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15:1-20
겉보다 마음을 깨끗하게 하라
“입에서 나오는 것들은 마음에서 나오나니 이것이야말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마 15:18)
성경에 마음이란 영어로 mind와 heart가 있습니다. mind는 보이는 실체이고, heart는 보이지 않는 실체를 뜻합니다. 그리고 헬라어로 마음이란 카르디아, 가슴, 심장을 뜻합니다. 카르디아는 인간의 정신과 영의 중심부입니다. 이를 바울은 ‘속사람’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인간의 마음속에 감정, 욕망 등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마음은 이해와 생각, 그리고 의지의 결단의 근원이 되기도 합니다. 더욱이 마음은 경건한 삶의 근원지로 하나님께서 인간을 만나시는 중심이 됩니다. 인간은 마음을 통해서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고, 하나님의 말씀과 명령에 순종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마음을 보시고 우리의 됨됨이를 평가하십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사람 앞에서 스스로 옳다 하는 자들이나 너희 마음을 하나님께서 아시나니 사람 중에 높임을 받는 그것은 하나님 앞에 미움을 받는 것이니라”(눅 16:15). 마음이 바르고 깨끗하면 행동이 바릅니다. 몸은 마음의 생각을 따라 움직입니다. 문제는 마음이 본질적으로 악하기 때문에 행동이 바를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인간은 스스로 마음을 바르고 깨끗하게 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마음은 본질적으로 부패하기 때문입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사람의 마음이라고 했습니다(렘 17:9).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마음을 깨끗하고 정결하게 할 수 있습니까? 본문은 우리에게 마음을 정결하게 할 수 있는 법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1. 전통보다 계명이 우선(마 15:1-9)
본문은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제자들을 비판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예수님의 제자 중 몇 사람이 손도 씻지 않고 음식을 먹었습니다. 이를 본 그들은 신랄하게 비판했습니다. “당신의 제자들이 어찌하여 장로들의 전통을 범하나이까 떡 먹을 때에 손을 씻지 아니하나이다”(마 15:3).
율법에는 문자로 기록된 성문법과 모세 이후에 장로들을 통해 구전으로 전해 내려온 전통이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장로들의 유전을 율법 이상으로 중요시하여 성문법이 물이라면 구전법은 포도주와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장로들의 전통은 알게 모르게 그들의 의식세계와 무의식 세계를 지배했습니다.
전통 중에 식사 전에는 손을 씻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아무리 배고파도 옷을 걷어 올려 손목까지 씻지 않으면 먹지 않았습니다. 시장에 갔다가 돌아와서는 반드시 샤워를 하고 음식을 먹었습니다. 손뿐만 아니라 잔과 주발과 놋그릇까지도 깨끗이 씻었습니다. 이것은 그들의 생활화된 종교의식이었습니다.
아카비란 율법사는 옥에 갇혀 있을 때 마시라고 주는 물을 마시지 않고 손을 씻다가 옥사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사회에서 제자들이 손을 씻지 않고 밥을 먹었으니 얼마나 비난을 했을까 짐작이 갑니다. 그러면 왜 그들이 열심히 손을 씻었을까요?
이스라엘은 사막지대인데다가 바람이 많고 또 건조하여 먼지가 많이 날립니다. 그래서 몸을 씻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레위기 11장에 보면 정결한 몸으로 하나님을 잘 섬기고자 함에 있었습니다. 그들은 열심히 손을 씻는 것으로 마음이 정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들이 열심히 손을 씻는 만큼 마음이 정결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그들의 외식을 책망하셨습니다.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는 어찌하여 너희의 전통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느냐”(마 15:3). 그들은 전통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어겼습니다. 그들이 전통으로 계명을 어긴 구체적인 예는 ‘고르반’이었습니다. 고르반이란 ‘하나님께 드림’이란 뜻입니다. 이는 하나님께 드린다는 미명 아래 부모님을 공경하지 않은 것입니다(마 15:4-6). 한번 고르반 하고 선언하면 다른 목적으로 사용할 수 없었습니다. 유대인들이 이런 제도를 만든 것은 제 1-4계명을 기초로 하나님을 어느 것보다 더 사랑하고 경외하고자 함이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고르반을 이용하여 부모님을 공경하라는 제 5계명을 어겼습니다. 그들은 부모님을 섬기고 싶지 않으면 ‘고르반’ 하여 하나님을 섬기지도 않고 부모님을 섬기지도 않았습니다. 하물며 반드시 갚아야 할 돈도 ‘고르반’ 해놓고 갚지 않았습니다. 그런 후에 종교지도자들과 결탁해 각기 돈을 나눠 갖기도 했습니다.
며느리들이 시부모님을 섬기는 것이 부담스럽다 싶으면 창세기 12장 1-2절인 본토친척 아버지 집을 떠나야 된다, 가정을 이루면 독립해야 한다는 등 성경 말씀을 인용하여 부모님을 섬기지 않으려 했습니다. 이것은 말씀을 이용해 자기 안일을 추구하는 것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는 행위입니다. 그리고 학생들은 성적이 좋지 않게 나오면 교회를 섬기고 성경을 공부하다가 시간이 없어 그리됐다며 자기를 합리화하고 하나님을 탓하기 쉽습니다. 이는 아주 잘못된 생각입니다. 크리스천 학생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믿지 않는 학생들보다 더 열심히 공부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이런 그들을 책망하셨습니다. “외식하는 자들아 이사야가 너희에 관하여 잘 예언하였도다 일렀으되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느니라 하시고”(마 15:7-9).
그들의 문제는 외식이었습니다. ‘외식’이란 연극 용어로, 배우나 광대란 뜻입니다. 배우는 자신의 모습을 감추고 가면을 쓰거나 다른 모습으로 변장하여 작중 인물역할을 합니다. 즉 외식이란 겉과 속이 다른 이중적인 삶을 일컫는 용어입니다. 바리새인들은 겉으로 보면 장로들의 전통을 좇아 부지런히 손을 씻고 목욕하고 그릇을 깨끗하게 씻기 때문에 믿음이 좋은 것 같습니다. 그들은 입으로 열심히 하나님을 찬양하기 때문에 의롭고 경건하며 믿음이 좋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 내면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계명보다 사람의 말을 더 가르치는 인본주의자들이었습니다.
로마서 2장을 보면 이들은 하나님을 자랑하고 다른 사람을 열심히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을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남의 눈에 있는 티는 보지만 자신의 눈에 있는 들보는 보지 못했습니다.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고 하지만 그들은 은밀히 간음하고 도둑질했습니다. 그들은 잔과 대접을 깨끗하게 씻지만 마음에는 온갖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모습을 이렇게 지적하셨습니다.
“화 있을 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도다 화 있을 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이와 같이 너희도 겉으로는 사람에게 옳게 보이되 안으로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하도다”(마 23:25, 27-28).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는 그들이 이처럼 형식적이고 위선적인 생활을 하게 된 원인이 어디에 있습니까? 이는 하나님 앞에서 살지 않고 사람 앞에서 살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사람들 앞에 살게 되면 사람의 인정과 칭찬을 구하게 됩니다. 사람들의 소리와 관심에 민감하게 됩니다. 따라서 내적인 데 관심을 갖기보다 외적인 일에 관심을 갖게 됩니다.
신앙생활이란 입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하는 것입니다. 가슴으로, 심장으로 주님을 사랑하고 양들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마음도 없으면서 열심히 하는 입술 신앙을 원하지도 않고 기뻐하지도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마음이 하나님께로 향해 있고, 뜨거운 심장으로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랑할 때 기뻐하십니다. 그리고 신앙이란 의식도 중요하지만 비례하여 내용도 중요합니다. 의식이 없는 내용은 경박합니다. 반면에 내용이 없고 의식만 있으면 위선이 되고 형식적이 됩니다. 문제는 그들이 내용보다 의식을 더 중요하게 여긴데 있습니다.
종교개혁이 일어난 것도 가톨릭이 성경보다 전통과 의식을 더 중히 여겼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다보니 가톨릭은 복음 진리는 없고 의식만 남았습니다. 다시 말해 알맹이는 없고 껍데기만 남았습니다. 이때 마르틴 루터가 의식을 버리고 순수하게 본질로 돌아가자. 순수 복음 진리로 돌아가자. 즉 ‘오직 믿음'(Sola Fide),’ ‘오직 성경(Sola Scripture)’ ‘오직 은혜(Sola Gratia)’ ‘오직 하나님께 영광(Sola Deo Gloria)’으로 돌아가자고 일어선 것이 종교개혁입니다.
이상에서 우리는 마음으로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가슴신앙, 심장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입술신앙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진실해야 합니다. 사람들의 칭찬보다 하나님의 영광을 구해야 합니다. 그리고 말씀이 우리의 삶의 규범이 되고, 말씀이 우리의 의식세계와 무의식 세계를 지배해야 합니다.
2.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힘(마 5:10-20)
예수님은 무리들이 종교 지도자들의 가식적인 영향을 받지 않도록 다시 불러 말씀하셨습니다.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마 15:11). 예수님이 이 말씀을 하시자 제자들은 바리새인들의 자존심을 건드려 바리새인들로부터 핍박을 받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조금도 개의치 않으시고 심은 것마다 내 하늘 아버지께서 심으시지 않는 것은 뽑힐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위선적인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과 타협하거나 상종하지 말라고 경계하셨습니다. 제자들이 아직 분별력이 없어 맹인이 맹인을 인도하여 구덩이에 빠뜨리는 꼴이 될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마 15:12-14).
이때 베드로가 예수님께 나와 예수님의 비유의 뜻을 물었습니다. 예수님은 더디 깨닫는 그들을 나무라시고 그 뜻을 설명해 주셨습니다. 우리의 입으로 들어가는 음식은 소화 기능에 의해 소화되어 배설기관을 거쳐 배설됩니다. 이런 과정을 거쳐 우리는 건강을 유지하게 됩니다. 그리고 배설된 오물은 식물을 자라게 합니다. 모든 식물은 하나님께서 선하게 창조하신 것으로써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딤전 4:3-4).
예수님은 입으로 들어가는 음식이 더러운 것이 아니라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 더럽다고 하셨습니다. “입에서 나오는 것들은 마음에서 나오나니 이것이야말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둑질과 거짓 증언과 비방이니 이런 것들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요 씻지 않은 손으로 먹는 것은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하느니라”(마 15:18-20).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 살인, 간음, 음란, 도둑질, 거짓 증언, 비방입니다. 살인은 제 6계명을 어기는 것입니다. 간음과 음란은 제 7계명을 어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제 7계명을 주신 것은 가정 보호를 위해서입니다. 음란은 여러 종류의 부정한 성적 행위를 말하고, 간음은 결혼한 사람의 부정한 성적 관계를 의미합니다. 음란과 간음은 자신뿐만 아니라 가정을 파탄시키고 사회를 파괴시키는 원흉입니다. 건강한 성이란 남녀가 결혼하여 부부가 가정에서 은밀하게 인격적으로 사랑을 나누는 것입니다. 그 외에는 모두 불륜이요 음란이요 간음입니다. 그리고 도둑질은 제 8계명을 어기는 것입니다. 제 8계명은 사유재산의 보호입니다. 거짓 증언은 제 9계명을 어기는 것이고, 비방은 모든 인간관계를 파괴하는 행위입니다.
인간의 본성은 아담의 불순종 이후로 부패했습니다. 그래서 예레미야 선지자는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사람의 마음이라고 했습니다(렘 17:9). 따라서 신안생활이란 마음을 지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잠언 기자는 모든 지킬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이 근원이 이에서 남이라고 했습니다(잠 4:23).
사람이 많은 업적을 남기고 큰일을 하였다 할지라도 마음을 지키고 다스리지 못하면 멸망에 이릅니다. 솔로몬은 성전을 짓는 등 큰일을 했지만 마음을 다스리지 못해 이방 여인에게 마음을 뺏겼습니다. 우리는 먼저 마음을 지켜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마음을 지킬 수 있습니까? 우리가 어떻게 부패한 마음을 깨끗하게 할 수 있습니까?
첫째, 말씀으로 마음을 채워야 함
우리 마음은 빈 항아리와 같습니다. 신앙은 비우는 것이 아니라 채우는 것입니다. 그래서 무엇인가 채워야 됩니다. 술로 채우면 취객이 되고, 정욕을 채우면 밤거리의 이리가 되고, 욕망과 탐욕으로 채우면 지독한 자기 밖에 모르는 세리가 됩니다. 이처럼 마음에 무엇으로 채울 것인가는 매우 중요합니다.
시편 기자는 청년이 무엇으로 깨끗한 행실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결론을 이와 같은 내렸습니다. “청년이 무엇으로 그의 행실을 깨끗하게 하리이까 주의 말씀만 지킬 따름이니이다”(시 119:9). 말씀으로 채울 때만이 깨끗한 삶을 살게 된다고 고백했습니다.
바울은 에베소서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고 했습니다.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엡 6:17).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되었기 때문에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기 때문이었습니다(딤후 3:16-17).
말씀에는 세력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히 4:12).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 마음에 악성 바이러스와 같은 더럽고 추한 생각들을 다 잡아 냅니다.
그리고 우리가 말씀을 가까이하고 말씀을 묵상하고 암송하며 말씀을 기억하게 되면 말씀이 우리 안에서 세력을 형성하게 됩니다. 그리할 때 죄의 먹구름이 걷히고 성령의 열매인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양선과 온유와 절제와 같은 행복 비타민으로 채워주십니다.
둘째, 십자가 보혈의 능력을 덧입어야만 함
죄로 더러워지고 부패한 마음을 다른 것으로는 결코 정결하게 할 수가 없습니다. 참선을 한다고 되지 않습니다. 좋은 책을 읽고, 고상한 음악을 듣는다고 되지 않습니다. 오직 예수님의 보혈만이 우리의 마음을 깨끗하게 청소해 줄 수 있습니다.
“염소와 황소의 피와 및 암송아지의 재를 부정한 자에게 뿌려 그 육체를 정결하게 하여 거룩하게 하거든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냐?”(히 9:13-14).
그리스도의 보배로우신 피만이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우리를 구속할 수 있습니다(벧전 1:18-19).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배로운 피를 의지할 때에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에 묵은 죄를 제해 주시고 정결한 마음을 주십니다.
교회나 집이나 며칠만 청소하지 않고 쓰레기통을 비우지 않으면 지저분하고 냄새가 진동합니다. 쓰레기통은 빨리 비울수록 좋습니다. 그래서 쓰레기통을 비우지 않습니까? 그런데 왜 우리는 마음의 더러운 쓰레기통을 비우지 않습니까?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 밑에 나아가 날마다 내 마음의 더러운 쓰레기통을 비워야 합니다. 내 마음에 쌓인 죄의 쓰레기통을 십자가 밑에 내려놓을 때에 주님께서 우리 마음과 영혼을 정결하게 하시고 거룩한 생각, 정결한 생각, 영적인 마음으로 가득 채워주십니다. 내 마음이 하나님과 가까워지고 하늘의 기쁨과 감격이 가득하게 됩니다. 우리가 매일 예수님의 십자가 밑에 나아가 예수님의 정결한 피에 내 몸과 마음을 적시기를 기도합니다.
“나의 죄를 씻기는 예수의 피 밖에 없네 다시 정케 하기도 예수의 피 밖에 없네 예수의 흘린 피 날 희게 하오니 귀하고 귀하다 예수의 피 밖에 없네”(찬송가 252장).
셋째, 규칙적인 기도를 통해 성령 충만한 삶을 살아야 함
구원받은 신자는 우리 몸이 더 이상 죄로 가득한 쓰레기통이 되면 안 됩니다. 왜냐하면 우리 몸은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는 성령의 전이기 때문입니다(고전 3:16-17).
따라서 우리는 날마다 성령 안에서 기도해야 합니다.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엡 6:18).
우리가 기도생활을 통해 성령 안에서 하나님과 교제할 때에 내 안에 성령으로 충만하게 됩니다. 그때 우리는 성령님의 능력으로 죄와 싸워 거룩함에 이를 수가 있습니다. 데이빗 브레이너드는 “성령의 능력 없이 영적인 일을 하려는 사람은 손가락 없는 손으로 일을 하려고 하는 사람과 같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내 의지와 능력의 한계를 인정하고 주님 앞에 무릎을 꿇어야 합니다. 성령으로 충만하여 악한 것들을 분별하고 악한 마귀와 대적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성령 충만할 때에 마음은 악취를 토해내는 하수구가 아니라 거룩하고 아름다운 것을 뿜어내는 생명의 근원이 됩니다.
우리 모두가 주님의 보배로운 피로 정결함을 받고 형식적인 신앙생활을 버리고 마음으로 신앙생활을 하기를 기도합니다. 우리가 가슴으로 심장으로 주님을 사랑하고 양들을 사랑하기를 기도합니다. 그리고 말씀으로 마음을 지키고 기도로 성령 충만하기를 기도합니다. 마음을 지키는 것은 열성을 뺏는 것보다 낫습니다.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잠 16장 32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