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빛으로 오신 예수님

조회 수 2801 추천 수 0 2012.07.14 06:38:37
2011년 성탄 1 강(이사야 9:1-7, 요절 9:2)
큰 빛으로 오신 예수님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흑암의 그늘진 땅에 거주하던 자에게 빛이 비치도다”(사 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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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이란 지금까지 살아온 것보다 앞으로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입니다. 지금 자녀 세대는 열심히 일하여 안정된 터전을 마련한 부모세대 보다 더 나아질 기대가 10% 라고 합니다.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인해 양극화가 심해진 요즈음 연말을 맞으며 다른 어느 때보다 절망이라는 어두움이 우리 사회를 뒤덮고 있습니다. 그래서 미래가 불안한 샐러리맨들의 유일한 희망은 연금복권에 당첨되어 인생이 역전되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연말 연금복권 열풍이 불어 판매량이 급속도로 늘어 매주일 매진이 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전에 고통 받던 이들에게 더 이상 흑암이 없고, 멸시천대를 받던 이들이 명예롭게 되고, 흑암에 있던 이들이 큰 빛을 보게 된다고 선포합니다. 이 큰 전환점은 곧 한아기 예수님의 탄생으로 오게 되었다고 말씀합니다. 이 예수님은 큰 빛으로 오셨습니다. 이 빛은 거룩함과 의의 빛이요, 영광의 광채입니다. 예수님은 원초적인 생명의 빛입니다. 예수님은 존귀와 위엄의 빛입니다. 예수님은 구원에 이르게 하는 빛입니다. 예수님은 치료의 광선입니다. 예수님은 희망의 돋는 해입니다. 예수님은 길과 방향을 제시하는 삶의 빛입니다. 큰 빛 예수님을 만나 좌절과 절망을 이기고 희망의 성탄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1. 갈릴리를 영화롭게 하신 하나님(9:1-5)

이사야서 9장 1절을 보겠습니다. “전에 고통 받던 자들에게는 흑암이 없으리로다 옛적에는 여호와께서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이 멸시를 당하게 하셨더니 후에는 해변 길과 요단 저편 이방의 갈릴리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하나님은 앗수르로 하여금 갈릴리를 멸시 받게 하셨습니다. 앗수르는 B.C. 734년에 갈릴리 북방을 침략하여 스불론과 납달리 온 땅을 초토화시키고, 그 백성들을 사로잡아 앗수르로 끌고 갔습니다(왕하 15:29).

또 앗수르는 이민정책을 써서 그들을 혼합화했습니다. 그들은 종교와 문화까지도 혼합화했습니다. 그러다가 B.C. 722년에 앗수르는 갈릴리를 점령했습니다. 그래서 순수 이스라엘 사람들은 갈릴리 사람들을 이방의 갈릴리라고 멸시하고 조롱했습니다(요 7:52).

갈릴리가 멸시를 받게 된 것은 그들의 죄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의 왕 베가는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했습니다. 그는 여로보암의 죄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왕하 15:28). 여로보암은 북이스라엘의 초대 왕입니다. 그는 불의한 방법으로 정권을 잡은 후 이스라엘을 남북으로 나눴습니다. 그는 왕이 되자 하나님께 두 가지 큰 죄를 범했습니다. 첫째는 예루살렘 성전에 가서 예배를 드리지 못하도록 금송아지를 만들어 섬기도록 한 것입니다. 둘째는 산당을 만든 것입니다. 산당(high place)은 우상숭배의 장소입니다. 그들은 이곳에서 우상에게 제사를 드리고 뒤풀이로 음란 축제를 벌였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북이스라엘을 앗수르로 하여금 징계하시고 멸시를 받게 하셨습니다. 멸시를 받게 하다(humbled)는 겸손하게 하였다는 뜻입니다. 겸손의 반대는 교만입니다. 성경에서 교만은 하나님을 멸시하고 자기 멋대로 사는 것을 말합니다. 교만은 하나님 말씀을 버리고 자기중심으로 사는 것입니다. 교만은 하나님보다 우상을 섬기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앗수르의 채찍을 가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채찍을 맞을 때 마땅히 회개해야 옳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오히려 더 교만하고 완악하여 하나님을 대적했습니다. 그들은 무슨 문제가 생기면 하나님께 기도하기보다는 신접한 자와 마술사를 찾았습니다(사 8:19-22). 그 뿐만 아니라 이사야서 9장 10절을 보면 “벽돌이 무너졌으나 우리는 다듬은 돌로 쌓고 뽕나무들이 찍혔으나 우리는 백향목으로 그것을 대신하리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징계하고 심판하려면 해보라며 하나님께 대적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징계를 우습게 여겼습니다. 이로 인해 그들은 앗수르에 점령을 당하여 헤매고 주리고 곤고하게 되었으며 땅을 굽어보아도 환난과 흑암과 고통만이 계속될 뿐이었습니다(사 8:21-22). 그러나 이사야는 이런 절망적인 중에 하나님께서 이방의 갈릴리를 영화롭게 하실 비전을 보았습니다. 고통을 받던 그들에게서 흑암이 물러가고, 그들을 영화롭게 하시겠다는 하나님의 비전을 보았습니다.

‘영화롭게 한다’는 것은 honor로, 명예를 회복시켜 위대하게 하시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멸시 받던 백성들에게 명예를 회복시켜 존경과 사랑을 받도록 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그들이 어떻게 영화롭게 됩니까?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하던 자에게 빛이 비치도다”(사 9:2). 이사야 선지자는 큰 빛이라고 했습니다. 큰 빛이라고 한 것을 보면 세상에는 ‘작은 빛’들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세상에는 태양 빛보다 큰 빛은 없습니다. 태양이 떠오르면 별빛과 달빛이 그 효력을 발할 수 없습니다. 태양이 떠오르면 작은 빛들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이처럼 큰 빛은 어두움을 근본적으로 물리칩니다. 흑암은 어두움입니다. 어두움은 빛의 반대입니다. 어둠은 성경에서 사단이 지배하는 세상을 말합니다. 사람이 어두운 곳에 살다 보면 어두움이 무엇인지조차 모릅니다. 그리고 빛으로 나오기를 싫어합니다.

사람이 빛 앞에 나오기를 싫어하는 것은 무엇인가 켕기는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무언가 켕기는 것이 있을 때 사람을 피하게 되고, 어두운 곳에 들어가려고 하며, 또 모든 것을 감추려고 합니다. 아담이 죄를 범했을 때 제일 먼저 취한 행동은 무화과나무 밑에 숨은 것입니다. 이는 자기 죄악 된 행위가 드러날 것 같은 두려움 때문이었습니다. 이때부터 인간은 빛으로 나오기를 싫어하고, 말씀 앞에 나오기를 부담스러워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를 거부했습니다. 성경은 이것을 가리켜 ‘흑암에 앉은 백성’, ‘죽음 안에 있는 존재’, ‘어두움에 속한 존재’라고 했습니다.

어두움에 속해 있는 사람은 음침한 사망의 골짜기에서 초조와 불안으로 고통스럽게 삽니다. 그리고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해 방황하게 됩니다. 역동적이고 창조적인 밝은 자화상을 갖지 못합니다. 자기 자신의 위대함도 보지 못하고, 남의 위대함도 보지 못합니다. 젊음의 높은 기상과 기백을 한 번도 써 보지 못하고 자신을 자학하고 부모와 사회를 원망하는 데 다 소진해 버립니다.

하나님이 없는 세계는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아 있는 것과 같습니다. 죽음의 세력에 지배당하고 있습니다. 죽음의 세력은 부정적이고 절망적입니다. 주로 ‘무’자와 ‘허’자, 그리고 ‘절’자 돌림입니다. 무의미, 무기력, 무능력, 무표정, 허무, 허탈, 허망, 좌절, 절망 등이 지배합니다.

성경에서 큰 빛은 예수님을 가리킵니다. 예수님이 지배하는 세상은 거룩함과 의입니다. 영광의 광채입니다. 하나님께서 “빛이 있으라”(창 1:3) 하시매 빛이 있었습니다. 이 빛은 예수님의 원초적인 생명의 빛입니다. 이 빛은 예수님의 존귀와 위엄의 빛입니다. 이 빛은 예수님의 영광의 빛입니다.

바울은 “어두운 데에 빛이 비치라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느니라”(고후 4:6)고 하였습니다. 이 빛은 예수님 안에 있는 생명의 빛입니다. 베드로는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벧전 2:9). 이 빛은 예수님의 구원의 빛입니다. 말라기서는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공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비추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 같이 뛰리라”(말 4:2)고 했습니다. 이 빛은 예수님의 치료의 광선입니다.

큰 빛 되신 예수님은 길과 방향을 제시해 주십니다. 사망의 길은 넓은 길로 인도하시지 않고 생명의 길인 좁은 길로 인도합니다. 어떤 종교는 윤회설을 주장하기 때문에 돌다 보면 헷갈리게 됩니다. 그러나 큰 빛이신 예수님은 방향이 분명하고 시작과 종말이 분명합니다. 성경의 첫 마디는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 1:1)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말씀은 “이것들을 증언하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계 22:20)입니다.

요즈음 젊은이들이 ‘무’자, ‘절’자와 ‘허’자가 지배하여 무기력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생명력이 없고 삶의 의욕이 없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삶의 방향이 없습니다. 삶의 방향이 없기 때문에 희망과 비전이 없습니다. 삶의 의욕이 없어 초조하고 불안합니다. 그리고 한 번 죽으면 그만이라는 깊은 회의로 인해 쾌락에 탐닉합니다. 지옥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이런 삶이 지옥입니다. 하나님이 없는 삶은 장차 지옥에 가는 것이 아니라 이미 지옥에 살고 있습니다. 허물과 죄로 죽을 존재가 아니라 이미 죽은 존재입니다. 또 한이 많아 한 풀이를 합니다. 그 한 풀이가 증오와 미움입니다..

그러나 큰 빛 되신 예수님, 생명의 빛, 소망의 빛, 능력의 빛, 영광의 빛이 우리에게 임하면 우리의 썩은 얼굴, 우리의 썩은 마음, 우리의 썩은 눈이 얼굴이 광채가 나고, 썩은 눈동자가 빛나는 눈동자, 우리의 썩은 마음이 밝은 마음의 창으로 변합니다. 죄와 죽음이 주는 모든 권세로부터 벗어나 자유를 누리고 밝고 빛난 삶을 살게 됩니다. 상처 받은 마음이 치료가 되고 우울증이 치료됩니다. 정을 통하는 눈이 거룩한 눈으로 변합니다. 기쁨과 영광과 찬양이 넘치는 삶을 살게 됩니다.

큰 빛 되신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은 모두가 위대한 삶을 살았습니다. 사도행전 9장을 보면 사도 바울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죽이는 데 앞장섰던 사람이었습니다. 그 때 그의 눈에는 살기가 등등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다메섹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의 영광의 빛을 만났습니다(행 9:3). 강력한 빛은 신비한 빛, 상상할 수 없는 빛, 이해할 수 없는 빛, 생명의 빛이었습니다. 이 생명의 빛, 예수님의 영광의 빛이 그에게 임했을 때 그의 분노의 눈초리와 분노심이 치료되어 은혜와 긍휼의 눈빛과 밝고 빛난 사람으로 변화되었습니다.

요한복음 9장을 보면 날 때부터 소경된 거지가 나옵니다. 그는 한 없이 운명적이었으며, 슬픔 자체였으며, 비참 그 자체였습니다. 그러나 그가 빛 되신 예수님을 만났을 때 그를 지배했던 운명과 슬픔이 사라지고 밝은 자화상을 갖게 되었습니다.

우리나라는 외세의 침략과 가난과 질병으로 희망이 없었습니다. 울밑에 선 봉선화같이 처량하게 눈물을 흘리던 슬픈 민족이었습니다. 그러나 큰 빛 예수님께서 한국에 비췄을 때에 한 많고 눈물이 많던 백성들을 소망의 나라로 복을 주셨습니다. 선교사를 받던 데서 이제는 선교사를 파송하는 나라로 복을 주셨습니다. 큰 빛 예수님께서 무시 받고 천대받던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비췄을 때 그들이 운명을 극복하고 위대한 삶을 살았습니다. 연세대 총장이었던 백낙준 박사는 백정 출신의 가문에서 태어났습니다. 그 분은 가난과 운명으로 슬픈 눈물을 흘리며 살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큰 빛 예수님을 만났을 때 많은 사람들이 존경하는 인물이 되었습니다.

큰 빛 되신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서는 회개해야 합니다. 회개란 무엇입니까? 흑암에서 큰 빛으로 나오는 것입니다. 사망의 그늘 가운데서 생명으로 나오는 것입니다. 큰 빛 되신 예수님께로 나오기 위해서는 생각을 전환하고, 의견을 전환하고, 자기 삶의 방법을 전환해야 합니다. 자기 삶의 스타일을 전환하고, 자기 행동을 바꿔야 합니다.

우리가 회개하려면 자기 자신을 분해해야 합니다. 죄를 짜야 합니다. 자기 죄를 찌르는 고통과 아픔을 맛보아야 합니다. 자존심을 깨야 하는 아픔을 감당해야 합니다. 그리고 욕심을 버려야 합니다. 욕심이 잉태한 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하여 사망을 낳습니다. 그러므로 물질에 대한 욕심, 명예와 정욕에 대한 욕심, 권세에 대한 욕심을 돌이켜야 합니다. 물질과 명예와 권세와 정은 선한 것이지만 욕이 있는 것이 문제입니다. 회개한다는 것은 바로 욕자를 빼는 것입니다.

우리는 물질욕을 회개해야 합니다. 말라기서 3장 7절을 보면 하나님께로 돌아오려면 십일조를 철저히 하도록 명령하고 있습니다. 십일조는 봉급의 십일조뿐만 아니라 모든 소득의 십일조를 포함합니다. 이것을 지키지 않을 때 금융 실명제는 효과를 거둘 수 없고, 부정부패가 사라질 수 없습니다. 그러나 철저하게 십일조를 드리면 금융 실명제를 하지 않아도 물질 문제가 투명하게 됩니다. 십일조는 그 사람의 삶의 투명성과 청지기 자세를 갖도록 합니다. 우리는 욕으로부터 회개해야 합니다. 회개할 때 생명의 세계, 은혜의 세계, 빛의 세계를 맛볼 수 있고, 천국을 소유할 수 있습니다. 천국은 다가올 종말론적인 하나님 나라 뿐만 아니라 회개하고 예수님을 영접하는 그 순간이 천국입니다.

우리가 큰 빛 예수님을 영접하면 창성하게 됩니다. 즐거움이 더합니다. 그 즐거움이 추수하는 즐거움과 탈취 물을 나눌 때의 즐거움을 맛보며 살게 됩니다(사 9:3). 그리고 억눌림에서 자유를 누립니다(사 9:4-5). 죄의 멍에가 풀립니다. 죄와 사단의 억눌림에서 참 자유와 기쁨을 누리게 됩니다. 성탄에 큰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만나기를 기도합니다.

2. 한 아기로 오신 예수님(6-7)

이사야서 9 장 6절을 보겠습니다.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매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이라.” 한아기로 오신 예수님이 임하는 곳에 인생의 놀라운 전환이 일어납니다. 그러면 한아기로 오신 예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첫째로 예수님은 기묘자가 되십니다. 기묘자란 영어로 wonderful입니다. 이 아기는 기묘하신 분, 놀라운 분이라는 것입니다. 황우철 목자가 예수님을 믿는 것도 기묘한 역사입니다.

둘째로 모사가 되십니다. 모사란 말은 counselor 즉 상담자란 뜻입니다. 우리 인생들은 상담자가 필요합니다. 물질문명, 컴퓨터 문명이 발달한 오늘날은 상담자가 더더욱 절실히 필요합니다. 젊은이들에게는 고민이 많습니다. 허무와 불안과 두려움으로 고통하고 있습니다. 복잡한 가정환경, 갑자기 닥친 어려움으로 인해 어찌해야 할 바를 모르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문제를 풀어줄 상담자를 필요로 합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확실한 해결책을 제시해 주는 상담자가 되어 주지 못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런 우리에게 상담자가 되어 주십니다. 예수님은 지혜가 필요한 자에게 지혜를, 위로가 필요한 자에게는 위로를, 힘이 필요한 자에게는 힘을 주십니다. 예수님은 세상을 떠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그는 진리의 영이라”(요 14:16-17전). 예수님은 카운셀러가 되어 주셔서 우리 민족이 나아가야 할 길, 내가 가야 할 길을 분명하게 제시하여 주십니다.

셋째로 전능하신 하나님이 되십니다. 예수님은 한 아기로 오셨지만 본질에 있어서는 하나님과 동등한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사망의 권세를 파하시고 부활하신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연약한 인간에게 무한한 힘과 능력을 공급해 주시는 힘의 원천이 되십니다.

사도 바울은 이 예수님을 믿었을 때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 4:13).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을 때 두려움이 없습니다. 예수님을 믿을 때 한계가 없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의지할 때 우리는 불가능한 장벽을 뛰어넘어 위대한 역사를 창조할 수 있습니다.

넷째로 영존하시는 아버지이십니다. 아버지는 자녀들의 보호자요, 사랑으로 양육하시는 분이십니다. 아버지는 의지의 대상이요, 모든 것을 채워 주십니다. 그래서 아버지가 없는 가정은 울타리가 없는 집처럼 슬프고 외롭습니다. 좀 부족하고 능력이 없는 아버지라도 아버지가 계셔야 든든합니다.

그런데 우리의 아버지는 유한하여 언젠가 우리의 곁을 떠나십니다. 그리고 아버지는 능력의 한계가 있습니다. 마음은 원이지만 능력의 한계로 인하여 상처를 주기도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시공간을 초월한 영원한 아버지가 되십니다. 변함없이 우리를 도우시고 보호하여 주십니다. 우리는 이 영존하시는 아버지를 의지할 수 있습니다.

다섯째로 평강의 왕이십니다. 예수님은 세상의 왕이나 권력자들처럼 공권력으로 다스리지 않으시고 평강의 왕이 되십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다스리되 목자로 우리를 다스리고 사랑과 공의와 평화로 다스리십니다. 평강의 왕 예수님이 다스리실 때 이 땅에는 평화가 임하게 됩니다.
큰 빛이 비취게 되면 순식간에 어두움이 물러갑니다. 큰 빛은 죽음의 그늘에 앉은 백성들에게는 생명의 빛이요, 절망 중에 있는 백성들에게는 희망의 빛이 됩니다.

큰 빛 예수님은 우리의 소망입니다. 소망의 예수님은 절망을 소망으로 바꿔주십니다. 생명의 빛 예수님은 좌절을 용기로 샘솟게 하여 주십니다. 치료의 광선 예수님은 정욕과 탐욕으로 병든 우리를 치료하여 주십니다. 예수님은 큰 빛으로 오셨습니다. 예수님의 이 생명의 빛, 희망의 빛, 소망의 빛을 영접하고 비전과 소망이 넘치는 삶을 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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