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13:24-52
천국 보화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여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사느니라”(마 13:44)
우리는 천국하면 완제품과 같은 상품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아니면 선물처럼 주어지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천국은 말씀의 씨앗을 뿌리는 것으로부터 시작됩니다. 뿌려진 천국 말씀이 옥토에 떨어질 때 백배 육십배 삼십배의 결실을 얻게 됩니다. 그런데 씨가 옥토에 떨어졌다고 다 열매를 맺는 것은 아닙니다.
옥토에도 우리가 잠을 자는 사이에 원수가 가라지를 뿌리고 감으로 열매 맺는 것을 방해합니다. 그러므로 가라지를 뿌리는 원수를 경계해야 합니다. 그리고 천국은 보화와 같은 것이기 때문에 아무나 저절로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보화의 가치를 아는 사람만이 얻을 수 있는 것처럼 천국의 가치를 아는 자만이 얻을 수 있습니다. 아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고 천국을 얻기 위해 자기 자신을 투자하고 헌신해야 합니다. 우리 모두가 천국을 소유하기를 기도합니다.
Ⅰ. 가라지 비유 (마 13:24-30, 36-43)
어떤 주인이 자기 밭에 좋은 씨를 뿌렸습니다(마 13:24-25). 그는 많은 수확 거둘 희망에 부풀었습니다. 그런데 이를 시기하여 농사를 망쳐 놓으려는 원수가 있었습니다. 원수는 농부가 밤에 잘 때에 곡식 가운데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습니다. ‘가라지’는 독보리의 일종으로 그 모습이 마치 보리나 밀 이삭처럼 생겨 이삭이 패기까지는 구별하기가 매우 어렵고, 또 사람이 이를 먹을 경우 설사나 구토가 일어나고 심한 경우에는 목숨을 잃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가라지는 알곡보다 왕성하게 자라기 때문에 농사를 망칩니다. 원수는 이 점을 노려 사람들이 잘 때 살금살금 기어들어와 좋은 씨를 뿌린 밭에 가라지를 덧뿌렸습니다. 잠자는 동안에 뿌렸을 뿐 아니라 땅 속에 묻혀 있고, 또 곡식과 가라지가 너무 비슷하기 때문에 주인의 종들은 싹이 나고 자랄 때까지도 모르다가 결실할 때쯤 되어서야 밭에 가라지가 있음을 알았습니다.
종들은 놀라 주인에게 밭에 좋은 씨를 심었는데 어디서 가라지가 생겼는가를 물었습니다. 가라지가 어디서 생겼는가는 종들뿐만 아니라 우리의 질문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선하게 살려고 하는데 악한 마음이 찾아옵니다. 사랑하고 싶은데 미운 감정이 생깁니다. 은혜롭게 살고 싶은데 얼굴이 굳어집니다. 능력 있는 삶을 살고 싶은데 무기력한 삶을 삽니다. 소망을 갖고 싶은데 절망이 찾아옵니다.
이런 현상이 생기는 이유는 원수, 악한 동무, 사단이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마 13:27,39).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에 공의와 믿음과 사랑을 심으시는데 마귀는 불신과 미움과 불의와 쾌락과 안일을 심습니다. 하나님은 복음을 심고 계시는데 마귀는 인본주의와 상대주의, 은사주의, 이단의 가라지를 뿌립니다.
오늘날 교회에 상대주의와 물질주의와 육신주의, 그리고 이단이 틈타는 것은 사탄이 가라지를 뿌리기 때문입니다. 사단은 믿음으로 살고자 하는 사람의 마음을 교란시킵니다. 기도하지 말라고 속삭이고, 말씀을 보지 못하도록 속삭이고, 십일조와 헌물을 드리지 말도록 속삭입니다. 세상으로 향하도록 속삭입니다. 학부에서 착실하게 신앙 생활하던 사람들이 직장에 가서 불신자와 같은 삶을 사는 것은 원수가 마음에 가라지를 뿌리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신앙이 좋던 사람이 이단에 유혹되어 넘어지는 것 또한 원수 마귀가 가라지를 뿌리기 때문입니다.
사탄은 우리가 잘 때에 가라지를 뿌리고 갑니다. 잘 때란 깨어 있지 않고 졸고 있을 때입니다. 그 때는 기도하지 않을 때입니다. 우리가 깨어 기도하지 않을 때에 원수가 회의의 가라지, 불신의 가라지, 원망과 불평의 가라지, 정욕의 가라지, 미움의 가라지, 안일의 가라지를 뿌리고 갑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마 26:41)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늘 깨어 기도해야 합니다.
가라지가 곡식보다 번식력이 강하여 종들은 이런 가라지를 당장 뽑아버리고 싶었습니다(마 13:28하). 그러나 주인은 가라지를 뽑지 말라고 했습니다. “주인이 이르되 가만 두라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하노라”(마 13:29). 왜냐하면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이 상할까 염려함이었습니다. 가라지는 곡식과 비슷하여 초기에 뽑기란 쉽지 않고, 또 가라지가 자라서 곡식과 엉켜 있을 때 뽑다가 잘못하다가는 곡식까지 뽑을 염려가 있습니다. 그래서 주인은 곡식을 다치게 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내버려 두도록 했습니다.
우리는 가끔 복음 역사를 괴롭히는 세력들을 보면 그들과 싸우고 싶고, 가라지를 뽑아야 시원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가라지는 하나님께 맡기고,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하나님의 자녀들을 적극적으로 돌보아 의의 열매, 평강의 열매, 믿음의 열매 맺기를 원하십니다. 그렇다고 하나님께서는 가라지를 영원히 내버려 두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추수 때에 심판하십니다. “둘 다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어라 추수 때에 내가 추수꾼들에게 말하기를 가라지는 먼저 가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곡식은 모아 내 곳간에 넣으라 하리라”(마 13:30). 추수 때는 종말의 때를 가리키기도 하고, 개인에 대한 심판도 뜻합니다.
인간은 반드시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섭니다. 이 때 예수님은 추수꾼들을 통해 가라지를 먼저 거두어 단으로 묶어 불살라 버리고 곡식은 곳간에 넣으십니다. 이 때 원수들은 이를 갈며 슬피 울게 됩니다.
악인들은 이 세상에 악을 차곡차곡 쌓는 것이요, 의인들은 하나님 나라에 선을 쌓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악인들과 사탄을 심판하십니다. 그러나 의인들은 세상에서 악인들로 인해 고난을 많이 받지만 심판의 날에 하나님 나라에서 해 같이 빛나게 됩니다(마 13:43).
2. 겨자씨와 누룩 비유(마 13:31-33)
그런데 우리가 믿음 생활하다가 보면 가라지 역사는 크게 보이고 복음 역사는 작게 보일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런 우리에게 겨자씨 비유와 누룩의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습니다(마 13:31-32).
첫째, 겨자씨 비유
겨자씨는 중동 지방에서 작은 씨 중의 씨입니다. 그런데 이 씨를 밭에 심으면 자라서 4m 이상 자랍니다. 그래서 피곤하고 지친 새들이 찾아와 가지에 깃들여 안식을 얻습니다. 성경에서 ‘큰 나무’는 하나님의 왕국을 가리킵니다. ‘공중의 새들이 그 가지에 깃들인다’는 것은 수많은 백성들이 그리스도 왕국 안에 들어와 영적인 쉼을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겔 17:23, 31:5-6).
복음역사는 처음부터 크고 웅장하게 시작되지 않습니다. 복음역사는 예수님께서 말구유에 탄생하심으로 시작되었습니다. 말구유 역사는 로마의 가이사 아구스도의 보좌에 비하면 초라하고 보잘 것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 안에 생명이 있기 때문에 자라고 성장하여 세상 모든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 이름 앞에 무릎을 꿇고 경배와 찬양과 영광을 돌립니다.
예수님은 일생 동안 열 두 제자를 양성하는데 심혈을 기울이셨습니다. 그것은 당시에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역사의 물줄기를 바꾸어 놓은 역사의 주역이 되었습니다. 로마 셋집에서 바울의 일대일 역사는 겨자씨처럼 미미했습니다. 그러나 이 역사는 자라나서 A.D. 313년 거대한 로마를 정복할 수 있었습니다.
한국 교회는 언더우드와 아펜셀러 선교사가 와서 복음을 전하기 시작하여 지금은 세계에 10대 교회 중의 일곱 개가 한국에 있을 만큼 성장했습니다. 대학마을교회는 1982년 10월 19일에 인천 숭의동의 다섯 평에서 시작한 역사가 이제는 자라고 성장하여 54명의 선교사를 파송하고, 10명의 목사가 나오고 대학마을교회에서 복음을 영접한 형제자매들이 한국 교회 곳곳에서 쓰임을 받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고 있는 일대일 역사와 제자 양성 역사는 미미해 보입니다. 그러나 위대한 역사는 작은 데서부터 출발합니다. 우리의 일대일 역사가 겨자씨처럼 미미해 보일지라도 여기에 놀라운 역사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고 있는 일대일 성경공부를 귀히 여기고 충성스럽게 감당해야 합니다. 이때 인하대와 인천대를 중심하여 한국과 세계가 복음화될 것입니다.
둘째, 누룩비유
“또 비유로 말씀하시되 천국은 마치 여자가 가루 서 말 속에 갖다 넣어 전부 부풀게 한 누룩과 같으니라”(마 13:33). 겨자씨 비유가 외적인 성장이라면 누룩의 비유는 내적인 성장, 영향력을 말합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말하는 누룩은 나쁜 누룩이 있는 반면에 좋은 누룩도 있습니다. “헤롯과 바리새인의 누룩을 주의하라”는 말씀은 나쁜 의미에서의 누룩입니다. ‘바리새인의 누룩을 주의하라’는 것은 형식적인 종교생활을 하는 바리새인들의 영향을 받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헤롯의 누룩을 주의하라’는 것은 음란의 영향을 받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본문에서의 누룩은 좋은 뜻으로 복음,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심령 속에 점점 부풀어서 우리가 날마다 예수 그리스도를 닮고, 하나님 나라를 확장시켜 나가는 것을 말합니다.
코카콜라 회사의 사훈은 “온 인류의 몸속에 코카콜라가 흐르게 하자” 입니다. 그는 비록 장사꾼이지만 놀라운 사명감을 갖고 있습니다. 그의 사명대로 전 세계 어느 곳에 가더라도 코카콜라가 있습니다. 코카콜라는 치아를 상하게 하고, 사람의 정서를 불안하게 하는 좋지 않은 음료수입니다. 그런데도 이들은 코카콜라를 전 세계의 시장을 대상으로 열심히 팔고 있습니다.
세상은 세속주의의 누룩과 음란의 누룩, 그리고 이단의 누룩이 가만히 있지 않고 세상을 세속화시키고 이단화 시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런 세력보다 더 열심히 복음의 누룩을 퍼트리고 부풀려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리스도의 아름다운 형상을 부풀려야 합니다. 천국의 누룩은 힘이 있습니다. 천국의 누룩은 힘이 있기 때문에 새로운 피조물로 만듭니다. 우리의 삶을 변화시킵니다. 우리의 삶의 방향과 목적, 그리고 삶의 의미를 새롭게 합니다. 우리의 비전을 부풀어 오르게 하고, 사명을 부풀어 오르게 하고, 영적인 삶을 점점 부풀어 오르게 합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가라지 역사가 아니라 알곡의 역사요, 겨자씨와 누룩의 역사입니다. 우리의 일대일 역사와 제자양성을 사랑해야 합니다. 이를 통해 온 세계가 변화되리라는 희망과 비전을 가져야 합니다.
3. 보화의 비유(마 13:44-46)
제자들은 겨자씨와 누룩의 비유를 통해 열심히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해 희생하고 헌신했습니다. 밤잠을 설치며 주와 복음을 위해 열심을 다 했습니다. 그 때 그들은 기쁨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언제나 그런 것은 아니었습니다. 때로는 그들 마음속에 “왜 나만 이렇게 희생해야 하는가, 이 희생이 도대체 어떤 의미가 있는가” 등 의심이 들기도 했습니다. 특히 이기적인 사람을 볼 때 더욱 더 그랬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제자들에게 그들의 희생이 결코 헛된 것이 아니라 상급이 있음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첫째, 땅에 감추인 보화를 찾은 기쁨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며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사느니라”(마 13:44). 예수님은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다고 했습니다. 대부분 사람들은 보화가 있으면 감춥니다. 특히 서양 사람들은 값비싼 귀금속은 몸에 지니지 않고 그 대신 imitation을 달고 다니다가 중요한 파티가 있을 때만 진짜 보석을 몸에 지니고 다닙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감추기보다는 드러내기를 좋아합니다. 그러나 진짜 보석은 몸에 지니고 다니는 것이 아닙니다. 고대에는 은행 제도가 잘 발달되지 않아 금은보화를 궤 속에 넣어 밭에다 감추었습니다. 그런데 밭에다 감추고 죽을 경우에는 누구도 알 수 없습니다.
한 농부가 밭에서 곡괭이로 땅을 파고 있는데 무엇인가 걸리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는 처음에는 바위 덩어리인 줄로 알았습니다. 그는 캐내려가다가 큰 상자를 발견했습니다. 그것을 열어 보니 금은보화가 담겨 있었습니다. 그는 기뻐서 집으로 돌아와서 자기의 모든 것을 팔기 시작했습니다. 결혼반지, 돌반지, 논과 밭 등 모든 것을 팔아 그 밭을 샀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이상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보화를 발견한 그는 그 어떤 것을 팔아도 아깝지 않았습니다. 보화를 발견했기 때문에 세상의 그 어떤 것도 아깝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마치 태양을 발견한 사람이 촛불을 켜고 싶지 않고, 위대한 것을 경험한 사람은 세상의 잔잔한 것에 미련을 갖지 않는 자와 같습니다.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이 세상 부귀와 바꿀 수 없네 영 죽을 죽을 내 대신 돌아가신 그 놀라운 사랑 잊지 못해 세상 즐거움 다 버리고 세상 자랑 다 버렸네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예수 밖에는 없네”(찬송가 94장)
둘째, 진주를 발견한 기쁨
예수님은 또 비유를 들어 천국을 설명하셨습니다. “또 천국은 마치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와 같으니 극히 값진 진주 하나를 발견하매 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진주를 사느니라”(마 13:46).
금이나 다이아몬드는 가공의 과정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진주는 그 자체가 완성품입니다. 더 이상 사람들의 손이나 가공이 필요치 않습니다. 절대 완벽한 미적 가치가 있고 신비스러운 원형의 모습입니다. 그래서 진주가 어떤 보석보다 값진 것입니다. 그는 찾고 찾던 하나 밖에 없는 값진 진주를 발견했습니다. 하나 밖에 없는 진주를 발견했으니 얼마나 기뻤겠습니까? 그 황홀함을 무엇으로 표현할 수 있습니까?
진주의 비유는 감추인 보화를 발견한 비유와 비슷하지만 좀 다른 점이 있습니다. 농부는 우연히 발견했지만 진주 장사는 값진 진주를 찾았습니다. 그는 보통 진주로는 만족하지 않고 최고의 진주를 찾았습니다. 값진 진주를 발견했을 때 그는 그 가치를 알고 과감하게 자신의 모든 소유를 팔아서 그 진주를 샀습니다. 진주의 비유는 천국의 가치를 아는 사람입니다. 천국을 어떻게 소유할 수 있는가입니다.
천국은 자신의 모든 것을 팔아 소유해도 아깝지 않을 만큼 최고의 가치가 있습니다. 세상의 보화는 얻는 순간 실망합니다. 세상 보화는 변합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영원한 행복을 주지 못합니다. 그러나 천국은 영원합니다. 진정한 행복과 만족을 주고 의미와 가치를 부여합니다.
여기에서 천국의 보화는 예수님을 가리킵니다. 예수님은 세상의 어떤 보화와도 비교할 수 없는 가장 값진 보화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는 이 세상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가장 귀합니다. 진리의 말씀은 그 어떤 보화보다 귀한 보화입니다.
그리스도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습니다(골2:3). 예수님 안에 생명이 있습니다. 예수님 안에 영생이 있습니다. 예수님 안에 인생의 의미와 목적과 희망이 있습니다. 예수님 안에 지혜가 있습니다. 예수님 안에 구원과 은혜가 있습니다. 예수님 안에 기쁨이 있습니다. 예수님 안에 자유가 있습니다. 예수님 안에 위로와 소망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 되십니다.
4. 그물의 비유(마 13:47-52)
예수님은 천국은 마치 바다에 치고 각종 물고기를 모는 그물과 같다고 했습니다(마 13:47-50). 그물이 가득하매 물가로 끌어내어 좋은 것은 그물에 담고 못된 것은 내어 버립니다. 이것은 교회의 비유에 대한 말씀입니다. 사람들은 교회만 오면 구원받는 줄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모인 사람만이 구원을 얻습니다.
예수님은 비유를 말씀하신 후 제자들에게 “이 모든 것을 깨달았느냐?” 물으셨습니다. 이 때 그들은 “그러하오이다” 대답했습니다. 예수님은 이로 만족하지 않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천국의 제자된 서기관마다 마치 새것과 옛것을 그 곳간에서 내오는 집주인과 같으니라”(마 13:52).
서기관은 성경을 연구하고 올바르게 가르치는 성경 선생입니다. 옛 것은 구약 말씀이요, 새것은 신약 말씀입니다. 주인은 어디에 무엇이 있는가를 다 압니다. 옛날에 넣어 둔 것과 최근에 넣어 둔 것도 압니다. 그러므로 성경 선생은 구약과 신약의 말씀을 자유자재로 사용하여 천국 복음을 전파할 수 있어야 합니다.
결론적으로 우리가 어떻게 천국을 소유할 수 있습니까?
첫째, 천국의 가치를 알고 찾아야 합니다. 진주의 가치를 모르는 돼지는 진주를 밟아버립니다. 그리고 먹을 수 없는 진주를 준다고 주는 사람을 물기까지 합니다. 우리는 천국의 가치와 소중함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구도자의 자녀가 있어야 합니다.
둘째, 세상 보화를 팔아 사야 합니다. 어떤 부자 청년이 영생을 얻기 위해 예수님께 나왔습니다. 예수님은 그에게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고 하셨습니다(마 19:21). 그러자 그 청년은 재물이 아까워서 근심하며 돌아갔습니다. 그는 보화를 얻을 수 없었습니다. 그는 보화를 얻기 위해 재물을 팔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예수님을 안 후 그를 위해 모든 것을 해로 여기고,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겼습니다(빌 3:7-8). 그런데 우리는 모든 것을 해로 여기고 배설물로 여길 만한 명예도 없고 권세도 없고 돈도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젊음과 청춘과 시간이 있습니다. 꿈과 이상이 있습니다. 재능과 전공과 장래가 있습니다. 우리가 이를 팔아 천국을 소유할 수 있습니다.
아직도 천국을 얻기 위해 세상 보화를 팔지 못한 분이 있다면 세상의 즐거움을 버려야 합니다. 신앙은 선택입니다. 쾌락을 포기하고 탐욕을 포기해야 합니다. 세상 잔재미를 포기해야 합니다. 우리 주님을 만나지 못한 분들은 지금 택해야 합니다. 지금은 바로 은혜 받을 만한 때요 구원의 날입니다. 내일 선택한다는 것은 이미 늦었습니다. 지금 세상 보화를 팔아 천국을 소유해야 합니다.
우리가 비록 돈이 없고 명예가 없고 지식이 없다 할지라도 우리 주님을 소유하면 모든 것을 다 소유한 거나 다름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것들에 대해 부러워하지 말고 천국 보화를 얻기를 바랍니다. 이번 생명 축제에 천국 보화를 얻기를 기도합니다.
세상에는 가라지만 있는 것 같지만 복음 역사가 있습니다. 복음 역사는 겉보기와는 달리 생명과 영향력이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가라지를 심판하십니다. 천국은 우리가 팔아서 살 만한 가치가 있고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에게 믿음을 주셔서 세상 보화를 팔아 천국 보화를 얻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