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제 41 강 (12:28-34)

하나님은 유일한 주시라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첫째는 이것이니 이스라엘아 들으라. 주 곧 우리 하나님은 유일한 주시라(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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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 ‘무기여 잘 있거라’, ‘노인과 바다’ 등으로 달 알려진 미국의 소설가로, 미국의 자존심을 세운 작가이기도 합니다. 그는 생애 열두 권의 책을 저술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네 번이나 결혼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61세의 나이에 심한 우울증과 고독함으로 몸부림치다가 결국 사냥총으로 자신의 머리를 쏘아 자살하고 말았습니다. 그는 마지막 유언을 이렇게 남겨 놓았습니다. “나는 필라멘트가 끊어져 전류가 흐르지 않는 텅 빈 전구처럼 고독하다.” 그는 그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많은 글로 감동을 주었지만 자신의 텅 빈 마음만은 채우지 못했습니다. 노벨상이라는 명예로도, 물질로도, 결혼으로도, 이 세상의 그 무엇으로도 그의 텅 빈 마음을 채울 수 없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도전하여 원하던 것을 얻습니다. 그러나 거기에 만족하지 못해 공허와 인생의 허무를 느낍니다. 사람들은 답답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술을 마십니다. 극기야 마약에 손을 댑니다. 왜 이러한 현상들이 나타납니까? 이는 자기가 찾고 얻고자 했던 것이 자신의 이기적인 욕망을 채우기 위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욕망이란 마치 목이 마르다고 바닷물을 퍼마시는 것과 같습니다. 바닷물은 마시면 마실수록 갈증이 더해 갑니다. 자신을 욕망은 결국 좌절과 실패로 끝납니다. 인간에게는 세상의 것으로 채울 수 없는 절대 공간이 있습니다. 이 절대 공간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할 때 채워집니다.

우리가 살고 있다는 것은 무엇인가를 사랑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무엇을 사랑하느냐에 따라 삶의 방향이 달라집니다. 여러분은 현재 무엇을 사랑하고 있습니까? 자녀입니까? 돈입니까? 명예입니까? 권세입니까? 자신입니까? 하나님입니까? 여러분이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어느 정도 사랑하고 있습니까? 본문을 통해 하나님을 사랑하되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사랑하기를 기도합니다. 그리고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기를 기도합니다.

첫째,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라(28-30)

한 서기관이 예수님께 와서 묻습니다. 모든 계명 중에 첫째가 무엇입니까? 서기관의 직책은 성경을 양피에 쓰는 것입니다. 그들은 성경을 열심히 암송하고 연구했습니다. 특히 계명에 대한 연구이었습니다. 당시에는 10계명과 613개의 규례가 있었습니다. 서기관들은 이런 많은 법 조항 중에 가장 중요한 첫째가 무엇일까 연구에 연구를 거듭했습니다. 사람이 가장 중요한 것을 안다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사람이 첫째를 놓치게 되면 창세기 1장 2절과 같이 혼돈과 공허와 흑암이 임하고, 눈에 보이는 것을 따라 사는 상대적인 삶을 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대개가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모르고 살아갑니다. 그래서 그날그날 기분에 따라 살아갑니다. 그리고 중요하지 않은 것에 목숨을 겁니다. 이런 삶은 한 번 밖에 없는 귀한 삶을 허비하는 것입니다.

인생에 있어서 첫 째 되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유일한 주님이심을 믿는 것입니다. 29절을 읽겠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첫째는 이것이니 이스라엘아 들으라. 주 곧 우리 하나님은 유일한 주시라.” 이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40년간의 광야 훈련을 마치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기 직전에 주신 말씀입니다. 들으라는 히브리어로 쉐마입니다. 쉐마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반드시 지켜야 할 신앙의 근본, 신조를 말합니다.

하나님이 가나안에 들어가기 직전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이는 가나안 땅에는 각종 신들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가나안의 대표적인 신들은 농경신인 바알, 그리고 여신인 아세라 목상과 풍요의 여신 아스다롯 등이었습니다. 그 곳 사람들은 이런 신들을 섬기면서도 잘 먹고 잘 살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종교의식은 화려한 축제 행사로 먹고 마시고 뛰고 춤추고 놀고 즐기는 글자 그대로 육신의 축제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신은 눈으로 볼 수 있고 손으로 만들고 만질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섬기는 하나님은 눈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종교의식은 화려하지도 않았습니다. 뒤풀이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가나안 신들의 미혹을 쉽게 받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도 신앙생활하면서 가장 힘든 것은 우리보다 믿지 않는 사람들이 더 잘 먹고 잘 산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승진도 빠르고 학점도 좋다는 것입니다. 이 때 우리는 갈등하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눈에 보이지도 않습니다. 예배도 세상의 축제에 비해 무미건조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유일하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곧 역사와 인격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신 창조주이십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살아계셔서 온 인류를 통치하는 통치자이십니다. 하나님은 유일하신 구원자이십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어린양의 피로 구원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습니다.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는 축복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유일하신 창조주요, 구주가 되셔서 우리의 경배와 찬양과 영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이십니다. 이는 천지가 변한다 할지라도 변개할 수 없는 진리입니다.

사람들은 사람(애인)이 행복하게 하고, 물질이 사람을 행복하게 하고, 체제가 사람을 사람답게 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만이 사람을 행복하게 하고 아름답게 합니다. 아프리카가 못사는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유일하신 하나님을 믿지 않고 각종 우상을 섬기기 때문입니다. 북한이 황폐해진 원인 또한 김일성과 주체사상을 신봉하기 때문입니다. 북한은 1972년 평양 만수대언덕에 김일성 동상을 세웠는데 높이 20m입니다. 사람들은 김일성 동상에 절합니다. 이는 마치 바벨론의 느부가넷살 금신상과 똑같습니다. 하나님이 이런 도시를 축복하시겠습니까? 북한은 1970년대 초에 시작한 우리나라의 새마을운동보다 이미 1958년부터 천리마 운동이니 새벽별 보기 운동을 벌였습니다. 그런데 왜 그들이 가난할까요? 이는 다른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북한은 우상에 절하고 우리나라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교회를 세우고 새벽마다 주님께 울부짖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성도들의 울부짖는 기도의 응답하시고 복을 주신 줄로 믿습니다.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우상을 숭배하면 망합니다. 반면에 하나님을 믿고 사는 나라는 반드시 축복을 받습니다. 미국은 로마의 천년 왕국도 따라갈 수 없을 만큼 인류 역사상 축복을 많이 받은 나라입니다. 왜 그토록 축복을 받았을까요? 이는 그들의 선조들이 유일하신 하나님을 믿고 살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선조들의 꿈은 마태복음 5장 14절을 기초로 미국에 하나님 왕국을 세우는 것이었습니다. 한 나라 뿐만 아니라 개인이나 가정도 마찬가지입니다. “주 곧 하나님은 유일하신 주시니라(The Lord is one. The Lord is our God.).” 하나님은 유일한 주이십니다. 예수님은 유일하신 구주이십니다.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행4:12).” 하나님만이 유일하신 주님으로 믿고 사시기 바랍니다.

유일하신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자세가 어떠해야 합니까? 모든 것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30절을 읽겠습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 예수님은 하나님을 사랑하되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다하라’는 말씀이 네 번이나 반복합니다. ‘다하라’는 것은 아낌없이, 남김없이, 자기 생명을 불태워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일부분이 아닌 전폭적으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80%도, 90%도 아닌 100%로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마음은 둘이 아니라 하나입니다. 물질에 마음을 두면 물질을 사랑하는 것이고, 하나님께 마음을 두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입니다. 마음을 다른 것에 뺏기지 않도록 힘써야 됩니다. 그래서 성경은 ‘자기 마음을 지키는 자는 열의 성을 빼앗는 것보다 낫다’고 했습니다(잠언16:32). 그리고 사랑이란 목숨을 바치는 것입니다. 사랑은 뜻을 다하는 것입니다. 사랑은 자발적으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사랑은 힘을 다하여 사랑하는 것입니다. 사랑은 열정적으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Love is blind.’ 사랑은 맹목적이란 말이 있습니다. 사랑하게 되면 모든 것을 아낌없이 드릴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이토록 사랑해야 할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이는 하나님이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요한일서 4장 10절에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우리는 십자가에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희생적인 사랑을 찾을 수 있습니다.

에베소서 3장 18절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 그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하나님의 사랑은 그 넓이가 무한한 용서로 나타났습니다. 그 높이와 깊이가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확증되었습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었습니다.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었습니다.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는 나음을 입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머리에 가시관을 쓰셨고, 손과 발에 못 박히셨습니다. 옆구리는 창으로 찔리셨습니다.

그리스도의 등을 상하게 했던 모든 채찍은 하나님의 가슴을 멍들게 했습니다. 그리스도의 이마를 찔렀던 가시들은 하나님의 심장을 관통시켰습니다. 그리스도의 손발에 박은 세 개의 쇠못들은 하나님의 가슴에 못질을 했습니다. 그리스도를 신음케 했던 슬픔은 하나님의 가슴을 찢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결국 나를 죄에서 구원해 주시기 위해서였습니다. 나를 하나님의 자녀 되게 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나를 지옥에서 건져내어 하나님의 나라에 앉히시기 위한 희생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가 이 자리에 나오도록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가장 먼저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하나님을 어떻게 사랑할 수 있습니까? 말씀을 지키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5장 3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 하나님의 계명은 무거운 것이 아닙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가 부모님을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부모의 부탁이나 명령을 결코 어기지 않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진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그 계명들을 지키려고 할 것입니다. 다윗은 말씀을 사랑했습니다. 그는 사슴이 시냇물을 찾는 것처럼 말씀을 사랑했습니다(시42:1). 그는 눈이 쇠하기까지 말씀을 사랑했습니다. 그는 새벽잠을 깨워 말씀을 읽었습니다.

하나님은 축복의 때에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축복을 받으면 축복에 마음을 뺏겨 하나님을 잊기 쉽습니다. 사람이 망하는 것은 축복을 받지 못해서가 아니라 축복을 감당하지 못해서입니다. 아브라함이 축복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축복의 때에 축복을 잘 감당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주셨습니다. 이삭은 그에게 전부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고 하셨습니다. 그 때 그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이삭을 번제로 드렸습니다. 그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했습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천하 만민이 복의 통로, 근원으로 축복하셨습니다(창22:16-18).

한국은 많은 축복을 받았습니다. 어떤 사람은 단군 이래 최고의 축복이라고 합니다. 한국 역사를 보면 눈물겨운 사연들이 많이 있습니다. 임진왜란 때에는 하도 배가 고파서 왜병이 토해낸 것을 서로 먹으려고 아비규환을 이루었다는 슬픈 기록이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상황은 어떠합니까? 먹을 것이 풍성합니다. 보릿고개가 어디 있습니까? 이 축복의 때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 축복을 주신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점점 하나님을 찾지 않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을 찾지 않는 기갈이라고 이미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찾지 않으니 젊은이나 늙은이나 할 것 없이 쾌락과 물질의 노예로 전락하고 있습니다. 젊은이들은 내일을 기대하지 않고 오늘 놀지 못하면 늙어서 놀 수 없다며 젊음을 흥청망청 허비하며 우선 먹고 입고 바르고 들고 칠하고 쓰자 식입니다. 우리는 축복의 때에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우리는 축복의 때에 십자가를 사랑하고, 희생을 사랑해야 합니다. 우리가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시기를 기도합니다.

둘째,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31-34)

31절을 보겠습니다.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해야 합니다. “둘째는 이것이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라. 이에서 더 큰 계명이 없느니라.” 이웃은 경쟁의 대상이 아닙니다. 이웃은 사랑의 대상입니다. 이 사랑은 하나님 사랑을 기초로 한 사랑입니다. 그러면 이웃을 어느 정도 사랑해야 됩니까?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이웃은 내 몸은 아닙니다. 그런데 주님은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다시 말해 내가 나를 사랑하는 것만큼만 이웃을 사랑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닫힌 사회, closed society입니다. 그러다보니 이웃과 이웃에 대해, 나와 너 사이에 무관심합니다. 이런 시대에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우리는 내 몸을 대단히 아낍니다. 우리는 꼭 세 끼 밥을 먹습니다. 우리는 자기 건강에 지대한 관심을 갖습니다. 우리는 몸을 무척 아낍니다. 그래서 추우면 두툼한 파카를 입습니다. 우리는 몸을 열심히 가꿉니다. 그래서 크림을 바르고 옷을 멋있게 차려 입습니다. 이처럼 다른 사람도 내 몸처럼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자기 건강과 행복에 관심을 갖는 것처럼 다른 사람의 건강과 행복에도 관심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사랑은 목숨까지 바쳐야 합니다. 그러나 이웃사랑은 내가 나를 이끼고 사랑하는 것만큼만 하면 됩니다. 팔이 안으로 굽는 것처럼 모든 사람은 자기를 먼저 사랑합니다. 그러나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 생각해 보는 것도 중요합니다. 내가 싫어하는 것은 남도 싫어합니다. 나를 미워하고, 욕하고, 빼앗고, 무시하고, 괴롭히고, 속이는 일을 좋아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당연히 다른 사람에게도 이런 일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자기에게는 괴로운 일인 줄 알면서도 남에게 서슴지 않고 그 일을 행합니다. 또 사람들은 칭찬받고, 높임 받고, 위로받고, 사랑받는 것을 다 좋아합니다. 이렇게 대접받기를 원하는 마음은 남녀노소, 빈부귀천의 차이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이웃 사랑은 내가 받고자 하는 대로 다른 사람을 칭찬하고, 높여주고, 사랑하고, 위로해주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7장 12절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그리고 여기에 덧붙여 하신 말씀이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고 했습니다.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은 내가 바라는 것을 이웃에게 그대로 베푸는 데 있습니다. 행복은 나눔에 있습니다. 독일 사람이 쓴 아름다운 기부라는 책이 있습니다. 아주 좋은 책입니다. 여러분 한번 꼭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나눔을 실천하는 사람이 행복지수가 월등히 높습니다. 헌혈하는 사람이 헌혈하지 않는 사람보다 행복지수, 건강지수가 높습니다. 어머니의 젖은 계속 아기에게 빨려주어야 계속 나옵니다. 물리지 않으면 젖이 나오지 않습니다.

이스라엘 땅에는 두 개의 작은 바다가 있는데 하나는 갈릴리 바다요 하나는 사해입니다. 갈릴리 바다는 항상 물이 흘러 들어오는 것만큼 흘러나가기 때문에 항상 깨끗합니다. 온갖 종류의 물고기가 가득 살아있습니다. 그런데 사해는 물이 계속 흘러 들어가기만 하고 흘러나오는 곳은 단 한 곳도 없습니다. 그래서 물이 굉장히 짜서 소금바다가 되었습니다. 어떤 생물도 살지 못하는 죽은 바다, 곧 사해가 되었습니다. 나눔은 너도 잘되고 나도 잘되며 모두가 잘되는 축복된 삶입니다. 그러므로 이웃에게 주고 또 줄 수 있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사랑은 허다한 허물을 덮습니다. 사랑은 율법의 완성입니다(롬13:10). 그러면 우리의 이웃은 누구입니까? 이웃은 도움이 필요한 자들입니다. 이웃은 영적으로 기갈 된 자들입니다. 이웃은 바로 가까이 있는 친구요 선배요 후배들입니다. 이웃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들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해야 합니다.

1980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인도의 테레사 수녀에게 영국의 방송 기자들이 물었습니다. “당신은 죽어가는 사람들과 일평생을 살았습니다. 그 죽어가는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자신이 버려져 있지 않다는 사실을 자각하도록 해 주는 것입니다. 진실하게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도록 해주는 것이 저들에게는 필요합니다. 단 몇 시간만이라도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도록 해 주는 것, 이것이 가장 절실하게 필요한 일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 것은 선하고 착해서 사랑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쓸모가 있어서 사랑하시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들 속에 하나님의 형상이 있기 때문에 사랑하셨습니다. 우리의 모습 속에는 하나님의 모습이 있습니다. 우리의 형상 속에 하나님의 형상이 있습니다. 형상은 닮음이란 뜻이 있고, 영어 성경에는 이미지란 단어로 표현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다른 피조물과 달리 하나님의 자녀로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생명은 천하보다 귀합니다. 그래서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이러한 사랑을 받은 우리 역시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형상을 소유한 이웃 또한 사랑해야 합니다. 우리가 일평생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여러분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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