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515
사도행전 제 30 강(말씀, 12:1-24, 12:5)
투옥된 베드로를 위해 기도하는 교회
“이에 베드로는 옥에 갇혔고 교회는 그를 위하여 간절히 하나님께 빌더라(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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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뮬러(George Muller)는 교회 역사상 가장 위대한 기도의 사람들 중 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1835년 할레대학을 졸업하고 영국의 선교사로 건너가 브리스톨 애슐리 다운에 고아원을 세워 2천명이 넘는 고아들을 기도로 돌봤습니다. 그는 15만 명의 고아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확인시켜 주었고 오늘날까지 ‘고아의 아버지’로 불리고 있습니다. 그는 특별한 기도의 응답을 50,000번 이상이나 받았다고 하였습니다. 그는 기도하지 않는 것은 곧 생명줄을 놓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기도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기도를 시작한다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기도의 응답을 받을 때까지 믿음을 가지고 꾸준히 기도해야 한다. 더 나아가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해 주시리라는 것을 믿어야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우리는 축복을 받을 때까지 기도를 계속하지 못하고 축복을 기대하지도 않는다.” 기도하는 사람은 환난과 핍박과, 어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요동하지 않습니다. 실패 속에서도 좌절하거나 실망하지 않습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항상 그 내면에 여유가 있습니다. 기도하는 가정에는 하나님의 축복과 은혜가 임합니다. 기도하는 교회는 부흥하고 성장합니다.
초대 교회는 강력한 성령의 역사로 로마 군인 백부장인 고넬료가 복음을 영접하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당대 최고의 지성인들인 헬라인들이 복음을 영접하고 그들의 신실한 삶으로 크리스천이라는 최초의 별명이 붙여지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이런 시점에 마귀 또한 가만히 있지 않았습니다. 본문을 보면 12 사도 중 한명인 사도 야고보가 죽임을 당하고, 사도 베드로가 옥에 갇히는 시련이 닥쳤습니다. 이것은 교회 역사상 최대의 시련입니다. 이런 때에 교회는 무엇을 하였습니까? 교회는 그를 위하여 간절히 하나님께 빌었습니다. 교회가 합심하여 기도했을 때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주님의 도우심으로 베드로가 출옥했습니다. 본문을 통해 기도의 중요성을 배울 수 있습니다.
첫째, 베드로의 투옥(1-4, 6)
사탄은 헤롯왕을 통해서 교회를 박해함으로 교회를 무너뜨리려 했습니다. 1절을 보겠습니다. “그 때에 헤롯왕이 손을 들어 교회 중 몇 사람을 해하여 하려” 성경에 헤롯이란 이름이 여러 번 등장하는데, 여기에서 헤롯왕은 헤롯 아그립바 1세로, 복음서에 나오는 헤롯 대왕의 손자입니다. 그는 당시 로마로부터 임명되어 유대 지역을 통치하고 있었습니다. 아그립바 2세는 사도행전 26장 28절에 나오는데, 그는 사도 바울을 재판하는 사람으로 나타납니다. 그는 먼저, 12 사도 중에서도 핵심 인물 중 하나인 사도 요한의 형제 야고보를 칼로 쳐 죽였습니다(2). 예수님은 베드로, 야고보와 요한을 특별히 사랑하셨습니다. 변화산에 올라가실 때에도 세 제자를 데리고 가셨습니다. 이런 사도가 헤롯의 칼에 죽임을 당했습니다.
마태복음 20장 22절을 보면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올라가실 때 요한과 야고보가 자기 어머니를 통해 예수님께 청탁을 했습니다.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예수님이 왕이 되시면 좌우에 요한과 야고보를 앉혀달라고 했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너희가 내가 마시는 잔을 마실 수 있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이에 야고보는 마시겠다고 대답했습니다. 주님이 말씀하신 잔은 십자가입니다. 야고보는 포도주 잔인 줄로 알고 대답했는지 모르지만 아무튼 야고보는 제일 먼저 순교의 잔을 마셨습니다.
헤롯은 유대인들이 야고보가 죽임을 당하자 ‘기뻐하는 것을 보고’ 베드로까지 죽이고자 옥에 집어넣었습니다. 때는 무교절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이 야고보가 순교당하는 것을 보고 왜 그렇게 기뻐했을까요? 그것은 이미 기독교가 커져서 유대교에 대한 도전 세력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기독교가 살아 역사하는 한 자기들의 종교는 죽은 종교가 되고, 예수님의 제자들이 능력을 행하고 있는 한, 그들은 무능한 자로 낙인찍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찰라 헤롯이 대신 기독교를 말살시키고자 하니 얼마나 기뻤겠습니까?
무교절은 유월절을 가리킵니다. 유월절은 원래 애굽에 노예 되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해방된 절기입니다. 그들은 유월절에 사람을 체포해 놓고 유월절이 지나면 백성들을 즐겁게 하기 위하여 베드로를 처형하고자 했습니다. 그들은 베드로가 탈출할까봐 네 명이 한 조를 이룬 군사를 네 그룹으로 나누어 물샐틈없이 경계근무를 했습니다. 설혹 베드로가 경계병을 해하고 도망치려고 해도 할 수 없도록 옥에는 여러 쇠문과 자물쇠가 잠겨 져 있었습니다. 베드로가 탈옥한다는 것은 불가능했습니다(6). 그들은 이제 들불처럼 퍼져나가는 복음이 끝난 줄로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성령의 강력한 역사를 막을 수 없었습니다.
둘째, 기도하는 교회(5, 12)
이 때 교회는 손 놓고 가만히 있지 않았습니다. 교회는 강력한 기도로 대처하였습니다.5, 12절을 보겠습니다. “이에 베드로는 옥에 갇혔고 교회는 그를 위하여 간절히 하나님께 빌더라.” “깨닫고 마가라 하는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에 가니 여러 사람이 모여 기도하더라.” 위기의 순간에 교회는 뒷짐을 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교회는 행동에 나셨습니다. 그것은 베드로를 석방하라고 일인 시위를 한 것도 아니고, 베드로 석방 서명 운동을 한 것도 아니고, 신문 지상에 성명서를 발표한 것도 아닙니다. 교회는 하나님께 간절히 빌었습니다. 그들은 단순히 기도한 것이 아니라, earnestly, 간절히, 열심히, 계속해서 기도했습니다. 베드로가 출옥할 때까지 기도했습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은 주권적으로 역사하지만 성도들의 합심 기도를 통해 역사하십니다. 사도행전에 보면 이것이 너무도 분명합니다. 사도행전 1장 14절을 보면 오순절 날 성령 강림에 앞서 제자들은 모여 ‘마음을 같이하여’ 기도에 힘썼습니다. 예수님이 승천한 상황에서 어떤 인간적인 방도를 찾아보지 않고 오로지 그들은 기도에 힘썼습니다. 어떻게 보면 이것은 상당히 무모한 행동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교회가 성장하려면 기도만 해서 되나? 다른 것도 열심히 해야지.” 물론 그 말도 틀린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기도에 전념하지 않고 교회 일을 하는 것은 자신의 바벨탑을 쌓는 것입니다. 우리는 매사에 기도하는 마음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기도해야 합니다.
사도행전에 나오는 사도들과 성도들은 매사를 기도로 시작했습니다. 사도들은 가룟 유다를 대신할 사도를 뽑을 때도 먼저 기도했습니다(1:24). 사도들의 전도를 받고 예수님을 믿은 사람들 또한 기도에 전무했습니다(2:42). 베드로와 요한은 하루에 기도 시간을 정해 놓고 기도했습니다(3:1). 성령 충만을 체험한 것도 기도를 통해서입니다(4:31, 8:15). 사도들이 집사를 임명할 때도 기도했습니다(6:1). 안디옥 교회에서 바울과 바나바를 선교사로 파송할 때도 기도했습니다(13:3). 베드로가 고넬료라는 이탈리아 대 백부장에게도 구원이 임했다는 것을 깨달은 것도 기도할 때였습니다((10:9, 11:5). 바울과 실라가 감옥에서 기도하고 찬송할 때 옥문이 열렸습니다(16:25). 베드로가 옥에 갇혔을 때에 성도들은 마가 요한의 어머니의 집에 모여 여전히 기도하였습니다(12). 베드로가 옥에 갇혔으니 형식적으로 기도한 것이 아니라 베드로가 옥에서 나오기까지 기도했습니다. 초대 교회 성도들은 모든 것을 기도로 시작하고, 기도로 마쳤습니다.
기도란 나의 무력함과 하나님의 능력을 믿는 태도를 하나님께 보여드리는 것입니다. 기도는 내 삶의 주인이 내가 아니라 바로 하나님이라는 것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으면서 기도보다 자신의 능력과 지혜를 의지하고 돈을 의지하는 사람은 가장 어리석은 신자입니다. 사람들이 밥 사주고, 커피 사주고, 잘 대해 주면 예수님을 믿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물론 그렇게 하면 예수님을 믿는 동기는 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렇게 한다고 믿지 않습니다. 요즘 사람들은 선거 때 막걸리는 얻어먹고 찍는 것은 딴 사람을 찍고, 연애는 멋진 남자와 하고, 결혼은 실속 있는 남자와 한다고 합니다. 제가 개척 초기에 열심히 학생들을 먹였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남는 것은 빈 된장 고추장 항아리였습니다. 된장 고추장이 사람을 움직이지 못합니다.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께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친히 능력을 나타내십니다.
우리가 매사 기도하되 마음을 같이 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사도행전 1장 14절을 보면 한 마음, 한 뜻으로, 한 기도 제목을 갖고 기도했습니다. 우리는 각기 성격이 다릅니다. 우리는 각기 의견이 다릅니다. 우리는 각기 생각이 다릅니다. 우리는 각기 신앙경험이 다릅니다. 이를 하나로 묶는 것이 바로 기도입니다. 한 마음, 한 뜻이 되어 기도하면 거기에 하나님의 강력한 역사가 있습니다. 각자 흩어져 각기 기도하면 백지장도 찢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몇 사람이라도 합심하여 한 기도제목을 갖고 기도하면 강한 철판도 뚫을 수 있습니다. 이게 합심 기도의 위력입니다.
우리교회가 1982년도부터 인하대와 인천 시내 대학의 복음화를 위해 만났다 하면 둘씩 합심하여 한 맺힌 기도를 했습니다. 그리고 1990년대에는 동구권 선교를 위해 한 과부의 한 맺힌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 때 인하대가 개척되었고 교대와 인천대가 개척되었습니다. 그리고 헝가리와 루마니아 폴란드가 개척되고 우크라이나가 개척되고 수교도 채 되지 않은 러시아가 개척되었습니다. 그리고 1995년부터 10년 내에 미국에 12가정 파송을 위해 기도했을 때 한 사가랴 선교사가 문을 열게 하시고, 그 후속으로 12가정이 파송되는 놀라운 역사를 이루셨습니다.
2002년 CMI와 대학마을교회가 새롭게 설립되는 과정에서 우리는 prayer topic, 기도제목을 잊어버렸습니다. 다시 말해 흔들리지 않는 여호와의 깃발이 없었습니다. 깃발은 매우 중요합니다. 영국과 프랑스는 인접한 나라로서 전쟁이 많았습니다. 특히 1337년부터 1453년까지 무려 116년 동안이나 전쟁을 계속했습니다. 이를 100년 전쟁이라고 부릅니다. 이 100년 전쟁에서 잔다크라는 16세의 소녀가 등장합니다. 잔다크는 어린 소녀의 몸으로 병사들의 사기를 올려 주는 연설을 하고, 자신이 프랑스 깃발을 들고 앞장서서 병사들에게 국가의식을 심었습니다. 프랑스 병사들은 잔다크의 손에 들린 그 깃발을 보고, 싸우고자 하는 의욕이 불타올랐고, 그 깃발을 보고 반드시 승리한다는 자신감으로 무장하여 결국 위기의 프랑스를 구했습니다.
“태극기 휘날리며”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이 영화에 한국군에게 공포의 대상으로 등장하는 북한 부대가 나옵니다. 일명 ‘깃발부대’입니다. 붉은 깃발이 출렁이는 것을 보면, 남한의 군인들은 겁을 먹었습니다. 반대로 북한의 깃발부대는 승승장구합니다. 깃발은 사람들의 마음을 들뜨게 하고, 하고자 하는 의욕을 불러일으킵니다. ‘노사분쟁’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가장 먼저 붉은 깃발, 흰색 깃발이 펄럭입니다. 대학 출정식에도 붉은 깃발, 흰 깃발 등이 등장합니다. 그들은 깃발을 앞세우며 전의를 불태우고 단결을 도모합니다. 깃발은 사람들의 마음에 비장한 각오를 심어주고, 하고자 하는 의욕을 심어주고, 목숨까지 아끼지 않고 사력을 다해 싸우고자 하는 의욕을 심어주기 때문에, 싸움에 임하는 사람들은 모두 깃발을 앞장세우고 싸웁니다.
청년 대학생들을 위한 진리의 깃발 또한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여호와 닛시, 여호와의 깃발, 승리의 깃발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시편 144편 12절에 “우리 아들들은 어리다가 장성한 나무 같으며 우리 딸들은 궁전의 식양대로 아름답게 다듬은 모퉁이 돌과 같으며”라고 했습니다. 청소년을 보면 그 나라의 장래를 볼 수 있습니다. 우리의 자녀들이 어려서부터 곧고 견고하게 자라는 나무처럼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도덕적으로 건전하게 성장하고, 몸과 마음을 지식과 신앙으로 연마하게 되면 그 나라의 장래는 밝습니다. 로마제국이 음탕과 방탕으로 멸망해가고 있을 때, 믿음을 지켜가던 소수의 크리스천의 자녀들이 순결하고 거룩하게 성장해 가고 있었습니다. 결국 믿음의 후손들이 집권했을 때 로마를 기독교국으로 선포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청년 대학생들은 불안한 미래로 인해 가슴이 답답해합니다. 비전이 없어 방황합니다. 우리나라가 자살률이 제일 높습니다. 부정 지수가 73%나 됩니다. 그러다보니 우울증 환자와 불면증환자가 날로 증가하고 있습니다. 10대는 자살률이 세계 2위, 20대는 자살률 1위입니다. 왜 꿈과 소망이 넘쳐야 할 그들이 자살해야 합니까? 지금 그들에게 정말로 필요한 것은 돈이나 즐거운 게임이나 취직이 아닙니다. 그것은 흔들리지 않는 진리의 깃발, 여호와의 닛시, 승리의 깃발, 진리의 깃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깃발입니다. 우리는 복음의 깃발을 높이 올려 그들이 이 깃발을 향하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먼저 그들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깃발 아래 하나가 되어 그들이 교회로 돌아오도록 절박한 기도를 해야 합니다.
저는 지난 주 이상한 꿈을 꾸었습니다. 우리 교회 모든 성도들이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 때 큰 소리로 기도했는데 그 기도 제목은 “인하대를 살려 주십시오. 캠퍼스를 살려 주십시오.” 이었습니다. 제가 얼마나 외쳤는지 제 아내가 왜 그러느냐고 깨웠습니다. 저는 지금 인하대를 살려 주십시오. 한국 캠퍼스를 살려달라고 기도했다고 했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이런 꿈을 꾼 적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실로 지금은 캠퍼스의 젊은이들을 위해 기도할 때입니다. 우리는 이를 위해 다 같이 큰 목소리로 “캠퍼스를 살려 주십시오. 인하대를 살려 주시고, 한국 캠퍼스를 살려 주십시오” 기도합시다. 우리가 기도하면 70년대 일어났던 복음의 불길이 인하대를 시작하여 전 캠퍼스, 더 나아가 전 세계로 퍼져나갈 것입니다. 하나님은 기도를 들어주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할 때 반드시 들어주십니다.
셋째, 베드로의 출옥(7-24)
하나님은 성도들의 기도를 응답하시고 하나님께서 직접 개입하셔서 옥에서 끌어내셨습니다. 7절을 보면 주의 천사가 나타나 빛이 어두운 감옥을 비추었습니다. 천사는 자고 있는 베드로를 ‘쳐서’ 깨우고 그를 얽매고 있던 쇠사슬을 벗겨냈습니다. 잠에서 깨어난 베드로에게 천사는 띠를 띠고 신을 신고 겉옷을 입고 이곳에서 빨리 벗어날 준비를 하라고 지시했습니다. 베드로는 영문도 모르고 천사의 지시대로 그곳을 빠져나와 천사를 따라갔습니다(8,9).
천사와 베드로는 감옥을 지키고 있는 여러 파수들을 지나 감옥을 빠져나와 성으로 통하는 쇠로된 문에 이르렀습니다. 그 쇠문이 저절로 열리고 이들은 한 거리를 같이 걸어갔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그 천사가 베드로를 떠나갔습니다(10). 베드로는 자신이 꿈을 꾸고 있는지 아니면 자신이 구출된 것이 실제인지 완전히 깨닫지 못했습니다. 천사가 떠난 후에야 베드로는 비로소 베드로는 제 정신으로 돌아왔습니다. 이 사건은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천사를 보내어 베드로를 죽이고자 하는 헤롯과 백성들의 손에서 구출하여 주셨습니다.
베드로는 자신이 구출된 것이 주님의 역사라는 것을 깨닫고 마가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에 갔습니다. 베드로가 집에 도착하여 대문을 두드리니 로데라는 여종이 사람을 영접하러 나왔습니다. 그녀는 목소리가 베드로임을 알고 베드로가 대문 앞에 서 있다고 알렸습니다(13,14). 사람들은 이 여종의 말을 믿지 않았습니다. 로데는 자기가 들은 음성이 분명히 베드로의 것이었기 때문에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베드로가 대문을 두드려도 아무 응답이 없자 대문을 더 두드렸습니다. 사람들이 할 수 없이 대문을 여니 베드로가 서 있는 것이 아닙니까? 사람들은 베드로의 출옥을 위해 기도하고 있었지만 실제로 베드로를 보자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16). 이에 베드로는 사람들을 안심시킨 후에 자기가 어떻게 구출되었는가를 전했습니다. 베드로는 자기를 구출한 분이 주님이심을 전하고, 이를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와 다른 제자들에게 전하라고 하고 떠났습니다(17). 그는 출옥 간증 집회를 열지 않고 조용히 다른 곳으로 가서 복음을 전하기 위해 떠납니다. 이게 겸손입니다.
베드로의 구출은 교회의 기도를 들으신 주님의 직접적인 개입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베드로를 체포하여 유월절에 이벤트를 준비하고 있던 헤롯에게 베드로가 한 밤 중에 갑자기 없어진 사건은 매우 난감한 일이었습니다. 베드로를 지키고 있던 군인들 또한 적지 않은 소동이 일어났습니다(18). 이 사실을 안 헤롯은 군사들에게 도시를 샅샅이 뒤져 베드로를 찾아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이미 다른 곳으로 떠났기 때문에 이 모든 노력은 허사로 끝났습니다. 헤롯은 베드로를 지키지 못한 군사들을 심문하였지만 그들은 하나님이 직접 개입한 초자연적 사건에 대해 자신들이 설명할 도리가 없었습니다. 헤롯은 이들을 죽이라고 명하고 예루살렘을 떠나 가이사랴로 내려갔습니다(19). 야고보를 죽이고 베드로를 죽이려고 투옥하는 등 교회를 핍박한 헤롯은 결국 하나님의 벌을 받아 죽었습니다(20-23).
헤롯에 의해서 핍박을 받은 교회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성도들의 기도를 들으신 주님의 직접적인 역사로 교회는 든든히 서갔습니다. 24절에 보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흥왕하여 더하더라.” 교회가 더 발전했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흥왕하여 더하더라고 했습니다. 베드로나 바울이나 바나바가 높아진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높임을 받았습니다.
성경은 교회 건물이 커진다든지, 사람이 많이 모였다든지, 이런 것에 관심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이 높임을 받아 말씀에 복종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 가에 있습니다. 초대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기로 결단한 사람들이 더욱 더 많아져 갔습니다. 말씀대로 사는 그리스도인, 예수님의 형상을 닮은 그리스도인들이 더 많아져 갔습니다. 이게 부흥이고 성장입니다. 우리 교회가 하나님 말씀에 복종하는 이런 그리스도인들이 날로 많아지기를 기도합니다.
기도가 힘입니다. 기도가 승리입니다. 기도가 위기를 극복합니다. 지금 우리의 당면 문제는 젊은이들이 교회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우리는 뜨거운 가슴, 뜨거운 심장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주님, 우리에게 뜨거운 심장을 주셔서 젊은이들을 위해 기도하게 하소서. 주님, 저희의 기도를 들으셔서 젊은이들이 교회로 돌아오도록 하소서. 아멘.
투옥된 베드로를 위해 기도하는 교회
“이에 베드로는 옥에 갇혔고 교회는 그를 위하여 간절히 하나님께 빌더라(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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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뮬러(George Muller)는 교회 역사상 가장 위대한 기도의 사람들 중 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1835년 할레대학을 졸업하고 영국의 선교사로 건너가 브리스톨 애슐리 다운에 고아원을 세워 2천명이 넘는 고아들을 기도로 돌봤습니다. 그는 15만 명의 고아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확인시켜 주었고 오늘날까지 ‘고아의 아버지’로 불리고 있습니다. 그는 특별한 기도의 응답을 50,000번 이상이나 받았다고 하였습니다. 그는 기도하지 않는 것은 곧 생명줄을 놓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기도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기도를 시작한다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기도의 응답을 받을 때까지 믿음을 가지고 꾸준히 기도해야 한다. 더 나아가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해 주시리라는 것을 믿어야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우리는 축복을 받을 때까지 기도를 계속하지 못하고 축복을 기대하지도 않는다.” 기도하는 사람은 환난과 핍박과, 어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요동하지 않습니다. 실패 속에서도 좌절하거나 실망하지 않습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항상 그 내면에 여유가 있습니다. 기도하는 가정에는 하나님의 축복과 은혜가 임합니다. 기도하는 교회는 부흥하고 성장합니다.
초대 교회는 강력한 성령의 역사로 로마 군인 백부장인 고넬료가 복음을 영접하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당대 최고의 지성인들인 헬라인들이 복음을 영접하고 그들의 신실한 삶으로 크리스천이라는 최초의 별명이 붙여지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이런 시점에 마귀 또한 가만히 있지 않았습니다. 본문을 보면 12 사도 중 한명인 사도 야고보가 죽임을 당하고, 사도 베드로가 옥에 갇히는 시련이 닥쳤습니다. 이것은 교회 역사상 최대의 시련입니다. 이런 때에 교회는 무엇을 하였습니까? 교회는 그를 위하여 간절히 하나님께 빌었습니다. 교회가 합심하여 기도했을 때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주님의 도우심으로 베드로가 출옥했습니다. 본문을 통해 기도의 중요성을 배울 수 있습니다.
첫째, 베드로의 투옥(1-4, 6)
사탄은 헤롯왕을 통해서 교회를 박해함으로 교회를 무너뜨리려 했습니다. 1절을 보겠습니다. “그 때에 헤롯왕이 손을 들어 교회 중 몇 사람을 해하여 하려” 성경에 헤롯이란 이름이 여러 번 등장하는데, 여기에서 헤롯왕은 헤롯 아그립바 1세로, 복음서에 나오는 헤롯 대왕의 손자입니다. 그는 당시 로마로부터 임명되어 유대 지역을 통치하고 있었습니다. 아그립바 2세는 사도행전 26장 28절에 나오는데, 그는 사도 바울을 재판하는 사람으로 나타납니다. 그는 먼저, 12 사도 중에서도 핵심 인물 중 하나인 사도 요한의 형제 야고보를 칼로 쳐 죽였습니다(2). 예수님은 베드로, 야고보와 요한을 특별히 사랑하셨습니다. 변화산에 올라가실 때에도 세 제자를 데리고 가셨습니다. 이런 사도가 헤롯의 칼에 죽임을 당했습니다.
마태복음 20장 22절을 보면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올라가실 때 요한과 야고보가 자기 어머니를 통해 예수님께 청탁을 했습니다.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예수님이 왕이 되시면 좌우에 요한과 야고보를 앉혀달라고 했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너희가 내가 마시는 잔을 마실 수 있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이에 야고보는 마시겠다고 대답했습니다. 주님이 말씀하신 잔은 십자가입니다. 야고보는 포도주 잔인 줄로 알고 대답했는지 모르지만 아무튼 야고보는 제일 먼저 순교의 잔을 마셨습니다.
헤롯은 유대인들이 야고보가 죽임을 당하자 ‘기뻐하는 것을 보고’ 베드로까지 죽이고자 옥에 집어넣었습니다. 때는 무교절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이 야고보가 순교당하는 것을 보고 왜 그렇게 기뻐했을까요? 그것은 이미 기독교가 커져서 유대교에 대한 도전 세력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기독교가 살아 역사하는 한 자기들의 종교는 죽은 종교가 되고, 예수님의 제자들이 능력을 행하고 있는 한, 그들은 무능한 자로 낙인찍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찰라 헤롯이 대신 기독교를 말살시키고자 하니 얼마나 기뻤겠습니까?
무교절은 유월절을 가리킵니다. 유월절은 원래 애굽에 노예 되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해방된 절기입니다. 그들은 유월절에 사람을 체포해 놓고 유월절이 지나면 백성들을 즐겁게 하기 위하여 베드로를 처형하고자 했습니다. 그들은 베드로가 탈출할까봐 네 명이 한 조를 이룬 군사를 네 그룹으로 나누어 물샐틈없이 경계근무를 했습니다. 설혹 베드로가 경계병을 해하고 도망치려고 해도 할 수 없도록 옥에는 여러 쇠문과 자물쇠가 잠겨 져 있었습니다. 베드로가 탈옥한다는 것은 불가능했습니다(6). 그들은 이제 들불처럼 퍼져나가는 복음이 끝난 줄로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성령의 강력한 역사를 막을 수 없었습니다.
둘째, 기도하는 교회(5, 12)
이 때 교회는 손 놓고 가만히 있지 않았습니다. 교회는 강력한 기도로 대처하였습니다.5, 12절을 보겠습니다. “이에 베드로는 옥에 갇혔고 교회는 그를 위하여 간절히 하나님께 빌더라.” “깨닫고 마가라 하는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에 가니 여러 사람이 모여 기도하더라.” 위기의 순간에 교회는 뒷짐을 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교회는 행동에 나셨습니다. 그것은 베드로를 석방하라고 일인 시위를 한 것도 아니고, 베드로 석방 서명 운동을 한 것도 아니고, 신문 지상에 성명서를 발표한 것도 아닙니다. 교회는 하나님께 간절히 빌었습니다. 그들은 단순히 기도한 것이 아니라, earnestly, 간절히, 열심히, 계속해서 기도했습니다. 베드로가 출옥할 때까지 기도했습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은 주권적으로 역사하지만 성도들의 합심 기도를 통해 역사하십니다. 사도행전에 보면 이것이 너무도 분명합니다. 사도행전 1장 14절을 보면 오순절 날 성령 강림에 앞서 제자들은 모여 ‘마음을 같이하여’ 기도에 힘썼습니다. 예수님이 승천한 상황에서 어떤 인간적인 방도를 찾아보지 않고 오로지 그들은 기도에 힘썼습니다. 어떻게 보면 이것은 상당히 무모한 행동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교회가 성장하려면 기도만 해서 되나? 다른 것도 열심히 해야지.” 물론 그 말도 틀린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기도에 전념하지 않고 교회 일을 하는 것은 자신의 바벨탑을 쌓는 것입니다. 우리는 매사에 기도하는 마음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기도해야 합니다.
사도행전에 나오는 사도들과 성도들은 매사를 기도로 시작했습니다. 사도들은 가룟 유다를 대신할 사도를 뽑을 때도 먼저 기도했습니다(1:24). 사도들의 전도를 받고 예수님을 믿은 사람들 또한 기도에 전무했습니다(2:42). 베드로와 요한은 하루에 기도 시간을 정해 놓고 기도했습니다(3:1). 성령 충만을 체험한 것도 기도를 통해서입니다(4:31, 8:15). 사도들이 집사를 임명할 때도 기도했습니다(6:1). 안디옥 교회에서 바울과 바나바를 선교사로 파송할 때도 기도했습니다(13:3). 베드로가 고넬료라는 이탈리아 대 백부장에게도 구원이 임했다는 것을 깨달은 것도 기도할 때였습니다((10:9, 11:5). 바울과 실라가 감옥에서 기도하고 찬송할 때 옥문이 열렸습니다(16:25). 베드로가 옥에 갇혔을 때에 성도들은 마가 요한의 어머니의 집에 모여 여전히 기도하였습니다(12). 베드로가 옥에 갇혔으니 형식적으로 기도한 것이 아니라 베드로가 옥에서 나오기까지 기도했습니다. 초대 교회 성도들은 모든 것을 기도로 시작하고, 기도로 마쳤습니다.
기도란 나의 무력함과 하나님의 능력을 믿는 태도를 하나님께 보여드리는 것입니다. 기도는 내 삶의 주인이 내가 아니라 바로 하나님이라는 것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으면서 기도보다 자신의 능력과 지혜를 의지하고 돈을 의지하는 사람은 가장 어리석은 신자입니다. 사람들이 밥 사주고, 커피 사주고, 잘 대해 주면 예수님을 믿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물론 그렇게 하면 예수님을 믿는 동기는 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렇게 한다고 믿지 않습니다. 요즘 사람들은 선거 때 막걸리는 얻어먹고 찍는 것은 딴 사람을 찍고, 연애는 멋진 남자와 하고, 결혼은 실속 있는 남자와 한다고 합니다. 제가 개척 초기에 열심히 학생들을 먹였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남는 것은 빈 된장 고추장 항아리였습니다. 된장 고추장이 사람을 움직이지 못합니다.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께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친히 능력을 나타내십니다.
우리가 매사 기도하되 마음을 같이 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사도행전 1장 14절을 보면 한 마음, 한 뜻으로, 한 기도 제목을 갖고 기도했습니다. 우리는 각기 성격이 다릅니다. 우리는 각기 의견이 다릅니다. 우리는 각기 생각이 다릅니다. 우리는 각기 신앙경험이 다릅니다. 이를 하나로 묶는 것이 바로 기도입니다. 한 마음, 한 뜻이 되어 기도하면 거기에 하나님의 강력한 역사가 있습니다. 각자 흩어져 각기 기도하면 백지장도 찢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몇 사람이라도 합심하여 한 기도제목을 갖고 기도하면 강한 철판도 뚫을 수 있습니다. 이게 합심 기도의 위력입니다.
우리교회가 1982년도부터 인하대와 인천 시내 대학의 복음화를 위해 만났다 하면 둘씩 합심하여 한 맺힌 기도를 했습니다. 그리고 1990년대에는 동구권 선교를 위해 한 과부의 한 맺힌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 때 인하대가 개척되었고 교대와 인천대가 개척되었습니다. 그리고 헝가리와 루마니아 폴란드가 개척되고 우크라이나가 개척되고 수교도 채 되지 않은 러시아가 개척되었습니다. 그리고 1995년부터 10년 내에 미국에 12가정 파송을 위해 기도했을 때 한 사가랴 선교사가 문을 열게 하시고, 그 후속으로 12가정이 파송되는 놀라운 역사를 이루셨습니다.
2002년 CMI와 대학마을교회가 새롭게 설립되는 과정에서 우리는 prayer topic, 기도제목을 잊어버렸습니다. 다시 말해 흔들리지 않는 여호와의 깃발이 없었습니다. 깃발은 매우 중요합니다. 영국과 프랑스는 인접한 나라로서 전쟁이 많았습니다. 특히 1337년부터 1453년까지 무려 116년 동안이나 전쟁을 계속했습니다. 이를 100년 전쟁이라고 부릅니다. 이 100년 전쟁에서 잔다크라는 16세의 소녀가 등장합니다. 잔다크는 어린 소녀의 몸으로 병사들의 사기를 올려 주는 연설을 하고, 자신이 프랑스 깃발을 들고 앞장서서 병사들에게 국가의식을 심었습니다. 프랑스 병사들은 잔다크의 손에 들린 그 깃발을 보고, 싸우고자 하는 의욕이 불타올랐고, 그 깃발을 보고 반드시 승리한다는 자신감으로 무장하여 결국 위기의 프랑스를 구했습니다.
“태극기 휘날리며”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이 영화에 한국군에게 공포의 대상으로 등장하는 북한 부대가 나옵니다. 일명 ‘깃발부대’입니다. 붉은 깃발이 출렁이는 것을 보면, 남한의 군인들은 겁을 먹었습니다. 반대로 북한의 깃발부대는 승승장구합니다. 깃발은 사람들의 마음을 들뜨게 하고, 하고자 하는 의욕을 불러일으킵니다. ‘노사분쟁’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가장 먼저 붉은 깃발, 흰색 깃발이 펄럭입니다. 대학 출정식에도 붉은 깃발, 흰 깃발 등이 등장합니다. 그들은 깃발을 앞세우며 전의를 불태우고 단결을 도모합니다. 깃발은 사람들의 마음에 비장한 각오를 심어주고, 하고자 하는 의욕을 심어주고, 목숨까지 아끼지 않고 사력을 다해 싸우고자 하는 의욕을 심어주기 때문에, 싸움에 임하는 사람들은 모두 깃발을 앞장세우고 싸웁니다.
청년 대학생들을 위한 진리의 깃발 또한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여호와 닛시, 여호와의 깃발, 승리의 깃발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시편 144편 12절에 “우리 아들들은 어리다가 장성한 나무 같으며 우리 딸들은 궁전의 식양대로 아름답게 다듬은 모퉁이 돌과 같으며”라고 했습니다. 청소년을 보면 그 나라의 장래를 볼 수 있습니다. 우리의 자녀들이 어려서부터 곧고 견고하게 자라는 나무처럼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도덕적으로 건전하게 성장하고, 몸과 마음을 지식과 신앙으로 연마하게 되면 그 나라의 장래는 밝습니다. 로마제국이 음탕과 방탕으로 멸망해가고 있을 때, 믿음을 지켜가던 소수의 크리스천의 자녀들이 순결하고 거룩하게 성장해 가고 있었습니다. 결국 믿음의 후손들이 집권했을 때 로마를 기독교국으로 선포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청년 대학생들은 불안한 미래로 인해 가슴이 답답해합니다. 비전이 없어 방황합니다. 우리나라가 자살률이 제일 높습니다. 부정 지수가 73%나 됩니다. 그러다보니 우울증 환자와 불면증환자가 날로 증가하고 있습니다. 10대는 자살률이 세계 2위, 20대는 자살률 1위입니다. 왜 꿈과 소망이 넘쳐야 할 그들이 자살해야 합니까? 지금 그들에게 정말로 필요한 것은 돈이나 즐거운 게임이나 취직이 아닙니다. 그것은 흔들리지 않는 진리의 깃발, 여호와의 닛시, 승리의 깃발, 진리의 깃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깃발입니다. 우리는 복음의 깃발을 높이 올려 그들이 이 깃발을 향하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먼저 그들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깃발 아래 하나가 되어 그들이 교회로 돌아오도록 절박한 기도를 해야 합니다.
저는 지난 주 이상한 꿈을 꾸었습니다. 우리 교회 모든 성도들이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 때 큰 소리로 기도했는데 그 기도 제목은 “인하대를 살려 주십시오. 캠퍼스를 살려 주십시오.” 이었습니다. 제가 얼마나 외쳤는지 제 아내가 왜 그러느냐고 깨웠습니다. 저는 지금 인하대를 살려 주십시오. 한국 캠퍼스를 살려달라고 기도했다고 했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이런 꿈을 꾼 적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실로 지금은 캠퍼스의 젊은이들을 위해 기도할 때입니다. 우리는 이를 위해 다 같이 큰 목소리로 “캠퍼스를 살려 주십시오. 인하대를 살려 주시고, 한국 캠퍼스를 살려 주십시오” 기도합시다. 우리가 기도하면 70년대 일어났던 복음의 불길이 인하대를 시작하여 전 캠퍼스, 더 나아가 전 세계로 퍼져나갈 것입니다. 하나님은 기도를 들어주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할 때 반드시 들어주십니다.
셋째, 베드로의 출옥(7-24)
하나님은 성도들의 기도를 응답하시고 하나님께서 직접 개입하셔서 옥에서 끌어내셨습니다. 7절을 보면 주의 천사가 나타나 빛이 어두운 감옥을 비추었습니다. 천사는 자고 있는 베드로를 ‘쳐서’ 깨우고 그를 얽매고 있던 쇠사슬을 벗겨냈습니다. 잠에서 깨어난 베드로에게 천사는 띠를 띠고 신을 신고 겉옷을 입고 이곳에서 빨리 벗어날 준비를 하라고 지시했습니다. 베드로는 영문도 모르고 천사의 지시대로 그곳을 빠져나와 천사를 따라갔습니다(8,9).
천사와 베드로는 감옥을 지키고 있는 여러 파수들을 지나 감옥을 빠져나와 성으로 통하는 쇠로된 문에 이르렀습니다. 그 쇠문이 저절로 열리고 이들은 한 거리를 같이 걸어갔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그 천사가 베드로를 떠나갔습니다(10). 베드로는 자신이 꿈을 꾸고 있는지 아니면 자신이 구출된 것이 실제인지 완전히 깨닫지 못했습니다. 천사가 떠난 후에야 베드로는 비로소 베드로는 제 정신으로 돌아왔습니다. 이 사건은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천사를 보내어 베드로를 죽이고자 하는 헤롯과 백성들의 손에서 구출하여 주셨습니다.
베드로는 자신이 구출된 것이 주님의 역사라는 것을 깨닫고 마가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에 갔습니다. 베드로가 집에 도착하여 대문을 두드리니 로데라는 여종이 사람을 영접하러 나왔습니다. 그녀는 목소리가 베드로임을 알고 베드로가 대문 앞에 서 있다고 알렸습니다(13,14). 사람들은 이 여종의 말을 믿지 않았습니다. 로데는 자기가 들은 음성이 분명히 베드로의 것이었기 때문에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베드로가 대문을 두드려도 아무 응답이 없자 대문을 더 두드렸습니다. 사람들이 할 수 없이 대문을 여니 베드로가 서 있는 것이 아닙니까? 사람들은 베드로의 출옥을 위해 기도하고 있었지만 실제로 베드로를 보자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16). 이에 베드로는 사람들을 안심시킨 후에 자기가 어떻게 구출되었는가를 전했습니다. 베드로는 자기를 구출한 분이 주님이심을 전하고, 이를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와 다른 제자들에게 전하라고 하고 떠났습니다(17). 그는 출옥 간증 집회를 열지 않고 조용히 다른 곳으로 가서 복음을 전하기 위해 떠납니다. 이게 겸손입니다.
베드로의 구출은 교회의 기도를 들으신 주님의 직접적인 개입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베드로를 체포하여 유월절에 이벤트를 준비하고 있던 헤롯에게 베드로가 한 밤 중에 갑자기 없어진 사건은 매우 난감한 일이었습니다. 베드로를 지키고 있던 군인들 또한 적지 않은 소동이 일어났습니다(18). 이 사실을 안 헤롯은 군사들에게 도시를 샅샅이 뒤져 베드로를 찾아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이미 다른 곳으로 떠났기 때문에 이 모든 노력은 허사로 끝났습니다. 헤롯은 베드로를 지키지 못한 군사들을 심문하였지만 그들은 하나님이 직접 개입한 초자연적 사건에 대해 자신들이 설명할 도리가 없었습니다. 헤롯은 이들을 죽이라고 명하고 예루살렘을 떠나 가이사랴로 내려갔습니다(19). 야고보를 죽이고 베드로를 죽이려고 투옥하는 등 교회를 핍박한 헤롯은 결국 하나님의 벌을 받아 죽었습니다(20-23).
헤롯에 의해서 핍박을 받은 교회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성도들의 기도를 들으신 주님의 직접적인 역사로 교회는 든든히 서갔습니다. 24절에 보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흥왕하여 더하더라.” 교회가 더 발전했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흥왕하여 더하더라고 했습니다. 베드로나 바울이나 바나바가 높아진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높임을 받았습니다.
성경은 교회 건물이 커진다든지, 사람이 많이 모였다든지, 이런 것에 관심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이 높임을 받아 말씀에 복종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 가에 있습니다. 초대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기로 결단한 사람들이 더욱 더 많아져 갔습니다. 말씀대로 사는 그리스도인, 예수님의 형상을 닮은 그리스도인들이 더 많아져 갔습니다. 이게 부흥이고 성장입니다. 우리 교회가 하나님 말씀에 복종하는 이런 그리스도인들이 날로 많아지기를 기도합니다.
기도가 힘입니다. 기도가 승리입니다. 기도가 위기를 극복합니다. 지금 우리의 당면 문제는 젊은이들이 교회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우리는 뜨거운 가슴, 뜨거운 심장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주님, 우리에게 뜨거운 심장을 주셔서 젊은이들을 위해 기도하게 하소서. 주님, 저희의 기도를 들으셔서 젊은이들이 교회로 돌아오도록 하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