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제51강 부활하신예수님

조회 수 2535 추천 수 0 2012.07.12 07:38:48
마가복음 제 51 강(16:1-20, 요절 16:6)
그가 살아나셨고 여기 계시지 아니하니라
요절 16장 6b절 “그가 살아나셨고, 여기 계시지 아니하니라 보라 그를 두었던 곳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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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과 기독교와의 차이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성당에는 십자가에 예수님의 몸이 있고, 예수님의 동상도 세워져 있습니다. 반면에 예배당에는 십자가에 예수님의 몸이 없고, 예수님의 동상도 없습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십자가에 예수님의 시신이 있다는 것은 예수님의 죽으심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당에 예수님의 성체가 계신다는 것은 성당 외에는 예수님이 안 계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성당에만 계신 것이 아니라 무소부재하십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죽으심을 강조하다보니 가톨릭의 분위기가 어둡고 무거우며 미사도 무겁습니다.

그러나 예배당에는 십자가에 예수님의 몸이 없습니다. 우리 교회의 십자가를 보세요. 십자가 위에 아무 것도 없습니다. 예배당에 예수님의 조각도 없습니다. 여러분은 왜 십자가 위에 아무 것도 없는지 생각해보신 적 있습니까? 왜 십자가 위에 예수님의 시신이 없을까요? 예수님이 부활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죽음 권세를 이기고 부활하셨습니다. 고린도전서 15장 55절에서 바울은 이렇게 찬양합니다.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예수님은 우리의 최대 원수인 죽음 권세를 깨셨습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신 것으로 끝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부활 승천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부활 승천하셔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계십니다. 예수님은 때가 이를 때 심판주로 다시 오십니다.

인간의 근본 문제는 죄와 죽음입니다. 우리가 열심히 살다가 죽으면 모든 것이 헛된 것이라고 생각할 때 얼마나 허무합니까? 우리가 자녀를 위하여 최선을 다하여 섬기다가 내가 죽으면 헛된 것인데 이런 생각이 들면 맥이 풀리고 살맛이 사라집니다. 그러다보니 우울증이 생깁니다.
지금 세계적으로 가장 심각한 질병은 우울증과 자살입니다. 20세기는 불안한 시대였다면 21세기는 우울증의 시대로 보고 있습니다. 유럽을 비롯하여 미국이 그러합니다. 미국의 조사 보고에 의하면 미국의 10대 청소년들이 1/3이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으며 이전 세대보다 훨씬 더 심각한 우울증을 겪고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다니엘 골만의 보고에 의하면 단순한 슬픔이 아니라 무기력, 낙담, 자기 연민이 압도적으로 많은 우울증에 시달린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 2007년 통계청 보고를 보면 인구 10만 명 당 18.7명으로 OECD 국가 중 3번째입니다. 여성 자살률은 10만 명 중 11.1명으로 OECD 국가 중 첫 번째입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셨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는 우리에게 더 이상 허무나 우울한 생각이 있을 수 없습니다. 자살할 이유가 없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는 우리에게는 더 이상 어두움과 두려움이 있을 수 없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는 우리에게는 얼굴에 수심이 있을 수 없습니다. 따라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는 우리는 얼굴이 늘 밝고 맑고 환할 수밖에 없고, 옷도 밝고 환한 옷을 입을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 말씀은 예수님의 생애 중에 가장 절정이라고 할 수 있는 부활에 관한 말씀과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주신 세계선교 지상명령에 관한 말씀입니다. “그가 살아나셨고, 여기 계시지 아니하니라. 보라, 그를 두었던 곳이니라(6b).” “또 가라사대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15).” 부활신앙을 소유하여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는 귀한 삶을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첫째, 부활하신 예수님(1-13)

1,2절을 보겠습니다. “안식일이 지나매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살로메가 가서 예수께 바르기 위하여 향품을 사다 두었다가 안식 후 첫 날, 매우 일찍이 해 돋은 때에 그 무덤으로 가며” ‘안식 후 첫날’ 이날은 오늘날 주일 아침입니다. 이 날은 예수님께서 죽음을 파하시고 부활하신 부활의 새 아침입니다. 이 날은 절망과 슬픔과 고통을 파한 승리의 날입니다. 이날은 부활찬송을 부르며 부활 춤을 추어야 할 축제의 날입니다. 그런데도 여인들은 슬픔과 절망과 어둠에 싸여 무덤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왜 그들은 이처럼 슬퍼하고 있습니까? 사람은 누구나 가까운 사람이 죽으면 슬퍼집니다. 아무리 미운 사람도 죽었다는 소식을 들으면 슬퍼집니다. 그런데 존경하고 사랑하는 예수님께서 33세의 나이로 십자가에 죽으셨으니 얼마나 슬펐겠습니까? 이 때 사람들은 삶의 의미와 의욕을 상실하게 됩니다. ‘하나님도 너무하시지’ 하며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그러나 여인들은 예수님께 마지막 사랑을 쏟고자 무덤으로 가고 있습니다.

그들은 가면서 무덤의 입구를 막은 큰 돌을 어떻게 굴릴 수 있을까 염려했습니다(3). 그러나 여인들이 무덤에 도착했을 때 이미 그 큰 돌이 굴려져 있었습니다(4). 이를 본 여인들은 누가 시체를 훔쳐간 것이 아닌가, 혹시 제자들이 시체를 옮긴 것은 아닌가, 아니면 예수님께서 잠시 실신했다가 깨어나신 것이 아닌가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무덤은 로마 군인들이 지키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막15장 44절을 볼 때 예수님은 완전히 죽으셨습니다. 그런데 무덤은 비어 있었습니다. 그들은 무덤에 들어가 살펴보았습니다.

이 때 여인들은 깜짝 놀라 서로 끌어안으며 소리 질렀습니다. 5절을 보겠습니다. “무덤에 들어가서 흰옷을 입은 한 청년이 우편에 앉은 것을 보고 놀라매(5)” 이 청년은 천사였습니다. 천사는 흰옷을 입고 있습니다. 흰 옷은 부활과 순결을 뜻합니다. 천사는 떨고 있는 여인들에게 놀라운 소식을 전하여 주었습니다. 6절을 보겠습니다. “그가 살“놀라지 말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나사렛 예수를 찾는구나. 그가 살아 나셨고 여기 계시지 아니하니라(He has risen! He is not here(6).” 살아나셨고, 여기 계시지 아니하니라.”

이 소식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부활의 선포입니다. 이는 인류 역사상 가장 놀랍고도 충격적인 소식입니다. 이 소식은 A.D.와 B.C.가 나누어지는 역사의 분수령입니다. 이 소식은 죽음의 그늘에 앉아 있는 인생들에게 임한 한 줄기의 빛입니다. 이 소식은 모든 슬픔과 절망과 허무를 파하는 승리의 찬가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해골에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예수님을 찾고 있습니다. 그들은 무덤에 갇혀 있는 예수님의 시신을 찾고 있습니다. 그들의 신앙은 과거의 추억뿐이었습니다. 그 때 그들의 내면은 연민, 슬픔, 절망과 어두움이 가득했습니다.

우리 중에도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십자가에 죽으신 나사렛 예수님을 찾는 슬픈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런 분들은 늘 우수에 잠겨 있습니다. 한계 앞에 쉽게 절망하고 좌절합니다. 심히도 운명적이고 부정적입니다. 체질을 내세우며 자신을 자학합니다. 슬픔과 원망으로 가득합니다. 우울증에 시달립니다. 낙담합니다. 절망에 시달립니다. 불면증에 시달립니다. 장래를 하나님께 맡기지 못하여 늘 근심하고 초조합니다. 우리는 죽은 예수님, 빈 무덤을 찾는 믿음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찾고 만나야 합니다. “놀라지 말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나사렛 예수를 찾는구나. 그가 살아 나셨고 여기 계시지 아니하니라(He has risen! He is not here(6).” He is not here! 예수님은 사망권세를 파하시고 부활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망의 고통을 풀어 살리셨으니, 이는 그가 사망에게 매여 있을 수 없었음이라(행2:24).” 이 세상의 죽은 사람들은 모두 무덤이 있습니다.

공자묘는 곡부에 있고, 러시아의 레닌의 묘는 북은 광장 지하에 있어 많은 사람들이 참배합니다. 김일성의 시신은 금수산 기념 궁전에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무덤은 비어 있습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확실한 객관적인 증거입니다. 부활의 또 다른 증거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약속하신 말씀대로 부활하셨습니다(7). 성경에는 예수님의 고난과 부활이 셀 수 없이 많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고 지금까지 이루어졌으며, 앞으로도 이루어질 것입니다. 또 다른 부활의 증거는 부활의 증인들을 들 수 있습니다. 그러면 부활하신 예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첫째로 부활하신 예수님은 우리의 주요,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이 정녕 알찌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하셨느니라(행2:36).”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가운데서 부활하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롬1:4).”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려 처절하게 죽으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처절한 고통 속에서도 나를 용서하여 주셨습니다. 그런데 만일 예수님이 죽음으로 끝났다면 예수님의 십자가의 용서의 사랑은 가장 허무하고 슬픈 것으로 끝나버립니다. 구원도 미완성으로 끝나게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사망권세를 파하시고 부활하심으로 구원 역사가 완성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우리의 주요, 그리스도로 확증하셨습니다. ‘주’란 하나님으로 통치자를 말합니다. 과거에는 죄와 죽음이 우리를 다스렸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부활하신 예수님이 우리를 다스리십니다. 또한 예수님은 죽으시고 부활하사 그리스도가 되셨습니다. ‘그리스도’란 구원자란 뜻입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사 죄와 사망 가운데서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승리케 하십니다(고전 15:57). 예수님은 우리의 슬픔과 절망을 산산이 조각내셨습니다. 예수님은 염려와 회의를 산산이 조각내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최대 원수인 죽음의 머리통을 깨셨습니다. 이제 슬픔과 절망과 죽음이 더 이상 우리를 지배할 수 없습니다.

둘째로 예수님은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고전15:20).”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 모든 인류는 죄의 삯으로 죽어야만 했습니다. 우리도 마땅히 죄로 말미암아 죽어야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부활하사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습니다. 이제 우리도 예수님처럼 빛나고 찬란하고 영광스럽게 부활할 수 있습니다. 우리도 강하고 거룩하고 신령한 몸으로 부활할 수 있습니다.

셋째로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에게 하나님 나라의 산 소망을 갖게 하셨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이 큰 은혜를 이렇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벧전1:3)” 하나님은 그 크신 긍휼로 예수님을 다시 살리시고 우리에게 산 소망을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신앙의 기초요, 교회의 기초요, 최후의 승리의 약속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살아나실 것과 갈릴리에서 만나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7-13). 예수님은 이 말씀대로 부활하셔서 갈릴리로 가고자 하십니다. 그러나 여인들은 너무 놀라 무덤에서 도망하여 아무에게도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8). 예수님은 부활하사 첫 번째로 전에 일곱 귀신 들렸던 막달라 마리아에게 보이셨습니다(9). 막달라 마리아는 울고만 있는 열 한 제자들에게 부활의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한 결 같이 예수님을 믿지 않고 계속 울기만 했습니다. 그들은 장래를 생각하니 앞이 캄캄했습니다. 장래를 생각하니 앞날이 암울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그들의 꿈도 산산이 부서졌습니다. 그들은 땅을 치며 울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죽음을 파하시고 승리하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절망과 슬픔의 예수님, 무덤에 갇혀있는 예수님을 믿지 않습니다. 우리는 더 이상 슬퍼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더 이상 한계 상황 앞에 드러눕지 않습니다. 이제 더 이상 운명 앞에 울지 않습니다. 우리는 더 이상 우울증에 시달리지 않습니다. 우리는 더 이상 죽음에 시달리지 않습니다.

둘째, 세계선교 사명을 주신 예수님(14-20)

막달라 마리아는 제자들에게 부활의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믿지 않았습니다. 또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들이 증거 했지만 믿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그 후에 열 한 제자가 음식 먹을 때 예수께서 저희에게 나타나사(14a).” 그들은 당연히 금식하며 예수님의 부활을 기도로 준비하여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울면서 열심히 먹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울다가 먹고, 먹고 또 울었습니다.
그들이 열심히 먹고 있을 바로 그 때 예수님께서 찾아오셨습니다. 예수님은 먹기만 하고 있는 그들을 볼 때 인간적으로 섭섭하여 책망하실 수 있습니다. ‘아니 지금 밥을 먹고 있을 때냐? 아니면 우리 옛 말에 개도 먹을 때는 건드리지 않는다는 말처럼 먹은 후에 책망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밥을 먹는 제자들을 책망하셨습니다. “저희 믿음 없는 것과 마음이 완악한 것을 꾸짖으시니(14b).” 예수님은 그들의 불신과 완악한 마음을 책망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불신과 완악한 마음을 책망하시고 믿음을 심으시고 부활신앙을 심으셨습니다.

마가복음 4장 30-40절을 보면 예수님은 광풍 앞에 두려워하는 제자들을 책망하셨습니다. “어찌하여 믿음이 없느냐?” 예수님의 책망의 기준은 허물이나 실수가 아니라 불신입니다. 예수님은 밥 먹는 제자들까지 책망하심으로 그들에게 부활의 믿음을 심으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증인들의 증거를 믿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마음이 완악하여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증인들의 증거를 믿지 않는 것을 가장 슬퍼하십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책망을 듣고 믿음 없음을 회개하고 부활을 영접했습니다.

예수님이 부활의 믿음을 심으신 후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명령하셨습니다. 16절을 보겠습니다. “또 가라사대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이 명령은 부활신앙을 소유한 사람들이 반드시 지켜야 할 사명입니다. 제자들이 부활신앙만 소유하고 사명이 없다면 어떤 일이 생길 수 있습니까? 부활의 믿음으로 고기를 잡아 거부가 될 수 있습니다. 부활의 믿음으로 부동산에 투자하여 졸부도 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사명이 없어 인생을 함부로 살아 망가질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열심히 공부하여 정상에 오릅니다. 사람들이 열심히 노력하여 돈을 모읍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정상에 오른 후, 삶의 방향이 없어 추락하는 경우를 많이 봅니다. 사람에게 가장 중요하고 중요한 것은 정상에 오르는 것이 아니라 왜 내가 그 정상에 오르고자 하는, 그 목적이 중요합니다. 무엇을 위한 열심인가, 무엇을 위한 정상인가, 무엇을 위한, 무엇을 위한, 목적과 사명, 이것이 분명하지 않으면 100이면 100 모두 추락하고 타락합니다. 따라서 무엇이 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무엇을 위한 삶인가가 더 중한 것입니다.

21세기는 우울한 시대라고 이미 이야기했습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삶의 방향, 목적, 사명이 없어서입니다. 1968년 미국 대학 신입생들에게 인생의 목표가 무엇인가를 설문조사했습니다. 그 때 41%는 돈을 많이 버는 것이고, 83%는 의미 있는 삶을 발전시키는 것이라고 답했습니다. 그런데 그 후 30년 후 1997년에 똑같은 설문지로 신입생들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그 결과 75%가 부자가 되는 것이고, 41%가 의미 있는 삶의 철학을 발전시키고 싶다고 했습니다. 이처럼 돈을 많이 버는 것이 목적일 때 우울한 시대가 되는 것이고, 그러다 보니 정서적 파탄으로 불행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명령하십니다.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여기서 ‘너희’란 부활신앙을 영접한 사람들을 말합니다. 그들의 활동 무대는 온 천하입니다. 온 천하는 아프리카, 유럽, 아시아, 남미, 북미, 오스트레일리아 등 5대양 6대주입니다. 활동 대상은 만민입니다. 만민은 흑인종, 백인종, 황인종 등 온 백성을 포함합니다. 백인종도 많습니다. 슬러브 족속, 앵글로 색슨족 등을 말합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는 복음을 들고 먼저 가야 합니다(Go into the world.). 이 복음은 십자가의 복음, 부활의 복음입니다. 이 명령을 지상명령, 영어로 Great Commission입니다. 이 명령을 지킨 민족이나 개인은 모두 아름다운 삶을 살았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궁극적인 삶의 목적이 주님의 명령을 지키는 것에 두십시오. 돈을 버는 갓도 열심히 공부하는 것 모든 것이 주님의 사명을 감당하는데 두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제자들은 이 사명을 영접하고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했습니다. 그 때 그들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갈릴리 어부들이 세계적인 목자가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의 회복만을 꿈꾸던 제자들이 세계를 가슴에 품고 기도하는 위대한 목자가 되었습니다. 회의주의자였던 도마는 인도에 가서 복음을 전파했습니다. 계집종 앞에서 예수님을 부인하던 베드로는 로마에 가서 복음을 전파했습니다. 쫀쫀하던 그들이 생각과 스케일이 넓고 원대해졌습니다. 사명을 영접했을 때 영적인 장군들이 되었습니다. 1 세기의 어두움을 밝히는 스승이 되었습니다. 역사의 주역이 되었습니다. 인간의 위대함은 부나 권세나 타이틀에 있지 않습니다. 사명이 인생을 아름답게 합니다. 사명이 복되게 합니다. 사명이 생명을 약동하게 합니다. 사명이 위대한 역사의 주역들로 만듭니다.

16절을 보겠습니다.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자는 정죄를 받으리라.” 복음을 믿고 세례를 받는 자는 구원이요 믿지 않는 자는 정죄를 받습니다. 세례란 공적 신앙 고백입니다. 복음을 믿고 안 믿는 것은 생사에 관한 중요한 문제입니다. 복음은 병든 삶을 건강한 삶으로 변화시킵니다.

17,18절을 보면 사명을 감당하는 자들에게 성령께서 우리를 모든 해로부터 보호하여 주십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부활의 증인으로 세우시고 승천하사 하나님 우편에 앉으셨습니다(19). 예수님은 다시 영광의 왕으로 오십니다. 이는 믿는 자들의 산 소망이 되십니다.

예수님은 죽음을 파하시고 부활하셨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가서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사명은 우리를 값지게 하고, 위대케 합니다. 사명은 우리의 가슴을 박동 치게 합니다. 사명은 생명력이 넘치고 비전 있는 삶을 살게 합니다. 사명은 우리를 역사의 주역이 되게 합니다. 사명은 우리를 세계인으로 만듭니다. 선교 명령에 순종하는 자는 그를 축복하여 주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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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학마을교회

                                    Tiananmen Square protests, China Democracy, 天安門 天安门 法輪功 李洪志 Free Tibet 劉曉波, 热比娅·卡德尔, 熱比婭·卡德爾