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27:27-44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

저희가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은 후에 그 옷을 제비 뽑아 나누고”(27:35)

 

십자가는 기독교의 상징입니다. 예수님은 골고다언덕에서 십자가 형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골고다는 우리말로 해골이라는 뜻입니다. 그 동산의 이름이 왜 해골인가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지명의 유래가 아니라, 예수님께서 그 수많은 지역 중에 해골이란 동산에서 십자가에 죽으셨다는 사실입니다.

비잔틴시대의 성화 중에 예수님께서 못 박히신 십자가를 해골 위에 그린 것이 있습니다. 그 성화를 그린 작가는 골고다를 단순지명이 아니라 문자 그대로 해골로 이해한 것입니다. 해골 위의 십자가, 인간 해골 정수리에 예수님의 십자가가 꽂혀 있습니다. 해골은 살아날 희망이 없습니다.

에베소서 2장을 보면 인간은 허물과 죄로 죽었다고 선언했습니다. 이를 볼 때 인간은 언젠가는 반드시 죽습니다. 이는 언젠가는 인간 모두가 해골이 된다는 뜻입니다. 우리 모두는 100년 이후, 아니 몇 년 후에 해골이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살아있는 우리 모두는 미래의 해골들입니다. 사람들은 온갖 정성을 다해 얼굴에 화장을 합니다. 특히 여성들이 화장하는 것은 군인이 전투에 앞서 전투준비를 하는 것과 같다고 합니다. 여성들은 좀 더 예쁘고 멋지게 보이기 위해 각종 비싼 화장품을 바릅니다. 그렇다면 이것은 긴 안목으로 본다면 미래의 자기 해골을 치장하는 것이 됩니다.

그러면 해골과 같은 우리가 어떻게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습니까? 지금 살아 있는 것 같지만 걸어 다니는 해골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해골에 못 박혀 죽으신 십자가를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십자가를 타고 흘러내리는 예수님의 피가 그 사람의 몸과 마음과 영혼을 적시어 죄 사함을 받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됩니다. 이 시간 예수님의 피가 우리의 해골 정수리로부터 시작하여 발끝까지 흘러 적시기를 기도합니다.

첫째, 채찍에 맞으신 예수님(27:27-31)

예수님은 이미 빌라도의 지시대로 채찍을 맞으셨습니다. 당시 태형은 옷을 다 벗기고 120대의 채찍을 때렸습니다. 채찍의 끝에는 납덩어리가 달려 있어 한 번 맞으면 살점이 뚝뚝 떨어져 나갔습니다. 예수님의 온 몸에는 피멍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관정 안으로 끌려 들어가 온갖 조롱을 당하셨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옷을 벗기고 홍포를 입혔습니다. 옷은 사람의 지위와 품격을 나타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옷에다가 자존심을 겁니다. 군병들은 예수님에게 왕의 상징인 홍포를 입히며 조롱했습니다. 그런 후 머리에 가시관을 씌우고 갈대를 오른 손에 들렸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 앞에 무릎을 꿇고 희롱했습니다.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

그뿐만 아니라 예수님의 얼굴에 침 뱉고 갈대를 빼앗아 머리를 톡톡 쳤습니다. 그들은 희롱을 다한 후에 홍포를 벗기고 도로 예수님의 옷을 입히고 십자가에 못을 박기 위해 끌고 나갔습니다. 아무 죄 없으신 예수님이 군병들로부터 희롱을 당하셨습니다.

아무 죄 없으신 예수님께서, 아니 만왕의 왕께서 왜 이처럼 조롱을 받으셔야 했습니까?

첫째로 우리의 상처를 치료하여 주시기 위함

우리는 좀 자존심이 상한다 싶으면 인상을 쓰고 자신을 변호합니다. 그러나 만왕의 왕 예수님께서는 온갖 조롱을 참고 받으셨습니다. 이는 내가 받아야 할 모든 조롱을 대신 받으신 것입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53:5).

육신의 상처는 시간이 가면 치료가 됩니다. 그러나 영혼의 상처, 마음의 상처는 시간이 가면 갈수록 더 선명하게 나타나 우리를 괴롭게 합니다.

예수님은 나의 영혼의 상처와 상한 감정을 치료하기 위해 상하고 채찍에 맞으셨습니다. 우리가 이를 받아들일 때 죄로 인한 상처와 감정이 깨끗하게 나음을 입게 됩니다.

둘째로 겸손과 순종으로 만왕의 왕이 되고자 하심

예수님이 힘이 없으셔서 온갖 희롱을 받으신 것이 아닙니다. 이는 예수님이 강함이 아니라 약함으로, 교만이 아니라 겸손으로, 힘이 아니라 순종으로 만왕의 왕이 되고자 하심이었습니다.

사람을 살리는 것은 군병들처럼 힘이나 강함에서 나오지 않습니다. 겸손과 온유와 순종에서 나타납니. 이는 마치 쇠가 달구어졌을 때 대장장이의 능력이 나타나는 것과 같습니다.

모세가 혈기와 감정으로 뭉쳐져 있을 때 구원역사에 쓰임 받지 못했습니다. 그가 40년간의 광야 훈련으로 온유하고 겸손하게 되었을 때 구원역사에 쓰임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겸손하고 온유한 자를 쓰십니다.

기독교가 가장 영향력이 있었던 시절은 환난과 핍박 중에 있을 때였습니다. 그리고 바티칸 성당이 지어졌을 때가 아니라 카타콤 역사 때였습니다.

우리나라도 초기 소수의 성도들이 핍박을 받으면서도 믿음을 지켰을 때 그 시대를 앞서 섬겼습니다. 예수님은 겸손과 온유와 인내하심으로 만유의 주가 되셨습니다.

둘째,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27:32-38)

군병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지워 골고다 언덕으로 올라가게 했습니다. 십자가형은 페르시아에서 시작된 사형 방법으로 인류가 고안해 낸 형벌 중 가장 잔인한 형벌이었습니다. 단두대형이나 교수형은 순간적입니다. 그러나 십자가의 고통은 길면 3일을 간다고 합니다. 그리고 1,000번 이상 까무러친다고 합니다. 이는 1,000번 이상 죽음을 맛본다는 것입니다.

십자가는 단순히 육체적 고통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인간이 인간에게 가할 수 있는 모든 형벌이 담겨져 있습니다. 벌거벗기고 조롱하고 침 뱉고 때립니다. 아무리 무자비한 살인마조차도 떠날 때에는 수의를 입히고, 땅 한 평이라도 그의 몫으로 내 줍니다. 그것도 안 되면 화장해서 강이나 흑 위에 뿌리어 마지막 가는 길에 예의를 갖춰줍니다.

그러나 십자가형은 땅도 하늘도 그를 받아주지 않습니다. 세상 말로 구천을 떠도는 영혼이 되어 살아남은 가족들에게 두고두고 한이 되고 수치가 됩니다. 그래서 로마의 반역자나, 흉악범이 아니면 십자가에 처형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십자가형을 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채찍과 희롱으로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올라가셨습니다. 십자가의 무게는 70kg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무게에 눌려 몇 발짝 가시다가 쓰러지셨습니다. 그러면 여지없이 군병들이 발길질하고 채찍질했습니다. 예수님은 있는 힘을 다해 일어나 가시다가 또 쓰러지셨습니다. 예수님은 기진맥진하여 더 이상 십자가를 지고 가실 수 없었습니다.

그러자 군병들은 옆에서 구경하던 구레네 사람 시몬을 붙잡아 대신 십자가를 지고 가게 했습니다(27:32). 그가 진 십자가는 억지로 지고 간 십자가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십자가를 짐으로 온 가족이 구원받고 하나님께 쓰임을 받았습니다(16:13).

십자가를 자발적으로 지는 것이 제일 좋습니다. 자발적으로 전도하고 자발적으로 헌금 드리고 자발적으로 헌신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나 때론 억지로라도 십자가를 지게 되면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납니다. 십자가는 지는 것 자체가 복입니다. 십자가는 당시에는 고난처럼 다가오지만 그것이 복의 통로가 됩니다. 따라서 십자가를 할 수 있는 대로 많이 지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은 해골이라는 골고다 언덕에 이르셨습니다(27:33). 군병들은 마취제인 쓸개 탄 포도주를 예수님께 주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를 맛보시고 마시지 않으셨습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인간이 받을 수 있는 모든 고통을 받고자 하심이었습니다.

군병들은 예수님의 손목과 발목에 굵은 대못을 ! ! !’ 박았습니다. 그리고 해골에 십자가를 꽂았습니다. 십자가에 세 개의 대 못에 박힌 예수님의 몸에서 피가 흘러나왔습니다. 몸을 움직일 때마다 살이 찢어지고 뼈가 상했습니다. 그리고 군병들은 예수님의 옆구리를 무자비하게 창으로 찔렀습니다(19:34).

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을 박은 후 예수님의 옷을 제비 뽑아 나누고자 거기 앉아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머리 위에 유대인의 왕 예수라는 죄패를 붙였습니다(27:37). 보통 죄패에는 그 사람의 죄명을 기록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십자가 위에는 유대인의 왕 예수라는 죄패를 붙였습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우리의 죄 문제를 해결하신 만왕의 왕이요, 그리스도이심을 말해 줍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좌우에 강도들이 십자가에 못 박혀 있었습니다. 이사야의 예언대로 예수님은 범죄자 중의 한 사람으로 헤아림을 입으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대속의 십자가를 지시며 범죄자를 위해 기도하셨습니다(53:12).

예수님의 피가 십자가를 타고 흘러 내려와 골고다 언덕, 해골 정수리를 시작하여 전 해골을 적셨습니다. 그러면 해골에 못 박혀 죽으신 십자가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첫째로 죄의 심각성

예수님의 십자가는 죄가 얼마나 무섭고 지독한 것인가를 보여 줍니다. 사람들은 죄를 가볍게 여기고 죄가 가져올 결과를 잘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쉽게 죄를 짓고 죄를 즐깁니다.

당시 십자가형은 사람들이 이 참혹한 형벌을 보고 죄를 두려워하고 죄짓지 않도록 하는 경계의 의미가 있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예수님의 고난과 십자가를 통해 죄가 얼마나 무섭고, 죄로 인한 형벌이 얼마나 큰 것인가를 보여 주셨습니다.

사람이 한번 죽은 것은 정한 것이지만 죽은 후에는 심판이 따릅니다(9:27). 죽은 후에는 제 2의 무서운 심판이 있습니다(21:8). 죄는 우리를 파멸시키고 죽음에 이르게 합니다.

죄는 그 순간 달콤하지만 그 뒤에는 무서운 형벌이 있습니다. 이는 마치 아름다운 장미꽃 뒤에는 가시가 있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십자가를 바라볼 때마다 죄의 심각성을 깨닫고 죄 짓기를 두려워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천국 백성답게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둘째로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은 거룩한 분이기 때문에 죄를 결코 용납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무 죄 없으신 예수님을 내 대신 채찍에 맞게 하시고, 조롱과 멸시와 수치를 당하게 하시고 마침내 십자가에서 못 박혀 죽게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죄는 지독하여 반드시 생명, 곧 피를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53:5-6).

우리가 예수님이 나의 허물과 죄악 때문에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믿으면 나음 받습니다. 예수님께서 나의 육신의 정욕 때문에 십자가에 죽으셨음을 믿으면 구원을 받습니다.

예수님께서 나의 열등감과 미움 때문에 십자가를 지셨음을 믿으면 미움과 열등감으로 나음을 입습니다. 죄로부터 해방되어 평화와 자유를 누리게 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나의 십자가로 받아들이면 죄에 대해 죽고, 의에 대해 살게 됩니다(벧전 2:24-25).

예수님의 십자가는 구원의 십자가입니다. 십자가는 우리를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죄에서 구원하십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생명의 십자가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은총의 십자가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죽은 자를 살리는 능력의 십자가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사랑의 십자가입니다.

우리는 십자가를 바라볼 때마다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해야 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을 부끄러워하지 말고 십자가의 복음을 자랑해야 합니다.

바울은 십자가의 의미를 알고 십자가를 자랑했습니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1:16).

셋째, 자기를 희생하고 남을 구원하신 예수님(27:39-44)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신 후에도 사람들의 조롱과 멸시와 모욕은 계속되었습니다. 지나가던 자들은 머리를 흔들며 모욕했습니다. “이르되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 자여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자기를 구원하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하며”(27:40).

대제사장들도 서기관들과 장로들과 함께 예수님을 희롱했습니다. “그가 남은 구원하였으나 자기를 구원할 수 없도다 그가 이스라엘의 왕이로다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올지어다 그리하면 우리가 믿겠노라”(27:42).

심지어 십자가에 달린 강도조차도 예수님을 욕하고 조롱했습니다(27:44). 이것은 사단의 마지막 유혹이었습니다. 사단은 마지막 순간까지도 십자가를 통한 구원 역사를 방해했습니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은 구원하였는데 자기는 구원할 수 없다고 조롱했습니다. 이 때 예수님은 크신 능력으로 십자가에서 내려와서 저들을 심판하고, 다시 십자가에 올라가실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끝까지 희생하셨습니다.

사람들은 남을 희생시켜 자기를 구원하고자 합니다. 남을 이용하고 희생시켜 자신의 명예를 구하고, 권력을 잡고, 돈을 모읍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기를 온전히 희생하여 남을 구원하셨습니다. 자기를 희생하여 남을 구원하는 것이 바로 생명의 원리, 십자가의 원리입니다.

자기를 희생하지 않고는 생명의 역사가 일어날 수 없습니다.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을 때 생명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어머니의 해산의 수고 없이는 생명을 잉태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희생하지 않고 생명의 역사를 이루려고 합니다. 그리고 속담에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식으로, 나도 구원하고 남도 구원할 수 없을까?’ 생각합니다. 그러나 구원 역사, 생명 역사에는 결코 우연이란 것이 있을 수 없습니다. 생명의 역사, 구원의 역사는 오직 희생을 통해서입니다.

하나님께서 쓰신 사람은 누구나 예외 없이 다른 사람을 구원하고자 자기의 꿈과 이상과 시간과 물질을 희생한 분들입니다. 곳곳의 선교지에서 생명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은 우연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 선교사님들의 눈물겨운 희생을 통한 역사입니다. 임다니엘 교수는 가족과 7년간 떨어져 살면서 북방선교를 위해 헌신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가 일제의 만행에 광복되어 대한의 나라가 세워진 것도 강대국의 입김에 의해 우연히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여기에는 희생적인 손길들이 있었습니다. 일제 만행 때에 한국의 지식인들이 변절하여 일본에 놀아날 때 한국의 독립과 일제 만행을 세계에 고발한 미국 선교사가 있었습니다. 그 분은 미국 헐버트 선교사였습니다. 그는 1886년에 내한하여 1905년 을사늑약 때 그 부당성을 알리기 위해 고종의 친서를 가지고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을 만나기도 했고 헤이그 이준 열사의 활동을 돕기도 했습니다. 그는 1910년 일제에 의해 추방돼 미국으로 돌아간 후에도 3·1운동을 지지하는 등 한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광복이 되자 한국으로 돌아와 서울 양화진의 선교사 묘지에 묻혔습니다. 그의 묘비에는 영국의 웨스터민스터 성당에 묻히는 것보다 한국에 묻히는 것이 더 영광이다라고 적혀 있습니다.

예수님은 겸손과 순종으로 만왕의 왕이 되셨습니다. 예수님은 채찍에 맞으시고 온갖 희롱을 당하셨습니다. 우리의 상처가 나음을 입었습니다. 예수님은 나의 죄를 위하여 해골에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십자가는 대속의 십자가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이 나의 죄와 허물을 위해 십자가에 죽으셨다는 사실을 믿으면 구원을 받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죄의 심각성과 하나님의 사랑의 절정입니다. 그리고 십자가는 자기를 희생하여 남을 구원하는 생명의 원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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