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보서 제 2 강 말과 행동

조회 수 2357 추천 수 0 2012.07.14 06:32:54
야고보서 제 2 강 문제 (1:19-27)

말과 행동

“너희는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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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아침에 일어나면 제일 먼저 화장실에 가서 거울부터 봅니다. 우리는 거울을 보며 자신의 얼굴에 묻은 때를 닦고 눈 꼽을 떼고 얼굴을 매만지고 옷매무새를 고칩니다. 거울은 우리의 외모를 알게 합니다.

우리의 내면을 알게 하는 거울도 있습니다. 그것은 말씀의 거울입니다. 성경은 양심의 거울, 영혼의 거울입니다. 말씀의 거울은 우리의 양심과 영혼을 비추어 줍니다. 말씀의 거울은 잊어버린 하나님의 형상, 나를 지으실 때의 본래 모습을 알게 해 줍니다. 말씀의 거울은 하나님께서 내게 의도하신 본래의 사명을 되찾게 해 줍니다.

우리는 매일 성경을 읽고 성경을 묵상합니다. 그럴 때마다 성경은 우리에게 울림이 되고 우리에게 감동을 줍니다. 성경은 우리의 잘못을 깨닫게 하고 회개하게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찬양하도록 하고, 하나님 앞에서 진실한 삶을 살도록 합니다.

그런데 우리들 중에는 말씀의 거울을 하루에 한 번도 보지 않는 분도 있습니다. 그리고 설령 말씀의 거울을 보더라도 자신의 잘못을 고치지 않고 예전 그대로 살아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야고보서는 그런 사람들에게 이렇게 권면합니다. “너희는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22).”

성경은 말씀을 듣기만 하고 행하지 않는 사람을 일컬어 자신을 속이는 이중적인 사람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오늘 말씀을 통해 말씀을 듣는 것으로 끝나지 말고 행하는 진실한 삶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첫째, 경청하라(19-21)

박노환 씨가 쓴 ‘경청으로 시작하라’는 책이 있습니다. 그는 “듣기는 의사소통의 절반을 차지한다”고 했습니다. 잘 들어야 서로 소통이 잘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경영 컨설턴트인 허병민 씨는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한 것인데, 이것은 “귀가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듣는 데서 나온다”고 했습니다. 귀가 너덜너덜할 때까지 들으라는 말은 어느 정도 들어야 하는지 짐작이 갑니다.

19절을 보겠습니다.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니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하며 성내기도 더디하라.”

성경은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되지도 않는 소리를 해도 들어주라는 것입니다. 통계에 의하면 사람들이 다른 사람의 말을 들을 때 약 17%가 자기 선입관을 정해 놓고 판단하며 듣는다는 것입니다. 상대방이 이야기하면 말은 안하지만 들으며 너 이것 틀렸다, 저것 틀렸다, 판단하며 듣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26%가 중간에 말을 자르고 자꾸 질문을 하여 이야기를 계속할 수 없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상대방의 이야기의 맥을 끊는 것입니다. 계속 질문하여 말을 연결시키지 못하게 합니다.

그 다음에 상대방의 말에 간섭하며 듣는다는 것입니다. 상대의 말에 조언을 하고 토를 단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이 35%라고 합니다. 이런 사람은 내가 너보다 좀 더 안다는 것입니다.

반면에 상대방의 감정까지 동정하며 듣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이 약 22%입니다. 말을 들으며 아, 그래요 하며 같이 눈물을 흘리고, 같이 탄식합니다. 같이 좋아 합니다. 이게 가장 좋은 경청의 방법입니다. 상대방과 대화하며 판단하지 말고, 질문 던지지 말고, 평가하지 말고, 조언하려고 하지 말고, 상대의 입장과 느낌을 동정하면서 듣고 결론은 하나님 말씀으로 내리는 것입니다.

한국 사람들은 대화하자고 해 놓고 나서 뒤끝이 안 좋습니다. 서로 감정이 상해 돌아섭니다. 다음 월요일에 청와대에서 이명박 대통령과 손학규 대표와 회담이 있다고 합니다. 대화를 하고나서 서로 헐뜯지 않기를 바랍니다. 사람들이 대화를 하고 나서 서로 마음 상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내가 스스로 결론을 내리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상대와 대화하고 나서 결론을 내려야 할 때에는 내가 스스로 결론을 내리지 말고 말씀으로 “하나님은 이럴 때 이렇게 말씀하신다”고 결론을 내려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어리석게 보이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전도서 5장 2-3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너는 하나님 앞에서 함부로 입을 열지 말며 급한 마음으로 말을 내지 말라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고 너는 땅에 있음이니라 그런즉 마땅히 말을 적게 할 것이라 걱정이 많으면 꿈이 생기고 말이 많으면 우매한 자의 소리가 나타나느니라.”
그리고 잠언 10장 19절에 이런 말씀도 있습니다. “말이 많으면 허물을 면하기 어려우나 그 입술을 제어하는 자는 지혜가 있느니라.”

여러분은 어느 부류에 속해 있습니까? 선입견을 갖고 듣습니까? 질문을 던져 맥을 끊어 놓습니까? 가르치려고 하는 토를 다는 사람입니까? 아니면 감정을 이입하며 듣습니까? 그리고 말씀으로 결론을 내립니까?

우리는 말씀을 경청하는 자세가 중요합니다. 디모데후서 3장 16절을 보겠습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더 나아가 경청은 마음 뿐 아니라 행동이 따라야 합니다. 우리가 대화를 할 때 동정과 더불어 실제로 도와줄 수 있으면 행동까지 따라야 합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너희가 다 마음을 같이하여 동정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불쌍히 여기며 겸손하며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이는 복을 이어받게 하려 하심이라”(벧전 3:8-9).

생테쥐페리가 쓴 ‘어린 왕자’를 보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사람의 마음을 얻는 일”이라 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말이 있습니다. “마음을 얻으면 천하를 얻는다.” 사람을 얻으려면 경청해야 합니다.

화이자의 사장 제프 킨들러가 세계적인 제약 회사 사장이 된 것은 ‘남의 말을 잘 들어주는 습관’이었습니다. 그는 틈만 나면 듣는 데 많은 노력과 시간을 기울였습니다. 우리가 남의 말을 경청하면 모두가 위대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보통 이런 말을 잘 합니다. “귀는 두 개이고 입은 하나이다. 왜 그러냐 하면 두 마디 듣고 한 마디 하라는 것이다.” 우리의 믿음도 ‘들음’에서 나온다는 것도 잘 압니다. 그런데 이게 잘 안 됩니다.

이는 듣지 않고 일방적으로 자기 이야기를 하기 때문입니다. 한 가정에서도 부부간에 가장 잘 들어줘야 되는데 그렇지 못합니다. 그래서 부부 싸움이 일어납니다. 그렇다면 왜 경청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는 상대방의 입장을 배려하고 옳은 말만 하기 때문입니다. 대화는 옳고 그름이 아니라 감성의 공유입니다. 감성이 공유해야 대화가 됩니다.

이런 유머가 있습니다. 어느 집에 골초 남편이 있었습니다. 부인은 남편에게 담배를 많이 피우면 건강에 해롭다고 끊도록 귀가 닳도록 잔소리 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아침 신문에 대문짝만하게 “담배를 많이 피우면 암에 걸린다”는 기사가 났고 전문가의 해설도 곁들여 있었습니다. 부인은 기뻐서 신문을 들고 가서 남편에게 “여보 오늘 신문에 담배를 많이 피우면 폐암에 걸린대요” 했습니다.

그러자 남편이 “그래? 사인펜 가지고 와요” 합니다. 부인은 금연이라고 할 줄 알고 기뻐서 사인펜을 가지고 갔습니다. 그런데 남편이 뭐라고 쓰냐 하면 “신문사절!” 그리고 이것을 대문에 붙이라는 것입니다. 부인이 기절초풍을 했습니다.

사람은 아무리 옳은 말이라도 일적으로 몰아붙이면 튀게 되어 있습니다. 튀면 대화가 안 됩니다. 감성이 통해야 합니다. 감성은 좌뇌가 아니라 우뇌입니다. 감성은 이성이 아니라 감성의 영역입니다.

대화를 할 때 나는 옳고 너는 틀린다고 하면 대화가 안 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도 그렇습니다. 내 생각과 내 뜻은 옳고 하나님의 말씀은 틀린다고 하게 되면 더 이상 하나님과 대화를 할 수 없습니다. 신앙생활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과의 대화입니다.

사람이 대화가 안 되면 화를 내게 됩니다. 사람이 분노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합니다(20).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옳으심을 인정하지 않고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자기가 옳다고 주장하는 것은 두 가지 이유입니다. 하나는 실제보다 포장된 것을 보여주고 싶어 하는 자기 포장, 둘째는 욕심과 열등감 때문입니다. 그래서 누가 나를 지적하면 당한 만큼 갚아주고자 합니다.

그러나 악한 분노를 버려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농부가 밭에서 잡초를 제거하는 것처럼 우리의 마음에 더러운 것과 악을 뽑아야 합니다. 그리고 영혼을 구원할 말씀의 씨를 심고, 온유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아야 합니다. 온유는 humble, 겸손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둘째, 말씀을 듣고 행하라(22-25절).

22절을 보겠습니다. “너희는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

말씀을 듣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말씀을 듣고 행해야 합니다. 그래서 이런 말이 있습니다. “성경은 읽어야 할 책이 아니라, 무릎을 꿇고 순종해야 할 책이다.”

왜 말씀을 듣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보다 중요한 것이 행하는 것일까요? 야고보는 거울을 예로 들고 있습니다. 23-25절을 보면 말씀을 듣고 행치 않으면 거울을 보고도 자신의 모습을 고치지 않는 것과 같다고 했습니다.

“누구든지 도를 듣고 행하지 아니하면 그는 거울로 자기의 생긴 얼굴을 보는 사람과 같으니 제 자신을 보고 가서 그 모양이 어떠한 것을 곧 잊어버리거니와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행하는 자니 이 사람이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

거울은 자신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 주는 반면에 나의 깨끗하지 못한 점을 보여 줍니다. 우리는 거울을 보고 이에 고춧가루가 끼였으면 고춧가루를 제거해야 합니다. 그런데 고춧가루를 제거하지 않고 그냥 히히거리며 다니면 안 됩니다.

성경은 흠 없고 점 없는 거룩하고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모습을 보여 주는 반면에 자신의 죄악을 보여 줍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에 자기의 죄를 회개하고 악에서 돌이키는 자가 복을 받게 됩니다.

당시 거울은 청동거울입니다. 뿌연 거울을 들여다보니 금시 잊어버립니다. 청동 거울은 율법입니다. 이제 우리는 밝고 선명한 복음의 거울을 보아야 합니다. 율법의 거울은 형식에 치우치기 쉽고 부담을 줍니다.

그러나 복음의 거울은 자신의 죄와 내면의 죄 소원까지 선명하게 보여줍니다. 또 죄 사함과 십자가의 용서함이 드러납니다. 그리고 말씀을 지키고 행하는 것이 복임을 알게 합니다. 그래서 자발적으로 말씀을 지키고 행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5-7장까지 길게 산상수훈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산상수훈 천국 백성이 누려야 할 금과옥조와 같은 말씀입니다. 그래서 천국의 마그나 카르타라고 불립니다.

예수님은 산상수훈의 결론 말씀은 이러합니다. 마태복음 7장 24-27절을 읽겠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초를 반석 위에 놓은 까닭이요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말씀을 듣는 것으로 끝나서는 안 됩니다. 말씀을 듣고 순종해야 합니다. 말씀이 나의 삶에 지배되기까지 말씀을 지키고 행해야 합니다. 우리가 말씀을 듣고 행할 때 어떤 역경 중에도 넘어지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순종할 때 어떤 시련의 때에도 흔들리지 않게 됩니다. 한 말씀이라도 듣고 행할 때 어떤 환난의 때에도 굳게 서게 됩니다.

셋째, 말씀을 다른 사람과 나눠라(26-27).

26,27절을 보겠습니다. “누구든지 스스로 경건하다 생각하며 자기 혀를 재갈 물리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을 속이면 이 사람의 경건은 헛것이라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그것이니라.”

‘재갈 먹인다’는 말은 야생마를 통제할 때 쓰는 말입니다. 재갈 먹이지 아니한 야생마는 제멋대로 날뛰지만, 재갈 먹인 말은 주인의 말을 순순히 따르는 유용한 동물이 됩니다.

사람이 하나님께 쓰임 받으려면 경건해야 합니다. 경건한 사람은 말만 번지르르하게 잘하는 것이 아닙니다. 경건한 사람은 절제합니다. 사람들은 말이 많은 사람을 보면 말만 그럴듯해, 천국에 가면 입만 구원 받을 거야 합니다.

경건한 사람은 말보다 불쌍한 사람은 섬깁니다. 경건한 사람은 나눔을 실천합니다. 당시 과부나 고아는 사랑과 돌봄이 필요한 대표적인 사람들이었습니다.

행복의 요인 중에 4가지가 있습니다. 성취감, 인간관계, 종교, 그리고 나눔입니다. 나눔의 원칙 중에 나눔은 나눌수록 커진다는 말이 있습니다. 복음성가 중에 ‘움켜지면 없어지지만 나누면 나눌수록 풍성해진다’는 성가가 있습니다.

♬사랑은 참으로 다 주는 것, 사랑은 참으로 다 주는 것, 이상하다 동전한 잎 움켜잡으면 없어지고, 쓰고 빌려주면 풍성해져 땅위에 가득 하네 오, 사랑은 참으로 버리는 것, 나누는 것, 다 주는 것♬

요한일서 3장 17-18절을 보겠습니다. “누가 이 세상의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 줄 마음을 닫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하겠느냐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아메리카 인디언들에게 부메랑이란 도구가 있습니다. 부메랑을 던지면 공중의 새를 딱 맞춰 새를 떨어뜨리고 부메랑은 도로 자신에게로 돌아옵니다. 내가 무슨 일을 하고 난 다음 그것이 도로 내게로 돌아오는 것을 부메랑이라고 합니다.

우리나라 미국 대사를 지낸 제임스 레이니 교수는 미국 에모리 대학교 켄들러 신학대학 교수로 재직하던 시절에 건강을 위해 매일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을 했습니다. 그가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가려면 고급 주택지를 지나가게 되었습니다.

고급 주택지의 벤치에 노인 한 사람이 늘 앉아 있었습니다. 아무도 그와 대화를 하지 않았습니다. 레이니 교수는 가다오다 이 노인과 같이 이야기를 해주고, 그 노인을 모시고 집에 데려다 주고, 정원의 잔디도 깎아주었습니다.

어느 날 아침에 노인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저녁때에도 벤치에 없었습니다. 이상해서 물어 보니 노인이 세상을 떠났다는 것입니다. 제이니 교수는 불쌍한 노인이 세상을 떠났다는 말을 듣고 참 안됐다며 장례식 날짜를 알아 장례식장에 갔습니다.

레이니 교수는 그때까지 그 벤치에 앉아있던 노인이 누군지 몰랐습니다. 2년 동안 서로 대화했는데도 그 노인은 자기 신분을 밝히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장례식장에 가서 알고 보니 그 노인이 코카콜라회사 회장이었습니다.

비서가 회장이 죽으며 유언장을 레이니 박사에게 주라고 했다며 유언장을 주는 것이었습니다. 그 유언장을 펼쳐 보니 뭐라고 썼는지 아십니까? “당신은 2년 동안 내 집 앞을 지나면서 나의 말벗이 되어준 좋은 친구였습니다. 나의 친구 레이니 고마웠습니다. 내가 당신에게 25억 달러 코카콜라 주식 5%를 유산으로 드립니다. 받아서 쓰십시오.” 25억 달라, 한국 돈으로 2조 8천만 원입니다.

레이니 교수는 그 돈을 대학에 기부하여 노인의 유산을 값지게 사용했습니다. 그로 인해 에모리 대학교는 급성장하며 남부의 명분 대학이 되었습니다.

심은 대로 거둡니다. 악을 심으면 악으로, 선을 심으면 선으로 돌아옵니다. 레이니가 노인의 친구가 되어주었더니 그분은 레이니에게 유산을 돌려주었습니다. 베푼 사랑은 반드시 돌아옵니다. 나눔은 눈덩이와 똑같습니다. 나눌수록 커집니다.

우리가 여기에서 주의할 것은 다른 사람을 돌보다가 자기를 지키지 않으면 안 됩니다. 다른 사람을 돌보며 자기 믿음을 지켜야 합니다.

믿음은 혀에 있지 않습니다. 믿음은 말에 있지 않습니다. 믿음은 행함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말하기보다 듣기를 즐겨하고 어려운 이웃과 물질을 나누고, 사랑을 나눠야 합니다. 우리가 말을 적게 하고 행함이 있는 성숙한 여러분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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