나 쉽게 좌절하지 않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쉬지 말고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가 쉬지 않고 기도하면 성령님께서 도와주십니다. 성령님께서 우리 연약함을 도와주십니다. 우리가 그 때 의심을 이길 수 있습니다.

둘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의심을 이길 수 있습니다. 말씀은 환경과 대결하여 이기게 합니다. 말씀은 이성과 대결하여 이기게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푹 잠기어야 합니다. 그 때 하나님의 말씀에서 나오는 믿음의 자양분이 의심을 극복하고 믿음의 승리를 할 수 있습니다.

말씀 이외에 우리를 의심에서 건져줄 자가 없습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습니다. 말씀을 멀리하고 감각적인, 흥분적인 신앙은 아주 위험합니다. 이런 신앙은 우리의 믿음을 순식간에 사라지도록 합니다. 첫째도 말씀, 둘째도 말씀, 셋째도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굳게 붙들 때 의심을 이길 수 있습니다.
셋째, 용서하라(25).

기도할 때 가장 걸리는 문제는 죄 문제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계속해서 제자들에게 용서하는 믿음에 대해 가르쳐 주셨습니다. 25절을 보겠습니다. “서서 기도할 때에 아무에게나 혐의가 있거든 용서하라. 그리하여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도 너희 허물을 사하여 주시리라.” 우리의 죄를 고백하고 하나님께로부터 사죄의 은혜를 받아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을 때에 그때 비로소 기도의 응답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로부터 사죄의 은혜를 덧입으려면 반드시 형제와 걸리는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그런데 형제를 마음으로 용서한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이는 태산을 바다에 던지는 것만큼이나 어렵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다른 사람의 허물과 실수를 용서하지 않을 때 기도가 막히고 하나님의 용서의 사랑을 깨달아 알 수가 없습니다.

무엇보다 하나님께로부터 자신의 죄도 용서받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형제를 용서할 때 하나님 아버지께로부터 용서의 사랑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 때에 우리의 심령에 사죄의 은혜가 넘치게 됩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형제의 죄를 용서할 수 있습니까? 이는 우리의 의지나 본성적으로는 불가능합니다. 근본적으로 예수님의 십자가의 용서의 사랑을 받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상에서 자기를 십자가에 못 박는 자들을 위해서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23:34a).”

하나님은 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죄를 구속하신 용서의 주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의심치 않고 기도하면 다 응답하여 주십니다. 우리가 이 하나님을 믿습니다. 이제 제가 기도한 것을 이미 받은 것으로 기정사실로 여기겠습니다. 이미 받은 것으로 믿고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양을 돌리겠습니다. 말씀과 기도로 성령님의 인도를 받아 의심이 들어오지 않도록 기도의 끈을 놓지 않겠습니다. 주님 도와주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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