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17:1-13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말할 때에 홀연히 빛난 구름이 그들을 덮으니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이르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시는지라”(17:5).

 

세상에는 각양각색의 수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생각을 하며 살아갑니다. 그들 중에는 보이는 사실과 객관적인 사실만을 믿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도 사실은 은연중에 자신의 기준과 잣대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토머스 키다는 생각의 오류에서 사람은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는 오류가 있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자기가 듣고 싶은 것만 듣고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예수님의 십자가와 고난과 죽음이란 단어들을 듣지 않고자 귀를 막았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제자들을 데리고 높은 산에 올라가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변형되셨습니다.

이 변형되신 사건은 예수님의 성육신, 십자가의 죽으심, 부활 및 승천과 더불어 예수님 생애에 있어 중요한 사건 중의 하나입니다. 예수님은 이 사건을 통해 십자가를 통한 부활의 영광을 보여주셨습니다. 본문을 통해 우리가 십자가를 통한 부활의 영광스러우신 예수님을 만나기를 기도합니다. 그리고 현실에 안주하고자 하는 제자들의 모습 속에서 우리가 자신을 돌아보고 예수님의 말씀을 듣기를 기도합니다.

1. 그 옷이 광채가 나고(17:1-3)

엿새 후에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을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셨더니 그들 앞에서 변형되사 그 얼굴이 해 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더라.”(17:1-2). ‘엿새 후란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기초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십자가의 비밀을 가르쳐 주신 엿새 후를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많은 고난과 죽으심을 통해 그리스도가 되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영적으로 어려서 영적인 세계를 잘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의 십자가에 관한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제자들 중 세 제자만 데리고 높은 산에 오르셨습니다. 여기서 높은 산은 헬몬산을 말합니다. 이 산은 일명 설산이라 할 만큼 항상 눈으로 덮여 있는 아름다운 산입니다.

예수님은 이곳에서 세 제자에게 변형된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변형되었다는 것은 외형의 변화가 아니라 본질의 변화를 뜻합니다. 이는 빌립보서 26절의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essential form)시나의 본체와 같은 단어입니다. 예수님은 근본적으로 새로운 모습으로 변화되셨습니다. 주님의 얼굴은 해같이 빛나고 옷은 빛과 같이 희어졌습니다.

예수님이 변화산에서 변형되기 이전의 모습은 어떠했습니까? 이사야 선지자가 이사야서 53장에서 예언한 것처럼 예수님은 연한 순 같이 연약했습니다. 예수님은 마른땅에서 나온 줄기 같이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의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사람들로부터 멸시받고 무시 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의 본래 모습은 이런 분이 아니셨습니다. ‘흰 옷은 영광과 권세, 거룩함과 순결, 승리의 상징입니다. 예수님은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죄인들이 감히 그 앞에 설 수 없는 영광스러운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본래 천지를 창조하신 권능의 하나님이십니다(1:1-3).

사도 요한은 변화산상에서 만난 변형되신 예수님이 그의 마음에 깊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후에 후에 밧모 섬에서 환상 중에 영광스러운 예수님의 모습을 보고 이렇게 묘사했습니다. “촛대 사이에 인자 같은 이가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 그의 머리와 털의 희기가 흰 양털 같고 눈 같으며 그의 눈은 불꽃 같고 그의 발은 풀무불에 단련한 빛난 주석 같고 그의 음성은 많은 물 소리와 같으며 그의 오른손에 일곱 별이 있고 그의 입에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고 그 얼굴은 해가 힘있게 비취는 것 같더라”(1:13-16).

예수님은 가슴에 금띠를 띤 왕이십니다. 예수님은 머리털의 희기가 흰 양털 같이 순결하십니다. 예수님의 눈은 불꽃같아 그 앞에서 죄악을 숨길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발은 빛난 주석과 같이 심판의 권세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음성은 아름답고 청아합니다. 예수님의 입에는 혼과 영과 골수를 쪼갤 수 있는 말씀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얼굴은 해가 힘 있게 비취는 것과 같이 소망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오른손에는 일곱별이 빛났습니다. 이 영광스러운 예수님이 교회를 통치하십니다. 요한은 이 예수님을 똑바로 쳐다볼 수가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 앞에서 변형되신 것은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는 그들이 영적인 눈이 떠져 그들 마음에 예수님의 영광스런 모습이 새겨지기를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제자들의 마음에 새겨진 예수님은 가난하신 예수님, 고생하시는 예수님이었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삶은 의미 있고 보람은 있지만 고생만은 싫었습니다. 이런 그들은 십자가의 도리를 이해할 수도 없었고 받아들일 수도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마음에는 어떤 예수님의 모습이 새겨져 있습니까? 일반적으로 우리의 마음에는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로 올라가시는 예수님, 가시 면류관을 쓰고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의 모습이 새겨져 있습니다. 이런 생각을 기초로 신앙생활을 하게 되면 얼굴에 기쁨과 생기가 없고 늘 심각한 모습을 하게 됩니다. 신자의 깃발은 기쁨인데 기쁨이 없고 얼굴이 어둡고 칙칙합니다.

이제 우리는 예수님의 모습을 바꿔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에 영광의 예수님이 새겨져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심중에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예수님,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셔서 만유를 통치하시는 예수님, 빛나고 영화로우신 예수님의 모습이 박혀 있어야 합니다. 이때 우리의 신앙생활은 기쁨과 감사와 희망으로 가득 차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가 소명의식을 가지고 맡겨진 사명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이렇게 권면합니다.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딤후 4:8).

바울은 힘들 때마다 메인 스타디움을 둘러서서 환호하는 믿음의 선배들 앞에서 승리의 면류관을 씌워주시는 예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이 면류관은 자신 뿐만 아니라 믿음의 중심을 지키고 다시 오실 예수님을 간절히 기다리는 모든 성도들을 위해서도 준비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영광의 예수님을 만나지 못하게 하는 원인이 무엇입니까? 이는 의심의 구름, 불신의 구름, 고난을 피하고 쉽고 편히 살고 싶은 안일의 구름, 탐욕과 쾌락의 구름이 우리의 시야를 가리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런 구름을 헤치고 눈을 들어 태양과 같이 찬란한 영광의 예수님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 때에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와 더불어 말씀하는 것이 그들에게 보이거늘”(17:3). 구약에는 아브라함과 사무엘, 다윗, 이사야, 다니엘과 같은 위대한 하나님의 종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왜 이때 모세와 엘리야만 나타났을까요?

첫째는 예수님이 구약의 완성자임을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구약을 가리켜 율법과 선지자라고 합니다. 모세는 율법의 대표요, 엘리야는 선지자의 대표입니다. 구약 성경의 핵심은 그리스도입니다(요한 5:39). 예수님은 율법과 선지자들이 증거한 약속된 메시아입니다.

둘째는 예수님이 고난을 통한 구속역사를 완성하실 분이심을 가르쳐 주시기 위함입니다.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님으로 더불어 말씀하신 내용은 예수님이 예루살렘에서 죽으심에 관한 것이었습니다(9:31). 모세와 엘리야와 예수님의 공통점은 모두 고난을 많이 겪었는데 영광 중에 나타난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고난은 예수님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었습니다. 이들은 장차 오실 메시아의 그림자에 불과했습니다.

예수님은 인류의 죄를 한 몸에 짊어지시고 많은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우리의 허물을 인해 찔리시고, 우리의 죄악을 인해 채찍에 맞으셨습니다. 마침내 십자가에서 내 대신 저주를 받으셨습니다. 이러한 고난을 통해서 인류 구속역사가 완성되었습니다.

모세와 엘리야와 예수님은 서로 다른 시기에 살았으나 모두 영광 중에 동시에 나타났습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예수님의 고난과 죽으심은 패배가 아니라 영광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또한 주님을 위해 많은 고난을 겪으면 주님과 함께 영광이 임한다는 사실을 배울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고난을 통한 부활의 영광이 우리의 마음에 새겨지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2.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17:4-8)

변형되신 예수님께서 모세와 엘리야로 더불어 말씀하시는 것을 본 베드로는 황홀지경에 빠졌습니다. 그는 이 분들과 영원히 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자기도 모르게 입에서 튀어나왔습니다.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만일 주께서 원하시면 내가 여기서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리이다”(17:4).

그의 말은 예수님과 모세와 엘리야를 위해서 하는 말 같지만 그 속마음은 자신들을 위해 그렇게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베드로는 초막 셋을 지어 자신은 예수님의 비서실장이 되고, 야고보는 모세의 비서실장, 요한은 엘리야의 비서실장이 되게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마가복음 96절을 보면 이 상황을 이는 저희가 심히 무서워함으로 저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지 못함이더라고 했습니다. 즉 베드로가 너무 놀란 나머지 자기도 모르게 말을 내뱉은 것입니다. 이는 그의 잠재의식에 숨어 있던 생각이 무의식적으로 튀어나온 것입니다.

우리는 베드로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 많은 고생을 했습니다. 그는 더 이상 고생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산 밑으로 내려가면 동역하기 어려운 다른 제자들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귀신들린 무리들과 말썽 피는 양들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고난이 남아 있을까? 얼마나 더 자신을 희생해야 하는가?”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니 산 아래로 내려가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는 더 이상 십자가를 지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아름다운 헬몬 산 위에 아담한 초막을 짓고 사랑하는 예수님과 영원히 살고 싶었던 것입니다.

베드로의 이런 신앙을 초막신앙이라고 합니다. 이 초막 신앙은 우리의 내면에도 잠재되어 있습니다. 초막 신앙의 특징은 십자가 없는 영광만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현실에 안주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도전과 개척정신이 없는 것입니다. 비전이 없는 것입니다. 안일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만약 베드로의 요청대로 변화산 위에 초막을 짓고 산다면 산 아래의 사람들은 어떻게 됩니까? 예수님이 오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은 죄와 질병과 사단의 권세 아래 허덕이는 세상을 구원하러 오셨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은 변화산이 아무리 좋아도 산 아래로 내려가셔야 합니다. 현실에 안주하여 사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교회는 자기들끼리 옹기종기 모여 사는 것이 아니라 세상으로 나가는 것입니다.

이때 홀연히 빛난 구름이 저희를 덮었습니다. 구름은 하나님의 임재와 영광을 뜻합니다(16:10, 19:9, 24:15,16, 33:9, 40:34-35). 하나님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임을 증거하셨습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17:5).

하나님은 구름 속에서 현실에 안주하고자 하는 제자들의 요구를 단호히 물리치고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라고 명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직접 나타나셔서 그들에게 말씀하시는 것은 예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이 너무나도 중요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들어야 할 예수님의 말씀이 무엇입니까? 십자가를 통한 영광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십자가의 고난 없이는 절대로 하나님 나라에 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고난은 하늘나라로 가는 통로입니다. 고난이란 통로 없이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고 싶어도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바울은 루스드라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돌에 맞아 기절해서 사람들이 성 밖으로 내쳤습니다. 그러나 그가 깨어나자 곧 성으로 들어가 전도했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이런 유명한 말을 남깁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14:22).

평소 고난을 싫어했던 베드로도 후에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후 이 진리를 깨닫고 핍박으로 흩어진 성도들에게 이렇게 권면했습니다.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벧전 3:13).

그렇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영광은 십자가의 고난을 전제로 합니다. 고난이 없으면 영광도 없습니다. 고난이 있기에 영광도 있습니다. 영광이 있기에 고난도 있습니다. 고난과 영광은 함수 관계입니다. 영광과 고난을 따로 말할 수 없습니다. 십자가의 고난은 반드시 영광이 따르고, 영광이 있으면 고난이 따르게 됩니다. 영광을 얻었다면 고난이라는 과정이 있었다는 증거입니다.

사람이 어떤 소리를 듣느냐는 매우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이에 따라 그 사람의 인격과 삶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세속주의와 쾌락주의의 소리를 들으면 세속적인 사람, 쾌락의 노예가 됩니다. 사람이 내면의 절망의 소리를 들으면 소망을 잃어버리고 심하면 자살하게 됩니다. 세상의 상대적인 소리를 들으면 회의와 불신에 빠지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 되기 때문에(119:105), 말씀을 들을 때 생명의 길을 갈 수 있고 영생을 얻게 됩니다. 또한 말씀은 우리에게 소망과 영적인 힘을 줍니다. 그런데 오늘날 사람들은 어떤 말씀을 듣습니까?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좇을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따르리라”(딤후 4:3-4).

사람들은 진리의 말씀에 대해 귀를 기울이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에게 유익이 되는 소리에만 귀를 기울입니다. 사람들은 자기가 듣고 싶은 말씀만 듣고, 보고 싶은 말씀만 봅니다.

그리고 쉽게 사는 법에 길들여져 있습니다. 사람들은 손쉽게 돈 벌고자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땅 투기, 아파트 투기, 주식 투기, 복권, 다단계를 통해 일확천금을 모으고자 합니다. 은사운동을 쫓아다니고 신사도 운동에 가담합니다. 신사도 운동에 가담하는 사람들은 은사를 받아 기적을 체험하고 쉽게 신앙생활하고, 쉽게 목회를 하고자 함에 있습니다. 쉽게 신앙 생활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사이비나 이단들의 표적이 됩니다.

이때 우리가 예수님께로부터 무슨 말씀을 들어야 합니까? 우리는 십자가의 고난과 죽으심과 부활에 관한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자기 부인이나 십자가, 회개, 희생, 헌신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십자가를 가르치고 사랑하는 교회는 건강합니다. 고난을 사랑하는 사람은 절대로 타락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십자가의 고난 없이 사는 것이 행복인 줄 알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십자가의 고난이 행복입니다. 고난 없는 신앙생활은 그 자체가 죽은 신앙이요 타락의 지름길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십자가에 대한 말씀을 듣고 순종해야 합니다. 말씀은 우리를 살리고, 값지게 하고, 위대하게 하고, 열매를 맺게 합니다. 그리고 구원에 이르게 하고 영광스러운 삶을 살게 합니다.

제자들은 구름 속에서 들려오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심히 두려워 엎드렸습니다(17:6). 이때 예수님께서 나아와 저희에게 손을 대시며 일어나라 두려워하지 말라고 위로하셨습니다. 그들이 눈을 들고 보니 예수님 외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변형되신 예수님을 통해 영적 눈이 띄어 영광스러운 사건을 마음 속 깊이 간직했습니다(벧후 1:16-17).

3. 그들이 산에서 내려올 때(17:9-13)

저희가 산에서 내려올 때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인자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기 전에는 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고 경계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마음에 의문이 생겼습니다. “그러면 어찌하여 서기관들이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하리라 하나이까”(17:10).

당시 서기관들은 말라기 말씀을 근거로 엘리야가 먼저 와서 모든 것을 회복한 후에 메시야가 오셔서 메시아 왕국을 건설할 것을 가르쳤습니다(4:5-6). 서기관들은 엘리야가 먼저 와야 된다고 함으로써 예수님이 메시아 됨을 부인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그들에게 바른 메시아 관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엘리야가 과연 먼저 와서 모든 일을 회복하였으나 사람들이 이를 알지 못하고 임의로 대우하여 많은 고난을 받았습니다. 이와 같이 메시아도 이미 오셨지만 많은 고난 받을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제야 제자들은 예수님이 말씀하신 엘리야가 세례 요한인 줄을 깨달았습니다(17:13).

우리는 예수님을 생각하면 어떤 모습이 떠오릅니까? 영광과 거룩하신 모습입니까? 아니면 십자가에 처절하게 돌아가신 분입니까? 예수님은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셨습니다. 우리의 마음에 부활의 영광이 새겨지기를 기도합니다. 우리가 십자가 고난 후의 영광스러운 예수님, 승리의 예수님, 빛나고 높은 보좌에 오르신 예수님, 장차 오실 영광의 예수님을 바라보며 주님의 말씀을 듣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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