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참 쉼을 누릴 수 있는가?

조회 수 3513 추천 수 0 2012.07.14 06:29:34
마태복음 11:28-30(요절, 11:28)

누가 참 쉼을 누릴 수 있는가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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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솝 우화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어느 날 이솝이 어린아이들과 놀고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그런 이솝을 보고 어른이 점잖지 못하게 어린아이들과 논다고 핀잔을 주었습니다. 그러자 이솝은 현악기의 줄을 느슨하게 풀어 그 사람 앞에 보였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지금 느슨하게 해 놓은 줄과 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계속 줄을 팽팽하게 매어놓으면 이 악기의 활은 부러져 못쓰게 됩니다. 그래서 다음 연주를 위해 활을 느슨하게 해 놓을 필요가 있지요. 더 나은 다음 연주를 위해서는 이 활도 쉼이 필요합니다.”

그렇습니다. 현대인들은 마치 팽팽한 활처럼 긴장된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느슨한 마음의 여유를 잊고 있습니다. 특히 성취욕이 강한 사람들은 쉰다는 것을 게으름의 상징으로 여깁니다. 일 욕심이 많은 사람들에게는 쉰다는 것이 무능력의 표상입니다. 그래서 잠시라도 일을 손에서 놓지 못합니다.

“새벽종이 울렸네, 우리도 한번 잘 살아보세”를 외치며 일중독(Workaholic)에 걸려 살아온 세대들은 쉰다는 것을 무엇을 몰라도 한참 모르는 백치 같은 사람, 자기 분수를 모르는 사람으로 치부합니다. 그래서 쉴만한 기회가 와도 어떻게 쉬어야 할지 모릅니다. 특히 “빨리 빨리”로 인해 만성적인 피로에 시달립니다.

악보에 쉼표가 없다면 그 연주는 아름다운 연주가 될 수 없습니다. 축구에서도 전반전이 끝난 다음에 하프타임을 두어 휴식하면서 후반전을 준비합니다. 막 간의 쉼이 필요합니다. 수북이 쌓인 낙엽 길과 소복소복 쌓인 눈길을 걷는 여유,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여유, 친구와 차 한 잔을 마시는 여유를 가져야합니다.

물론 근거 없이 여유를 부리고 빈둥빈둥 놀다가 쉬려고 하는 사람도 없지 않아 있습니다. 쉼은 열심히 일한 자가 누리는 특권입니다. 하나님은 6일간 일하시고 7일째 안식하셨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사람에게 육체적인 쉼도 필요하지만 더 본질적인 쉼, 바로 영적인 쉼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영적 쉼을 누릴 수 있습니까?

첫째, 예수님께 나와야 쉼을 누릴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누군가의 초대를 받아 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초대를 받았을 때 어떤 초대는 마음이 기쁘고 설렙니다. 반면에 어떤 초대는 굉장히 부담스럽고 마음이 무겁습니다. 관공서에서 오라는 초대장은 일단 우리의 마음을 무겁게 합니다. 특히 검찰청, 법원, 세무서, 경찰서에서 출두하라는 초청장을 받게 되면 마음이 심히 부담스럽습니다. 그러나 누가 결혼한다는 초청장을 받으면 마음이 즐겁습니다. 반면에 장례식 초청장은 인생의 허무함과 숙연함을 느낍니다. 이처럼 어떤 초청은 기쁘고 즐겁고 설레게 하지만 어떤 초청은 마음에 부담이 됩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에 굉장한 초청이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초청입니다. 예수님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만왕의 왕이십니다. 모든 사람들로부터 경배와 찬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입니다. 경배와 찬양을 받으실 만왕의 왕 예수님께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고 가는 우리를 초청하십니다. 예수님은 치열한 생존경쟁에서 지치고 피곤한 우리를 초청하십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무력함에서 오는 짐을 지고 신음하는 우리를 초청하십니다. 예수님은 무거운 죄 짐을 진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초청하십니다.

28절을 보겠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수고하고 무거운 짐은 눈에 보이는 무거운 물건을 뜻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짐은 눈에 보이지 않는 짐입니다. 이 짐은 채움을 향한 탐욕입니다. 이 짐은 높음을 향한 성공입니다. 이 짐은 이김을 향한 힘입니다. 특히 우리는 자본주의에 길들여져 있어서 성공, 출세, 소유를 향한 탐욕이 강렬합니다. 교회도 큰 교회를 지향합니다. 성도들도 잘 갖춰진 큰 교회를 선호합니다. 작은 교회, 개척교회는 존재할 수 없어 기업이 인수 합병하는 것과 같이 교회도 인수 합병하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런데 누구를 막론하고 우리에게는 채우고 높아지고 이기고자 하는 탐욕을 다 가지고 있습니다. 채우고자 하는 탐욕과 높아지고자 하는 욕망은 완벽을 요구합니다. 1등을 요구합니다. 그래서 청소년들은 좀 등수가 떨어진다 싶으면 부모는 물론 자신이 이를 인정치 않으려고 합니다. 그러다가 결국 우울증에 시달립니다. 우울증은 자살을 불러일으킵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어느 정도 완벽해야 하나님께서 날 사랑하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내가 완벽하지 못하다 싶으면 나 자신을 정죄하고 괴롭힙니다. 그것이 바로 율법신앙, 바리새인적 신앙입니다. 세상에 완벽하고 완전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모두가 연약합니다.

이런 예화가 있습니다. 어느 병원에서 산모가 고통을 못 이겨 크게 소리 지르자 아직 결혼하지도 않은 간호사가 산모에게 이렇게 핀잔을 주었다고 합니다. “좀 조용히 하세요! 저쪽 산모는 소리도 안 지르고 잘 참고 애 낳잖아요.” 그러자 그 산모는 속으로 “너도 결혼해서 애 낳아봐라”고 했답니다. 세월이 흘러 그 간호사는 결혼하고 임신 한 뒤 아기를 낳기 위해 그 병원에 왔습니다. 몇 시간 후에 아기를 낳았는데 산부인과 의사 선생이 분만실에서 나오며 하는 말이 “우리 병원 생긴 이래로 저렇게 크게 소리 지른 사람은 처음 보았다”고 했다고 합니다.

겉으로 보면 사람들은 모두가 행복해 보입니다. 고민이 없는 사람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모든 사람들은 각각 자기의 짐을 지고 살아갑니다. 천진난만한 초등학생들은 학원에 다녀야 하는 무거운 짐이 있습니다. 또 학부모들은 사교육비의 무거운 짐이 있습니다. 선교사들은 문화의 갭으로 인한 짐이 있습니다. 남편은 남편으로서, 아내는 아내로서, 부모로서, 자녀는 자녀로서, 학생은 학생으로서, 교수는 교수로서, 직장인은 직장인으로서, 상관은 상관으로서, 모두가 짐이 있습니다.

그런데 짐 중에 가장 무거운 짐은 죄 짐입니다. 죄는 우리를 억압하고 짓누릅니다. 이 죄의 짐은 누구도 져줄 수 없습니다. 사람들은 이 짐을 벗기 위해 어디론가 갑니다. 세상은 이런 우리를 열심히 초대합니다. 휘황찬란한 네온사인의 간판들은 우리를 초청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고 어디로 가느냐는 매우 중요합니다. 여러분은 어디로 갑니까? 어제 병원 예배를 드리며 당신은 스트레스가 생기면 어디로 갑니까? 물으니까 호프집으로 간답니다. 사람들은 술집으로 향하고, 불나방같이 쾌락과 향락을 찾아 나섭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먹는 것이 남는다며 먹자 집으로 갑니다. 그러나 이런 것은 우리의 짐을 벗겨 주는 것이 아니라 더 올려놓아 우리를 더 무겁게 합니다.

예수님은 다 내게로 오라고 말씀하십니다. 병든 자, 슬픈 자, 예외 없이 다 오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과거를 조금도 묻지 않고 다 초청하십니다. “다 내게로 오라!” 여기에는 예외가 없습니다. 주님의 초청은 신약에 400번, 구약에 200번 나옵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희게 되리라(사1:18).” 죄는 하나님의 진노가 있습니다. 성경은 “네 죄가 반드시 너를 찾아 만나리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두렵습니다.

그러면 죄인이 할 일이 무엇입니까? 하나 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 나와 죄를 회개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회개하면 구원을 베풀어주십니다. 고린도후서 6장 1,2절을 보겠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로서 너희를 권하노니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 이르시되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에게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now and here, 지금, 현재, 주님께로 나가야 합니다.

그리고 요한복음 7장 37, 38절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목마른 것은 인간의 진실한 열망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목마른 사람은 누구든지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는 생수다. 나는 문제의 해결자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인간의 내면적 갈증, 영혼의 목마름을 충족시킬 수 있는 분이십니다.

이 세상은 한마디로 광야와 같습니다. 광야는 물이 없이 메마른 곳입니다. 광야 길은 어렵고 힘이 듭니다. 삶의 목적과 방향을 찾을 수 없어 방황합니다. 겉으로 보면 안정되고 부족함이 없어 보여도 실상은 마음에 평화가 없어서 초조와 불안 속에 불면증에 시달립니다. 그런데 이 광야 길에 반석이 있습니다. 모세가 그 반석을 칠 때 반석이 갈라지면서 생수가 솟아 나왔습니다. 이 반석이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광야 같은 세상에 생수가 되십니다. 주님의 진리와 생명, 은혜의 말씀은 우리 심령에 생명수입니다. 선지자 이사야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오호라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먹되 돈 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55:1).”

예수님은 사랑이 많으십니다. 예수님은 따뜻하신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겨울의 추위 속에서도 우리 마음을 녹이실 수 있는 분, 경제적인 한파 속에서도 우리 마음과 삶을 강건하게 하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근심, 걱정, 염려를 기도의 자리로 인도하시어 소망과 평안과 기쁨을 주십니다.

가시나무라는 유명한 노래가 있습니다.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당신의 쉴 곳 없네” 이 곡은 가수 하덕규가 부른 노래입니다. 그가 이 노래를 지어 부른 사연은 이렇습니다. 그는 가수생활을 하면서 인기와 돈을 얻었습니다. 그런데 인생의 목적이 없어 방황을 해야 했습니다. 매일 위스키 몇 병을 마시고, 늘 혼돈된 마음으로 살던 그는 마음의 공허함을 달랠 길 없어, 자살을 결심했습니다. 그러나 죽음의 문턱에 서 있던 그가 가족이 다니던 교회에 나가 죄를 주님께 고백하고 주님을 만났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랑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사랑을 알게 된 이후에 그는 새로운 인생이 되었습니다. 그가 예수님을 만나 비로소 마음에 참 평안과 쉼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자기의 연약함을 하나님 앞에 고백하며 만든 노래가 바로 그 가시나무라는 노래입니다.

바울은 진정한 자유와 평안과 참된 해방을 주님 안에서 맛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로마서 8장 1, 2절에서 이렇게 선포합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우리가 예수님 안에 있을 때에 참 쉼이 있습니다.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신 주님을 만나면 새 힘을 얻습니다.

둘째, 예수님의 멍에를 메어야 쉼을 누릴 수 있습니다.

29절을 보겠습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온유는 원어에 “길들여진다. 다스려진다”입니다. 환자가 의사 선생이 지어준 약을 먹고 열이 다스려져 정상적 상태가 되는 것, 거친 야생마가 주인의 손에 의해 잘 훈련되어 길들여지는 것, 그 두 가지의 공통점은 잘 다스려지는 것입니다. 아스피린을 먹으면 열이 다스려집니다. 성경의 신약과 구약, 양약을 먹으면 우리 영혼이 주님 은혜로 잘 다스려집니다. 주님의 다스려짐으로 빚어지는 것이 온유입니다. 그러면 온갖 은총이 임합니다. 마음이 온유하면 땅을 기업으로 받습니다.

야곱은 야생마와 같았습니다. 그가 천사와 씨름하여 그 환도 뼈가 꺾이게 되면서부터 주님의 손에 다스려졌습니다. 그 후부터 그는 주님 닮은 사람, 믿음의 조상으로 변화되기 시작했습니다. 축복의 사람, 하나님께서 승리를 주시는 승리자가 되었습니다. 야곱이 말년에 그 내면과 삶이 얼마나 향기로웠고 복되었는지 바로의 왕을 축복할 정도가 되었습니다. 야곱이 자기 의지로 살던 삶에서 벗어나 하나님 손에 다스려지면서 그 영혼과 삶에는 예수님 닮은 온유함이 깃들게 되었습니다. 평안한 쉼과 안식, 은총을 누리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모세는 혈기가 많은 청년이었습니다. 그는 의협심으로 사람을 죽였습니다. 그런 그가 40년간 광야 훈련을 통해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더하였습니다(민12:3).

겸손은 하나님과 이웃 앞에서 자신을 낮추는 것을 뜻합니다. 겸손은 좋은 은총과 축복의 시작입니다. 하나님은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십니다. 사람의 마음의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요 겸손은 존귀의 앞잡이입니다(잠18:12). 그리고 겸손과 여호와를 경외함의 보상은 재물과 영광과 생명입니다(잠22:4).

멍에란 소가 밭을 갈 때 소의 목에 메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예수님의 멍에를 메라고 하십니다. 이스라엘에서는 한 마리의 소에 멍에를 메우는 것이 아니라 두 마리를 나란히 놓고 멍에를 메웁니다. 두 마리의 소에 멍에를 멜 때 한 마리가 힘이 세면 다른 한 마리는 그냥 따라 가면 됩니다.

마찬가지로 주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우리와 함께 인생의 멍에를 메십니다. 우리 주님은 전능하십니다. 그 능력이 무한대이십니다. 그 능력으로 우리를 도우십니다. 그래서 내게 능력주시는 주님 안에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도우시는 주님 안에서 우리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 로마서 8장 37절에 보면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우리가 예수님의 멍에를 메면 예수님께서 앞서 가시기 때문에 그 멍에는 쉽고 가볍게 됩니다. 우리가 십자가를 지고 가다 보면 그 십자가가 나를 지고 가기 때문에 놀랍게도 가볍고 기쁨과 평안함을 맛보게 됩니다. 십자가를 지면 질수록 생명력이 넘치고 삶이 풍요롭고 은혜가 넘치게 됩니다.

셋째, 예수님을 배울 때 쉼을 얻습니다.

29b절을 보겠습니다.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헬라어에 ‘배운다’는 뜻은 예수님의 제자가 되라는 뜻입니다. 제자는 항상 스승을 배우고 따르고 순종합니다. 이처럼 우리가 주님의 제자가 된다는 것은 주님을 배우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어디에 가시든지 동행하고, 무슨 말씀하시든지 순종하고, 배우는 것입니다.

켄 베인 교수는 미국에서 교수 방법론에서 가장 인기 있는 교수입니다. 그는 처음 시작하는 교수들에게 배움에 관해 배우라고 했습니다. 배움에 관해 배운다는 것은 탈무드의 글에 나오는 것처럼 고기 잡는 법을 배우는 것과 같습니다. 고기 한 마리를 주면 하루를 살 수 있지만 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 주면 평생을 살 수 있습니다. 훌륭한 스승은 제자들에게 배우는 법을 가르쳐 주는 사람입니다.

배운다는 것은 이치의 깨달음을 의미합니다. 깨닫게 되면 열립니다. 열리는 순간에 통하게 됩니다. 저의 선친은 자치통감을 100독 하면 문리가 난다고 하셨습니다. 물리란 한문을 다 꿰뚫게 된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배우면 삶의 법이 문리가 납니다. 따라서 배움은 깨달음의 통로입니다. 배움은 삶을 풍성케 해 줍니다. 배움은 자족하는 법을 가르쳐 줍니다. 요즘 사람들이 풍족한 것 같은데 가난합니다. 이는 자족하는 법을 배우지 못해서입니다. 배우면 풍족하게 됩니다.

쉼이란 무엇입니까? 쉼은 틈, 여유, 여백, 비움입니다. 쇠붙이도 늘었다 줄었다 하기에, 철길을 만들 때 빈틈을 냅니다. 빈틈이 없는 사람은 친구도 없습니다. 빈틈이 있고 비울 때, 하나님을 내 안에 모실 수 있고, 이웃이 내 안에서 편히 쉴 수 있습니다. 쉼은 하나님께 돌아가는 것입니다. 쉼은 속박으로부터 벗어나게 됩니다. 탐욕과 완벽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일등 지상주의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욕심과 탐욕에서 벗어나니 정신 건강이 회복되고, 죄의 짐이 풀려 마음에 자유와 평안이 생깁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는 예수님의 멍에는 쉽고 가볍기 때문입니다(30). ‘쉽다’는 것은 잘 맞는다는 뜻입니다. 버클레이는 “목수 출신이기 때문에 예수께서 만든 멍에는 가장 잘 맞게 만들어 주신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잘 아셔서 각기 가장 맞는 멍에를 주십니다. 목에 꼭 맞으니 힘을 덜 받게 되고 그러니 가볍게 됩니다.

우리가 있는 그 모습으로 주님께 나아가면 예수님은 우리를 다 받으시고 우리의 병든 내면을 치료하여 주시고, 모든 수고와 모든 죄의 짐으로부터 해방시켜 주십니다. 이 때 우리는 진정 쉼을 얻게 됩니다. 쉼이 없는 시대에 예수님의 멍에를 메고 온유하고 겸손하신 예수님을 배워서 참 쉼을 얻고 힘써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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