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절(3) 말씀, 고린도전서 15:12-34, 요절, 15:22
믿는 사람들의 부활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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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물은 흘러 어디로 가고, 구름은 흘러 어디로 가나”라는 동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질문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과연 우리는 어디를 향해 흘러가고, 우리의 미래는 어떻게 되는가?”, “인류 역사는 어디를 향해 가고, 나의 궁극적인 삶은 어떻게 되는가?”, “죽은 이후의 세계는 어떠하며,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나는 가?”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루하루 먹고살기에 바빠서 이런 것들에 대해 별로 생각하려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배웠다고 하는 사람들조차 이런 것에 대해 생각하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한국의 교육 체계에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요즘 대학은 철학, 사학, 문명사를 가르치지 않고 실용학문 위주로 교육합니다.

어느 대학에서는 회계학이 모든 대학생들의 교양필수라고 합니다. 반면에 철학이나 문학이나 역사학 등의 학과는 아예 없애거나 축소시킨다고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삶이 무엇이고, 어떻게 사는 것이 의미가 있고 가치가 있는가를 생각할 수 있겠습니까?

철학은 오늘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말해 주고, 사상은 내일에 대한 삶을 말해 줍니다. 그리고 종교는 미래의 삶, 죽음 이후의 삶을 말해 줍니다. 그런데 철학도 없고, 문명사도 없고, 종교도 없으니 오늘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할 리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치열한 생존경쟁에서 낙오자가 되지 않으려고 정신없이 앞만 보고 달리다보니 우울증에 시달리게 됩니다. 지금 미국 청소년들의 1/3이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2020년에는 세계가 심장병환자 다음으로 우울증 환자일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는 한국도 예외는 아닙니다.

카이스트에서 금년 들어 4명이 자살을 하여 사회에 큰 충격을 주고 있습니다. 그들은 한결같이 중고등학교 때에 전교 1,2등을 하던 학생들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왜 그들이 목숨을 끊을까요? 항간에 우울증 치료를 받았다고 합니다. 왜 이처럼 21세기에 들어와서 우울증이 점점 심화될까요?

저는 자본주의에서 오는 치열한 생존경쟁에서 파생되는 모든 판단 기준이 가치 중심이 아닌 물량 중심에서 온다고 봅니다. 그러다 보니 치열한 생존경쟁에서 낙오자가 되지 않기 위해 정신없이 앞만 보고 달리다보니 우울증에 시달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미래보다 ‘지금’, ‘현재’, ‘여기에서’ 최대한 즐기자는 쾌락주의 증대에서 비롯된다고 봅니다.

그렇다면 과연 인간이 물량으로 판단될 존재입니까? 인간이 과연 가치가 아닌 가격으로 환산될 존재입니까? 인간이 과연 ‘지금’, ‘현재’, ‘여기에서’ 최대한 즐기다가 한줌의 흙으로 끝나는 존재입니까? 성경은 죽는 것은 모든 사람들에게 정한 이치이지만 죽음 이후에는 심판이 있고, 심판 이후에는 심판의 부활과 생명의 부활로 나타난다고 했습니다(요5:29).

그래서 바울은 우리에게 이렇게 권면합니다. “속지 말라 악한 동무들은 선한 행실을 더럽히나니 깨어 의를 행하고 죄를 짓지 말라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가 있기로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기 위하여 말하노라(33,34).” 이제 우리는 장차 나타날 부활의 소망을 가지고 절망의 자리, 낙심의 자리, 의심의 자리에서 일어나 소망이 넘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첫째, 부활의 필연성(12-19)

고린도 성도들 중에 예수님의 부활은 믿겠는데, 나 자신의 부활은 믿지 못하겠다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다시 말해 예수님의 부활이 나 자신과는 별개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비단 고린도 성도들만이 아닐 것입니다. 우리 중에도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나의 부활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 또한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부활은 나의 부활입니다.

바울은 이런 사람들에게 이렇게 책망합니다. 12절을 보겠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 전파되었거늘 너희 중에서 어떤 사람들은 어찌하여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이 없다 하느냐(12)?” 그러면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역사적 사건으로 받아들이면서도 자신의 부활을 믿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첫째는 지금까지 죽은 자가 부활하는 일이 없기 때문이고, 둘째는 상식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죽으면 어떻게 됩니까? 사람이 죽으면 부패의 과정을 거칩니다. 그래서 나중에는 다 썩고 뼈와 해골만 남게 됩니다.

그런데 어떻게 썩은 육체가 다시 살아날 수 있는가 입니다. 죽은 자가 산다는 것은 의학과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기 때문에 살아날 수 있었지만 사람들이 산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이성으로 믿을 수 있는 것만 믿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성경에 기록된 모든 것을 믿는 것입니다. 자기가 믿을 수 있는 것만 믿는 것은 예수님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혹자는 이렇게 질문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이해되지 않는 것을 다 믿을 수 있습니까?” 우리가 다 받아들여지고, 다 믿어지고, 다 이해가 되는 순간 그것은 신앙이 아닙니다. 우리가 믿어지지 않고 받아들이기 힘들기 때문에 하나님께 나가 무릎을 꿇고 지혜와 계시의 영을 달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죽은 자의 부활을 믿지 못하는 그들을 책망한 후,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가정법을 써서 죽은 자의 부활을 변증합니다.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다면 어떤 결과가 생깁니까?

첫째로 예수님의 부활이 없습니다.

13절을 보겠습니다.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지 못하셨으리라.” 바울은 사람이 다시 살지 못하면 그리스도께서도 다시 살 수 없다고 천명합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완전한 사람으로 이 땅에 오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죄가 없으시지만 우리와 똑같은 육신으로 태어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와 똑같이 목마르셨고 배고프셨습니다. 주님은 우리와 다를 바 없습니다.

그런데 육신이 다시 사는 일이 없다면 육신을 가진 그리스도께서 다시 사실 수 없습니다. 결국 사람의 부활을 인정하지 않으면 그리스도의 부활 또한 인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부활하심으로 사람이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삶의 지평을 저 세상, 하나님나라에까지 넓히셨습니다.

둘째로 우리의 전하는 것이 헛것입니다.

14,15a절을 읽겠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면 우리의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 또 우리가 하나님의 거짓 증인으로 발견되리니 우리가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다고 증언하였음이라.” 우리는 십자가와 부활의 주님께서 나를 구원하셨음을 감사하고 구원받은 은혜를 증거합니다. 우리는 기도할 때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해 죽으시고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셨음을 고백합니다. 우리는 사도신경을 암송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못한다면 우리의 믿음은 헛것이 되고, 우리의 전파하는 것도 거짓말이 됩니다. 우리의 성경 공부는 헛것이 되고, 우리는 모두 거짓 증인이요, 가짜 진리를 전하는 사기꾼, 거짓말쟁이들입니다. 우리 선교사들은 국제 사기꾼들로 모두 인터폴에 수배되어야 합니다.

셋째로 하나님은 무능한 자이십니다.

15b절을 읽겠습니다.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사는 일이 없으면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지 아니하셨으리라.” 만일 죽은 자들이 다시 사는 일이 없다면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지 아니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죽음 하나 해결하지 못하시는 무능한 자이십니다. 우리가 무능한 하나님을 믿으면 무능한 삶을 살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습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불가능에 도전할 수 있습니다.

넷째로 우리는 여전히 죄 가운데 있게 됩니다(16,17).

16,17절을 보겠습니다.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었을 터이요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죽은 자의 부활이 없다면 예수님의 부활도 없게 되고, 예수님의 부활이 없다면 예수님은 죄와 죽음의 세력을 정복하지 못하게 됩니다. 예수님이 죽음의 세력을 이기지 못했다면 여전히 죄와 사망이 우리를 지배하게 됩니다. 우리는 여전히 죄의 노예가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성경대로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심으로 우리는 죄와 죽음으로부터 영원히 해방되었습니다. 더 이상 죄와 죽음이 나를 지배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롬8:1,2).”
다섯째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들은 망하게 됩니다.

18,19절을 보겠습니다.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니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 많은 믿음의 성도들이 부활을 믿음으로 주님을 위해 생명을 초개 같이 버렸습니다. 초대 교회 순교자들은 사자 밥이 되기도 하고, 야간 투우장 경기의 조명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런 중에도 그들은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찬송가를 부르며 거룩한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이는 그들이 부활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이 믿음을 가졌을 때 그들은 이 세상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생명을 기꺼이 버렸습니다.

그런데 부활이 없다면 이보다 더 슬픈 일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우리가 부활이 없고 이생으로 끝나게 된다면 주님께 대한 충성과 헌신은 다 헛것이 됩니다. 주님께 드리는 시간과 물질이 아깝기 그지없습니다. 그리고 이생으로 끝난다면 우리는 이생의 허영을 쫓아 살 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 나라보다 이 세상이 그렇게 좋아 보일 수 없습니다. 그래서 허영에 쉽게 노출되고, 쉽게 허영의 나락으로 빠져들고, 주님이 오시면 다 사라질 것을 허영을 붙들고 살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생으로 끝날 존재가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가 우리를 기다립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죽음이 끝이라는 허무주의 무덤에서 나와야 합니다. 이제 우리는 죽음이 주는 절망의 무덤에서 나와야 합니다. 이제 우리는 이생으로 끝난다는 불신의 자리에서 일어나야 합니다. 이제 우리는 이생으로 끝난다는 한계적인 삶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이제 우리는 이생에서 하나님 나라로 옮겨가게 된다는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이제 우리는 장송곡을 부르는 죽음의 슬픔에서 기쁨과 환희와 생명으로 나와야 합니다. 기독교는 장송곡의 종교가 아니라 환희의 종교입니다.

둘째, 부활의 첫 열매(20-28)

그리스도의 부활이 믿는 성도들과 어떤 관계가 있습니까? 그리스도의 부활은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됩니다. 20절을 읽겠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첫 열매’란 열매의 대표요, 장차 맺힐 열매의 sign입니다. 사과나무의 첫 열매가 사과면 다음 열매는 반드시 사과가 맺힙니다. 예수님이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기 때문에 우리도 예수님과 똑같이 부활하게 됩니다. 아멘.

그리고 ‘첫 열매’란 하나님께 드린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성경에 보면 첫 열매는 하나님께 반드시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이 첫 열매를 받으시면 나머지 것도 다 받으신 것이 됩니다. 그리스도께서 죽었다가 다시 사셨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순종을 첫 열매로 받으신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그리스도의 순종을 받으셨다는 것은 우리의 죄를 다 용서하시고 의롭게 해 주셨다는 확실한 하나님의 증거입니다.

그러면 그리스도 한 사람이 부활했다고 해서 어떻게 죽은 자들이 다 부활할 수 있습니까? 21,22절을 보겠습니다. “사망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아담 한 사람의 불순종과 교만으로 이 땅에 죄와 사망이 들어왔습니다. 우리는 아담과 동일한 죄를 짓지 않았지만 아담 안에 있기 때문에 죄와 사망의 지배를 받아 왔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해 죽으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죽으실 때 나의 옛사람, 자아, 육신, 아담의 속성이 완전히 죽었습니다. 그리고 주님이 부활할 때 나도 부활했습니다. 예수님이 승천하셔서 하나님의 보좌 앞에 앉으셨습니다. 나도 주님과 함께 승천하여 하나님의 영광의 보좌에 있습니다. 이는 우리의 육의 몸이 죽고 부활의 몸, 새 사람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모든 사건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은 은혜입니다. 이를 대표 원리, 대신 원리라고 합니다.

23-25절을 보면 부활의 차례가 있습니다. 제일 먼저 부활의 첫 열매이신 그리스도이십니다. 둘째는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 예수의 부활을 믿는 신자들입니다. 예수님의 재림은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심판의 날이요, 믿는 자들, 곧 성도들에게는 부활의 날입니다. 영광의 날입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개개인의 생명을 살리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장차 우주에 놀라운 변혁을 가져옵니다.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26-28절을 보겠습니다. 부활 승천하셔서 하나님의 우편에 앉아 계신 그리스도께서 온 세상을 심판하시고 정사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아버지 하나님께 바칩니다.

그리스도께서 하나님과 그의 자녀들을 대적하던 마귀 권세와 사망 권세를 멸하시고 영원히 왕 노릇하십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인간 최고의 원수였던 사망이 멸망하게 됩니다.

죽음은 세상의 어떤 것보다도 인간을 가장 처절하게 지배해 왔습니다. 이 사망 권세는 젊은이들을 무기력하게 하고 노인들을 처량하게 만듭니다. 죽음은 세상을 갖은 죄악의 온상으로 만듭니다. 죽음은 인간을 비열하게 하고 추하게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부활하심으로 이 사망 권세를 파하셨습니다. 최후에는 죽음 자체도 영원히 없어집니다. 이때 만유가 하나님의 천지창조 질서대로 회복되고 예수님의 중보 사역도 끝나게 됩니다. 그 후에는 성삼위 하나님께서 만유의 주가 되어 길이길이 다스리게 됩니다. 이것이 우리가 그토록 그리던 하나님 나라, 새 예루살렘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우리만의 소원이 아닙니다. 로마서 8장 22절을 보면 피조물까지도 속으로 탄식하며 만유의 회복을 기다립니다. 목련도, 개다리도 만유의 회복되기를 고대합니다. 사슴도 울며 그날을 기다립니다. 헨델은 일찍이 이 만유회복을 소망하며 메시아 곡을 작곡했습니다. “할렐루야, 할렐루야, 주의 주, 왕의 왕 또 주가 길이 다스리시네. 영원히 영원히 영원히”

이때는 사자가 풀을 뜯고 어린양과 뛰놀고 어린이가 독사 굴에 손을 넣어도 물지 않습니다. 이곳은 방사능으로 인한 공포도 없고, 전쟁의 공포도 없습니다. 이곳은 영원히 참 안식과 평안이 있습니다. 희락과 화평의 생명수 강처럼 흘러내립니다. 우리는 이 나라를 소망합니다. 주님이 속히 오셔서 만유를 회복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셋째, 깨어 의를 행하고(29-34)

당시에 사후의 구원을 위해 대신 세례를 받는 풍습이 있었습니다(29). 이것은 죽은 자의 부활을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죽은 자의 부활이 없다면 죽은 자들을 위해 세례 받는 행위도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복음을 전하다가 많은 원수들을 만났습니다. 그 때 바울은 절망과 두려움에 떨어야 했습니다. 그때 사도 바울은 모든 것이 죽음으로 끝난다면 내일 죽을 터이니 먹고 마시고 놀겠다고 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럴 때마다 날마다 죽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바울에게 부활의 주님으로 찾아오셨습니다. 부활의 주님은 바울에게 힘과 용기를 주셨습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상황이 아닙니다. 상황은 언제나 좋은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부활의 믿음이 있으면 어떤 상황도 이길 수 있고 환경을 이길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언제 먹고 마시고 즐기게 됩니까? 미래에 대한 희망이 없을 때입니다. 미래의 희망이 없으면 삶의 의욕을 잃게 되고, 자기도 모르게 세상을 좇아 살게 됩니다. 당시 에베소에는 원형 경기장이 있었습니다. 여기에는 맹수들과 싸우는 검투사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부활신앙이 없었기 때문에 언제 죽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먹고 마시고 즐기는 것 외에는 아무 소망이 없었습니다. 부활 신앙이 없으면 쾌락주의자가 되든지 아니면 허무주의자가 됩니다. 그리고 사람이 극한 시련에 처하게 되면 모든 것을 포기하게 됩니다.

바울은 이런 사람들에게 권면합니다. “속지 말라. 악한 동무들은 선한 행실을 더럽히나니 깨어 의를 행하고 죄를 짓지 말라(33,34a).” 악한 동무들은 부활의 믿음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먹고 마시고 즐기는 데 인생을 탕진합니다. 그들은 본성이 원하는 대로 살아갑니다.
우리 또한 알게 모르게 이런 사람들의 영향을 받기 쉽습니다. 때론 이런 자들이 부럽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속지 말고 깨어 의를 행하고 죄를 짓지 말고 거룩하고 순결하며 적극적으로 복음을 전하는 삶을 살아야 됩니다.

우리는 부활신앙을 가진 자와 없는 자의 삶이 어떠한가를 살펴보았습니다. 우리가 부활 소망이 없을 때 고난 앞에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허무주의로 인한 쾌락에 빠져 향락주의로 전락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부활 신앙이 있을 때 더 이상 무겁고 딱딱하고 끌려가는 신앙생활을 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부활신앙을 소유하면 한계를 극복하고 힘찬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부활신앙은 결코 이론이 아니라 실제적인 삶을 움직이는 원동력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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