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이사야서 54:1-3
장막터를 넓혀라
“네 장막 터를 넓히며 네 처소의 휘장을 아끼지 말고 널리 펴되 너의 줄을 길게 하며 너의 말뚝을 견고히 할지어다”(사 54:2).
미국 미시간 주의 성 요셉 고아원에 문제소년 한 명이 들어왔습니다. 그 소년의 이름은 토마스였습니다. 토마스는 원생들과 싸움을 일삼았습니다. 그 고아원에 베라다 선생이 있었는데, 그 선생은 인내심을 갖고 끊임없이 토마스를 격려했습니다. “하나님은 너를 매우 사랑하신다. 큰 꿈을 가져라.” 그러나 토마스의 행동에는 변화가 없었습니다. 그는 결국 고아원에서 쫓겨났습니다. 토마스는 퇴원당한 후에 비로소 베라다 선생의 소중한 가르침을 깨달았습니다. 그는 피자가게에 취직해 열심히 일했습니다.
그는 피자 한 개를 11초에 반죽하는 탁월한 솜씨를 발휘했습니다. 토마스는 머릿속에 베라다 선생이 심어준 큰 꿈을 실현하기 위해 피자회사를 설립했습니다. 이 회사가 바로 미국에서 두 번째로 큰 도미노 피자입니다.
그는 피자사업을 통해 벌어들이는 돈으로 미국 프로야구 명문구단인 디트로이트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수많은 청소년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습니다. 그는 자신이 사업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베라다 선생님의 가르침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그는 방황하는 청소년들에게 외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여러분과 함께 하신다. 꿈을 크게 가져라.” 꿈을 갖고 사는 자는 결코 방황하지 않습니다. 사람은 꿈을 먹고 사는 존재입니다. 사람이 동물과 다른 점은 꿈을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좁히라”고 말씀하신 것은 한 곳도 없습니다. 모두가 “넓히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마음을 넓히고, 꿈을 넓히고, 기도의 폭을 넓히고 생각의 폭을 넓혀야 합니다.
본문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현재 바벨론에 붙잡혀 와서 포로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에게는 소망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그들을 향해 장막 터를 넓히라고 명령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생각하는 만큼, 꿈을 꾸는 것만큼, 기도하는 것만큼 채워주십니다. 이 시간에 장막 터를 크게 넓혀 하나님의 크신 복을 담기를 기도합니다.
1. 외쳐 노래하라(사 54:1)
“잉태하지 못하며 출산하지 못한 너는 노래할지어다 산고를 겪지 못한 너는 외쳐 노래할지어다”(사 54:1상). 하나님은 포로생활을 하고 있는 이스라엘을 세 여인에 비유하셨습니다. 첫째는 잉태치 못한 여인이요, 둘째는 출산하지 못한 여인이요 셋째는 산고를 겪지 못한 여인입니다. ‘잉태하지 못하는 여인’은 아기를 가질 수 없는 여인을 말하고, ‘출산하지 못한 여인’은 아이를 낳을 수 없는 여인을 말합니다. 그리고 ‘산고를 겪지 못한 여인’은 아이를 낳을 때 부르짖을 힘조차 없는 여인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아기를 가질 수도 없고, 아이를 낳을 수도 없고, 해산할 힘조차 없는 여인에게 노래하라고 했습니다. 슬픔과 고통가운데 있는 백성들에게 하나님은 외쳐 노래하라고 하셨습니다. 영어로 ‘Burst into sing, shout for joy!’ 입니다. ‘burst’란 ‘부풀어 터지다. 폭발하다’라는 뜻입니다. ‘노래를 터뜨리라, 주체할 수 없는 기쁨으로 함성을 지르라’는 말씀입니다.
당시 아이를 갖지 못한 여인은 하나님의 저주받은 여인으로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은 저주 받은 여인에게 뭐가 좋아서 노래하되 기쁨이 충만하여 함성을 지르며 찬양을 하라고 하십니까?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그들은 기뻐할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노래하고 외치라고 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들의 자식이 남편 있는 자의 자식보다 많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는 홀로 된 여인의 자식이 남편 있는 자의 자식보다 많음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느니라”(사 54:1하). 하나님은 포로생활하고 있는 이스라엘의 자녀들이 바벨론의 사람들 수보다 더 많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실제로는 수 만분의 일도 안 되는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비전이요, 희망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포로에서 귀환한 후에 이스라엘은 번창했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오늘날 믿음을 따라 아브라함의 후손 된 자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하나님은 한번 택하신 자녀들을 결코 버리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택한 자들에게 두신 희망과 비전을 결코 버리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끝까지 지켜주시고 함께 하시고 복을 주시는 소망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절망 중에도 낙심하지 않고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습니다.
내가 좋을 때, 기쁠 때만 기쁨으로 하나님을 노래하고 찬양하고 외친다면 이는 믿는 사람의 자세가 아닙니다. 절망과 좌절 중에도 외쳐 노래하고 찬양할 수 있어야 합니다.
끓는 물에 당근과 달걀 그리고 커피를 넣으면 어떻게 됩니까? 딱딱했던 당근은 끓는 물에 물렁물렁해지고, 부드럽던 달걀은 단단해집니다. 반면에 커피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대신 좋은 커피 향을 냅니다. 오히려 커피는 뜨거울수록 더 좋은 향이 납니다.
우리는 끓는 물의 고난 앞에 당근처럼 자신감 넘치고 힘차게 들어가지만 나올 때는 유약해져 희망을 잃고 포기하지는 않습니까? 아니면 달걀처럼 시작할 때에는 부드럽지만 고난 앞에 부드러움은 온 데 간 데 없고 석고상처럼 굳어지지는 않습니까? 아니면 커피처럼 뜨거운 물 자체를 변화시켜 아름다운 향을 내지는 않습니까?
우리는 고난의 때에 커피처럼 아름다운 향기를 내기를 기도합니다. 우리가 문제가 잘 풀리지 않을 때일수록 오히려 희망을 가지고 아름다운 향기를 내며 하나님을 찬양하고 외치기를 기도합니다.
2. 장막 터를 넓히라((사 54:2-3)
하나님은 잉태하지 못하고 출산하지 못하며 아기를 낳을 힘조차 없는 여인 같은 이스라엘에게 주시는 두 번째 말씀은 네 장막 터를 넓히라는 것입니다. “네 장막 터를 넓히며 네 처소의 휘장을 아끼지 말고 널리 펴되 너의 줄을 길게 하며 너의 말뚝을 견고히 할지어다”(사 54:2).
고대 유목민들은 그들의 거처로 장막(텐트)을 사용했습니다. 텐트를 쳐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필요한 만큼의 텐트를 구입하여 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사람의 수를 따라, 자기의 형편을 따라, 상황을 따라 치지 말고 최대한 넓은 것을 사서 치라고 하셨습니다. 휘장도 아끼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 맬 줄도 최대한 길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텐트를 지탱해주는 말뚝도 할 수 있는 대로 단단히 박으라고 했습니다.
현재 이스라엘 형편은 장막 터를 넓힐 형편이 되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전쟁으로 부모와 처자와 남편을 잃었습니다. 그들은 바벨론에서 종살이하며 멸시를 당했습니다. 그들의 몸과 마음은 위축될 대로 위축되어 있었습니다. 그들은 겨우 자기 몸 하나 이슬을 피할 수 있는 초가삼간을 만들어 새우잠을 자야 할 형편이었습니다. 그것마저도 없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명령하셨습니다. “네 장막 터를 넓히라”(Enlarge the place of your tent). “네 처소의 휘장을 아끼지 말고 널리 펴라.” “줄을 길게 하라.” “말뚝을 견고히 하라.” 이 말씀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입니까?
첫째, 꿈을 크게 가지라.
하나님은 현재의 자신의 처지만 바라보고 마음이 오그라들어 있는 것을 원하지 않으십니다. 이스라엘은 고달픈 포로생활을 하다 보니 모든 생각이 자기중심적이 되었습니다. 민족이고, 하나님의 역사고 모두 둿 전이었습니다. 또 자기 슬픔과 연민에 빠져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며 하나님의 택한 백성으로서의 긍지와 자부심을 찾아 볼 수 없었습니다. 겨우 자기 한 몸을 챙기고, 자기 가족만 챙기는데 급급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기 한 몸이나 챙기는 좁쌀영감과 같은 삶을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현실이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더 큰 꿈을 갖고 살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네 입을 넓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시 81:10)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입을 크게 벌리고 하나님의 은혜와 복을 크게 그리고 많이 갈망하면 갈망할수록 넘치도록 부어주십니다.
우리는 자신의 형편을 보고 아예 입을 열어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지 않습니다. 그런가 하면 입을 열기는 여는데 크게 열지 않습니다. 우리가 입을 크게 열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많은 것으로 채워주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능치 못할 일이 없으시고 천하 만물이 우리 아버지의 것이며 없는 것이 없으신 아버지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구하기로 마음먹었다면 크게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큰 꿈을 가져야 크게 이루어 주십니다.
빌립보서 2장 13절에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라고 하셨습니다. 잠언 23장 7절에 “대저 그 마음의 생각이 어떠하면 그 위인도 그러하다”고 했습니다. 바울은 우리의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분이라고 했습니다(엡 3:20). 어떤 사람은 “위대한 사람이 따로 없다. 단지 위대한 꿈이 있을 뿐이다”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생각을 크게 하는 습관을 길러야 합니다. 마음과 생각이 크면 그만큼 크게 됩니다. 노르만 필은 “생각을 바꾸면 세계도 바꿀 수 있다”고 했습니다. 생각을 바꾸면 삶이 달라집니다. 쥐를 그리려고 생각하면 쥐를 그리게 되고, 호랑이를 그리려고 생각하면 호랑이를 그릴 수 있습니다. 설령 호랑이를 그리다가 못 그리면 최소한 고양이는 그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처음부터 쥐를 그리려고 생각하면 생쥐도 그릴 수 없습니다.
어느 날 알렉산더 대왕이 자신을 위해서 충성을 다한 참모들을 불러 모아놓고 “그동안 참으로 수고했소. 이제 소원이 있으면 한 가지씩 이야기해 보시오”라고 했습니다. 참모들은 집이나 좋은 말 한 필을 달라든지, 휴가를 달라는 등의 요청들을 합니다.
그중 한 신하가 이런 요청을 하였습니다. “대왕이시여, 대왕께서 정복한 나라 중 하나를 제게 주십시오.” 그때 주위에서 웅성거렸습니다. “정말 알렉산더 대왕이 한 나라를 주겠느냐?”
그러나 알렉산더는 뜻밖에도 이런 대답을 했습니다. “나라 하나를 그대에게 주겠소. 그대는 나 알렉산더가 나라라도 하나 뚝 떼어줄 수 있는 큰 사람으로 믿어주었기 때문에 나 역시 이러한 호의를 베푸는 것이요.” 우리가 하나님을 크신 분으로 믿고 기도하면 우리에게 크고 위대한 일을 행하실 것입니다.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막 11:24)
여러분은 꿈을 갖고 있습니까? 여러분의 꿈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일찍이 우리에게 황무한 캠퍼스를 복음으로 변화시킬 꿈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에게 이 꿈을 주시고, 이 꿈을 이루기를 열망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좁아진 마음을 열고 세계로 향해 나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단 한 번 밖에 없는 인생, 두 번 다시 오지 않는 젊음, 주님 안에서 꿈을 가지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서 기도하고 도전하기를 기도합니다.
둘째, 헌신하라.
우리가 큰 꿈을 갖고 있다고 꿈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희생의 휘장을 아끼지 말아야 합니다. 휘장은 출애굽기 26장을 보면 안의 휘장은 청색 실, 자색 실, 홍색 실, 그리고 가늘게 꼰 베실로 만듭니다.
그리고 밖의 휘장은 해달의 가죽으로 만듭니다. 해달은 바다에 서식하는 수달과의 짐승입니다. 광야에서 해달의 가죽을 구한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청색 실, 자색 실, 홍색 실, 그리고 가늘게 꼰 베실도 흔한 것이 아닙니다.
이것을 구하려면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듭니다. 이처럼 꿈을 이루려면 그에 상응한 대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대가를 지불하지 않는 꿈은 결코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스위스 출신의 크리스천 실업가요, 명망 있는 은행가인 앙리 뒤낭은 예수님을 믿어도 항상 돈이 제일이라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당시의 세상에 가장 막강한 영향을 끼치던 사람은 프랑스의 나폴레옹이었습니다.
그는 나폴레옹을 만나 프랑스와 스위스의 경제협력을 이끌어 내어 거대한 부의 주인공이 되려는 꿈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파리로 갔습니다. 그러나 나폴레옹이 전쟁터로 떠났기에 그를 만날 수 없었습니다.
그는 전쟁터에 가면 나폴레옹을 만날 수 있으리라 생각하고 전쟁터로 갔습니다. 그런데 그가 도착했을 때 나폴레옹은 전쟁터를 떠났습니다. 대신 그가 만난 것은 프랑스와 오스트리아의 치열한 전투로 인한 시체들과 부상을 당하여 신음하고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는 마을사람들과 힘을 합쳐 부상병들을 돌보는 일에 참여했습니다. 그는 그런 상황을 목격하고 기도하였습니다. 그의 마음속에 나폴레옹과의 협상을 통해 엄청난 부를 얻어 보려는 꿈 대신에 새로운 꿈을 꾸었습니다.
그 꿈은 전쟁 중에 아군, 적군을 막론하고 부상당하는 모든 사람을 돌보고, 이 일을 통해 인류가 화해하는 평화의 꿈이었습니다. 그는 이 꿈을 이루기 위해 평생 모았던 모든 자산을 드려 국제적십자 운동을 만들었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꿈을 가졌으면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물질을 헌신하고 시간을 헌신하고 자신을 희생하고 헌신해야 합니다. 그 때 그 꿈이 실현됩니다.
셋째, 기도와 사랑의 줄을 길게 하라.
휘장을 아무리 아끼지 않고 펴도 줄이 짧으면 텐트를 칠 수 없습니다. 줄이 길어야 합니다. 줄이 길어야 한다는 것은 기도의 줄이 길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야고보서 4장 2절에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하기 때문이다”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기도의 줄이 짧으면 하나님의 풍성한 복을 담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자기와 자기 가족만 기도하지 말고 선교사님들과 인하대와 인천대, 연세대, 서울대와 고대, 그리고 직장복음화, 더 나아가 세계 캠퍼스를 가슴에 품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줄은 사랑의 줄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사랑의 줄이 길어야 합니다. 사랑의 줄은 다른 사람을 복되게 합니다. 사랑이란 추상적인 것이 아닙니다. 사랑이란 말과 행동으로 다른 사람에게 유익을 주고 기쁨과 위로를 주는 것입니다.
우리는 기도의 줄을 길게 하여 안 될 일도 되게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사랑의 줄을 길게 하여 사람들에게 유익을 끼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넷째, 믿음의 말뚝을 견고하게 하라.
장막 터를 넓히고 아낌없이 크게 쳐진 휘장의 무게를 감당하기 위해서는 밧줄을 잡아매는 말뚝이 견고해야 합니다. 말뚝을 견고하게 하지 않으면 바람에 텐트가 날라 가게 됩니다. 따라서 장막 터를 넓혀 거대한 텐트를 치기 위해서는 말뚝을 땅속 깊이 견고히 박는 것은 필수적입니다.
우리가 꿈과 비전을 가지고 살다 보면 믿음을 흔드는 환경을 만납니다. 우리가 살다 보면 희망의 말보다 절망의 말을, 내게 좋은 영향을 주는 말보다 안 좋은 영향을 주는 말을 듣게 됩니다. “꿈 깨, 깨몽, 올라가지 못할 나무는 쳐다보지도 말라. 너는 안돼.”
우리는 이때에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믿음으로 굳게 서야 합니다. 꿈이 흔들리지 말아야 합니다. 세상이 아무리 절망과 불신의 노래를 불러도 우리는 믿음을 견고히 하여 굳건한 믿음의 노래를 불러야 합니다.
때로 수치와 부끄러움을 당하는 일이 있다 해도, 축복의 문이 당장 열리지 않는다고 해도, 자신의 부족한 모습을 보고 낙심하거나 슬퍼할 것이 아닙니다. 이럴 때일수록 말씀에 뿌리를 깊이 내려야 합니다.
같은 사건을 만나도 사건을 대하는 사람의 믿음에 따라 축복과 저주가 갈라집니다. 믿음을 견고히 하면 하나님은 모든 상황을 가능하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믿는 만큼 복을 주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하나님을 믿으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왜 장막터를 넓혀야 합니까? 열방을 얻고 황폐한 성읍이 옥토로 변하기 때문입니다. “이는 네가 좌우로 퍼지며 네 자손은 열방을 얻으며 황폐한 성읍들을 사람 살 곳이 되게 할 것임이라”(사 54:3). 열방을 얻고 황폐한 성읍이 옥토로 변한다는 것은 확장과 성장과 번영을 뜻합니다.
하나님이 회복해 주시면 버림받은 땅이 사람 살 곳이 됩니다. 아무것도 경작할 수 없던 황무지가 옥토가 되고 물댄 동산이 됩니다. 사막에 숲이 우거지고 광야에서 샘이 납니다(사 35:1, 6).
하나님은 우리에게 네 장막 터를 넓히라고 명령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좁아진 마음을 넓혀서 세계로 향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헌신과 기도와 사랑, 그리고 믿음의 뿌리를 견고하게 내리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금년 한해 우리의 터가 넓어지도록 기도합시다. 각 마을마다 장막터가 넓어지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