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제2강 이사야9장 한아기

조회 수 3222 추천 수 0 2012.07.14 06:28:40
2010년 성탄 제 2 강(이사야 9:1-7, 요절 9:6)

한 아기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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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크리스마스란 단어를 주고 생각나는 것을 하나씩 말해보라고 했습니다. 이 때 학생들은 성탄추리, 가시나무, 성탄카드, 선물, 칠면조, 공휴일, 캐롤, 산타클로스 등등이었습니다. 예수님의 탄생을 적어낸 학생이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오늘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성탄절 하면 생각나는 것이 무엇입니까? 성탄이 우리 주님이신 예수님이 탄생하신 날로 생각나십니까? 예수님이 나를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시되 우리와 함께 하시기 위해 육신을 입고 임마누엘 하셨습니다.

오늘 말씀은 B.C. 700여 년 전에 선지자 이사야를 통해 임마누엘 하나님이 이 땅에 어떤 분으로 오시는가에 대한 예언입니다. 임마누엘 하나님은 한 아기로 오셨습니다. 한 아기 예수님은 이방의 갈릴리를 영화롭게 하십니다. 한 아기 예수님은 흑암에 행하던 백성들에게 큰 빛이 되십니다. 한 아기 예수님은 기묘하십니다. 한 아기 예수님은 모사이십니다. 한 아기 예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한 아기 예수님은 영존하시는 아버지이십니다. 한 아기 예수님은 평강의 왕이십니다. 성탄을 맞아 한 아기로 오셔서 우리를 영화롭게 하시고 어두움을 물러가게 하시고 우리 죄를 용서하신 기묘하신 하나님을 만나 삶에 죄 용서함과 희망을 갖기를 기도합니다.

첫째, 큰 빛으로 오신 예수님(1-5)

1절을 보겠습니다. “전에 고통 받던 자들에게는 흑임이 없으리로다 옛적에는 여호와께서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이 멸시를 당하게 하셨더니 후에는 해변 길과 요단 저편 이방의 갈릴리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이사야 선지자는 전에 고통 받던 자들에게는 흑암이 없을 것이라고 노래합니다. 이는 과거에 하나님께서 갈릴리 땅을 멸시를 받게 하셨지만 후에는 영화롭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북이스라엘의 왕 베가는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했습니다. 그는 여로보암의 죄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왕하15:28). 여로보암은 남북 분단을 가져온 인물입니다. 그는 불의한 방법으로 남북을 나눈 뒤 스스로 북이스라엘 초대 왕이 되었습니다. 그는 왕이 되자 하나님께 두 가지 큰 죄를 범했습니다. 하나는 그가 예루살렘 성전에 가서 예배를 드리지 못하도록 금송아지를 만들어 섬기도록 한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북이스라엘 곳곳에 산당을 만들어 우상을 섬기도록 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북이스라엘을 강대국 앗수르를 통하여 징계하시고 멸시를 받게 하셨습니다. 멸시를 받게 한다는 말은 영어로 humbled, 겸손하게 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각종 우상을 섬기는 그들을 앗수르의 손에 붙여 채찍을 가하심으로 겸손하도록 하셨습니다. 그들은 마땅히 하나님의 징계를 받으면 회개해야 옳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더 교만하고 완악하여 하나님을 대적했습니다. 그들은 무슨 문제가 생기면 하나님께 기도하기보다 신접한 무당과 마술사를 찾았습니다(사8:19). 그 뿐입니까? “모든 백성 곧 에브라임과 사마리아 주민이 알 것이어늘 그들이 교만하고 완악한 마음으로 말하기를 벽돌이 무너졌으나 우리는 다듬은 돌로 쌓고 뽕나무들이 찍혔으나 우리는 백향목으로 그것을 대신하리라 하는도다(사9:9)”고 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징계하고 심판하시려면 해보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그들은 하나님의 징계를 우습게 여겼습니다. 이로 인해 그들은 헤매고 주리고 곤고하게 되었으며 땅을 보아도 환난과 흑암과 고통만이 계속될 뿐이었습니다(8:21,22).

이사야는 이런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장차 하나님께서 이방의 갈릴리를 영화롭게 하실 희망을 보았습니다. ‘영화롭게 한다’는 것은 ‘honor(NIV)’로 명예를 회복시켜 위대하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멸시와 천대를 받던 백성들이 명예가 회복되어 존경과 사랑을 받도록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그들이 영화롭게 됩니까? 2절을 보겠습니다.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주하던 자에게 빛이 비취도다.” 여기에서 큰 빛은 임마누엘 하나님입니다. 흑암과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하는 자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빛입니다. 어두움 속에 사는 사람들은 삶의 방향이 없습니다. 삶의 방향이 없기 때문에 희망이 보이지 않습니다. 희망이 없으니 삶의 목적이 없고 삶의 목적이 없으니 삶의 의욕이 없고 의욕이 없으니 생각이 어둡고 생각이 어두니 얼굴이 어둡고 매사 운명적입니다.

그런 그들에게 큰 빛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큰 빛이 임하자 순식간에 어두움이 물러갔습니다. 죽음의 그늘에 앉은 백성들에게 생명이 임했습니다. 절망 중에 있는 그들에게 소망이 생겼습니다. 이 큰 빛을 사가랴는 ‘돋는 해’라고 했습니다. 해가 떠오르기 전이 가장 어둡습니다. 그러나 동녘에서 떠오르는 해는 칠 흙 같은 어두움을 순식간에 물리칩니다. 돋는 해는 희망입니다. 돋는 해는 에너지의 원천입니다. 돋는 해는 생명의 근원입니다. 돋는 해는 어두움의 세력을 물리칩니다. 돋는 해는 세상을 환하게 비춥니다. 돋는 해는 우리의 심령에 생명과 평강과 희망으로 가득 차게 합니다.

예수님 당시에 이스라엘은 흑암과 죽음의 그늘에 앉아 있었습니다. 말라기 선지자 이후 400년 동안 선지자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은 로마 식민지하에서 많은 고초를 겪어야 했습니다. 그들은 마치 꺼져가는 심지와 같고 상한 갈대 같이 소망이 없었습니다. 이런 백성들에게 예수님은 큰 빛으로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셨지만 멸시와 천대를 받던 갈릴리 나사렛에서 사셨습니다. 그리고 갈릴리를 중심으로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예수님의 12제자 중에 가룟 유다를 제외한 모두가 갈릴리 사람들입니다. 이로 인해 멸시받던 스불론과 납달리 땅이 영화롭게 되었습니다. 지금 많은 사람들이 성지 순례, 갈릴리를 찾습니다. 천대받던 그곳이 성지가 되었습니다.

이처럼 누구든지 예수님을 영접하기만 하면 영화롭게 됩니다. 현재의 형편이 어떠하든 예수님을 영접하면 영화롭게 됩니다. 어느 민족,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예수님을 영접하면 영화롭게 됩니다. 이는 국가나 민족만이 아니라 개인과 가정과 사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은 멸시와 천대를 받는 백성들을 영화롭게 하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120년 전 우리나라는 외세의 침략과 미신과 우상 숭배와 가난과 질병으로 희망이 없었습니다. 울밑에 선 봉선화같이 처량하게 눈물을 흘리던 슬픈 민족이었습니다. 이 땅은 흑암의 땅이었습니다. 이런 땅에 외국 선교사들이 들어와 복음을 전해줌으로 큰 빛이 비추었습니다. 이로 인해 무시 받고 천대받던 백성들이 예수님을 믿음으로 명예롭게 되었습니다. 한 예로 연세대 총장이었던 백낙준 박사님은 백정 출신의 천민 가문에서 태어났습니다. 그 분은 가난과 운명으로 슬픈 눈물을 흘리며 살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예수님을 믿음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존경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오산 학교를 세운 남강 이승훈 선생도 변변치 않은 가정에서 태어나 유기점의 점원 노릇을 하던 분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분이 예수님을 믿고 위대한 교육자요 민족의 선각자가 되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120면 만에 세계에서 두 번 째로 선교사를 많이 파송하는 나가가 되어 받는 데서 주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1990년대부터 우리나라는 배가 부르고 등이 따뜻하게 되자 주님의 은혜를 잊어버리고 탐욕과 허영과 쾌락과 맘몬의 노예가 되었습니다. 탐욕과 쾌락이 우리사회에 가져다 준 것이 무엇입니까? 1 인당 GDP 2만 달라가 되었지만 물질적 풍요 위에 OECD 평균 자살률이 11.2명인데 비해 우리나라는 28.4명으로 OECD 회원국 가운데 최고의 자살률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극도의 이기주의로 아기를 낳지 않아 급속도로 고령 사회화되고 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영업 이익이 20조 기업의 호황 속에 청년 실업자와 비정규직 고용 증대는 심화되고 90% 근접한 대학 진학률을 자랑하는 우리에게 대학 입시 경쟁은 살인적으로 치열하고 사교육비 또한 살인적입니다. 그리고 주택보급률은 110%이지만 주거를 투기꾼들에 의해 아파트는 천정부지로 올라 내 집 마련에 걸리는 시간은 더 길어가기만 합니다. 강대국으로부터 무시를 받고 있습니다. 그보다 더 심각한 것은 이 땅의 영적인 황무함입니다. 교회가 줄어들고 선교사 파송이 줄어들고 영적인 소원들이 식어가고 있습니다.

이 시간에 이 땅의 영적 황무함을 보시고 아파하시고 주님의 탄식하시는 음성을 듣습니다. 우리는 현 시점에서 큰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만나야 합니다. 그 빛을 받아야 합니다. 큰 빛 되신 예수님을 만나기만 하면 우리 민족이 명예롭게 되고 개인이 명예롭게 됩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아픔과 고통을 헤아리고 큰 빛으로 오신 주님을 만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큰 빛이신 예수여, 오셔서 이들을 비추소서! 캠퍼스 청년들을 비추소서! 이 백성을 비추소서! 북한의 동족들을 비추소서! 이 땅에 부흥을 주소서! 이 땅을 고쳐주소서!”

그러면 큰 빛 예수님을 영접하면 창성하게 됩니다. 즐거움이 더합니다. 그 즐거움이 추수하는 즐거움과 탈취 물을 나눌 때의 즐거움을 맛보며 살게 됩니다(3). 그리고 4,5절을 보면 그들이 앗수르의 포로로 끌려가서 많은 고통을 당하지만 억눌림에서 자유를 누립니다. 그리고 미디안의 날과 같이 이제 압제자의 막대기를 꺾으심으로 승리의 즐거움을 누립니다. 죄의 멍에로부터 풀어집니다(. 하나님은 죄와 사단의 억눌림에서 참 자유와 기쁨을 누리게 하십니다. 우리가 주님을 만나 이런 즐거움이 있기를 기도합니다.

둘째, 한 아기로 오신 예수님(4-7)

예수님은 한 아기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6a절을 보겠습니다.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예수님은 영화의 슈퍼스타로 오신 것이 아닙니다. 한 아기로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연약한 한 아기로 말구유에서 태어났습니다. 이사야서 53장 2절에 보면 예수님은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갈릴리의 이름도 없는 작은 마을 나사렛에서 가난한 목수의 아들로서 자랐습니다. 나사렛은 지금도 시골 벽촌이기 때문에 성지순례 코스에도 포함시키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가장 평범한 서민으로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러나 이 아기는 보통 아기가 아닙니다.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습니다. ‘정사’란 통치권(government)을 말합니다. 예수님의 어깨에는 세상 만민을 다스리는 통치권이 주어졌습니다. 그러면 그 이름은 어떠합니까? 6b절을 보겠습니다.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이 땅에 오신 예수님 그 이름이 특이합니다. 그 이름이 우리에게 주는 신앙적 의미가 무엇입니까?

첫째로, 예수님은 기묘자이십니다.

기묘자란 영어로 The Wonderful입니다. 이 아기는 기묘하신 분, 놀라운 분이라는 것입니다. 복음서를 읽을 때마다 예수님이야말로 기묘하신 분임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과 그의 행하신 기적들,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은 참으로 기묘합니다. 예수님은 인성과 신성을 동시에 가지신 기묘하신 분이십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만나면 기묘하신 예수님 앞에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습니다. 베드로가 기묘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나를 떠나소서! 소리쳤습니다. 이게 정상입니다. 그리고 기묘하신 예수님을 만나게 되면 상상을 초월하는 능력을 베푸시기 때문에 놀랍게 됩니다. 나 같은 죄인을 누가 구원하실 수 있습니까? 그래서 이렇게 찬송을 하게 됩니다.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워 잃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네♬ 십자가는 그 자체가 기묘합니다. 우리가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예수님을 믿으면 죄와 사망 권세로부터 구원 받습니다. 기묘하신 예수님은 우리의 삶속에서 깜짝 놀랄만한 일을 행하십니다. Jesus is the Wonderful! 예수님께는 여호와의 영, 곧 지혜와 총명의 영, 모략과 재능의 영,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이 있습니다(사11:2).

둘째로, 예수님은 모사이십니다.

모사란 말은 counselor 즉 상담자란 뜻입니다. 우리 인생들은 상담자가 필요합니다. 요즘 상담자 예수님이 더더욱 절실히 필요합니다. 요즘 사람들에게는 고민이 많습니다. 허무와 불안과 두려움, 우울증으로 고생하고 있습니다. 이런 문제를 누가 해결해 수 있습니까? 어느 누구도 해결해주지 못합니다. 예수님만이 우리의 상담자가 되어 해결해주실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지혜가 필요한 자에게 지혜를, 위로가 필요한 자에게는 위로를, 힘이 필요한 자에게는 힘을 주십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세상을 떠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요14:16)” 보혜사란 옆에서 도와준다는 뜻입니다. 보혜사 성령님께서 내 옆에서 늘 함께 하시어 나를 변호하여 주십니다. 세상의 변호사는 많은 수임료를 요구하지만 예수님은 하늘나라의 국선 변호사가 되시어 돈 한 푼 안 받으시고 나를 섬세하게 변호하여 주십니다. 이 예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십니다(히13:8절).

셋째로, 예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한 아기로 오셨지만 본질에 있어서는 하나님과 동등한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사망의 권세를 파하시고 부활하신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연약한 인간에게 무한한 힘과 능력을 공급해 주시는 힘의 원천이십니다. 예수님은 철장으로 질그릇 부수듯이 사탄의 모든 권세를 파하신 전능하신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말씀 한마디로 천지를 창조하신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요1:3).

사도 바울은 이 예수님을 믿었을 때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4:13).”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을 때 두려움이 없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의지할 때 우리는 불가능한 장벽을 뛰어넘어 위대한 역사를 창조할 수 있습니다.

넷째로, 예수님은 영존하시는 아버지이십니다.

이는 영원히 살아계신 아버지라는 뜻입니다. 아버지는 가정의 보호자요 필요를 채워주는 분입니다. 또 자녀들에게는 의지의 대상이 됩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언젠가 내 곁을 떠나십니다. 그리고 아버지는 때로 나를 실망시키십니다. 아버지는 능력의 한계가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변함이 없습니다. 야고보서 1장 7절에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절대로 실망시키지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 어디서든지 예수님께 도움을 구할 수 있습니다. 이 영존하시는 아버지의 품에서 참된 안식을 누릴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시공간을 초월하여 나를 도우시고 보호하여 주십니다.

다섯째로, 예수님은 평강의 왕이십니다.

세상은 동서기만 되어도 목에 힘을 줍니다. 한 나라의 통치자가 되면 그 막강한 권력을 이용하여 국가 예산을 제 맘대로 배정하여 불쌍한 서민을 울립니다. 세상의 통치자에게는 은혜가 없습니다. 이런 통치자 밑에 있을 때 분노가 치밉니다. 그리고 불안하고 두렵습니다. 평화가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평강의 왕이십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사랑과 평화로 다스리십니다. 요한복음 14장 27절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 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하나님의 평강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의 평강입니다(빌4:7). 예수님이 우리를 다스릴 때 피 묻은 군복과 군화가 불살라지게 되어 전쟁이 없는 나라가 됩니다.

요즘 전쟁 소식으로 사람들이 불안해 합니다. 거기다가 가난한 서민들에게 돌아가야 할 예산이 몇몇 실세들에게 돌아갔다는 소식을 들을 때 마음에 평화가 없습니다. 사람들은 평화를 찾고자 책을 읽기도 하고 여행을 하기도 하고 참선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어디서도 평안을 얻을 수 없습니다. 마음의 참된 평화는 우리의 노력으로 얻을 수 없고 돈으로도 살 수 없습니다. 이는 오직 평강의 왕 되신 예수님을 영접할 때만이 얻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내 마음을 사랑과 평화로 다스리실 때 내 마음은 알 수 없는 잔잔한 평화로 차고 넘치게 됩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다스리되 목자로 우리를 다스리고 사랑과 공의와 평화로 다스리십니다. 이 평화는 어느 누구도 뺏어갈 수 없는 참된 평화입니다. 예수님은 평강의 왕십니다.

7절을 보십시오.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왕좌와 그의 나라에 군림하여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지금 이후로 영원히 정의와 공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 세상나라는 흥하고 망합니다. 그리고 세상 나라는 불안합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께서 세우신 나라는 결코 흔들림이 없습니다. 또 세상 나라는 권모술수가 횡행하고 불의하고 부패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다스리는 나라는 자금 이후 영원토록 공평과 정의로 이를 보존하십니다. 이 모든 일이 반드시 성취됩니다. 이는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루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모든 사람에게 모든 것이 되십니다. 예수님은 지혜가 필요한 자에게는 지혜자가 되시고, 카운슬러가 필요한 자에게는 카운슬러가 되십니다. 능력이 필요한 자에게는 전능한 하나님이 되시고, 아버지가 필요한 자에게는 영존하시는 아버지가 되시며, 평강이 필요한 자에게는 평강의 왕이 되십니다. 이 예수님께 엎드려 경배합니다. 이 예수님께 나의 전부를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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