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도의 경건

조회 수 2645 추천 수 0 2012.11.23 02:32:38
마태복음 6:1-8, 16-18

성도의 생활내용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하지 않도록 주의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받지 못하느니라”(마 6:1).

본문은 크리스천의 생활 내용, 덕목에 관한 말씀입니다. 크리스천의 생활의 내용은 구제와 기도와 금식입니다. 구제는 물질의 탐욕을 극복하는 것이요, 기도는 이기심을 깨는 것이요, 금식은 자기 욕망을 절제하는 것입니다. 

또한 구제란 이웃 사랑으로, 이웃을 향해 창을 여는 것이고, 기도는 하나님 사랑으로, 하나님을 향해 창을 여는 것입니다. 그리고 금식은 자기 사랑으로, 자신을 향해 창을 여는 것입니다. 구제와 기도, 금식은 크리스천의 3대 덕목이며, 탐욕과 이기심, 그리고 욕망을 이기는 것입니다. 

그런데 당시에는 이런 삶의 내용이 형식적이어서 자기를 드러내는데 사용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삶을 지적하시고 참된 구제와 참된 기도, 그리고 참된 금식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이 시간에 물질로 향하는 탐욕과 육체로 향하는 욕망, 그리고 자기로 향하는 이기심을 극복하고 하나님 앞에서 바른 삶을 살기를 기도합니다.

1. 성도의 생활내용 원리(마 6:1).

마태복음 6장 1절을 보겠습니다.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하지 않도록 주의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받지 못하느니라.” 이 말씀은 크리스천의 생활 내용의 총론에 해당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의를 요구하십니다. 하나님은 구제와 기도, 그리고 금식을 통해 이웃 사랑과 하나님과의 교제, 그리고 자신을 절제하는 삶을 원하십니다. 

당시 바리새인들은 구제와 금식, 그리고 기도를 열심히 했습니다. 겉으로 보면 그들은 의를 행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의는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나팔을 불며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으로 가서 자기를 드러내기 위해 구제를 열심히 했습니다. 

또 매일 오후 희생제를 드릴 시간에 나팔을 불었습니다. 그것은 기도하라는 나팔이었습니다. 그 나팔소리가 나면, 과거에 애국가가 나오면 가던 길을 멈추고 태극기를 향해 서 있는 것처럼 그들은 성전을 향해 될 수 있는 대로 다른 사람들보다 경건하고 기도를 많이 하는 것처럼 보여 주기 위해 경건한 모습으로 오랫동안 발길을 멈췄습니다. 

그리고 금식을 할 때도 금식한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보여 주기 위해 세수도 안 하고 다녔습니다. 그들의 의의 동기는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자연히 신앙생활이 형식적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사람이면 누구나 사람들로부터 인정과 칭찬을 듣고 싶습니다. 그래서 의를 행할 때 어떤 모양으로든지 자신의 의를 나타내고자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사람에게 보이려고 의를 행하지 않도록 주의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자기 의’란 자기 자랑입니다. 사람에 의식 속에는 누구나 사람들에게 인정받으려고 하는 욕망이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기를 사실 이상으로 과대 선전하고 치장합니다. 그리고 좋은 평판과 칭찬을 받고자 노력합니다. 그러다보니 위선적인 삶을 살게 됩니다. 그런데 사람이 어떻게 좋은 말만 들을 수 있습니까? 어느 사회학자의 연구를 보면 아무리 훌륭한 사람도 80대 20이라고 합니다. 칭찬과 나쁜 말이 80:20입니다. 따라서 사람들로부터 좋은 평판과 칭찬을 들으려고 신경 쓰는 것은 어리석은 짓입니다.

또 사람들은 구제를 할 때에 사람으로부터 오는 유익을 생각하고 계산합니다. 그래서 어떤 일을 보자마자 내게 돌아오는 이익부터 계산합니다. 누가복음에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가 나옵니다. 사마리아 사람이 여리고로 가는 길에 불한당을 만나 피투성이가 되어 죽기 일보직전이었습니다. 제사장이 보고 지나가고, 레위 사람이 그저 보고 지나갔습니다. 마지막에 유대인들이 멸시하는 사마리아 사람이 그를 돌보았습니다. 

제사장이나 레위인은 저 사람을 도와주다가 내게 어떤 불이익이 올 것인가를 계산했습니다. 만일에 내가 저 사람을 만지다가 저 사람이 죽어 버리면 시체를 만지는 게 됩니다. 시체를 만지면 일주일 동안 성전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제사장 직무를 감당할 수 없게 됩니다. 제사장은 저 사람을 도와주다 내게 돌아오는 불이익, 이것을 생각한 나머지 도와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사마리아 사람은 생각이 달랐습니다. 그는 저 사람을 내가 안 도와주면 저 사람이 죽는다는 것을 먼저 생각했습니다. 그는 내게 오는 이익이나 불이익을 생각하지 않고 강도 만난 사람을 먼저 생각했습니다. 자신이 지금 도와주지 않으면 그 사람이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생명을 소중하게 생각했습니다. 이것이 올바르고 귀한 구제의 자세입니다. 

하나님은 은밀한 중에 우리를 만나십니다(마 6:1, 6, 18). 은밀히는 비밀입니다. 따라서 사람에게 보이려고 구제하고 기도하고 금식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데 현대인들은 어느 시대보다도 자기 PR을 좋아합니다. 자기를 자랑하기 좋아합니다. 그래서 명함도 자기 신분을 밝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이력을 앞뒤로 씁니다. 자기를 과대 선전합니다. 미사여구로 기도합니다. 이런 것은 모두가 사람들에게 잘 보이려고 하는 행동입니다. 사람에게 잘 보이려고 하는 모든 행위는 불신앙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사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평가하나에 신경을 쓰기보다, 여론 앞에 살기보다 하나님 앞에서 살아야 합니다. 어떠한 나쁜 여론도 사실이 아니라면 넉 달만 지나가면 사라집니다. 따라서 우리는 다른 사람에 대한 평가를 초조하게 변명하려고 할 필요도 없고, 그 문제의 진원지를 찾아 다닐 것도 없습니다. 문제는 그것이 사실인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람들의 시선과 평판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 앞에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산 사람이 바로 요셉입니다. 요셉은 하나님 앞에서 살았습니다. 그는 누가 뭐라고 하던 하나님 앞에서 진실하게 살았습니다. 그랬을 때 하나님은 요셉을 높이셨습니다. 

마태복음 6장 1절을 보겠습니다.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하지 않도록 주의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받지 못하느니라.” 우리가 사람 앞에 살면 하나님으로부터 상을 얻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상급은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가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고나서 상급을 받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 11장 6절을 보면 믿음이란 ‘하나님의 살아 계심과 그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심을 믿는 것’이라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한 형식적인 삶보다 하나님 앞에서 진실하게 살아야 합니다.

2. 네 구제함을 은밀하게 하라(마 6:2-4)

구제는 나눔입니다. 나눔은 함께 고통을 지는 것입니다. 나눔은 현명한 이기주의자요 미래의 투자라는 말이 있습니다. 나눔의 목적은 부족한 것을 보충하여 균등하게 하는 것입니다. 균등은 결과의 균등과 기회의 균등, 출발의 균등이 있습니다. 기회와 출발은 균등해야 합니다. 

구약 성경을 보면 곳곳에 구제의 중요성을 말씀합니다. 잠언 19장 17절을 보겠습니다.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어 드리는 것이니 그의 선행을 그에게 갚아 주시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신명기 15장 11절을 보겠습니다. “땅에는 언제든지 가난한 자가 그치지 아니하겠으므로 내가 네게 명령하여 이르노니 너는 반드시 네 땅 안에서 네 형제 중 곤란한 자와 궁핍한 자에게 네 손을 펼지니라”고 했습니다. 

시편 41편 1절을 보겠습니다. “가난한 자를 보살피는 자에게 복이 있음이여 재앙의 날에 여호와께서 그를 건지시리로다.” 

구약뿐만 아니라 신약에도 구제에 대해 말씀합니다. 갈라디아서 2장 10절을 보면 바울은 “다만 우리에게 가난한 자들을 기억하도록 부탁하였으니 이것을 나도 본래부터 힘써 행하여 왔노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사도행전 6장 1절을 보면 초대 교회에서는 힘써 구제했습니다. 바나바는 자기의 모든 것을 팔아 구제했습니다. 예루살렘이 기근 들었을 때 마게도냐 성도들은 예루살렘 성도들을 위해 구제했습니다(고후 8장). 

이처럼 성경은 곳곳에서 구제를 강조하였고, 구제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할 수만 있으면 구제를 많이 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구제하면 돈으로 돕는 것만을 생각하기 쉽습니다. 구제는 물질로 돕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내게 돈이 없다면 내가 지닌 재주, 은사, 노동, 시간, 따뜻한 마음 한 자락을 가지고도 남을 돕고 나눌 수 있습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의 영혼을 위해 기도하고 말씀을 가르치고 심방하고 카운슬링해주는 것은 좋은 구제입니다. 특히 이기적이고 자기 밖에 모르는 세상에서 시간과 물질과 마음을 다하여 성경 말씀으로 그들의 영혼을 돕는 것은 가장 좋은 구제입니다. 그런데 구제가 구원의 조건은 아닙니다. 이는 구원의 은혜에 감사하여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구제는 물질에 대한 탐욕을 극복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돈 때문에 서로 싸웁니다. 삼성그룹이 형제간에 유산을 가지고 재판 중에 있습니다. 홈 플러스는 24시간 문을 열어 놓아 동내 구멍가게가 무너지는 참담한 현상을 보면서도 24시간을 영업하겠다고 법원에 제소하여 장사를 계속합니다. 

자본주의는 돈(맘몬)이 지배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탐욕을 극복하고 구제한다는 것은 쉽지만은 않습니다. 그러나 구제는 우리의 경건한 인격을 형성해 나가는 지름길입니다. 경건은 불쌍한 사람을 실제적으로 돕는 것입니다(약 1:27). 우리는 힘써 구제하여 경건한 인격이 형성되어지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면 어떤 자세로 구제를 해야 합니까? 예수님은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어떻게 모를 수 있습니까? 우리는 오른손으로 글씨를 쓰며 왼손으로 커피를 마셔도 오른손이 왼손이 커피 마시는 것을 전혀 의식하지 않습니다. 이처럼 구제는 다른 사람은 말할 것도 없고, 자기 자신도 전혀 의식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진실한 자세로 해야 합니다. 이 때 우리의 의가 하나님 나라에 모두 기록되어 하나님께서 갚아 주십니다. 

우리는 굶주린 북한 동포들을 도와야 합니다. 우리는 이데올로기를 떠나 동포애를 가지고, 아니 우리 주님의 명령에 따라 굶는 동포를 구제해야 합니다. 그리고 영적으로 황폐한 그들을 도와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가 임다니엘 선교사를 평양 과기대로 피송한다는 것은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가 임다니엘 선교사를 파송하게 되면 구체적으로 도와야 합니다.

그리고 이성철 선교사가 도미니카에서 아이티 난민을 위해 선교하다가 아이티 괴한으로부터 자녀들과 총격을 맞아 자녀들은 무사하고 40세에 선교 현장에서 순교했습니다. 우리는 그의 자녀들을 위해 도움을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 주일 헌금은 그 가정을 위해 헌금을 드리겠습니다. 우리가 은밀하게 구제할 때 은밀한 중에 보시는 주님께서 우리의 모든 것을 갚아주십니다(마 6:4).

3. 너는 기도할 때 골방에 들어가서 하라(마 6:5-8)

크리스천의 덕목 중 하나가 기도 생활입니다. 기도는 경건의 척도입니다. 우리는 밀레의 만종에서 일손을 멈추고 기도하는 모습에서 경건한 모습을 느낍니다. 그러나 이러한 기도에도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마태복음 6장 5전절을 보겠습니다. “또 너희는 기도할 때 외식하는 자와 같이 하지 말라 그들은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유대인들은 바벨론 포로기를 전후하여 시간을 정해 놓고 하루에 세 번씩 기도했습니다(단 6:10). 

그리고 희생제를 드릴 때 나팔을 불고 기도하도록 했습니다. 이 때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장소로 나와 경건한 모습으로 기도했습니다. 이는 자신이 경건한 사람이라는 것을 사람들 앞에서 나타내고자 함이었습니다. 그러면 어떤 자세로 기도해야 합니까? 

첫째는 은밀하게 기도해야 합니다. 

마태복음 6장 6절을 보겠습니다.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골방은 장소의 개념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조용히 만나 기도할 수 있는 곳은 모두 골방이 됩니다. 차를 타고 가면서도 조용히 기도하면 그곳이 골방이 됩니다. 

그런데 우리가 아무리 조용한 골방이라 할지라도 기도하면서 염려, 걱정, 헛생각들이 오가면 이는 골방 기도라 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은밀히 기도할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힘과 영적인 분별력을 갖게 해 주십니다. 심령이 답답하고 마음에 상처와 슬픔이 있을 때 조용히 하나님께 나가 기도할 때 쉼과 기쁨과 은혜와 평강을 누릴 수 있습니다. 영혼이 소생되고, 사죄의 은총을 덧입게 됩니다. 우리의 필요한 것을 공급받을 수 있으며, 하나님 나라의 신령한 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둘째는 중언부언하지 말아야 합니다.

마태복음 6장 7절을 보겠습니다. “또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어부언하지 말라 그들은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 생각하느니라.” 중언부언이란 아무 의미 없이 반복하는 것입니다. 이방인들은 의미 없는 말을 반복하는데, 이를 ‘만트라’라고 합니다. 남묘호랑개비를 반복해 외우는 것, 천주교에서 기도문을 반복해 외우는 것, 불교에서 관세음보살 나무아미타불을 반복해 외우는 행위 등은 모두 중언부언하는 것으로 만트라의 일종입니다. 

우리도 이방인처럼 의미 없는 말을 반복하기 쉽습니다. 어떤 사람은 방언하고자 할렐루야를 수 백 번 외우기도 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을 체면 시켜 자기 뜻을 이루고자 하는 자들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응답될 때까지 기도 제목을 가지고 반복하여 기도하는 것은 좋습니다. 그러나 여기에도 마음과 의미와 기도가 실려야 합니다. 마음이 실리지 않고, 의미가 실리지 않는 기도, 기도를 위한 기도는 생명력이 없는 하나의 중언부언에 불과합니다. 참된 기도의 자세는 진실하게 간절한 마음으로 해야 합니다. 

마태복음 6장 8절을 보겠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을 본받지 말라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 하나님은 내 삶의 주인이 되어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을 다 아십니다. 따라서 중언부언하지 말고 마음으로 진심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4. 금식할 때 슬픈 기색을 하지 말라(마 6:16-18) 

금식은 탐욕을 절제하는 삶의 표현으로 영적 목적을 위해 음식을 금하는 것을 말합니다. 구약에서는 1년에 한 번씩 있는 속죄일에 금식했습니다. 또 국가적인 재난이나 특별한 기도 제목이 있을 때 금식했습니다. 
그런데 당시 유대인들은 장로들의 유전을 따라 일주일에 두 번씩 금식했습니다. 금식은 경건의 표시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금식할 때 자신이 금식하고 있다는 사실을 드러내기 위해 재를 얼굴에 바르고 또 인상을 쓰고 다녔다고 합니다. 이들은 금식하는 그 자체에 목적을 두었습니다. 

오늘날도 금식 자체에 목적을 두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내가 며칠 금식했다고 자랑합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자신을 드러내기 위해 경건의 모양만을 가장하는 것을 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금식할 때 사람들이 알아채지 못하도록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으라고 하십니다. 이렇게 할 때 은밀히 보시는 하나님께서 다 갚아 주신다고 하십니다. 

금식은 단순히 음식만을 금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는 단식이요, 굶식입니다. 금식이란 영적인 생활을 위해 육의 생활을 절제하는 것을 포함합니다. 사람들은 감정과 정욕에 자기를 맡기고 본능대로 살아갑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습니다(갈 5:24). 영적인 생활을 위해 육신을 쳐 복종합니다. 잠을 절제하고, 시간을 절제하고, 말을 절제하고, 생각을 절제합니다. 이는 자기와의 투쟁입니다. 금식은 종교적인 행위가 아니라 믿음의 삶의 자세입니다.

우리가 탐욕과 이기심과 욕망을 깨고 경건한 삶을 살고자 할 때 조심해야 할 것은 사람 앞에서 위선적인 삶이 아닌 하나님 앞에서 진실하게 행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위선적인 생활을 하게 됩니다. 이런 사람은 사람이 보는 데서는 열심히 하지만 사람이 보지 않는 곳에서는 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진실하게 탐욕과 이기심과 욕망을 깨고 하나님 앞에서 경건한 삶을 살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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