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여정

조회 수 2529 추천 수 0 2012.07.14 06:30:47
마가복음 4:35-41, 요절 4:39

삶의 여정

“예수께서 깨어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더러 이르시되 잠잠하라 고요하라 하시니 바람이 그치고 아주 잔잔하여지더라(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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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은 예수님의 일행이 갈릴리 항해 중에 일어났던 사건입니다. 혹자는 인생의 여정을 항해로 비유합니다. 항해를 하다 보면 크고 작은 사건들을 자주 만나게 됩니다. 미풍도 만나고 큰 광풍도 만나고, 해일도 만납니다. 이런 일련의 사건들을 만날 때 거기에 대한 태도 또한 천차만별입니다. 어떤 사람은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체념합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은 과연 살아 계신가에 회의를 품고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어떤 사람은 자연 앞에 무기력한 자신의 모습으로 인해 한없는 슬픔 눈물을 흘립니다. 어떤 사람은 그 상황 자체를 원망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믿음으로 그 문제를 풀어갑니다.

오늘 본문을 보니 항해 중에 갑자기 불어 닥친 큰 광풍 앞에 제자들은 예수님을 원망합니다. 주무시던 예수님은 부르짖는 제자들의 음성을 듣고 일어나셨습니다. 예수님은 일어나셔서 말씀으로 광풍을 잔잔케 하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의 믿음 없음을 책망하셨습니다. 이 사건을 통해 예수님은 모든 만물의 창조주요 만물을 다스리는 주인이심을 드러내셨습니다. 본문을 통해 믿음으로 삶의 여정에서 일어나는 모든 역경들을 이기고 승리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하고 기도합니다.

첫째, 왜 우리가 죽게 된 것을 돌보지 않으십니까(35-38)

예수님은 말씀을 마치시고 저녁때가 되자 제자들에게 “우리가 저편으로 건너가자!”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제자들은 곧 배를 준비하여 예수님을 태우고 항해를 시작했습니다. 그날따라 붉게 물든 저녁노을은 장관이었습니다. 이곳저곳에서 갈매기가 나르고, 물새들이 노래하며, 산들바람까지 불었습니다. 그 광경은 실로 한 폭의 그림과 같았습니다. 제자들은 신이 나서 힘차게 노를 저었습니다. 배는 잔잔한 호수를 미끄러지듯이 나아갔습니다. 그들은 행복했습니다. 그러나 이 행복은 큰 광풍으로 인해 순식간에 날아가 버렸습니다. 호수 한 가운데 이르렀을 때 잔잔한 물결이 갑자기 큰 광풍으로 돌변하여 배가 뒤집힐 것만 같았습니다. ‘큰 광풍’이란 헬라어로 메가톤급의 광풍을 말합니다. 1메가톤은 TNT 100만 톤의 에너지의 크기입니다.

제자들은 전직이 어부라 바다에서 크고 작은 광풍을 만나곤 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그들은 그 위기를 모면했습니다. 그러나 이번의 광풍은 예전과 달랐습니다. 그들은 과거 자신들의 전공과 경험에 의지하여 큰 광풍으로 삼킬 듯 밀려오는 세찬 파도와 싸웠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 광풍만큼은 자신들의 상식과 경험, 전공과 노력, 힘으로 제압할 수 없었습니다. 배가 금시 뒤집혀 죽을 것만 같았습니다. 이제 제자들의 내면에 두려움의 광풍, 의심의 광풍, 절망의 광풍이 일어 그들의 얼굴은 죽음의 공포로 사색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위기 중에 예수님은 하루 종일 말씀을 가르치셨기 때문에 피곤하여 배가 출발하자 곧 고물에서 주무셨습니다(38a). 이 때 제자들은 울부짖으며 예수님을 깨웠습니다. “선생님이여 우리가 죽게 된 것을 돌보지 아니하시나이까(38b)?” 제자들은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베드로와 안드레, 야고보와 요한은 배와 그물을 버리고 예수님을 좇았습니다. 마태는 세리 직업을 버리고 예수님을 좇았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큰 광풍으로 죽게 된다고 생각하니 자신도 모르게 원망의 소리가 튀어 나왔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탄 배가 큰 광풍을 만나는 것은 이해가 되지만, 예수님이 탄 배에 큰 광풍이 일어난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믿으면 항해 중에 광풍이 없어야 하고, 성공해야 하고, 잘 나가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또한 예수님을 믿으면 몸이 아프지도 않아야 하고, 성적도 좋아야 하고, 부자가 되어야 하고, 좋은 직장에 다녀야 하고, 승진도 다른 사람보다 빨라야 하고, 자녀들이 잘 되고, 우리의 삶의 여정에 어떤 사고도 없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예기치 않게 병마와 죽음, 해일, 화재, 사업 실패, 불의 사고, 성적의 저공비행 등의 어려움을 만나게 되면 왜 내가 예수님을 믿는데 이런 어려움이 오는가, 왜 하필 나만 이러한 고통을 겪어야 하나, 낙심하고, 그러다가 극기야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그리고 전생에 무슨 잘못이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닌가, 인과응보로 생각합니다. 물론 죄에 대한 징계로 인한 광풍도 없지 않아 있습니다. 그러나 삶의 여정에서 모든 광풍이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만은 아닙니다. 욥기를 보면 욥이 죄를 져서 시련을 만난 것은 아닙니다. 욥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의인이었습니다. 그런데 사단이 욥의 신앙을 시기하여 그를 넘어뜨리고자 한데서 온 시련입니다.

그러나 믿는 사람들에게 오는 시련은 모두가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있습니다. 광풍은 우리의 믿음을 순수하게 합니다. 각종 시련을 통해 헛된 욕망을 버리게 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산 소망을 갖게 합니다. 각양각색의 시련을 통해 기도의 능력을 체험하게 하고, 믿음의 거목으로 자라게 합니다. 온실의 화초는 연약합니다. 그러나 풍상을 겪으며 자란 바위틈의 낙락장송을 한번 생각해 보세요. 꿋꿋하지 않습니까? 강철은 두드릴수록 더 강해진다는 말이 있습니다. 인간은 시련 앞에 강해지고 인격이 성숙해집니다. 역사적인 인물들은 모두가 시련을 이긴 사람들입니다.

미국의 대통령 프랭클린 루즈벨트는 39세까지 소아마비 증세로 다리를 절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은퇴하는 날까지 미국 대통령 4번이나 했습니다. 그리고 유명한 슈베르트는 평생에 피아노 한 대 가져보지 못했습니다. 그는 항상 가난에 찌들려 31세에 죽었지만 그가 남긴 곡은 사람의 심금을 울리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 또한 복음을 전하다가 많은 크고 작은 시련을 겪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광풍의 의미를 깨닫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사형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지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심이라(고후1:9).” 다윗도 광풍의 의미를 깨닫고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시119:71).”

우리는 광풍을 만날 때 예수님께서 모르시는 것은 아닌가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의 광풍을 잘 알고 계십니다. 그러면 광풍을 왜 빨리 잔잔케 하지 않으셨는가, 제자들을 죽도록 고생시키시다가 도와주시는 잔인하신 분이 아닌가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예수님은 잔인하신 분이 아니고 사랑의 주님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광풍을 빨리 잔잔케 하시고 안 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주권에 속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들은 광풍 앞에 주무시는 예수님을 더 염려해야 옳습니다. 그들은 두 눈을 뜨고 있습니다. 그들은 정 안 되면 배에서 뛰어 내려 헤엄을 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주무시고 계십니다. 그들이 정말 예수님의 제자라면 예수님을 더 걱정해야 옳습니다. 주무시는 분을 깨워 위기를 모면토록 해야 옳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주무시는 분에게 원망합니다. 그리고 다른 배들도 있습니다(36). 그들이 정말 목자라면 다른 배들의 사람들을 걱정해야 옳습니다. 그런데 자신들만 죽게 되었다고 원망합니다.

원망은 어디에서 옵니까? 스티븐 코비의 “성공하는 사람들의 일곱 가지 습관”이라는 책을 보면 성공은 조건도 아니고, 환경도 아니고, 지식도 아니고, 그 사람의 성품, 습관이라고 했습니다. 그 성품이 대략 일곱 가지인데 그 요지는 주도성입니다. 주도성은 내가 책임진다는 책임성입니다. 주도적으로 앞장서서 일하는 사람은 남을 탓하지 않습니다. 자기가 먼저 손해 볼 각오와 희생할 각오로 앞장섭니다.

예를 들어 교회에 백만 원짜리 물건이 꼭 필요하다고 합시다. 이때 주도적인 사람은 내가 먼저 얼마의 헌금하고 사자고 말합니다. 이것은 내가 책임지겠다는 의지입니다. 그러면 이 물건이 사집니다. 주도는 앞장서서 큰 소리만 치는 사람이 아닙니다. 자기희생, 손해, 책임을 지는 것입니다.

책임지는 영역만큼이 내 것이 됩니다. 내 것만 책임지면 내 영역을 벗어나지 못합니다. 가정을 책임지면 가장이 되고, 회사를 책임지면 사장이 되고, 국가를 책임지면 국가 지도자가 되고, 세계를 책임지면 세계 지도자가 됩니다. 책임지는 만큼 삶의 영역의 달라집니다. 반면에 내 잘못을 남에게 돌리면 내 영역은 반으로 줄어듭니다. 더 나아가서 내 책임은 전혀 없고 완전히 남의 책임이라고 하는 순간 내 존재는 사라집니다. 원망은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데서 옵니다. 책임지고자 하는 사람, 남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 절대로 남을 원망하지 않습니다.

지금 일본 후쿠시마의 지진과 해일로 일본 전체에 ‘큰 광풍’이 닥쳤습니다. 더욱이 원자로 폭발 사건은 세계 인류를 불안하게 하고 있습니다. 그런 중에 일본을 피폭으로부터 구해야겠다는 책임을 가지고 폭발 직전에 있는 원자로로 달라가는 가장이 있습니다. 그는 누구도 원망하지 않습니다. 그는 일본을 살려야 한다는 일념 밖에 없습니다. 그는 일본의 영웅입니다.

저는 한편 이런 일본의 처참한 모습을 보며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일본이 많은 우상을 숭배한 죄의 결과인가? 천재인가? 인재인가? 분명한 사실은 해일과 지진은 천재이지만 원자로 연쇄 폭발은 인재라는 점입니다. 천재인 해일과 지진은 우리의 힘으로 어떨 수 없습니다. 그래서 천재는 모두의 마음을 녹여 구제의 손길로 다가서게 합니다. 그러나 인재인 원자로 연쇄 폭발은 일본 내부뿐만 아니라 지구촌 전체에 원자로 설비의 찬반으로 갈라놓고 있습니다.

이런 재앙이 우리나라에 닥쳤다고 가정한다면 우리는 이를 어떤 수준의 모습을 보일는지 두렵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광풍 앞에 한 가지 분명하게 명심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선한 역사를 바라보고 주도적으로 그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책임의식, 절망 중에도 하나님의 뜻을 찾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떤 광풍중에도 예수님을 원망하거나 남을 원망해서는 안 된다는 점입니다. 이는 쉽지 않지만 이게 성도의 성숙입니다.

둘째, 잠잠하라 고요하라(39-41)

예수님은 제자들의 원망의 절규를 들으시고 눈을 뜨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일어나셔서 먼저 무엇을 하셨습니까? 39절을 보겠습니다. 예수께서 깨어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에게 명하셨습니다. “잠잠하라! 고요하라!” 그러자 바람이 그치고 아주 잔잔하여졌습니다. 주님의 말씀 한마디로 메카톤급의 광풍이 잔잔해졌습니다. 이 예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첫째로 예수님은 자연을 지배하십니다.

현대 과학이 아무리 발달하였다 할지라도 태풍의 발생 지점과 시간, 경로 등만을 알 수 있을 뿐 태풍을 잔잔케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말씀으로 광풍을 잔잔케 하셨습니다.

창세기 1장 1절을 보면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라고 선포하였습니다. 하나님은 태초에 말씀 한 마디로 천지를 창조하셨습니다. 혼돈과 공허와 흑암으로 온 땅을 뒤덮여있을 때에 말씀 한 마디로 빛을 창조하셨습니다. 빛이 있으라고 말씀하시자 순식간에 흑암의 세력이 물러가고 세상을 밝히는 빛이 생겼습니다.

하나님은 창조주이십니다. 하나님은 모든 만물의 근원이 되십니다. 하나님은 모든 만물의 목적이 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삶의 여정 중에 일어나는 모든 사건들 속에 함께 하십니다. 예수님은 천지를 창조하시고 지배하시는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예기치 않은 광풍을 만날 때 주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어야 합니다. 우리가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일수록 주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어야 합니다.

둘째로 예수님은 사단의 세력을 파하십니다.

‘잠잠하라’는 말씀은 귀신을 내어 쫓을 때 쓰는 단어입니다. 사단은 예수님과 제자들을 바다에 빠뜨려 죽게 함으로 인류 구속 역사를 끝장내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사단이 결코 예수님이 타신 배를 파선시킬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사망 권세를 파하신 부활의 권능자이시기 때문입니다.

사단은 틈만 있으면 우리를 믿음에서 떠나도록 미혹합니다. 그러나 사망 권세를 파하신 예수님과 함께 있는 한 그 어떤 세력도 우리를 넘어뜨릴 수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간증했습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8:28).”

셋째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믿음으로 두려움을 극복하도록 하십니다.

예수님은 성난 광풍을 잔잔케 하시고 제자들을 위로하셔야 옳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40절을 읽겠습니다.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 예수님은 그들의 믿음 없음을 책망하셨습니다. 이는 풍랑이 문제가 아니라 나와 하나님과의 문제요, 믿음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광풍이 없을 때에는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 의심치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광풍 앞에서 하나님을 보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을 믿지 못했습니다. 이는 맑은 날씨에는 태양이 있지만 먹구름이 끼고 비바람이 칠 때에는 태양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과 같습니다. 청명한 날씨에도 태양은 떠 있고, 비바람이 치는 날에도 태양은 구름 위에 항상 존재합니다. 다만 구름에 가려서 보지 못할 뿐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우리의 상황에 따라 계시고 안 계시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나와 항상 함께 하십니다.

믿음이란 예수님을 신뢰하고 의지하는 것입니다. 믿음이란 어떤 상황에서도 사랑을 의심치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두려움 앞에 지금까지 체험한 믿음을 광풍에 다 날려 보냈습니다. 낮에 들었던 은혜로운 말씀을 다 잊어버렸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두려움 앞에 불신자처럼 되었습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말씀을 삶의 현장에 적용하여 두려움을 극복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말씀을 삶에 적용하지 못해 두려움을 이기지 못했습니다. 사람이 두려움에 사로잡힐 때 마음이 오그라들고, 손발이 마비되고, 생각이 부정적으로 됩니다. 원망하고 완악해집니다. 갑자기 얼굴이 어두워지고, 말과 행동이 거칠어집니다. 사람이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되면 능히 할 수 있는 것도 못합니다. 하나님은 이 두려움을 가장 싫어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쓰임 받기 위해서는 두려움을 반드시 극복해야 됩니다.
어떻게 극복할 수 있습니까? 주의 말씀이 내면에 있을 때 두려움을 아길 수 있습니다. 다윗은 그 생애에 많은 죽을 고비가 있었습니다. 그 때 그는 자신의 힘과 의지로는 내면의 두려움을 해결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힘 되신 하나님을 만났을 때 그의 내면에 모든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내가 그 안에 피할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로다(시18:1,2).” 예수님은 두려움을 물리칠 수 있는 근원이 되십니다.

넷째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믿음의 능력을 갖도록 하십니다.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 이 말씀은 믿음의 능력을 가지라는 말씀입니다. 믿음이란 능력입니다. 믿음이 있을 때 어떤 광풍에도 동요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믿음이 없으면 미풍 앞에서도 짠물을 마시고 익사하게 됩니다. 우리가 믿음만 있으면 어떤 인생의 광풍도 이기고 하나님 나라를 향해 힘차게 항진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으면 태산을 옮길 수 있고 역경을 이길 수 있습니다(막11:22). 히브리서 11장을 보면 믿음의 영웅들이 나옵니다. 그들은 믿음으로 세상을 이겼습니다. 그들은 믿음으로 연약함을 극복하고, 절망을 극복하고, 불가능을 극복하고 새 역사를 창조했습니다. 우리는 때로 자신의 모습과 한국의 현실을 볼 때 절망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믿음만 있으면 상황이 문제가 아닙니다.

지진의 원인은 활단층의 작용입니다. 우리 인간 사회에도 단층이 있고, 우리 내면에도 단층이 있습니다. 인간의 내면을 주도해나가는 단층은 감정입니다. 감정이 폭발한다는 것은 단층에 지진이 일고 해일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회의 주도적인 단층은 대학생들입니다. 역사의 근본을 뒤흔드는 활단층, 다시 말해 단층을 주도해 극기야 세상을 바꾸어 놓는, 지진을 일으키는 단층이 바로 진리를 사랑하는 대학생들입니다. 지금까지 세계사를 보면 이들이 진리를 위해 일어났을 때 인류 역사는 새로워졌습니다.

옥스퍼드의 홀리 클럽, 게임부리지의 세븐, 미국의 SVM 운동 등입니다. 우리 대학마을교회가 믿음으로 하나님의 복음을 위해, 구체적으로 송도 개척을 위해 기도하기를 기도합니다. 송도는 인천대, 연세대가 있고, 앞으로 인하대 이공대가 송도로 갈 예정입니다. 인하대생들은 인하대를 넘어서 송도를 개척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다섯째로 예수님은 제자들을 강한 믿음의 용사로 키우십니다.

예수님은 광풍 훈련을 통해서 광풍이 많은 시대에 요동치 않고 믿음의 용사들이 되기를 원하셨습니다. 사자가 백수의 왕자가 되고, 독수리가 하늘의 왕자가 되는 것은 우연히 되는 것이 아니라 피나는 훈련을 통해서 되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이 사건을 통해서 예수님을 기이히 여기고 예수님의 인격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심히 두려워하여 서로 말하되 그가 누구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가 하였더라(41).” ‘심히 두려웠다’는 것은 메카톤급의 경외심을 말합니다.

우리의 삶의 여정에 광풍이 닥친다 할지라도 원망하지 않고 기도하기를 바랍니다. 자연까지도 지배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고 실제적인 사건 앞에 요동하지 않고 믿음으로 난관을 극복해나가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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