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너희는소금이요빛이라(마5:13-16)

조회 수 2629 추천 수 0 2012.07.14 06:39:16
2012년 마태복음 5:13-16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요 세상의 빛이라

“너희는 세상이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뿐이니라”(마 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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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의 목적과 사명이 무엇입니까? 주님께서 주신 명령을 잘 순종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데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 교회는 오히려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고 있습니다. 교회가 교회답지 못하고,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인답지 못하고, 목사가 목사답지 못하고, 장로가 장로답지 못하고, 집사가 집사답지 못하고, 전도사가 전도사답지 못하기 때문에 불신자들로부터 조롱을 당하고 손가락질을 받고 있습니다. 세상에 대해 영향력을 끼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한국 교회에 정말 소망이 있는가? 질문하며 소망이 없다고 합니다.

그러나 한국 교회에 소망이 있습니다. 우리에게 소망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온전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온전하지 못하고 연약하고 부족하고 형편이 없지만 온전하신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한국 교회는 소망이 있고 우리 또한 소망이 있습니다. 우리가 착한 행실로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된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될 자격이 전혀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요 세상의 빛이다”고 선포하셨습니다.

착한 행실이 구원의 조건과 전제가 아닙니다. 우리가 세상의 소금과 빛이기 때문에 구원 받은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 받았고 천국 백성이 되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착한 행실로 빛과 소금의 되려고 할 것이 아닙니다. 이미 세상의 소금이요 빛이기 때문에 세상 속에서 그 역할을 다 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세상의 소금과 빛으로서의 역할이 무엇입니까?

1.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라(13)

13절을 보겠습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
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You are the salt of the earth. But if the salt loses its saltiness, how can it be made salty again? It is no longer good for anything, except to be thrown out and trampled by men.-” 예수님은 너희는 소금이 되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요즘 흔한 것이 소금입니다. 그래서 소금의 가치를 잘 모릅니다. 그러나 소금은 우리 삶에서 결코 빠뜨릴 수 없는 중요한 생필품입니다. 인간의 체액 속에 염분이 있고, 혈액 속에도 염분이 0.9%나 들어 있습니다. 우리의 피에 염분이 없으면 맥이 없어서 살 수 없습니다. 그래서 군에서 행군할 때 땀을 많이 흘리기 때문에 반드시 소금을 지참합니다. 소금은 우리의 삶에 절대 필수품입니다.

고대에서는 이 소금을 얻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고대 로마는 병사들에게 급료로 소금을 주었습니다. 여기에서 salary(봉급), soldier(병사), salad(소금에 절인 salted)’란 단어가 나왔습니다. 이런 모두가 sal(소금)이라는 라틴어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성경에 소금 이야기가 30 여 곳에 나옵니다.

그리고 유대의 격언에 “소금이 없으면 세상은 살아갈 수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들은 그만큼 소금을 소중히 여겼습니다. 양에게 소금을 먹이지 아니하면 양이 기운을 차리지 못합니다. 소금이 꼭 필요합니다. 로마 사람들의 격언에도 “세상에 없어서는 안 될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태양이고, 다른 하나는 소금이다”고 했습니다.

이런 소금이 기능을 다 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를 작용해야 합니다. 하나는 녹아야 합니다. 녹아 형체가 없어져야 합니다. 소금의 형체가 없어지지 않으면 소금 구실을 못합니다. 동시에 소금은 녹아 없어지면서도 제 맛을 지켜야 합니다. 본질을 잃지 않아야 합니다. 형체는 없어졌으나 본질이 살아있어야 소금입니다. 다시 말해 소금은 다른 물체에 영향을 주지만 자신은 영향을 받지 않아야 합니다.

우리는 소금이 썩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소금이 녹아서 다른 물체에 영향을 주지만 본질이 변해서 시금털털한 것 보지 못했습니다. 소금은 썩어질 물체를 썩지 않게 할 수는 있어도 썩어질 물체 때문에 자기가 썩는 일은 결코 없습니다. 소금은 자기 맛이 변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강조하십니다.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소금이 제 맛을 잃어버리면 거름으로도 쓸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일생을 소금의 삶을 사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우리를 화목케 하시기 위하여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예수님은 조롱과 비방의 표적이 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으시면서 십자가에 못 박는 저들을 용서하셨습니다. “아버지여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 23:34).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그 모진 고통과 조롱과 비방을 받으면서도 용서와 화목의 본질을 지키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소금처럼 녹아 없어져라. 그러나 크리스천의 본질은 그대로 지켜라.” 그러면 소금의 구체적인 역할이 무엇입니까?

첫째, 소금은 방부제 역할을 합니다.

예수님은 너희는 세상의 설탕이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이 “너희는 설탕이니,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달게 하리요?” 하셨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달게 하는 제품은 설탕 말고도 많이 있습니다. 울릉도 호박엿, 한국의 토종꿀이 있고 요즘에는 쓰지 않지만 당원이니 사카린 등이 있습니다. 세상에는 당료의 재료가 많습니다. 그리고 설탕은 오히려 음식물의 부패를 촉진시키는 촉매 역할을 합니다.

그러나 짜게 하는 원료는 소금 이외에 결코 없습니다. 소금은 짜게 하는 유일무이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소금이다(You are the salt of the earth).” 소금의 역할 중 첫째는 방부제 역할입니다. 지금은 냉장고의 냉동실에 보관하면 되지만 예전에는 음식의

방부제는 오로지 소금뿐이었습니다. 소금에 절여서 보관했습니다.
절인 음식하면 안동 간 고등어가 생각납니다. 안동 간 고등어의 유래가 있습니다. 당시 동해 바다에 흔한 것이 고등어였습니다. 그런데 동해안에서 고등어를 잡아 내륙지방인 안동까지 오면 다 상해 먹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동해바다에서 고등어를 잡자마자 소금으로 절여 내륙지방인 안동까지 운송했습니다. 그것이 요즘 별미가 되었습니다.

세상은 죄로 인해 부패하고 오염될 수밖에 없습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습니다. 이런 세상에 크리스천의 삶의 역할은 부패한 세상을 썩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 크리스천은 소금으로서의 역할을 다해야 합니다.

요즘 우리나라 돌아가는 것을 보면 과연 한국에 희망이 있고 한국 교회에 희망이 있는가? 절망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한국과 한국 교회에 희망이 있습니다. 가정에 희망이 있고 캠퍼스에 소망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세상의 소금인 우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소금의 기능을 못하면 희망이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가끔 나의 존재에 대해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내가 소금의 역하를 다하지 못하면 끝장이요 막장입니다. 소돔과 고모라가 왜 멸망했습니까? 정치, 경제, 사회, 문화가 타락해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그 곳에 의인 10명이 없기 때문에 망했습니다.

바닷물의 영분 농도가 3%라고 합니다. 3%의 염분만 있어도 바닷물이 썩지 않습니다. 이처럼 소금이 갖는 위력은 대단합니다. 이를 볼 때에 크리스천이 3%만 있어도 사회는 썩지 않습니다. 지금 한국의 크리스천 숫자를 약 1,000만 명으로 봅니다. 이 숫자는 한국 인구의 25%에 해당됩니다.

그런데 요즈음 우리나라는 총체적인 부정부패로 얼룩져 있습니다. 이는 크리스천들이 소금의 역할을 다 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좋지 않은 기사가 났다 하면 크리스천들의 이름이 꼭 나옵니다. 한국이 부패한 것은 위정자의 책임도 아닙니다. 사회의 구조가 잘못되어서도 아닙니다. 이는 우리 크리스천인 우리의 책임입니다.

인하대의 학생이 약 2만 명이 됩니다. 2만 명의 3%는 600명입니다. 그런데 인하대에 자칭 크리스천이라고 말하는 숫자는 그 이상일 것입니다. 그런데 캠퍼스 주위를 보면 쾌락과 향락으로 흥청대고 있습니다. 캠퍼스 축제는 지성과 낭만의 축제가 아니라 한 마디로 주점들이 즐비한 호프 축제, 소주 축제입니다. 이는 크리스천들의 책임이 큽니다. 우리는 이 시대 캠퍼스와 사회의 마지막 보루입니다. 그런데 우리마저 세상과 짝하면 캠퍼스와 한국은 희망이 없습니다. 이는 끝장이요 막장입니다.

소금도 썩은 곳에는 신선하게 할 수 없습니다. 완전히 썩어 소돔과 고모라와 같이 되기 전에 소금의 역할을 감당해야 합니다. 우리는 새해를 맞아 정신을 차려 새로운 결심을 하고 세상에 대해 소금의 역할을 잘 감당해야 합니다.

둘째, 소금은 맛을 내는 역할을 합니다.

소금은 3대 기능 중 또 하나는 맛을 내는 것입니다. 요즘 사람들이 짜게 먹으면 건강에 좋지 않다며 소금을 먹지 않겠다고 합니다. 그러나 설렁탕을 먹을 때 소금을 안치고 먹을 수 있어요. 소금을 치지 않으면 설렁탕을 무슨 맛으로 먹을 수 있습니까? 소금은 맛을 냅니다.

우리가 식사 초대를 해서 가면 주인이 이런 말을 합니다. “간이 맞습니까?” 이게 무슨 말입니까? ‘음식 맛이 어떠냐?’입니다. 소금 맛이 결국 모든 음식의 맛을 만들어 냅니다. 아무리 고량진미와 산해진미라 할지라도 그 속에 소금이 들어가지 않으면 그 음식은 맛이 없어 먹을 수 없습니다. 소금이 들어가야 제 맛이 납니다.

크리스천의 존재의미는 세상에 들어가 녹아 세상이 살맛나도록 하는 것입니다. 세상이 힘들고 어려운 이때에 우리가 살맛나는 세상을 만들어야 합니다. 크리스천은 맛을 내는 사람들입니다. 신바람을 만드는 사람들입니다.

크리스천은 거룩하지 못한 곳에 가서 거룩한 맛을 내야 합니다. 순결하지 못한 곳에 가서 순결한 맛을 내야 합니다. 희생을 하지 않는 곳에 가서 희생의 맛을 내야 합니다. 믿음이 없는 곳에 가서 믿음의 맛을 내야 합니다. 사랑이 없는 곳에 가서 사랑의 맛을 내야 합니다. 동역이 없는 곳에 동역의 맛을 내야 합니다. 희망이 없는 곳에 가서 소망의 맛을 내야 합니다.

지금 우리 시대를 희망이 없고 절망하고 분노하고 좌절하는 시대라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세상을 살맛나게 하는 소금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살맛나는 세상으로 바꾸어 합니다. 살맛이 없는 세상을 살맛나는 세상으로 바꾸는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기를 기도합니다.
셋째, 소금은 뻣뻣한 것을 죽이는 역할을 합니다.

소금은 고르게 합니다. 뻣뻣한 배추에 소금을 뿌리면 잎이 노골 노골하게 됩니다. 이를 숨이 죽었다고 합니다. 뻣뻣함은 목숨이 살았다는 뜻입니다. 자기가 살아 뻣뻣함에 소금을 치면 뻣뻣한 것이 죽어 하나로 모아집니다. 이와 같이 소금은 고르게 하는, 모으게 하는 역할을 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소금을 두고 화목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구약성경에 보면 제사에 소금이 쓰입니다. 레위기 2장 13절에 보면 “네 모든 소제물에 소금을 치라 네 하나님의 언약의 소금을 네 소제에 빼지 못할지니 네 모든 예물에 소금을 드릴지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언약의 소금은 중요하고 신비로운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가 아는 대로 모든 제물은 아무리 귀한 것이라도 제물 그대로 바치는 것이 아닙니다. 살아 있는 제물을 죽여서 드립니다. 산채로 드리지 않고 살아 있는 양을 죽이고, 살아있는 소를 죽이고, 살아있는 비둘기를 제단 앞에서 죽여서 드립니다. 동물뿐만 아니라 채소도 마찬가지입니다. 채소를 드리는 제사를 소제라고 합니다. 소제를 드릴 때에 뻣뻣한 것을 그대로 드릴 수 없습니다. 뻣뻣한 채소에 소금을 쳐서 부드럽게 만들어서 드려야 합니다.

뻣뻣한 것을 소금을 쳐서 숨을 죽여 드려야 합니다. 뻣뻣한 것을 죽여야 됩니다. 목이 곧은 사람, 목을 굽혀야 됩니다. 어깨에 힘주는 사람, 힘을 빼야 됩니다. 눈높이가 높은 사람, 낮추어야 됩니다. 결혼을 앞둔 분들, 눈높이를 반드시 낮춰야 합니다. 잘났다는 사람, 이제 자기가 가장 못난 사람으로 생각을 바꿔야 합니다. 교만한 사람, 겸손해져야 합니다. 자기중심, 타인 중심으로 바꿔야 합니다. 내 중심, 하나님 중심으로 돌려야 합니다.

우리는 주님 앞에 나올 때 완전히 나를 죽여, 푹 절인 배추처럼 아주 부드러운 모습으로 나와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 앞에 산 제물이 됩니다. 그래야 하나님 앞에 바른 예배가 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신령한 은혜를 누릴 수 있습니다.

우리 중에 은혜가 없는 사람은 덜 죽은 사람입니다. 푹 절인 배추가 되지 않아서입니다. 자기가 살았기 때문에 은혜가 없고, 은혜를 받지 못하고, 은혜를 누리지 못합니다. 그러다보니 성도의 교제 속에도 기쁨도 없고 사랑도 없습니다. 얼굴이 굳어 있고 팽팽하고 일그러집니다. 내뱉었다 하면 원망, 불평, 정죄가 튀어나옵니다. 그런 사람들이 있는 곳에 기쁨이 있을리 없습니다. 성도의 얼굴은 기쁨이란 단어가 쓰여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소금은 순결의 역할을 합니다. 세상은 때로 우리를 핍박하고 욕을 합니다. 친구들은 우리를 보고 ‘예수쟁이, 좀 덜 된 사람들이다’ 이라며 놀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그래도 너는 그래서는 안 된다’ 며 우리가 거룩하고 순결한 삶을 살기를 요구합니다. 우리는 세상이 어떠하든지 좋은 영향력을 끼쳐야 합니다.

소금이 그 역할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분해되어야 합니다. 소금이 철저하게 녹아 구석구석으로 파고 들어갈 때에 맛을 내고 부패를 방지하고 은혜로운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우리는 세상의 소금으로 소금 역할을 잘 하기를 기도합니다.

2. 세상의 빛

14절을 보겠습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기우지 못할 것이요 -You are the light of the world. A city on a hill cannot be hidden-”

첫째, 빛은 어두움을 밝힙니다.

빛은 어두운 곳을 밝힙니다. 방 안에 불을 켜 놓으면 어둡던 방 안이 밝아집니다. 어두움이 쫓겨 갑니다. 빛은 모든 것을 아름답게 하고 빛나게 합니다. 빛은 사실대로 나타냅니다. 빛은 어두움을 어둡게, 흰 것을 희게 보이게 합니다. 금은보화는 금은보화로 나타나고, 쓰레기는 쓰레기로 나타납니다. 밝은 얼굴은 아름다움으로 나타나고, 시커먼 사람은 시커멓게 나타납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생명의 빛, 희망의 빛을 비춰야 합니다. 우리가 빛을 비취서 의는 의로 드러나고, 부정은 부정으로 드러나도록 해야 됩니다. 선은 선으로 드러나고, 악은 악으로 드러나도록 해야 됩니다.

둘째, 빛은 뜨거운 열을 냅니다.

빛은 열을 발산합니다. 냉랭하고, 썰렁하고, 살벌한 세상을 따뜻하고 훈훈하게 합니다. 얼어붙은 마음이 봄 동산처럼 녹아지고, 찬바람 도는 가정이 훈훈한 사랑이 감도는 에덴동산이 됩니다.

셋째, 빛은 생명을 줍니다.

빛은 생명을 있게 하고 자라게 합니다. 빛이 없으면 모든 식물들이 살 수가 없습니다. 빛이 있는 곳에 생명이 있습니다. 요한복음 1장 4절을 보면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세상의 빛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습니다(요 8:12). 우리는 생명의 빛을 받은 자로 슬프고 외롭고 쓴웃음을 짓는 사람들에게 생명을 주어야 합니다. 절망하고 있는 자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어야 합니다.

우리는 세상을 비추는 빛입니다. 사람들은 할 수만 있으면 밝게 하기 위해 불을 켜서 말 아래 두지 않고 등경 위에 둡니다(마 5:15). 이는 집안 모든 사람에게 비취게 하고자 함입니다. 만일 그 위에다 말을 덮어 놓는 사람이 있다면 ‘얼빠진 사람이다!’ 라고 비웃을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크리스천들이 실제적으로 빛을 비추지 않습니다. 빛을 나타내기를 꺼려하고 부끄러워합니다. 자신이 크리스천이라는 사실을 밝히기 싫어합니다. 진리의 빛, 생명의 빛, 사랑의 빛을 밝히기를 부끄러워합니다. 이는 빛보다 어두움을 좋아하고, 예수님보다 세상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이 말씀은 적극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그런데 소금과 빛이 자기 역할을 하려면 모두 희생을 필요로 합니다. 소금은 녹아야 제 역할을 하는 것처럼 양초가 빛을 내기 위해서는 녹아야 됩니다. 희생이 있는 곳에 맛이 나고, 부패가 방지되고, 빛이 비추게 됩니다. 이기적인 욕망이 있을 때 영향력을 끼칠 수 없습니다. 희생이 있는 곳에 영향력이 있습니다.

우리는 세상의 빛과 소금입니다. 우리는 이 시대에 가정과 이웃과 캠퍼스와 사회에 적극적으로 소금과 빛의 역할을 잘 감당하여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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