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신년 메시지 빌립보서 3:12-16
푯대를 향하여 달려가자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빌 3:14).
세상을 살아가는 삶의 양식은 일반적으로 크게 둘로 나눌 수 있습니다. 하나는 늘 과거를 회상하며 살아가는 과거지향적인 삶과, 또 하나는 미래를 바라보며 살아가는 미래지향적 삶입니다. 다시 말해 꿈을 가지고 사는 사람과 꿈 없이 살아가는 삶입니다.
대개 나이가 먹으면 미래지향적인 삶보다 과거 지향적인 삶을 살게 됩니다. 그러나 젊은이라 할지라도 꿈과 비전을 상실하고 산다면 과거지향적인 삶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젊은이를 애늙은이라고 합니다.
반면에 나이가 많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꿈을 꾸며 꿈을 붙들고, 비전을 가지고 산다면 이는 미래지향적인 삶으로 늙은이라 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청춘이란 시를 보면 청춘이란 인생의 어느 기간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청춘이란 인생의 어느 기간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마음의 상태를 말하는 것이다. 그것은 장미 빛 얼굴, 앵두 같은 입술, 하늘거리는 자태가 아니고 강인한 의지, 풍부한 상상력, 불타는 정열을 말한다.
나이가 먹는다고 해서 사람이 늙는 것은 아니다. 이상을 잃어버릴 때 비로소 늙는 것이다. 영감이 끊어지고 정신이 희미해져서 눈 속에 묻히고 비탄이라는 얼음 속에 갇힌다면 비록 나이는 이십대라도 그 사람은 이미 늙은 것이다. 머리를 드높여 희망이란 파도를 탈 수 있는 한 팔십 세 일지라도 청춘은 그치지 않는 것이다.”
새해가 되면 나이가 한 살 먹습니다. 나이가 먹는다는 것은 늙어간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비록 육신의 나이가 먹는다 할지라도 꿈과 비전만은 잃지 않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얼굴에 주름살이 생기고 흰머리가 나는 것으로 슬퍼할 것이 아니라 꿈이 사라지고 비전이 상실해가는 모습으로 인해 슬퍼해야 합니다. 금년에 저와 여러분이 꿈에 붙들려 앞으로 달려가는 삶을 살기를 기도합니다.
1. 꿈을 가지고 사는 사람이란
꿈을 가진 어떤 사람입니까? 꿈을 가진 사람은 미래를 준비합니다. 꿈을 가진 사람은 자신을 가꿉니다. 꿈을 가진 사람은 자신을 개발합니다. 꿈을 가진 사람은 서두르지 않습니다.
“오래 엎드린 새가 높이 날고 빨리 핀 꽃이 먼저 진다”는 말이 있습니다. 오래 엎드려 비축한 새가 높이 나릅니다. 불후의 명작인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은 무려 8년간, 그림 한 점을 그리기 위해 무려 2,000개의 자료를 수집했고 지금도 그것이 남아 있습니다.
꿈을 가진 사람은 준비합니다. 호박은 6개월, 참나무는 6년, 100년이 걸립니다. 6개월 만에 핀 꽃은 불꽃에 순간 사라집니다. 그러나 참나무에서 열린 상수리, 그리고 참나무 숯은 참숯이 되어 오래 오래 불을 피웁니다.
꿈을 가진 사람은 따르는 법을 배웁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부르실 때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막 1:17)고 하셨습니다. 좋은 제자는 우선적으로 따르는 법을 배웁니다. 좋은 follower가 됩니다.
모세는 노예 백성을 구원하기 위해서 80년간 하나님의 말씀을 따랐습니다. 여호수아는 가나안을 정복하기 위해 40년간 모세를 따랐습니다. 그는 40년간 2인자로 살았습니다. 비전을 가진 사람은 자기 자신을 훈련합니다. 그리고 비전을 가진 사람은 충성하고 헌신하며 두려움을 극복합니다.
그리고 꿈을 가진 사람은 미래를 향해 달려갑니다. 빌립보서를 쓸 당시의 바울의 나이는 대개 60세 전후로 봅니다. 지금은 60 세하면 노인 축에 끼지도 못합니다만 수명이 짧던 당시의 나이로 본다면 나이가 꽤 먹은 노인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바울의 마음속에는 벅찬 감격, 타오르는 꿈이 있었습니다. 그는 타오르는 꿈을 붙들고, 그 꿈을 향해 달려갔습니다. 꿈을 가진 그의 삶은 생동감이 넘쳐났습니다. 바울이 꿈을 가지고 살았을 때에 그 시대의 역사의 물줄기를 바꿀 수 있었습니다.
꿈을 가진 사람은 스케일이 웅대하고 장엄합니다. 성경은 “네 입을 크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시 81:10)고 말씀했습니다. 우리가 작은 하나님을 믿으면 작은 일을 하게 되고, 존귀하고 위대하신 하나님을 믿으면 위대하고 큰일을 하게 됩니다.
근대 선교의 아버지라 불리는 윌리엄 캐리는 세계 선교의 창을 열기 위해 인도를 향해 나갔습니다. 그때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위대한 일을 기대하라. 하나님을 위해 위대한 일을 시도하라.”(Expect great things from God, attempt great things for God!)
윌리엄 클라크는 1876년 7월 일본 삿포로 농림학교 초대 교장에 취임했습니다. 그는 학생들에게 농업기술을 전수하는 한편 “성경에 인생의 꿈이 있다”고 가르쳤습니다. 임기를 마친 후 그는 고별사에서 유명한 말을 남깁니다. “젊은이들이여, 야망을 가져라 주님 안에서!” 우리가 새해에 주님 안에서 큰 꿈을 꾸고 큰 꿈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합니다.
2. 과거로부터 떠남
큰 꿈을 이루려면 반드시 앞으로 나가야 합니다. 우리가 앞으로 달려갈 때 뒤에서 끄는 뉴턴의 제 3 법칙인 반작용이 작용합니다. 이때 반작용이 크면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후퇴하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큰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반드시 앞으로 나가야 합니다. 믿음이란 뒤로 물러가 침륜에 빠지는 것이 아닙니다(히 10:39).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앞으로 나갈 수 있습니까? 우리가 어떻게 앞으로 나아가 새로운 새 역사를 창조할 수 있습니까? 우리가 어떻게 반작용을 이기고 앞으로 나갈 수 있습니까?
우리가 새 역사를 창조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익숙한 것들을 버리는 것에서부터 시작합니다. 다시 말해 새로운 역사는 과거로부터 떠나야 합니다. 어두운 자아상으로부터 떠나야 합니다.
우리가 어떤 자아상, 자화상을 갖고 사느냐에 따라 현재와 미래가 달라집니다. 자아상은 자신에 대한 이미지이입니다. 자화상은 자신에 대한 이해입니다. 아브라함의 자아상은 우상을 섬기는 자아상이었습니다.
그는 아버지 데라가 섬기는 달신(난나르)를 섬겼습니다. 따라서 그의 자아상은 운명적이었습니다. 그는 잘되면 자기 복, 안되면 조상 탓, 우상 탓을 하는 원망과 불평의 어두운 자아상을 갖고 있었습니다.
우상 숭배는 쾌락과 동일선상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의 자아상은 쾌락과 탐욕의 자아상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너는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라고 했을 때 그는 결정해야 했습니다.
그는 열국의 아버지로 살 것인가 아니면 갈대아 우르에서 달 신을 섬기는 자로 살 것인가 선택해야 했습니다. 그는 이 선택 앞에 과감하게 과거를 땅에 묻고 미래를 향해 도전했습니다. 그리했을 때 역사를 창조하는 역사의 주역이 될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역사를 창조하기 위해서는 과거를 땅에 묻어야 합니다. 미래를 향해 나가기 위해서는 과거의 썩은 동아줄을 과감하게 끊어내야 합니다. 과거의 성공으로부터 떠나야 합니다. 과거의 실패로부터 떠나야 합니다. 과거의 상처로부터 떠나야 합니다.
우리가 과거로부터 떠날 수 있는 것은 예수님이 나의 모든 죄와 허물과 슬픔과 고통을 다 짊어지시고 십자가에서 돌아가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하시고 우리에게 새로운 자아상, 밝은 자아상, 새로운 이미지를 심어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나의 새로운 이미지, 새로운 자아상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다시는 기억하지 않으십니다. “내가 그들의 불의를 긍휼히 여기고 그들의 죄를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리라”(히 8:12). 과거로부터 무슨 죄를 지었든지 주님 앞에 내려놓고 죄를 아파하고 진지하게 죄를 회개하면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용서하여 주십니다. 더 이상 우리의 죄를 기억하지 않으십니다.
바울은 예수님 믿는 사람들을 죽이던 살인자였습니다. 스데반을 죽였던 원범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예수님을 만났을 때에 그는 죄 용서함을 받고 새역사의 주역이 될 수 있었습니다.
바울은 과거에 집착하지 않았습니다.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바울은 뒤에 있는 것을 잊어버렸습니다. 바울은 과거에 영향이나 지배를 받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새로운 미래를 행해 나가기 위해서는 우리를 지배하던 과거의 것들을 끊어버리는 결단이 필요합니다. 만일 바울이 스데반을 죽인 끔찍한 과거의 노예로 살았다면 새 역사를 이룰 수 없었습니다. 그가 과거를 후회하며 살았다면 앞으로 나갈 수 없었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제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라고 했습니다. 히브리서 12장 1절을 읽겠습니다.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
마라톤 선수는 할 수 있는 대로 가볍게 하고 뜁니다. 수영 선수는 0.001초를 단축하기 위하여 몸에 난 솜털까지 민다고 합니다. 이처럼 믿음의 경주를 하려면 모든 무거운 것을 벗어 버려야 합니다.
무거운 것은 운동선수가 운동을 하는데 방해가 되는 체중을 말합니다. 성도들에게 이런 장애물은 탐욕과 세상에 대한 애착과 집착, 그리고 교만이 될 수 있습니다. 이런 것들은 신앙생활에 방해가 됩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죄를 얽매이기 쉬운 죄라고 했습니다. 죄의 특징은 얽매이게 합니다. 한 마디로 죄는 한 번 달라붙으면 좀처럼 떨어지지 않습니다. 원망과 불평이 따라 붙으면 입을 벌렸다 하면 원망하게 됩니다.
의심이 따라붙으면 모든 것이 정상적으로 보이지 않게 됩니다. 시기심이 따라 붙으면 사촌은 그만 두고 자식이 땅을 사도 배가 아픕니다. 허무와 절망이 따라 붙으면 죽음의 병을 앓게 됩니다. 열등감이나 비교의식도 얽매이게 하는 것들입니다. 특히 나쁜 습관들은 얽매이게 하는 것들입니다. 이런 것들을 벗어버려야 합니다.
벗어버린다는 것은 과감하게 집어치우다, 단번에 벗어던진다는 뜻입니다. 이는 회개를 의미합니다. 회개는 차차 단계적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회개는 지금 단번에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죄를 단번에 진실히 회개하면 납덩어리처럼 짓누르던 심령이 그렇게 기쁠 수 없습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고후 5:17). 이제 우리는 과거에 묻혀 살지 말고 예수님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는 확신, 새로운 자아상으로 빚어졌다는 확신을 가지고 새해를 살아가기를 기도합니다.
3. 앞으로의 전진
빌립보서 3장 14절을 보겠습니다.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푯대는 부름의 상, 소명입니다. 바울은 부르심, 소명에 목표를 설정했습니다.
소명이란 주님의 부르심을 위해 자신의 삶을 희생할 수 있는, 자기의 목숨을 던질 수 있는, 이게 바로 소명입니다. 소명은 불신자들에게는 없고 주님을 믿는 사람들에게만 주어지는 고귀한 것입니다.
우리의 소명이 무엇입니까? 우리의 소명은 직장에서는 직장 복음화, 캠퍼스에서는 캠퍼스 복음화, 가정에서는 가정복음화입니다. 소명을 감당하되 우리에게 주신 달란트, 은사를 가지고 열심히 복음을 전하는 것이 우리의 소명입니다. 우리는 이 소명이 분명하고 확실해야 합니다.
바울은 이 소명이 확고했습니다. 바울은 이 소명을 붙들고 제 3차 선교에 이르기까지 복음을 전하기 위해 달려갔습니다. 심지어 죄수의 몸으로 로마에게까지 복음을 전하기 위해 달려갔습니다.
‘달려가다’는 영어로 press on으로 강력한 감성이 들어가 있는 단어로, 강력하게 전진한다는 뜻이요, 헬라어로는 오랫동안 굶주렸던 사냥개가 먹이를 발견한 모습을 말합니다. 존재의 모든 에너지를 집중하여 먹이를 향해 질주하는 그런 뜻입니다. 이처럼 바울은 목표를 향해 무섭게 질주했습니다. 어떤 시련도, 어떤 장애물도 뚫고 앞으로 나갔습니다.
우리는 과거를 떠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를 못지않게 미래를 향해 전진해야 합니다. 떠남이 중요한 것만큼 미래를 향해 나가는 것 중요합니다.
우리가 앞으로 향해 나갈 수 있는 것은 새로운 창조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생명의 면류관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앞으로 나가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합니까?
첫째, 인내
히브리서 12장 1절에서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라고 했습니다. 인내란 전진하는 결의, 극복해 나가는 것을 말합니다.
인내는 장애물이 있더라도 지연하거나 낙담하지 않고, 실의에도 좌절하지 않고 앞으로 나가는 것을 말합니다. 외적인 장애물이 있어도 멈추지 않고 참고 목적지에 이르는 것을 말합니다. 실패와 승리는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인내하느냐에 있습니다.
사람들이 처음에는 의욕을 가지고 출발합니다. 그러다가 힘이 들고 어려우면 상이고 무엇이고 다 쉽게 포기하고 주저앉아버립니다.
그러나 초반전에 아무리 잘 뛰어도 인내심이 없어 끝까지 달리지 못하고 중도에 포기하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끝까지 인내심을 가지고 달린 사람만이 승리의 면류관을 쓸 수 있습니다.
둘째, 전력질주
앞으로 나가려면 한눈팔지 않고 그 목표에 헌신해야 합니다. 마젤란이 세계를 처음으로 항해로 일주할 때 많은 시련과 난관이 있었습니다.
2년 동안 계획했던 항해가 3년 이상이나 걸렸습니다. 식량이 고갈되었습니다. 배의 모든 장비가 마모되기 시작했습니다. 파선 직전에 이르렀습니다. 설상가상으로 몇 사람들이 선상 반란을 시도했습니다.
이 숱한 어려움을 겪으면서 마젤란 함장은 승객들과 선원들에게 계속해서 한가지 단어만을 되풀이했습니다. “계속 항해하라! 계속해서 항해하라! 계속해서 항해하라!” 마젤란은 드디어 세계를 일주할 수 있었습니다.
새해를 출발하면서 과거의 노예가 되지 마십시오. 새해에는 과거의 부정적인 자아상을 과감하게 버리십시오. 새해에는 과거의 썩은 동아줄을 끊으십시오. 그리고 새로운 자아상을 가지고 사명을 감당하십시오.
새해에는 과거의 실수와 실패가 우리의 꿈과 비전을 좀먹지 말게 하십시오. 과거의 사슬을 담대히 끊고 새로운 미래를 향해 달려가십시오. 나가되 믿음으로 담대하게 나가십시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어떤 장애물이 있더라도 계속 나가십시오.
하나님은 우리에게 놀라운 미래를 약속하셨습니다. 영광스러운 의의 면류관을 준비되어 있습니다(딤후 4:7,8). 하나님은 소명을 위해 전심전력하여 질주하는 우리에게 상을 주십니다. 따라서 소명을 위해 자기를 투자하고 헌신하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