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1강 이사야7장 임마누엘

조회 수 3090 추천 수 0 2012.07.14 06:28:28
2010년 성탄 1 강(이사야서 7:1-17, 요절 7:14)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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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한국은 북한의 침공에 두려워하고 요동하고 낙심하고 있습니다. 특히 미국 교민들이 더 많이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미국에 가 있는 아들딸들과 손자들이 한국에 남아있는 부모님과 할머니 할아버지들에게 빨리 미국에 오시라는 전화가 빗발친다고 합니다. 그리고 부탄가스와 생활필수품을 준비해 놓으시라고 전화한다고 합니다. 그보다도 문제는 지도자들이 우왕좌왕한다는 것입니다. 지도자는 위기에 처했을 때 두려워해서는 안 됩니다. 지도자는 강하고 담대해야 합니다.

우리가 위기의 때 어떻게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우리는 믿음의 눈으로 이 시대를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믿음의 눈으로 보면 그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찾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면 두려움을 이길 수 있습니다. 주님은 두려워 떨고 있는 아하스 왕에게 말씀하십니다.

“두려워 말라! 낙심치 말라!” “보라 처녀가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그런데 무엇이 두렵겠습니까? 우리와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 하나님을 의지할 때 이 세상 어떤 세력도 두렵지 않습니다. 이 시간 우리와 함께 하시겠다는 임마누엘 하나님을 믿고 담대해지기를 기도합니다.

첫째, 두려워 말며 낙심치 말라(1-9).

1절을 보십시오. “웃시야의 손자요 요담의 아들인 유다왕 아하스 왕 때에 아람의 르신 왕과 르말리야의 아들 이스라엘 베가 왕이 올라와서 예루살렘을 쳤으나 능히 이기지 못하니라” 아하스는 유다의 12대 왕으로 20세에 왕위에 올라 20년간 유다를 통치했습니다(B.C.735-715). 그는 이방 사람의 가증한 일을 본받아 자기 아들을 불 가운데로 지나가게 하고, 산당과 작은 산 위와 모든 푸른 나무 아래서 우상을 섬겼습니다(왕하 16:1-4).

당시 국제 정세는 앗수르가 북방에서 신흥 제국을 건설하여 세계를 제패하고자 꿈틀거리고 있었습니다. 이에 위기의식을 느낀 아람 왕 르신과 르말리야의 아들 북이스라엘 왕 베가가 동맹을 맺었습니다. 그리고 유다도 이에 가담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유다는 이를 거절하고 오히려 앗수르와 동맹을 맺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아람과 북이스라엘은 예루살렘을 함락하고 다브엘의 아들을 왕으로 앉혀 자기들 마음대로 좌지우지하는 괴뢰정권을 세우고자 했습니다(6). 그러나 그들의 뜻대로 되지 않자 북이스라엘은 유다를 치고자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아하스와 백성들의 마음은 어떠했습니까?

2절을 보겠습니다. “어떤 사람이 다윗의 집에 알려 이르되 아람이 에브라임과 동맹하였다 하였으므로 왕의 마음과 그의 백성의 마음이 숲이 바람에 흔들림 같이 흔들렸도다.” 숲속의 나무 하나가 바람에 흔들리기 시작하면 연쇄적으로 소리를 내며 흔들립니다. 이처럼 왕이 전쟁의 공포에 불안하자 모든 백성들이 불안에 떨었습니다. 왕은 한 나라의 최고 지도자입니다.

지도자는 태산이 무너져도 요동치 않아야 합니다. 그런데 아하스는 오히려 바람에 숲이 흔들리는 것과 같이 두려워서 지하 벙커로 들어가 벌벌 떨고 있었습니다. 지도자가 백성들과 똑같이 두려워하면 지도자라 할 수 없습니다. 지도자는 백성들과는 뭔가 달라야 합니다. 지도자는 상황과 조건을 넘어서서 위기에 빠진 백성들에게 믿음과 비전을 심어 불안과 두려움을 극복하도록 도와야 합니다.

인도에 이런 설화가 있습니다. 마술사가 쥐 한 마리를 관찰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쥐는 한순간도 평안한 기색이 없이 불안과 초조에 떨고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 하고 살펴보니 고양이 때문이었습니다. 고양이가 언제 와서 덮칠지를 몰라 불안해했습니다. 마술사는 쥐가 불쌍해서 아예 고양이로 만들어주었습니다. 그런데 고양이가 된 뒤에도 불안해하는 것은 마찬가지였습니다. 왜 그런가했더니 이번에는 개 때문이었습니다. 개가 겁이 나서 한 시도 마음을 놓을 수 없었습니다. 마술사는 다시 고양이를 개로 만들어주었습니다. 그래도 두려워하는 기색은 마찬가지였습니다. 이번에는 호랑이가 겁났던 것입니다. 그래서 또 다시 호랑이로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런데 천하무적의 호랑이가 되어서도 두려워하기는 매일반이었습니다. 바로 사냥꾼 때문이었습니다. 결국 마술사는 무슨 수를 써도 두려움은 해결이 안 되겠다는 결론을 얻고 호랑이를 원래의 모습인 쥐로 돌이켰습니다.

만성 환자의 90%가 하나의 공통점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것은 모두가 불안과 초조에 떨고 있다는 것입니다. 어리석은 자는 자신의 나약함과 불안과 두려움이 환경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환경이 바뀌면 괜찮을 것이라고 여겨 직장도 바꾸어보고 거처도 옮겨봅니다. 심지어 남편도 갈아 치고 아내도 바꿉니다. 그리고 이민을 떠납니다. 그러나 환경이 바뀌면 괜찮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큰 오산입니다.

이런 말이 우스개 소리가 있습니다. 한국 사람이 북한 침략에 두려운 나머지 미국으로 이민 갔는데 이민 가서 권총 맞아 죽었다는 것입니다. 불안한 사람은 어디를 가도 불안합니다. 두려움에 떠는 사람은 항상 두려움에 떱니다. 신앙이 끝나는 곳에 불안과 두려움이 시작됩니다. 반면에 신앙이 시작되는 그 시점에 불안과 두려움은 사라집니다. 성경 말씀 따라 읽겠습니다. “오직 내 말을 듣는 자는 평안히 살며 재앙의 두려움이 없이 안전하리라(잠1:33).”

3절을 보면 하나님은 이사야에게 아들 스알야숩을 데리고 아하스를 만나라고 했습니다. 어린 아이 스알야숩은 감히 혼자 왕인 아하스에게 갈 수 없습니다. 그런데 어린 아이가 아버지 이사야와 함께 갈 때에는 조금도 두렵지 않게 됩니다. 이처럼 누구와 함께 하느냐에 따라서 달라집니다. 그는 두려워서 앗수르를 의지하고 동맹을 맺었습니다.

그러나 앗수르가 그의 백그라운드가 되지 못했습니다. 우리의 진정한 백그라운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면 조금도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백그라운드가 되어 주실 때 중국과 북한이 동맹하여 쳐들어온다 할지라도 조금도 두려워할 것이 없습니다. 오히려 위기는 기회가 되어 통일 한국이 되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공포에 질려 떨고 있는 아하스 왕에게 말씀하십니다. 4,5절을 보십시오. “그에게 이르기를 너는 삼가며 조용하라 르신과 르말리야의 아들이 심히 노할지라도 이들은 연기 나는 두 부지깽이 그루터기에 불과하니 두려워하지 말며 낙심하지 말라 아람과 에브라임과 르말리야의 아들이 악한 꾀로 너를 대적하여 이르기를” 사람이 살다 보면 어려운 문제가 생기고, 가정에 문제가 생기고, 교회에 문제가 생기고, 국가에 재난이 닥칠 수도 있습니다. 이 때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합니까?

첫째로 위기의 때 삼가며 종용해야 합니다.

이 때 동네방네 다니며 호들갑을 떨고 입을 떠벌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반면에 조용히 기도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문제가 생겼을 때 원망하고 불평하는 사람은 문제를 해결하려는 사람이 아니라 공동체를 파괴하려하는 반역자요 멸망을 좇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불난 집에 기름을 붓는 사람입니다. 반면에 조용히 기도하는 사람은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사람입니다.

요한복음 2장을 보면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는 혼인 잔치 집에 초대를 받아 갔습니다. 그때 마침 포도주가 떨어졌습니다. 혼인집에 포도주가 떨어졌다는 것은 심각한 일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마리아는 혼인집에 포도주가 떨어졌다고 흉을 보고 떠들어대기 쉬웠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조용히 예수님께 나아가 이 사실을 알렸습니다. 바로 여기에 마리아의 위대한 점이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마리아의 기도를 받으시고 하나님의 때에 물을 포도주로 만드셔서 혼인집에 기쁨을 샘솟게 했습니다.

둘째로 위기의 때 두려워하거나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모세는 위기의 때 절망치 않았습니다. 이스라엘이 출애굽해서 홍해를 앞에 두고 장막을 치게 되었습니다. 사실 홍해 앞에 장막을 친다는 것은 어리석은 작전 중의 하나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곳에 장막을 치도록 하셨습니다. 이때 바로가 특수 병기 육백승과 애굽의 전 마병을 동원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을 추격해 왔습니다. 멀리서 말발굽 소리가 들려오더니 이제 애굽 군대가 노도와 같이 추격하는 것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앞에는 노도와 같이 흐르는 시퍼런 홍해가 흐르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앞으로 갈 수도 없고 뒤로도 갈 수 없는 진퇴양난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요동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애굽에서 인도한 모세를 원망하기 시작했습니다. “어찌하여 애굽에서 우리를 건져내어 이곳에서 죽게 하는가 애굽에는 공동묘지가 없어서 이리로 데리고 와서 죽이려 하는가” 원망하고 아우성을 치기 시작했습니다.

이 때 모세의 위대함을 보십시오. 출애굽기 14장 13,14절을 보십시오.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영원히 다시 보지 아니하리라.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

모세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행하실 구원을 바라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행하실 능력을 바라보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베푸실 구원의 손길을 바라보았습니다. 배후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지금까지 바로의 손에서 해방시켜 주시고 여기까지 인도하신 하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능히 도와주시고 친히 해결하여 주실 것을 보았습니다. 그 때 두려움을 이기고 낙심치 않을 수 있었습니다. 믿음은 상황과 조건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믿음이 결국 이깁니다.

7-9절을 보면 아람의 르신 왕과 이스라엘의 베가 왕의 도모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각 나라의 흥망성쇠는 강대국이라고 흥하고 작은 나라라고 망한다는 법은 없습니다. 아무리 큰 전함과 최첨단 무기도 무장했다 할지라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으면 순식간에 망합니다. 그러나 힘도 없고 최첨단 무기로 무장하지 않은 왜소한 나라라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흥할 수 있습니다. 전쟁의 승패는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인간이 계획할지라도 그것을 경영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결국 아람은 B.C. 732년에 망하고, 북이스라엘은 B.C. 722년에 망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것이 굳게 서는 지름길입니다(9). 전쟁에서 이기고 지는 것은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에게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넘기시리라(삼상17:47)”

둘째,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라(10-22).

10,11절을 보겠습니다. “여호와께서 또 아하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 한 징조를 구하되 깊은 데에서든지 높은 데에서든지 구하라 하시니” 하나님은 두려워하는 아하스 왕에게 징조를 구하라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구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이는 하나님을 시험치 않겠다는 것입니다. 겉으로 보면 그는 겸손하고 믿음이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그가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은 것은 하나님보다 앗수르를 더 의지하였기 때문입니다(왕하16:7). 그의 눈에는 하나님이 무력하게 보였습니다. 한편 강대국 앗수르는 힘이 있어 보였습니다. 그는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보다 눈에 보이는 강대국을 더 의지했습니다. 그가 하나님께 징조를 구하지 않은 것은 앗수르를 믿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눈에 보이는 무엇인가를 의지하게 되면 절대로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습니다. 사람이 돈을 의지하면 하나님께 징조를 구하지 않습니다. 자기 능력을 의지하면 하나님께 징조를 구하지 않습니다. 머리를 의지하면 하나님께 징조를 구하지 않습니다. 현대인들은 물질을 의지하기 때문에 하나님께 징조를 구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쥐뿔도 없는 사람인 데도 하나님께 징조를 구하지 않습니다.

문제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물질을 의지하고, 자기를 의지하고, 권세를 의지하고, 자기 미모를 의지하고, 자기 실력을 의지하며 삽니다. 이런 것은 하나님을 슬프게 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하나님을 믿는 사람입니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은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믿고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결국 유다가 하나님보다 강대국을 의지했을 때 어떻게 되었습니까? 앗수르로 인해 수난을 당했습니다. 그들의 수염이 깎이고 머리털과 발털이 깎이기까지 수난을 당했습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배울 점은 인간이 그 의지하는 그것으로 망한다는 사실입니다. 강대국을 의지하면 강대국에 의해 멸망당하고, 물질을 의지하면 물질로 망하게 되고, 자기를 의지하는 사람은 자기로 인해 망하게 되고, 머리를 의지하는 사람은 머리로 망하게 되고, 재능을 의지하는 사람은 재능으로 멸망을 당하게 됩니다. 이것이 역사의 원칙입니다.

하나님은 징조를 구하지 않는 유다를 징계하고 내리치셔야 옳습니다. 우리가 말을 듣지 않는 양이 있을 때 포기하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14절을 보겠습니다.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나님은 징조를 구하지 않는 그들에게 징조를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그 징조가 무엇입니까?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임마누엘은 하나님이 함께 하여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이는 장차 오실 메시아를 보내 주시겠다는 예고입니다. 하나님은 믿음 없이 흔들리고 있는 유다를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일방적으로 메시아를 보내주실 만큼 끝까지 그들을 사랑하셨습니다. 그러면 왜 현 시점에서 하나님께서 임마누엘의 하나님을 보내어 주시겠다는 것입니까?

첫째로 하나님께서 보호자가 되어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지금 아하스와 백성들은 전쟁의 공포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이런 백성에게 하나님께서 함께 하여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고독하고 두려운 문제가 생길 때 누가 옆에라도 있어 주면 큰 힘과 위로가 됩니다. 그런데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께서 함께 해 주시겠다고 하니 얼마나 큰 힘과 위로가 되지 않겠습니까?

어린아이는 혼자 있으면 불안해합니다. 그러나 부모와 함께 있으면 불안해하지 않습니다. 광야와 같은 이 세상에서 살다 보면 외롭고 힘들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결코 외롭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보호자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장래에 대해서도 조금도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늘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이 함께 하셨을 때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시23:4).”

둘째로 하나님께서 소망을 끊지 않으시겠다는 것입니다.

아하스와 백성들은 교만하여 강대국을 의지하다가 징조를 구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을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소망 중에 오래 참고 기다리셨습니다. 우리는 주님을 배반하고 슬프게 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한 번도 버리지 않으시고 어제도 오늘도 변함없이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소망 중에 참고 참으시는 소망과 사랑의 주님이십니다. 하나님은 꺼져가는 심지도 끄지 아니하시고 상한 갈대도 꺾지 아니하시는 소망의 주님이십니다. 하나님은 부족하고 연약하다고 결코 포기치 않으시는 긍휼과 사랑의 주님이십니다.

셋째로 하나님께서 그들의 죄악을 담당해주시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단순히 우리와 함께 하시고 사랑하여 주시고 소망의 주가 되시는 것으로 끝난다면 여전히 연약한 인간은 넘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인간의 연약함을 아시고 함께 하심으로 연약함을 담당해 주십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계시면서 죄인들의 친구가 되셨습니다. 예수님은 죄인들과 동고동락하시면서 그들의 슬픔과 아픔과 질병을 다 짊어지셨습니다. 예수님은 연약한 그들과 함께 하심으로 그들의 내면을 치료하여 주셨습니다. 베드로는 의협심이 많고 교만했습니다. 요한과 야고보는 야심이 많았습니다. 도마는 의심이 많았습니다. 빌립은 냉소적이고 부정적이었습니다. 사마리아 여인은 필(feel)만을 쫓는 여인이었습니다. 38년 된 중풍병자는 무기력했습니다. 니고데모는 이성적이었습니다.

마태는 지독한 이기적인 사람이어서 다른 사람과 관계성을 맺지 못했습니다. 강철 왕 카네기는 15%가 자기 실력이고 85%는 인간관계라고 했습니다. 그만큼 인간관계는 중요합니다. 우리가 이 땅에 산다는 것은 인관관계라 할 수 있습니다. 한국은 3.5단계, 미국은 5.5단계를 거치면 다 아는 관계가 됩니다. 인터넷 상에서는 19번 클릭하면 아는 관계라고 했는데, 아마 지금은 페이스 북이니 사이 월드로 인해 세 번만 클릭하면 다 아는 관계가 될 것입니다. 이만큼 인관관계는 매우 중요합니다.
예수님은 이런 그들과 동고동락하시기 위해 하나님 나라의 보좌를 버리시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이 땅에 오셔서 그들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어 그들의 허물과 약점을 감당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친구가 되어 주셨습니다. 그들의 상처와 병든 내면을 치료하여 주셨습니다.

마침내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모든 죄를 깨끗하게 씻어주시고 하나님의 자녀 삼으셨습니다. 이로 인해 그들의 병든 내면이 치료되어 세계를 품고 섬기는 위대한 하나님의 종들이 되었습니다. 베드로는 기도와 믿음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도마는 확신의 종이 되었고, 빌립은 적극적인 종이 되었고, 마태는 세상의 빛이 되었습니다. 임마누엘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 낮아지심과 겸손의 주님이십니다.

2010년도 어느덧 12월이 되었습니다. 지난해를 돌아볼 때 연약하여 때로 하나님보다 눈에 보이는 것에 매여 방황하고 두려워할 때가 많이 있었습니다. 외롭고 힘들기도 했습니다. 임마누엘 하나님이 이런 저희와 함께 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고 의지하지 않을 때에도 친히 우리를 보호하여 주시고 지켜주셨습니다.

예수님의 탄생은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확실한 징조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위기의 때에도 두려워하거나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힘이 필요할 때 힘을 공급하여 주십니다. 지혜가 필요할 때 지혜를 공급해 주십니다. 위로가 필요할 때 위로를 공급하여 주십니다. 물질이 필요할 때 물질을 공급하여 주시는 임마누엘 하나님이십니다.

이번 성탄을 맞아 일 년 간 우리와 함께 하신 임마누엘 하나님께 영광과 찬양을 돌리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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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학마을교회

                                    Tiananmen Square protests, China Democracy, 天安門 天安门 法輪功 李洪志 Free Tibet 劉曉波, 热比娅·卡德尔, 熱比婭·卡德爾