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12:14-21

상한 갈대를 꺾지 않으시는 예수님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 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기를 심판하여 이길 때까지 하리니”(12:20).

 

지금 한국은 정치 경제 사회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젊은 청년들은 졸업을 해도 취업을 할 수 없다보니 절망의 늪에 빠져 있습니다. 지금 실업률이 5.8%라고 합니다. 10대는 진학, 20대는 취업, 30대는 육아 문제, 40대는 자녀 교육문제, 50대는 은퇴문제, 60대는 노후문제 등으로 불안해하고 있습니다.

거기다가 정부는 내각조차 구성하지 못하고 있고, 남북문제는 좀처럼 풀리지 않아 전쟁이 곧 일어날 것 같은 단어들이 오가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나 믿지 않는 사람이나 장래에 대한 두려움으로 힘들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비전 없이 현실에 안주하며 살아갑니다.

이런 시대에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우리가 어떻게 두려움을 이기고 살아갈 수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택하셨음을 굳게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늘 나를 붙들어 주심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성령을 부어 주심을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 시대에 우리에게 주신 사명을 붙들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안식일에 한 손 마른 사람을 고쳐주셨습니다. 예수님은 형식의 틀에 갇혀 있는 바리새인들에게 한 영혼을 귀히 여기는 삶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러자 바리새인들이 나가서 예수님을 어떻게 죽일까 의논했습니다. 예수님은 이를 아시고 이들과 쓸 데 없는 충돌을 피하고자 거기를 떠나셨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따라왔습니다. 예수님은 이들의 질병을 다 고쳐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예수님을 나타내지 말라고 경계하셨습니다. 마태는 예수님의 이런 모습을 보고 이사야가 예언한 메시야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본문에서 우리는 예수님은 누구신가를 배울 수 있습니다.

첫째, 택하신 종 예수님(12:18)

보라 내가 택한 종 곧 내 마음에 기뻐하는 바 내가 사랑하는 자로다 내가 내 영을 그에게 줄 터이니 그가 심판을 이방에 알게 하리라”(12:18). 여기에서 내가 택한 종이란 메시아를 뜻합니다. 이사야는 메시아를 종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사야는 그가 전한 말씀에서 메시아를 고난과 겸손의 종으로 묘사했습니다.

이사야의 예언대로 예수님은 종으로 오셨습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10:45). 종은 신분이 천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종이 되기를 싫어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종입니다. 종이란 단어를 좋아 하여 가장 많이 사용한 사람은 바울입니다. 바울은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 자기를 종이라고 스스럼없이 소개했습니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종으로 부름을 받았다.” 자기를 내가 누구다라고 서슴없이 말할 수 있다는 것은 큰 복입니다.

여러분은 자신을 누구라고 소개할 수 있습니까? 여러분의 직함이 당신의 모습입니까? 직함은 시간이 지나면 사라집니다. 사회에서 주는 명칭은 언젠가는 사라집니다. 박근혜 대통령도 5년 후면 사랍니다.

라틴어 중에 메멘토 모리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는 죽음을 기억하라”, 또는 너는 반드시 죽는다는 것을 기억하라”, “네가 죽은 것을 기억하라는 뜻입니다.

로마의 한 개선장군이 로마 시민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으며 퍼레이드를 벌릴 때에 한 노예가 메멘토 모리라고 외쳤습니다. 사회가 주는 영원하지 않습니다. 지금 나의 직함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영원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종이라는 것입니다. 바울의 위대함은 가말리엘의 제자로서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종으로 살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까? 사회에서 주는 직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종으로 사시기를 기도합니다. 그것만이 영원합니다.

그리고 종은 신뢰받고 총애를 받는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신뢰하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마음에 기뻐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예수님께 성령을 충만히 부어주셨습니다.

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61:1),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10:38),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3:16). 예수님은 성령을 충만히 받으셨습니다. 성령을 충만히 받으신 예수님은 자신의 의지나 능력이나 지혜로 일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성령의 도우심으로 일하셨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성령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하게 합니다. 성령은 자유하게 합니다. 성령은 생명을 줍니다. 성령은 우리에게 믿음과 희망을 줍니다. 반면에 악한 영은 인간을 파멸시키고 무기력하게 하고 죽음에 이르도록 합니다. 악령은 불신과 절망과 미움에 시달리게 합니다.

예수님은 성령을 힘 입어 심판을 이방에 알게 하십니다. 심판은 하나님의 계시로, 복음을 말합니다. 예수님은 성령을 의지하여 하나님의 복음 사역을 감당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하려면 하나님의 영이 부어져야 합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4:6). 하나님의 일은 인간의 힘과 능력으로 안 되고 오직 하나님의 영으로만 됩니다. “오직 나의 영으로”(but by my Spirit). 하나님의 일은 인간적인 능력과 힘이 전혀 도움이 안 됩니다. 도리어 방해가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1:8). 하나님이 영을 부어주셔야 복음의 증인이 될 수 있고 말씀을 전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내게 영을 부어주셔야 내가 기도할 수 있습니다.

나의 힘과 능력, 그리고 지식으로 주님의 일을 하면 얼마 못가 바닥이 납니다. 그러나 성령이 우리에게 부어지면 민족을 향해, 세계를 향해 하나님의 영광의 빛을 발하게 되고, 우리는 이 시대에 가장 위대한 종들로 쓰임 받을 수 있습니다.

오순절에 제자들에게 하나님의 영이 부어졌을 때에 놀라운 변화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하나님의 영이 부어졌을 때 힘없는 자가 힘이 생기고, 소망 없는 자자 소망이 생기고, 꿈꾸지 못하는 자가 꿈을 꾸고, 원망과 불평하는 자가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본문에서 종이라고 표현할 때 천한 신분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특별한 관계를 뜻합니다. 주인과 종과의 특별한 관계, 친밀한 관계, 뗄 수 없는 관계라는 것입니다. 이사야서는 내가 붙드는 나의 종이라고 했습니다(42:1). ‘붙든다는 말은 하나님이 떠받혀 준다, 지원해준다, 인정하고, 보호하고, 인도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실패와 좌절이 없다는 말도 됩니다. 하나님이 택하신 종은 부족해도, 연약해도, 붙들어 주시고, 지혜롭게 해주시고, 강하게 해 주십니다. 하나님께 붙들리면 장래가 염려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붙들리면 시대의 흐름에 위축되지 않습니다.

이사야가 살던 시대는 정말 어려웠습니다. 이런 시대에 이사야는 하나님께 붙들렸을 때 시대에 대해 조금도 위축되거나 낙심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말씀 선포는 하늘과 땅을 진동시켰습니다. “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자식을 양육하였거늘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도다”(1:2).

우리 중에 절망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원서를 내도 연락이 없다고 낙심하지는 않습니까? 결혼 적령기에 달해도 배우자가 나타나지 않는다고 낙망하지는 않습니까? 하는 일마다 되는 것이 없다고 실망하지는 않습니까? 그러나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 하나가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은 나를 외면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내가 믿는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내가 믿는 하나님은 크고 위대하시면 신실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나를 결코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내가 믿는 하나님은 나와 늘 함께 하십니다.우리가 위대하고 크신 하나님의 손에 붙들리게 되면 넘어졌다가도 다시 일어설 수 있습니다. 성공의 유무는 똑똑하고 능력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하나님 손에 붙들려 있는가가 중요합니다.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것에 붙들려 삽니다. 눈에 물질에 붙들려 삽니다. 한 때 평수가 넓은 아파트에 붙들려 살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넓은 아파트에 산다면 부러운 눈초리로 바라보았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넓은 평수가 애물단지가 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하우스 푸어란 단어가 등장했습니다. 우리는 세상의 명예와 권세와 영광에 붙들려 살아서는 안 됩니다. 특히 물질에 붙들려 살아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말씀에 붙들린 사람, 하나님께 붙들린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문제가 생길 때 메주만한 머리로 잔머리 굴리지 말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하나님 앞에 나가 엎드려 기도하십시오.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십시오. 이것은 세상 사람들이 볼 때에 어리석어 보일지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하나님 밖에 모르는 어리석은 사람들을 쓰십니다.

너의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고 네 의를 빛 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 같이 하시리로다”(37:5-6). 하나님께 온전히 붙들리고 모든 것을 여호와께 맡기기를 기도합니다.

보라, 내가 택한 종이사야는 하나님이 택한 종을 보라고 했습니다. “보라”(Behold) 세상 어디를 가도 종을 내세우는 주인은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자기 종을 보라며 내세우고 자랑하셨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영광스런 직분과 비전과 사명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보라, 그분은 예수 그리스도이다. 내가 붙들었고, 내가 택하였고, 내가 기뻐하였고, 내가 그에게 성령을 부어준 종이다. 그는 이방인에게 공의를 베풀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 또한 너무나 자랑스럽게 여기십니다. 우리는 비록 가난하고, 별 볼일 없고, 세상에서 알아주지 않는 사람이 없을지라도 하나님은 나를 대단한 사람으로 여기고 우리를 향해 내가 택한 종을 보라고 하십니다. 나는 하나님이 보실 때 존귀하고 보배로운 존재입니다. “보라 나는 존귀하고 보배로운 존재다.”

둘째, 겸손하신 예수님(12:19)

그는 다투지 아니하며 들레지도 아니하리니 아무도 길에서 그 소리를 듣지 못하리라”(12:19). 요즘은 목소리가 크고 튀어야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큰 소리를 칩니다. 서로 자기가 잘 났다고 떠들고, 자기를 내세우고 남을 헐뜯습니다. 그리고 말도 튀고, 글도 튀고, 옷차림도 튀고, 광고도 튑니다. 자기를 뭔가를 보여주기 위해 뻥튀기를 잘합니다. 그러다보니 4허씨, 허수, 허세, 허영, 허식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렇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외치는데 겉으로 외치지 않으셨습니다. 말하는데 목소리를 독점하지 않으셨습니다. 그 소리가 거리에 들리지 않으셨습니다. 그는 겸손하시고 온유하시고 인격적이십니다. 요즘은 이런 사람은 왕따당하기 십상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조금 일을 해놓고 과장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조용히 일하셨습니다. 조금도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셨습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하나님의 일을 하기 원한다면 조용히 일을 해야 합니다. 바리새인들은 자기를 드러내고 자기 광을 내는데 혈안이 되어 있었지만 주님은 조용히 갈릴리에서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세상의 빛이요 소금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소금과 빛은 말없이 조용히 자기를 녹여 세상을 비추고 세상의 부패를 방지하며 맛을 냅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가리면 가릴수록, 은밀하면 은밀할수록 더욱더 아름답게 드러나고 빛납니다.

바울이 위대한 하나님의 종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자기를 드러내지 않고 주님만을 드러냈기 때문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2:20).

우리는 내 안에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살고, 나의 자아실현이 아니라 예수님이 실현되도록 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높이고,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해 살아야 합니다. 종은 이름이 없으며 주인의 이름만 있을 뿐입니다. 주인의 영광만 있을 뿐입니다. 우리가 어떤 일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소리 없이 쓰임 받는 귀중한 종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믿는 자들의 기본입니다.

프랑스는 피를 흘려 혁명을 했습니다. 그러나 영국은 피를 흘리지 않는 혁명을 하였습니다. 16세기 영국은 부패할 대로 부패해 있었습니다. 그 때 거룩한 무리들이라고 비웃음을 받던 요한 웨슬레와 그의 동역자들이 말씀을 사랑하는 조용한 경건 운동은 영국을 내적으로 변화시켰고 나라를 살렸습니다.

생명은 아무리 작은 것이라 할지라도 바위를 뚫는 힘이 있습니다. 말씀은 생명이 있기 때문에 변화의 역사, 창조의 역사가 있습니다. 교회는 정치집단처럼 떠들썩한 곳이 아닙니다. 교회는 조용히 말씀과 기도를 통해 제자를 양육하여 세상으로 내보내 조용히 영향력을 끼쳐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고 있는 일대일 성경 공부는 들레지 않는 조용한 역사입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생명이 있기 때문에 한국과 세계 캠퍼스를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일대일 성경 공부는 온유하고 겸손하신 예수님을 배우는 사람만이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조용한 일대일 성경공부로 세상을 변화시키기를 기도합니다.

셋째, 희망의 주 예수님(12:20-21)

파스칼은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 어떤 이는 바람에 날리는 갈대와 같이 항상 변하는 여자의 마음이라 했습니다. 예수님은 인간을 상한 갈대, 꺼져가는 심지와 같다고 하셨습니다.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 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기를 심판하여 이길 때까지 하리니 또한 이방들이 그의 이름을 바라리라 함을 이루려 하심이라”(12:20-21).

갈대는 연약함의 상징입니다. 그런데 상한 갈대라 했으니 얼마나 연약하겠습니까? 상한 갈대는 약간만 건드려도 부러집니다. 그리고 상한 갈대는 그대로 내버려두면 금방 사그라집니다. 꺼져 가는 심지는 절망의 상징입니다. 꺼져가는 심지를 내버려두면 끄름만 납니다. 상한 갈대와 꺼져가는 심지는 아무 쓸모 없습니다.

인간은 독수리처럼 힘찬 면이 있지만 내면은 무기력하고 연약합니다. 유리그릇처럼 불안한 존재입니다. 만지기만 해도 깨질 것 같습니다. 미풍만 불어도 날아갈 것 같습니다. 우리 인간은 의심의 연기, 불평의 연기, 원망의 연기, 미움과 시기의 연기만 모락모락 내는 쓸모가 없습니다. 세상은 이런 사람을 용납하지 않고 조기 명퇴시킵니다.

인간은 본래 하나님의 형상을 소유한 존재였습니다. 그리고 사명의 존재입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1:28).

그런 인간이 죄로 인해 상한 갈대와 같고 꺼져가는 심지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상한 갈대와 같고 꺼져가는 심지와 같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보혈을 흘리셨습니다. 예수님의 보혈은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여 주시고 건강하게 하십니다. 예수님의 보혈은 상한 갈대를 치료하여 튼튼한 갈대가 되게 하시고, 꺼져 가는 심지에 성령의 기름, 말씀의 기름, 사랑의 기름을 불어 넣어 힘차게 타오르게 하십니다.

예수님은 아무 쓸모없는 사람들에게도 소망을 두십니다.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그들에게 가까이 다가가십니다.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고 인기 없는 사람들에게 가까이 가주십니다. 예수님은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않고 호호 불어 불씨를 살리십니다. 상처를 싸매 주십니다. 희망을 주시고 용기를 부어 주십니다. 다시 기회를 주십니다. 소망 없는 자에게, 마지막 순간까지 희망을 북돋워 주십니다. 예수님은 이 역사를 복음이 최후의 심판에서 승리할 그 날까지 계속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소망의 주님이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택하신 종입니다. 예수님은 성령을 부은 받은 종입니다. 예수님은 온유하고 겸손하십니다. 예수님은 희망의 주가 되십니다. 예수님은 상한 갈대를 꺾지 않으십니다. 예수님은 꺼져 가는 심지를 끄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예수님께 붙들린 예수님의 종으로 살기를 기도합니다. 우리가 소망의 예수님을 배워 어떤 환경 중에도 절망하지 않고 소망이 넘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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