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14:1-21

지도자의 덕목

예수께서 이르시되 갈 것 없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14:16).

 

리더란 안내하다, 여행하다는 뜻으로 새로운 질서를 찾는 사람을 뜻합니다. 아우젤리우스는 리더의 덕목을 지혜, 정의감, 책임감, 절제력이라고 했습니다. 역사학자 토인비는 리더의 덕목으로 정직을 들었습니다. 문명의 흥망성쇠는 조직 내부의 부정부패에 달려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미래학자 토플러는 리더의 덕목을 합리성과 유연성, 그리고 지적, 책임감이라고 했습니다.

본문은 헤롯의 음란을 책망하다가 죽임을 당한 세례 요한의 순교와 예수님께서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5000명을 먹인 사건입니다. 우리는 본문을 통해 지도자가 갖추어야 할 덕목이 무엇인가를 배울 수 있습니다. 지도자의 덕목은 순결과 목자의 심정, 그리고 책임감과 한계 상황에 도전하는 믿음입니다. 우리가 음란하고 패역하고 믿음이 없는 시대에 순결과 믿음과 목자의 심정과 책임감이 있는 리더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1. 헤롯의 음란과 세례 요한의 순교(14:1-11)

때는 분봉 왕 헤롯이 다스리던 시대였습니다(141-2). 헤롯은 대 헤롯의 아들로 갈릴리와 베뢰아 지방을 다스리는 분봉왕이었습니다(B.C. 4-39). 당시 분봉왕은 로마 제국의 지시를 받는 꼭두각시에 불과했습니다.

마태복음 10장을 보면 예수님은 갈릴리 모든 지역에 12제자를 둘씩 보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고 악령과 질병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고쳐주었습니다. 이 소식이 헤롯 궁까지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헤롯은 충격을 받고 신하들에게 외쳤습니다. “경들이여! 내가 죽인 세례 요한이 살아났도다. 그러므로 이런 권능이 그 속에서 운동하는도다.”

그는 세례 요한을 목 베어 죽인 후 악령에 시달렸습니다. 밤마다 피가 뚝뚝 떨어지는 세례 요한의 머리가 나타나곤 했습니다. 그는 높고 화려한 보좌에 앉아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인생을 즐기고 있었지만 그의 내면은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그가 악을 행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성경은 악을 행한 자에 대해 이렇게 말씀합니다. “오직 당을 지어 진리를 따르지 아니하고 불의를 따르는 자에게는 진노와 분노로 하시리라 악을 행하는 각 사람의 영에는 환난과 곤고가 있으리니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며”(2:8-9).

그가 어떤 악을 저질렀습니까? 그는 동생 아내인 헤로디아를 아내로 취했습니다. 이때 세례 요한은 헤롯의 음란을 책망했습니다. “당신이 동생의 아내를 취한 것은 도저히 있을 수 없습니다. 회개하십시오.” 세례 요한은 어둠을 밝히는 시대의 등대였습니다.

헤롯은 마땅히 세례 요한의 책망을 듣고 회개해야 옳습니다. 그러나 그는 회개는커녕 오히려 작반하장으로 세례 요한을 옥에 가두고 기회를 틈타 죽이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백성들이 요한을 선지자로 생각하기 때문에 백성들을 두려워 죽이지 못했습니다..

마침내 때가 왔습니다. 헤롯이 생일을 맞아 궁중에서 고관대작을 다 불러 모아 만찬을 베풀었습니다. 백성들은 가난과 도탄에 빠져 허덕이고 있는데 헤롯은 궁중에서 산해진미를 놓고 연회를 즐겼습니다. 이때 헤로디아의 딸이 요사스러운 춤을 추었습니다.

헤롯은 그 춤에 매료되어 딸에게 맹세했습니다. “헤롯이 맹세로 그에게 무엇이든지 달라는 대로 주겠다고 약속하거늘”(14:7). 헤로디아는 이를 놓칠세라 딸에게 말했습니다. “그가 제 어머니의 시킴을 듣고 이르되 세례 요한의 머리를 소반에 얹어 여기서 내게 주소서 하니”(14:8). 헤롯은 그녀가 이런 요구를 할 줄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헤롯은 딸의 요구에 근심이 되었지만 많은 사람들 앞에 호언을 했기에 그녀의 요구를 안 들어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세례 요한을 목을 베어 소반에 담아 그 소녀에게 주었습니다. 세례 요한은 이렇게 악마와 같은 헤롯의 손에 비참하게 죽었습니다.

우리는 이 사건에서 두 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세례 요한이 실패한 것이 아닌가입니다. 그러나 세례 요한의 삶은 결코 헛되지 않았습니다. 세례 요한의 사명은 오실 메시의 길을 준비하고 평탄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그의 사명대로 메시아의 길을 준비했습니다. 이제 예수님이 오셨기 때문에 그의 사역은 끝났습니다. 그의 사명은 완성된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지도자의 순결입니다. 헤롯은 성적으로 음란했습니다. 지도자는 그 시대의 얼굴입니다. 지도자는 알게 모르게 백성들에게 영향을 끼치게 마련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바리새인과 헤롯의 누룩을 주의하라고 하셨습니다(8:15). 여기에서 바리새인의 누룩은 이중적인 신앙생활이고 헤롯의 누룩은 음란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경계해야 누룩은 헤롯의 음란입니다. 음란 문화가 온 세상을 뒤덮고 있습니다. 청와대는 최고의 권부의 상징입니다. 거기다가 대통령의 입이라고 할 대통령의 대변인은 최고 권부의 상징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가 대통령 미국 순방 중에 인턴 여학생을 성추행하여 한국을 성 나라로 만들고 말았습니다.

성이란 무엇입니까? 성은 십계명 중의 여섯 째 계명의 six에서 나왔습니다. 하나님께서 간음하지 말라는 계명을 주신 것은 가정의 보호를 위해서였습니다. 따라서 성은 반드시 남녀가 결혼하여 부부를 이루어 가정에서 은밀하게 인격적으로 사랑을 나누는 것입니다. 이 외의 모든 것은 음욕이요 간음이요 불륜입니다.

음욕은 항상 술욕과 물욕과 항상 함께 합니다. 음욕이 있는 곳에 반드시 뒤에 술과 돈이 있습니다. 지금 음란문화는 심각합니다. 티브이 프로나 인터넷을 보면 주로 벗는 것입니다. 누가 많이 벗느냐가 인기 스타가 되고 인기 프로가 되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청소년들은 심각하게 병들어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시대의 남은 자들입니다. 우리는 이 시대의 첨병들입니다. 우리는 이 시대의 소금이요 빛으로서 밤 문화, 회식문화, 캠퍼스의 세속 문화에 도전하여 거룩성을 회복하는데 앞장을 서야 합니다. 우리 모두 이 시대의 영적 지도자로서 이 세대를 본받지 않고 예수님을 본받아 순결하고 거룩한 삶을 살기를 기도합니다. 이 세대에 누룩 없는 순수하고 순결한 사람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2. 예수님의 목자의 심정(14:12-21)

첫째, 목자가 없음으로 불쌍히 여기심(14:12-14)

요한의 제자들은 세례 요한의 시체를 가져다가 장사를 지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예수님께 이 사실을 알렸습니다. 예수님은 이 소식을 들으시고 무엇을 하셨습니까? 예수님은 헤롯의 음란을 규탄하고 데모를 하셨습니까? 예수님은 배를 타고 나가 기도하시고자 조용하고 한적한 빈들로 가셨습니다. 예수님은 이럴 때일수록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의 뜻을 찾으셨습니다.

그런데 많은 무리들이 예수님이 빈들에 계신다는 말을 듣고 여러 고을로부터 왔습니다. “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그 중에 있는 병자를 고쳐 주시니라”(14:14). 누가복음 911절을 보면 예수님은 그들을 환영하셨습니다(He welcomed them). 바리새인들은 무리들을 율법도 모르는 무식한 자들이라고 정죄했습니다. 헤롯당은 데모나 하는 골치 아픈 대상으로 여겼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큰 무리를 보시고 환영하였습니다.

그리고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불쌍히 여기는 마음은 값싼 동정이 아닙니다. 영어로 compassion으로 고통을 함께 하다는 뜻입니다. 그들의 아픔이 예수님의 아픔이 되고, 그들의 고통이 예수님의 고통이 되고, 그들의 고독이 예수님의 고독이 되고, 그들의 슬픔이 예수님의 슬픔이 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을 불쌍히 여기신 것은 정치적으로 자유가 없어서가 아니었습니다. 경제적으로 빈곤해서도 아니었습니다. 마가복음 634절을 보면 예수님이 그들을 불쌍히 여기심은 목자 없는 양 같음으로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모든 동물은 반드시 공격 무기 아니면 방어 무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곰은 둔한 동물의 상징으로 표현되지만 사나운 발톱을 가지고 있습니다. 집에서 키우는 애완동물에게도 모두가 공격 무기가 있습니다.

그러나 양은 공격 무기나 방어 무기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리나 곰, 사자와 같은 맹수의 습격을 받게 되면 무방비 상태이기 때문에 그대로 잡혀 죽게 됩니다. 그리고 양은 눈이 근시이기 때문에 한 치 앞도 내다보지 못합니다. 또 자기중심적이어서 먹을 것만 있으면 죽는 줄도 모르고 달려가다가 구덩이에 빠지기도 하고, 독풀을 뜯어 먹어 죽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양은 반드시 목자의 인도와 보호를 받아야 합니다. 그 때 사나운 짐승으로부터 보호를 받게 되고, 푸른 초장과 시원한 시내에서 풀을 뜯고 물을 마시며 통통하게 살을 찌울 수 있습니다. 반면에 목자의 보호와 인도를 받지 못하게 되면 양은 빼빼 마르게 되고, 언제 어느 때 어떻게 될지 모르게 됩니다.

사람은 여러 면에서 양과 비슷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인간을 양으로, 하나님과 예수님을 목자로 비유했습니다. 다윗은 이렇게 시를 읊었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도다”(23:1-2).

하나님을 목자로 모시고 산 다윗은 행복했습니다. 그의 영혼은 시와 찬미로 가득했습니다. 다윗이 목자가 되어 공의와 사랑으로 나라를 다스렸을 때 그들은 행복했습니다. 예수님 시대에도 목자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목자들인 헤롯과 바리새인은 그들의 목자가 되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음란하고 위선적이었으며 권위적이었습니다. 그 때 그들은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현대인들은 모두가 많은 문제를 안고 살아갑니다. 10대들은 과중한 입시 경쟁으로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대학생들은 졸업을 하고도 취업하지 못해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30, 40대는 육아문제와 자녀교육 문제, 50대는 은퇴 후의 문제로, 60,70대들은 노후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는 하우스 푸어와 비정규직 문제가 아주 심각합니다. 누가 이들을 도울 수 있습니까? 이들의 근본적인 문제는 이들을 책임 있게 돌볼 목자가 없다는 것입니다.

누가 그들을 도울 수 있습니까? 주님만이 그들의 목자가 되십니다. 예수님만이 목자가 되셔서 그들을 이해하시고, 사랑으로 섬겨 주실 수 있습니다. 눈물로 기도하여 주실 수 있습니다. 우리 또한 그들을 목자의 마음으로 다가가 섬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목자가 갖춰야 할 의 기본적인 것은 불쌍히 여기는 마음입니다.

둘째,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고 하시는 예수님(14:15-21)

저녁이 되매 제자들이 나아와 이르되 이 곳은 빈들이요 때는 이미 저물었으니 무리를 보내어 마을에 들어가 먹을 것을 사 먹게 하소서”(14:15). 해가 서산으로 뉘엿뉘엿 저물어 갔습니다. 제자들은 저물기 전에 무리들을 두루 촌과 마을로 보내어 각자 사 먹게 하자고 했습니다.

우리는 제자들의 형편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곳은 빈들이요, 저물고, 또 남자만 오천 명입니다. 자신들이 가진 것이라고는 버스표 한 장도 없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무리들을 먹인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이상한 사람일 것입니다. 그들의 생각은 지극히 합리적이고, 정상적이었습니다. 그들의 생각은 빨리 보내면 보낼수록 좋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형편에서 이런 문제를 제기한 것만으로도 귀합니다.

예수님은 그런 그들에게 명령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갈 것 없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14:16). 이 말씀은 헬라어로 과거 명령형으로 계속적인 뜻이 있습니다. 계속 먹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형편을 알지 못해서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고 하셨습니까? 예수님은 누구보다도 제자들의 형편과 주위의 여건을 잘 아셨습니다. 이곳은 빈들이요, 때가 저물어 가는 것도 잘 아셨습니다. 예수님은 현재 우리의 형편도 잘 아십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은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명령하셨습니다. 이는 제자들을 지도자로 키우고자 하심입니다. 지도자의 덕목이 무엇입니까?

첫째로 책임감

갈 것 없다.” 이는 무리에게 책임을 지울 수 없다는 것입니다. 무리는 아무리 많아도 무리일 뿐입니다. 무리는 책임감이 없습니다. 무리는 바람에 나는 겨와 같습니다. 무리는 자기밖에 모르는 이기적입니다. “갈 것 없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이는 제자들이 그들에 대한 책임을 지라는 말입니다.

다시 말해 제자들이 책임을 지고 이들을 먹이라는 것입니다. 이 말은 다른 말로 지도자가 되라는 말입니다. 지도자는 아무리 형편이 어렵다 할지라도 자기 개인의 문제에 얽매어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무책임한 말과 행동을 해서는 안 됩니다. 지도자는 문제를 제기하는 것으로 끝나서도 안 되고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무리가 되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모두가 지도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지도자가 되지 못합니다. 이는 책임을 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왜 책임을 지지 않으려 합니까? 책임 뒤에는 희생과 헌신이 따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도자는 책임감이 있어야 합니다. 책임감이 있는 사람은 문제를 보는 시각이 다릅니다. 책임감이 있는 사람은 어디를 가도 쓰임 받습니다. 책임감은 사람을 비범하게 만들고 위대하게 만듭니다. 반면에 무책임한 사람은 어디를 가도 쓰임 받지 못합니다. 무책임은 희생하지 않고자 하는 이기심과 안일에서 옵니다.

한 영혼에 대한 책임감을 가진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도 양들을 돕고 섬기고 전도합니다. 바울은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 유다이즘에 사로 잡혀 자기 밖에 모르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 믿는 사람들을 죽이고 핍박을 하던 잔인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행동에 대해 무책임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후, 한 영혼에 대한 책임감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한 영혼에 대한 책임감은 세상 만민에 대한 책임감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는 헬라인이나 야만인이나 유대인이나 지혜 있는 자나 모두에게 책임감을 가졌습니다. 이 책임감은 그를 1세기의 사도로 만들었습니다.

요한 웨슬리는 세계에 대한 책임감을 가지고 세계는 나의 목장이라며 복음을 전 세계에 전했습니다. 그는 내가 말씀을 전하지 않으면 안 되다는 강한 책임감을 가지고 복음을 전했습니다. 이때 그는 믿음의 거목이 되었습니다.

우리도 대학마을 교회의 주인으로 교회와 인하대와 인천대에 대한 책임감과 시대와 민족에 대한 책임감을 가지고 복음을 전하고 섬기는 목자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둘째로 목자의 심정

책임감만으로는 양들을 먹이는 데 한계가 있습니다. 양들을 먹이려면 목자의 심정이 있어야 됩니다. 우리는 때로 양들을 왜 내가 돌보고 섬겨야 하는가?’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모세는 말을 잘 듣지 않는 백성들 때문에 속이 상해 하나님께 울부짖으며 이렇게 기도한 적이 있습니다. ‘내가 낳았습니까? 내가 왜 이들을 도와야 됩니까?’

우리는 왜 양들을 도와야 합니까? 왜 우리는 세계를 먹여야 합니까? 우리는 그들과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내가 낳은 자식도 아닙니다. 내가 키운 자식도 아닙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성경 공부하지 않겠다고 하는 양들을 찾아가 도와야 합니까? 왜 그들을 위해 눈물로 기도를 해야 합니까? 왜 우리가 선교사를 파송해야 합니까? 우리가 왜 미국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까? 이는 우리가 목자이기 때문입니다. 목자의 심정은 빚진 마음에서 옵니다.

우리는 과거 죄 중에 방황하다가 영원히 멸망할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선배 목자들의 사랑과 섬김으로 예수님을 만나 구원을 받아 영생을 얻었습니다. 예수님은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많은 고난을 받으시고, 물과 피를 다 쏟으시고 처참하게 죽으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은혜로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에 참예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예수님께 은혜의 빚, 사랑의 빚, 섬김의 빚을 졌습니다. 빚진 자는 빚을 반드시 갚아야 합니다. 빚을 갚지 않으면 사기꾼입니다. 빚을 졌으면 반드시 갚아야 하고, 갚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이는 의무 이전의 문제입니다. 목자의 심정은 빚진 자의 심정에서 나옵니다.

바울이 지칠 줄 모르게 복음 역사와 세계 선교를 감당할 수 있었던 것은 빚진 자의 심정이 있었기 때문입니다(1:14). 그의 목자의 심정은 빚진 자의 심정에서 나왔고, 그의 빚진 자의 심정은 그를 위대하게 했습니다.

우리는 주님으로부터 그리고 선배 목자들로부터 많은 빚을 졌습니다. 이제 우리는 은혜의 빚, 사랑의 빚, 섬김의 빚을 양떼들에게 갚아야 됩니다. 우리가 빚진 자의 심정, 목자의 마음을 갖고 방황하는 양무리를 섬기기를 기도합니다.

셋째로 믿음을 심으심

제자들이 무리들을 먹이고자 하는 책임감과 목자의 심정이 있다 할지라도 현실은 엄연한 현실이었습니다. 어떻게 제자들이 많은 무리들을 먹일 수 있습니까? 그러므로 제자들은 예수님께 나아가 기도하고 매달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믿음이란 나는 할 수 없지만 예수님께서는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믿음을 원하셨습니다. 믿음은 불가능을 가능하게 합니다.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함이 없습니다. 우리가 믿음만 있으면 현실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제자들은 현재 자기들에게 있는 것을 찾았습니다(14:17-21). 그러자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이는 제자들에게 있어서 전부였습니다. 이것은 무리를 먹이기에는 절대 부족했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이 52에서 어떤 가능성을 발견하고 예수님께 갖다 드렸습니다. 예수님은 이를 기뻐 받으시고 하나님께 감사기도 드리셨습니다. 이때 5000명을 먹이고도 12광주리가 차고 넘쳤습니다.

우리에게도 52어가 있습니다. 시간의 52, 물질의 52, 편지의 52, 기도의 52, 일대일 성경 공부의 52, 눈물의 52, 각기 재능의 52어가 있습니다. 우리가 이를 예수님께 드릴 때 이를 기뻐 받으십니다. 우리가 진심, 기도, 시간, 사랑, 눈물, 물질, 믿음, 일대일 성경 공부를 드릴 때 예수님은 이를 받으시고 축사하셔서 세계를 먹이십니다.

지도자의 덕목은 순결입니다. 그리고 상한 목자의 심정과 책임감, 그리고 믿음입니다. 이런 덕목이 있을 때 역사를 창조하고 세계를 먹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오병이어를 드릴 때 주님은 이를 기뻐 받으시고 역사의 주역으로 쓰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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