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사순절 제 1 강, 고전15:1-3, 요절:15:3

우리 죄를 위해 죽으신 예수님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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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사회는 지식 정보사회에서 스마트 사회로 바뀝니다. 지식정보사회가 이성적인 자질과 정보의 다양성을 강조한 사회라면, 스마트 사회는 감성과 창의성을 강조합니다. 지식 정보사회는 나만 홀로 잘 하면 되었지만, 스마트 사회는 함께 잘 해야 합니다. 다시 말해 지식 정보사회가 ‘나’란 사회였다면, 스마트 사회는 ‘우리’란 공동체의 사고가 필요한 사회입니다. 스마트 사회는 ‘너’라는 의존적 단계와 ‘나’라는 독립적 단계에서 벗어나, ‘우리’라는 상호의존적인 공동체 의식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스마트 시대는 글자 그대로 스마트한 사회, 매력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사회입니다. 매력이란 매혹이나 미혹과 다릅니다. 스마트, 매력은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아 끄는 힘입니다. 예수님을 믿더라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마음을 사로잡아 끄는 매력 있는 신자가 되어야 합니다.

믿는 사람은 뭔가 끌리는 것이 있어야 합니다. 믿는 사람은 옷차림에서도 끌림이 있어야 합니다. 야한 옷차림은 사람의 마음을 미혹시키지만, 단정하고 맵시 있고 말쑥한 옷차림은 사람의 마음을 끌게 합니다. 무엇보다도 믿는 사람은 품성이 달라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주님으로부터 죄 용서함을 받아야 합니다.

본문은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경대로 우리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셨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비극적인 소식은 죄와 죽음의 소식입니다. 반면에 가장 기쁜 소식은 죄 용서함과 죽음을 이기고 영원히 살수 있다는 소식입니다. 예수님은 성경대로 우리의 죄를 위해 죽으셨습니다. 이로 인해 우리의 죄가 사해졌습니다. 역사 이래 우리의 죄를 용서하신 분은 예수님 밖에 없습니다. 이 시간에 죄를 용서하신 예수님을 만나 모든 불안과 두려움을 떨치고 은혜로운 삶을 살기를 기도합니다.

첫째, 바울이 전한 복음의 내용

사도행전 18장을 보면 바울의 고린도 개척기가 나옵니다. 당시 고린도는 거대한 신흥 항구 도시로 상업과 향락의 도시였습니다. 그곳은 물질적으로는 번영하였지만 도덕적으로는 타락하여 고린도는 방탕의 대명사였습니다. 당시 고린도의 아프로디테의 신전에는 1천명의 여사제들이 살고 있었는데 이들은 모두 창녀들이었습니다. 이곳은 복음 전하기가 힘든 곳이었습니다.

바울이 고린도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많은 핍박을 받았습니다. 바울은 두려움에 사로잡혀 위축되어 있었습니다. 그 때 “밤에 주께서 환상 가운데 바울에게 말씀하시되 두려워하지 말며 침묵하지 말고 말하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어떤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 이는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 하시더라(18:9,10).” 바울은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1년 6개월 동안 고린도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열심히 가르치고 전했습니다. 이로 인해 고린도에 큰 성령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1,2절을 보면 그들은 바울이 전한 복음을 받아들여 복음 위에 굳게 서있었습니다. 그런데 고린도 교회에 육은 추하고 영은 선하다는 영지주의가 파고 들어왔습니다. 이 사상은 예수님의 몸의 부활을 부정합니다. 그래서 고린도 교회 성도들 중에 몸의 부활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다시 한 번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전합니다.

3절을 읽겠습니다.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예수님은 우리 죄를 위해 죽으셨습니다. 무엇을 위해 죽으셨다고요?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위해 죽으셨습니다. ‘죄’란 헬라어 원어로 화살이 과녁에 빗나가다는 뜻입니다. 과녁에는 여러 크기의 원으로 이루어진 점수가 있습니다. 양궁에서 제일 가운데 원을 맞추어야 명중이고 가장 높은 점수를 줍니다. 물론 사격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은 과녁을 맞추려고 심호흡을 하고 쏘지만 과녁에서 멀리 빗나갑니다. 의로운 삶을 살기를 원하지만 하나님에게서 멀리 떠나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 나라의 법입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이 ‘하지 말라’는 법과 ‘하라’는 법이 있습니다. 죄란 ‘하지 말라’는 것을 하고, ‘하라’는 것을 안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보통 ‘하지 말라’는 것을 행하게 되면 죄를 지었다고 생각하고, ‘하라’고 한 것을 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죄로 여기지 않습니다. 그래서 ‘범사에 감사 하라. 항상 기뻐하라. 쉬지말고 기도하라. 이웃을 내몸과 같이 사랑하라. 남을 섬겨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복음을 전파하라’ 등의 적극적인 하나님의 계명을 행하지 않는 것을 죄 지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죄의 기준이 주관적이고 자의적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하라’와 ‘하지 말라’의 계명 중 어느 것 하나라도 어기면 죄가 됩니다(요일3:3).

뿐만 아니라 행동만이 아니라, 마음 속의 생각도 죄입니다. 우리는 흔히 행동으로 옮긴 것에 대해서만 죄를 지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행동으로 옮기기 이전의 생각에 대해서는 죄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마태복음 5장 21,22절을 보면 다른 사람의 목숨을 빼앗는 행위만이 죄가 아니라 형제에게 노하고, 마음속으로 분개하고, 적개심을 가지고 상대의 인격을 손상시키는 욕설과 비방하는 행위 속에 담긴 속사람을 지적하십니다. 이러한 행동 뒤에는 상대를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사람으로 인정하지 않는 악한 마음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음욕을 품은 자마다 이미 죄를 지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구체적으로 십계명을 어기는 것이 죄입니다. 십계명의 제 1 계명은 우리의 건강과 명예와 가족 등, 모든 것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더욱 커야 한다는 것입니다. 제 2 계명은 하나님께 대한 바른 예배는 하나님께서 계시하신 방식으로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제 3 계명은 우리가 자신의 부모의 존함을 함부로 말하지 않듯, 하나님의 존재와 성품을 가볍게 대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제 4 계명은 하나님께서 안식일을 주심은 하나님이 창조주이시고, 우리의 구원자라는 사실을 기억하고 하나님께 감사하며, 기쁨으로 하나님께 예배하고, 찬양하는 날로 지내라는 것입니다.

제 5 계명은 부모를 공경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를 낳아주신 부모님께 순종하고 잘 섬겨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직장 상사, 학교 선생님들, 교회의 목사님들과 교사들도 잘 섬겨야 합니다. 반면에 윗사람은 아랫사람을 사랑으로 돌아보아야 할 책임도 있다는 것입니다. 제 6 계명은 나 자신이나 혹은 다른 사람의 생명을 존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제 7 계명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가정의 순결을 지키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부부에게만 성적인 관계를 허락하셨습니다. 지금 한국이 성윤리가 무너져 사회 병리 현상이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제 8 계명은 도둑질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나 자신이나 다른 사람의 재산을 불법적인 방법을 사용하여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제 9 계명은 다른 사람의 명예를 존중하는 마음으로 말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제 10 계명은 우리의 삶 자체를 하나님이 주신 것으로 알고, 자족하는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욕심을 가지고 불만이 가득해서는 안 됩니다. 왜 지금 전세대란이 일어납니까? 탐심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주식 투기, 땅 투기, 아파트 투기, 투기는 다 불법적인 방법으로 재산을 증식하는 불법 행위입니다.

이상에서 볼 때 ‘죄’란 내가 정한 법이나, 다른 사람이 정한 법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정한 법을 생각과 말과 행동으로서 어기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마음과 생각과 행동 모두가 온전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몸과 마음이 깨끗하기를 원하십니다.

둘째, 죄의 결과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롬6:23a). 인간은 죄로 인해 일생 수고하다가 결국에는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세기의 미모의 여왕 엘리사벳 테일러도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러나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이라면 얼마나 다행이겠습니까? 죽음은 끝이 아닙니다. 히브리서 9장 27절에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라”라고 했습니다.

요한계시록 21장 8절을 보면 심판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행음하는 자들과 점술가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거짓말하는 모든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지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우리가 목욕탕에 들어갈 때 뜨거움을 최소한으로 줄이기 위해 발부터 서서히 담급니다. 그런데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진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이처럼 죄의 결과는 고통스럽고 무서운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죄를 짓는 순간에도 죄의식으로 뼈가 쇠하는 고통을 당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죄로 멸망할 인간들을 내버려두지 않으셨습니다. 3b절을 읽겠습니다.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예수님은 죄가 없으신 분입니다. 예수님은 근본 하나님의 본체십니다(빌2:6). 그런데 예수님은 우리 죄 때문에 영광의 면류관 대신 가시 면류관을 쓰셨습니다. 예수님은 나의 죄로 인해 많은 고통을 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내가 당해야 할 조롱과 멸시를 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사람들로부터 배척을 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죄가 없으심에도 불구하고 사형 판결을 받고 채찍질 당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머리에 가시면류관을 쓰시고 가시에 찔리셨습니다. 예수님은 군병들에게 조롱과 침 뱉음을 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은 70Kg의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오르셨습니다. 예수님은 골고다에서 십자가에 매달리셨습니다. 예수님의 손목과 발목에는 굵은 대못이 박혔습니다. 이 때 예수님의 몸은 뒤틀리고 경련이 일어났습니다. 물과 피가 쏟아지면서 극심한 갈증으로 목이 타들어갔습니다(시22:14,15).
사람들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보고 저마다 비웃었습니다. ‘자기도 구원 못하는 주제에 어떻게 남을 구원하겠다고 해!’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사람들로부터 버림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에게까지 버림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하나님께 버림받는 고통으로 절규하셨습니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막15:34)” 인간에게는 소속감의 욕구가 있습니다. 이게 결핍되면 자살까지 이르게 됩니다. 예수님은 사람들부터, 심지어 하나님으로부터도 버림을 받으셨습니다. 사람들은 이런 예수님을 외면했습니다.

셋째, 십자가에 죽으신 이유

첫째는 나의 질고와 우리의 슬픔을 담당하시기 위함입니다.

이사야서 53장 4절을 보겠습니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질고’는 질병의 고통을 말합니다. 세상에는 건강한 사람이 한 사람도 없습니다. 특히 경쟁 사회에서 오는 스트레스로 인해 각종 질병에 시달립니다. 사람들은 질병으로 인해 고독과 마음에 슬픔이 생깁니다. 예수님은 나의 질고의 슬픔을 담당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육신의 질고를 담당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스트레스로 인해 오는 모든 질고를 담당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무지와 교만으로 인한 영혼의 질고를 담당하셨습니다.

둘째는 나의 허물과 죄악을 담당하시기 위함입니다.

이사야서 53장 5,6절을 보겠습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우리가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허물’은 하나님께 대한 반역을 의미하고, ‘죄악’은 하나님 없이 사는 인간이 저지르는 불법을 가리킵니다. 인간은 허물과 죄악으로 인해 하나님과의 관계성이 끊어졌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진 인간은 꽃병에 꽂힌 꽃과 같이 생명이 없습니다. 자라고 싶어도 자랄 수 없고, 열매를 맺고 싶어도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간은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고 감사치도 않습니다. 하나님을 찾지도 않고, 하나님을 섬길 힘도 없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간은 결국 어리석은 우상 숭배자가 되며 더러운 정욕의 노예가 됩니다(롬1:21-23). 그러나 주님은 십자가에서 모든 죄와 허물을 담당하셨습니다.

셋째, 십자가를 믿는 자에게 나타나는 축복

첫째는 평화를 누립니다.

이사야서 53정 5b절을 보겠습니다.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예수님의 십자가는 화평의 십자가입니다. 에베소서 2장 14-17절을 보겠습니다.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법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을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 안에서 한 새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또 오셔서 먼 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시고 가까운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
인간은 죄로 인해 하나님과 원수 관계가 되었습니다. 하나님 앞에 나갈 수 없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과 교통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생명에서 끊어지게 되었습니다. 죄로 인해 인간 상호간에도 장벽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서로 불신하고 증오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인간을 불쌍히 여기시고 십자가상에서 모든 죄를 사하여 주셨습니다.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고 하나로 만드셨습니다. 하나님과 화목케 하셨습니다. 원수된 것을 소멸하셨습니다. 사람과 사이도 화목케 하셨습니다. 화평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고 사람과도 화목하게 하는 화평의 십자가 입니다.
둘째는 나음을 입습니다.

이사야서 53장 5c절을 읽겠습니다.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사람들은 죄와 허물로 인해 깊은 상처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이렇게 저렇게 받은 상처로 인해 남모르는 마음의 고통을 안고 살아갑니다. 상처는 시간이 간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환경이 바뀐다고 변하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의 뇌 구조를 보면 뇌간, 대뇌변연계, 대뇌피질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변연계는 희로애락을 관장하고 감정을 인식합니다. 변연계는 엄청난 에너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변연계가 각종 스트레스로 위축됩니다. 그리고 변연계의 편도에서는 부정적인 것들을 죽을 때까지 기억합니다. 슬픔과 상처가 무의식과 의식 세계에 남아 우리를 괴롭힙니다. 특히 죄로 인한 상처는 그 어떤 것으로도 지울 수 없습니다. 그러나 내 대신 채찍에 맞으시고, 가시에 찔리시고, 십자가에 피 흘리며 돌아가신 예수님께 나아가 고백할 때 모든 상처가 깨끗하게 치료됩니다. 예수님은 마음속 깊은 곳에서 곪아터진 상처까지 깨끗하게 치료하여 주십니다.

셋째는 죄의 용서를 받습니다.

누가복음 23장 34절을 보겠습니다.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극심한 고통 속에서도 자기를 십자가에 못 박은 죄인들을 용서해 달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사람들 사이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는 용서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용서가 없기 때문에 국가 간의 분쟁, 남북 간의 냉전, 동서 간의 지역갈등, 빈부의 갈등, 부부간의 갈등이 생깁니다. 서로 용서하지 못하여 정신적인 고통과 정신 질환을 앓습니다.

그래서 미국의 한 저명한 내과의사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나의 병원의 환자의 50%를 내가 퇴원 시킬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 그것은 약을 투입하는 것이 아니라 환자의 마음속에 용서의 마음을 주입하는 것이다.” 용서하지 못한 마음에 불행이 찾아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서로 용서해야 합니다. 폴틸리히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용서로 치유 받는 사람은 바로 용서하는 자이다.” 우리가 용서할 때 내면의 상처가 치유됩니다. 그래서 에베소서 4장 32절에서는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사실 용서한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나에게 상처와 고통을 준사람, 모함하고 배반한 사람, 자존심을 짓밟고 인격적으로 모독한 사람을 용서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용서하지 못하고 마음 깊은 곳에 비수를 품고 살아갑니다. 기회가 되면 원수를 갚고자 합니다.

우리가 어떻게 용서할 수 있습니까? 용서는 인간의 본성이 아닙니다. 나의 힘과 의지로 용서할 수 없습니다. 십자가에서 원수를 용서하신 예수님의 사랑을 영접해야 합니다. 우리가 십자가의 용서의 사랑을 받아들일 때 내 마음에 미움이 사라지고 평강을 누리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는 남을 용서하게 됩니다.

여러분은 미워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이 시간 그 사람을 위하여 용서의 기도를 드리기를 바랍니다. 이 때 미움이 사라지는 것을 경험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얼어붙은 마음이 녹고 사랑이 샘솟는 것을 체험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용서의 십자가 앞에서 용서의 기도를 드림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덧입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용서의 십자가입니다.

우리의 허물과 죄악을 단번에 대속하신 예수님께 나아가십시오. 모든 무거운 짐을 예수님께 내려놓으십시오. 이 시간 우리의 허물과 죄악을 대속하신 예수님께 슬픔과 상처를 다 내려놓습니다. 모든 상처와 슬픔을 주님의 십자가로 옮겨 놓습니다. 이제 나의 상처가 치료되었습니다. 주님의 은혜를 감사 찬양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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