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제50강 바울의 일사각오

조회 수 3354 추천 수 0 2012.07.14 06:37:59
사도행전 제 50강(말씀 : 21:1-26 요절 21:13)

바울의 일사각오(一死覺悟)

“바울이 대답하되 여러분이 어찌하여 울어 내 마음을 상하게 하느냐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당할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 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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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성어 중에 일사각오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죽기를 각오하고 어떤 일이나 행동을 실천에 옮기며 사용하는 말이나 신념이나 혹은 행동을 뜻합니다.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살고 죽는 문제입니다. 건강이나 재산이나 명예나 행복이니 하는 것들은 그 다음에 따르는 2차적이거나 부차적인 것들입니다. 사람이 죽기를 각오하고 결행하는 가치나 일이 있다면 그것은 한 인간의 전체를 던져서 추구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일제 시대에 신사참배를 반대하다 순교하신 주기철 목사님은 시시각각 다가오는 신변의 위험을 직감하고 산정현교회에서 이 사자성어의 제목으로 설교하셨습니다. 목사님의 이 각오는 신앙의 순결과 정절을 지키겠다는 순수 신앙의 극치를 보여줍니다. 그리고 주 목사님은 일경의 참혹한 고문을 받으셨습니다. 그 참혹한 고문은 맨발로 못이 박힌 판자 위를 걷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목사님은 끝까지 믿음의 순결을 지켰고, 순교의 길을 선택했습니다. 목사님은 순교하시면서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소나무는 꺾여야 푸르고, 향나무는 찍혀야 향이 나고, 그리스도인은 순교의 피를 흘려야 아름답다.”

교회사를 보면 예수 그리스도를 생명의 구주로 믿고, 그 믿음을 자신의 생명을 바쳐서 지킨 많은 성도들이 있습니다. 멀리는 로마제국 시대요, 가까이로는 일본제국 시대입니다. 그리고 공산치하에서 많은 성도들이 생명을 바쳐 믿음의 순결을 지켰습니다. 한 인간이 자신이 믿는 신앙이나 신념을 표현하는 가장 강력하고도 분명한 태도는 일사각오의 자세입니다.

바울은 예루살렘으로 가지 말라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대답합니다. “여러분이 어찌하여 울어 내 마음을 상하게 하느냐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당할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 하니”(행 21:13). 우리는 본문을 통해 바울의 일사각오의 믿음을 배울 수 있습니다.

첫째,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행 21:1-16)

사도행전 21장 1-6절을 보면 바울은 밀레도에서 에베소 장로들에게 고별 메시지를 전하고 배로 고스(Cos)로 갔습니다. 고스에서 로도(Rhodes), 로도에서 바다라(Patara)로 갔습니다. 바다라에서 두로(Tyre)에 상륙했습니다. 두로는 예수님이 수로보니게 여인의 어린 딸을 고쳐주신 유명한 곳입니다(막 7:24-3).

바울은 두로에서 상륙하여 이레를 머물렀습니다. 바울이 두로에 머문다는 소식을 들은 제자들이 찾아왔습니다. 이를 볼 때에 예수님을 믿는 제자들이 사방에 흩어져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바울은 그들을 만나자 복음을 전했습니다. 바울은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만나는 사람마다 기회가 닿는 대로 복음을 전했습니다. 두로에서 제자들이 성령의 감동으로 바울에게 예루살렘으로 가지 말 것을 간청했습니다.

바울이 두로에서 여러 날 머물고 떠날 때 그들은 처자와 함께 바닷가에까지 나와 전송했습니다. 바울은 그들과 바닷가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했습니다. 바울의 기도의 특징은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것입니다(행 20:36, 21:5). 무릎을 꿇고 기도한다는 것은 하나님께 대한 복종의 자세입니다.

사도행전 21장 7-12절을 보면 바울은 두로에서 가이사랴(Caesarea)에 도착하여 일곱 집사 중의 한 사람인 빌립의 집에 거했습니다. 바울이 가이사랴에 거하는 동안 아가보라는 선지자가 바울의 띠를 가져다가 자기 수족을 잡아매고 성령께서 예루살렘에 가면 유대인들이 이 띠의 임자를 결박하여 이방인의 손에 넘기게 된다고 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그곳 제자들과 바울 일행은 바울에게 예루살렘으로 가지 말 것을 울면서 강력하게 호소했습니다(행 21:13). 성령은 이미 바울에게 예루살렘에서 환난과 핍박이 있음과, 각 성에서 결박과 환난이 기다린다고 증언할 것을 예고했습니다(행 20:22-23). 성령은 바울에게 환난과 핍박이 있음을 예고했지 바울에게 예루살렘으로 가지 말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바울이 예루살렘으로 가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요 성령의 방향입니다. 반면에 가지 말라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인간의 소원이요 생각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주는 그리스도시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신앙
고백을 들으신 후에 제자들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사흘 만에 살아나야 할 것을 비로소 그들에게 가르치시되”(막 8:31). 이 말을 들은 베드로가 예수님을 붙들고 항변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돌이켜 제자들을 보시며 베드로를 꾸짖으셨습니다.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막 8:33). 예수님이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심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반면에 예수님을 붙들고 죽으시면 안 된다는 베드로의 생각은 인간의 뜻입니다. 사탄은 베드로를 통해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지 못하게 미혹했습니다.

십자가 없는 영광은 사탄의 유혹 방법입니다. 십자가가 없는 신앙은 모두 가짜입니다. 신앙생활을 쉽고 편한 길을 제시하고 인도하는 것은 사탄의 속삭임이요 이단의 대표적인 미혹 방법입니다. 은사만을 강조하는 은사주의자들도 쉽게 신앙생활을 하고자 하는 데 있습니다.

사도행전 21장 13절을 보겠습니다. “바울이 대답하되 여러분이 어찌하여 울어 내 마음을 상하게 하느냐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당할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 하니” 사람들은 울며 바울에게 가지 말 것을 만류했습니다. 바울은 그들로 인해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감상주의에 빠지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결박이 기다리고 있는 예루살렘으로 가고자 했습니다. 바울은 예수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 받을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각오를 하고 예루살렘에 가고자 굳게 결심했습니다.

바울의 이 장렬한 모습은 예수님의 생각이 납니다. 누가복은 9장 51절을 보면 예수께서 승천하실 기약이 차가매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가기를 결심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가신다는 것은 쉬운 발걸음이 아닙니다. 예루살렘은 제자들로부터의 버림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조롱과 멸시, 침 뱉음과 천대, 배척과 채찍질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주와 수치의 십자가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모든 것을 아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가시기로 결심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자기 뜻을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고자 굳게 결심하셨습니다.

바울은 사도행전 20장 24절에서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했습니다. 바울은 분명한 사명이 있었습니다. 바울은 이 사명을 위해 생명을 조금도 아끼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목숨을 바칠 분명한 사명과 삶의 목적이 있었습니다.

사람이 실패하는 이유는 생명을 바칠 가치와 목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생명을 바칠 목적과 가치가 없기 때문에 빈둥빈둥 놀다가 아까운 젊은 시절을 다 허비한 후 헛살았다고 후회합니다. 우리는 이를 위해 죽어도 좋다는 분명한 목적과 가치관이 있을 때 결코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게 됩니다. 따라서 우리는 분명한 목적과 가치관을 정립해야 합니다.

우리가 목적과 가치관을 정했으면 이를 위해 죽을 각오로 전신전력을 해야 합니다. 호랑이도 토끼를 잡을 때 전력질주 합니다. 우리가 일을 할 때 반신반의하면 성취할 수 없습니다. 일본 격언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갈까 말까 하는 길은 가지 말고, 만날까 말까 하는 사람은 만나지 말고, 먹을까 말까 하는 음식은 먹지 말라. 그러나 사명을 위해 죽을까 말까 할 때에는 죽어라.” 사명 앞에 주저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사람이 분명한 목적과 가치관을 결정했으면 이를 위해 시간과 물질과 생명과 자신을 투자해야 합니다.

사람이 무슨 결심을 했으면 행해야 합니다. 죽음을 각오하고 행해야 합니다. 사람이 아무런 결정이 없이 그저 형편에 따라 행동하는 것은 인간답지 못한 행동입니다. 특히 신앙은 더욱 더 그러합니다. 신앙은 끌려 다녀서는 안 됩니다. 주님께 기도하고 결정했으면 예수님의 이름을 위하여 죽을 각오로 전심전력해야 합니다. 우리가 캠퍼스 선교를 위해 부르심을 받았다면 이를 위하여 시간과 물질은 말할 것도 없고 생명을 드릴 각오로 따라야 합니다.

11월 29일에 김 요한 목사님이 50년간 캠퍼스 사역을 위해 헌신하다가 명예롭게 은퇴하십니다. 그리고 은퇴 기념으로 학생운동사를 출간했습니다. 말이 50년이지, 50년간 한 길을 간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대학생 복음 사역은 배고픈 사역이고, 또 누가 알아주지 않는 사역입니다. 그래서 2,30대는 대학생 사역을 합니다. 그리고 이 일이 너무나 아름답고 뜻 깊은 사역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4,50대가 되면 모두가 지역교회 사역으로 전환합니다. 왜냐하면 이상과 현실이 일치가 안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김 목사님은 한 결 같이 캠퍼스 사역을 위해 50년간 걸으셨습니다.

싸울 때에 가장 무서운 사람은 칼도 아니고 총도 아닙니다. 죽을 각오로 달려드는 사람입니다. 사람이 생명을 걸고 싸울 때 가장 무섭습니다. 죽어도 상관없다는 식으로 달려들면 그 누구도 이길 수 없습니다.

요즘 ‘뿌리 깊은 나무’가 인기 중에 방영되고 있습니다. 세종이 한글을 만들 때 기득권 세력과 중화사상에 물든 관리들로부터 많은 도전을 받습니다. 그들은 글자를 만든다는 것은 오랑캐가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세종을 목숨을 걸고 도전했습니다. 그가 즐겨 쓰는 용어는 ‘지랄하고 자빠졌내’ 입니다. 세종이 목숨을 걸고 도전하여 한글이 창시된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바울이 예루살렘에 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냐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이 뜻을 위해 죽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면 그것은 헛된 죽음이 됩니다.

예수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세 번씩이나 고민하시고 기도하셨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는 것이 두려워서 피하고자 기도하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세 번씩이나 기도하신 것은 십자가를 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가를 물으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기도하신 후 십자가가 하나님의 뜻임을 확신했습니다. 예수님은 빌라도 법정에서 재판을 받고 골고다 언덕에 올라가 십자가에 죽으시는 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확신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가 하나님이 주신 뜻임을 확신했을 때 과감하게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바울 또한 예루살렘에 가서 핍박을 받고 결박당하고 이방인의 손에 넘겨지는 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확신했습니다. 바울이 결박을 당하여 이방인의 손에 넘겨 로마에 가는 것은 땅 끝 선교인 서바나까지 복음이 전해지게 됩니다. 이를 통해 사도행전 1장 8절이 이루어집니다.

바울은 어떻게 자기 생명보다 주님께 받은 사명, 곧 복음 증거 하는 일을 더 귀하게 여겼습니까? 이는 시편 63편 3절에 있습니다. “주의 인자하심이 생명보다 나으므로 내 입술이 주를 찬양할 것이라.” 바울이 주님께 받은 사명을 자기 생명보다 더 귀하게 여길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인자하심,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바울은 하나님이 피로 사신 교회를 핍박하고 주님을 믿는 이들을 잡아 죽이는 죄인의 괴수였습니다. 그가 예수님의 십자가의 보혈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을 깨닫고 경험했습니다. 그는 이 사랑에 감사하고 감격하여 주님께서 주신 사명, 복음을 전하는 일을 마침에 있어서 자기 생명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자기 생명보다 주 예수님께 받은 사명이 더 중하게 여겼습니다.

바울은 고난을 향해 나아갔습니다. 바울은 한 번 밖에 없는 목숨을 주님을 위해 드리고자 묵묵히 예루살렘으로 올라갔습니다. 예루살렘에 올라가지 말라고 권하였던 이들은 바울에게 “주의 뜻대로 이루어 지이다(The Lord’s will be done)”라고 하였습니다(행 21:14).

그들은 바울의 뜻을 받아 들여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기도하였습니다. 바울은 그의 일행과 여러 날 후에 여장을 꾸려 예루살렘으로 올라갔습니다(행 21:15).

둘째, 유대인 앞에서의 증거(행 21:17-26)

바울 일행이 예루살렘에 도착하자 형제들이 기꺼이 영접하였습니다. 그 이튿날 야고보에게로 가니 장로들도 다 함께 모여 있었습니다. 바울은 그들에게 하나님께서 그를 통해 이방 가운데 이루신 역사를 낱낱이 보고하였습니다. 그들은 이방인들이 회개하고 믿게 된 사실 뿐 아니라 이방 교회가 예루살렘 교회를 생각하여 보내준 구제헌금으로 인하여 더욱 감사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그런데 바울에게는 유대 신자들로부터 오해받고 있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당시 예루살렘에는 유대인 중에 믿는 수가 수만 명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다 율법에 열심이 있는 자였습니다. 이들은 할례를 행하고 모세의 율법을 지키면서 복음을 믿고 있었습니다. 이들 유대 신자들은 아직 복음의 진수를 깨닫지 못한 어린 신자들이었습니다.

이들은 바울이 이방에 있는 모든 유대인들에게 할례를 하지 말고 율법도 지킬 필요가 없다고 가르쳤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거짓된 것이었습니다. 바울은 오직 믿음으로만 의롭다 함을 얻는다는 복음을 가르쳤지 율법이 필요 없다고 가르치지 않았습니다(행 13:39). 바울은 로마서 7장에서 율법의 무용론 자들에게 율법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기 때문에 선하고 결코 폐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야고보는 그들이 오해를 풀도록 서원한 사람들과 함께 율법을 좇아 결례를 행하도록 권면하였습니다. 결례란 부정한 것을 정결케 하는 예식으로 보통 30일간 했으나 특별한 경우에는 7일간 했습니다. 그 시작과 끝에 머리를 깎고 그 기간 동안은 금욕적인 생활을 하고 기간이 차면 제물을 바쳤습니다. 바울은 율법주의자가 아니었지만 복음을 위하여 율법 아래 있는 유대인들을 얻기 이에 기꺼이 순종하였습니다. 바울은 복음을 위해서는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참 자유인이었습니다.

“약한 자들에게 약한 자와 같이 된 것은 약한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내가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습이 된 것은 아무쪼록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고자 함이니 내가 복음을 위하여 모든 것을 행함은 복음에 참여하고자 함이라”(고전 9:22-23). 그는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는 어느 것도 다 양보했습니다.

그러나 단 한 가지, 복음의 진리에 대해서만큼은 한 치의 양보를 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가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갈 1:9).

바울은 복음을 위해 생명을 아끼지 않는 사명에 살고 죽는 사람이었습니다. 바울은 사명을 위해 살고 주는 사명인이었습니다. 우리가 한번 밖에 없는 목숨을 주와 복음을 위해 드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우리가 죽을 각오를 하고 주님께 받은 사명을 완수하고는 거룩한 삶을 살기를 기도합니다.

♫환난과 핍박 중에도 성도는 신앙을 지켰네 이 신앙 생각할 때에 기쁨이 충만하도다 성도의 신앙 따라서 죽도록 충성하겠네♫(찬 336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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