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로운 자는(마7:13-29)

조회 수 3405 추천 수 0 2012.11.23 02:35:28
마태복음 7:13-29

지혜로운 자는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마 7:24).

혹자는 인간의 삶을 일컬어 인생행로라고 합니다. 이 인생길에서 키엘케코르 말처럼 이것을 택하든 저것을 택하든지 한 가지를 택하여 가야합니다. 
우리는 좁은 문에 들어서서 좁은 길을 가든지, 넓은 문에 들어서서 넓은 길을 가든, 좋은 나무가 되어 좋은 열매를 맺든지, 아니면 나쁜 나무가 되어 나쁜 열매를 맺든지, 모래 위에 집을 짓든지, 반석 위에 집을 짓든지 둘 중에 어느 것 한 가지를 선택하여야 합니다. 우리는 둘 다 선택할 수 없습니다. 그 선택의 여하에 따라 우리의 삶이 십년이 아니라 일생, 아니 영원을 좌우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혜로운 선택을 해야 합니다. 젊은 청년들은 청년의 때 어떤 길을 가야 할 것인가, 그리고 40, 50대는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잘 선택하여야 합니다. 

특히 우리는 산상보훈의 결론을 공부하면서 산상수훈대로 살 것인가, 아니면 자기 뜻대로 살 것인가 선택하여야 합니다. 80여년의 짧은 인생의 여정에서 우리는 지혜로운 선택을 하여 영생을 얻고, 어떤 역경 중에도 흔들리지 않는 삶을 살기를 기도합니다.

1.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마 7:13-14). 

신명기 30장 15-16절을 보겠습니다. “보라 내가 오늘 생명과 복과 사망과 화를 네 앞에 두었나니 곧 내가 오늘 너를 네게 명령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모든 길로 행하며 그의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지키라 하는 것이라 그리하면 네가 생존하며 번성할 것이요 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가서 차지할 땅에서 네게 복을 주실 것임이니라.” 

여호수아 24장 14-15절을 보겠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여호와를 경외하며 온전함과 신실함으로 그를 섬기라 너희의 조상들이 강 저쪽과 애굽에서 섬기던 신들을 치워 버리고 여호와만 섬기라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조상들이 강 저쪽에서 섬기던 신이든지 또는 너희가 거주하는 땅에 있는 아모리 족속의 신들이든지 너희가 섬길 자를 오늘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하니”

또한 예레미야 21장 8절을 보겠습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보라 내가 너희 앞에 생명의 길과 사망의 길을 두었노라 너는 이 백성에게 전하라 하셨느니라.” 

마태복음 7장 13-14절을 보겠습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라.”

우리 앞에는 여러 개의 길이 있는 것 같지만 생명과 사망의 길, 복과 화의 길, 하나님을 섬기는 길과 우상을 섬기는 길, 다윗의 길과 여로보암의 길, 좁은 문과 넓은 문, 좁은 길과 넓은 길 두 가지 길뿐입니다. 예수님은 본문에서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좁은 길로 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 말씀에 의아하게 생각했습니다. “군자는 대로행이란 말이 있지 않는가, 아니 왜 넓은 길을 버리고 좁고 험한 길을 택하라 하느냐? 넓은 길을 걸으면 편하고 좋은데 왜 좁은 길을 택하라 하는가?” 그러면 이 말씀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입니까?

첫째, 좁은 문을 들어가야 합니다. 

사람들은 기독교 신앙은 믿기는 쉬운데, 믿고 나면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아주 틀린 생각입니다. 기독교 신앙은 믿기도 어렵고, 믿고 나서도 힘듭니다. 제가 이런 말씀을 하면 어떤 분은 이렇게 반문할 것입니다. “성경은 단순히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구원받는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무엇이 그렇게 어렵다는 말입니까?” 물론 믿는 것은 어렵지 않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믿기 위해서는 회개하여야 합니다. 예수님은 복음을 전파하실 때마다 말씀하셨습니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이 말씀에서 믿음만 강조한다면 복음은 대단히 쉽습니다. 그러나 회개 없이 복음을 믿을 수 없습니다. 회개는 무엇을 의미합니까? 하나님 없이 살아가는 현재의 나의 삶, 예수님 없이 살고 있는 현재의 삶에서 돌이켜 하나님께로 가는 것입니다. 회개란 단순히 어떤 사건에 대해 후회하거나 슬퍼하는 것이 아니라 잘못된 것에서 방향을 바꾸는 것입니다. 이는 넓은 길에서 떠나 좁은 길로 가는 것입니다. 회개에는 희생이 따르고 대가를 지불하여야 합니다. 회개에는 뼈아픈 고통이 따릅니다. 

이 때 옛 생활을 청산하고 새로운 삶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회개가 없는 신앙생활, 회개가 없는 교회는 있을 수 없습니다. 회개가 없는 개인, 회개가 없는 교회는 생명력이 없습니다. 회개라는 아픔을 겪으며 좁은 문으로 들어갈 때 생명력이 있습니다. 

로마의 콘스탄티누스는 A.D. 313년에 기독교를 국교로 선포했습니다. 이때부터 기독교는 생명력을 잃기 시작했습니다. 국교로 선포되기 전의 기독교 인구는 로마 전체 인구의 7%였습니다. 그 때 크리스천들은 생명력이 있어 로마 전체에 큰 영향력을 끼쳤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기독교를 국교로 공인한 것입니다. 

그러나 국교로 공인되자 사람들이 회개 없이 교회로 쏟아져 들어왔습니다. 회개가 없는 사람들로 가득 찬 교회는 사교장이나 다름이 없게 되었습니다. 회개라는 좁은 문을 통과하지 않고 교회에 들어오게 된 것이 기독교의 부패의 원인이 되었고, 이때부터 기독교는 생명력을 잃었고, 중세의 어두운 긴 터널이 시작되었습니다. 참된 그리스도인의 삶의 출발은 회개란 좁은 문을 들어감으로 시작합니다. 

우리가 좁은 문에 들어가려면 땅에 쌓아 놓은 보물을 가지고 들어갈 수 없습니다. 교만하고 뻣뻣한 사람은 들어갈 수 없고 겸손한, 고개를 숙인 사람만이 들어갈 수 있고, 자기 혼자만 들어갈 수 있습니다. 앙드레 지드는 좁은 문이란 소설에서 불신자인 애인과 함께 들어갈 수 없는 안타까운 현실을 그렸습니다. 그리고 그는 고개를 뻣뻣하게 세운 교만한 사람은 좁은 문에 들어갈 수 없다고 했습니다.

좁은 문은 회개하고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만이 들어갈 수 있습니다. 탐욕과 욕망을 회개하여야 들어갈 수 있습니다. 무거운 죄 짐을 벗어야 들어갈 수 있습니다.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야 들어갈 수 있습니다(히 12:1). 이처럼 복음을 믿는다는 것은 쉬운 것이 아닙니다. 때론 뼈를 깎는 아픔과 고통이 따릅니다. 이때 구원받고 생명력이 있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이것은 타협할 수 없는 복음의 진수요 핵심입니다. 

둘째, 좁은 길로 가야 합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넓은 문을 뿌리치고 좁은 문으로 들어서면 좁은 길이 나옵니다. 우리는 계속하여 이 좁은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그래서 믿음이란 믿기도 힘들고 믿은 후에도 어려운 것입니다. 

천로역정을 보면 크리스천이 장망성을 떠나 좁은 문을 통과하여 좁은 길을 갈 때 끊임없는 많은 유혹을 받았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좁은 길을 가고자 할 때 많은 것들이 유혹합니다. 정욕과 쾌락과 위선과 욕망이 유혹합니다. 회의와 안일이 유혹합니다. 물질이 유혹합니다. 명예와 권세가 유혹합니다. 넓은 길에서 살던 습관이 유혹합니다.

우리가 학교에서 교회에 올 때에 많은 문에서 우리를 유혹합니다. 후문에서 나오면 영진당구문이 우리를 유혹합니다. 많은 술집과 커피숍이 우리를 유혹합니다. 이런 유혹이 우리에게 계속됩니다. 우리는 이런 유혹을 이기고 가야 합니다. 

그리고 이 길에는 고난과 핍박이 따릅니다. 그러므로 끊임없는 자기 절제와 인내의 훈련이 필요합니다. 이것이 성화과정이요 경건의 길입니다. 이것이 수준 높은 크리스천의 삶입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경건에 이르도록 네 자신을 연단하라”(딤전 4:7)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회개하고 좁은 문을 통과하였다면 계속하여 예수님을 좇아야 합니다. 우리는 매순간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막 8:34), 예수님이 가신 십자가의 길, 골고다의 언덕의 길, 고난의 길을 가야 합니다. 이 길은 협착하고 좁기 때문에 힘써야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눅 13:24)고 하셨습니다.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고 들어가는 자가 많습니다. 이 길은 입학도 쉽고 과정도 쉽고 졸업도 쉽습니다. 쉬운 정도가 아니라 저절로 갈 수 있고 저절로 졸업도 하게 됩니다. 그 길은 다수가 선택하고 가는 길이고, 또 그 길이 화려하기 때문에 전혀 부담이 없습니다. 노력이나 투쟁도 필요하지 않습니다. 

성경을 읽으려면 많은 인내와 투쟁을 하여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티브이나 인터넷 게임이나 영화나 만화책을 읽을 때 자기를 부인하며 보고 읽는 사람은 한 명도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잠은 투쟁하지 않아도 저절로 자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깨어 있는 삶은 힘써야 합니다. “가시 없는 장미는 없다”란 격언처럼 세상에서 큰일을 하려고 하여도 보통 이상의 고통을 인내하여야 합니다. 

인하대 이억섭 교수님이 미국에서 박사 학위를 받기 위해 하루에 4시간 이상 잔 적이 없다고 했습니다. 하물며 우리가 목자요 성경선생이 되어 양을 도우려면 그 이상의 고통을 감내하여야 합니다. 성경을 읽고 묵상하고 기도하고 양을 찾아 심방하여야 합니다. 

황제임스 선교사가 러시아를 개척하고 김다윗 선교사가 루마니아를 개척한 것은 저절로 된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피나는 어학과 이방문화에 따른 남모르는 고통과 슬픔을 감내한 결과입니다. 이처럼 믿음의 길에는 고통과 슬픔이 따르고 끊임없는 자기 부인과 십자가를 지는 생활입니다. 그래서 좁은 길은 찾는 이가 적고, 중도에서 탈락하는 자가 많습니다. 그러나 끝까지 이 길을 걷는 사람은 영생과 부활의 산 소망을 얻습니다. 우리가 회개의 좁은 문을 통과하고 끝까지 좁은 길로 가서 영생을 얻기를 기도합니다.

2. 거짓 선지자를 삼가라(마 7:15-23). 

우리가 좁은 문을 들어서기까지 우리를 미혹하는 거짓 선지자들이 있고, 좁은 문을 들어서서 좁은 길로 가는 여정에도 이 거짓 선지자들이 우리를 미혹하여 믿음의 길에서 우리를 떠나도록 미혹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마 7:15)고 하셨습니다. 

거짓 선지자는 어떤 사람들입니까? 선지자 하면 예언자를 생각합니다. 물론 선지자들의 중요한 역할이 예언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그러나 구약의 예언서를 보면 “메시지의 핵심이 미래에 이루어질 일들에 관한 메시지가 20%, 그리고 80%는 현재의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그런데 거짓 선지자들은 주로 계시록이나 다니엘서, 에스겔서의 일부분을 인용하여 종말론적 말세만을 강조합니다.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가르치지 않습니다. 거짓 선지자들은 예나 지금이나 항상 있습니다. 그래서 요한 사도는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분별하라”(요일 4:1) 했습니다. 우리는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야 합니다. 거짓 선지자들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첫째, 양의 옷을 입고 나타납니다. 

마태복음 7장 15절을 보겠습니다.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우리는 사람의 속을 알 수 없고 다만 나타난 외형만 볼 뿐입니다. 거짓 선지자는 보이는 면에 있어서는 아무런 차이가 없습니다. 그들은 양의 옷을 입었습니다. 그들의 교리나 가르치는 것이 그리 틀린 것이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일종의 가면일 뿐입니다. 한 예를 들면 어떤 이단은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은 것을 애통히 여기는 정도가 아니라 엉엉 운다고 합니다. 울면서 하는 말이 뭣인지 아십니까? 뒤에 오시는 메시아는 죽여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여기까지는 그럴 듯합니다. 그 뒤에 숨어 있는 뜻은 자칭 메시아라는 교주를 죽여서는 안 된다는 논리를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한 이단은 지역교회에 와서 얼마나 잘 섬기는지 다 놀라곤 한다고 합니다. 그런 연후에 교회 성도들의 마음을 미혹하고 빼앗고 불평과 불만을 심어 통째로 교회를 그들의 수중에 넣어버립니다. 이처럼 거짓 선지자는 외형상 양의 옷을 입고 아주 그럴듯한 논리와 모습과 행동으로 나타납니다. 사단은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여 우리를 미혹합니다(고전 11:14).

둘째, 신앙 고백이 없습니다. 

마태복음 7장 21절을 보겠습니다. 그들은 입술로 ‘주여 주여’ 합니다. 신앙 고백은 참으로 아름답고 고귀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입술로 주여 주여 고백하기를 원하지 않으십니다. 성경은 우리가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른다고 하였습니다(롬 10:10). 그런데 저들은 입으로 주여 주여 하지만 마음으로 믿지 않습니다. 저들은 형식은 있지만 내용이 없습니다. 입으로 ‘주여 주여’ 하지만 신앙고백이 없습니다. 찬양은 하지만 그 찬양은 단순한 입놀림에 불과합니다. 우리는 입술로 ‘주여 주여’ 하는 자들을 주의해야 합니다.

셋째, 이적을 행합니다. 

마태복음 7장 22후절을 보겠습니다.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우리나라 사람들은 어느 나라 사람들보다 현상에 약합니다. 한번 현상을 보고, 한번 경험을 하게 되면 이것이 성경적인가 하는 사실을 확인도 안하고 무조건 따라갑니다. 

이단들은 이런 현상과 체험에 약한 심리를 교묘하게 이용하여 미혹합니다. 큰믿음교회는 이적도 행하고 예언도 한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그런 그들에게 꼬박 속습니다. 그러나 저들의 배후에는 악령이 도사리고 있음을 직시하여야 합니다. 

우리는 눈에 보이는 어떤 현상과 기적을 보면 그 기적이 무엇에 근거한 것인가, 성경에 근거한 것인가, 성령의 도움과 인도하심을 받고 있는가, 아니면 심리적인 감정과 자기최면에 의한 것인가를 살펴봐야 합니다. 성경에 기초하지 않은, 성령과의 바른 관계를 맺고 있지 않는, 그리고 덕이 되지 않는 이적과 권능은 믿어서는 안 됩니다.

넷째, 열매가 없습니다.

예수님은 지금까지 거짓 선지자들의 구별 방법 중 하나는 동기가 잘못되어 있음에 대하여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은 양의 옷을 입고 있지만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입니다(마 7:15). 

이제 예수님은 거짓 선지자들의 결과에 대하여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 7장 16-20절을 보면 열매를 보고 그 나무를 안다고 하셨습니다. 동기가 잘못되었기 때문에 결과가 좋을 리 없습니다. 열매는 삶의 결과입니다. 아름다운 말로 사람을 속일 수는 있지만 열매는 속일 수 없습니다.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딸 수 없습니다. 거짓선지자들의 열매는 가정을 파탄시키고 도덕과 윤리를 어그러뜨립니다.

믿는 사람들도 삶의 과정에서 실수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단들은 끝이 다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저들과 달리 주님의 아름다운 인격이 조각되어 인격이 성숙해지도록 힘써야 합니다. 우리 내면에 성령의 열매 사랑, 희락, 화평, 오래 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의 열매를 맺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다섯째, 하나님의 뜻을 행하지 않습니다. 

마태복음 7장 21절을 보겠습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저들은 하나님의 뜻대로, 방법대로 살지 않습니다. 참된 성도는 하나님께서 원하는 삶을 삽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대로 행합니다. 그런 사람만이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말만 잘하는 자들은 입만 천국에 들어갑니다. 예수님은 이런 사람들을 불법을 행하는 자들이라고 책망하시고 내게서 떠나가라고 하셨습니다(마 7:23). 

주님은 회개하고 구원을 받았는가, 그 후에 구원 받은 결과로 인격과 생활이 변화되었는가, 열매를 맺고 있는가를 묻습니다. 우리는 이 질문 앞에 당당하게 대답할 수 있어야 합니다.

3. 말씀을 듣고 행하라(마 7:24-29). 

마태복음 7장 24-25절을 보겠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초를 반석 위에 놓은 까닭이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과 같습니다.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혀도 무너지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 주초를 반석 위에 놓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지 않은 자는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자와 같이 어리석은 자입니다. 중동 지방에는 모래땅이 많습니다. 그리고 당시에는 건축기술이 발달되지 않아 기초를 어디에 두느냐는 중요한 문제였습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반석이 나올 때까지 땅을 파고 집을 짓습니다. 그러나 어리석은 사람은 설마 괜찮겠지 하고 모래 위에 집을 세웁니다. 오히려 땅 속에 투자하는 돈을 가지고 화려하게 집을 짓습니다. 그러나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날 때 어떻게 됩니까? 

마태복음 7장 27절을 보겠습니다.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 비가 오고 창수가 날 때 모래 위에 지은 집은 흔적도 없어집니다. 집을 짓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기초 공사입니다. 사람들은 기초 공사는 눈에 보이지 않고 또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에 소홀히 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기초 공사를 잘해야 합니다.

우리는 기초를 튼튼하지 않아 건물이 무너지는 것을 자주 목격합니다. 그러면서도 기초를 등한시합니다. 이는 기초 공사를 하려면 많은 물질과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빨리 빨리 해서 전시효과와 자기 광을 내고자 함에 있습니다. 그러나 늦더라도 기초 공사를 튼튼히 해야 합니다.

인간의 기초를 어디에 두느냐는 매우 중요합니다. 세상의 부귀영화를 얻었다 할지라도 기초가 약하면 시련의 날에 흔적도 없이 날아가 버립니다. 우리는 여러 가지 위에 인생의 기초를 놓을 수 있습니다. 지식과 철학과 사상과 물질과 권세에 기초를 놓을 수 있습니다. 북한은 주체사상에 기초를 놓았습니다. 이 때 그들의 결과는 최빈민국이 되었습니다. 세상의 것들은 견고한 기초가 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반석 위에 집을 지을 수 있습니까? 말씀을 듣는 것으로는 안 됩니다. 말씀을 듣고 순종해야 합니다. 말씀에 인생의 가치관과 사생관을 둘 때에 역경의 때에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우리가 한 말씀이라도 듣고 행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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